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가 할머니는 뭐하는 건가 본다.

 

칸타도 마찬가지로 본다.내가 시야에 보이면 더욱 안심하고 편안하게 논다.

 

여름내내 아이들은 팬스 너머로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더 뜯어먹는 재미에 목을 있는 힘껏 길게 뻗었다.목과 등 근육 늘리기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돌이가 5세가 되고나서 어느 날 문득 칸타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몸통도 약간 더 굵어보인다.둘 중에 하나를 기승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한다.칸타를 타고 있는데 "오늘 칸타 안 타요?"묻는 식이다.반대의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텃밭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봄에 심었던 것들이 소임을 다했으므로 뽑아내고 대신 다른 것들을 심었다.우리는 상반기 농사성적이 낙제 수준이라 자진 낙오 하고서 늦여름부터는 밭을 가꾸지 않는다.농사를 하려면 자질과 근면함이 따라야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부부는 영 아니다.자체 평가는 이렇다."우리는 채집스타일이지 경작스타일이 아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새 건물은 미니마장이다.새 건물로 인하여 승마장 전체가 더 안정감 있고 아늑해 보인다.겨울에는 바람도 막아줄 것이다.

 

주변 들판의 색이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옮겨가는 중이다.인근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친 곳도 있다 한다.벼의 품종이나 심은 시기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화들짝 놀라는 심정이다.누군가 말하길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기질은 사계절이 뚜렷한데서 기인한다고 했다.돌아오는 절기에 맞춰 씨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애써 키운 작물이 서리와 찬바람에 상할 수 있으니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사느라 급한 기질이 되었다나.자연의 시간표라면 느림지향적이어야 마땅할 텐데 좀 아이러니하다.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의 분주함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그런 말도 생겼으리라.

 

논으로 둘러싸인 승마장으므로 지금부터 추수하는 때까지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승마할 수 있다.익어가며 물결치는 벼를 바라보고 향기를 들여마시는 말도 최고로 좋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한다.

 

 

류시화 제3시집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란 시가 있다.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로 시작하는 시인데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 등등 사물을 새롭게 보는 시어들이 나온다.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식으로 벼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내가 시인의 마음으로 아무리 마땅한 표현을 찾아보려 해도 영 떠오르지를 않는다.시인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어줍잖은 표현이나마 건져보자면 '벼는 황금빛깔로 포장하여 땅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 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하루하루 수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자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말 입으로 엄청나게 빨려들어간 것은 쌀알이 떨어져나간 볏짚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심은 당근이 벌써 잎이 무성하다.(물론 내가 심지는 않았다.)

 

당근은 '땅이 말에게 선사하는 주황색 선물'...

 

고추도 빨갛게 영글어간다.실내마장 옆으로 고추를 말리므로 우리 아이들도 고추 말리는 구경도 실컷하고 매운 내음도 곧잘 맡으며 생활한다.말 노는 옆에서 고추를 다듬는 풍경이 정겹고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풍경 속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보면서 '손과 입'이란 화두가 떠올랐다.날마다 아이들에게 내손에서 아이들 입으로 당근이며 사과며 커피며 나르는 일이 일상이라 손과 입의 접촉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한번은 손바닥에 따라준 커피를 낼름거리는 칸타에게 시샘을 느끼고 돌이도 열심히 내 손바닥을 핥았는데 하나도 따갑지도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손바닥만한 말 혀를 느끼면서 이 순간은 좋은 감정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입은 주고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일에서 돈독한 관계속으로 들어간다.과거에 나는 얼마나 손으로 말 입을 아프게 하였을까 여리디여린 말 입에게 자꾸 무엇을 달라 얼마나 요구가 빗발쳤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달라고만 했지 양보할 줄 모르던 손의 쓰임새에 대하여 달리 생각한 것은 기승술에만 갇혀있던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때 가능했다.

 

땅은 몸 전체가 손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들인 생명들에게 철철이 자꾸 무엇을 먹여준다.땅이 손으로 먹여주는 무엇을 직접 입으로 받아먹는 상징성이 말이 풀 뜯는 모습에 절제된 시어처럼 담겨있는 것 같다.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땅처럼 말을 한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말 입으로 고삐를 통하여 손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라고 깨닫게 되었다.

 

 

말에게 어떤 손으로 다가가야할지 이 가을 풍경 속에서 바람이 설핏 알 듯 모를 듯한 언어로 속삭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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