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만 다녀도 물속에 잠긴 것 같았던 습한 우기가 지나고 나니 연일 화창하고 피부에 닿는 공기가 보송보송하다.햇빛이 따갑기는 하지만 마음을 화창하게 만드는 데는 그만이다.마장에 당도하니 이미 아이들은 밖에 나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드립백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손에 들고 "얘들아!" 하고 부르니 칸타와 돌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졸래졸래 걸어온다.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고서 내가 가진 먹을 거라곤 커피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돌이는 조금 실망,칸타는 기쁜 마음이었을 것이다.커피에 대한 취향차이에서 비롯된 태도랄까?

 

마장에 와서 커피 한 잔 정도를 마실 때 대부분 함께 마실 사람이 없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잔을 들고 말을 찾아가 바라보곤 했는데 그러다가 칸타의 커피 취향이 생겨난 것 같다.실내마장에 아이들 풀어놓고 갤러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칸타가 다가와서 저도 달라고 집요하게 보챈다.한여름에도 핫커피만 마신다. 뜨거워서 얼른 줄 수도 없으니 칸타의 보채는 고갯짓을 보면서 마실 수밖에 없다.너무 보챌 때는 사래가 캑 걸릴 것 같은 기분이다.

 

손바닥이 견딜 정도로 커피가 식으면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잔에서 커피를 따라낸다.말을 위한 커피잔은 사람손바닥이 제격이다.그게 싫을 때는 그냥 잔에 좀 남겨서 핥아먹으라고 준다.그러는 일이 전혀 께름칙하지는 않다.가족은 그릇도 함께 공유하는 사이니까.그렇다해도 이 사진 본 회원분들은 칸타가 핥았던 잔은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ㄲㄲ

 

돌이는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혀를 낼름 내밀어 잔 깊숙한 곳을 핥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입술을 뒤적질 기술로 좌우로 씰룩거리니 혀에 감기는 충분한 보상이 없어 흥미가 없기도 할 것이다.다행이다.돌이까지 보채면 정말 번잡스러운 커피타임이 될 것 같으니까.

 

칸타가 좋아하는 채소 중에는 비타민의 보고 파프리카와 항산화제의 여왕 토마토가 있다.집에서 요리하고 남은 파프리카를 밑동 넉넉하게 잘라서 갖다주면 아주 좋아한다.토마토도 꼭지부터 시식하며 맛을 들였다.올여름 텃밭에 토마토가 한창일 때 종종 근처에서 풀을 베어주곤 했는데 한참 있다보면 칸타의 요구는 풀 뿐만 아니라 토마토에도 미쳤다.칸타가 눈빛과 콧등의 방향지시로 가르키는 곳에는 토마토가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한 방울처럼 대롱대롱 달려있었다.그 순간의 표정은 "엄마 토마토 먹고 싶어.어서 따줘!"였다.그러면 내 손은 토마토배달부가 되어 열심히 따서 칸타 입으로 날랐다.큰 토마토는 텃밭 수돗물에 헹궈 내가 몇입 먹고서 주고 방울토마토는 그냥 똑 따서 주었다.자기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방울토마토가 입에 들어갔을 때 눈망울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생글거리다 방울토마토의 신선하고 황홀한 맛에 찬탄의 눈빛으로 뒤바뀌는 네온사인이 된다.커다란 말얼굴이 제 눈망울보다 작은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 얼마나 귀여운지 자꾸 넣어주다보면 스무알은 쉽게 없어지곤 한다."오늘은 이만!"하고 손바닥 셔터를 내려도 칸타의 "쫌만 더!" 무언의 외침은 계속된다.등이 따가워도 뒤돌아서서 멀어져가야 그제서야 포기한다.

 

칸타와 인연을 맺고 지내온 세월이 7년이다.이 소리는 여러 번 쓴 것 같다.그래도 내 인생 전체에서 7년은 어떤 무게인가를 가늠해보기 위해 읊지 않을 수가 없다.7년 동안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스킨십을 나누고 거의 매일같이 함께 운동을 했다.만일 대화 마일리지,스킨십 마일리지를 수치로 적립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양은 굉장하다.내가 결혼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살았던 부모님과는 대화나 스킨십이 없이 참으로 삭막하게 살았다.30년 부모님과 나눈 것보다 칸타와 나눈 게 더 많다.딸이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엄마 친구로 함께 늙어간다는데 칸타랑은 그런 사이가 되었다.칸타와 나눈 정이 차고도 넘치니 그 정이 유년시절 나를 충분히 안아주지 못한 부모님에게도 흘러간다.칸타가 없었더라면 어찌 내가 편안하게 부모님과 말을 나누고 부축해드리는 딸이 될 수 있었을까?

 

 

 

사진에 나온 말 목의 가죽끈은 최근에 교체한 끙끙이 방지끈이랍니다.원래는 마방에서만 하는데 마장 팬스에 흰페인트칠을 새로 한지라 아이들이 이빨자국 내서 흠집낼까봐 방지끈을 풀어주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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