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사의 새로운 <신데렐라>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로 개봉했다. <신데렐라>라면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는 뭔가 새로움이 입혀져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새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엄마와 함께 영화보는 여자아이들 틈에 섞여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니 대표적인 새로움이라면 주인공 신데렐라가 어디를 갈 때 뚜벅이로 그냥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다닌다

는 점이다. 나는 왕자나 공주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 그들이 어떤 말을 타고 나오는지 유심히 보는 편이다. 그 말이 보여주는 개성이야말로 그 말을 탄 인물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상대역 왕자는 숲에서 처음 신데렐라를 만났을 때 자신을 견습생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견습일을 하는 직업이 훗날의 왕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지만 . 왕자의 말은 견습생(?)의 말답게 듬직하고 성실해 보인다.

 

 보통 동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이 백마를 타고 나온다. 흔히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 라는 말처럼 백마는 환상성의 이미지다. 뭔가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 이미지다. 그러나 이번 <신데렐라>영화에서는 왕자가  백마를 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자가 아닌 여자주인공 신데렐라가 말타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 점이 새로워서  마음에 든다. 신데렐라의 성격은 디즈니사의 전작 <겨울왕국>의 공주자매처럼 주체적이고 강인하고 운명에 맞서 싸우고 개척하는 여성상이다. 신데렐라는 결코 신분상승을 꿈꾸다 운좋게 꿈을 이룬 여성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신데렐라는 수동적이거나 나약하지 않기 때문에 강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 신데렐라가 마구도 채우지 않은 알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신데렐라가 강인한 면모만 지닌 것은 아니다. 내면에는 따뜻한 마음도 지녔다. 그것은 보잘것 없고 하찮은 동물에 대한 배려에서 잘 나타난다. 극중 신데렐라의 절친은 생쥐가족이다. 영화에서 생쥐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이 자주 클로즈업 된다. 신데렐라는 엄마에게서 받은 유언대로 '용기' 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균형이야말로 신데렐라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러한 양면을 통합시키는 이미지를 구현한 말로서 흰 바탕에 검은색이 바위빛깔처럼 얼룩덜룩한 모색의 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신데렐라의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카포테' 라는 말과 너무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루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말은 영혼의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볼 때 파트너인 사람을 어떤 운명적인 상황으로 데려다준다. '데려다준다'는 모티브는 수많은 문학이나 영화의 스토리에서 반복된다. 이번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를 왕자에게 데려다준다. 신데렐라는 숲에서 사냥하는 왕자일행에게 쫒기는 사슴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 후 신데렐라의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바람에 왕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쫒아가 그녀의 말을 멈추게 한다. 신데렐라와 왕자는 그 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고 이끌리게 된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서로의 말 위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로맨틱하고 인상적인  첫만남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훗날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가 로또 맞은 것처럼 신분상승한 바가 아니고 스스로의 내면의 가치를 고귀하게 간직하고 가꾸어온 결과물로서 그녀가 당연히 누릴 지위를 찾아간 것으로 그려진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난 대모요정이나 왕궁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물은 모두 신데렐라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친절과 따뜻한 마음 때문에 그녀를 도울 수 있었다.

 

 

 

 

 

 

 

 부모님의 죽음,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과 훼방 등 신데렐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운명의 장벽은 높았지만 신데렐라가 자신의 고귀함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자기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부정적 의미를 넘어서서 ,신데렐라는 세월이 흘러도 다시 보게 만드는 고전이게 만든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모습의 신데렐라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는 것은 ,말이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 (2015)

Cinderella 
7.4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릴리 제임스, 리처드 매든,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홀리데이 그레인저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13 분 |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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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은 티베트의 라마승과 아일랜드계 혼혈소년 킴이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는 모험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도를 소재로 한 현대 영국 소설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영문학 작품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작품 안에 주인공 킴과 라마승 외에 말장수 마부브가 등장한다. 마부브는 말 판매업 대규모 상단의 대표다. 그의 활동무대나 거래규모는 국제적이어서 마부브는 정치적인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마부브는 자기의 직업상 사람이나 인생에 대하여 꼭 말로 빗대어 발언한다. 그가 던진 말 발언만 작품 속에서 긁어모아도 한 권의 어록이 될 듯하다. 그 중 일부의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킴을 학교에 보내는 문제에 대하여

 

마부브가 말했다.

"어떤 망아지는 아예 폴로 경기용 말로 태어나지요. 가르치지 않아도 공을 쫒는 겁니다. 감각적으로 게임을 알고 있는 그런 말을 무거운 짐을 끄는 말로 만드는 건 큰 잘못이란 겁니다, 나리!"

 

 

 

 

 

 

 킴이 학교에서 무단가출을 하자

 

"인간도 말과 비슷하죠. 염분이 필요할 때 여물통에 소금이 없으면 땅바닥을 핥아대지요. 그 아인 잠깐 동안 길을 떠났을 겁니다.…… 폴로를 하던 말이 혼자서 폴로를 배워보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간 셈입니다."

 

"각하! 그앤 삼 개월 동안 학교에 있었습니다. 조랑말이 게임을 익힌 겁니다.? "

 

  

 

 

 

 

현대의 자동차광 남자들이 과거에 살았더라면 말에 눈이 멀었을 것이다.

 

 

마부브의 말에 따르면 ,백인 청년들은 하나같이 말에 관한 한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꿔서라도 말을 살 것처럼 덤빈다고 했다. 마차역을 따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백인들이 저마다 길을 막고는 얘기를 하자고 덤비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기네들이 타고 가던 마차나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마부브의 말들에게로 와서 다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거나 힌디어를 전혀 모르는 탓에 그게 얼마나 상스러운지 알지 못하면서 이 태연자약한 말장수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마부브와 크레이튼 대령과의 정치적 계약을 이행하는 게임에 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발언.

 

"게임을 하는데 어린 망아지를 묶어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스스로 택한 여행을 제재한다 해도 ,그 아이는 우리의 제재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겁니다. 그러면 누가 그 아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대령 나리.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 태어난 겁니다. 이 망아지야말로 우리들 게임에 가장 적합한 놈입니다.더구나 우리에겐 지금 요원들이 필요합니다."

 

 

 

      

 

 

"그 망아지는 이제 조련이 끝나서 재갈에도 익숙해졌고,능란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나리. 매일 이대로 가둬두고 재주나 부리게 한다면 그앤 결국 재능을 잃고 말 겁니다. 고삐를 풀어주고 내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린 그 아이가 필요합니다.

 

 

 

       

 

 

    

  말 판매 노하우?

 

"오,부크타누의 신들이시여! 아주 잘생긴 녀석이군."

"잘생긴 녀석 타령은 말을 팔 때 써먹는 거잖아."

마부브의 말에 킴이 웃음을 터뜨렸다. 

 

 

 

 

 

<킴>이라는 작품은 모험소설,성장소설이자 구도소설이다. 작가의 관점인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성이 드러나는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킴>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겠다. 나는 성장소설의 관점으로 <킴>을 보았다. 킴이라는 고아소년이 세상 풍파를 헤쳐나가며 커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때 주변 인물을 통해서 소년의 성장은 말의 성장과 자신의 가치실현으로 비교된다. 사람이든 말이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이태리 홀스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로 소몰이 용도로 쓰이는 말 품종 쿼터호스가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쿼터호스 망아지 중에서 본능적으로 소몰이 감각이 탁월한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그 감각을 '카우센스'라 부른다. 그런 말의 혈통은 매우 귀하게 대접받는다.

 

 

 

 

 <킴>에서도 뛰어난 말의 족보가 중요한 기밀문서로 취급되는 내용이 나온다. 승마를 하는 사람은 말마다 재능과 개성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말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말은 팔자가 좋은 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보도블럭에 떨어진 씨앗처럼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없다.

 

 

 

 

 

 

 

 

말장수 마부브가 말한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란 어떤 말일까?

 

과연 그런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잘 맞고 소중한 말이라면,

 

그 말은 나를 만나러 천 년을 기다렸다가 태어났고 , 내 앞에 나타나서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러디어드 키플링 (1865 - 1936)

인도 출생. 1907년 영어권 작가 최초, 역대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

대표작으로 소설 <정글북> <킴>, 시집 <막사의 담시>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동네가 정선해 선보이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성과 시대를 뛰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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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애호가가 설 연휴에 뒹굴거리며 본 영화 -

 

 

명절 연휴에는 으레 남아도는 시간이 생기는지라 뭐 심심풀이로 볼 영화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설에도 그런 상황이 찾아와서 좀 고르다가 본 영화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사랑게임>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기분좋은 유쾌함에 젖어드는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노팅힐>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랑게임>이라는 영화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아 로버츠 분)는 전형적인 남부 대목장주의 장녀로 태어나 말과 함께 성장했다. 집안의 사업이란 말을 훌륭한 승용마로 키워 각종 대회에 출전시키고  몸값을 높여 판매하는 것이다. 현재 그레이스는 아버지 목장의 마필관리실장 쯤 된다. 마사 안에 즐비하게 연이어진 마방 끝에 그녀의 사무실이 있다. 그레이스는 결혼하기 전에 수의사를 꿈꾸었으나 갑작스레 찾아든 연애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로 결혼과 임신이란 상황에 맞닥뜨리며 그 후로 내내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알게되고서 인생 전체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에 빠져든다.

 

 

그레이스가 '내 인생이 대체 뭔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하고 회의에 빠져드는데, 사실 공교롭게도 남편이 타이밍을 맞춰 도화선이 되어준 것일 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싯점에서 여자로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긴 되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그레이스는 자신이 꿈을 접고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끼고 온통 남편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남편은 사건이 터지고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원상태로 돌아가려 애를 쓴다.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거주하는 그레이스의 집안은 가족 개개인도 모두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가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노령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랑프리 대회에 나가 우승하겠다는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방편으로 남의 몫을 가로채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 알맞지만 열정 자체에는 박

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이다. 남편이 바람나서 괴로워하는 딸에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다독이며 응원을 보낸다. 그레이스 여동생은 화끈하다. 용서를 빌러 찾아온 형부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것으로 응징을 하며 언니를 대신하여 언니보다 더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언니에게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름 꽤 괜찮은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겨졌는데 이런 긍정적인 가풍은 말에 둘러쌓여 살아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말을 기르고,교육시키고, 돌보아주고,그들에게 깃든 재능을 이끌어내려면 공동체에 유용한한 의사소통 방식을 일상적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말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늘 살펴야 하고 겁 많고 소심한 말에게서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소통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타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통찰하는 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자연스럽게 터득이 된다.

 

 

 

그레이스가 깊은 회의 속에서 방황하다가 꼬여버린 자기 인생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발견한 것은 딸 캐롤라인에게서였다. 캐롤라인은 집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말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녀다. 이 소녀의 불만은 자기가 좋아하는 백마를 타고 대회에 출전하고픈 소망이 금지됐다는 거다. 할아버지나 엄마는 소녀의 안전을 생각하여 어린이가 무리없이 통제하여 다룰 수 있는 조랑말을 타라고 한다. 더 커야만 큰말을 타게해주겠다는 거였다. 이에 대하여 영화 초반에 캐롤라인이 엄마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마나 당차고 야무진지 말과 더불어 자란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이랬다. 남부 여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기대치를 아주 적게 가지도록 교육되어왔다고. 남자에게 그 말을 뱉은 후 그레이스는 딸 생각이 났다. 자신 역시 딸에게 네 꿈의 그릇은 작은 것이라고 억누른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그레이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딸에게 가서 큰 백마를 타도 된다고 허락했다. 딸의 기쁨은 너무 커서 자다 말고 일어나 말 타러 나가겠다고 한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그랑프리 대회장에서 증명해보였다. 마지막 고난도 장애물을 넘을 때 캐롤라인의 앙다문 입술과 단호함이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캐롤라인은 엄마 그레이스에게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커다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레이스에게 깨달음이 왔다.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인생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결혼과 양육으로 자신의 꿈을 접었던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훌륭하게 자란 캐롤라인이 그 증거였다. 그레이스는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와 함께 할 인생을 꿈꾸고 선택하였다. 그때  자신의 판단을 믿고 다가온 운명에 충실했던 뿐이고,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배반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한 과거에 그레이스가 14세 이하 선수가 참가하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여 빛나는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자신감도 충전되었을 것이다.

 

 

 비록 3위에 머물렀지만 후회없는 경기를 펼친 아버지.

 

영화에서 자신의 본분을 넘어선 꿈을 추구한 아버지가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과 딸 그레이스가 자존감 부족으로 갈등을 겪다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비가 눈여겨 보아진다. 결국 여성 자신이 딸과 엄마로 자신을 좁게 가두지 말고 더 큰 꿈을 꾸고 매 순간 성취하며 자신을 발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겠다.

 

 

 그랑프리 대회가 끝나고 사람과 함께 최선을 다한 말 선수에게 샴페인을 맛보게 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로 펼쳐지는 대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단, 현실에서 따라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자칫 말 이빨에 유리잔이 깨져 파편이 말 입안에 들어가면 곤란할 테니까. 나라면 말용 실리콘 샴페인잔을 준비할 것 같다. 음료는 달달한 당근주스가 어떨까?

 

대회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성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준 딸의 모습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한 그레이스는 수의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녀가 밝아지면서 불화를 겪던 남편과도 관계가 회복된다.

 

<사랑게임> 영화를 보면서 말이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자존감과 자긍심이란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인도자이며,

 

성장의 동반자라는 것을 내내 생각해보았다.

 

 

 

 

 


사랑 게임 (1996)

Something To Talk About 
0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줄리아 로버츠, 데니스 퀘이드, 로버트 듀발, 지나 롤랜즈, 뮤즈 왓슨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미국 | 105 분 | 199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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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물


월터 휘트먼[미국]


 

 

 

 

 

월터 휘트먼[Walt Whitman](1819. 5. 31~ 1892. 3. 26)




나는 모습을 바꾸어 동물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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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다시 산다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더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그리고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년 8월 24일 -1986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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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릴 스트레이드 저 / 나무의 철학 )

 

 

 

 

*    

 

먹고 살 돈도 빠듯했지만 엄마는 말을 사야만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의 인생을 구원해 준 건 바로 레이디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레이디덕분에 엄마는 아버지를 떠날 수 있었을 뿐아니라 완전히 독립 핳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은 엄마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

 

나는 레이프가 칼을 꺼내들고 붉은 색과 금색이 섞인 레이디의 갈기털을 잘라내는 것을 보았다

" 엄마도 이제 편히 저 세상으로 가실 수 있겠지"

레이프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남매밖에 없다는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 인디언들은 그렇게 믿는대. 위대한 전사가 죽으면 타던 말을 죽이고 그렇게 해야 ( 주 : 갈기털을 잘라내야) 저승으로 가는 강을 편하게 건너갈 수 있다고. 그게 존경의 표시라고 했어. 엄마는 이제 저 세상에서도 레이디를 타고 함께 할 수 있을거야"

 나는 엄마가 레이디의 단단한 등에 올라타고 거대한 강을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엄마는 거의 3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나는 레이프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내게 빌고싶은 소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내가 바라는 건 엄마가 다시 말을 타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레이디와 함께 저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

 

나는 더 이상 ~~ 때문에 놀라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그보다 놀라운 일이 훨씬 더 많았다.

.

.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행복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

.

내가 울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

.

나는 들어왔고 나는 떠났다. 내 뒤로는 캘리포니아가 마치 기다란 비단 장막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더이상 내가 멍청한 바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여전사도 아니었다.

내 안의 나는 이제 강하면서도 겸손하며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그 사슴처럼 이 세상에서 안전했다.

 

 

 *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 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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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를 탄 엄마(로라 던 ,분)를 딸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이 끌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에 영화 <와일드>를 보았다. 상영관이 적어서 수소문한 끝에 이웃 시로 넘어가서 보아야만 했다. 그런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내게 감동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말horse이 나왔기 때문에 나로선 덤으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가난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했던 가족.셰릴,남동생,엄마

 

 

<와일드>라는 영화는 2012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체험담이 원작이다. 이 원작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읽고 단숨에 사로잡힌 헐리웃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판권을 사들여 제작,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알려진 장 자크 발레.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려서 알콜중독 어버지의 폭력에 견디다못해 도망쳐나온 어머니,남동생과 살아온 셰릴은 세계의 전부와도 같았던 엄마가 척추종양으로 죽은 후 방황하다가 7년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서 극한의 도보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이 트레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5 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이 구간을 완주하는데 대략 152일이 걸리며, 걷는 동안에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극한의 도보여행코스라 할만하고 '악마의 코스'라고도 불리운다. 여행자는 트레일을 걷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절대 고독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듣기만 해도 '나도 해볼까?'라는 엄두는 커녕 누가 돈주고 가래도 손사래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셰릴 스트레이드는 왜 여자의 몸으로 빈몸도 아닌 30킬로가 넘는 몬스터라 불리는 배낭을 매고 여정을 떠나야만 했을까? 삶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결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고행으로 자신을 내모는 의지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셰릴 삶의 무게중심이었고,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였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뜻한 사랑으로 넘치는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아갈 만했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셰릴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무너진 세계속에서 셰릴의 삶은 방치되고,꼬이고,망가져버렸다. 하지만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가고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생 사랑으로 맺어져있던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갔어도 딸의 내면에서 한줄기 빛으로 살아나 '아름다움의 길'이라 일컫는 밝은 삶으로 이끈다. 셰릴은 그러한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할 때 '내 삶의 상처'인 엄마를 잘 떠나보내지 않는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셰릴의 고행스러운 트레일 여정은 엄마를 애도하는 여행이자, 참다운 나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을 걷는 셰릴

 

 영화를 보면서 육체적 고통과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 안에 되살아나는 과거의 상처로 아파하는 셰릴에게 감정이입하며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과거에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애마 바람이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슬픔을 맘껏 쏟아낼 수 없는 처지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인생을 살다가 몇 번 만나지 않을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건데, 그 상실감을 도화선으로 해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송두리째 올라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인생의 중간정산이라고나 할까. 걸었던 모든 길에서 나의 해묵은 상처와 조우하고 목놓아 울고 난 후 돌아와서는 인생이 리셋되어서 정서적으로 '초기화'된 느낌이랄까 그런 상태가 되어 여지껏 잘 살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물론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삶에 맞추어져 있지만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엄마의 삶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45세까지 살았던 걸로 나온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인생을 긍정하며 늦깍이 학생으로 공부하던 모습의 엄마는 ,결코 팔자가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니 최악의 배우자를 선택한 셈이다. 남편으로부터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아이들 손을 잡아끌어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도망치듯이 싱글녀가 된 엄마. 그녀는 아빠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결핍이 되지 않도록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본다. 그러느라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적인 삶이 그녀의 몫이었겠다. 경제도 책임져야 했기에  집은 늘 가난했다.

 

힘들었던 그녀에게 삶의 커다란 위안이자 힘이 되어주었던 부분이 바로 , 말horse이다.

병원에서 척추종양 진단을 받은 후 그녀가 가장 먼저 의사에게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요?"

 

  그 대사를 통하여 엄마인 그녀에게 승마가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볼 수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와 남매가 사는 집은 변두리나 전원의 허름한 집이다. 그곳에서 말을 키우며 승마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라면 저소득층인 이들이 말을 소유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미국이기 때문에 말 키우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엄마는 살면서 남자옷의 지퍼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만큼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돌보는 데만 맞추고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기쁨과 생기를 부여한 것은 말이라는 존재였나 보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엄마의 유언도 말horse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저 아이(말)를 편안하게 해줘." 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하루하루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덜어내는 순간조차 엄마가 걱정했던 것은 주인을 잃고 남겨진 말의 여생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엄마의 애마는 셰릴의 새로운 상처로 남게 되었다.

말은 병들게 되었고 마지막을 편안하게 지켜주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안락사를 시켜야 했다. 그러나 남매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남동생이 총으로 쏴서 말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나마 말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엄마의 유언과 다른 모습으로 끝난 말의 최후는 셰릴의 상처가 되어 그녀의 기억속에서 엄마와 함께 번갈아가며 나타나 괴롭힌다.

 

그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고 소멸한 사건이 길에서 일어난다. 비가 철철 내리는 여행자 대피소에서 셰릴은 말울음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키우는 백마가 있었던 거다. 그 백마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 밤새 비를 철철 맞고 있었다. 셰릴은 백마를 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건초를 주고 편안히 쉬게 한다. 그 순간 그녀의 오래 묵었던 말에 대한 상처도 치유가 이루어진 듯하다.

 

와일드 촬영중

 

 

영화에서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뱀,여우, 굴레를 쓴 낙타 등등.

동물은 주인공 내면의 상처와 치유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이미지로 쓰였다.

 

비록 짧게 등장했고 보통의 영화관객이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말이란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이나 길게 다루어쓴 까닭은 나 자신이 셰릴의 엄마 연령대 여성으로서 말에게 위안과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주변에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지는 알길이 없으나 말에게서 크나큰 기쁨과 의미를 얻는 중년여성들이 많다. 말은 고마운 존재다.

 

한편 영화 뒷이야기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말의 사촌쯤 되는 당나귀들이 촬영스탭으로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인 산악지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곳 왕래하는 데는 당나귀만한 일꾼이 없다.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왕왕 보았던 엄청난 짐보따리를 등에 지고 동료들과 줄지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의연하게 걸어가던 당나귀 말이다. 촬영장에 필요한 온갖 장비,소품,보급품을 날라서 영화제작에 기여한 당나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와일드> 책을 구입했다. 열심히 읽고 나중에 '문학과 말'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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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KBS [TV 책을 보다] 화제의 방영작 [뉴욕타임스] 베스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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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화를 본 후 여성의 자아 찾기를 심리학적으로 탐색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출판사
이루 | 2013-09-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월경독서]에서 목수정 작가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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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점들이 즐비한 역전 제과점의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자영업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들에게는 일의 반대가 휴식이 아니라 손해다. 그래서 그들은 휴일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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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어머니가 평생 만든 단팥죽과 팥빙수의 양이 얼마나될지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그 그릇들을 쌓는다면, 아마도 꽤 높은 탑이 되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된다한들, 그 탑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하겠지. 그러고보면, 어머니는 참 여러가지를 만들었다. . . . 단팥죽 맛이 특히 일품이었다. 돈을 받고 팔아야만 하는 것이니 잘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비법은 내가 물려받았으니 나중에 소설이 잘 안쓰여지면 단팥죽 가게라도 차릴까보다. 팥죽을 만들때면 꼼짝없이 잡혀서 나무주걱으로 찜통에서 끓고있는 팥죽을 저어야만 했으니까.

 

  몇 년 전에 몽골에 갔더니 사람들이 마유주라는 것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신기하게 여겼더니 말젖을 짜서는 밤새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면 술처럼 발효가 된다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더라. 그래서 따라가봤더니 술에 취한 아버지들 뒤에서 팥죽을 저을 때의 내 나이 또래의 소년이 말젖을 젓고 있었다. 그 방에는 전등도 없었다.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소년은 말젖을 젓고 있겠지.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으나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모두 똑같은 풍경이라 그게 더 무섭고 절망스럽던 몽골의 평원에서 나는 그 소년을 붙잡고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소설가의 일'중에서

 

 

 


소설가의 일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1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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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밤은 깊다. 반구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고, 광활한 초원의 점 하나처럼 찍혀있는 게르 의 촛불은 아늑하고 호젓하다. 빙 둘러 앉으면 그 중심에 술병 하나쯤 놓이게 마련이다. 둘러앉은 여행자들이 한 점을 응시하며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울부짖고, 밤이 칠흑처럼 깊어갈수록 게르 안은 방주처럼 아늑해진다. 술잔을 나누며 지나온 길들을 되새기노라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각자가 가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삶의 수첩들을 펼쳐 놓게 마련이다.

 

  취기에 못이겨 게르 밖으로 나서면, 끝모르게 깊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세상의 중심에서 덩그러니 선 자신을 만나게 된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래바람만이 원귀처럼 울부짖는다. 무어라 악을 써도 그 소리는 이내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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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앗아가는 모래바람과  깊은 어둠에 기대어 여행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꽁꽁 쟁여놓았던 말들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바람은 세상의 어떤 비밀스럽고, 부끄럽고, 저주스러우며 참혹한 소리들일지라도 한 도막도 남김없이 빨아들여 어디론가 날려보낸다.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가슴 속에 쟁여 둔 말들을 통렬히 외쳐볼 수 있었던가. 언제 어디에서 마음껏 비틀거려보고, 가슴을 쥐어뜯어가며 울어보고, 큰 소리로 악을 쓰고, 취해 볼 수 있었던가. 대개 그러한 절규의 끝은 울음이다.

 

  모래바람이 부는 고비사막의 밤은 모든 걸 허용하며, 그 광포한 바람으로 모든 걸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소리도 소멸하고, 형상도 사라진 황야에서 누구도 들을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를 만나게 된다. 고비의 벌판에서 모래바람이 부는 밤이면 , 술잔을 내려놓고 게르 밖으로 나가보라. 걷는다는 생각마저 느껴지지않는 깊은 밤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가슴 속에 꿍쳐 두었던 말들을 바람에 하염없이 날려 보내보라

 

                                                                                             '당신에게, 몽골' 중에서 

 

 

 


당신에게, 몽골

저자
이시백 지음
출판사
꿈의지도 | 2014-07-04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만큼 끝까지 와버렸다면, 이제는 몽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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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원'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살다가 한번쯤은 몽골의 끝도 없는 초원을 밟아보고, 그 땅에서 태어나 자란 말을 타고서 바람처럼 달려보는 꿈을 꾸어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몽골땅을 밟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책갈피에 끼워둔 나뭇잎처럼 마음에 묻어 두었다. 그런 내 앞에 몽골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자꾸 나타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몽골에 간다는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몽골에 가면 뭔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위에 소개한 김연수의 산문과 이시백의 글은 모두 몽골에 갔던 경험담이 소재다. 각각 글의 장르나 다루는 이야기는 달라도 어떤 공통점이 느껴졌기에 한데 모아본 것이다. 공통점이란 바로 내면에 아로새겨진 맺혀있던 감정과의 대면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김연수의 산문에서 필자는 유년의 기억 한자락을 들추어낸다. 역전 제과점 아들로 자란 탓에 일손이 모자랄 때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했던 그 시절 말이다. 솥단지에서 끓는 팥죽을 젓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젓는 일을 게을리 하면 금세 죽이 바닥에 눌어서 탄내가 피어오른다. 어린 팔 근육으로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 아픈 것은 팔뿐이 아니었을 터.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엿보아버린 후에 남겨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감정은 잊혀진 채 지나가버렸나 했는데 몽골에서 밤새 마유주를 젓는 아이를 보며 작가의 가슴에 되살아났던 거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이시백 작가의 사색의 공간은 몽골 중에서도 고비사막에 지어진 게르 안이다. 게르는 유목민의 전통적 이동식 가옥이다. 이런 가옥에서는 바깥의 소음, 자연의 음향이 생생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어서 바깥에서는 바람소리 요란한데 그와 대조적으로 게르안은 사위가 조용하다. 그럴 때 사람은 차단했던 이성의 빗장이 저절로 풀어짐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소리는 내면으로 접속하여 들어가는 암호나 마찬가지다. 평소 겹겹이 두르고 살았던 거추장스러운 생각들이 사막의 바람에 훠이훠이 날려간 듯 마음이 가벼워졌을 때 필자가 만난 것은 역시나 울고싶어지는 맺힌 감정이었다.

특히나 한국땅에서는, 그것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쉽게 울 수 없는 법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 것이고, 아무 때나 울면 고추 떨어진다는 삶의 지침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박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울고싶어지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미 몇 차례 몽골에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엄청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었다. 듣고 지나간 얘기 중에 이런 대목이 떠오른다. 비가 오고 강물이 불었는데 몽골 말몰이꾼이 모는 말무리가 강물 앞에 다다랐고 그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했다. 몰이꾼의 노련한 신호에 따라 말들은 하염없이 몸에 차오르는 거친 물살을 마다않고 강을 건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던가. 그때는 "울었어? 왜?" 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야 그 마음자리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된다. 언젠가 나도 몽골에 간다면 몇 배는 더 울음바다를 쏟아내지 않으려나.

 

'데려다 준다.'

 

 말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주는 존재이다. 물론 옛날에야 아주 오랜 세월 말이 제 등에 사람을 태워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옮겨주는가가 말의 효용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많이 옮겨주는 일에서 다른 대체수단이 생겼으므로 그 일에서 말은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찾아나서고 말에게 빠져들곤 한다. 그 이유를 하나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뭐지? 뭔데 묘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거야?"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비밀 같은 거 말이다.

 

 말은 우리를 깊숙하고 은밀한 내면의 감정과 만나도록 안내한다. 말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보면 내가 말라죽으라고, 숨막혀죽으라고 가두어두었던 내면의 지하실이 열려서 그 안의 것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몽골로 여행을 떠난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작가 두 명이 전하는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글에 실은 사진은 몽골의 사진작가 Oktyabri Dash 님의

' The beauty of mongolia' 에 실린 작품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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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헨릭 시엔키에비츠

 

<간략 소개>

1846년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출생.

 

1896년 <쿠오 바디스> (전 3권) 출간.

 

1905년 노벨문학상 수상.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서사 작가로서 뛰어난 장점을 지녔다. 쿠오 바디스는 교양 있고 자존심 강하지만 타락한 비기독교도와 겸

손하면서도 자부심 강한 기독교도 사이, 에고티즘과 사랑 사이, 황궁의 오만한 사치와 카타콤의 고요한 집중 사이의 대조를 뛰

어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로마의 대화재와 원형경기장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의 묘사는 필적할 이가 없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졌던 이 절박하고 심오한 물음은 시엔키에비츠의 <쿠오 바디스>를 통해 혼돈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영원한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동안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났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불신, 대립과 반목이 난무하고 인류는 환멸과 실의 ,고독 속에 함몰되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단절되고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현대문명의 카오스에 휩쓸려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나침반을 갈망한다.

 

<쿠오 바디스>가 탄생한 지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작품이 여전히 불멸의 고전으로 손꼽히며,시공과 종교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최성은 / 작품해설 중에서 - p.536

 

 

 

 

 

작품의 배경은  폭군 네로황제 시대의 로마제국이다. 로마의 귀족인 비니키우스는 이방의 공주 리기아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도록 예정되기에 이르른다. 그 찰라에 로마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나고 황제를 따라 로마를 떠나왔던 비니키우스는 말을 타고 어둠속으로 폭풍같은 질주를 한다. 사랑하는 리디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극한의 절박한 심경으로 오로지 말의 속도에 자신를 완전히 내맡기고 로마로 가는 상황은 압권이다. 말의 활약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 42장 전체는 비니키우스가 로마로 가서 리기아를 찾아헤매는 상황의 전개로 할애되었다.

 

제 2권 p83.

 

 비니키우스는 두세 명의 노예들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곧 말에 올라탔다. 그는 어둠에 싸여 을씨년스러운 안티움의 밤거리를 지나 라우렌툼으로 가는 컴컴한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끔찍한 소식에 그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머릿속이 몽롱해져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불행'이 등 뒤에 붙어 앉아 그의 귀에 대고 "로마는 불타고 있다!"고 소리지르면서,자기와 말을 채찍질하여 미친 듯이 불 속에 치닫게 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비니키우스는 투구도 쓰지 않고 튜닉 바랍으로 말을 몰았다.머리는 말의 목에 찰싹 갖다 붙이고 앞도 보지 않은 채, 가는 길에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나 장애물은 아랑곳하지 않고,무작정 달렸다. 적막을 가르며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밤하늘에는 별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말도,기수도 달빛을 받아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이두메아 산 종마는 귀를 늘어뜨리고 목을 앞으로 길게 뽑은 채, 사이프러스 나무와 그 사이사이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하얀 별장들을 뒤로 하며 쏜살같이 질주했다. 돌바닥에 부딪히는 말발굽 소리에 놀란 개들이 잠을 깨어 도처에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와 그의 말은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사라져갔지만 ,그가 지나간 뒤에도 개들은 여전히 머리를 쳐들고 달을 향해 짖어댔다.(중략)

 

"로마는 온통 불바다입니다!"라고 외치던 레카니우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리기아를 구출하기는 커녕, 온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도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니 눈이 뒤집히고,미칠 것만 같았다. 비니키우스의 초조한 마음은 어느새 질주하는 말보다 빠르게,마치 불길한 새떼처럼 그 자신보다 훨씬 앞서 날아가고 있었다.(중략)

 

……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가! 대화재와 노예들의 반란,살육! 그로 인해 시민들은 격분할 테고,어쩌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로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 리기아가 있다. 비니키우스의 탄식과 신음소리는 폭풍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헐떡이는 말의 가쁜 숨소리에 뒤섞였다. 말도 사람도 모두 아르데아에서 아리키아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저 도시에서 대체 누가 리기아를 구출할 수 있단 말인가? 비니키우스는 달리는 말 등에 엎드려 갈기를 움켜쥐고,괴로운 마음을 참을 길 없어 말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그때 반대편에서 안티움을 향해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로마는 멸망하고 있소!"라고 소리를 지르며 비니키우스의 옆을 스쳐 순식간에 멀리 사라졌다.순간 비니키우스의 귀에 "신들이여……."라는 외침이 들려왔으나,다음 말들은 말발굽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비니키우스는 그 낯선 사내가 던진 '신'이라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든 채 별이 총총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략)

 

 

 

 

연인을 구출하려는 청년은 캄캄한 밤중에 말 등에 올타타고 미친듯이 로마로 간다. 청년 비니키우스 눈에는 뵈는 게 없다. 밤중이어서도 그렇고 절박한 상황에 주변이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눈뜬 장님 신세의 주인 명령에 따라 달리는 말은 무슨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 리 없지만 찰라에라도 자기 생각이 떠올랐다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주인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말은 말일 뿐이라서 주인이 가자는 곳으로 무작정 제 네발로 달려나간다. 그곳이 전쟁터이든 재난터이든 가리지 않는다. 비니키우스를 태운 말은 불바다 로마를 향해 달려갔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극한의 절망 그 자체였다. 비니키우스와 말은 지옥을 보았을 것이다. 비니키우스가 터질 듯한 심장으로 절망으로 몸부림친 자리는 바로 말 등이었다. 미친듯한 질주의 끝에서 도달한 곳은 낭떠러지나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그러나 말발굽 소리 속에서 비니키우스는 "신"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신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는 새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으로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  그 순간 나의 상상 속에서는 절벽에서 천마를 타고 날아오르는 비니키우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말은 주인을 불바다 지옥을 통과하여 천상에 이르러 신에게 데려다주었던 셈이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신을 받아들이는 장면 이후로 작품의 전개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타락에 가까운 로마귀족이었던 비니키우스가 기독교도 연인 리디아와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신의 가르침 '사랑'이라는 주제에 더욱 다가가게 된다.

 

 

 


쿠오 바디스

저자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12-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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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도미네 (2004)

Quo Vadis? 
8.8
감독
예르지 카발레로비치
출연
파웰 델라흐, 막달레나 미엘카르츠, 보거슬라브 린다, 미칼 바요르, 예지 트렐라
정보
드라마 | 폴란드, 미국 | 144 분 | 2004-12-10

 

 

 

 

 

영화에서는 방대한 문학작품이 생략되어 있어 소설을 다 읽은 후 보았더니 싱겁기 짝이 없었다. 대화재 현장 로마로 말 달리는 장면은 소설과 다르게 대낮으로 설정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미친듯이 달려야했던 말의 괴로움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real)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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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 발견한 말(馬)

 

 

 

 

'참다운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가?'

 

언제부터인가 이런 문제들이 마음을 온통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젊었더라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서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을 텐데 나이가 들고보니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현실에 매이다보니 그렇다. 하여 나를 발견하기 위한 탐구의 방법으로 문학여행을 떠나보았다.

 

작년부터 고전문학을 하나씩 찾아서 읽는 중이다. 고전이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낡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되는 텍스트를 일컫는다. 거기에는 인간 보편성의 뭔가가 있기에 자꾸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전을 읽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초등이나 중등과정 시절에 '간추린 고전'으로 선행독서를 하게끔 만든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어서 고전에서 다루는 삶의 문제를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진정으로 읽어보아야 할 순간이 도래했을 때, 고전이란 이미 읽은 것이란 착각에 빠져 읽을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생에서 뭔가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휙휙 지나가는 인생의 여러가지 국면을 그저 사진 보관하듯이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니 해결이나 나아가는 방향도 바람부는 대로 몸을 기우는 갈대 같은 건 아닐까 싶었다. 인생을 깊게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갖고 싶었다.

 

그 옛날 그리이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에 대하여 모방충동설로 바라보았다. 문학은 삶의 재현이라는 거다.

'재현'이나 '모방'이라는 개념에 잘 들어맞는 문학의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소설에 대한 여러 정의 가운데 루카치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문제적 개인이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 인식의 여정에 대한 형상화'가 소설이다.

 

그러니까 나는 배낭과 운동화 대신 문학책을 도구 삼아 삶을 이해하는 '자기 인식의 여정'에 참여한 거라 볼 수 있다. 소설 안에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그 동경과 모험,즐거움과 환희로 가득찬 여정에서 덤으로 얻은 전리품이 있다. 인간의 삶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인 말(馬)이 어떤 모습으로 녹아들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아는 말의 삶이란 고작 마방이나 풀밭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학 안에서는 말이 등장인물과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여 인간이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그만큼 말은 사람살이에 긴밀하게 함께 해왔다는 증거이므로 문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보다는 말과 가깝고도 깊은 유대를 맺고 사는 사람이므로 '문학 속의 말'이 드러나는 부분을 추려내어 기록해보고 싶었다. 이 의미있는 새로운 여정의 첫출발을 시작하려고 하니 설레고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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