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

 

   고려원 시문고 008 <흰바람벽이 있어>,1989년,p52

 

백석 시인은 1912년 출생했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며 이후 현대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이다.

 

위의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단지 당나귀가 시에 등장한다는 것 만으로 유심히 읽어내려갔다.온세상이 설경으로 변해버린 시의 배경과 당나귀울음이 빚어내는 시각과 청각의 울림이 마음에 파도치듯 지나가는 동안 이 시가 마냥 좋아졌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가 워낙 동떨어져 있어서 시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시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나만의 심상으로 새롭게 되살아났다.

 

위대한 시인은 갔어도 그가 남긴 훌륭한 시는 살아있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살아가는 모양이다.세상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나타샤가 있으므로.

 

당나귀는 사람도 태우고 짐도 실어나르기에 가장 세속적이지만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한다.성서에도 나귀는 영적 감수성*(아래 참고)을 지닌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그렇기에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으로서 이미지가 나타나는 일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실제 당나귀도 아주 매력적인 동물이다.당나귀의 쉰 듯한 목소리가 응앙응앙 들릴 때 속세의 더러움이나 불길한 기운이 물러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의 시를 다시 볼 때마다 좋은 느낌이 마음 속에서 변주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사랑할 시임에 틀림없다.설경이 배경이지만 이 가을엔 온통 붉은 낙엽천지를 배경으로 상상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바람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암송하여 말타고 오솔길을 걸으며 소리내어 읊어보는 것이다.음~ 낭만 제대로다.

 

 

* 참고: <그리스도 정신 안에서 본 재활승마 실천 고찰>  - 강안나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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