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를 탄 엄마(로라 던 ,분)를 딸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이 끌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에 영화 <와일드>를 보았다. 상영관이 적어서 수소문한 끝에 이웃 시로 넘어가서 보아야만 했다. 그런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내게 감동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말horse이 나왔기 때문에 나로선 덤으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가난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했던 가족.셰릴,남동생,엄마

 

 

<와일드>라는 영화는 2012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체험담이 원작이다. 이 원작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읽고 단숨에 사로잡힌 헐리웃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판권을 사들여 제작,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알려진 장 자크 발레.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려서 알콜중독 어버지의 폭력에 견디다못해 도망쳐나온 어머니,남동생과 살아온 셰릴은 세계의 전부와도 같았던 엄마가 척추종양으로 죽은 후 방황하다가 7년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서 극한의 도보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이 트레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5 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이 구간을 완주하는데 대략 152일이 걸리며, 걷는 동안에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극한의 도보여행코스라 할만하고 '악마의 코스'라고도 불리운다. 여행자는 트레일을 걷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절대 고독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듣기만 해도 '나도 해볼까?'라는 엄두는 커녕 누가 돈주고 가래도 손사래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셰릴 스트레이드는 왜 여자의 몸으로 빈몸도 아닌 30킬로가 넘는 몬스터라 불리는 배낭을 매고 여정을 떠나야만 했을까? 삶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결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고행으로 자신을 내모는 의지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셰릴 삶의 무게중심이었고,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였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뜻한 사랑으로 넘치는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아갈 만했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셰릴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무너진 세계속에서 셰릴의 삶은 방치되고,꼬이고,망가져버렸다. 하지만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가고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생 사랑으로 맺어져있던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갔어도 딸의 내면에서 한줄기 빛으로 살아나 '아름다움의 길'이라 일컫는 밝은 삶으로 이끈다. 셰릴은 그러한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할 때 '내 삶의 상처'인 엄마를 잘 떠나보내지 않는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셰릴의 고행스러운 트레일 여정은 엄마를 애도하는 여행이자, 참다운 나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을 걷는 셰릴

 

 영화를 보면서 육체적 고통과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 안에 되살아나는 과거의 상처로 아파하는 셰릴에게 감정이입하며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과거에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애마 바람이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슬픔을 맘껏 쏟아낼 수 없는 처지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인생을 살다가 몇 번 만나지 않을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건데, 그 상실감을 도화선으로 해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송두리째 올라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인생의 중간정산이라고나 할까. 걸었던 모든 길에서 나의 해묵은 상처와 조우하고 목놓아 울고 난 후 돌아와서는 인생이 리셋되어서 정서적으로 '초기화'된 느낌이랄까 그런 상태가 되어 여지껏 잘 살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물론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삶에 맞추어져 있지만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엄마의 삶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45세까지 살았던 걸로 나온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인생을 긍정하며 늦깍이 학생으로 공부하던 모습의 엄마는 ,결코 팔자가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니 최악의 배우자를 선택한 셈이다. 남편으로부터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아이들 손을 잡아끌어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도망치듯이 싱글녀가 된 엄마. 그녀는 아빠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결핍이 되지 않도록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본다. 그러느라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적인 삶이 그녀의 몫이었겠다. 경제도 책임져야 했기에  집은 늘 가난했다.

 

힘들었던 그녀에게 삶의 커다란 위안이자 힘이 되어주었던 부분이 바로 , 말horse이다.

병원에서 척추종양 진단을 받은 후 그녀가 가장 먼저 의사에게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요?"

 

  그 대사를 통하여 엄마인 그녀에게 승마가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볼 수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와 남매가 사는 집은 변두리나 전원의 허름한 집이다. 그곳에서 말을 키우며 승마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라면 저소득층인 이들이 말을 소유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미국이기 때문에 말 키우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엄마는 살면서 남자옷의 지퍼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만큼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돌보는 데만 맞추고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기쁨과 생기를 부여한 것은 말이라는 존재였나 보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엄마의 유언도 말horse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저 아이(말)를 편안하게 해줘." 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하루하루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덜어내는 순간조차 엄마가 걱정했던 것은 주인을 잃고 남겨진 말의 여생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엄마의 애마는 셰릴의 새로운 상처로 남게 되었다.

말은 병들게 되었고 마지막을 편안하게 지켜주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안락사를 시켜야 했다. 그러나 남매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남동생이 총으로 쏴서 말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나마 말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엄마의 유언과 다른 모습으로 끝난 말의 최후는 셰릴의 상처가 되어 그녀의 기억속에서 엄마와 함께 번갈아가며 나타나 괴롭힌다.

 

그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고 소멸한 사건이 길에서 일어난다. 비가 철철 내리는 여행자 대피소에서 셰릴은 말울음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키우는 백마가 있었던 거다. 그 백마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 밤새 비를 철철 맞고 있었다. 셰릴은 백마를 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건초를 주고 편안히 쉬게 한다. 그 순간 그녀의 오래 묵었던 말에 대한 상처도 치유가 이루어진 듯하다.

 

와일드 촬영중

 

 

영화에서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뱀,여우, 굴레를 쓴 낙타 등등.

동물은 주인공 내면의 상처와 치유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이미지로 쓰였다.

 

비록 짧게 등장했고 보통의 영화관객이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말이란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이나 길게 다루어쓴 까닭은 나 자신이 셰릴의 엄마 연령대 여성으로서 말에게 위안과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주변에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지는 알길이 없으나 말에게서 크나큰 기쁨과 의미를 얻는 중년여성들이 많다. 말은 고마운 존재다.

 

한편 영화 뒷이야기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말의 사촌쯤 되는 당나귀들이 촬영스탭으로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인 산악지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곳 왕래하는 데는 당나귀만한 일꾼이 없다.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왕왕 보았던 엄청난 짐보따리를 등에 지고 동료들과 줄지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의연하게 걸어가던 당나귀 말이다. 촬영장에 필요한 온갖 장비,소품,보급품을 날라서 영화제작에 기여한 당나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와일드> 책을 구입했다. 열심히 읽고 나중에 '문학과 말'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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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KBS [TV 책을 보다] 화제의 방영작 [뉴욕타임스] 베스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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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화를 본 후 여성의 자아 찾기를 심리학적으로 탐색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출판사
이루 | 2013-09-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월경독서]에서 목수정 작가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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