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에 들자 신비롭고도 경건한 분위기가 대지를 감싼다.석양은 그냥 저물어가는 해라고 보기에는 충만하고도 고유한 빛깔이 강렬하다.

 

 

엘도라도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틈나는대로 선생님에게 주로 기초 마장마술 지도를 받으며 때로 기초 장애물도 배운다.

 

엘도라도를 처음 데려왔을 때 다 커버린 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입양한 심정이었다.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므로 엘도라도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엘도라도는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마주로서 신경쓰고 손갈 데 없이 적응을 잘해주었던 거다.그 태도는 "뭐든 시켜주시면 엘도는 열심히 해요."였다.처음엔 이 태도가 워낙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온 탓에 반대급부로 여럿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이곳 생활을 무조건 수용하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더 지내보니 여기에 더하여 타고난 낙천적 기질도 한몫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엘도가 이곳에 오기 전 혼자 황폐한 공간을 지키며 살았는데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한 걸 보면 내면의 어떤 강인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옛 거처에 찾아갔을 때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텅비어 을씨년스러운 폐양계사업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던 엘도는 한때 화려하고 사람으로 들끓었으나 쇠락하여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성에 어쩌다 혼자 남겨진 말처럼 보였다.

 

엘도의 마방 앞으로는 개 두어 마리가 그나마 벗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었다.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어도 찾아와주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운 제 종족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그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엘도가 처음엔 어떤 면에서 좀 신기했다. 예민함이나 모난 데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여태 어린말,예민한 말만 길러서 엘도가 더 둥글둥글해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어쟀거나 참으로 기특했다.훈련도 잘받고 한편으론 여러 기승자를 태우는 상황 역시 흔쾌히 잘 받아들였다.

 

자기에게 찾아오는 상황이 무엇이었든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에서 낙천주의자 기질이 드러났다.내가 청하지 않았어도 찾아오는 고운 손님,미운 손님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맞아들이는 맘씨좋은 주인장의 모습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엘도는 만학도이기도 하다.나이가 11살이 되어서야 기본 부조도 정식으로 배우고 기초장애물도 넘어보고 하니 그렇다.<승마교과서>보누스 출,제인 홀더니스 로댐 지음.에 보니 8살이 넘는 말을 노년기(Aged)라 용어풀이를 해놓았다.동의하기에는 좀 힘들지만 성숙의 정점을 찍고 지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엘도의 나이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해보다는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엘도가 훈련받는 것을 지켜보니 천지분간이 잘 안되고 뜨거운 혈기에 휘둘리는 어린말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그 모습을 보니 이제 5세가 넘어선 돌이에 대해서는 급하게 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역시 중년의 삶에 접어들어서 내 정체성이 중년에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요즘 엘도라도를 보면서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인생에서 뭘 이루었나 하는 생각도 멀리 내다버리는 심정이 된다.중년은 몸의 노화가 시작되는 생리적 시간표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창을 내 안에 마련한 거라고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창을 만드느라 청춘의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지금부터가 더 흥미진진한 삶이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쭈욱 살다가 아름다운 영상처럼 황혼기를 맞이하리라.엘도라도,칸타빌레,태풍이 10살이 넘은 말 아이들과 함께 보낼 앞으로의 세월이 기대된다.말이든 사람이든 중년을 찍고 살아내는 일은 무르익어가는 이치와 상통하니 말과 사람이 서로의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아주는 일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석양의 엘도라도...차암...멋지다!

 

 

 

 

 

* 위 사진들의 자막에 찍힌 년도는 카메라 설정오류입니다.2013년이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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