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애호가가 설 연휴에 뒹굴거리며 본 영화 -

 

 

명절 연휴에는 으레 남아도는 시간이 생기는지라 뭐 심심풀이로 볼 영화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설에도 그런 상황이 찾아와서 좀 고르다가 본 영화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사랑게임>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기분좋은 유쾌함에 젖어드는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노팅힐>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랑게임>이라는 영화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아 로버츠 분)는 전형적인 남부 대목장주의 장녀로 태어나 말과 함께 성장했다. 집안의 사업이란 말을 훌륭한 승용마로 키워 각종 대회에 출전시키고  몸값을 높여 판매하는 것이다. 현재 그레이스는 아버지 목장의 마필관리실장 쯤 된다. 마사 안에 즐비하게 연이어진 마방 끝에 그녀의 사무실이 있다. 그레이스는 결혼하기 전에 수의사를 꿈꾸었으나 갑작스레 찾아든 연애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로 결혼과 임신이란 상황에 맞닥뜨리며 그 후로 내내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알게되고서 인생 전체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에 빠져든다.

 

 

그레이스가 '내 인생이 대체 뭔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하고 회의에 빠져드는데, 사실 공교롭게도 남편이 타이밍을 맞춰 도화선이 되어준 것일 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싯점에서 여자로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긴 되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그레이스는 자신이 꿈을 접고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끼고 온통 남편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남편은 사건이 터지고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원상태로 돌아가려 애를 쓴다.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거주하는 그레이스의 집안은 가족 개개인도 모두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가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노령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랑프리 대회에 나가 우승하겠다는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방편으로 남의 몫을 가로채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 알맞지만 열정 자체에는 박

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이다. 남편이 바람나서 괴로워하는 딸에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다독이며 응원을 보낸다. 그레이스 여동생은 화끈하다. 용서를 빌러 찾아온 형부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것으로 응징을 하며 언니를 대신하여 언니보다 더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언니에게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름 꽤 괜찮은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겨졌는데 이런 긍정적인 가풍은 말에 둘러쌓여 살아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말을 기르고,교육시키고, 돌보아주고,그들에게 깃든 재능을 이끌어내려면 공동체에 유용한한 의사소통 방식을 일상적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말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늘 살펴야 하고 겁 많고 소심한 말에게서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소통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타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통찰하는 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자연스럽게 터득이 된다.

 

 

 

그레이스가 깊은 회의 속에서 방황하다가 꼬여버린 자기 인생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발견한 것은 딸 캐롤라인에게서였다. 캐롤라인은 집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말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녀다. 이 소녀의 불만은 자기가 좋아하는 백마를 타고 대회에 출전하고픈 소망이 금지됐다는 거다. 할아버지나 엄마는 소녀의 안전을 생각하여 어린이가 무리없이 통제하여 다룰 수 있는 조랑말을 타라고 한다. 더 커야만 큰말을 타게해주겠다는 거였다. 이에 대하여 영화 초반에 캐롤라인이 엄마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마나 당차고 야무진지 말과 더불어 자란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이랬다. 남부 여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기대치를 아주 적게 가지도록 교육되어왔다고. 남자에게 그 말을 뱉은 후 그레이스는 딸 생각이 났다. 자신 역시 딸에게 네 꿈의 그릇은 작은 것이라고 억누른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그레이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딸에게 가서 큰 백마를 타도 된다고 허락했다. 딸의 기쁨은 너무 커서 자다 말고 일어나 말 타러 나가겠다고 한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그랑프리 대회장에서 증명해보였다. 마지막 고난도 장애물을 넘을 때 캐롤라인의 앙다문 입술과 단호함이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캐롤라인은 엄마 그레이스에게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커다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레이스에게 깨달음이 왔다.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인생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결혼과 양육으로 자신의 꿈을 접었던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훌륭하게 자란 캐롤라인이 그 증거였다. 그레이스는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와 함께 할 인생을 꿈꾸고 선택하였다. 그때  자신의 판단을 믿고 다가온 운명에 충실했던 뿐이고,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배반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한 과거에 그레이스가 14세 이하 선수가 참가하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여 빛나는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자신감도 충전되었을 것이다.

 

 

 비록 3위에 머물렀지만 후회없는 경기를 펼친 아버지.

 

영화에서 자신의 본분을 넘어선 꿈을 추구한 아버지가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과 딸 그레이스가 자존감 부족으로 갈등을 겪다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비가 눈여겨 보아진다. 결국 여성 자신이 딸과 엄마로 자신을 좁게 가두지 말고 더 큰 꿈을 꾸고 매 순간 성취하며 자신을 발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겠다.

 

 

 그랑프리 대회가 끝나고 사람과 함께 최선을 다한 말 선수에게 샴페인을 맛보게 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로 펼쳐지는 대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단, 현실에서 따라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자칫 말 이빨에 유리잔이 깨져 파편이 말 입안에 들어가면 곤란할 테니까. 나라면 말용 실리콘 샴페인잔을 준비할 것 같다. 음료는 달달한 당근주스가 어떨까?

 

대회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성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준 딸의 모습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한 그레이스는 수의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녀가 밝아지면서 불화를 겪던 남편과도 관계가 회복된다.

 

<사랑게임> 영화를 보면서 말이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자존감과 자긍심이란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인도자이며,

 

성장의 동반자라는 것을 내내 생각해보았다.

 

 

 

 

 


사랑 게임 (1996)

Something To Talk About 
0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줄리아 로버츠, 데니스 퀘이드, 로버트 듀발, 지나 롤랜즈, 뮤즈 왓슨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미국 | 105 분 | 1996-01-27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