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은 티베트의 라마승과 아일랜드계 혼혈소년 킴이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는 모험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도를 소재로 한 현대 영국 소설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영문학 작품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작품 안에 주인공 킴과 라마승 외에 말장수 마부브가 등장한다. 마부브는 말 판매업 대규모 상단의 대표다. 그의 활동무대나 거래규모는 국제적이어서 마부브는 정치적인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마부브는 자기의 직업상 사람이나 인생에 대하여 꼭 말로 빗대어 발언한다. 그가 던진 말 발언만 작품 속에서 긁어모아도 한 권의 어록이 될 듯하다. 그 중 일부의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킴을 학교에 보내는 문제에 대하여

 

마부브가 말했다.

"어떤 망아지는 아예 폴로 경기용 말로 태어나지요. 가르치지 않아도 공을 쫒는 겁니다. 감각적으로 게임을 알고 있는 그런 말을 무거운 짐을 끄는 말로 만드는 건 큰 잘못이란 겁니다, 나리!"

 

 

 

 

 

 

 킴이 학교에서 무단가출을 하자

 

"인간도 말과 비슷하죠. 염분이 필요할 때 여물통에 소금이 없으면 땅바닥을 핥아대지요. 그 아인 잠깐 동안 길을 떠났을 겁니다.…… 폴로를 하던 말이 혼자서 폴로를 배워보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간 셈입니다."

 

"각하! 그앤 삼 개월 동안 학교에 있었습니다. 조랑말이 게임을 익힌 겁니다.? "

 

  

 

 

 

 

현대의 자동차광 남자들이 과거에 살았더라면 말에 눈이 멀었을 것이다.

 

 

마부브의 말에 따르면 ,백인 청년들은 하나같이 말에 관한 한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꿔서라도 말을 살 것처럼 덤빈다고 했다. 마차역을 따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백인들이 저마다 길을 막고는 얘기를 하자고 덤비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기네들이 타고 가던 마차나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마부브의 말들에게로 와서 다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거나 힌디어를 전혀 모르는 탓에 그게 얼마나 상스러운지 알지 못하면서 이 태연자약한 말장수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마부브와 크레이튼 대령과의 정치적 계약을 이행하는 게임에 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발언.

 

"게임을 하는데 어린 망아지를 묶어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스스로 택한 여행을 제재한다 해도 ,그 아이는 우리의 제재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겁니다. 그러면 누가 그 아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대령 나리.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 태어난 겁니다. 이 망아지야말로 우리들 게임에 가장 적합한 놈입니다.더구나 우리에겐 지금 요원들이 필요합니다."

 

 

 

      

 

 

"그 망아지는 이제 조련이 끝나서 재갈에도 익숙해졌고,능란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나리. 매일 이대로 가둬두고 재주나 부리게 한다면 그앤 결국 재능을 잃고 말 겁니다. 고삐를 풀어주고 내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린 그 아이가 필요합니다.

 

 

 

       

 

 

    

  말 판매 노하우?

 

"오,부크타누의 신들이시여! 아주 잘생긴 녀석이군."

"잘생긴 녀석 타령은 말을 팔 때 써먹는 거잖아."

마부브의 말에 킴이 웃음을 터뜨렸다. 

 

 

 

 

 

<킴>이라는 작품은 모험소설,성장소설이자 구도소설이다. 작가의 관점인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성이 드러나는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킴>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겠다. 나는 성장소설의 관점으로 <킴>을 보았다. 킴이라는 고아소년이 세상 풍파를 헤쳐나가며 커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때 주변 인물을 통해서 소년의 성장은 말의 성장과 자신의 가치실현으로 비교된다. 사람이든 말이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이태리 홀스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로 소몰이 용도로 쓰이는 말 품종 쿼터호스가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쿼터호스 망아지 중에서 본능적으로 소몰이 감각이 탁월한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그 감각을 '카우센스'라 부른다. 그런 말의 혈통은 매우 귀하게 대접받는다.

 

 

 

 

 <킴>에서도 뛰어난 말의 족보가 중요한 기밀문서로 취급되는 내용이 나온다. 승마를 하는 사람은 말마다 재능과 개성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말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말은 팔자가 좋은 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보도블럭에 떨어진 씨앗처럼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없다.

 

 

 

 

 

 

 

 

말장수 마부브가 말한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란 어떤 말일까?

 

과연 그런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잘 맞고 소중한 말이라면,

 

그 말은 나를 만나러 천 년을 기다렸다가 태어났고 , 내 앞에 나타나서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러디어드 키플링 (1865 - 1936)

인도 출생. 1907년 영어권 작가 최초, 역대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

대표작으로 소설 <정글북> <킴>, 시집 <막사의 담시>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동네가 정선해 선보이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성과 시대를 뛰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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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85 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 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저 / 나무의 철학 )

 

 

 

 

*    

 

먹고 살 돈도 빠듯했지만 엄마는 말을 사야만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의 인생을 구원해 준 건 바로 레이디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레이디덕분에 엄마는 아버지를 떠날 수 있었을 뿐아니라 완전히 독립 핳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은 엄마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

 

나는 레이프가 칼을 꺼내들고 붉은 색과 금색이 섞인 레이디의 갈기털을 잘라내는 것을 보았다

" 엄마도 이제 편히 저 세상으로 가실 수 있겠지"

레이프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남매밖에 없다는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 인디언들은 그렇게 믿는대. 위대한 전사가 죽으면 타던 말을 죽이고 그렇게 해야 ( 주 : 갈기털을 잘라내야) 저승으로 가는 강을 편하게 건너갈 수 있다고. 그게 존경의 표시라고 했어. 엄마는 이제 저 세상에서도 레이디를 타고 함께 할 수 있을거야"

 나는 엄마가 레이디의 단단한 등에 올라타고 거대한 강을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엄마는 거의 3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나는 레이프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내게 빌고싶은 소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내가 바라는 건 엄마가 다시 말을 타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레이디와 함께 저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

 

나는 더 이상 ~~ 때문에 놀라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그보다 놀라운 일이 훨씬 더 많았다.

.

.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행복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

.

내가 울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

.

나는 들어왔고 나는 떠났다. 내 뒤로는 캘리포니아가 마치 기다란 비단 장막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더이상 내가 멍청한 바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여전사도 아니었다.

내 안의 나는 이제 강하면서도 겸손하며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그 사슴처럼 이 세상에서 안전했다.

 

 

 *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 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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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점들이 즐비한 역전 제과점의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자영업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들에게는 일의 반대가 휴식이 아니라 손해다. 그래서 그들은 휴일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

.

.

  그러니 어머니가 평생 만든 단팥죽과 팥빙수의 양이 얼마나될지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그 그릇들을 쌓는다면, 아마도 꽤 높은 탑이 되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된다한들, 그 탑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하겠지. 그러고보면, 어머니는 참 여러가지를 만들었다. . . . 단팥죽 맛이 특히 일품이었다. 돈을 받고 팔아야만 하는 것이니 잘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비법은 내가 물려받았으니 나중에 소설이 잘 안쓰여지면 단팥죽 가게라도 차릴까보다. 팥죽을 만들때면 꼼짝없이 잡혀서 나무주걱으로 찜통에서 끓고있는 팥죽을 저어야만 했으니까.

 

  몇 년 전에 몽골에 갔더니 사람들이 마유주라는 것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신기하게 여겼더니 말젖을 짜서는 밤새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면 술처럼 발효가 된다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더라. 그래서 따라가봤더니 술에 취한 아버지들 뒤에서 팥죽을 저을 때의 내 나이 또래의 소년이 말젖을 젓고 있었다. 그 방에는 전등도 없었다.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소년은 말젖을 젓고 있겠지.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으나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모두 똑같은 풍경이라 그게 더 무섭고 절망스럽던 몽골의 평원에서 나는 그 소년을 붙잡고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소설가의 일'중에서

 

 

 


소설가의 일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1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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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몽골의 밤은 깊다. 반구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고, 광활한 초원의 점 하나처럼 찍혀있는 게르 의 촛불은 아늑하고 호젓하다. 빙 둘러 앉으면 그 중심에 술병 하나쯤 놓이게 마련이다. 둘러앉은 여행자들이 한 점을 응시하며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울부짖고, 밤이 칠흑처럼 깊어갈수록 게르 안은 방주처럼 아늑해진다. 술잔을 나누며 지나온 길들을 되새기노라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각자가 가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삶의 수첩들을 펼쳐 놓게 마련이다.

 

  취기에 못이겨 게르 밖으로 나서면, 끝모르게 깊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세상의 중심에서 덩그러니 선 자신을 만나게 된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래바람만이 원귀처럼 울부짖는다. 무어라 악을 써도 그 소리는 이내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

.

.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앗아가는 모래바람과  깊은 어둠에 기대어 여행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꽁꽁 쟁여놓았던 말들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바람은 세상의 어떤 비밀스럽고, 부끄럽고, 저주스러우며 참혹한 소리들일지라도 한 도막도 남김없이 빨아들여 어디론가 날려보낸다.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가슴 속에 쟁여 둔 말들을 통렬히 외쳐볼 수 있었던가. 언제 어디에서 마음껏 비틀거려보고, 가슴을 쥐어뜯어가며 울어보고, 큰 소리로 악을 쓰고, 취해 볼 수 있었던가. 대개 그러한 절규의 끝은 울음이다.

 

  모래바람이 부는 고비사막의 밤은 모든 걸 허용하며, 그 광포한 바람으로 모든 걸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소리도 소멸하고, 형상도 사라진 황야에서 누구도 들을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를 만나게 된다. 고비의 벌판에서 모래바람이 부는 밤이면 , 술잔을 내려놓고 게르 밖으로 나가보라. 걷는다는 생각마저 느껴지지않는 깊은 밤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가슴 속에 꿍쳐 두었던 말들을 바람에 하염없이 날려 보내보라

 

                                                                                             '당신에게, 몽골' 중에서 

 

 

 


당신에게, 몽골

저자
이시백 지음
출판사
꿈의지도 | 2014-07-04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만큼 끝까지 와버렸다면, 이제는 몽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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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원'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살다가 한번쯤은 몽골의 끝도 없는 초원을 밟아보고, 그 땅에서 태어나 자란 말을 타고서 바람처럼 달려보는 꿈을 꾸어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몽골땅을 밟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책갈피에 끼워둔 나뭇잎처럼 마음에 묻어 두었다. 그런 내 앞에 몽골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자꾸 나타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몽골에 간다는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몽골에 가면 뭔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위에 소개한 김연수의 산문과 이시백의 글은 모두 몽골에 갔던 경험담이 소재다. 각각 글의 장르나 다루는 이야기는 달라도 어떤 공통점이 느껴졌기에 한데 모아본 것이다. 공통점이란 바로 내면에 아로새겨진 맺혀있던 감정과의 대면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김연수의 산문에서 필자는 유년의 기억 한자락을 들추어낸다. 역전 제과점 아들로 자란 탓에 일손이 모자랄 때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했던 그 시절 말이다. 솥단지에서 끓는 팥죽을 젓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젓는 일을 게을리 하면 금세 죽이 바닥에 눌어서 탄내가 피어오른다. 어린 팔 근육으로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 아픈 것은 팔뿐이 아니었을 터.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엿보아버린 후에 남겨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감정은 잊혀진 채 지나가버렸나 했는데 몽골에서 밤새 마유주를 젓는 아이를 보며 작가의 가슴에 되살아났던 거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이시백 작가의 사색의 공간은 몽골 중에서도 고비사막에 지어진 게르 안이다. 게르는 유목민의 전통적 이동식 가옥이다. 이런 가옥에서는 바깥의 소음, 자연의 음향이 생생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어서 바깥에서는 바람소리 요란한데 그와 대조적으로 게르안은 사위가 조용하다. 그럴 때 사람은 차단했던 이성의 빗장이 저절로 풀어짐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소리는 내면으로 접속하여 들어가는 암호나 마찬가지다. 평소 겹겹이 두르고 살았던 거추장스러운 생각들이 사막의 바람에 훠이훠이 날려간 듯 마음이 가벼워졌을 때 필자가 만난 것은 역시나 울고싶어지는 맺힌 감정이었다.

특히나 한국땅에서는, 그것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쉽게 울 수 없는 법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 것이고, 아무 때나 울면 고추 떨어진다는 삶의 지침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박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울고싶어지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미 몇 차례 몽골에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엄청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었다. 듣고 지나간 얘기 중에 이런 대목이 떠오른다. 비가 오고 강물이 불었는데 몽골 말몰이꾼이 모는 말무리가 강물 앞에 다다랐고 그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했다. 몰이꾼의 노련한 신호에 따라 말들은 하염없이 몸에 차오르는 거친 물살을 마다않고 강을 건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던가. 그때는 "울었어? 왜?" 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야 그 마음자리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된다. 언젠가 나도 몽골에 간다면 몇 배는 더 울음바다를 쏟아내지 않으려나.

 

'데려다 준다.'

 

 말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주는 존재이다. 물론 옛날에야 아주 오랜 세월 말이 제 등에 사람을 태워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옮겨주는가가 말의 효용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많이 옮겨주는 일에서 다른 대체수단이 생겼으므로 그 일에서 말은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찾아나서고 말에게 빠져들곤 한다. 그 이유를 하나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뭐지? 뭔데 묘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거야?"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비밀 같은 거 말이다.

 

 말은 우리를 깊숙하고 은밀한 내면의 감정과 만나도록 안내한다. 말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보면 내가 말라죽으라고, 숨막혀죽으라고 가두어두었던 내면의 지하실이 열려서 그 안의 것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몽골로 여행을 떠난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작가 두 명이 전하는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글에 실은 사진은 몽골의 사진작가 Oktyabri Dash 님의

' The beauty of mongolia' 에 실린 작품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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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헨릭 시엔키에비츠

 

<간략 소개>

1846년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출생.

 

1896년 <쿠오 바디스> (전 3권) 출간.

 

1905년 노벨문학상 수상.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서사 작가로서 뛰어난 장점을 지녔다. 쿠오 바디스는 교양 있고 자존심 강하지만 타락한 비기독교도와 겸

손하면서도 자부심 강한 기독교도 사이, 에고티즘과 사랑 사이, 황궁의 오만한 사치와 카타콤의 고요한 집중 사이의 대조를 뛰

어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로마의 대화재와 원형경기장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의 묘사는 필적할 이가 없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졌던 이 절박하고 심오한 물음은 시엔키에비츠의 <쿠오 바디스>를 통해 혼돈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영원한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동안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났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불신, 대립과 반목이 난무하고 인류는 환멸과 실의 ,고독 속에 함몰되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단절되고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현대문명의 카오스에 휩쓸려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나침반을 갈망한다.

 

<쿠오 바디스>가 탄생한 지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작품이 여전히 불멸의 고전으로 손꼽히며,시공과 종교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최성은 / 작품해설 중에서 - p.536

 

 

 

 

 

작품의 배경은  폭군 네로황제 시대의 로마제국이다. 로마의 귀족인 비니키우스는 이방의 공주 리기아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도록 예정되기에 이르른다. 그 찰라에 로마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나고 황제를 따라 로마를 떠나왔던 비니키우스는 말을 타고 어둠속으로 폭풍같은 질주를 한다. 사랑하는 리디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극한의 절박한 심경으로 오로지 말의 속도에 자신를 완전히 내맡기고 로마로 가는 상황은 압권이다. 말의 활약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 42장 전체는 비니키우스가 로마로 가서 리기아를 찾아헤매는 상황의 전개로 할애되었다.

 

제 2권 p83.

 

 비니키우스는 두세 명의 노예들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곧 말에 올라탔다. 그는 어둠에 싸여 을씨년스러운 안티움의 밤거리를 지나 라우렌툼으로 가는 컴컴한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끔찍한 소식에 그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머릿속이 몽롱해져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불행'이 등 뒤에 붙어 앉아 그의 귀에 대고 "로마는 불타고 있다!"고 소리지르면서,자기와 말을 채찍질하여 미친 듯이 불 속에 치닫게 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비니키우스는 투구도 쓰지 않고 튜닉 바랍으로 말을 몰았다.머리는 말의 목에 찰싹 갖다 붙이고 앞도 보지 않은 채, 가는 길에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나 장애물은 아랑곳하지 않고,무작정 달렸다. 적막을 가르며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밤하늘에는 별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말도,기수도 달빛을 받아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이두메아 산 종마는 귀를 늘어뜨리고 목을 앞으로 길게 뽑은 채, 사이프러스 나무와 그 사이사이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하얀 별장들을 뒤로 하며 쏜살같이 질주했다. 돌바닥에 부딪히는 말발굽 소리에 놀란 개들이 잠을 깨어 도처에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와 그의 말은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사라져갔지만 ,그가 지나간 뒤에도 개들은 여전히 머리를 쳐들고 달을 향해 짖어댔다.(중략)

 

"로마는 온통 불바다입니다!"라고 외치던 레카니우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리기아를 구출하기는 커녕, 온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도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니 눈이 뒤집히고,미칠 것만 같았다. 비니키우스의 초조한 마음은 어느새 질주하는 말보다 빠르게,마치 불길한 새떼처럼 그 자신보다 훨씬 앞서 날아가고 있었다.(중략)

 

……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가! 대화재와 노예들의 반란,살육! 그로 인해 시민들은 격분할 테고,어쩌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로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 리기아가 있다. 비니키우스의 탄식과 신음소리는 폭풍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헐떡이는 말의 가쁜 숨소리에 뒤섞였다. 말도 사람도 모두 아르데아에서 아리키아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저 도시에서 대체 누가 리기아를 구출할 수 있단 말인가? 비니키우스는 달리는 말 등에 엎드려 갈기를 움켜쥐고,괴로운 마음을 참을 길 없어 말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그때 반대편에서 안티움을 향해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로마는 멸망하고 있소!"라고 소리를 지르며 비니키우스의 옆을 스쳐 순식간에 멀리 사라졌다.순간 비니키우스의 귀에 "신들이여……."라는 외침이 들려왔으나,다음 말들은 말발굽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비니키우스는 그 낯선 사내가 던진 '신'이라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든 채 별이 총총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략)

 

 

 

 

연인을 구출하려는 청년은 캄캄한 밤중에 말 등에 올타타고 미친듯이 로마로 간다. 청년 비니키우스 눈에는 뵈는 게 없다. 밤중이어서도 그렇고 절박한 상황에 주변이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눈뜬 장님 신세의 주인 명령에 따라 달리는 말은 무슨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 리 없지만 찰라에라도 자기 생각이 떠올랐다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주인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말은 말일 뿐이라서 주인이 가자는 곳으로 무작정 제 네발로 달려나간다. 그곳이 전쟁터이든 재난터이든 가리지 않는다. 비니키우스를 태운 말은 불바다 로마를 향해 달려갔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극한의 절망 그 자체였다. 비니키우스와 말은 지옥을 보았을 것이다. 비니키우스가 터질 듯한 심장으로 절망으로 몸부림친 자리는 바로 말 등이었다. 미친듯한 질주의 끝에서 도달한 곳은 낭떠러지나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그러나 말발굽 소리 속에서 비니키우스는 "신"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신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는 새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으로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  그 순간 나의 상상 속에서는 절벽에서 천마를 타고 날아오르는 비니키우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말은 주인을 불바다 지옥을 통과하여 천상에 이르러 신에게 데려다주었던 셈이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신을 받아들이는 장면 이후로 작품의 전개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타락에 가까운 로마귀족이었던 비니키우스가 기독교도 연인 리디아와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신의 가르침 '사랑'이라는 주제에 더욱 다가가게 된다.

 

 

 


쿠오 바디스

저자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12-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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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도미네 (2004)

Quo Vadis? 
8.8
감독
예르지 카발레로비치
출연
파웰 델라흐, 막달레나 미엘카르츠, 보거슬라브 린다, 미칼 바요르, 예지 트렐라
정보
드라마 | 폴란드, 미국 | 144 분 | 2004-12-10

 

 

 

 

 

영화에서는 방대한 문학작품이 생략되어 있어 소설을 다 읽은 후 보았더니 싱겁기 짝이 없었다. 대화재 현장 로마로 말 달리는 장면은 소설과 다르게 대낮으로 설정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미친듯이 달려야했던 말의 괴로움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real)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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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서 발견한 말(馬)

 

 

 

 

'참다운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가?'

 

언제부터인가 이런 문제들이 마음을 온통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젊었더라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서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을 텐데 나이가 들고보니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현실에 매이다보니 그렇다. 하여 나를 발견하기 위한 탐구의 방법으로 문학여행을 떠나보았다.

 

작년부터 고전문학을 하나씩 찾아서 읽는 중이다. 고전이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낡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되는 텍스트를 일컫는다. 거기에는 인간 보편성의 뭔가가 있기에 자꾸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전을 읽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초등이나 중등과정 시절에 '간추린 고전'으로 선행독서를 하게끔 만든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어서 고전에서 다루는 삶의 문제를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진정으로 읽어보아야 할 순간이 도래했을 때, 고전이란 이미 읽은 것이란 착각에 빠져 읽을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생에서 뭔가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휙휙 지나가는 인생의 여러가지 국면을 그저 사진 보관하듯이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니 해결이나 나아가는 방향도 바람부는 대로 몸을 기우는 갈대 같은 건 아닐까 싶었다. 인생을 깊게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갖고 싶었다.

 

그 옛날 그리이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에 대하여 모방충동설로 바라보았다. 문학은 삶의 재현이라는 거다.

'재현'이나 '모방'이라는 개념에 잘 들어맞는 문학의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소설에 대한 여러 정의 가운데 루카치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문제적 개인이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 인식의 여정에 대한 형상화'가 소설이다.

 

그러니까 나는 배낭과 운동화 대신 문학책을 도구 삼아 삶을 이해하는 '자기 인식의 여정'에 참여한 거라 볼 수 있다. 소설 안에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그 동경과 모험,즐거움과 환희로 가득찬 여정에서 덤으로 얻은 전리품이 있다. 인간의 삶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인 말(馬)이 어떤 모습으로 녹아들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아는 말의 삶이란 고작 마방이나 풀밭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학 안에서는 말이 등장인물과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여 인간이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그만큼 말은 사람살이에 긴밀하게 함께 해왔다는 증거이므로 문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보다는 말과 가깝고도 깊은 유대를 맺고 사는 사람이므로 '문학 속의 말'이 드러나는 부분을 추려내어 기록해보고 싶었다. 이 의미있는 새로운 여정의 첫출발을 시작하려고 하니 설레고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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