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들 지내고 계신지요? 저도 잘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가 한 달이 넘었습니다. 할망이 이토록 오래 글을 올리지 않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더군요.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 있는지, 어디 먼 곳에 여행이라도 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제가 해외 오지에 여행을 가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글을 올릴 수 없었다는 거였죠. ㅋㅋ~  제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고요,  단지 좀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애마들과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현수막에 적힌 '애마'라는 단어가 확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체문구는 <당신의 애마를 성심껏 돌봐드립니다>. 문구를 봐선 승마클럽에서 내건 자마회원 유치 광고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차 정비업소가 내건 문구였어요. 사회적인 통념으로 '마이카' 와 '애마'가 의미의 동일시를 이루고 있는 셈이죠. 뭐 탄다는 점에선 그렇습니다. 일전에 클럽을 방문한 어떤 분이 이런 저런 말끝에 "저 사모님은 말이 두 대래요." 라고 일행에게 하는 말을 듣고 웃었지요. 겉으로 웃기는 했으나 그런 말을 들으면 언제나 속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계와 생명을 지닌 존재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을 '한 대' '두 대'로 여기는 사람은 필시 말도 차처럼 감정도 없고, 가격에 따른 기능이 있으며, 쓰다가 휙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지요. 그런 사람은 말을 타는 '도구'쯤으로 여긴다는 반발감이 제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던 겁니다. 언제부턴가 '말 = 도구'의 개념에 거부감을 가졌지요. 하지만 '도구'라는 말을 더욱 넓은 의미로 확장해 본다면 꼭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가 생겼어요.

 

 

 

인기 티브이 프로그램인 <무르팍도사>에 소개된 유명 첼리스트 장한나 씨의 일화입니다. 장한나 씨는 한국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 중에 한 분이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다 보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바로 그 시간 속에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장한나 씨는 꼭 비행기 티켓을 두 장 산다고 합니다. 한 장은 당연히 본인이고, 나머지 한 장은 누구 것일까요? 바로 '첼로'의 자리였던 겁니다. 비행기 좌석에 장한나 씨와 나란히 앉은 첼로 장면을 상상하니 , 첼로에서 인격이 느껴지고 존재감이 증폭됩니다. 사실 해외여행 갈 적에 여행가방을 수하물 맡기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이 애잔해지더군요. 나의 체온과 체취가 아직도 남은 채로 어딘지 모를 미궁으로 실려가는 모습이 애처러워서지요. 찾을 때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게나 내던져져서 벨트에 실려 이동하는 짐들을 보면 빨리 내 가방을 찾아서 구출해야지 하는 심정에 가까운 마음이 됩니다. 예전에 한 번은 지인들과 비행기 타고 승마여행 가는데 안장을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가지고 가지 말자'로 났지요. 소중한 안장이 수하물로 당할 '취급'을 생각하니 차마 그리 할 수는 없다는 쪽으로 손을 들어줬던 겁니다. 개인 안장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장한나 씨에게 첼로는 비교불가능한 '소중함' 그 자체일 테지요.

첼리스트의 영혼의 울림을 기교적으로 완성해주는 실체는 바로 악기, 첼로이니까요. 그래서인가 유명한 음악가가 연주하는 클래식 악기는 뭔가 영혼이 깃들어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그렇습니다. 연주할 때 모습이 머리를 악기쪽으로 기대고 감싸안은 모습이어서 그런 느낌이 듭니다. 특히나 첼로는 연인과의 포옹을 연상케 합니다. 우아함, 격정, 떨림,부드러움의 혼돈에 서로의 몸을 내맡긴 연인들 말입니다. 첼리스트의 역량은 당연한 얘기지만 악기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어땠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떨림' 그게 다입니다. 음악가가 발휘하는 예술적 역량은 '도구'인 첼로라는 악기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승마인이 가진 말을 다루는 역량은 그가 타는 '말'에서 구현됩니다. 승마인 사이에서 승마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컬을 때 관용구로 '저 사람 말 참 잘 탄다'라는 말을 씁니다. 제 귀에는 '잘 탄다'라는 말이 '악기를 잘 탄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들리기도 해요. 흔히 악기는 '탄다'라고도 표현하니까요. 승마경기에서 점수는 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말'은 '악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이전까지 거부감을 가졌던 '도구로서의 말'도 의미가 성립한다고 하겠지요. 장한나 씨가 자신의 첼로에게 한 장의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는 것은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프로 뮤지션의 마인드입니다. 말을 타는 사람 역시 자기 말이 최선의 기량을 펼쳐보이도록 아끼고 돌봐주어야 하는 마인드가 겸비되어야겠지요.

 

어제 늦은 오후에 승마장에 가서 칸타를 타고 목욕시키니 6시가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며 뿌리는 비가 사나워서인지 승마장에는 회원이 없었는데 승마선수인 젊은이 한 명만이 말을 운동시키고  목욕시키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말과 인연을 맺고 뼛속까지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그 젊은이가 말 목욕시키는 광경을 몇 번 보았는데 역시 프로스러운 면모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샴푸를 할 때 보통 말 머리는 남기고 샴푸하는데 이 친구는 말의 온 얼굴에 샴푸범벅을 했고 말도 오랜 세월 익숙해졌는지 거품속에서 눈만 껌뻑껌뻑하며 얌전했습니다. 한바탕 '비누거품난리'가 난 후에 닦을 때도 온 정성을 다하는 바람에 관리인이 지나가다가 '너는 말 목욕 한 번 시키는데  무슨 수건을 그리도 많이 갖다 쓰느냐' 고 폭풍잔소리를 퍼붓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보기좋은 광경임에 틀림없어요. 이 젊은이 뿐만 아니라 기승 전후로 말 돌보기에 정성을 다하는 승마인의 모습은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특히 남자는 더더욱! ) 그 모습은 말과 함께 파트너십을 이루어 최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꼭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의도에서 비롯되는 행위니까요.

 

첼로와 애마가 닮았다?

 

각각 악기와 동물이지만 다루는 사람의 기량을 눈앞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다 하겠지요.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도 닮은꼴이라는 점을 아시는지. 말들을 방목시켜놓고 건물 2층에 올라가서 구경하다가 발견했던 사실이지요. 위에서 말을 내려다 보면 머리로부터 꼬리에 이르는 몸통의 윤곽이 꼭 첼로를 닮았지요. 색깔까지도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요?

 

장한나 씨가 부럽습니다. 왜냐고요?

완소 첼로 군과 전 세계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잖아요.

저도 애마에게 비행기 티켓 사주고 싶다고요 잉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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