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북부지방에서 남편과 함께 제인과 페가수스라는 말을 기르는 홀스맘이자 <알.티>의 열혈독자이신 김유예 님이 우리 아이들 선물을 보내왔다. 유럽 홀스맘들 사이에 인기라는 말 죽제품이다.

 

이 귀한 선물을 어이 멕일꼬 궁리 끝에 마방 점심시간에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마방에서는 당근 하나도 다 나누어주어야지 누구만 줬다간 후환 겪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선물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멕여야 하니 말 이웃들이 건초를 먹을 때 주면 다들 제각각 먹느라 신경을 덜 쓸 것 같아 그리 하기로 했다.

 

평소 오이소박이나,깍두기 버무릴 때 쓰던 스텐그릇이 집에서 출장나왔다.제품 봉지에는 뜨거운 물을 그냥 봉지에 부으라 표시했지만 아무래도 비닐봉지는 온도가 뜨거워지면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엄마는 아이에게 환경호르몬을 먹게 할 수 없는 법이다.포트는 평소 차 마실 때 사용했는데 오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어 네가 참 요긴한 물건이로구나 했다.

 

먼저 봉지를 뜯어 당근그릇에 부어서 대기시킨다.포트에서 끓은 물은 90도 이상이라 60~70도로 식혀주어야 한다.넓은 스텐그릇은 끓는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죽의 재료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물 누른 것과 박편이고 사과도 풍미를 돋구기 위해 첨가되었다.

 

 

물이 적당히 식은 것 같아 (온도계는 재지 않았지만) 죽 재료를 쏟아부었다.

 

재료가 물을 만나니 순식간에 포옹을 하고는 물컹해졌다.

 

김이 설설 피어오르며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니 말에게도 풍미가 전해졌을 것이다.이제부터는 곡물이 소화되기 쉽도록 불면서 미지근하게 식을 동안 기다려야 한다.20~30 분 정도 소요될 듯하다.

 

주걱으로 죽을 휘휘 젓는 동안 소여물죽 끓이는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면 소에게 여물 끓여주는 일이 신기했다.온갖 재료를 버무려 큰 솥에 끓여서 퍼주면 소가 맛나게 먹었는데 보고 있다가 나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소여물은 사랑이었다.우리 조상들이 한 겨울 보내고 나니 충분한 풀을 섭취하지 못해 이듬해 봄에 털갈이도 제대로 못하고 바짝 마른 소를 보고는 가엾어 귀한 옥수수나 콩을 한줌씩 넣어 끓여먹이곤 했으리라.

 

말 또한 본디 초식동물이어서 곡물을 섭취하는 동물은 아니었다.사람과 살게 되면서 일을 시키다 보니 소화부담은 줄여주면서 힘이 딸리지 않도록 먹이게 된 거다.그래서 말에게 곡물을 줄 때 신선한 풀을 못 먹게 한 대신에 일 시키려고 주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스치지만 한편 갈빗대가 보이고 요각이 두드러지면 가엾어서 얼른 살찌라고 입에다 많이 넣어주고 싶은 먹이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이 전쟁이나 교통수단으로 혹사당하지는 않으니 노동을 위한 에너지원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사랑이란 의미가 더 많을 것이다.우리네 조상이 집에서 기르는 소를 가여워하고 아끼던 마음과 똑같이.

 

칸타의 반응을 보려고 죽그릇을 들고 가니 냄새를 좀 맡아보고는 빨리 달라고 앞발을 긁고 난리가 났다.

 

 

 

다른 말들은 남아있는 건초를 먹느라 눈으로만 힐끔거리며 살피는 정도였는데 브릿지는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아예 먹는 일을 중단하고 죽에만 관심을 두고 쳐다봤다.

 

죽이 충분히 식지 않았지만 그냥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미식가 칸타가 새로운 맛에 완전히 빠져서 분석중이다.

 

아마르도 신중하게 이것이 무엇일꼬 하며 아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외에 다른 말들에게도 한 주걱씩 나누어주었다.말들이 만장일치로 "아주 맛이 좋아요!" 했다.

 

그릇의 설거지는 이쁜 딸 칸타더러 하라고 했다.칸타가 설거지 임무를 좋아라 받아들이며 날름날름 싹싹 깨끗하게 그릇을 닦아주었다.오늘의 간식타임 끝~

 

말 죽 쑤는 과정을 구경하시던 이웃 리카다 아빠가 부시럭거리며 말 사과사탕 한봉지를 주셔서 아이들이 디저트로 한 개씩 먹었다.그날 오후 기승운동을 하는데 유난히 기분좋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 지켜보시던 리카다 아빠 크게 소리 높여 외치기를 "역시 점심 때 좋은 걸 멕여서 확실히 틀리네!"

 

 

이태리 김유예 님이 보내온 죽 관련 메일을 본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죽은요,봉지를 개봉하신 후에 1리터의 물 (60-70도)을 그 안에 부으시고 다시 봉지를 닫으신 다음 죽이 잘 불고 말이 먹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한 20-30분) 봉지의 내용물을 그대로 말 밥통에 부어주시고 봉지는 버리시면 되는 겁니다.

 

말 죽이라는게 Mash 라고 해서 독일과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문화로 주성분은 아마씨와 밀겨껍질,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곡물 박편들인데요 칼슘과 인이라는 성분의 독특하게 불균형한 비례율 때문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주면 말의 뼈에서 칼슘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말에게 좋지 않지만 이틀만에 한 번씩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주면 더이상 말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데,그 중 대표적인 장점을 모아보면

 

1. 뱃속에 있는 모래를 비롯하여 우리가 안본 새에 말이 섭취한 모든 위험한 이물질들이 한방에 나온다.

 

2.기승운동 후 건초+사료와 함께 주면 영양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섭취하되,똥배는 절대 방지하면서 근육과 살이 꼭 필요한 곳에 안착되도록 한다.(즉 몸짱을 만들어 주는 거죠^^)

 

3.아주 건강하고 빛나는 외투가 (말 털) 만들어진다.

 

그밖에 소화촉진 등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아 아주 잘 팔리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있는 종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요.올해에는 아기들을 몸짱으로 만들려는 홀스맘들의 욕심에 부합하고자 일주일에 세 번밖에 줄 수 없다는 단점을 곡물을 완전 제외시키고 60가지 알프스산에서 나는 약초만을 원료로 하여 매일 먹을 수 있는 신죽제품을 출시한 Agrobs란 회사 때문에 더욱더 죽 열풍이 불었지요.

 

- 홀스맘 김유예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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