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와 운동을 할 때 어느 말과 함께 운동하게 될까가 나의 관심사다.그 말이 누구냐에 따라서 운동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돌이 역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장 안으로 들어갈 때 누가 나와있나 꽤 유심히 살핀다.나는 그러는 돌이 표정을 살핀다.

 

돌이의 무료한 일상 중에 오아시스처럼 마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신선한 활력소가 된다.

 

칸타보다도 돌이를 더욱 꾸준히 타던 중에 돌이가 뜨거운 심장을 지닌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 일이 벌어졌다.이 글은 5세 수말 돌이의 심장에 관한 보고서라고 명명해도 되리라.

 

지난 여름 한가한 평일 낮시간에 우연히 코치가 암말 안개 운동시키느라 타는 동안 함께 운동하게 되었다.운동을 시작하자 돌이의 컨디션이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느낌에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돌이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젊은 수말 그자체였다.날이 더워서 구보를 많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돌이는 여차하면 핑계를 대고 스스로 구보 발진을 하기도 했다.이를테면 내가 숨을 크게 쉬었는데 "응 구보가라고 사인준거지?" 하고서 뛰고 자세를 고치느라 종아리를 돌이 배에 갖다댔더니 "응 구보가라고? 알았어 좋아!" 이러면서 또 뛰었다.속으로 '얘가 왜 이러나? 이제 다섯 살도 되었으니 철들어서 운동을 열심히 하려는 게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돌이가 안개와 함께 운동할 때면 피가 끓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말 안개는 클럽말인데 재작년인가 돌이 옆방에서 한두달 지내다가 클럽 마방으로 옮겨가 평소에는 운동할 때나 어쩌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안개는 아담하고 귀염성이 있어서 이모나 이모할머니들이 모여서 애기할 때 손주며느리감으로 손꼽는 암말이었다.돌이도 보는 눈이 있는지 유독 안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가끔 방목하러 내보낼 때 할머니가 방심하면 이때다 하고 클럽마방으로 튄 일이 종종 있었는데 안개를 보러 간 건지도 모른다.

돌이가 5세가 되기 전에는 암말보다는 수말에 더 관심이 많았다.그때는 장난꾸러기의 화신이었는데 암말들은 거의 장난에 관한 유전자는 지니지 않은 듯 놀 줄을 몰라서 심심하기만 했다.수말은 장난치자고 다가갔다가 시비붙는 일로 끝나기도 다반사였지만 수말은 놀이상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삼고 싶어했던 거다.

욘석이 5세가 되더니 여자친구를 밝힌단 말이지 싶어서 웃음이 킥킥 나오기도 했다.아무렴 할머니는 손주 편이니 녀석을 도와주기로 했다.아무 일 없다가도 혹시 안개가 운동하러 나오는 낌새가 보이면 얼른 돌이도 안장매서 나갈 마음의 태세를 갖췄지만 내가 하루종일 승마장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안개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한참 운동하고 있는데 반가운 안개가 마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괜히 기쁜 마음이 들어서 안개가 회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 돌이를 탄 채 안개에게 다가갔다.그랬더니 돌이가 콧등을 안개 콧등에 갖다대고서 언제까지라도 그러겠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안개도 돌이가 싫었으면 "아이 싫어!" 하고 신경질을 팽 하고 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다만 돌이 등에서 바라본 안개 표정은 '이런 곳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하는 난처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말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인사의 상황을 구별하는 모양이다.우리 돌이 상태는 어떤가 살펴보았다.옆으로 보니 돌이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돌이는 심장이 크게 뛰면 콧구멍에 나타난다.놀람,공포,기쁨이 모두 콧구멍 벌렁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다리로 돌이 양옆구리를 느껴보니 복부도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의 생각은 '돌이가 심장을 가졌다'라는 한문장 아이콘으로 떠올랐다.흔히 사랑에 빠지면 내 가슴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사랑의 대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한다.무수한 유행가의 사랑노래에서 심장과 가슴이 뛰는 일을 가사에 담고 있다. 나는 어떤가.이십 대를 지나오자 내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살았는데 말을 만나면서 심장이 아직도 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 후로 지금껏 말을 만나러 가면 어김없이 심장이 약한 정도로 뛰는 상태인 두근거림을 경험한다.그러다 요근래 말 손주녀석의 심장뛰는 몸에 올라앉아 운동하니 참 신기하게도 내몸이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상태처럼 느껴진다.

 

운동이 끝나고 돌이를 목욕시켜서 몸을 말리는 칸으로 가니 이미 목욕을 마친 안개가 있었다.멋진 할머니의 본분에 충실한 나는 둘이서 오붓한 데이트를 하라고 건초를 한아름 가져다 둘에게 주었다.약 1시간 정도는 청춘남녀가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나중에 돌이를 마방으로 데려가려고 그 자리를 떠나려니 돌이가 먼저 또다시 콧등뽀뽀를 안개에게 살짝 하고서 "다음에 만나'하는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났다.

 

돌이 여자친구 중에는 수아도 있다.수아랑은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5세 생일에 결혼식도 올렸다.(궁금한 분은 5세 생일 글을 찾아보면 된다)그런데 돌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수아랑 운동할 때는 평소처럼 느리적 슬리퍼 끌고서 동네 편의점 가는 분위기로 일관했고 도중에 수아가 다가와 먼저 콧등뽀뽀를 했지만 5초도 안되어 돌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전에 위너스라는 클럽에 온지 얼마 안되는 수말과 함께 운동한 일이 있다.위너스는 안개 맞은편 마방에서 사는데 돌이가 무슨 일인지 몇 번 무작정 위너스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린 일이 있다.그 전에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보면 단지 안개 맞은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시샘을 느껴 미리 딴마음 먹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위너스랑 운동을 시작하니 활발했다.주로 안쪽으로 돌려고 하면서 계속 위너스에게 신경쓴다는 것이 느껴졌다.아무래도 저 녀석을 혼쭐내줘야 하는데 거슬린단 말야 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나야 돌이가 활발하게 움직이니 그저 재미있게 운동했을 뿐이고 나중에 목욕하고 말리고 헤어질 때 돌이와 위너스는 신사적인 악수를 했다.이말은 통역을 한 거고 다시 원어로 얘기하자면 돌이는 위너스에게 콧등인사를 하며 상대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어쩌다가는 텅빈 마장에서 나와있는 말도 하나 없고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 혼자 돌이와 운동을 할 때가 있다.그럴 때 돌이 상태는 흥이 하나도 안 나서 발바닥에 본드칠을 하고 겨우 걸음이 떨어지는 말처럼 나아가는데 이럴 때 심장은 어디로 잠시 출장간 것처럼 보인다.그래도 할머니를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니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돌이가 심장이 뛰는 것을 앞으로도 오래 느껴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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