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사의 새로운 <신데렐라>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로 개봉했다. <신데렐라>라면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는 뭔가 새로움이 입혀져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새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엄마와 함께 영화보는 여자아이들 틈에 섞여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니 대표적인 새로움이라면 주인공 신데렐라가 어디를 갈 때 뚜벅이로 그냥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다닌다

는 점이다. 나는 왕자나 공주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 그들이 어떤 말을 타고 나오는지 유심히 보는 편이다. 그 말이 보여주는 개성이야말로 그 말을 탄 인물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상대역 왕자는 숲에서 처음 신데렐라를 만났을 때 자신을 견습생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견습일을 하는 직업이 훗날의 왕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지만 . 왕자의 말은 견습생(?)의 말답게 듬직하고 성실해 보인다.

 

 보통 동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이 백마를 타고 나온다. 흔히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 라는 말처럼 백마는 환상성의 이미지다. 뭔가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 이미지다. 그러나 이번 <신데렐라>영화에서는 왕자가  백마를 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자가 아닌 여자주인공 신데렐라가 말타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 점이 새로워서  마음에 든다. 신데렐라의 성격은 디즈니사의 전작 <겨울왕국>의 공주자매처럼 주체적이고 강인하고 운명에 맞서 싸우고 개척하는 여성상이다. 신데렐라는 결코 신분상승을 꿈꾸다 운좋게 꿈을 이룬 여성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신데렐라는 수동적이거나 나약하지 않기 때문에 강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 신데렐라가 마구도 채우지 않은 알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신데렐라가 강인한 면모만 지닌 것은 아니다. 내면에는 따뜻한 마음도 지녔다. 그것은 보잘것 없고 하찮은 동물에 대한 배려에서 잘 나타난다. 극중 신데렐라의 절친은 생쥐가족이다. 영화에서 생쥐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이 자주 클로즈업 된다. 신데렐라는 엄마에게서 받은 유언대로 '용기' 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균형이야말로 신데렐라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러한 양면을 통합시키는 이미지를 구현한 말로서 흰 바탕에 검은색이 바위빛깔처럼 얼룩덜룩한 모색의 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신데렐라의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카포테' 라는 말과 너무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루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말은 영혼의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볼 때 파트너인 사람을 어떤 운명적인 상황으로 데려다준다. '데려다준다'는 모티브는 수많은 문학이나 영화의 스토리에서 반복된다. 이번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를 왕자에게 데려다준다. 신데렐라는 숲에서 사냥하는 왕자일행에게 쫒기는 사슴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 후 신데렐라의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바람에 왕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쫒아가 그녀의 말을 멈추게 한다. 신데렐라와 왕자는 그 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고 이끌리게 된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서로의 말 위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로맨틱하고 인상적인  첫만남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훗날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가 로또 맞은 것처럼 신분상승한 바가 아니고 스스로의 내면의 가치를 고귀하게 간직하고 가꾸어온 결과물로서 그녀가 당연히 누릴 지위를 찾아간 것으로 그려진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난 대모요정이나 왕궁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물은 모두 신데렐라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친절과 따뜻한 마음 때문에 그녀를 도울 수 있었다.

 

 

 

 

 

 

 

 부모님의 죽음,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과 훼방 등 신데렐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운명의 장벽은 높았지만 신데렐라가 자신의 고귀함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자기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부정적 의미를 넘어서서 ,신데렐라는 세월이 흘러도 다시 보게 만드는 고전이게 만든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모습의 신데렐라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는 것은 ,말이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 (2015)

Cinderella 
7.4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릴리 제임스, 리처드 매든,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홀리데이 그레인저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13 분 |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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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애호가가 설 연휴에 뒹굴거리며 본 영화 -

 

 

명절 연휴에는 으레 남아도는 시간이 생기는지라 뭐 심심풀이로 볼 영화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설에도 그런 상황이 찾아와서 좀 고르다가 본 영화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사랑게임>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기분좋은 유쾌함에 젖어드는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노팅힐>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랑게임>이라는 영화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아 로버츠 분)는 전형적인 남부 대목장주의 장녀로 태어나 말과 함께 성장했다. 집안의 사업이란 말을 훌륭한 승용마로 키워 각종 대회에 출전시키고  몸값을 높여 판매하는 것이다. 현재 그레이스는 아버지 목장의 마필관리실장 쯤 된다. 마사 안에 즐비하게 연이어진 마방 끝에 그녀의 사무실이 있다. 그레이스는 결혼하기 전에 수의사를 꿈꾸었으나 갑작스레 찾아든 연애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로 결혼과 임신이란 상황에 맞닥뜨리며 그 후로 내내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알게되고서 인생 전체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에 빠져든다.

 

 

그레이스가 '내 인생이 대체 뭔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하고 회의에 빠져드는데, 사실 공교롭게도 남편이 타이밍을 맞춰 도화선이 되어준 것일 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싯점에서 여자로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긴 되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그레이스는 자신이 꿈을 접고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끼고 온통 남편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남편은 사건이 터지고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원상태로 돌아가려 애를 쓴다.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거주하는 그레이스의 집안은 가족 개개인도 모두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가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노령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랑프리 대회에 나가 우승하겠다는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방편으로 남의 몫을 가로채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 알맞지만 열정 자체에는 박

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이다. 남편이 바람나서 괴로워하는 딸에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다독이며 응원을 보낸다. 그레이스 여동생은 화끈하다. 용서를 빌러 찾아온 형부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것으로 응징을 하며 언니를 대신하여 언니보다 더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언니에게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름 꽤 괜찮은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겨졌는데 이런 긍정적인 가풍은 말에 둘러쌓여 살아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말을 기르고,교육시키고, 돌보아주고,그들에게 깃든 재능을 이끌어내려면 공동체에 유용한한 의사소통 방식을 일상적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말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늘 살펴야 하고 겁 많고 소심한 말에게서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소통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타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통찰하는 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자연스럽게 터득이 된다.

 

 

 

그레이스가 깊은 회의 속에서 방황하다가 꼬여버린 자기 인생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발견한 것은 딸 캐롤라인에게서였다. 캐롤라인은 집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말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녀다. 이 소녀의 불만은 자기가 좋아하는 백마를 타고 대회에 출전하고픈 소망이 금지됐다는 거다. 할아버지나 엄마는 소녀의 안전을 생각하여 어린이가 무리없이 통제하여 다룰 수 있는 조랑말을 타라고 한다. 더 커야만 큰말을 타게해주겠다는 거였다. 이에 대하여 영화 초반에 캐롤라인이 엄마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마나 당차고 야무진지 말과 더불어 자란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이랬다. 남부 여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기대치를 아주 적게 가지도록 교육되어왔다고. 남자에게 그 말을 뱉은 후 그레이스는 딸 생각이 났다. 자신 역시 딸에게 네 꿈의 그릇은 작은 것이라고 억누른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그레이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딸에게 가서 큰 백마를 타도 된다고 허락했다. 딸의 기쁨은 너무 커서 자다 말고 일어나 말 타러 나가겠다고 한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그랑프리 대회장에서 증명해보였다. 마지막 고난도 장애물을 넘을 때 캐롤라인의 앙다문 입술과 단호함이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캐롤라인은 엄마 그레이스에게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커다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레이스에게 깨달음이 왔다.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인생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결혼과 양육으로 자신의 꿈을 접었던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훌륭하게 자란 캐롤라인이 그 증거였다. 그레이스는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와 함께 할 인생을 꿈꾸고 선택하였다. 그때  자신의 판단을 믿고 다가온 운명에 충실했던 뿐이고,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배반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한 과거에 그레이스가 14세 이하 선수가 참가하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여 빛나는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자신감도 충전되었을 것이다.

 

 

 비록 3위에 머물렀지만 후회없는 경기를 펼친 아버지.

 

영화에서 자신의 본분을 넘어선 꿈을 추구한 아버지가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과 딸 그레이스가 자존감 부족으로 갈등을 겪다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비가 눈여겨 보아진다. 결국 여성 자신이 딸과 엄마로 자신을 좁게 가두지 말고 더 큰 꿈을 꾸고 매 순간 성취하며 자신을 발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겠다.

 

 

 그랑프리 대회가 끝나고 사람과 함께 최선을 다한 말 선수에게 샴페인을 맛보게 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로 펼쳐지는 대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단, 현실에서 따라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자칫 말 이빨에 유리잔이 깨져 파편이 말 입안에 들어가면 곤란할 테니까. 나라면 말용 실리콘 샴페인잔을 준비할 것 같다. 음료는 달달한 당근주스가 어떨까?

 

대회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성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준 딸의 모습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한 그레이스는 수의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녀가 밝아지면서 불화를 겪던 남편과도 관계가 회복된다.

 

<사랑게임> 영화를 보면서 말이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자존감과 자긍심이란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인도자이며,

 

성장의 동반자라는 것을 내내 생각해보았다.

 

 

 

 

 


사랑 게임 (1996)

Something To Talk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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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줄리아 로버츠, 데니스 퀘이드, 로버트 듀발, 지나 롤랜즈, 뮤즈 왓슨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미국 | 105 분 | 199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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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를 탄 엄마(로라 던 ,분)를 딸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이 끌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에 영화 <와일드>를 보았다. 상영관이 적어서 수소문한 끝에 이웃 시로 넘어가서 보아야만 했다. 그런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내게 감동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말horse이 나왔기 때문에 나로선 덤으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가난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했던 가족.셰릴,남동생,엄마

 

 

<와일드>라는 영화는 2012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체험담이 원작이다. 이 원작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읽고 단숨에 사로잡힌 헐리웃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판권을 사들여 제작,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알려진 장 자크 발레.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려서 알콜중독 어버지의 폭력에 견디다못해 도망쳐나온 어머니,남동생과 살아온 셰릴은 세계의 전부와도 같았던 엄마가 척추종양으로 죽은 후 방황하다가 7년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서 극한의 도보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이 트레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5 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이 구간을 완주하는데 대략 152일이 걸리며, 걷는 동안에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극한의 도보여행코스라 할만하고 '악마의 코스'라고도 불리운다. 여행자는 트레일을 걷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절대 고독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듣기만 해도 '나도 해볼까?'라는 엄두는 커녕 누가 돈주고 가래도 손사래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셰릴 스트레이드는 왜 여자의 몸으로 빈몸도 아닌 30킬로가 넘는 몬스터라 불리는 배낭을 매고 여정을 떠나야만 했을까? 삶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결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고행으로 자신을 내모는 의지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셰릴 삶의 무게중심이었고,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였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뜻한 사랑으로 넘치는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아갈 만했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셰릴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무너진 세계속에서 셰릴의 삶은 방치되고,꼬이고,망가져버렸다. 하지만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가고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생 사랑으로 맺어져있던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갔어도 딸의 내면에서 한줄기 빛으로 살아나 '아름다움의 길'이라 일컫는 밝은 삶으로 이끈다. 셰릴은 그러한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할 때 '내 삶의 상처'인 엄마를 잘 떠나보내지 않는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셰릴의 고행스러운 트레일 여정은 엄마를 애도하는 여행이자, 참다운 나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을 걷는 셰릴

 

 영화를 보면서 육체적 고통과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 안에 되살아나는 과거의 상처로 아파하는 셰릴에게 감정이입하며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과거에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애마 바람이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슬픔을 맘껏 쏟아낼 수 없는 처지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인생을 살다가 몇 번 만나지 않을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건데, 그 상실감을 도화선으로 해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송두리째 올라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인생의 중간정산이라고나 할까. 걸었던 모든 길에서 나의 해묵은 상처와 조우하고 목놓아 울고 난 후 돌아와서는 인생이 리셋되어서 정서적으로 '초기화'된 느낌이랄까 그런 상태가 되어 여지껏 잘 살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물론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삶에 맞추어져 있지만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엄마의 삶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45세까지 살았던 걸로 나온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인생을 긍정하며 늦깍이 학생으로 공부하던 모습의 엄마는 ,결코 팔자가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니 최악의 배우자를 선택한 셈이다. 남편으로부터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아이들 손을 잡아끌어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도망치듯이 싱글녀가 된 엄마. 그녀는 아빠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결핍이 되지 않도록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본다. 그러느라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적인 삶이 그녀의 몫이었겠다. 경제도 책임져야 했기에  집은 늘 가난했다.

 

힘들었던 그녀에게 삶의 커다란 위안이자 힘이 되어주었던 부분이 바로 , 말horse이다.

병원에서 척추종양 진단을 받은 후 그녀가 가장 먼저 의사에게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요?"

 

  그 대사를 통하여 엄마인 그녀에게 승마가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볼 수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와 남매가 사는 집은 변두리나 전원의 허름한 집이다. 그곳에서 말을 키우며 승마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라면 저소득층인 이들이 말을 소유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미국이기 때문에 말 키우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엄마는 살면서 남자옷의 지퍼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만큼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돌보는 데만 맞추고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기쁨과 생기를 부여한 것은 말이라는 존재였나 보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엄마의 유언도 말horse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저 아이(말)를 편안하게 해줘." 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하루하루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덜어내는 순간조차 엄마가 걱정했던 것은 주인을 잃고 남겨진 말의 여생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엄마의 애마는 셰릴의 새로운 상처로 남게 되었다.

말은 병들게 되었고 마지막을 편안하게 지켜주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안락사를 시켜야 했다. 그러나 남매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남동생이 총으로 쏴서 말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나마 말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엄마의 유언과 다른 모습으로 끝난 말의 최후는 셰릴의 상처가 되어 그녀의 기억속에서 엄마와 함께 번갈아가며 나타나 괴롭힌다.

 

그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고 소멸한 사건이 길에서 일어난다. 비가 철철 내리는 여행자 대피소에서 셰릴은 말울음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키우는 백마가 있었던 거다. 그 백마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 밤새 비를 철철 맞고 있었다. 셰릴은 백마를 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건초를 주고 편안히 쉬게 한다. 그 순간 그녀의 오래 묵었던 말에 대한 상처도 치유가 이루어진 듯하다.

 

와일드 촬영중

 

 

영화에서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뱀,여우, 굴레를 쓴 낙타 등등.

동물은 주인공 내면의 상처와 치유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이미지로 쓰였다.

 

비록 짧게 등장했고 보통의 영화관객이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말이란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이나 길게 다루어쓴 까닭은 나 자신이 셰릴의 엄마 연령대 여성으로서 말에게 위안과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주변에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지는 알길이 없으나 말에게서 크나큰 기쁨과 의미를 얻는 중년여성들이 많다. 말은 고마운 존재다.

 

한편 영화 뒷이야기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말의 사촌쯤 되는 당나귀들이 촬영스탭으로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인 산악지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곳 왕래하는 데는 당나귀만한 일꾼이 없다.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왕왕 보았던 엄청난 짐보따리를 등에 지고 동료들과 줄지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의연하게 걸어가던 당나귀 말이다. 촬영장에 필요한 온갖 장비,소품,보급품을 날라서 영화제작에 기여한 당나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와일드> 책을 구입했다. 열심히 읽고 나중에 '문학과 말'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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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KBS [TV 책을 보다] 화제의 방영작 [뉴욕타임스] 베스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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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화를 본 후 여성의 자아 찾기를 심리학적으로 탐색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출판사
이루 | 2013-09-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월경독서]에서 목수정 작가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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