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 지내고 계신지요? 저도 잘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가 한 달이 넘었습니다. 할망이 이토록 오래 글을 올리지 않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더군요.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 있는지, 어디 먼 곳에 여행이라도 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제가 해외 오지에 여행을 가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글을 올릴 수 없었다는 거였죠. ㅋㅋ~  제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고요,  단지 좀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애마들과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현수막에 적힌 '애마'라는 단어가 확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체문구는 <당신의 애마를 성심껏 돌봐드립니다>. 문구를 봐선 승마클럽에서 내건 자마회원 유치 광고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차 정비업소가 내건 문구였어요. 사회적인 통념으로 '마이카' 와 '애마'가 의미의 동일시를 이루고 있는 셈이죠. 뭐 탄다는 점에선 그렇습니다. 일전에 클럽을 방문한 어떤 분이 이런 저런 말끝에 "저 사모님은 말이 두 대래요." 라고 일행에게 하는 말을 듣고 웃었지요. 겉으로 웃기는 했으나 그런 말을 들으면 언제나 속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계와 생명을 지닌 존재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을 '한 대' '두 대'로 여기는 사람은 필시 말도 차처럼 감정도 없고, 가격에 따른 기능이 있으며, 쓰다가 휙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지요. 그런 사람은 말을 타는 '도구'쯤으로 여긴다는 반발감이 제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던 겁니다. 언제부턴가 '말 = 도구'의 개념에 거부감을 가졌지요. 하지만 '도구'라는 말을 더욱 넓은 의미로 확장해 본다면 꼭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가 생겼어요.

 

 

 

인기 티브이 프로그램인 <무르팍도사>에 소개된 유명 첼리스트 장한나 씨의 일화입니다. 장한나 씨는 한국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 중에 한 분이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다 보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바로 그 시간 속에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장한나 씨는 꼭 비행기 티켓을 두 장 산다고 합니다. 한 장은 당연히 본인이고, 나머지 한 장은 누구 것일까요? 바로 '첼로'의 자리였던 겁니다. 비행기 좌석에 장한나 씨와 나란히 앉은 첼로 장면을 상상하니 , 첼로에서 인격이 느껴지고 존재감이 증폭됩니다. 사실 해외여행 갈 적에 여행가방을 수하물 맡기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이 애잔해지더군요. 나의 체온과 체취가 아직도 남은 채로 어딘지 모를 미궁으로 실려가는 모습이 애처러워서지요. 찾을 때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게나 내던져져서 벨트에 실려 이동하는 짐들을 보면 빨리 내 가방을 찾아서 구출해야지 하는 심정에 가까운 마음이 됩니다. 예전에 한 번은 지인들과 비행기 타고 승마여행 가는데 안장을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가지고 가지 말자'로 났지요. 소중한 안장이 수하물로 당할 '취급'을 생각하니 차마 그리 할 수는 없다는 쪽으로 손을 들어줬던 겁니다. 개인 안장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장한나 씨에게 첼로는 비교불가능한 '소중함' 그 자체일 테지요.

첼리스트의 영혼의 울림을 기교적으로 완성해주는 실체는 바로 악기, 첼로이니까요. 그래서인가 유명한 음악가가 연주하는 클래식 악기는 뭔가 영혼이 깃들어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그렇습니다. 연주할 때 모습이 머리를 악기쪽으로 기대고 감싸안은 모습이어서 그런 느낌이 듭니다. 특히나 첼로는 연인과의 포옹을 연상케 합니다. 우아함, 격정, 떨림,부드러움의 혼돈에 서로의 몸을 내맡긴 연인들 말입니다. 첼리스트의 역량은 당연한 얘기지만 악기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어땠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떨림' 그게 다입니다. 음악가가 발휘하는 예술적 역량은 '도구'인 첼로라는 악기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승마인이 가진 말을 다루는 역량은 그가 타는 '말'에서 구현됩니다. 승마인 사이에서 승마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컬을 때 관용구로 '저 사람 말 참 잘 탄다'라는 말을 씁니다. 제 귀에는 '잘 탄다'라는 말이 '악기를 잘 탄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들리기도 해요. 흔히 악기는 '탄다'라고도 표현하니까요. 승마경기에서 점수는 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말'은 '악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이전까지 거부감을 가졌던 '도구로서의 말'도 의미가 성립한다고 하겠지요. 장한나 씨가 자신의 첼로에게 한 장의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는 것은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프로 뮤지션의 마인드입니다. 말을 타는 사람 역시 자기 말이 최선의 기량을 펼쳐보이도록 아끼고 돌봐주어야 하는 마인드가 겸비되어야겠지요.

 

어제 늦은 오후에 승마장에 가서 칸타를 타고 목욕시키니 6시가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며 뿌리는 비가 사나워서인지 승마장에는 회원이 없었는데 승마선수인 젊은이 한 명만이 말을 운동시키고  목욕시키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말과 인연을 맺고 뼛속까지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그 젊은이가 말 목욕시키는 광경을 몇 번 보았는데 역시 프로스러운 면모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샴푸를 할 때 보통 말 머리는 남기고 샴푸하는데 이 친구는 말의 온 얼굴에 샴푸범벅을 했고 말도 오랜 세월 익숙해졌는지 거품속에서 눈만 껌뻑껌뻑하며 얌전했습니다. 한바탕 '비누거품난리'가 난 후에 닦을 때도 온 정성을 다하는 바람에 관리인이 지나가다가 '너는 말 목욕 한 번 시키는데  무슨 수건을 그리도 많이 갖다 쓰느냐' 고 폭풍잔소리를 퍼붓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보기좋은 광경임에 틀림없어요. 이 젊은이 뿐만 아니라 기승 전후로 말 돌보기에 정성을 다하는 승마인의 모습은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특히 남자는 더더욱! ) 그 모습은 말과 함께 파트너십을 이루어 최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꼭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의도에서 비롯되는 행위니까요.

 

첼로와 애마가 닮았다?

 

각각 악기와 동물이지만 다루는 사람의 기량을 눈앞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다 하겠지요.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도 닮은꼴이라는 점을 아시는지. 말들을 방목시켜놓고 건물 2층에 올라가서 구경하다가 발견했던 사실이지요. 위에서 말을 내려다 보면 머리로부터 꼬리에 이르는 몸통의 윤곽이 꼭 첼로를 닮았지요. 색깔까지도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요?

 

장한나 씨가 부럽습니다. 왜냐고요?

완소 첼로 군과 전 세계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잖아요.

저도 애마에게 비행기 티켓 사주고 싶다고요 잉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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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ism manet.jpg 

 

상단 첫번째 그림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캔버스에 유채

 

 

 

  오후 6시 무렵이 되니 햇살이 부드럽게 대지를 어루만진다. 아이들과 남편과 풀밭에 나왔다. 말과 인연을 맺은 후로 우리 아이들이 누리는 최고의 풀밭이다.  승마클럽 부지 옆에 딸린 땅을 클럽측에서 임대했는데 가운데는 밭, 가장자리는 승마트랙으로 용도가 결정됐다.

 승마트랙은 곧 풀들에게 점령당했다. 풀의 영토, 날벌레와 기어다니는 벌레가 신도시를 개척했다며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문명인스러운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풀밭에 나와 칸타와 아마르가 풀을 뜯는 모습을 무심히 보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십 년이나 말과 풀밭에 산책 다녔는데 왜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떠올랐나 의아할 정도다. 말과 사람이 함께 풀밭에 나와 즐기는 모습에 , 그 유명한 명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겹쳐졌다. 

  학창시절, 미술책에 나와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풀밭에서 신사 두 명이 나오고, 그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구도의 핵심은 알몸의 여인이다.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당시 사회에 일파만파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까지는 여신의 누드는 그렸어도 사람의 누드는 그리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누드여인이 당돌하게도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거리낌도 없이 관객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불붙은 듯한 충격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거기에는 탈의와 착의, 자연과 문명, 남자와 여자라는 대립항이 들어 있다.

  이 그림이 발표된 시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진 여인의 시선은 강렬했기에  ,이 그림은 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미술사에 새겨지게 되었다.

 

 

 

  풀밭에서 우리는 사람과 동물, 자연의 시간에 머무는 존재와 문명의 시간에 머무는 존재, 탈의와 착의 상태로서 구분지어진다. 우리는 이 순간을 함께 머무는 상태다. 사람이 초식동물을 기르기 시작한 이래 모든 시간을 망라하여 , 사람과 초식동물은 함께  풀밭에 머물러왔다. 풀밭에 삶이 있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풀밭위의 점심식사> 오리지널 이미지가 아닌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에서 '옷을 입었다' 와 '옷을 벗었다' 는 당대성을 표출하는 첨예한 문제였다. 근대 이전은 신의 세계다. 종교야말로 절대의 가치를 담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종교와 맞잡은 귀족들의 계급이 뒤를 이었다. 자연이나 인간 자체는 하잘 것 없었다. 종교지도자나 귀족은 곧 절대권력이었다. 권력은 속성상 권위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도덕이나 관습,규율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옷은 그러한 장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이다. '옷을 벗어던지다'는 것은 도덕,관습,규율을 깨뜨린다는 혁명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마네의 그림이 센세이션의 다이너마이트 작용을 했다. 당시의 기득권층은 그때껏 가려왔던 종교나 권력의 허울이 찬란한 빛을 받고 색바래버릴까봐  두려워하여, 여신의 누드는 봐도 여인의 누드는 불가하다며 찌질한 아우성을 징징거리지 않았겠나.

 

 

 풀밭에서 식사(?)하는 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안함이 내몸의 혈관을 고루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테헤란로 거리를 바삐 걸어가는 신사가 있다. 신사복 정장에 안에는 빳빳한 와이셔츠와 넥타이, 발에는 딱딱한 구두를 신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내 목을 옥죄는 것 같다.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삶은 알몸으로 태어난 이후로 내내 부자연스럽다. 옷을 벗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교복, 군대에 가면 군복, 직장에 가면 유니폼, 뿐만 아니라 운동할 때, 데이트할 때, 비지니스 계약할 때 입는 옷이 다르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보이고 싶은 모습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옷 입은 모습이 그의 본모습이라 착각하고, 스스로도 특정한 옷입은 자신이 진정한 자기자신이라  믿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옷 벗은 상대나 자신을 대면할 때 큰 혼란에 휩싸이고 급기야 지독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연애할 때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혔던 남녀가 결혼식 끝나고 석달 열흘간 생애 최고의 전쟁에 휩싸이는 것도 옷 입을 때는 몰랐던 낯선 타자와 대면하기 때문이다. 엄마 그 자체에 충실하게 살아온 중년여인이 자식이 떠나고 빈둥지 증후군에 빠지고 평생 몸담던 직장에서 퇴직한 가장이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것도 옷입은 자신 외에는 대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르가 풀밭에서 알몸인 채로 식사를 한다. 자연스럽다. 음식은 복잡한 요리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뭘 먹나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풀밭에 나있는 놈들 중에서 입맛 땡기는 대로 뜯어먹으면 된다. 아마르가 풀 사이에 당근풀이 숨어 있어서 고몸을 쏙 뽑아내면 주홍빛 당근이 딸려올라오는 것을 알았다. 녀석의 입에 손가락만한 당근이 대롱거리다가 쏙 딸려들어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칸타의 기호는 당근보다 그냥 긴 풀이다. 입에 당근 이파리가 걸리면 퉤 뱉고서 딴걸 찾는다.

 

 

 

 

  내가 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아무런 가식도 위선도 체면도 필요없이 그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머무를 수 있어서다. 정치고, 종교고, 가치관이고, 신념이고 풀밭에서는 가녀린 풀대궁 하나만한  가치도 없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재음미해보니, 내가 말을 따라서 풀밭에 풀시중 나온 일이 매우 혁명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로 종교나 계급사회가 타파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상은 어떤 권력이나 세력이 암암리에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 선언하고 성난 프랑스 시민들이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한 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가장 힘든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일 것이다. 옛날에야 신의 뜻대로, 왕의 뜻대로 살면 되었지만 지금은 내뜻대로 살라 한다. 민주주의 자유국가 시민이므로 그리 살라 한다. 내가 고민해서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은 고단한 삶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가 좋다하는 대세의 물결을 따르는 게 차라리 편하다. 오늘날 대중문화, 소비문화의 발달은 이 지점에서 탄생하고 번성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욕망이나 감각이 무엇인지 외면하고 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던 마네의  <풀밭~ > 그림 이후로 수많은 유사작품이 그려졌다. 조르지오네, 티치아노, 피카소, 존 드안드레아 같은 화가가 그들이다. 마네 작품도 사실 이전에 원본이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화가인 마르칸티오니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에는 서로 분쟁하는 여신들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일일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태평하게 대화하는 바다의 신들이 풀밭위의 점심식사에 나오는 구도와 자세로 나온다. 역사가 유구한 그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동경하고 추종하는지도 모른다. 아웃도어 산업의 발달이 그 증거다. 핫트랜드인 캠핑이야말로 풀밭에서 밥 한끼 먹어보겠다는 열망 아니겠는가. 그 열망을 충족하려고 막히는 도로를 기어기어 다녀오는 일도 불사한다. 넥타이와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박한 열망이 현실에서는 힘겹게 이루어야만 하기에 눈물겹기조차 하다. 이래저래 살기가 힘들다. 일하랴, 쉬랴.

 

 

 

 

  말과 지내기 시작한 후로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비행기를 탈지언정 절대 장거리 드라이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그 욕망을 잠재우는데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진정한 오리지날 <말과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 아이들과 풀밭에 나갈 때 망사마스크를 씌워주는 것은 ,실제적 이유야 날벌레를 차단하려는 거지만 거기에 의미 하나를 덧씌워보자면 '내가 속한 문명을 존중한다.' 이다.

 

 

 

 

 문명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이야말로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풀밭 위의 칸타와 할망은 보랏빛으로 소품과 의상을 '깔맞춤' 했나?

 

이 글은

말 아이들에게 최고의 만찬을 선사한

풀밭에게 경의를 표하는 '풀밭예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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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오기 전 6월은 신록이 절정을 이룬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도 비단처럼 매끄럽다. 보송하고도 따뜻한 공기의 속살에  맘껏 부비고 싶은 듯 말 아이들의 동작이 활발하다. 운동장에 모인 멤버 역시 잘 만났다. (왼쪽부터 아마르, 수아, 레이) 레이만 나오면 큰말들이 장난으로 몰이를 하고 추격전을 벌이곤 한다. 그러다 아기(레이)가 힘들어 하거나 구석에 몰리면 잠시 멈추고서, 아기가 숨통을 틔우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놀곤 한다. 어디까지나 레이가 아기라고 큰말들이 여기기 때문이다.

 

 

 

 수아와 레이만 있을 때는 수아가 "이런 놀이 가르쳐 줄게!" 하는 것처럼 운동장을 트랙 삼아 전력질주 한다. 레이와 수아가 벌이는 레이싱, 경마장 놀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 수아와 레이 사이는 사이좋은 누나와 어린 동생 같다.

 

 

 

 어느 순간, 천진난만한 동심의 분위기가 흩어지면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아가 급 얌전해지고, 레이는 공기 중에 떠도는 특이한 향을 콧속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아마르는 '이 분위기 대체 뭐야?'

 

 

 

 보이는 장면은 커플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낀 가족처럼도 보이는데, 이상하다.

 

 

 

이 순간

 수아는 암말의 향기를 진하게 풍겼다 할 수 있고, 레이는 그 향기에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좀 이상하다 ,그치?

 

 

 

 이상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괜히 한 바퀴 달리기를 시도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체온만 높아져서 그 수상한 향기를 더 풍부하게 퍼뜨렸을 뿐이다.

 

 

 

 어린말들이 노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 고독한 포즈를 취하고 선 말은 칸타. 이 상황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 꿰고 있는 눈치다. 칸타의 침묵은, 그러나 상황에 대처하는 말의 입장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암말의 향기에 반응하는

 

 

 

 수말의 '플레멘 반응'

 

 

 

 레이가 독특한 향기의 진원지를 드디어 발견했다.

 

 

 

 아마르에 비하면 귀여운 '미니 플레멘 반응'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보아도

 

 

 

 어떻게 무슨 매뉴얼을 실행해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레이는 아무래도 내가 너무 작거나, 누나가 너무 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아마르는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 게 다일 뿐이라고 생각했을까? 가장 답답한 처지에 놓인 말은 당연히 수아겠다.

 

 

 

 거대한 똥과 작은 새가 만났을 때, '이건 대박이야!' 물컹한 섬유질 덩어리가 품고 있는 덜 분해된 곡식알을 쪼아 먹을 때 새가 외칠 법한 말이겠다. 새에겐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다.

 

 

 

 춘정이 혼곤하게 흐드러지는 계절을 맞이하는 1세마 미니어처 레이에게 비친 세상은 온통 큰 것들만 수두룩하게 널려서 상대하기조차 뒷목 땡기는 , 뭐 불편한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내맘대로 안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레이가 그런 세상이치를 하나씩 겪어나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큰 것과 작은 것의 조합으로 뭔가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 승마가 그런 게 아닌가?

 

 

 

 말이 그렇게 큰 몸피를 가지지 않았다면 작은 몸피의 사람과 한몸이 되는 승마의 예술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편자는 행운의 상징이면서 ,승마의 대표적 상징도 된다.

뚫린 원처럼 보이는 편자가 양팔로 감싸안는 모양을 연상케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작은 사람의 다리로 큰 말의 몸통을  감싸는 행위가 승마가 아니겠는가?  

서로가 정신의 교감으로 연결하고,다리로 몸통을 감싸는 행위로서 승마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레이에게로 가보자. 어느 날 나그네가 하나 와서 잠깐 클럽에 들렀다. 클럽 터주라고 위세를 부리려는데 큰 것이 만만찮게 나온다. 이러다 본전도 못찾고 스타일이나 구기겠네.

 

 

 

 담임쌤도 키가 훤칠하게 크다.

 

 

 

                              이런 젠장, 아마르 형이 자기네 할배를 태우고 가니 키가 어마무시하게 크네.

 

 

 

                                  에라 ~ 이럴 땐 그냥 자빠져서 가려운 등이나 긁자. 에이 퉤퉤퉤 ~

 

 

                                 여러분도

                       인생에 어떤 키 큰 것들이

                       끼어들어서 어깃장을 놓는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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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27. 반가운 유예 님과 칸타의 만남. 사진 분위기 봐서는 주인과 애마구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다. 칸타는 왕새침떼기라 아무나하고 다정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 말이다. 말은 귀로 V 를 한다.

 

 

 옛날에 아이가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라는 말로 울음을 뚝 그치게 했다. 그만큼 호랑이가 무서웠다는 얘기겠다. 그 호랑이에 해당하는 존재가 칸타에게도 있으니 , 그게 뭐냐면 어이없게도 양! 배! 추! 다. 양배추는 칸타에게 어마무시한 공포의 화신이다. 처음부터 양배추가 공포스러웠던 건 아니고 최근에 그렇게 됐다.

 

 양배추는 사람이 즐겨먹는 필수야채다. 샐러드에 빠질 수 없는 감초이며, 갖은 요리에 양배추가 들어가야 풍미가 살아난다. 양배추가 들어가지 않은 닭갈비를 생각해 보라. 주방에서 요리하고 나서 자주 생기는 야채 부스러기가 양배추이기에 칸타나 아마르는 매우 오래 전부터 양배추를 조금씩 시식해왔다. 그렇기에 그 맛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즐긴다고 해야 맞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양배추 값이 유난히 쌌다. 남자어른의 머리통 만한 양배추가 대략 천 원 정도. 이럴 때 한 통 사서 아이들에게 맘껏 먹여보자 싶어 말 간식용으로 한 통을 샀다. 문제는 먹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양배추를 어떤 모양으로 주느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양배추 짜투리를 줄 때는 딱딱한 꽁지이거나 좀 두꺼운 종잇장 형태였다. 이 경우에 쩝쩝 맛나게 잘 먹었다. 한데 어른 머리통(?)을 주려니 자를 때 1/2, 1/4, 1/8 순서로 분할했다. 양배추가 8분지 1 조각이 났을 때 말이 먹기에 편하겠다 싶어서 그 덩어리를 말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양배추를 넣고 돌아서서 한두 걸음 뗐을까 우당탕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야 ,하고 소리가 난 칸타 방으로 갔다. 양배추에  날개가 달렸는지 최초에 놓아준 밥그릇에서 1미터는 떨어진 문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칸타는 좀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그 후로 아마르가 양배추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먹을 때 늘 그렇듯 씩씩하게 입을 벌렸다 앙 다물며 양배추를 베어 물었는데 순간 아삭!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냉장고에 신선보관하는 동안 양배추가 밭에서 살 때처럼 싱싱해져서 그만 그런 소리가 났다. 아삭! 소리가 나자 아마르가 흠칫 놀랐다. 아하 그래서 칸타가 놀랐고 놀라는 통에 양배추가 날아갔구나 알게 됐다. 그후로 아마르는 조심해서 양배추를 먹었다. 칸타는 한번 놀랐으니 적응을 했겠지 했다.

 

 다음 번에 양배추를 주려고 꺼내니  저녁급식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배가 출출했다. 내가 평소 들고다니던 스텐레스 그릇에 양배추를 담아오니 다들 마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도 좀 주려나 기대가 귀 꼭대기까지 차올라 쫑긋거렸다. 눈알들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기차게 따라왔다. 이럴 때 아마르나 칸타는 조바심을 친다. 내꺼를 딴얘들한테 나눠주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다. 칸타도 마음이 급했다. 밥통에 양배추를 놓아주는 순간 전에 놀랐다는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고 힘차게 양배추를 와삭! 물었다. 뒤이어 바로 꽈당 ~ 우당탕 소리가 났다. 다음은 내가 놀랄 차례다. 얼른 뛰어가보니 칸타가 총을 맞아서 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곧 바닥에 고꾸라질 것 같았다. 정말 심각해보였다. 진짜로 총을 맞지는 않았지만 툭 튀어나온 눈두덩 위가 까져서 피가 배어나왔다. 상황은 뻔했다. 양배추 깨무는 소리에 너무 놀라 머리를 순간적으로 쳐들었고 그 순간 눈위가 창살에 세게 부딪혀 그리 된 거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칸타가 꿈쩍도 않는데 곧 쓰러질 것처럼 멍하니 넋이 나간 걸 보니 정말 아픈 모양이다.

 

 그 후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에 걸맞는 모습을 칸타가 계속 보였다. 지나가다가 뭘 주려고 비닐봉지만 좀 높게 든다 싶어도 머리가 흠칫 들리고 , 끙끙이방지 머리띠를 채우려고 가죽을 이마 위로 두르는데도 머리가 휘익 돌아가곤 했다. 꼭 마방 천장에서 누군가 칸타를 꼭두각시인 양 가는 줄을 붙들어매고 줄을 당겨올려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칸타는 양배추가 와삭! 소리를 냈을 때 머리통 귀신이 둥둥 떠서 ' 내 머리 내놔라! ' 하고 유령놀음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소리가 언젠가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사자가 사슴을 사냥해서 콱! 깨물 적에 뼈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나 싶기도 했다. 칸타가 동물의 왕국을 보았을 리는 없고, 초원에서 동료가 사자에게 죽임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은 더더욱 없을 텐데 도무지 알 수 없다.

 

 칸타는 클럽에서 몇 안되는 '놀라지 않는 말' 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바람이 쌩쌩부는 날 , 혼자 사람을 태우고 기승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다, 무슨 시끄러운 소리나 물체에 반응하여 놀라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여장부 스타일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칸타가 겨우 양배추 조각에 기절할 듯 놀란다고 말하면 칸타를 아는 클럽분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할까 싶다.

 

'양배추를 무서워하는 그녀' 혹은 '그'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양배추가 과연 무엇이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어쩌다가 나이트클럽 어장관리하는 조폭 분이 승마클럽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깍두기머리에 금줄목걸이를 한 근육질 몸매를 한 남자였다. 옷안에 어쩐지 문신이 잔뜩 그려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분이 승마클럽에 왜 오셨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상도 험해보이고 해서, 나이트클럽이든 승마클럽이든 클럽이니까 그냥 와보고싶지 않았겠나 생각해보고 말았다. 그러다가 말 위에 체험삼아 잠깐 올라가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말 등에 올라가자 갑자기 험한 인상은 온데간데 없고 ,골목길에서 깡패들에게 몰려 삥 뜯기는 순진한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쩔쩔매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상황의 급반전이 놀라워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모습을 더 바라보았던 거 같다. 잠시 후 말에서 내려온 그 형님(?) 께서 하시는 말씀 " 내가 살면서 세상에 무서운 거라곤 하나 없었는데 말 등에 올라가니까 막 쪼그라드네. 후달려서 혼났네. 휴우  "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아닌가. 나이트클럽 형님에게는 말등에 올라가는 일이 '양배추'였던 거다.

 

 주변에서 저마다의 '양배추'에 놀라는 어이없는 일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맷돼지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튼튼한 여자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고 패닉에 빠지는 일이랄지 , 헤라클래스처럼 다부진 장정이 키가 150 센티도 되지 않는 와이프가 나타나자 얼어붙었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물론 와이프가 어떤 상황에서 헤라클래스 남편 앞에 나타났느냐가 문제겠지만.

 

 나 역시 나만의 '양배추'를 내면세계에 소장하고 있다. 밝히면 너무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앞으로 칸타에게 양배추를 줄 적에는 그냥 낱장으로만 주려 한다. 와삭! 에 적응하라고 하기엔 좀 고문하는 게 아닌가 싶고 말이 꼭 양배추를 와삭거리며 먹고 살아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어서다. 이 세상에 말 식량이 양배추밖에 없다면 그땐 달리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양배추로 인해 흠칫 놀라는 트라우마가 생겼기에 , 칸타아빠에게 내츄럴훈련으로 둔감화를 시켜달라 요청해놓았다. 11살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 아래 별반 새로울 것도 없고' 하는 태도로 느긋한 칸타가 오그라들어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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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에 반갑고도 반가운 손님이 왔다. 이태리에서 제인과 페가수스랑 알콩달콩 사시는 홀스맘 김유예 님이 마장에 방문하신 거다. 아이 기르는 엄마들이 모이면 이야기 실타래가 끝도 없이 풀려나는 것처럼, 그렇게 말 키우는 이야기로 회포를 푼 후에 칸타,아마르랑도 추억을 남기고자 밖으로 나왔다.

 

 

 

아마르 상태는 찌뿌둥 꿀꿀 했다. 일요일 오전 운동하고 마방 들어가서 화요일 이른 오후까지 '방콕'을 하셨으니 온몸이 근질근질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자리를 고르더니 '철퍼덕'

 

 

 

......

 

 

 

' 버둥버둥'

 

 

 

'허우적 허우적'

 

 

 

 '비비적 비비적'

 

 

 

 '끄응~ 시워언~ 허다'

 

 

 

 그런 후 '끙차' 일어나더니 갑자기 '변신' 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천마가 나타나

 

 

 

                                                            투명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르고

 

 

 

                                                                차오르듯이...

 

 

 

                          아마르는 지금껏 내가 보아온 최고의 도약과 비상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발레리노가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기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어떤 때는 내가 이 모습을 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에 ,겉으로는 '저는 승마를 하거든요' 하면서 속으로 말의 '변신쇼' 보기를 간절하게 희구하는 게 아닌가, 언제 그 쇼를 또 보려나 조바심을 친다.

 

 

 

 아마르가 변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마방에서 동상에 가까운 자세로 움직임을 절제하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안의 혈액과 체액이 더디 흐르다 뭉치고,고이고,막히니 수혜를 입어야 할 세포와 조직이 굳어서 젊은말의 에너지와는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 지경에 이르렀던 탓이다.

 

 

 

                                                    나 또한 늘 쉽게 그런 상태가 된다.

 

 

 

                     

                        요놈이 몸안의 흐름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칠 때,

                                                 몸부림은 세포들의 절규이다.

 

 

 

  절규에는

들판에서 바람에 몸부림치던 풀들의 아우성이 메아리가 되어

울림으로 스며든 것 같기도 하다.

 

 

 

                                                          풀의 아우성은 내 안에도 있다.

 

 

 

              사실은 나도 아마르처럼 저렇게 하고 싶다. 간절하게.

 

 

  나도 아마르를 따라 액션을 하려고 숨을 한번 들이켜는데 어디서 큰 소리가 들린다.

 우의정 무릎관절 대신이다.

"주군! 아니되옵니다. 그리 했다간 뚝 소리가 난 후에 시큰새큰 후환이 따를 것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

고개를 조아리니 모든 뼈마디, 관절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통촉하시옵소서어어어 ! " 우뢰와 같은 합창을 한다.

 하는 수 없다. 대신들의 뜻을 따를 밖에 쩝~

 

 

아쉽기는 하지만 낙은 있다. 아마르 녀석이 변신쇼를 부릴 적에 나와 아마르 사이에 투명한 실로 연결되어  있는지 쇼를 보고 있으면 시원함이 내몸에도 건너와 좀 충전을 시켜준다. 쇼를 기분껏 너무 오래 하다간 가느다란 다리라도 행여 다칠까 저어한 할아버지가 내츄럴 굴레를 들고와 보이니 아마르 쇼는 끝났다.최고의 쇼를 이태리에서 날아온 유예 님과 함께 관람했다. 어쩐지 아마르 쇼가 귀한 손님을 기쁘게 해주려는 아마르의 존경할 만한 홀스맘에 대한 대접이 아니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 살 페가수스도  기상천외한 쇼를 창의적으로 늘 연출하는 탓에 엄마인 유예 님 얼굴에 웃음을 선사한다고 한다. 

 유예 님을 늘 행복하게 해주는 마를 날 없는 샘물인 셈이다. 

유예 님이 방문한 오늘은 참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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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가 근로자의 날에 산책을 나왔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무슨 이벤트 하는 것처럼 나온 산책은 아니다. 할방님이 꾸준히 내츄럴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로 산책을 시도한 거다. 종종 다니는 산책이라 사랑이 표정은 편안하다. 하필 사진 찍은 날이 근로자의 날이어서 산책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대체 사람들이 뭘 하고 있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사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한다. 과거에 우연히 사랑이가 사람을 태우고 갑자기 미친듯이 달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기승자는 낙마하거나, 용케 붙어있거나. 말 타는 사람이 가장 곤란한 경우가 꿈쩍도 안 하고 안 가거나, 미친듯이 내달리는 때일 거다. 전자에 해당하면 사람의 정신건강에 해롭고, 후자라면 육체가 위험할 수가 있겠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사랑이가 후다닥 내달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면 이제 막 승마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관심이나 사랑을 받을 리 없다. 사랑이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사랑이가 한 귀인으로부터 내츄럴 훈련을 받고 있다. 일부러 외부에서 방문한 귀인은 미니어처 레이와 마티의 담당교사를 맡은 분이다. 여담으로 , 레이& 마티가 내츄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배꼽을 잡게 된다.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ㅋㅋ

 

 사랑이가 작년쯤에 점을 보았다면 점괘는 이랬을 것이다. 올해까지는 무슨살,무슨살이 들어서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게다가 외로워. 하지만 내년에 달라질 거야. 따뜻한 바람이 불면 사방에서 귀인들이 찾아와 .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귀인들 하고 잘 지내면 자네는 운이 트이네.

 

 

 

 

할방님은 사랑이의 귀인 중 하나다. 사랑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람의 요구를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주변환경에 적응하기도 승용마가 갖출 덕목이다. 말과 편안하게 산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대부분의 말이 승마장 밖으로 다닐 일이 없으니 두려워서 긴장하니 그렇다.

 

 

 

 

사랑이가 편안한 얼굴로 산책을 즐기니 보는 내 마음이 다 편해진다.

 

 

 

 

밭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동네주민이 아니다. 클럽회원들이다. 이곳에서는 원장님을 비롯하여 회원들이 밭일 하다 와서 땀을 훔치고 말 타는 광경이 흔하고 자연스럽다. 벌써 솎아낸 당근 포기가 말 입으로 배달되고 있다.

 

 

 

 

사랑이는 참 이상할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시나 통제는 커녕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는가?

 

 

 

 

내눈에도 이상한 광경이기는 하다. 삶과 노동이라는 면에서. 일과 여가라는 점에서.

 

 

 

 

지나온 역사를 회상해보면 농사나 벌목, 유통 등의 노동은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몫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그들이 일하고 그 곁에서 사람이 부리는 모습이 익숙하다.그렇기에 사람과 동물이 반대의 상황에 놓이니 낯설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고, 그 주변에서 말은 한가하게 어슬렁거리며 느긋하게 풀이나 뜯고 있다. 혹여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승마클럽에서는 근로자의 날에 사람은 일하고 말은 노는 건가? 하고 오해하지 않으려나.

 

 

 

 

승용마는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신선한 기운으로 충전하는 여가시간의 도우미요 파트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즐기도록 기꺼이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승용마의 몫이다.

 

 

 

 

화창한 5월의 첫날에 고정관념으로 굳어버린 승마장의 공식이 뒤바뀐 광경을 목도하는 일이 즐겁다. 즐겁게 산책을 마친 말은 나중에 사람을 태우는 노동에 기꺼이 참여할 거고, 옥수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은 고단한 심신을 그들의 애마에게서 풀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무성한 옥수숫대가 물결칠 거고, 승마장 주방에서는 솥에서 옥수수 쪄내는 김이 하루 종일 피어오를 거고 , 잘라낸 대는 말의 간식이 될 것이다. 말과 사람과 옥수수와 땅의 순환이다.

 

 

 

- 명망 높은 (???) <알.티> 블로그에 처음 소개되는 '깜돌이'는 깜주가 낳은 아들이다.

                                           다들 밭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띵가띵가 노는 게 제 일이죠~

 

 

 

 종일 놀다 방으로 돌아가는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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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릴 적 기억에 봄은 반갑지 않았습니다. 반갑기는 커녕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밉상이었죠. 손님은 찾아올 때마다 울긋불긋한 꽃들을 잔뜩 가지고 왔습니다. 꽃은 밉상 손님이 가져왔기에 예뻐보일리가 없었지요. 머릿속으로 '왜 꽃은 피고 난리래?' 싶은 퉁명스러운 기분만 가득했답니다. 어린 마음에 인생이 이다지 괴로운데 어쩌자고 화사한 자태를 난분분 뽐내는가 싶었던 겁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 소녀가 아가씨가 되고, 그 아가씨가 중년의 여인으로 변해하면서 서서히 봄과도 화해를 했나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꽃이 예뻐보이기 시작하더라니까요.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든 거라더니 딱 그런 모양입니다. 이른 봄에 승마장 사모님이 왔다갔다 하시며 화단을 살펴보시길래 나도 모르게 "올해도 꽃 많이 심어주세요!" 하는 말을 하고야 말았지요. 꽃타령이라니 나도 늙어가는가 보다고 한숨을 쉬고 말았네요.

 

 

 

 

지나온 인생에서 꽃이 예쁘게 보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더 짧았지요. 이제는 '봄과 화해했다' 선언문이라도 낭독하고 싶었는데 올봄은... 지독하게 슬펐지요.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소금짐 같은 그런 봄으로 남게 될 것 같아 , 소금짐에서 배어나온 소금에 절여진  듯 마음이 싸르르 아립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산 정상에 누구보다 빨리 당도했지만 ,뒤늦게 알아차리기를 등에 업고 있던 아이를 어디다 빠뜨려 흘리고서  달려온 거 아닌가요? 아이를 빠뜨린 엄청난 슬픔 뒤에 몰려오는 암울함은 이 세상이 언제라도 다시 그런 슬픔의 무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예감 때문이지요.

 

 

 

 

 

 

 

하여 유난히 따뜻하고 무던했던 겨울의 뒤끝에 일찌감치 앞다투어 피어났던 꽃들이 그만 무색해지고 말았나 봅니다.

 

 

 

 

 

검정색 노트북이 있습니다. 가운데 삼성 로고가 박힌 좀 구닥다리 노트북이지요. 아마르가 태어나기 전 해에 샀으니까 아마르랑은 연년생쯤 됩니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아직도 처음에 깔았던 그대로 '한글 2007'이 사용하는 주된 기능이어서 더욱 구닥다리 분위기를 냅니다. 제 소소한 기쁨 한가지는 노트북을 켜면 삼성 로고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첫 화면에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아이콘이 떠오르는 첫 화면에는 깐돌이(아마르 아명)가 갖은 인상을 쓰고서  자세 잡고 오줌 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털은 더부룩하고 꾀죄죄 하기까지 합니다. 시골 촌놈의 완전체라고나 할까요? 그 촌티가 풀풀 나는 망아지 녀석이 쉬 하는 모습이 어찌나 정겨운지 볼 때마다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시골 촌놈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는 녀석의 몰골 뿐만 아니라 배경도 단단히 한몫 합니다. 녀석이 오줌을 누고 선 장소는 얼기설기 끊어지다 이어지다 제멋대로 생겨먹은 철조망 울타리 안의 흙바닥입니다. 바닥에는 잔돌이 굴러다니며 그곳 시민임을 주장하고 있네요. 철조망 너머로는 야산 비탈의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우리 산하 어딜 가도 야트막한 산자락엔 묘지가 차지하고 있지요. 사진의 배경만 보자면 보신탕용 개 사육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곳이 지금의 아마르, 옛 깐돌이가 태어나 망아지 시절을 보낸 암울한 무대입니다. 왜 아마르는 그토록 황량한 장소에서 태어났는지, 왜 말인 아마르와 사람인 우리 부부는 그런 곳에서 운명적인 해후를 해야만 했는지요.

 

사실 이 세상의 시스템으로는 아마르는 태어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승마장에 흔하디 흔한 말도 태어날 때는 극소수의 확률로 선택받은 종마의 씨를 받아 우수한 씨암말의 몸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죠. 아마르는 종마의 씨를 받은 것도 아니고 어쩌다 정처없이 팔려와 거세당하기까지 잠시 대기중이던 스텔리온, 지극히 평범한 퇴역경주마가 애비였던 ,우연한 생명이었던 겁니다.

 

 

 

 

 

다가올 7월이면 , 아마르가 6세가 됩니다.

 

 

 

 

아마르가 우리 품에서 자라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탈도 많았고 우리에게 상상못할 기쁨도 안겨주었죠. 녀석을 키울 적에 가장, 항상 감동스러웠던 순간은 놈이 먹을 때였지요. 그악스럽게 와구와구 하며 흡입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먹구서 살아보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구나 싶어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고 뭔가 안에서 힘이 솟구치며 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죠.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만.

 

 

 

 

녀석이 지금도 먹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 과거에 더먹머리 머슴이 밭일 하고 와서 개눈 감추듯이 고봉밥 먹는 듯했다면 요즘은 선비가 점잖게 먹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선비님이라 해도 가까이서 구경 좀 할라 치면 귀를 뒤집고 눈을 부라리고 인상을 팍팍 씁니다. ' 내가 맛을 음미하는 거 안 보여? 난 사료를 즐기고 있으니 방해 말라니까!' 뭐 이쯤 되겠습니다. 아마르가 양반되기는 애시당초 글렀나 봅니다.

 

 

 

 

올해 들어 아마르에게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미국에서 날아온 내츄럴 선생님이 찾아와 두 번인가 직접 공부를 시켰습니다. 선생님에게 아마르를 맡기고서 녀석이 어떻게 하나를 지켜보는 제 가슴은 콩닥콩닥 했지요. 마치 집에서 얼싸얼싸 하던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킨 엄마 마음이 이렇겠지요. 아마르를 공부시킨 선생님 말씀이 녀석이 부모 앞에서는 어리광 부리고 떼쓸지언정, 학교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이해 잘하는 그런 학생이라고 하네요. 그 소리에 영락없는 학부모 심정이 되어 아이를 헛키우지는 않았구나 안도감이 들었답니다.

 

그런 후에 드는 생각은 내츄럴 선생님이 그 머나먼 미국에서 우리 아마르 가르치러 날아왔구나 싶은 인연의 필연적 연결고리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뭐 선생님이 우리 아마르 가르치러 일부러 찾아올 까닭은 없겠지만서도 내 입장에서 보면  딱 그리 맞아떨어지니 어쩌겠습니까.

 

 

운동하고,목욕하고,상으로 풀뜯는 아마르

 

 

 

그리저리 아마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홈스쿨을 졸업했나 봅니다.

물론 집에 와서 예습,복습 하는 거야 여전히 봐주긴 하지만요.

 

기왕 홈스쿨을 졸업했으니 마장마술 공부도 시키기로 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조금씩 하는 공부인데 이 분야 역시 놀랍게도 어디선가 때맞춰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르가 복이 많은 아이인가 봅니다.

 

신기하게도 아마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부할 준비가 갖추어지자 선생님이 등장했기에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생각됐답니다. 이제 아마르는 다리도 제법 튼튼해졌고, 더이상 질질 울지도 않고, 좀 힘들고 불편해도 참아내며 교육을 받아들이는 그런 학생이 되었습니다.앞으로 어떤 멋진 승용마의 모습으로 자라가게 될지 희망이 피어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러하니 말도 그렇겠지요. 너른 초원도 ,맘놓고 뜯을 풀도 주어지지 않은 삶입니다. 그래서 마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맑은 눈망울로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저 건초나 한무더기 집어다가 넣어줄 뿐입니다.

 

그런 말에게 매일 배우는 게 있습니다. 묵묵히 살아가기. 세상은 아름답지도 않고 충분히 기쁘지도 않고 오히려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많지만, 말은 좋다 싫다 내색을 하지 않네요. 그저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몫의 건초를 소중히 여기고 간절하게 씹는 것과 요구받은 일에 대하여 덤덤히 받아들이고 해내는 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가끔은 아마르가 '끼야호~'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의 언어로 '끼야호'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끼야호'를 표현한다는 편이 맞겠지요. 화창한 날에 밖으로 나들이 나가면 그런 기분을 표현합니다. 마방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일 뿐인데  소박하게도 햇빛,,바람,공기,새소리,꽃향기 만으로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요.

 

 

호수공원에서

 

 

 

견공의 끼야호~   (공중부양 상태임)

 

 

4월 초에 호수공원에 갔습니다. 주인과 개가 한 조가 되어 산책을 즐기고 있어 무척 부러웠지요.나도 칸타나 아마르와 이 좋은 공원을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때는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광경이 한창이었고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땅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집어들었어요.다섯 장의 꽃잎이 야무지게 손을 맞잡고 있더군요. 꽃잎을 뒤집어도 보았죠. 그랬더니 놀랍게도 다섯 장의 꽃잎을 단단히 고정시킨 꽃판은 오묘한 색깔의 별모양이었어요. 그러니까 꼭지가 다섯 개인 누구나 별이라고 떠올리는 그 형상 말입니다. 그때 별의 언어가 들렸지요.

 

 

 

 

언젠가 우리는 다 제각각 어느 별에서 지구로 살러 온거야. 살고나면 다시 별로 돌아가겠지. 별에서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까지, 그러니까 사는 동안은 누구나 힘들기 마련이야. 꽃이 왜 피는지 알아? 살다가 힘들어 지쳐 쓰러질까봐 , 기를 쓰고 피어나는 우리를 보고 살아갈 힘을 내라는 의미야.

 

그러고 보면 존재와 존재가 맞부딪힐 때 기운이 생동하는 뭔가가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꽃이든, 말이든 가만히 바라봐주면 기운이 나지요.

 

 

사랑이

 

 

아마르는 할아버지가 오지 않은 날 내가 손이 딸려 저를 꺼내 놀아주지 못하면 귀를 뒤집고 마구 항의하며 화를 낸답니다. 칸타는 브러시로 목덜미 긁어줄 때 살살 하라며 화를 내지요. 칸타의 표현은 '콱 물까부다' 시늉이 바로 그거랍니다. 엉덩이 긁어줄 때는 시원하다고  하면서 목은 왜?  이놈들이 살아서 파닥파닥 거리는 게 참으로 좋네요. 그 파닥거림으로 인하여, 세상사 심란함으로 인해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려는 마음의 병을 이기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지네요.

 

 

                                     아마르

 

왜 아마르가 공동묘지와 철조망이 겹겹이 에워싼 황량한 땅으로 우리를 만나러 왔는지 꽃이 별을 보여주며 넌지시 건네는  무언가를 통하여 조금은 알듯도 합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얼어붙어 삭막한 겨울을 통과한 자리에서만이 찬란한 거지요. 아마르의 우연한 생명도 묘지에 드리운 죽음의 치맛자락 그림자에서 태어났기에 고귀한 게 아닐까요? 아마르가 하필이면 연중에 가장 무더운 날 질퍽한 진흙에서 태어난 것도 장차 가장 빛나는 희망을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신의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가장 암울해 보이는 시간이 꿈과 희망을 발아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지, 말의 시간에 머물며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제이슨 (존 웨인이 탈 만한 거구의 순둥이 , 아마르가 혼내주겠다고 호시탐탐 벼르고 있음,사진은 소심하게 내다보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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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이웃 마주님이신 안미선 님이 글과 사진을 제공해주셔서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미선 님은 수아와 브릿지의 엄마입니다.

 

작년에는 당근농사를 거하게 지어서 농사낙제생 할망네에 당근을 선사하기도 했죠.

 

우리 아이들이 이웃 잘 만나서 텃밭 당근도 얻어먹은 셈이에요.

 

부지런한 안미선 님이 올해는 보리싹을 길러다 말 아이들에게 먹이더군요.

 

이번에도 염치없지만 조금 얻어먹었네요.

 

마주가 부지런하고 적성에 맞기만 하다면 보리싹은 애마에게 더할나위 없는 영양간식이 될 테죠.

 

수도권 클럽에서 깨끗한 생초를 구하기란 너무도 어려우니까요.

 

생명을 지닌 말의 영양 발란스를 위하여 뭔가 필요하긴 한데 당근이나 사과만으로는 부족한

 

양을 보리싹에서 구할 수 있겠다고 좋은 대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을 지나온 말이 생기가 없고 신경질만 늘었을 때 생초를 며칠 섭취하고서

 

활력은 솟아나면서 신경안정제 먹은 것처럼 차분하게

 

안정되는 모습을 지금껏 보아왔기에 봄이면 애마에게

 

어디서 생초를 구해다 먹일까가 저는 늘

 

고민이었답니다.

 

 

 

 

 

 

 

 

 

 

 

 

 

 

 

 

 

 

 

 

 

 

 

 

 

 

 

 

 

 

 

 

 

 

 

 

 

 

 

 

 

안미선 님께 여쭈어본 바 프라스틱 판때기와 껍질에 쌓인 보리는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르는 일이 문제겠지요. 날마다 새 물로 샤워시켜주어야지 한 번만 물주고 방치하면 흰곰팡이가 자욱하게 피고 자라기도 전에 썩어버릴 수도 있답니다.

 

 

 

제주도에 있는 루시타노 목장에 갔더니 창고 하나가 보리싹 수경재배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분사되어 새싹이 잘 자라도록 보슬비를 계속 내려주고 있었고 자동이동식 선반이 날마다 위치를 이동하면서 자란 크기에 맞는 습도와 햇빛을 제공하더군요.

 

 

 

 

 

 

말에게 주려고 실외에 내놓은 탐스럽게 자란 보리싹입니다. 목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가끔 보리싹을 싹둑 잘라 비빔밥을 해드신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지요. 양푼에 보리밥 담아 녹색아파리 수북하게 얹어 고추장 한 숟갈 올리고 참기름 한바퀴 주루룩 흘려서 썩썩 비비면 끝내주는 맛이겠지요. 이런 게 바로 말 덕분에 웰빙하는 거 아니겠어요?

<알.티> 독자 여러분 !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글과 사진을 제공해주신 안미선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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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날에 큰 나무 아래서 하루를 보낸다면 나무 그림자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림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길어졌다 짧아졌다 다시 길어질 것이다

하루가 인생이라면 그 안에서 우리들의 관계도 그림자처럼 변해간다.

 

 

                            

 

   

     오후 12시 30분. 말들의 점심식사가 한창일 시간이다. 빛과 그림자인 듯 각각 흰색과 검은색 털빛을 가진 몽실이와 깜주. 마당 가득한 햇빛을 깃발 삼아 꼬리를 나부끼는 견공 녀석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덜어내듯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주며 인사를 나누고 예뻐해주었다. 슬슬 마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마방은 저 끝에 있지만 벌써 귓가에 말들의 건초 씹어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들 자기 몫의 건초에 빠져들어 넋이 나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옆에 지나가도 사람은 그림자나 마찬가지다.아무런 기대도 없으니 삼 일 만에 아이들을 본다는 설렘도 마음속에 잠잠하다. 그 무방비의 순간에 말 머리 하나가 쓰윽 나왔다.촬영 후 모니터를 하는데 사진인 줄 알았다가 아 동영상이었군 하는 놀라움이 일었다. 아마르였다. 말 머리는 오 초 정도 나를 응시하다가 다시 쓰윽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에 일어난 이 일에 대하여 내 속에 소란이 일었다. 머리로는 이게 뭐지? 하는데 심장은 빨라지니 사고와 감정의 실타래가 엉켜버린 꼴이다. 실 꼬투리를 찾아내어 다시 풀어내야하리라.

 

   건초는 아직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맛난 건초를 먹다 말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야 했던 절박함이 무엇인가. 모든 사물이 정지한 공간의 침묵을 깨고 머리가 밖으로 나오는 속도에 절박함이 새겨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응시하던 잠깐의 시간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었을까. 

  아마르는 아무 것도 먹고 있지 않을 때 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머리를 내밀어 반가움을 표시하지만  건초를 먹을 때는 나를 우선 순위에서 밀어내고야 만다. 그렇기는 해도 궁금증은 못 참아서 입으로는 우물거리되 눈알은 힐끗힐끗 하면서 볼 것은 다 본다. 그럴 때 비록 내가 건초보다 덜 중요한 존재로 순위가 밀리기는 했으나 녀석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 그냥 보기에 기특했다. 그런데 아마르의 마음에 저울질 된 순위가 바뀌어 내가 건초를 밀어낸 상황에 맞닥뜨리니 내심 신기했던 거다.

 

  사실 지난 삼 일 마장에 나가지 못했다.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구질구질한 눈이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여서 집에서 머물렀다.  옛날 같으면 아이들 걱정이 되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삼 일이라니... 삼 일 동안 아이들을 못 본다면 온갖 걱정과 그리움에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져 나가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태평하게 (그리움은 어쩔 수 없지만...) 말 아이들을 삼일 씩이나 안 보고 지냈다는 것은 변해도 많이 변한 것이다. 저희들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견디는 방법을 터득했을 거라고 내 마음을 스스로 설득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그렇게 삼일 만에 본  아마르가 건초를 제끼고  나를 반기니 녀석이 내심으로 나를 걱정한 모양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루 정도야 안 올 수 있어. 어쩌다 가끔 이틀 안 보이는 때도 있었지. 그런데 삼 일은 좀 수상해 . 무슨 일 있나? 무슨 일 있으면 어쩌지? 하는 심리상태를 판토마임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배우가 바로 아마르였다. 그저 머리를 창으로 내밀었다가 집어넣는 단순한 동작 속에서 표현하는 절제된 연기라고 할까.

 

  아마르에게 자신의 말 생애의 전부를 함께 지내온 사람은 나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르는 나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체중과 힘,냄새,감정 등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 중에는 좀 한심해보이는 구석조차도 꿰고 있다. 예를 들어, 수장대에 웅크리고서 녀석의 발굽을 손질해주고 수장대 밖으로 나가다가 가로지르는 쇠파이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으윽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감싸쥐며 한참이나 소리가 나지 않게 엉엉 우는 모습같은 것은 모자의 챙 때문에 생기는 어이없는 변고에 해당된다. 그러는 내 꼬락서니를 보고서 아마르는 '아니 저걸 못 보고 부딪혀서 저러는 거야?  저래서야 험한 세상 어찌 사누. 쯪쯪...' 이랬을 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 느끼는 갓난아기의 힘처럼 가소로운 나의 팔 힘이며 제가 조금만 빨리 걸어도 따라잡지 못하는 걸음걸이 등 약점투성이 존재라는 걸 다 안다. 그렇기에 내가 제 눈에 오랜기간 보이지 않았을 때 '어디 다니다가 자빠지지는 않았나? 어디 아픈 건 아니야?' 하고서 걱정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던 거다.

 

  아마르가 날 걱정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느덧 녀석이 많이 컸네 싶어져 지나온 세월의 두터움도 느끼게 된다. 철부지 자식이 자라니 노인네가 되어버린 부모가 아기같아서  노심초사한다. 서로 걱정하는 역할을 바꾸어가는 상황이 빛과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아마르가 제법 점잖아진 후로 날 태우고 다닐 때  약하지만 좋아하는 존재를 등에 업고 다니는 뿌듯함과 의기양양함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언뜻 받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인가 기승 도중에 말 목의 스트레칭에 도움이 되라고 한쪽 고삐를 조작하여 말 머리만 돌리도록 했는데 그 순간 아마르의 옆 얼굴이 온전히 보였다. 눈빛은 온화하고 부드러웠고 시선은 그윽하고도 촉촉했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아! 그 표정은 결코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동물의, 저당잡힌 존재의 표정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곳에 선명한 점을 찍고 있었다. 분명 아마르의 등에서 본 녀석의 표정에는 등에 태우고 있는 존재보다 훨씬 커다란 존재만이 보낼 수 있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에서 말이 한 생애를 살아갈 때 무리로 살아간다. 떠돌이 늑대라는 얘긴 있어도 떠돌이 말이란 얘기는 없지 않은가. 무리는 가족이다. 어른이 된 말은 무리의 질서 안에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리를 지키고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을 가졌을 것이다. 암말의 모성애 뿐만 아니라 말 모두에 깃든 보편적 본성으로서 타자에 대한  보호본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말이 지닌 신비가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사람은 말이 전력질주 도망가는 본성을 이용하고 그 효용을 누려왔다. 말이 도망가기 이전에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말끼리 서로 기대고 부비며 서로를 위하며 살았는지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 절박했기 때문이거나 필요한 부분만을 취해 온 이기적 문명의 역사가 안고있는 그늘이다.

 

  다른 초식동물도 무리를 보호하며 살아가지만 말처럼 사람에게 깊이 맺어진 동물은 없다. 빛과 그림자는 사물의 두 가지 속성 동전의 양면이다. 말은 사람이 진정으로 보호해주는 영역에 머무를 때만 스스로의 보호본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본성인 도망가기로 사력을 다 한다. 말이 도망가게 만들지 보호본능을 발휘하게 만들지는 사람이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식탁머리에서 아마르가 나를 걱정하더라는 얘기를 하다보니 기분이 우쭐해졌다. 목소리 톤까지 높여가며 남편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니까 남편이 자기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 나도 며칠 안 나가면 아마르가 총알처럼 머리를 내민다니까.  날 보고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다행이네' 하고 안도하는 표정이야. 아무래도 우리가 말들 걱정하는 것보다 걔네들이 우릴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큰 거 아닐까? "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말은

이제 그늘 속에서 걸어나와 햇빛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약하고 아픈 존재들을 다독여주러 왔다고...

 신은 원래 우리에게 그런 임무를 주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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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본문내용과 상관 없이 초겨울 즈음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의 순간입니다.칸타의 행색을 보니 아빠가 근처에 있는 모양입니다.

 

 

어젯밤에 ktv 방송에 우리 가족이 살짝 출연했던 부분이 나와서 시청했다. 얼마 전에 시니어 기자 두 분이 방문하여 승마장 원장님과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촬영을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있었던 우리 가족도 카메라에 잡혀 잠시 촬영에 응하게 되었다. 승마로 여가를 즐기는 가족으로서 나온 거다. ktv 방송은 국민방송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그 옛날 극장에서 본영화 상영 전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대한뉴스 화면을 기억하시는지.바로 그 대한뉴스의 현대판 버전이라 하면 맞다.

 

촬영날은 몹시 추웠다.그 전에 많은 눈이 내린 후에 추위가 찾아들었다.기승을 하려고 나오니 추워서인지 다들 실내마장에서 타고 있길래 '복잡하구먼'하고서 밖으로 나갔다.바닥 모래 상태가 얼다 말았는지 버석버석 한 것 같아 칸타를 타고서 조심스레 마장을 돌아보았다. 전날 바닥에 염화칼슘을 뿌린 상태였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땅은 표면이 얼지 않았지만 바닥은 딱딱한 느낌이 전해졌다.아무래도 얼지않은 모래 아래로 얼음층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좋지 않아.그냥 들어가야겠네'하고 돌아서려는데 시니어 기자 두 분이 카메라 셋팅을 마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준비를 하고 기다리시는데 차마 그냥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참 평보를 하고 나서 조심스레 속보를 시작했다. 살얼음을 밟고 가듯 사뿐사뿐 나아갈 때 꼭 내가 경기 전에 빙질을 점검하는 김연아 선수라도 된 것 같았다.어느 한곳이라도 안 좋은 곳이 있으면 꽈당 미끄러질 수 있으니 온 신경의 레이다를 돌려서 살펴봐야 하리라. 겨울철 눈이 녹았다 얼어서 형성된 일부 빙판은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복병이기도 하다. 말이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미끄러져 나뒹군 말에 다시 사람이 상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칸타를 타고 나아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지점에서 모래 아래층의 좀 약한 얼음이 깨지면서 푹 들어갔다. 말 뒷다리 중의 하나가 빠져드는 충격이 말 몸 전체로 전달됐다. 뿐만 아니라 팬스 가장자리는 치워낸 눈의 물기가 스며들어 단단한 얼음 트랙이 되었다. 그 위를 밟고 지나갈 때 마치 지하철 공사장이 된 도로 위 철판을 통과하는 것처럼 쿵쿵쿵 울렸다.

 

혹여 칸타가 미끄러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니 평소에 하지 않던 긴장으로 갑옷을 해입은 채로 마음은 걱정이 가득했다.그래도 이 추위에 촬영을 나오신 어르신 기자님들이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구보까지는 연출해야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아마 그 상황에서 가장 시끄럽게 정신없는 곳은 내 머릿속 같았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대고 '제발 그만해.시끄러워서 말을 타겠냐구!' 버럭질을 하고 고요가 잠시 찾아오니 칸타의 상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칸타는 내 머릿속과 심장의 상태를 HD 화질로 스캔하여 본 것 같았다.얼마나 조심성 있게 새색시 걸음으로 속보를 하든지 그만 내 마음에선 용기가 솟았다.그래 구보를 해도 되겠구나. 가자 칸타! 칸타는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게 구보를 시작했고 걸음은 뛰는동 걷는동 작은 보폭으로 가볍게 나아갔다.칸타의 조심스럽고도 적절한 처신 덕분에 무사하고 안전한 승마를 마칠 수 있었다.

 

겨울철 언 땅 위에서의 기승운동은 아니 하느니만 못합니다.

말과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승마가 국민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거지요.

 

우리 가족의 첫 방송출연이다. 국민방송에 나오게되다니 정말 뜻밖이다. 평소 정치나 정책 분야에 그닥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말과 승마로 인하여 나 혼자 행복하고 말 일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왔다. 그러므로 우연히 ktv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출연하게 된 일이  필연적 계기가 되기도 할 것 같다.

말산업은 결국 말로 인하여 국민이 잘살고 행복하자는 취지가 아니겠는가. 2014년 청말의 해를 시작으로 말산업에도 질적인 발전과 도약으로 관련된 많은 분들이 웃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해당 방송입니다.클릭하시면 ktv 홈페이지가 나옵니다. 동영상을 플레이 하시고 시청하세요.

 

http://www.ktv.go.kr/program/contents.jsp?cid=47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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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아~ 이쁜 궁뎅아~ 한 해도 다 갔구나.올해 아프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지내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도 고마워! 우리들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알렸잖아!  엄마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리를 더 가깝게 느낄 거야!

 

 

할머니 고마워! 할머닌 아무리 바빠도 우리 돌보는 일에 마음을 다해 정성 가득 했다는 걸 알아!

 

 

나도 고맙지! 이쁜이랑 이쁜 궁뎅이는 나의 승마 교과서이자 스승이니까!

 

 

스승은 뭐구 교과서는 뭐야? 그거 좋은 거야? 

 

그럼 좋고 말고.내가 너희 등에 탔을 때 어떤 행위를 하면 괴로운지,불편한지,좋은지,어떻게 움직여지는지 늘 가르쳐 주잖아.

사실 너희는 무서운 스승이지.조금만 잘못하면 화내고,신경질내고,뒤돌아보며 노려보잖아. 내가 혼나지 않으려고 얼마나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지 모를 거야.

 그야 할머니는 내가 무슨 소릴 해도 잘 알아듣고 최소한 알아들으려고 마음이 열려 있으니까 하고 싶은 소릴 다 하게 돼!

 

 

너희는 기특해! 칸타는 올해 낯선 이모 둘을 태웠던 일이 있었지? 두 이모 다 구보가 능숙하지 않은 실력이었지.그 이모들을 태울 때 칸타가 조심조심 이모 겁내는 걸 알고 얼마나 잘  알아서 모시든지 말야.이모가 소심하게 구보 사인 주었을 때도 구보 가도 되려나 노심초사 하면서 자근자근 속보 템포로 가주었을 때 정말 훌륭한 승용마라는 생각을 했지.나중에 다 타고나서 이모가 "참 잘 키우셨네요!" 했을 때 엄마는 너무도 기뻤단다. 이쁜 궁뎅이도 앞으로 그런 승용마가 되어야 해요!

 

 

새해가 되면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각오를 하게 되니 참 좋아!

(숨은 그림 찾기 : 몽실이)

 

 

 몽실이는 꼬물꼬물 할 때부터 사람이 안아다 말에게 콧등뽀뽀를 늘 시켜줘서 말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그렇다고 기승운동 하는데 진로방해하며 일부러 뛰어가 드러누워 있는 건 좀 심하지? 종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 친구맺기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언제나 유쾌하다니까.

할머니 ! 그런데 난 왜 하필 이쁜 궁뎅이야? 

 

 그야 발굽 파줄 때 다음 발을 자동으로 착착 들어주니까 이뻐서 토닥거리다 보니 그렇게 부르게 됐지 뭐!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말의 힘찬 발걸음은 엉덩이에서 솟는 거란다. 그러니 할머닐 태워주는 백만불 짜리 궁뎅이지 뭐 이쁜 궁뎅아! 으이~ 또 이쁜 궁뎅이래!!! 하하하~

 

 

 고마운 분들께 받은 선물! 수줍게 꽃을 피운 난.비누로 만든 장미꽃과

 

 

따뜻한 귀마개와 요정 털모자, 국화꽃 한 다발...

 

 

붉은 털목도리...

모두 책이 출간된 후에 받은 선물입니다.

제게 주신 고마운 마음은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2013년 한 해 <알팔파 앤 티모시>를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는 말이 예로부터 부와 명예의 상징이며 행운을 부른다고 합니다.

말이 복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인 셈이지요.

블로그를 통하여 제가 말에게 느낀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내내 행복했습니다.

말의 해를 맞은  내년에도 이 행복 이어가야겠지요.

 

모두들 한 해 열심히 살아내느라 애쓰셨을 겁니다.

깐돌할망도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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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듣는 아마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 진리를 떠올리는 순간은 보통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유쾌한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쁘고 좋은 관계는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 키를 돌릴지 조절이 가능하기도 하다. 말들끼리 관계도 이 진리에서 비켜서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칸타와 아마르 말 모자(母子) 사이에도 변하는 관계가 보였다. 말도 사람처럼 사회생활을 하므로 관계의 문제가 존재할 것이다. 말끼리 관계는 흔히 서열이라는 그들의 질서에 따라 살펴볼 수가 있다.

 

  칸타의 몸에서 아마르가 태어난 순간부터 5세가 될 때까지 관계 주도권의 우위는 칸타에게 있었다. 여름에 태어난 망아지 깐돌(아마르의 아명)은 엄마 젖을 찾아 빨아야하는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동안 파리를 쫒느라 한 시각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엄마의 발길질과 꼬리채에 얻어맞으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래서 깐돌이가 엄마에게 절대복종 하는 까닭이 낳아주고 젖을 먹여 키워준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 외에도 망아지적부터 엄마의 무시무시한 위엄을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관계는 5세 생일이 가까울 무렵까지 이어졌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그런 모습으로 영원하겠지 생각했지만 그 생각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엘도라도가 입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엘도라도는 원형 패덕 안에 있었고 칸타와 아마르는 바깥 공간에 있었다. 엘도라도는 칸타바라기였고 칸타는 엘도라도를 숫말로서 관심을 두기 시작하니 아마르의 관심은 온통 둘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는데 온통 쏠려 있었다. 아마르는 자유롭게 놀지도 못하고 마치 2차대전 시기에 유태인을 색출하러 다니던 게슈타포처럼 굴었다. 칸타와  엘도라도에게 암말과 숫말의 태도가 나타나면 곧 유태인이라 낙인찍고 체포해서 아우슈비츠에 집어넣을거야 엄포를 놓았다. 아마르의 태도가 강경하고 살벌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급기야 확실한 인증샷 하나를 연출하고야 말았다. 칸타가 엘도라도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들이대고 꼬리를 요염하게 말아서 들어올리자 아마르가 둘 사이에 확 끼어들더니 칸타에게 인정사정 없는 발길질을 날리고 말았다. 나는 이게 실제상황인가 하고 충격을 받았지만 일단 엘도라도를 마방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 후에 생각해보니 아마르는 정신줄을 놓았기에 잠시 그럴 수 있다쳐도 맞고서도 아무런 항의도 못한 칸타는 뭐란 말인가. 그 사건 이후로 칸타와 아마르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되었던 위,아래 관계는 거꾸로가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아마르가 엄마에게 행패 부리는 모습이 목격됐고 둘을 나란히 세워놓고 간식을 줄 때도 아마르가 내가 많이 받아먹을 테니 엄마 머리는 저리로 치워 하고 밀치기 일쑤였다. 그러면 칸타는 기도 못펴고 아들 눈치를 보며 입안에 든 것이나 겨우 우물우물 씹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살다보니 과연 세상에 모든 말 엄마와 아들이나 딸이  함께 살면 자식이 5세 무렵이 되었을 때 서열이 바뀌게 되는 건가하는  일반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오랜 세월 말 목장을 운영하며 수많은 망아지를 키워본 목장주만이 알 거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요즘에 와서 또 서열이 바뀌었다. 바깥에서 둘이 놀다가 칸타가 무슨 일인지 심술이 나서 내가 보기에 아무 짓도 안한 - 하기는 했다.칸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는.그렇다고 그 땅이 칸타 소유는 아닌데. - 아마르를 걷어찼다. 그랬더니 아마르는 그 옛날 닭들이 날아다니던 승마장에서 바람이에게 뻥 차였던 닭이 비실비실 어디론가 걸어갔던 그 자태 그 느낌 그대로 기운없이 저리로 가버렸다.

 

 내가 만일 정치가였다면 권력의 무상함에 대해서 설핏 찾아든 상념에 잠시 잠겼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취향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는 사람이라 그런가 머릿속은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회전을 시작했다. 그 방향이란 말과 사람의 교감의 차원이다.

 

  요즘 생활의 변화라면 남편이 거의 주말반처럼 되어 평일에는 기승을 별로 하지 않는 패턴으로 지내는 지가 좀 되었다. 지난 가을까지 내가 아마르를 주로 타다가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도 있고 해서 남편이 기승을 주로 하다보니 자연히 아마르는 평일에 기승운동 할 일이 별로 없다. 날은 춥고 땅의 상태도 별로여서 자유로운 놀이도 별로 못하고 유일한 활동이란 기승운동이 대부분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승운동이란 단지 사람을 태우는 활동만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 전후로 준비하고 뒷처리 하는 과정에서 갖은 보살핌을 받으며 사랑과 관심을 누리는 일이다.

  한가한 평일에 주로 칸타가 마방복도에 매어져서 엄마의 갖은 보살핌을 받는 동안 아마르와 엘도라도는 부럽다는 듯이 넋을 놓고 구경한다. 아마르는 시샘이 나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다가 어느 순간 쏙 들어가서 안 보겠다는 듯 엉덩이를 돌리고 서있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내다보고 시샘하고. 그럴 때 칸타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그러기를 한 석 달 지났나보다. 요즘에 아마르는 풀이 팍 죽어 의기소침해 보인다. 물론 주말에는 제 할아버지가 나타나 예뻐해주지만 평일,주말 통합으로 사랑을 받는 칸타에 비하면 약발이 부족해 보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문득 '동물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정도에 따라 무리내에서 서열이 더 올라간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명제를 가설이라 여기고 우리 아이들 경우를 대입해 보니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아마르는 4세까지 기승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3세부터는 기승운동을 많이 시켜야지 했지만 늘 다치거나 다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주로 놀고먹는 백수신세로 소일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동안 칸타는 아빠 태우랴,엄마 태우랴 상당한 몫을 해냈다. 칸타는 의기양양 신경질도 마음껏 팡팡 부리고 기세등등 했던 반면 아마르는 눈치밥 먹는 자식마냥 칸타 앞에서 그저 엄마의 기세에 눌릴 뿐이었다 .올해는 아이들이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아마르도 승용마 한 몫을 거뜬히 해냈다. 게다가 평일,주말 전천후 할머니가 아마르를 주로 탄 시간이 많다. 할아버지가 몽골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홀로 아마르를 타주고 보살폈다. 그러는 사이에 아마르가 칸타를 걷어차며 행패부리는 시기가 놓여있었던 거다. 지난 행적을 추적해보니 칸타와 아마르는 기승운동을 중심축으로 한 사랑과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쪽이 둘 사이 관계의 우위를 점령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실내마장에 들어가 막 칸타를 타기 시작해서 평보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코치가 축복이를 다 타고 마무리 평보를 하고 있어서 잠시 같이 나란히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내가 "축복이 오랫만이야." 했더니 코치가 " 요즘 축복이가 호구네요.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치인다는 얘긴지 자세한 정황은 못 들었으나 코치가 말이 호구라고 말할 때는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간다. 말 서열의 밑바닥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축복이는 얼마 전까지 자마 마방에서 지내다가 자마의 신분도 없어지고 마방도 모자라서 클럽마방으로 그것도 제일 끝방으로 이사갔다. 끝방은 사람들이 돌아보다가도 미처 발길이 미치지 못하고 가버리는 후미진 곳이다. 축복이가 어떤 말인가. 자마였을 때 자마마방에서 가장 기세등등했다. 새로 온 말이 있으면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런 말이 호구가 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 문득 축복이가 생각나서 당근을 들고 클럽 마방 끝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축복이는 권세를 누리다가 하루 아침에 팽 당하여 귀양길에 오른 양반님처럼 패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고마워하며 당근을 받아먹었다. 자마였을 때 갖은 치장을 해주고 오랜 시간 공들여 돌봐주던 손길이 끊기니 그렇게 됐다. 말 팔자도 뒤웅박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으로 서열이 업그레이드 된 말의 특징은 정서적 안정감에서 비롯된 만족감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발성을 갖는다. 상황에 따라 주인이 좀 힘든 뭔가를 시켜도 반항하지 않고 참아내며 따른다. 칸타의 기승 전과 후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흔히 비포 에프터로 비교하는 경우에 해당할 만하다. 기승전에는 "난 완벽한 배려를 원해요."의 화신이다. 이런 칸타 덕분에 기승운동을 준비하는 나의 태도는 수행이 높은 스님이 다도(茶道)를 행할 때처럼 느림과 사려깊음이 경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순악질여사의 허공에 2단 돌려차기,헤드 뱅잉,화살촉 시선을 당해야 한다. 칸타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배려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이런 칸타도 기승운동만 끝나면 그 전의 모습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고분고분해진다. 다시 기승대로 가서 목덜미에 칭찬하고 내려서 다시 칭찬할 때에 칸타가 고개를 약간 돌려 나를 바라보는데 그 시선은 이미 나긋나긋 흘러내리는 크림처럼 부드럽다. 답답한 레인을 풀어서 정리하고 등자를 올리고 빵빵한 복대로 늦춰주고 "자 갈까?" 눈빛으로 말하고 어깨를 열어 길을 터주면 칸타가 나른한 걸음으로 졸래졸래 따라온다. 머리를 낮추어 조아리고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따라나오는 칸타는 제왕을 따르는 절대충신이다.

 

  칸타와 함께 실내마장을 걸어나오는 시각은 대부분 네다섯 시 경이다. 그 시각 해는 천천히 지고 있어서 마지막 오후햇살이 나와 칸타의 뒤에서 비춰온다. 손을 잡고 가듯 느슨하게 고삐를 손바닥에 걸치고 갈 때 칸타가 머리를 은근하게 내쪽으로 기대온다. 나도 그러는 칸타에게로 몸을 좀 기울여 머리를 맞대본다.  눈앞 땅바닥에  거대한 그림자 풍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그림자는 오징어 형상이었다. 나의 머리와 칸타의 머리가 합쳐져서 오징어 몸체의 삼각형이 되고 우리 다리 여섯개가 오징어다리가 되어 걸을 때마다 흐느적흐느적했다. 내가 칸타와 맞대지 않은 다른 팔을 나비처럼 파랑거렸더니 온몸으로 흐느적거리는 입체적인 오징어형상이 되었다. 말과 사람이 한몸이 된 이미지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지만 그게 하필 오징어라니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와 햇살을 타고 부유하던 공기중으로 퍼져나갔다.

 

  오징어의 형상에서 나의 상상은 잠에서 깨어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꼭 오징어가 심해에서 물결을 타고 춤추는 것처럼 떠오른다. 먼먼 시간으로부터 生을 거듭하여 살아왔다면 나는 어느 순간 오징어였고,물이었고,바람이었고,나무였고,말이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칸타도 바위였고,눈송이였고,다람쥐였고,구름이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존재를 거쳐오며 이 순간 우리가 만났을 것인가. 전생과 윤회의 삶이 있다면 그 안에서 무슨 위가 있고 아래가 있을 것인가. 너와 나라는 분별이 사라지고 일체감이란 본질만 남을 때 어떤 생명의 모습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든 사랑만이 생명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지어준 마방에서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사는 승용마는 이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터전 말고 다른 삶의 모습은 없다. 말들은 그들끼리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관여하는 사람들조차 같은 무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사람이 생각하든 안하든 의지에 상관없이 말과의 관계망에 얽혀들게 된다. 무수한 관계의 상자를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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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북부지방에서 남편과 함께 제인과 페가수스라는 말을 기르는 홀스맘이자 <알.티>의 열혈독자이신 김유예 님이 우리 아이들 선물을 보내왔다. 유럽 홀스맘들 사이에 인기라는 말 죽제품이다.

 

이 귀한 선물을 어이 멕일꼬 궁리 끝에 마방 점심시간에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마방에서는 당근 하나도 다 나누어주어야지 누구만 줬다간 후환 겪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선물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멕여야 하니 말 이웃들이 건초를 먹을 때 주면 다들 제각각 먹느라 신경을 덜 쓸 것 같아 그리 하기로 했다.

 

평소 오이소박이나,깍두기 버무릴 때 쓰던 스텐그릇이 집에서 출장나왔다.제품 봉지에는 뜨거운 물을 그냥 봉지에 부으라 표시했지만 아무래도 비닐봉지는 온도가 뜨거워지면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엄마는 아이에게 환경호르몬을 먹게 할 수 없는 법이다.포트는 평소 차 마실 때 사용했는데 오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어 네가 참 요긴한 물건이로구나 했다.

 

먼저 봉지를 뜯어 당근그릇에 부어서 대기시킨다.포트에서 끓은 물은 90도 이상이라 60~70도로 식혀주어야 한다.넓은 스텐그릇은 끓는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죽의 재료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물 누른 것과 박편이고 사과도 풍미를 돋구기 위해 첨가되었다.

 

 

물이 적당히 식은 것 같아 (온도계는 재지 않았지만) 죽 재료를 쏟아부었다.

 

재료가 물을 만나니 순식간에 포옹을 하고는 물컹해졌다.

 

김이 설설 피어오르며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니 말에게도 풍미가 전해졌을 것이다.이제부터는 곡물이 소화되기 쉽도록 불면서 미지근하게 식을 동안 기다려야 한다.20~30 분 정도 소요될 듯하다.

 

주걱으로 죽을 휘휘 젓는 동안 소여물죽 끓이는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면 소에게 여물 끓여주는 일이 신기했다.온갖 재료를 버무려 큰 솥에 끓여서 퍼주면 소가 맛나게 먹었는데 보고 있다가 나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소여물은 사랑이었다.우리 조상들이 한 겨울 보내고 나니 충분한 풀을 섭취하지 못해 이듬해 봄에 털갈이도 제대로 못하고 바짝 마른 소를 보고는 가엾어 귀한 옥수수나 콩을 한줌씩 넣어 끓여먹이곤 했으리라.

 

말 또한 본디 초식동물이어서 곡물을 섭취하는 동물은 아니었다.사람과 살게 되면서 일을 시키다 보니 소화부담은 줄여주면서 힘이 딸리지 않도록 먹이게 된 거다.그래서 말에게 곡물을 줄 때 신선한 풀을 못 먹게 한 대신에 일 시키려고 주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스치지만 한편 갈빗대가 보이고 요각이 두드러지면 가엾어서 얼른 살찌라고 입에다 많이 넣어주고 싶은 먹이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이 전쟁이나 교통수단으로 혹사당하지는 않으니 노동을 위한 에너지원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사랑이란 의미가 더 많을 것이다.우리네 조상이 집에서 기르는 소를 가여워하고 아끼던 마음과 똑같이.

 

칸타의 반응을 보려고 죽그릇을 들고 가니 냄새를 좀 맡아보고는 빨리 달라고 앞발을 긁고 난리가 났다.

 

 

 

다른 말들은 남아있는 건초를 먹느라 눈으로만 힐끔거리며 살피는 정도였는데 브릿지는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아예 먹는 일을 중단하고 죽에만 관심을 두고 쳐다봤다.

 

죽이 충분히 식지 않았지만 그냥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미식가 칸타가 새로운 맛에 완전히 빠져서 분석중이다.

 

아마르도 신중하게 이것이 무엇일꼬 하며 아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외에 다른 말들에게도 한 주걱씩 나누어주었다.말들이 만장일치로 "아주 맛이 좋아요!" 했다.

 

그릇의 설거지는 이쁜 딸 칸타더러 하라고 했다.칸타가 설거지 임무를 좋아라 받아들이며 날름날름 싹싹 깨끗하게 그릇을 닦아주었다.오늘의 간식타임 끝~

 

말 죽 쑤는 과정을 구경하시던 이웃 리카다 아빠가 부시럭거리며 말 사과사탕 한봉지를 주셔서 아이들이 디저트로 한 개씩 먹었다.그날 오후 기승운동을 하는데 유난히 기분좋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 지켜보시던 리카다 아빠 크게 소리 높여 외치기를 "역시 점심 때 좋은 걸 멕여서 확실히 틀리네!"

 

 

이태리 김유예 님이 보내온 죽 관련 메일을 본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죽은요,봉지를 개봉하신 후에 1리터의 물 (60-70도)을 그 안에 부으시고 다시 봉지를 닫으신 다음 죽이 잘 불고 말이 먹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한 20-30분) 봉지의 내용물을 그대로 말 밥통에 부어주시고 봉지는 버리시면 되는 겁니다.

 

말 죽이라는게 Mash 라고 해서 독일과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문화로 주성분은 아마씨와 밀겨껍질,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곡물 박편들인데요 칼슘과 인이라는 성분의 독특하게 불균형한 비례율 때문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주면 말의 뼈에서 칼슘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말에게 좋지 않지만 이틀만에 한 번씩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주면 더이상 말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데,그 중 대표적인 장점을 모아보면

 

1. 뱃속에 있는 모래를 비롯하여 우리가 안본 새에 말이 섭취한 모든 위험한 이물질들이 한방에 나온다.

 

2.기승운동 후 건초+사료와 함께 주면 영양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섭취하되,똥배는 절대 방지하면서 근육과 살이 꼭 필요한 곳에 안착되도록 한다.(즉 몸짱을 만들어 주는 거죠^^)

 

3.아주 건강하고 빛나는 외투가 (말 털) 만들어진다.

 

그밖에 소화촉진 등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아 아주 잘 팔리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있는 종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요.올해에는 아기들을 몸짱으로 만들려는 홀스맘들의 욕심에 부합하고자 일주일에 세 번밖에 줄 수 없다는 단점을 곡물을 완전 제외시키고 60가지 알프스산에서 나는 약초만을 원료로 하여 매일 먹을 수 있는 신죽제품을 출시한 Agrobs란 회사 때문에 더욱더 죽 열풍이 불었지요.

 

- 홀스맘 김유예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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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엄마가 오후반이 되니 클럽에서 자주 보게 된다.어느 오후에 여느 때처럼 아마르와 칸타는 야외마장에서 놀고 있었다.논다기 보다는 우두커니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 것 같았다.수아엄마가 수아를 데리고 나왔다.또각또각 말 발소리가 들리니 우리 아이들이 누가 나오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다 수아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마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엄마에게 이끌려 나오는 수아도 좋아서 출입문에 당도하기까지 걸음이 들뜨고 바빴다.수아는 마장 안에 들어서자 기뻐서 네 다리와 머리를 공중에 낙서하듯이 휘저어 갈기더니 마구 달려서 운동장을 몇 바퀴 내질렀다.마치 태풍이가 수아 안에 들어간 것처럼 늘 익숙하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아마르도 태풍이와 놀 때 그 모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발에 용수철을 단 것처럼 지면을 튕기듯이 차오르는 걸음걸이로 활보했다.김연아 선수가 양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어린 암수말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칸타는 별 동요없이 내면적으로만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곧이어 브릿지가 역시 엄마손에 이끌려 나왔다.수아와는 같은 엄마를 두었다.브릿지는 숫말인고로 아마르와 싸울 것을 우려해서 야외마장 옆에 맞붙은 초보마장에 단독으로 들여보내졌다.초보마장은 최근에 생긴 건축물로 마장의 용도를 생각해서 기승중에 말이 놀라지 않도록 말 눈높이에 벽면을 쳤다.그 덕분에 밖에서 보면 기승자의 머리와 말의 네 다리만 보일 뿐이어서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돌아다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그래서 나에게는 초보마장이 켄타우로스마장으로 인식되어 있다.바로 이곳에서 브릿지는 뒹굴어서 급한 가려움증을 해소하더니 그제서야 밖에 누가 있나 찬찬히 보려고 머리를 들썩들썩 하면서 동향을 살폈다.우리 아이들 역시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기웃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니 브릿지는 자기만 홀로 격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저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하는 모습에서 마땅치 않은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내게는 말의 다리만 보일 뿐이지만 말은 걸음걸이에서도 제 감정을 표현한다.브릿지는 점점 부아가 돋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마르 속에 한동안 잠자던 장난꾸러기 악동 본능이 깨어나 한껏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아마르는 기분이 무척 유쾌했다.엄마와 수아 이렇게 암말 둘이 제 곁에 있고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상대인 다른 숫말이 다른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암말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즐거웠던 게다. 말 세마리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을 유심히 살피자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아마르가 암말 수아에게 스킨십을 잔뜩 퍼붓고 있었다.수아의 귀며 얼굴이며 제 입술이 닿는 곳을 낼름 할짝 부비거리는 것이었다.난 순간 "아니 쟤가 왜 저래? 저렇게 서비스가 친절한 얘가 아닌데 말이지."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수아야말로 '얘가 나한테 웬일이야.이런 모습 처음이야.'했을 것 같다.담장 너머로는 브릿지의 귀가 들썩거리고 눈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풋! 웃음이 났다.아마르는 브릿지 형님 약을 한참 올리는 중이었다. 신나게 수아를 핥아주다가 마장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아마르를 불렀다.다른 때 같으면 못 들은 척 하면서 조는 시늉도 하는데 이 순간 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할아버지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는데 제 흥에 못이겨 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수아와 칸타도 아마르의 뒤를 따랐다.아마르는 할아버지에게 자랑하러 간 모양이다."할아버지 있잖아.내가 브릿지 형님 약 올려줬는데 말야..." 하고서 보고를 하고 - 할아버지는 못 알아들었겠지만 -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마르의 꼬리가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세워지더니 피뢰침처럼 완벽하게 섰다.순간 말꼬리의 생리학적 해부도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저럴 수 있는 건가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꼬리 뿐만이 아니다.목도 높아지고 굴요의 상태가 되고 걸음도 춤추듯 건들거린다.말들이 저희들끼리 놀다가  기분이 좋아질 때 어김없이 우아한 발레리나처럼 변신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태우고 운동 할 때에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아?"

"쟤들은 놀 때만 멋있어요.마장마술 동작을 다 한다니까.사람만 타면 안 그래요."

 

이러한 멘트 속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얼마 전 여동생과 나와 남편이 몇 시간을 보내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대화를 하다가 여동생이 "역시 형부는 최고야!" 이런 식의 칭찬을 했다.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여동생이 뒷자리에서 운전석에 앉은 형부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어 형부! 방금 전에 목 뻐근해서 펴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 했어."하며 처제의 칭찬에 대한 형부의 리액션을 해설해서 잠시 웃게 만든 일이 있다.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기쁨에 넘칠 때 '어깨가 으쓱한다' '우쭐하다''목에 힘준다'하고 하며 기분이 좋을 때 '띄운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런 표현을 한다.말이나 사람이나 신체적 감정표현 상태가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니 내가 기분좋을 때를 떠올려보면 말의 기분도 그닥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체의 동작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존재의 내면적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말을 탔을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개개 연주자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의 자발성을 북돋아서 자질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살아있는 존재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은 동작은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칸타,아마르,수아,브릿지가 놀 때에 말 아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평소의 아마르는 이제 다 커버려서 감정표현이나 장난스러움은 저 멀리 떠나버리지 않았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확인했다.수아도 얌전하기만 하고 운동할 때 역시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말이어서 그토록 벅차오르는 기쁨을 현란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브릿지는 더욱 놀랍다.마방에서 보면 점잖고 영민한 표정을 짓고만 있으니 도를 많이 닦아서 일희일비 소소한 감정은 없을 줄 알았다.운동할 때도 높은 레벨의 말이 갖춘 각이 틀잡혀 있어서 여지껏 다른 여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다.한데 그런 브릿지가 여느 말처럼  부아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수아가 나갔다 들어오면 엘도처럼 기쁨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니 살아있는 존재의 생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말이 단지 마방에 수납되어 있다가 불려나와 사람을 태우고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들어가는 운동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 가지는 존재로서 바라볼 때 그 말에게서 어떻게 하면 자발성,기쁨,성취감,자부심,용기,도전을 이끌어내게 될까 고민이 시작될 거라 본다.능력이 있지만 두려워하는 말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의욕없는 말에게는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될 테니까.

 

* 시시콜콜 할망 유머.

 

한강클럽 말 이름을 못 외우는 이름치를 위하여.

 

아마르 ---> 아? 말?

리카다 ---> 니꺼다

브릿지 ---> 불 있지?

 

유머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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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 복도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안장을 맬 때 밖의 빈 논을 바라보는 말의 눈빛에서 어떤 욕망이 얼핏 느껴진다.

 

저 논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볏줄기 삭삭 뜯어먹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자주 논에 가서 풀뜯기 시중을 들다보니 - 개 산책 시키듯 로프에 매어 잡고 있는 - 칸타나 아마르나 그 장소를 벗어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거 잘된 일이지 하고서 마사로 돌아가는 입구에 쇠사슬 줄을 치니 논은 훌륭한 가두리 방목장이 됐다.

 

마방굴레에서 로프연결 고리를 떼는 손가락에 전기에 감전된 듯 희열이 번졌다.

 

"이제 자유야! 너 가고싶은 데로 가라!" 호기롭게 외치며 홀가분함을 만끽했다.이것들이 놀랄까, 튈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었나.

 

칸타와 아마르도 내심으로 말 나름의 홀가분함이 채워졌을 것 같다.

 

논에서 갑자기 찾아온 자유로움에 무엇을 할까 잠시 망설였다.뭘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 이 순간을 맘껏 즐기기로 했다.

 

그러려면 편히 쉬어야 하니까 의자가 있어야겠고 그냥 앉아있으면 심심하고 말만 뭘 먹어서야 불공평하지 나도 뭘 먹어야겠다 머리회전은 빨랐다.

 

얼른 뛰어가서 찻물을 끓여 커피 두 잔을 타고 - 한 잔은 블로그 전속 사진작가(?) 할방님 몫이다-점퍼 호주머니에 비스킷을 구겨넣고 남은 주머니에 쥬스도 한팩 넣고 의자를 들고 논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할방을 불러 커피를 건네니 아이들이 뭐야뭐야? 나도나도! 하면서 일제히 몰려온다.커피 쏟아질가봐 손사레를 치며 쫒아내야 했다."니들은 니들 거나 먹어! "

 

말은 입과 다리만 있으면 풀밭에서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스럽다.반면에 나는 의자며 먹거리를 어디서 가져다 의존하는 처지다.비스킷을 우물거리며 생각하니 내가 말보다 매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빈 논에 머무를 때 자신이 말보다 한참 떨어지는 야생성에 열등감을 느끼며 가을의 한기 때문인지 약간 주눅든 자세인 웅크린 모양새로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아마르 만나러 오기 전에 머리가 왜 그리 복잡했나 생각했더니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월말이 되니 메일함에는 각종 청구서 목록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카드며 통신요금,공과금 등등 항목도 수십 가지다.

 

한 달 내내 날아드는 각종 청구서를 보면 사람은 평생 날아오는 청구서에 파묻혀 지불하면서 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날아오는 건 청구서 뿐이 아니다.무엇을 소비하라 유혹하는 마케팅이 얼마나 많은지 메일과 스마트폰의 주인이 광고야 뭐야 하는 심정이 되기 일쑤다.

 

 

세상은 나를 청구서 발송처와 마케팅 타겟으로만 규정하는 것 같다.그런 게 싫어 휴대전화를 꺼둘 때도 많고 잘 받지도 않아 지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출판사와 계속 업무연락을 해야해서 전화기를 체크하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나의 뇌파가 올라가고 뜨거워졌나 보다.

 

그 어떤 디지탈 기기도 없이 빈 논에 빈 몸으로 앉아 아이들 풀 뜯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걱서걱 씹는 소리를 들으니 점차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졌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제목을 붙이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말>이 되겠다.그럴 리야 없지만 꼭 아마르가 그러는 것 같아 코믹한 장면이 되었다.

 

주변은 온통 평화로운 기운만이 감싸고 있다.

 

논은 충분히 넓었지만 아이들은 멀리까지는 가지 않았다.겁쟁이 칸타가 더 멀리 갔지만 딱 논의 절반까지였다.아마르는 내 주변에서 맴돌았는데 가끔 한번씩 괜히 다가와 닿을 듯 스치고 지나가며 눈빛을 맞추었다.

 

마치 나 지금 너무 좋아요 할머니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많이 먹어요 아마르~ 하고 화답한다.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에 든 말을 좀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매우 몰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최고의 집중력을 모으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빠른 입놀림으로 볏줄기를 쓱쓱싹싹 입안으로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러는 상황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 풀을 뜯어먹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행위다.

 

우리 아이들의 먹는 속도는 빠르다.특히 아마르가 더하다.점심시간 말미에 마방에 가면 다른 말들이 식사중인데 아마르는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안 먹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때가 많다.관리인에게 물어보면 "아마르가요 딴 말보다 두 배는 빨리 먹어요."하고 대답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여느 말보다 2배속으로 먹는 아마르가 풀밭에 나오면 4배속 정도로 입놀림을 하는 것 같다.

 

말이 풀뜯어먹는 모습 구경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난지 나의 혼을 빼놓는 정도는 잘 만든 흥미진진한 영화를 볼 때와 비슷하다.

 

말이 아니라면 빈 논에 나와 앉아있을 일은 없다.

 

말과 함께 있기에 도시인이 잠시 자연의 시간으로 귀환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논에다 파라솔도 하나 꽂고 안락의자도 있으면 좋겠어 하고 떠올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문명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할지라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야생성을 회복할 수 있는 통로 하나쯤은 막히지 않게 열어두고 싶다.

 

그 통로는 말에게로 연결되어 있다.

 

 

* 할망 시시콜콜 요즘

 

뱀파이어 영화를 보다가 사람에서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뱀파이어의 힘이 어마어마하고 통제가 잘 안된다는 대목에서 "순치가 덜 됐어!" 하고 승마관련 용어가 절로 튀어나오네요.혹시 다들 그런 경험이 없으신지.  별거 아닌 일상사를 승마와 관련짓는 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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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의 눈부심을 가까스로 참으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목을 젖혀 하늘을 보니 철새의 비행을 구경하게 된다.가끔은 하늘을 가득 덮을 정도로 무수한 철새떼가 천둥 못지않은 소리를 울리며 지나가기도 한다.그럴 때는 철새 종족에 대하여 장엄함과 외경심이 느껴져 와아 하고 소리없는 탄성을 뱉는다.

 

무수한 새떼가 날아다닐 적에는 거대한 한 마리 흑조처럼 보인다.흑조를 보는 일보다는 열 마리 내외로 소규모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철새 보는 일이 많다.보통 화살표 모양을 하고서 원톱시스템으로 비행한다.날아가는 철새가 하늘을 가득 메우다가 조각으로 떨어져 날아가는 변주를 바라보면 전체와 부분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너와 나의 구분도 일체감으로 녹아버린다는 생각에 이르른다.

 

우리 아이들이 논두렁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이러는 풍경이 김포평야에서 흔히 보는 일이 아닌지라 철새도 날아가다가 시선을 내리꽂고 신기해하지 않을까?

 

승마장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농로에서 수확을 하느라 지나다니는 농기계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농로에서는 농기계 우선인지라 승용차는 쭈삣쭈삣 말도 못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농로를 뒷걸음쳐야 한다.도심지에서 교통을 방해하는 차량이 있을 때 크락션을 울리고 머리를 내밀고 항의하는 일일랑 이곳에서는 먼 나라 얘기다.농로를 지나가다가 농사일 하는 동네어르신의 표정은 당당하기만 하다.급하면 알아서 지나가셔~ 난 신경쓸 일 아니고~ 표정이 얼굴에 역력할 뿐이다.요즘엔 동네에 들어서면 자라목을 하고 먼 곳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습관이 됐다.

 

운동 끝나고 풀뜯으러 나왔다.칸타는 내가 붙들고 아마르는 할방님이 붙잡았다.아마르는 호기심이 많아 계속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서 그렇게 각각 맡았다.

 

요즘엔 논에서 노는 일이 많다.농부들이 볼일을 보고 떠난 빈논이 승마인 차지가 됐다.네모 반듯반듯하고 판판하고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모래먼지 걱정도 없다.논에서 운동을 하니 특히 좌속보하기가 좋았다.마치 라텍스 매트리스를 밟고다니는 느낌이었다.

 

마장에서는 말의 보폭이 커지면 좌속보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닌데 논에서는 하나도 배기거나 튕기지 않고 출렁출렁하여 다른 말을 탄 건가 싶었다.바닥의 재질이 승마운동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가 새삼 생각해 보았다.

 

뿐만 아니라 논은 야외이고 평소 생활하던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서 말에게 낯선 새로움을 느끼게 하니 말 발걸음에 긴장된 탄력이 부여됐다.다른 사람이 탄 말을 보니 평소보다 다리가 번쩍번쩍 들렸다.

 

게다가 벼 베어낸 밑동에서 새로운 벼 줄기가 올라오고 있어 논 전체가 파릇했다.아 꿈에도 그리던 잔디마장에서 운동하는구나 온전한 착각에 빠져 신나는 기분도 즐길 수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다시 논으로 나가 풀뜯기를 시키는 것은 말에게 주는 보상이면서 풀뜯는 동안 주변 환경에 더 적응하도록 해서 다음 번 이곳에서 운동했을 때 더 순조롭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사진을 찍은 날이 칸타,아마르가 함께 풀뜯으러 나왔던 올가을 첫 날이었던 모양이다.

 

아마르는 세상사를 모두 잊고 어느새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있었다.

 

자신의 오감을 모두 열고 이 풀,저 풀 가능한 모든 풀과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럴 때의 아마르는 예술가가 작업에 몰두하느라 자신까지도 잊어버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칸타도 처음엔 그랬다.

 

눈앞으로는 제 아빠와 아들이 보이고 옆으로는 엄마가 줄을 연결하여 잡고 있으니 불안할 까닭이 하나도 없다.

 

아마 칸타는 마음을 푹 놓고서 하염없이 풀을 뜯어먹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분이 오시기 전까지는.

 

풀뜯은 지 10 분이나 지났을까.칸타가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빈 논에 큰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돌았다.순간 나는 사태에 대비를 해야겠다는 비상경보를 마음속에서 받았다.

 

아마르는 엄마 칸타가 평정심을 지키지 못하고 동요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할방님에게 얼른 칸타의 상태를 알리고 칸타와 아마르의 줄을 서로 바꾸어 잡았다.줄 잡은 사람이 바뀌었어도 아마르는 아직도 눈치가 하나도 없다.

 

 

결국 칸타는 아무래도 마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아빠가 말리는 데도 기필코 돌아가겠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칸타가 이렇게 나오면 힘을 당할 수가 없어 그만 돌아가야 한다.이제부터는 잘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나는 칸타야 내 소관을 떠났으므로 아마르가 어찌 나올까 그게 궁금하여 초조했다.아직도 삼매경에 든 아마르의 등 뒤로 할방님이 칸타에게 이끌려 멀어져가는 모습이 보였다.칸타는 "내가 가스불 안 끄고 나왔다구요.아시겠어요? 얼른 안 돌아가면 큰 일이..." 하며 바락바락 우기는 사람 같았다.

 

말들은 외승 나왔다가도 돌아오는 길에 가스불이나 수돗불 안 잠갔다는 듯이 떼를 쓰며 설치곤 한다.간혹 등에 태운 사람은 버린 채 혼자 부리나케 가버리기도. 그래서인가 주변 아줌마들이 외출했다가 가스불 걱정한다는 얘길 들으면 말 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아줌마는 기억이 깜빡거리지만 말은 기억력도 좋은데 왜 그리 집에 간다고 보채는 지 원.

 

칸타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 아마르도 눈치를 챘다.

 

(눈치챈 아마르의 표정 사진은 아래로 죽 내려가면 만나게 됩니다.)

 

엄마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더니 처음엔 어? 왜 돌아가지?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하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정말로 엄마가 다시 돌아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왕창 당혹스런 표정이 얼굴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의 표정을 통역하자면 "이런 젠장! 미쳐버리겠네!" 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르도 돌아가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그런데 그날따라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운도 없고 현기증도 있었다.나는 손주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진 할머니 꼴이 됐다.

 

내 걸음도 서두르고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좀 주었으면 아마르와 함께 돌아갔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어느 순간 줄을 놓쳐버렸다.그러자 아마르가 뛰기 시작했다.

 

녀석이 뛴 방향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아니라 가로질러가는 지름길이었다.아마르는 몇 걸음 뛰다가 물이 채 마르지 않은 논뻘에 발목이 푸욱 빠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고 어찌 되려나 머리가 곤두섰다.혹시 아마르가 당황하여 날뛸까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천천히 가던 걸음을 걷는 일이 나의 최선이었다.

 

(아마르 놀란 표정 )발목이 빠진 아마르는 날뛰지 않았고 대신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보았다.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할머니 나 빠졌어.어쩌지?"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아마르의 눈빛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읽으며 계속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한 오초 정도 지났을까.아마르는 알았다는 듯이 앞을 보더니 힘차게 뛰어서 뻘을 빠져나와 한달음에 승마장으로 향했다.

 

아마르는 할머니에게서 "아마르는 괜찮아.위험에 빠진 게 아니야.할머니도 거기로 가는 중이야."하는 메시지를 읽고 안심했다.그러자 움직여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 느린걸음으로 마방까지 돌아가기는 꽤 긴 시간이었다.걸어가면서 모처럼의 풀뜯기기가 해프닝으로 끝난 상황에 우스워하며 무엇보다 아마르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의견을 살폈고 존중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나와 아마르는 연결되어 있다.

 

(가스불 끄러 간다는 칸타)??? 칸타는 그 후로 아빠를 태우고 할머니를 태운 아마르와 외승을 나왔다가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었다.그때의 표정은 "내가 깜빡 잊고 약을 안 먹고 나왔나봐 증상이 또... 어떡해!" 뭐 이쯤 되보였다. 다음 날에 칸타는 아빠에게 단둘이만 외승나가자는 요청을 받았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행진하는 군인처럼 씩씩하게 앞발을 번쩍번쩍 들고 자발적으로 외승길에 올랐다.그 다음 번에 아마르,엘도라도와 함께 외승길에 올랐을 때 여장부처럼 선두에 서서 수말 둘을 이끌었다.

 

할방님의 칸타심리 해석은 - 내가 볼 땐 꿈보다 해몽이지만 - 아마르랑 같이 나왔을 때 자기가 보여준 행동이 아들 보기에 너무도 부끄러운 승용마 처신이라고 반성하고 굳은 결심으로 환골탈퇴 한 거라나? 원톱시스템으로 날아가던 지나가던 철새들이 보고서 " 쟤 며칠 전 그 말 아냐?" "그날은 정신 나갔던 것처럼 보이던데 오늘은 정신이 돌아왔나봐 아무튼..."

 

 

*시시콜콜 할망 요즘

 

지난 저녁에 퇴근하던 - 회사가 아니고 승마장 - 할방님이 비닐봉지 한꾸러미를 들고왔네요.안에는 흙묻은 투박한 고구마들이 있더군요.한눈에 마트에 파는 매끈한 고구마는 아니었죠.웬거냐고 묻자 원장 사모님이 우리 거라고 캐서 주셨다는 답변이 돌아왔네요.우리 고구마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구마 심은 기억은 없는데.할방님은 우리가 심은 게 맞기는 맞다네요.심은 후 즉시 고구마 존재를 잊었을 뿐.다음 날 두꺼운 냄비에 쪄낸 고구마 맛은 명품이었지요.기르느라 돌봐준 것도 없이 이리도 맛난 고구마를 먹다니 횡재한 기분이더군요.옛날 옷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발견한 기분? 살다 보면 가끔은 잊고 살았는데 문득 튀어나와 기쁨을 주는 일이 있지요.너무 집착하고 살 일은 아니라고 고구마를 쩝쩝 먹으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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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을 얻은 아마르는 시월의 축복이 내리비추자 경계를 허물고 나아갔다.> 시월의 아이콘 늙은 호박 꾸욱 누르면 가을의 창이 두둥 나타납니다.함께 거니시렵니까?

 

앗! 쟤네들은 마티와 레이가 아닌가! 어느 날 보니 2인조 작은 말이 그곳에 있었다.녀석들은 어엿한 클럽의 구성원으로서 최근 직무를 부여받은 모양이다.정문 바로 옆에 지은 패덕으로 출근하여 방문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사하고 놀아주는 일을 하고서 해가 저물면 퇴근한다.하지만 직무를 책임지기에는 어딘가 어리바리해보이고 어줍기 짝이없다.그러는 모습 자체가 귀여워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티 & 레이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녀요

 

달력을 보니 시월도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이 적어서 하루하루가 아깝기만 하다.올여름은 얼마나 길었던가.푹푹 찌는 무더위에 오래도록 시달리며 견뎌야 했기에 가을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절한 가슴으로 가을공기를 마셔본다.

 

일 년에 반은 오월이고 반은 시월이었으면 좋겠다.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점점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계절은 혹한기와 혹서기의 이분법으로 명백하게 갈라서서 나아간다.승마를 한 이래로 계절은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환경이 변해가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승용마의 생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깥이 너무도 춥거나 더우므로 승용마들이 실내에서만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지내는 클럽에서도 틈나는 대로 방목을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말을 내놓지 못하는 날이 많다.일 년 중에 말이 밖에서 자연과 접할 수 있는 날이 꼭 우리가 겪는 달력의 빨간 날 공휴일 정도로 귀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말들의 삶은 영화속에서 여러 시대에 등장한다.전쟁시기를 살았던 말이 가장 불행했던 것 같고 ,근대에 와서 물류유통과 교통수단의 소임을 해야 할 때도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안전하고 편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하지만 자연으로부터 거의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의 신세도 그리 좋다고만 볼 수는 없어 보인다.

 

나보다도 남편이 자연과 격리되어 생활하는 아이들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다. 혹시나 하고서 기승운동 하다가 바깥으로 말의 발길을 이끌었을 때 정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에 우려도 됐다.이러다간 정말이지 애완동물처럼 좁은 영역 안에서만 안주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실내와 바깥마장을 오가며 운동하는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긴장도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 안일한 패턴 안에서 머무르는 생활은 나른하게 늘어진 모습으로 운동하게 만들었다.그런 말을 추스리느라 말 위에 있는 사람도 힘들다.시월이 되면서 남편은 틈틈이 아이들 풀도 뜯기고 외승도 다닌다.

 

클럽에서 논으로 넘어가려면 낙타등처럼 생긴 둔덕을 넘어가야 한다.칸타와 엘도는 자신감이 넘쳐 와락 넘어가다가 걸려넘어지는 포즈를 취했고 아마르는 한참을 살펴보고 연구한 끝에 신중한 동작으로 넘어갔다.아마르가 참 침착하다는 것을 느꼈다.생활하던 공간을 떠나 자연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가 말똥 무더기와 쓰레기소각장 사이에 난 좁은 길목이어서 낭만은 하나도 없지만 가장 세속적인 가운데서 마법이 이루어지곤 한다.신데렐라의 화려한 마차도 호박이었다.

 

마방에 있을 때와 풀밭에 나온 아마르 사이에는 머나먼 거리가 있다.마방의 아마르가 꽃병에 곱게 꽂아서 매일 물갈아주며 관리하는 꽃이어서 살아는 있지만 아주 조금씩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상태라면 풀밭에선 반대로 점점 싱싱해진다.

 

아마르가 뜯는 풀은 그냥 풀이 아니다.벼다.

 

구월부터 추수를 하자 익은 벼들은 밑동이 잘려나갔다.그러고도 태양빛의 따사로움이 상처난 자리에 닿자 푸르른 줄기가 솟아올랐다.

 

땅이 꾸덕꾸덕하게 변해가는 논에는 누런빛과 풀빛이 섞여있다.죽음과 삶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현장으로 이보다 생생한 예가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논은 사실 비어있지 않고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다.사람이 없을 때는 새떼나 노루가 머물기도 한다.새로 돋아난 벼줄기와 똑같은 색의 청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말발굽에 밟힐라 멀리 달아나거라 발로 휘휘 쫒아내본다.

 

아마르가 몇 걸음을 떼자 커피콩 만한 벌레들이 화다닥 튀어오르더니 뿔뿔히 흩어진다.재난영화에서 흔히 보던 그 장면이다.외계에서 흘러든 거대한 생명체 괴물이 도시에 나타나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마구 돌아다니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 뒤엉켜 도망치기 바쁘다.바로 그 장면이 아마르 괴물과 벌레 시민들 버전으로 논에서 연출된 것이다.

 

벌레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를 생각하니 순간 가엾은 마음이 웃음을 갈무리해준다. 꼬리의 흔들림...

 

가을이 되자 말의 꼬리는 한순간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들판에 나온 말꼬리는 흔들다 못해 어느 순간 바람이 되어 버렸다.

 

말꼬리는 바람으로 녹아들어버렸고...

 

꼬리가 바람이 되어버리자 서서히 마법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그 시간에 들면 내면의 그림자가 존재를 나타낸다.

 

어떤 존재에게나 의식의 가장 밑바닥 심연에는 모든 색이 녹아버린 어두움이 존재하는데 어두움은 늘 봉인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지만 마법의 시간에는 존재를 드러낸다.해가 저물녘에 만나는 존재의 그림자에서 내면의 어두움이란 이미지를 대면하는 것 같다.

 

산등성이가 되어버린 아마르의 잔등.평소 나를 태우던 아마르의 잔등이 뒷산과 너무 닮았다.몽골의 산은 몽골의 말 등선과 닮았던데 신기한 일이다.

 

바람과 산이 되고 풀이 되고 들판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빛이 되어버린 아마르는 이 순간 자유롭다.

 

클럽에서 살아가는 승용마라는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 엎드린 아마르에게 논은 경작지라는 경계를 허물고 초원이 되어주었다.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하늘을 보면서 내 안에서 나의 일부로 살아가는 속박을 떠올려 보았다.아마르와 함께 흙을 밟고 서서 마른풀내음을 맡으니 좋다.

 

계절의 경계를 뛰어넘은 민들레도 보인다.

 

곧 찬서리가 하얗게 내릴 텐데 싱싱하게 피어난 풀에게서도 경계를 넘어선 의지와 힘을 엿본다.

 

마사와 외부를 차단하는 경계선 쇠사슬이다.

 

경계선은 어디에나 있다.가장 강한 경계선은 내면에 있을 것이다.내면의 경계를 넘어 더 환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라고 시월의 따사로운 기운이 어루만지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아마르 옆방 친구가 하염없이 시월의 들판을 바라본다.

 

 

 

 

*시시콜콜 할망 요즘~

 

집에 있던 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말이 나오길래 뭔가 봤더니 <레이싱 스트라이프>인가 하는 영화였어요.경주마가 되고픈 얼룩말 얘긴데 황당하기도 하죠.영화에서는 말들이 여럿 등장해서 사람처럼 대사도 하고 줄거리를 이끌어가더군요.한데 말하는 말들 개개가 흔히 보고 내가 알고지내는 말과 너무나 닮아서 꼭 그 친구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 같아 신기하더라구요.아무튼 지금 생각하니 주인공 얼룩말도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경계를 허무는데 성공했고 그 일로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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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망아지가 태어났을 때 새 생명을 부르는 이름은 너무도 쉽게 정해졌다.친구 라라가 어미 칸타에게서 난 아들이니 '칸돌'인데 부르기 쉽고 친근감 있게 '깐돌'이라 부르면 된다 해서 그 순간부터 그대로 쭈욱 '깐돌'이라 부르게 됐다.만일 칸타가 딸을 낳았으면 '깐순'이가 되었을 것이다.라라가 깐돌이라는 이름을 입술에서 뱉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원래 망아지의 이름이 깐돌이었고 저 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이 세상으로 건너오는 입구여서 그곳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존재의 이름을 라라가 대신 알려준 것만 같았다.

 

깐돌이는 망아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장난끼로 똘똘 뭉쳐서 눈알을 데굴데굴하고 혓바닥은 옆으로 낼름 빼물고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까부는 아이였던 것이다.깐돌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이름을 주고 싶었다.두 살이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까불고 장난치는 모습은 여전해서 도저히 깐돌이 말고 다른 이름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깐돌이가 세 살이 되고,네 살이 넘어갈 때도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깐돌이란 이름이 다른 이름이 오는 것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는 듯했다.우리 부부가 틈만 나면 깐돌이의 새 이름을 쥐어짜도 나오지 않았다.궁여지책으로 '깐'이 붙으면 더 까불 것만 같고 그러다 다치기나 할 것 같고 승용마의 본분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깐'을 빼고 '돌이'라고만 부른지도 오래 되었다.그러다보니 편하기도 해서 돌이란 이름은 그대로 굳어져서 한평생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돌이는 다섯 살이 될 무렵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몸도 어른말의 골격에서 비롯되는 자태를 갖추었고 무엇보다 얼굴에서 장난기가 증발해버렸다.오죽하면 '어덜트 키드'라고도 했을까.장안을 하느라 가만히 세워두어도 나대지도 않고 의젓,차분하기만 하니 도대체 우리가 아는 돌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서운할 지경이었다.까불던 아이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말이 섰다.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처음에 익숙하지 않던 돌이 모습에 차차 적응이 되고 보니 옛날 돌이는 지금 돌이의 모습으로 서기 위하여 잠시 입었던 옷이었고 때가 되어 낡은 옷을 벗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여름 밖에서는 폭염에 달구어지는 날씨였는데 아랑곳없이 방에 틀어박혀 출판원고와 씨름하던 나는 틈틈이 시집을 읽었더랬다.그 옛날부터 좋아하던 시인인 류시화의 새로운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다.시인이 15년 만에 낸 시집이라 시어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깃든 현악기를 퉁기는 것 같았다.틈나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오는 시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시어 하나가 툭 던져졌다.나를 데려가세요 라는 듯이.그 시어는 '아마르'였다.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옛 수첩에는 아직>이라는 시가 실렸는데 '아마르'는 거기에서 나와 나에게 전달되었다.그 순간의 기분은 저 우주에서 누군가 '이제 그 말에게 새 이름을 줄 때가 되었어'하고는 시인의 입으로 뱉어져 나의 가슴에 꽂힌 방식으로 온 것같았다.나는 애마의 이름을 받았다.

 

'아마르'는 시인이 밟았던 땅의 현지 언어로 '영원'이라는 말이라고 한다.왜 '영원'이라는 단어가 나의 영혼을 흔들었는가?

다섯 살이 된 돌이를 타면서부터 녀석의 잔등에서 어떤 영속성을 느꼈기 때문이다.어느 순간부터 나를 온전히 제 등짝에 받아주는 말에게서 제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고 있다는 편안함이 밀려왔다.그 편안함 속에서 나를 태운 말 움직임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일일이 다 느껴볼 수 있었는데 그 느낌과 기분은 익숙한 것이었다.오래 전에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하던 애마가 태워줄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그러자 가슴에서 감동이 밀려들었다.애마는 떠나고 나는 남아서 슬픔에 잠겼었지만 함께 하던 그때에 나누었던 사랑은 시간의 유한함을 넘어서 다시 또다른 유한함 안으로 찾아들어 이어지는구나.

 

돌이의 등에서 그 옛날 바람이와 나누었던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세월은 돌고돌아 소중했던 것들을 영원히 이어준다고 깨닫게 되었다. 이 생은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 아닌가.이러한 내면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그 이름 '아마르'가 나에게 왔다.

 

'아마르'와 나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에 영원을 타고 흐르는 소중한 것을 이어가고자 한다.

'돌이'가 '아마르'가 된 사연을 늘어놓다보니 장황했다.본디 소중한 것은 언어로 나열해서 표현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덧붙이는 말

 

# 이제부터는 자판으로 '깐돌이'치다가 'ㄲ'이 삑사리 나서 '간돌이'가 되는 통에 고치느라 고생할 일이 없겠죠? 하하~

 

# 지금부터 '깐돌이' 혹은 '돌이'라 부르시는 분 벌금 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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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 놀고 싶어요 잉잉~

 

나비넥타이가 어울릴 것 같은 꼬마신사 마티와

 

예쁜 여자아이 같지만 사실 남자아이인 레이는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

 

아이들의 바깥세상이라야 승마클럽이 다다.

 

아이들 마방은 널찍하고 쾌적하지만 아이들인지라 놀이터에서 놀아야 한다. 레이와 마티의 놀이터는 어디인가?

 

우리의 놀이터는 어디야?

 

레이의 마방굴레에 로프를 매서 붙들고 나가면 녀석이 앞장서서 종종걸음으로 달려나간다.그러면 마티가 자동으로 따라나온다.얼마나 온순하게 나오는지 큰말이나 덩치 큰 개처럼 힘자랑하지 않아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성격도 순해서 놀라서 튀거나 갑자기 뛰거나 하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다.이 아이들은 작은 말의 탈을 뒤집어쓴 양이 틀림없다.

 

레이와 마티를 보다가 칸타와 돌이를 보면 눈 씻고 봐도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뇌파의 수치가 얼마였든지 수치가 급강하해서 낮아진다.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긴장이 완화되며 긍정적 감정이 찾아와 웃음을 짓고 기분이 좋아진다.내가 겪은 증상과 다른 사람들을 수일간 관찰하니 그랬다.

 

특히 아이들이 보았을 때 큰말은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두려움도 느끼는데 아이들 키보다 작은 미니어처에 대해서는 친근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예쁜 여자어린이 둘이서 부모님과 함께 미니어처를 만나 노는 모습을 잠깐 보았다.소녀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보는 나조차 유쾌했다.

 

마티와 레이의 전용놀이터 출입문.

 

레이와 마티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 친밀함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들과 잘 놀아줬다.너무 들이대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놀아주었다.

 

말과 사람이 사교하는 모습을 보니 말은 꼭 타야만 즐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고 함께 노는 즐거움도 선사하는 존재구나 싶어진다.

 

지나가던 철새도 말과 사람이 어울려 노는 정겨운 풍경을 보고가는 것 같다.

 

마티와 레이가 풀밭에 있으니 더욱 활기차고 생기있어 보인다.

 

레이와 마티의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개천절에 뚝딱뚝딱 공사에 들어갔다.마침 공휴일이라 장정도 많고 회원도 대부분 있었다.그중엔 건설 전문가도 계셨고 ,엄마도 여럿 계셨다.또 힘쓰는 일에 빠지지 않는 일꾼 등 모두가 한마음으로 시작한 공사는 다들 한마디씩 하느라 요란 시끌벅적했다.그 과정에서 미니어처 망아지에게 맞는 공정인지 확인절차가 필요했다.

 

레이와 마티는 울타리나 출입문을 그렇게 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몸소 시범을 보여서 다들 한바탕 웃다가 드디어 맞춤 울타리와 출입문도 완성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막아서 놀이터를 만든 것이다.말하자면 차없는 거리 대학로처럼 용도변경을 한거다.가운뎃길 양옆으로는 화단이 있고 자연스럽게 풀이 자라고 있어 그곳을 거니는 레이와 마티가 동화속 어느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말은 풀밭에 있어야 가장 말답다.

 

아이들 놀이터 만드는 통에 사람들의 통행이 좀 번거로워졌지만 예쁘고 작은 생명을 보다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빛났던 하루였다.

 

풀밭에서 무심하게 풀뜯는 걸어다니는 말 인형을 보면서 세상사 걱정근심이 봄눈 녹듯 사라지니 그 순간엔 머릿속도 개운하고 마음도 훨훨 가볍다.

 

레이의 뒷태.어쩜 엉덩이에 동그란 무늬가 있는 것인지 ㅋㅋ

 

망아지가 하나라면 쓸쓸해보이고 어미의 부재가 안쓰럽게도 느껴질 텐데 둘이라서 안정적이다.

 

마방에 돌아갈 시간이다.

 

실 레이가 가면 바늘 마티는 무조건 따라가요~

 

방에 돌아오니 또 당근도 주네

 

우리 돌이도 앙증맞게 예쁠 때가 있었지.

 

해는 들판 너머로 사라지고 오늘도 말이 있어 행복했던 하루가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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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에서 살아가는 말 무리가 있는 어느 곳이나 끙끙이 동호회가 있을 것이다.끙끙이는 말의 악벽 중 하나이지만 다른 악벽은 동호회를 꾸릴 정도까지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우리 아이들이 사는 거처에도 회원이 넷인 끙끙이동호회가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칸타와 돌이 모두 가입했다.

 

돌이는 열성회원이고 칸타는 가입과 탈퇴를 번갈아가면서 하기에 조직충성도가 매우 낮은 불량회원이다.

 

한강 끙긍이동호회 회장님이신 장군이다.장군이는 이빨을 걸지 못하도록 머리 내미는 공간을 막아버리자 밥그릇을 물고서 끙끙이를 했다.하루 종일 얼마나 심취했는지 바라보면 내가 아는 장군이는 온데간데 없고 넋이 나가버린 좀비가 무의미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그 심취한 경지에서 장군이가 회장감으로 충분했다.돌이는 행위를 할 때는 세게 하지만 금세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일을 보곤 했다.(건초 뒤적질 같은 것)

 

클럽에 조이라는 암말도 열성회원인데 역시 밥그릇을 물고 하는데 밥을 먹는 와중에도 반찬 집어먹듯 끙끙이를 해대니 중증이다.(사진은 3년 전 칸타)

 

그러던 어느 날 동호회에 날벼락이 찾아왔다.모든 회원에게 끙끙이방지끈이 채워진 것이다.이전엔 칸타와 돌이만 금속으로 된(윗 사진)목걸이를 찼었다.새로운 끙끙이방지끈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폼이 났는데 칸타,돌이,회장님이 착용했고 조이는 돌이가 쓰던 금속목걸이를 했다.그랬더니 동호회활동이 위축되다가 활동은 자취를 감춘 듯 했다.회장님은 하룻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고,조이도 멀쩡한 말이 되었다.우리 아이들도 뭘 하려고 하면 딱딱한 것이 목울대 근처를 찌르니 놀라서 좀 삼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나는 '됐구나 됐어! 이거야말로 인간의지의 승리구 말구! 푸하하하 - '하며 쾌재를 불렀다.그 후론 끙끙이조직이 일망타진 와해됐다며 좋아라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말과 함께 살다보니 촉이 예민해진 나의 레이다에 자꾸 조짐이 걸려들었다.아무래도 조직이 와해되자 지하로 잠입한 극렬세력 중에서 혁명군이 태동한 것 같았다.비밀요원에게 임무를 주어 사태를 파악하니 (사실은 관리인이나 코치가 자발적으로 신고함)혁명군의 핵심은 우리 돌이였다.

 

돌이는 처음 제 목에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자 "이까짓게 다 뭐야!' 하고 보란듯이 우렁찬 베이스로 끄응~ 하길래 끈을 바짝 조였더니 그 행동을 중지했다.사태가 그 정도가 되자 무력화된 동호회의 주력세력은 밤마다 회합을 하고 조직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숱한 논의를 거쳤는지 모르겠다.그 결과 조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기로 결사했고 그 핵심에 돌이가 가담하고야 말았다.

 

돌이가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끙끙이 방지대 색깔이 하필 붉음) 깃발을 높이 들고서(파리를 쫒느라 꼬랑지를 치켜듬) "동지들이여! 나를 따르라! 우리는 억압과 핍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이히히힝~ 하고 당근 달라 조름)라고 외친다.돌이가 혁명가라면 칸타는 혁명가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다.

 

요즘 돌이는 끈을 너무 졸라 귀 아래 뼈가 툭 튀어나온 부분이 까졌는데도 하고싶을 때는 언제든 끄응~ 한다.물론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다고 내가 못할 줄 알고?'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오늘날 돌이가 혁명가가 되기까지는 승용마가 사람과 살기 위해 마방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생존조건이 토대가 되었다.승용마는 평균 하루 20시간 이상을 좁은 마방생활을 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40시간 이상을 마방에서 지내야 한다.말은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는 존재인지라 대부분 그 생활 안에 머무른다.그러나 일부 말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견디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악벽을 자기 안에 생성시키는 모양이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악벽이 학습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말 내부에 존재하는 요인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우리 아이들과 아무리 오래 지낸 태풍이도 끙끙이를 배우지는 않았고 함께 지내는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악벽이 몹쓸 행동이지만 말 입장에서는 우리를 마방에만 가두어두었으니 이럴 밖에요 하는 항거의 몸짓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악벽마를 인간 세계에서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혁병가 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짜내어 말의 끙끙이를 방지해도 또 하고야 마는 말이 있다는 현실은 문제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존재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우리 돌이가 혁명가에서 평범한 말로 귀의할 수 있도록 넓지는 않아도 아담한 풀밭을 마련해주는 일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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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와 운동을 할 때 어느 말과 함께 운동하게 될까가 나의 관심사다.그 말이 누구냐에 따라서 운동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돌이 역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장 안으로 들어갈 때 누가 나와있나 꽤 유심히 살핀다.나는 그러는 돌이 표정을 살핀다.

 

돌이의 무료한 일상 중에 오아시스처럼 마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신선한 활력소가 된다.

 

칸타보다도 돌이를 더욱 꾸준히 타던 중에 돌이가 뜨거운 심장을 지닌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 일이 벌어졌다.이 글은 5세 수말 돌이의 심장에 관한 보고서라고 명명해도 되리라.

 

지난 여름 한가한 평일 낮시간에 우연히 코치가 암말 안개 운동시키느라 타는 동안 함께 운동하게 되었다.운동을 시작하자 돌이의 컨디션이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느낌에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돌이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젊은 수말 그자체였다.날이 더워서 구보를 많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돌이는 여차하면 핑계를 대고 스스로 구보 발진을 하기도 했다.이를테면 내가 숨을 크게 쉬었는데 "응 구보가라고 사인준거지?" 하고서 뛰고 자세를 고치느라 종아리를 돌이 배에 갖다댔더니 "응 구보가라고? 알았어 좋아!" 이러면서 또 뛰었다.속으로 '얘가 왜 이러나? 이제 다섯 살도 되었으니 철들어서 운동을 열심히 하려는 게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돌이가 안개와 함께 운동할 때면 피가 끓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말 안개는 클럽말인데 재작년인가 돌이 옆방에서 한두달 지내다가 클럽 마방으로 옮겨가 평소에는 운동할 때나 어쩌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안개는 아담하고 귀염성이 있어서 이모나 이모할머니들이 모여서 애기할 때 손주며느리감으로 손꼽는 암말이었다.돌이도 보는 눈이 있는지 유독 안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가끔 방목하러 내보낼 때 할머니가 방심하면 이때다 하고 클럽마방으로 튄 일이 종종 있었는데 안개를 보러 간 건지도 모른다.

돌이가 5세가 되기 전에는 암말보다는 수말에 더 관심이 많았다.그때는 장난꾸러기의 화신이었는데 암말들은 거의 장난에 관한 유전자는 지니지 않은 듯 놀 줄을 몰라서 심심하기만 했다.수말은 장난치자고 다가갔다가 시비붙는 일로 끝나기도 다반사였지만 수말은 놀이상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삼고 싶어했던 거다.

욘석이 5세가 되더니 여자친구를 밝힌단 말이지 싶어서 웃음이 킥킥 나오기도 했다.아무렴 할머니는 손주 편이니 녀석을 도와주기로 했다.아무 일 없다가도 혹시 안개가 운동하러 나오는 낌새가 보이면 얼른 돌이도 안장매서 나갈 마음의 태세를 갖췄지만 내가 하루종일 승마장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안개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한참 운동하고 있는데 반가운 안개가 마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괜히 기쁜 마음이 들어서 안개가 회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 돌이를 탄 채 안개에게 다가갔다.그랬더니 돌이가 콧등을 안개 콧등에 갖다대고서 언제까지라도 그러겠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안개도 돌이가 싫었으면 "아이 싫어!" 하고 신경질을 팽 하고 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다만 돌이 등에서 바라본 안개 표정은 '이런 곳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하는 난처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말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인사의 상황을 구별하는 모양이다.우리 돌이 상태는 어떤가 살펴보았다.옆으로 보니 돌이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돌이는 심장이 크게 뛰면 콧구멍에 나타난다.놀람,공포,기쁨이 모두 콧구멍 벌렁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다리로 돌이 양옆구리를 느껴보니 복부도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의 생각은 '돌이가 심장을 가졌다'라는 한문장 아이콘으로 떠올랐다.흔히 사랑에 빠지면 내 가슴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사랑의 대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한다.무수한 유행가의 사랑노래에서 심장과 가슴이 뛰는 일을 가사에 담고 있다. 나는 어떤가.이십 대를 지나오자 내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살았는데 말을 만나면서 심장이 아직도 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 후로 지금껏 말을 만나러 가면 어김없이 심장이 약한 정도로 뛰는 상태인 두근거림을 경험한다.그러다 요근래 말 손주녀석의 심장뛰는 몸에 올라앉아 운동하니 참 신기하게도 내몸이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상태처럼 느껴진다.

 

운동이 끝나고 돌이를 목욕시켜서 몸을 말리는 칸으로 가니 이미 목욕을 마친 안개가 있었다.멋진 할머니의 본분에 충실한 나는 둘이서 오붓한 데이트를 하라고 건초를 한아름 가져다 둘에게 주었다.약 1시간 정도는 청춘남녀가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나중에 돌이를 마방으로 데려가려고 그 자리를 떠나려니 돌이가 먼저 또다시 콧등뽀뽀를 안개에게 살짝 하고서 "다음에 만나'하는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났다.

 

돌이 여자친구 중에는 수아도 있다.수아랑은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5세 생일에 결혼식도 올렸다.(궁금한 분은 5세 생일 글을 찾아보면 된다)그런데 돌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수아랑 운동할 때는 평소처럼 느리적 슬리퍼 끌고서 동네 편의점 가는 분위기로 일관했고 도중에 수아가 다가와 먼저 콧등뽀뽀를 했지만 5초도 안되어 돌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전에 위너스라는 클럽에 온지 얼마 안되는 수말과 함께 운동한 일이 있다.위너스는 안개 맞은편 마방에서 사는데 돌이가 무슨 일인지 몇 번 무작정 위너스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린 일이 있다.그 전에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보면 단지 안개 맞은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시샘을 느껴 미리 딴마음 먹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위너스랑 운동을 시작하니 활발했다.주로 안쪽으로 돌려고 하면서 계속 위너스에게 신경쓴다는 것이 느껴졌다.아무래도 저 녀석을 혼쭐내줘야 하는데 거슬린단 말야 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나야 돌이가 활발하게 움직이니 그저 재미있게 운동했을 뿐이고 나중에 목욕하고 말리고 헤어질 때 돌이와 위너스는 신사적인 악수를 했다.이말은 통역을 한 거고 다시 원어로 얘기하자면 돌이는 위너스에게 콧등인사를 하며 상대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어쩌다가는 텅빈 마장에서 나와있는 말도 하나 없고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 혼자 돌이와 운동을 할 때가 있다.그럴 때 돌이 상태는 흥이 하나도 안 나서 발바닥에 본드칠을 하고 겨우 걸음이 떨어지는 말처럼 나아가는데 이럴 때 심장은 어디로 잠시 출장간 것처럼 보인다.그래도 할머니를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니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돌이가 심장이 뛰는 것을 앞으로도 오래 느껴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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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개월 된 미니어처 망아지가 왔다.다 크더라도 겨우 10센티 정도 키가 자랄 뿐이란다.살아있는 인형처럼 귀여운 자태에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다.

 

매료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말들도 사람 못지 않았다.망아지 마방 앞에 온 말마다 놀라고 신기해서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칸타는 보더니 놀라서 순간 숨을 멈추고 한동안 동상이 되어버렸다.그러는 동안 표정을 보니 '아니 이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어리기도 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그리곤 망아지와 콧등을 맞대고 다정한 인사를 나눴다.

 

돌이는 보더니 낯선 물체를 발견한 듯이 '허걱'놀라며 몸을 뒤로 움찔했다.좀 뻣뻣하게 긴장도 했는데 에상치못한 존재에 할말을 잃은 듯 보였다.

 

돌이 망아지 시절을 떠올리면 나이많은 말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우연히 옆방에 망아지가 들어와 하루종일 들여다보게 된 말 밍크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망아지를 바라보았다.그러더니 수삼일 지나자 얼굴엔 무료함이 가시고 화색이 돌았다.망아지가 나이든 말에게 어떤 기운을 불어넣은 게 틀림없다.

 

흰색이 많은 망아지 이름은 '레이'고,브라운색 망아지는 '마티'다.짱구 이마,솜털처럼 폴폴 날리는 갈기와 꼬리,조개 만한 발굽,볼록한 배가 망아지의 공통분모인가보다.다만 성격은 아주 다르다.레이는 호기심천국에다가 사람을 무조건 따른다.마티는 경게심을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그래도 둘 다 얼굴 만지는 일을 완전히 허락해서 얼굴 만져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티와 레이는 앞으로 승마장에 찾아오는 어린이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지인들이 와서 망아지 구경을 하다가 도저히 구경만 할 수 없어 슬그머니 마방으로 들어가더니 안고 쓰다듬고 난리가 났다.나이먹은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하니 말은 꼭 타야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갖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머무는 병원 근처에도 이런 망아지가 있어서 바라볼 수 있다면 병이 금방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카메라를 눌러대며 접근하자 며칠 안면을 튼 사이라고 마티가 그닥 경계는 하지 않고 편안하게 바라보았다.

 

욘석들도 당근을 잘 먹는다. 첫날 마방 전체에 당근을 다 돌리고 돌아서니 아가들이 빤히 쳐다보았다."우리는 왜 안 주는 거예요?" 아차 키가 작아 안 보여서 깜빡 잊었다.좀 실망한 기색으로 천진난만한 눈을 깜박거려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내일은 꼭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도 그냥 친구라 여기고 접근하는 레이가 나에게 뭐라뭐라 얘길 잔뜩 했다.

 

아가야! 지금은 네가 뭐라 하는지 잘 못알아듣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렴.좋은 친구가 되어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란다.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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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9.1 ?⑤룄. ?앹뼇 073.jpg칸타와 돌이가 기웃거리는 곳은 갤러리석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구내매점(?)이다.이곳에서 엄마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당근을 먹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그 전에 대형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다가 도마에 놓고 썰때에 나는 타다당~ 타다당` 소리가 울리면 기대가 만땅인 표정을 하고서 군침을 삼키며 바라본다.

 

13. 9.1 ?⑤룄. ?앹뼇 074.jpg어떤 때는 그냥 서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경청하기도 한다.아이들이 잘 들어두었다가 한밤중에 마방에서 "낮에 사람들이 하는 소릴 들었는데 말이지~"하고서 전달하는 상상이 떠오른다.아무튼 말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대단히 깊은 관심을 보인다.

 

13. 9.1 ?⑤룄. ?앹뼇 077.jpg돌이는 문고리가 고장나서 고정되지 않은 문을 입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취미생활도 종종 즐긴다.(사진은 2013년으로 정정합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1.jpg한낮이라 마방에는 사람이 나뿐이고 말들은 조용하다.그 와중에 돌이만이 할머니가 뭐하나 궁금해서 얼굴을 쏙 내밀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4.jpg요즘 돌이 별명이 <애늙은이> <어덜트 키드>이런 종류다.5세가 된 후로 얼굴에 그득했던 장난기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여느 말처럼 포카페이스가 표정의 기본형이다.벌써 이러면 10세 정도엔 무슨 표정을 하려고 그러나.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3.jpg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5.jpg의자와 함께 같은 포즈를 취한 깜주 양.

 

13. 9.1 ?⑤룄. ?앹뼇 007.jpg엘도라도는 표정이 환해져서 명랑,유쾌한 모드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별로 해준 것도 없고 그닥 재미있을 일도 없는데 그저 말 동료랑 함께 있고 사람이 드나들면서 이름 불러주고 쳐다봐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모양이다.

 

말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아이마다 다 다른 개성이 있어서 거기서 비롯되는 특유의 웃음거리가 있다.혼자 웃기에는 좀 아까워서 잠깐 소개해보려고 한다.

 

돌이는 참 맛나게 먹는다.칸타보다는 못하지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며 다른 말보다 2배속으로 빨리 우물거리며 먹어치운다.가끔 품질이 떨어지는 알팔파나 티모시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 입맛이 까다로운 말은 "이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기가 막혀서 원.내 꿂어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만 쩝!"이런다.하지만 돌이는 건초의 품질 따위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는다.그저 입안으로 들어가 씹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것 같다.그러다 보니 돌이가 먹는 모습은 어르신들이 보았을 때 아주 탐스럽게 먹어서 보기에 흐뭇한 모양새다.여기까지는 좋았다.먹는 일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좀 오버하는 경우가 생겼다.이 지점이 돌이만의 푼수짓이 나타나는 곳이다.마방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갈 때 돌이는 머리를 바로 옆방 밥그릇에 쑥 디밀어서 조사를 한다.다음엔 복도에 떨어진 몇 안되는 건초오라기를 다 주워먹고 차례로 지나가는 밥그릇도 다 조사를 해야만 한다.때로는 마방에서 재갈 물고 굴레 쓰고서 나오는데 그 차림새로 밥그릇 조사하는 모양새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하루는 그 모양새로 옆방 브릿지 밥그릇에 머리를 쑥 밀어넣고 한참을 있으니 브릿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돌이에게 내가 콩이며 보리 삶은 것을 줄 때에 돌이가 쩌업쩌ㅓㅂ~ 하며 너무도 맛나게 먹으니 브릿지가 부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의아한 표정마저 짓는 것 같았다.브릿지는 마장마술 기능을 보유한 말이므로 나름대로 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쭉 살아왔을 것이다.그런데 옆방의 말이 너무도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으므로 쳐다보다가 혹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려나.'얘는 뭔데 이렇게 대접을 받아?이 아이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게 분명해.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신통방통한 기능을 할 줄 아는 아이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지.암~'

나의 상상이기는 하지만 돌이가 기능은 커녕 여태 변변한 선생님조차 만나본 적 없는 오리지날 홈스쿨 어린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브릿지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랄 것 같다.

 

엘도라도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의젓하다.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 말고는 없다.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가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일 때가 많다.가장 큰 개성은 칸타바라기이다.칸타가 마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간헐적으로 길게 구슬픈 울음을 뽑는다.누가 들어도 간절하고 애닯은 곡조이다.칸타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기뻐서 꺽임과 떨림이 많은 소리를 질러댄다.한 석 달 가까이 엘도라도가 뽑아내는 가락을 감상하다보니 그 소리가 여느 말처럼 단조롭지 않고 애간장이 끓어서 판소리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점점 받게 되었다.판소리란 인간의 희노애락이 녹아들어가고  한을 승화시킨 정서가 아닌가. 춘향이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토해내는 '쑥대머리'도 가슴을 할퀴며 지나가기도 한다.엘도라도가 말 판소리 명창이다.궁금하다면 언제고 오셔서 감상해보시라.

말 판소리 명창 노릇 외에 엘도라도는 마방에서 부대서비스로 '알리미 서비스'도 한다.누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길게 울음을 뽑으며 환영하는데 "태풍이 들어옵니다~" "돌이 들어옵니다"이런 소리로 들린다.엘도라도가 알리미서비스를 자청한 데에는 오랜 세월 종족과 격리되어 고독하게 살아왔던 후유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 외에 엘도라도는 점잖지 못하게도 게걸스럽게 먹는다.삶은 콩이나 수박 등 물기가 줄줄 흐르는 간식을 주었을 때 사람이 후루룩쩝쩝 하고 요란하게 국수를 먹는 것처럼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모른다.온 건물에 울려퍼지는 엘도라도의 먹는 소리에 그만 내가 민망해질 정도다.그럴 때는 털털한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칸타는 우아하고 새침떠는 암말이어서 그닥 푼수짓은 하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거리가 멀지않을까 오해하기 딱 좋다.하지만 칸타도 그런 푼수짓 하지 않으면 너무 정 떨어지지 않을까요? 항의하며 적극적으로 푼수짓 대열에 동참하려는 듯이 보유한 부분이 있다.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체면과 예의를 벗어던지고 곡물사료수레를 찾아가 허겁지겁 먹어지우는 행동이 대표적이다.고상한 공주님이 갑자기 식신으로 변해 양푼에 갖은 재료를 담아 비벼 온 얼굴에 묻히며 퍼먹는 분위기쯤 될 거라고 본다.

또 다른 푼수짓 하나는 뒹굴기 할 때 나타난다.일단 벌러덩 눕는다.그 순간 칸타는 말이 아니라 뒤집어진 거북이로 변신한다.배를 하늘로 향한 채 앞다리 둘을 하늘로 뻗쳐 위아래로 올렸다내렸다 하면서 모래에 등짝 비비는 쾌감을 즐긴다.이때 거북이 말고도 떠오르는 모습이 있는데 아이가 드러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떼쓰는 모양이다.거북이든 떼쓰는 아이든 품위유지와는 거리가 매우 먼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이 푼수짓 떠는 모습이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사람도 저마다 공개적으로 알리기 민망한 습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그런 모습은 자신과 가족 정도나 알고 있는 은밀한 부분일 터.이 은밀함으로 인하여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이 돈독해지기도 한다.말은 사적인 취향이라고 해서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는 않으니 그저 대놓고 웃다보면 가족의 일원으로서 말이란 사람에게 웃음을 많이 선사하는 존재로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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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의 돌이 (왼쪽)와 태풍이(오른쪽)

 

2012년 6월의 태풍이

 

2011년 8월 돌이(왼)와 태풍이(오)

 

2013년 9월 9일에 타지에 나갔던 태풍이가 7개월만에 돌아왔다.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태풍이가 클럽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운동장에 풀어놓고 트레일러에서 내리는 태풍이 환영을 대대적으로 하려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태풍이가 도착한 후였다.

운동장에 혼자 서있는 태풍이는 아직도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듯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예전에 지냈던 곳이긴 하지만 새 건물도 들어서고 나무도 심어놔서 낯설은 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태풍모친의 말을 들으니 태풍이는 이미 마방을 한바퀴 돌며 우리 아이들과도 인사를 했다고 한다.그때의 아이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게 됐다.

아직 해가 뜨겁기도 해서 태풍이를 실내마장으로 데려다놓고 칸타를 데리고 왔다.실내마장 출입문을 향해 걸어오는 칸타를 발견한 태풍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칸타가 실내마장 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다음에 펼쳐진 재회장면은 애틋하고 아름다웠다.태풍이와 칸타는 서로의 엉덩이에 얼굴을 기대고서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다.익숙했던 서로의 체취와 체온을 흠뻑 느끼며 그 옛날 그 느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을 것 같다.충분히 그러고나서야 둘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둘이 한방향으로 산책이라도 하듯이 반원을 그리며 나아갔다.7개월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재회의 축하순서는 당근파티였다.사람엄마 둘이서 당근을 푸짐하게 썰어서 갤러리석에 앉자 칸타와 태풍이가 다가왔다.둘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당근을 받아먹었다.평소 칸타와 돌이가 나란히 당근 받아먹을 때는 은근히 시샘하는 경쟁을 하면서 허겁지겁 받아먹는 분위기가 감도는데 태풍이와 칸타는 연인 사이라 그런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이 완벽한 분위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엘도라도의 애타는 절규가 건물 안에 메아리쳤다."오~ 나의 칸타 어디로 간 거니! 엘도에게 돌아와주오 어서~"

당근을 받아먹는 동안 태풍이 얼굴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첫눈에 보기에도 태풍이는 그간에 잘 지내왔음을 느끼게 했다.좀 더 오래 바라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띄었다.태풍이 얼굴에 그늘과 구김이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온데간데 없다는 사실이었다.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말의 얼굴에서 읽히는 세월의 더께가 남긴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동안스럽기조차 했다.얼핏 돌이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얼굴에 흉터자국이 많은 돌이가 더 늙은이 같다고 느껴졌다.태풍이의 회춘동안은  다 마주가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좋아진 모습으로 돌아온 태풍이 바라보는 일이 유쾌하고 한세상 함께 살다갈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지워주는 존재가 되어준다면 삶에서 향기가 나지 않겠나 얼굴에 미소를 거는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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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에 들자 신비롭고도 경건한 분위기가 대지를 감싼다.석양은 그냥 저물어가는 해라고 보기에는 충만하고도 고유한 빛깔이 강렬하다.

 

 

엘도라도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틈나는대로 선생님에게 주로 기초 마장마술 지도를 받으며 때로 기초 장애물도 배운다.

 

엘도라도를 처음 데려왔을 때 다 커버린 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입양한 심정이었다.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므로 엘도라도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엘도라도는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마주로서 신경쓰고 손갈 데 없이 적응을 잘해주었던 거다.그 태도는 "뭐든 시켜주시면 엘도는 열심히 해요."였다.처음엔 이 태도가 워낙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온 탓에 반대급부로 여럿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이곳 생활을 무조건 수용하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더 지내보니 여기에 더하여 타고난 낙천적 기질도 한몫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엘도가 이곳에 오기 전 혼자 황폐한 공간을 지키며 살았는데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한 걸 보면 내면의 어떤 강인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옛 거처에 찾아갔을 때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텅비어 을씨년스러운 폐양계사업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던 엘도는 한때 화려하고 사람으로 들끓었으나 쇠락하여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성에 어쩌다 혼자 남겨진 말처럼 보였다.

 

엘도의 마방 앞으로는 개 두어 마리가 그나마 벗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었다.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어도 찾아와주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운 제 종족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그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엘도가 처음엔 어떤 면에서 좀 신기했다. 예민함이나 모난 데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여태 어린말,예민한 말만 길러서 엘도가 더 둥글둥글해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어쟀거나 참으로 기특했다.훈련도 잘받고 한편으론 여러 기승자를 태우는 상황 역시 흔쾌히 잘 받아들였다.

 

자기에게 찾아오는 상황이 무엇이었든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에서 낙천주의자 기질이 드러났다.내가 청하지 않았어도 찾아오는 고운 손님,미운 손님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맞아들이는 맘씨좋은 주인장의 모습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엘도는 만학도이기도 하다.나이가 11살이 되어서야 기본 부조도 정식으로 배우고 기초장애물도 넘어보고 하니 그렇다.<승마교과서>보누스 출,제인 홀더니스 로댐 지음.에 보니 8살이 넘는 말을 노년기(Aged)라 용어풀이를 해놓았다.동의하기에는 좀 힘들지만 성숙의 정점을 찍고 지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엘도의 나이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해보다는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엘도가 훈련받는 것을 지켜보니 천지분간이 잘 안되고 뜨거운 혈기에 휘둘리는 어린말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그 모습을 보니 이제 5세가 넘어선 돌이에 대해서는 급하게 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역시 중년의 삶에 접어들어서 내 정체성이 중년에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요즘 엘도라도를 보면서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인생에서 뭘 이루었나 하는 생각도 멀리 내다버리는 심정이 된다.중년은 몸의 노화가 시작되는 생리적 시간표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창을 내 안에 마련한 거라고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창을 만드느라 청춘의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지금부터가 더 흥미진진한 삶이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쭈욱 살다가 아름다운 영상처럼 황혼기를 맞이하리라.엘도라도,칸타빌레,태풍이 10살이 넘은 말 아이들과 함께 보낼 앞으로의 세월이 기대된다.말이든 사람이든 중년을 찍고 살아내는 일은 무르익어가는 이치와 상통하니 말과 사람이 서로의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아주는 일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석양의 엘도라도...차암...멋지다!

 

 

 

 

 

* 위 사진들의 자막에 찍힌 년도는 카메라 설정오류입니다.2013년이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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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가 할머니는 뭐하는 건가 본다.

 

칸타도 마찬가지로 본다.내가 시야에 보이면 더욱 안심하고 편안하게 논다.

 

여름내내 아이들은 팬스 너머로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더 뜯어먹는 재미에 목을 있는 힘껏 길게 뻗었다.목과 등 근육 늘리기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돌이가 5세가 되고나서 어느 날 문득 칸타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몸통도 약간 더 굵어보인다.둘 중에 하나를 기승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한다.칸타를 타고 있는데 "오늘 칸타 안 타요?"묻는 식이다.반대의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텃밭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봄에 심었던 것들이 소임을 다했으므로 뽑아내고 대신 다른 것들을 심었다.우리는 상반기 농사성적이 낙제 수준이라 자진 낙오 하고서 늦여름부터는 밭을 가꾸지 않는다.농사를 하려면 자질과 근면함이 따라야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부부는 영 아니다.자체 평가는 이렇다."우리는 채집스타일이지 경작스타일이 아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새 건물은 미니마장이다.새 건물로 인하여 승마장 전체가 더 안정감 있고 아늑해 보인다.겨울에는 바람도 막아줄 것이다.

 

주변 들판의 색이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옮겨가는 중이다.인근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친 곳도 있다 한다.벼의 품종이나 심은 시기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화들짝 놀라는 심정이다.누군가 말하길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기질은 사계절이 뚜렷한데서 기인한다고 했다.돌아오는 절기에 맞춰 씨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애써 키운 작물이 서리와 찬바람에 상할 수 있으니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사느라 급한 기질이 되었다나.자연의 시간표라면 느림지향적이어야 마땅할 텐데 좀 아이러니하다.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의 분주함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그런 말도 생겼으리라.

 

논으로 둘러싸인 승마장으므로 지금부터 추수하는 때까지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승마할 수 있다.익어가며 물결치는 벼를 바라보고 향기를 들여마시는 말도 최고로 좋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한다.

 

 

류시화 제3시집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란 시가 있다.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로 시작하는 시인데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 등등 사물을 새롭게 보는 시어들이 나온다.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식으로 벼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내가 시인의 마음으로 아무리 마땅한 표현을 찾아보려 해도 영 떠오르지를 않는다.시인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어줍잖은 표현이나마 건져보자면 '벼는 황금빛깔로 포장하여 땅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 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하루하루 수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자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말 입으로 엄청나게 빨려들어간 것은 쌀알이 떨어져나간 볏짚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심은 당근이 벌써 잎이 무성하다.(물론 내가 심지는 않았다.)

 

당근은 '땅이 말에게 선사하는 주황색 선물'...

 

고추도 빨갛게 영글어간다.실내마장 옆으로 고추를 말리므로 우리 아이들도 고추 말리는 구경도 실컷하고 매운 내음도 곧잘 맡으며 생활한다.말 노는 옆에서 고추를 다듬는 풍경이 정겹고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풍경 속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보면서 '손과 입'이란 화두가 떠올랐다.날마다 아이들에게 내손에서 아이들 입으로 당근이며 사과며 커피며 나르는 일이 일상이라 손과 입의 접촉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한번은 손바닥에 따라준 커피를 낼름거리는 칸타에게 시샘을 느끼고 돌이도 열심히 내 손바닥을 핥았는데 하나도 따갑지도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손바닥만한 말 혀를 느끼면서 이 순간은 좋은 감정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입은 주고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일에서 돈독한 관계속으로 들어간다.과거에 나는 얼마나 손으로 말 입을 아프게 하였을까 여리디여린 말 입에게 자꾸 무엇을 달라 얼마나 요구가 빗발쳤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달라고만 했지 양보할 줄 모르던 손의 쓰임새에 대하여 달리 생각한 것은 기승술에만 갇혀있던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때 가능했다.

 

땅은 몸 전체가 손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들인 생명들에게 철철이 자꾸 무엇을 먹여준다.땅이 손으로 먹여주는 무엇을 직접 입으로 받아먹는 상징성이 말이 풀 뜯는 모습에 절제된 시어처럼 담겨있는 것 같다.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땅처럼 말을 한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말 입으로 고삐를 통하여 손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라고 깨닫게 되었다.

 

 

말에게 어떤 손으로 다가가야할지 이 가을 풍경 속에서 바람이 설핏 알 듯 모를 듯한 언어로 속삭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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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깐돌할방 님이 몽골에서 보았던 하늘에 걸린 무지개입니다.

 

무더운 여름은 잘들 보내셨나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여름도 저무는 길에 들어섰구나 싶어지네요.

제가 한 20일 블로그활동을 쉬었습니다.

그동안 여기 들르셨다가 돌이 마방앞 사진전시회만 3회 이상 보시고 그냥 나가신 분들이라면 정말 송구합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제 블로그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우리 아이들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어디 아프거나 다친데 없이 얌전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칸타,돌이,엘도라도 모두 제 생활에 만족하고 승용마의 본분에도 충실합니다.

이런 상태일 때 저도 행복하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 깐돌할망의 소식을 전하지요.제 소식을 전하려니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전 올여름 원고와의 씨름으로 세월 다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승마에세이집 출간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력투구해야할 상황이 닥친거지요.

그동안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에서도 가장 저다운 느낌이 살아있는 글로만 엄선하여 추리고,다듬고,또 다듬고 그러는 과정에서 안타깝지만 출판원고에서 탈락시킨 글도 많고 뒤늦게 채택된 글도 많고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엔 블로그에 글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책으로 묶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블로그와 책은 또한 별개여서 책작업을 시작하자 황무지를 새로 개간해서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것처럼 진행되었습니다.

그래도 작업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이제 쌓아둔 글도 양적으로 너무 많아져 저 자신조차 과거에 쓴 어떤 글을 찾아 읽으려면 정말이지 찾기도 힘든 실정이어서 한 번 정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요.

뜨거운 여름이지나가는 동안 원고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힘들면서도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차피 여름엔 말도 힘든 법이니 우리 아이들 거의 기승은 하지 않고 편히 쉬면서 놀게 해주었는데요.

그 덕에 저도 보람된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도 힘든 여름을 잘 난 것 같습니다.

 

제가 원고작업 하는 동안 남편 깐돌할방 님은 홀로 몽골승마여행 다녀오셨습니다.

그닥 기대는 안하고 다녀왔는데 다녀온 소감이 한마디로 '환타스틱'이었답니다.

몽골폐인이 되어 돌아온 할방님은 날마다 몽골 이야기를 저에게 합니다.

내년엔 저도 몽골에 안 갈 수 없을 것 같네요.

할방님이 몽골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려주신댔는데 언제 올리시려나 저도 기대가 큽니다.

 

승마에세이 원고는 8.15 광복절에 대략 작업이 마쳐져 저도 원고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출판사에서 작업 들어가면 10월 중순 전에는 책이 세상에 태어나리라 예상합니다.

 

저의 정황 때문에 한동안 블로그 내용도 명맥만 이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부터 신경도 더 써서

참신하고 알찬 글 올려보고 싶습니다.

 

아직 낮에는 뜨거워서 조금 더 기다려야 승마하기에 쾌적해지겠지요.

어디선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남은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깐돌할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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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에 돌 생일축하를 당겨서 치루었답니다.말은 5세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지요.돌이가 어른이 되다니 감회가 벅찹니다.

 

돌아! 태어나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더 고맙구나!

 

태어나던 날 엉성하게 버티며 서있다가 주저앉아 쉬고는 또 일어나 어설픈 걸음을 떼던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이마가 훤했던 왕짱구,커다란 눈망울,귀여운 입,솜털처럼 날리던 갈기와 꼬리가 사랑스러웠지.

 

또래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말이 돌이를 예뻐하고 잘 돌봐주었죠.

 

돌이가 태어난지 20일 되던 날 망아지 젖먹이느라 힘든 칸타를 타고야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미안한 일이지요.돌이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하염없이 졸졸 따라오고요.

 

돌이 백일잔치.생후 90일 무렵 돌이가 크게 아파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살아나니 백일 축하를 안할 수가 없었답니다.돌이가 입은 옷은 DIY.

 

갓 2세가 되었을 때 돌이는 어떤 거부나 두려움도 없이 의젓하게 할머니를 등에 태워줬어요.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5세가 된 돌이는 의젓하고 늠름합니다.

 

5세 생일파티 패션.사람은 생일파티 때 반짝이가 잔뜩 달린 고깔모자를 쓰는데 말에게 씌우는 건 그렇고 해서 나비넥타이를 매줄까 망토를 씌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간단하게 마스크로 멋내기를 하기로 했답니다.니트마스크에 할머니 악세사리를 대롱대롱 다니 근사하네요.돌이가 멋져보여요.

 

한데 문제가 좀 있더군요.원래 마스크 위에 굴레를 씌우게 되므로 고정이 잘 되는데 마스크만 씌우니 말의 머릿짓에 오래 못버티고 훌렁 벗겨지더군요.

 

어쨌거나 마방 앞에 사진전시회를 하고 돌이 머리에 마스크를 씌우니 생일 맞은 분위기는 한껏 납니다.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돌이는 선물로 여자친구 수아랑 단둘이 실내마장에서 데이트하는 행운을 누렸답니다.물론 여자친구도 멋을 냈지요.

 

어째 마스크 색이 순백인데다 꽃장식,망사까지 드리워진 스타일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신부의 면사포를 떠돌리네요.에라 그래 돌이 장가나 가라.난데없는 결혼식 선포가 이루어지고 주례선생은 누구냐 부케는 누가 받냐 하는 소리로 시끄럽고 승마회원들은 모두 결혼식 하객이 돼버렸네요.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앙드레김 패션쇼의 신랑신부 같지 않나요? 신랑 마스크는 벌써 훌러덩 벗겨지고 없네요.

 

생일에 여자친구와 결혼식놀이도 하다니 비록 즉흥적이었지만 5세 성마기념식에 걸맞는 이벤트였던 것 같네요.

 

신랑 어머니는 이렇게 꾸미셨군요.

 

내가 5년 전에 아들을 낳은 에미라우.

 

마스크가 벗겨져 옆으로 늘어지니 마당쇠 혹은 인디언소년이 떠오릅니다.

 

마방에 들른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돌이 어린시절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그리곤 저마다 돌이 커가는 모습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 사진전시회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친구 수아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멋지게 꾸민데다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놀 수 있으니까요.혹시 이 모습을 본 돌이 다른 여자친구 안개가 속상하지는 않았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네요.

 

잔치음식 1.옥수숫대 자른 것.요즘 옥수수를 계속 수확하고 있어서 매일 옥수수 쪄먹고 말에게도 푸짐하게 주는데 옥수숫대를 한뼘 길이로 잘라놓으니 꼭 놀이공원에서 파는 핫바나 소시지처럼 보여요.원장님 말씀이 "오늘 아침에 내가 돌이한테 생일선물 줬어요.옥수수 잘생긴 놈 몇 개 골라 까서 주니까 잘 먹어요 하하"

 

잔치음식2. 당근.이곳에 사는 모든 말들이 돌이 귀 빠진 덕에 당근을푸짐하게 얻어먹었지요.결혼식놀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피로연음식쯤 되겠네요.

 

이모가 준비한 이번 5세 생일케익은 두부케익이었답니다.마트에서 판으로 산 두부에 딸기잼으로 글씨를 썼지 뭡니까.어찌 이리도 신통방통한 생각을 떠올렸을까요? 몇 판이나 사와서 말 한 마리당 두 모 정도씩 먹었다나 그러더라구요.

 

드디어 모든 사람이 다 모여서 태풍이네가 사온 케익에 5개의 초를 꽂아 불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어요.이 자리에 나타난 남자분들 손에 꽃다발처럼 초록 씀바귀가 들려 있었지요.즉석에서 준비한 생일선물이라나.그걸 보고 깐돌할망 빵 터지고 말았네요.

 

이날 아침에 돌이 옆방에 말 하나가 새로 들어왔어요.마장마술 고급 기능을 보유한 마필인데 이름이 ' 브릿지'라네요.기왕 케익이 있으니 써먹자 해서 입방 축하식도 덩달아했지요.브릿지는 낯선 곳에 왔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이 찾아오고 분주하고 자기에게도 말걸고 하니 호기심이 잔뜩 서린 얼굴을 하고서 혹 '여기서는 날 무척 환영하는구나.내 평생 이렇게 성대한 환영은 처음이야.이곳이 마음에 드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모두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때 브릿지 귀에는 "브릿지 환영해~ 브릿지 환영해~" 뭐 이런 식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렴 어떤가.오늘은 살아있는 모든 말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루이니... 마방복도가 연회장이 되었어요.아저씨들의 불만 "아니 두부는 있는데 왜 막걸리는 없는거야? 말 먹을 건 있는데 사람 먹을 건 없어?" 없다니오? 케익,갓 삶은 옥수수,수박이 있잖아요.

 

장군이도 신났다.오늘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아요.

 

아빠가 손수 두부를 먹여줘서 행복한 축복이.

 

두부와 잼이 만났을 때.유쾌하고도 흐뭇했던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지,어째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지 좀 색다르게 느껴보았던 것 같네요.승마인마다 말과 지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곁에 있는 말은 소중하므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다가간다는 면에선 누구에게나 같으리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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