아마르가  땅조사를 한다.

이곳으로 누가 얼마나 이전 시간에 다녀갔나 알아보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아무개가 점심 먹기 전에 지나갔고, 누구는 아침 해뜨고 바로 다녀갔군.'

 

 

 

 

 이럴 때 머릿속은 온통 무엇에 골똘하느라

다리는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느낌이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살필 때도 역시 느릿느릿 평보다. 

 

말과 사람이 함께 친밀감을 느끼는 데에는 평보가 최고다.

말의 마방굴레에 로프를 달아서 잡고 나란히 걸어갈 때에 기분좋은 느낌이 있다.

말 뒷다리가 내 눈에 보일리 없으므로 마치 말도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말도 보폭을 나에게 맞추고 제 눈의 높이를 나의 눈높이 정도에 두므로

친구랑 다정하게 걸어가는 느낌?

로프를 느슨하게 늘어뜨려 잡으면 말이 주변도 살펴가며 나도 쳐다보니

우리 사이에 끈끈한 친밀감이 있구나 싶어진다.

 

 

 

 평보 걸음걸이 사진은 아마르가 자유롭게 놀고 있을 때 모습이다.

 아래에 나오는 속보나 구보 걸음걸이는 자유조마를 실시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유심히 보면 아마르가 꽤 절도있게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조마는 긴 로프를 말과 사람 사이에 연결시키지 않고

사람의 손짓이나 입소리 신호에 따라 말을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로프라는 물리적 연결이 없다보니 정신적인 연결이 튼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마르가 지금도 완벽한 수준이랄 수는 없지만 처음 실시할 때 순조롭지 않았다.

좁은 훈련장에서는 비교적 잘 했지만 넓은 공간에 나오니

 '자유로운 영혼' 아마르는 훈련가인 할아버지의 지시를 따르기보다

호기심천국 운동장 돌아다니기가 더 좋았을 테니까.

 

 

 그러는 동안 나는 배꼽잡는 쇼를 꽤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르가 할아버지를 따르고 말을 잘 듣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더는 못 참아! 안 해!" 하고

어느 코너에서 대각선으로 전력질주하여 (그럴 때 만화에서처럼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먼 곳에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할아버지가 요놈을 혼내고 다시 바로 잡으려고 헐레벌떡 뛰어갈 적에

순간이동에 가까운 아마르의 질주에 비해

앞으로 고꾸라질듯 맨땅에서 질퍽거리는 사람의 걸음은

얼마나 힘겨워 보이는지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하룻동안 이 장면을 비디오 반복해서 돌리듯 여러 번 보고 나는 실종된 배꼽을 찾아야했고

 아마르 할아버지는 진빠지고 삐치고 만다.

 

 

아마르가 눈치가 훤하고 생각이 말짱해서

자유조마를 할 때 늘 훈련하는 사람의 관심권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한편으로는 제 자신의 자유로움에 대한 의지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알았다.

도망간 아마르에게 다가가면 제가 잘못한 줄을 알고 떳떳하지 못한 심정이 되어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고 한다.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아마르 훈련은 중지하지 않았다.

 아마르가 제 할아버지가 그 옛날 사거리에서 교통지도 하던 사람이 수신호 보내듯

팔을 쭉 뻗어 방향을 지시하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터뜨리며 '쁘' 하는 소리를 내서 지시를 분명하게 하니

 '예써-ㄹ' 하듯 탄력있는 걸음걸이로 팬스를 따라 돌았다.

 아래 사진들은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던 상황의 리포트가 될 것이다.

 

 

 

아마르의 모습을 보며  

말과 사람은 '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그건 도망갔다가도 다시 다가와 눈을 맞출 수 있는 관계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로프로 너와 나를 연결하여 걸어갈 적에 주위를 탐색하지만

다시 내 눈을 바라보는 말의 모습도 본질은 그것이 아닐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cgv 홈페이지에서 로그인하여 조회하니 이 영화를 2004년에 부천에서 본 것으로 나왔다.

'뭐? 진짜?' 이런 심정이었다.

영화를 봤다는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언제,어디서,누구랑 봤는지는 깜깜했다.

한데 이렇게 기록이 나오니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어쨌든 영화를 다시 봤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은 파편적 이미지와 줄거리일 뿐

그것도 전체 내용의 10%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책도 10년 전에 봤던 책을 다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책 그 자체인데

영화도 그렇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말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좋은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영화다.

이 자리에서는 치히로와 하쿠의 깊은 인연과 사랑에 대해서만 좀 쓰려고 한다.

 

 

 

 신들이 쉬러 오는 온천장이란 낯선 세계에 들어온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너의 이름을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 하고 꼭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치히로는 낯선 세계에서 센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도 원래 이름은 고하쿠였다.  

정작 자신은 이름을 잊었는데 치히로가 기억해내어 말해준다.

하쿠는 용이다. 백룡.

백마가 상서로운 동물이듯 용도 황룡이나 흑룡이 아닌 백룡은

 뭔가 성스럽고 신비로운 영적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사람인 치히로와 백룡인 하쿠는 오래전 맺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치히로가 강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그 강에 살던 하쿠가 구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어떤 사랑이 오갔고 그 후로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았다.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치히로가 하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나를 찾아나가는 길'에 온전히 들어서도록 돕는다.

 

 

치히로가 하쿠를 타고 창공을 날아간다.

백룡이 소녀를 태우고 창공을 비상하는 장면은 심해를 헤엄치며 떠가는 물고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에서는 하쿠가 용으로, 할멈이 까마귀로 넘나드는 변신을 한다.

동양적인 상상력에서는 이런 넘나듦이 자연스럽다.

 

치히로와 하쿠는 다시 헤어진다.

치히로는 자신의 본질을 잊은 채 돼지로 살아가던  부모님을 구하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둘은 헤어지면서 언젠가 또 다시 만날 것임을 확신한다.

 

하쿠는 신들의 세계에서 치히로는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둘 사이엔 투명한 은빛 실타래 같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백룡을 타고 날으는 소녀' 이미지에 그런 상징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 하나가 되는 이미지에도 같은 본질이 깃든 것이 아닌가.

낯선 세계에 속한 낯선 존재가 서로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사이에 어떤 소중한 연결이 지어져있음을 확인하는 것!

 

 

 

잠시 영화라는 다른 세계에 머물다 오니

아마르는 여전히 속보로  나아가고 있다

 

 

 

 

말이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네 개의 다리가 이루어내는 변화와 질서의 하모니에서 어떤 놀라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떻게 네 개의 다리를 헷갈리지 않고 순차적으로 다양한 보법에 맞게끔 사용하는지 말이다.

 특히나 보법을 바꿀 때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에 따르는 것이므로 혼란스럽지 않나? 우려해보지만

말은 '그런 건 이미 내 속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구요!'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기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를 언급했으니 

팔이 여러 개 달린 가마 할아범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가마 할아범은 온천장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보일러실 총책임자다.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오차없이 기계조작을 해야만 하는데

여러 개의 팔이 기차의 하부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여러 번 나오는 가마 할아범이 일하는 팔동작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손색없다.

 

 

 

만일 가마 할아범을 인터뷰한다면

이런 말을 들려주지 않으려나 혼자 상상해 본다.

 

"저는 작업내용에 따라 팔 운용법을 달리합니다.

한쪽 팔을 교대로 순차적으로 쓰는 법, 대각선으로 쓰는 법, 지그재그로 쓰는 법이죠.

 글쎄 상상이 안 가시죠? 그럼 말의 걸음을 떠올려 보세요.

다리 여섯 개 달린 말이 다양하게 걷거나 달리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런 상상을 혼자 해보고 재미있어 하는 까닭은

 나는  팔과 다리의 기능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말이나 가마할아범은 구분 없이 현란하게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구보로 이행한다.

 

 

                                             

                                            

 

 

 

 

 

 

 

 

 

장애물도 없는데 괜히 혼자서 하는 점핑

 

 

운동장을 돌다보니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모양이다

'끼야호~~'쯤에 해당되려나..

 

 

 

사람이 어떤 의도로 훈련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나름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말이 예기치 않은 행동을 보여줄 때 ,

말과 사람에게 모두 활력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순간 말과 운동장에서 함께 노는 것이 타는 것 못지 않게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점프를 하고 난 탄력으로 앞으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거침없는 질주 후에 '끼이익!' 하는 느낌으로

후구를 낮추어 뒷발로는 미끄럼을 타며 제동을 걸고 앞발로는 깡총 제자리뛰기를 하며

제동을 안정시키는 동작을 한다.

이 동작에서 아마르는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다. 자주 하는 것을 보면 .

 

 

 

흐트러진 동작을 정돈하여 단정하게 선 후에

 

 

 

 

인사라도 하려는지 돌아서서 바라본다.

아마르는 이렇게 묻고 있는 걸까?

 

"나 잘했나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15)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9.4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나츠키 마리, 나이토 타카시, 사와구치 야스코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어드벤처 | 일본 | 126 분 | 2015-02-05

 

 

 

 

(날이 풀리면 카메라를 들고 논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돌이할방님과 아마르가 틈틈이 하는 내츄럴 훈련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작년부터 실시한 아마르 훈련의 단계별 진행을 기록해두어야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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