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엄마가 오후반이 되니 클럽에서 자주 보게 된다.어느 오후에 여느 때처럼 아마르와 칸타는 야외마장에서 놀고 있었다.논다기 보다는 우두커니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 것 같았다.수아엄마가 수아를 데리고 나왔다.또각또각 말 발소리가 들리니 우리 아이들이 누가 나오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다 수아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마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엄마에게 이끌려 나오는 수아도 좋아서 출입문에 당도하기까지 걸음이 들뜨고 바빴다.수아는 마장 안에 들어서자 기뻐서 네 다리와 머리를 공중에 낙서하듯이 휘저어 갈기더니 마구 달려서 운동장을 몇 바퀴 내질렀다.마치 태풍이가 수아 안에 들어간 것처럼 늘 익숙하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아마르도 태풍이와 놀 때 그 모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발에 용수철을 단 것처럼 지면을 튕기듯이 차오르는 걸음걸이로 활보했다.김연아 선수가 양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어린 암수말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칸타는 별 동요없이 내면적으로만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곧이어 브릿지가 역시 엄마손에 이끌려 나왔다.수아와는 같은 엄마를 두었다.브릿지는 숫말인고로 아마르와 싸울 것을 우려해서 야외마장 옆에 맞붙은 초보마장에 단독으로 들여보내졌다.초보마장은 최근에 생긴 건축물로 마장의 용도를 생각해서 기승중에 말이 놀라지 않도록 말 눈높이에 벽면을 쳤다.그 덕분에 밖에서 보면 기승자의 머리와 말의 네 다리만 보일 뿐이어서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돌아다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그래서 나에게는 초보마장이 켄타우로스마장으로 인식되어 있다.바로 이곳에서 브릿지는 뒹굴어서 급한 가려움증을 해소하더니 그제서야 밖에 누가 있나 찬찬히 보려고 머리를 들썩들썩 하면서 동향을 살폈다.우리 아이들 역시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기웃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니 브릿지는 자기만 홀로 격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저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하는 모습에서 마땅치 않은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내게는 말의 다리만 보일 뿐이지만 말은 걸음걸이에서도 제 감정을 표현한다.브릿지는 점점 부아가 돋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마르 속에 한동안 잠자던 장난꾸러기 악동 본능이 깨어나 한껏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아마르는 기분이 무척 유쾌했다.엄마와 수아 이렇게 암말 둘이 제 곁에 있고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상대인 다른 숫말이 다른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암말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즐거웠던 게다. 말 세마리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을 유심히 살피자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아마르가 암말 수아에게 스킨십을 잔뜩 퍼붓고 있었다.수아의 귀며 얼굴이며 제 입술이 닿는 곳을 낼름 할짝 부비거리는 것이었다.난 순간 "아니 쟤가 왜 저래? 저렇게 서비스가 친절한 얘가 아닌데 말이지."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수아야말로 '얘가 나한테 웬일이야.이런 모습 처음이야.'했을 것 같다.담장 너머로는 브릿지의 귀가 들썩거리고 눈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풋! 웃음이 났다.아마르는 브릿지 형님 약을 한참 올리는 중이었다. 신나게 수아를 핥아주다가 마장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아마르를 불렀다.다른 때 같으면 못 들은 척 하면서 조는 시늉도 하는데 이 순간 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할아버지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는데 제 흥에 못이겨 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수아와 칸타도 아마르의 뒤를 따랐다.아마르는 할아버지에게 자랑하러 간 모양이다."할아버지 있잖아.내가 브릿지 형님 약 올려줬는데 말야..." 하고서 보고를 하고 - 할아버지는 못 알아들었겠지만 -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마르의 꼬리가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세워지더니 피뢰침처럼 완벽하게 섰다.순간 말꼬리의 생리학적 해부도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저럴 수 있는 건가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꼬리 뿐만이 아니다.목도 높아지고 굴요의 상태가 되고 걸음도 춤추듯 건들거린다.말들이 저희들끼리 놀다가  기분이 좋아질 때 어김없이 우아한 발레리나처럼 변신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태우고 운동 할 때에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아?"

"쟤들은 놀 때만 멋있어요.마장마술 동작을 다 한다니까.사람만 타면 안 그래요."

 

이러한 멘트 속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얼마 전 여동생과 나와 남편이 몇 시간을 보내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대화를 하다가 여동생이 "역시 형부는 최고야!" 이런 식의 칭찬을 했다.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여동생이 뒷자리에서 운전석에 앉은 형부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어 형부! 방금 전에 목 뻐근해서 펴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 했어."하며 처제의 칭찬에 대한 형부의 리액션을 해설해서 잠시 웃게 만든 일이 있다.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기쁨에 넘칠 때 '어깨가 으쓱한다' '우쭐하다''목에 힘준다'하고 하며 기분이 좋을 때 '띄운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런 표현을 한다.말이나 사람이나 신체적 감정표현 상태가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니 내가 기분좋을 때를 떠올려보면 말의 기분도 그닥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체의 동작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존재의 내면적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말을 탔을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개개 연주자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의 자발성을 북돋아서 자질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살아있는 존재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은 동작은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칸타,아마르,수아,브릿지가 놀 때에 말 아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평소의 아마르는 이제 다 커버려서 감정표현이나 장난스러움은 저 멀리 떠나버리지 않았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확인했다.수아도 얌전하기만 하고 운동할 때 역시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말이어서 그토록 벅차오르는 기쁨을 현란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브릿지는 더욱 놀랍다.마방에서 보면 점잖고 영민한 표정을 짓고만 있으니 도를 많이 닦아서 일희일비 소소한 감정은 없을 줄 알았다.운동할 때도 높은 레벨의 말이 갖춘 각이 틀잡혀 있어서 여지껏 다른 여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다.한데 그런 브릿지가 여느 말처럼  부아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수아가 나갔다 들어오면 엘도처럼 기쁨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니 살아있는 존재의 생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말이 단지 마방에 수납되어 있다가 불려나와 사람을 태우고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들어가는 운동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 가지는 존재로서 바라볼 때 그 말에게서 어떻게 하면 자발성,기쁨,성취감,자부심,용기,도전을 이끌어내게 될까 고민이 시작될 거라 본다.능력이 있지만 두려워하는 말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의욕없는 말에게는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될 테니까.

 

* 시시콜콜 할망 유머.

 

한강클럽 말 이름을 못 외우는 이름치를 위하여.

 

아마르 ---> 아? 말?

리카다 ---> 니꺼다

브릿지 ---> 불 있지?

 

유머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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