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에 돌 생일축하를 당겨서 치루었답니다.말은 5세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지요.돌이가 어른이 되다니 감회가 벅찹니다.

 

돌아! 태어나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더 고맙구나!

 

태어나던 날 엉성하게 버티며 서있다가 주저앉아 쉬고는 또 일어나 어설픈 걸음을 떼던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이마가 훤했던 왕짱구,커다란 눈망울,귀여운 입,솜털처럼 날리던 갈기와 꼬리가 사랑스러웠지.

 

또래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말이 돌이를 예뻐하고 잘 돌봐주었죠.

 

돌이가 태어난지 20일 되던 날 망아지 젖먹이느라 힘든 칸타를 타고야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미안한 일이지요.돌이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하염없이 졸졸 따라오고요.

 

돌이 백일잔치.생후 90일 무렵 돌이가 크게 아파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살아나니 백일 축하를 안할 수가 없었답니다.돌이가 입은 옷은 DIY.

 

갓 2세가 되었을 때 돌이는 어떤 거부나 두려움도 없이 의젓하게 할머니를 등에 태워줬어요.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5세가 된 돌이는 의젓하고 늠름합니다.

 

5세 생일파티 패션.사람은 생일파티 때 반짝이가 잔뜩 달린 고깔모자를 쓰는데 말에게 씌우는 건 그렇고 해서 나비넥타이를 매줄까 망토를 씌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간단하게 마스크로 멋내기를 하기로 했답니다.니트마스크에 할머니 악세사리를 대롱대롱 다니 근사하네요.돌이가 멋져보여요.

 

한데 문제가 좀 있더군요.원래 마스크 위에 굴레를 씌우게 되므로 고정이 잘 되는데 마스크만 씌우니 말의 머릿짓에 오래 못버티고 훌렁 벗겨지더군요.

 

어쨌거나 마방 앞에 사진전시회를 하고 돌이 머리에 마스크를 씌우니 생일 맞은 분위기는 한껏 납니다.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돌이는 선물로 여자친구 수아랑 단둘이 실내마장에서 데이트하는 행운을 누렸답니다.물론 여자친구도 멋을 냈지요.

 

어째 마스크 색이 순백인데다 꽃장식,망사까지 드리워진 스타일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신부의 면사포를 떠돌리네요.에라 그래 돌이 장가나 가라.난데없는 결혼식 선포가 이루어지고 주례선생은 누구냐 부케는 누가 받냐 하는 소리로 시끄럽고 승마회원들은 모두 결혼식 하객이 돼버렸네요.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앙드레김 패션쇼의 신랑신부 같지 않나요? 신랑 마스크는 벌써 훌러덩 벗겨지고 없네요.

 

생일에 여자친구와 결혼식놀이도 하다니 비록 즉흥적이었지만 5세 성마기념식에 걸맞는 이벤트였던 것 같네요.

 

신랑 어머니는 이렇게 꾸미셨군요.

 

내가 5년 전에 아들을 낳은 에미라우.

 

마스크가 벗겨져 옆으로 늘어지니 마당쇠 혹은 인디언소년이 떠오릅니다.

 

마방에 들른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돌이 어린시절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그리곤 저마다 돌이 커가는 모습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 사진전시회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친구 수아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멋지게 꾸민데다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놀 수 있으니까요.혹시 이 모습을 본 돌이 다른 여자친구 안개가 속상하지는 않았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네요.

 

잔치음식 1.옥수숫대 자른 것.요즘 옥수수를 계속 수확하고 있어서 매일 옥수수 쪄먹고 말에게도 푸짐하게 주는데 옥수숫대를 한뼘 길이로 잘라놓으니 꼭 놀이공원에서 파는 핫바나 소시지처럼 보여요.원장님 말씀이 "오늘 아침에 내가 돌이한테 생일선물 줬어요.옥수수 잘생긴 놈 몇 개 골라 까서 주니까 잘 먹어요 하하"

 

잔치음식2. 당근.이곳에 사는 모든 말들이 돌이 귀 빠진 덕에 당근을푸짐하게 얻어먹었지요.결혼식놀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피로연음식쯤 되겠네요.

 

이모가 준비한 이번 5세 생일케익은 두부케익이었답니다.마트에서 판으로 산 두부에 딸기잼으로 글씨를 썼지 뭡니까.어찌 이리도 신통방통한 생각을 떠올렸을까요? 몇 판이나 사와서 말 한 마리당 두 모 정도씩 먹었다나 그러더라구요.

 

드디어 모든 사람이 다 모여서 태풍이네가 사온 케익에 5개의 초를 꽂아 불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어요.이 자리에 나타난 남자분들 손에 꽃다발처럼 초록 씀바귀가 들려 있었지요.즉석에서 준비한 생일선물이라나.그걸 보고 깐돌할망 빵 터지고 말았네요.

 

이날 아침에 돌이 옆방에 말 하나가 새로 들어왔어요.마장마술 고급 기능을 보유한 마필인데 이름이 ' 브릿지'라네요.기왕 케익이 있으니 써먹자 해서 입방 축하식도 덩달아했지요.브릿지는 낯선 곳에 왔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이 찾아오고 분주하고 자기에게도 말걸고 하니 호기심이 잔뜩 서린 얼굴을 하고서 혹 '여기서는 날 무척 환영하는구나.내 평생 이렇게 성대한 환영은 처음이야.이곳이 마음에 드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모두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때 브릿지 귀에는 "브릿지 환영해~ 브릿지 환영해~" 뭐 이런 식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렴 어떤가.오늘은 살아있는 모든 말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루이니... 마방복도가 연회장이 되었어요.아저씨들의 불만 "아니 두부는 있는데 왜 막걸리는 없는거야? 말 먹을 건 있는데 사람 먹을 건 없어?" 없다니오? 케익,갓 삶은 옥수수,수박이 있잖아요.

 

장군이도 신났다.오늘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아요.

 

아빠가 손수 두부를 먹여줘서 행복한 축복이.

 

두부와 잼이 만났을 때.유쾌하고도 흐뭇했던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지,어째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지 좀 색다르게 느껴보았던 것 같네요.승마인마다 말과 지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곁에 있는 말은 소중하므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다가간다는 면에선 누구에게나 같으리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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