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타와 사료수레...

 

칸타가 사료수레를 찾아간 목적이 바로 이거다.

 

흐음 ~...

칸타가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마방에서 지내다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사료수레 찾아가는 취미생활 한 지가 꽤 되었다.처음엔 우연히 그 곁에 지나다가 사료를 조금 집어먹었는데 그 재미가 좋았던지 중독이 되어서 칸타는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칸타의 새로운 취미생활이 시작될 무렵 내가 마방에 가서 칸타에게 마방굴레를 씌울 때부터 미세한 징후가 있었다.칸타는 어서 마방굴레를 씌우라며 친절하게 머리를 조아려 주었고 눈빛이 반짝거렸다.금방 나갈 생각에 마방문을 조금 열어두면 칸타는 성급한 마음에 콧잔등으로 문을 열어젖히기도 했다."아니야.기다려." 소리에 수그러들기는 했어도 눈빛은 이미 밖에 머물러 있었다.

 

드디어 칸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방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칸타가 떼는 첫 앞발의 움직임은 힘찬 기운으로 가득했다.말이 흔쾌히 따라나서면 사람도 기분 좋아지는 법이다.그러나 순조로운 기분은 잠시 뿐 칸타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수장대가 아니라 사료간이었다.칸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도 빨라졌다.칸타는 뭔가 숨겨놓은 물건을 찾기라도 할 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곡물사료가 담긴 수레로 가서는 '바로 이거야!' 하는 듯이 입을 사료에 푹 파묻었다.그럴 때 나는 무척 당황하며 말을 나무랐고 했고 칸타도 안절부절 못하며 사료를 얼른 한입 먹은 채 재빨리 목적지를 향해 자발적으로 발길을 떼었다.수장대로 가는 동안 안정되지 못한 호흡 때문에 입안에 든 사료가 바닥에 사방팔방 흩뿌려졌다.그럴 때 칸타의 태도는 뭔가 금지된 일을 하는 자의 죄의식에서 비롯된 떳떳하지 못함 때문에  초조함이 강렬했다.아마도 그 순간 칸타의 심장은 벌렁벌렁 강하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으리라.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금지된 일에는 강렬한 유혹이 따르는 법.칸타는 매 번 가슴 졸이면서도 그 일을 그만두기는 커녕 강한 집착에 사로잡혀만 갔다.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칸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칸타의 행동은 규율 위반이며 부적절한 행동이다.마사에서 생활하는 말은 정해진 급식시간에 주는 정해진 사료량 외에 무단으로 취식해서는 안 된다.말에게 사료량이 과다하면 산통도 일으킬 수도 있고 열량 과다로 운동량과의 균형도 깨질 수 있어서다.마주로서 나를 힘으로 강제로 끌고가서 자기가 사료 훔쳐먹는 일에 공범으로 삼는 말을 어이할거나 머리가 아팠다.다만 칸타가 한 입만 딱 먹고서 바로 뒤돌아서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어찌 되었든 난 칸타의 부적절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하여 야단도 치고 요령을 발휘하여 막으려고 애도 써보았다.그래도 효과는 없었고 내가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칸타는 기운없이 주눅들어 보였다.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사료가 먹고싶었으면 그러나 가엾기도 했다.

 

승마장의 다른 말들은 어떤가? 어떤 말도 사료수레에 찾아가 염치도 없이 먹어치우거나 하지는 않았다.심지어 돌이조차 사료수레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오로지 칸타만의 은밀한 취미생활이자 사생활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한동안 지속되자 내 마음에는 변화가 찾아왔다.'아니 왜 말이 사료수레에 찾아가서 좀 집어먹으면 안 된다는 거지? 한두입 먹는다고 배탈날 것도 아니고 말이지.'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거다. 그러자 내가 보인 행동이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내 태도는 마방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앞서서 말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유난스러웠다.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사료수레가 개방된 공간에 그것도 말이 지나다니는 동선위치에 놓여있다는 거였다.그러니 칸타만 야단친다는 건 부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내가 이토록 바른생활 시민이었나 싶었다.선량한 시민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한 가끔 무단횡단도 하고 불법유턴도 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나의 마음에 변화가 찾아오자 칸타의 태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내가 마방에서 칸타를 데리고 나올 적에 노심초사하지 않으니 칸타가 처음엔 사료수레에 갔을 때 의아한 것 같았다.하지만 눈치 빠른 말은 곧 엄마가 그 문제에 대하여 마음을 내려놓았음을 알고 저도 마음을 내려놓았다.칸타의 죄의식에서 비롯된 모든 긴장된 요소가 태도에서 사라졌다.칸타는 아예 퍼질러 서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맘 편하게 먹는 분위기였다.사료수레가 가마솥인데 제 머리가 주걱인 양 휘휘 휘저으며 먹는 장난도 쳤다.사료수레에서 발길을 돌릴 때도 입안에서 흘러내려 떨어지는 사료는 거의 없었다.칸타는 입안에 가득차도록 사료를 취하고는 수장대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천천히 그 황홀한 맛을 음미했다.그 모습을 보니 칸타가 처음에 내 눈치를 보며 불편한 마음이었던 게 내 마음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따로 칸타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설득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나에게서 전해지는 미묘한 기운에서 그 모든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모든 사물은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규정된다는 명제가 이 경우에도 적용되었다.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칸타 은밀한 사생활의 공범이 되자 그 일에 함께 참여하는 의식이 매우 유쾌한 쪽으로 바뀌었다.나 역시 찰라에 남들 안하는 일 하는데서 생기는 재미를 즐기게 되었다는 얘기다.이럴 때 속된 말로 '간이 부었다'가 딱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다.난 칸타에게 "칸타야.맛있니? 왜 이 재밌는 놀이를 아무도 안 할까? 칸타 빼고서 다른 말 다 바보인가봐 그치?"하는 소리를 늘어놓을 지경이 됐다.일이 이 지경쯤 되자 처음엔 무심히 범죄현장(?)을 바라보던 마방의 말들이 교도소의 죄수들이 집단시위하는 것처럼 칸타에게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어떤 식이냐면 말이 머리를 쏘옥 내밀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귀를 바짝 뒤집고 노려보는 행동이다. 그때의 모습을 보면 사람이라면 입으로 욕을 한바탕 쏟아붓는 상태일 것 같다.말들이 보자보자 하니 너무 정도가 넘어서자 "정말 해도 너무한다 너무해! 염치가 다 실종됐냐?" 이런 아우성이 아니었나 싶다.칸타 마방 동료들의 심정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어서 난 매일 마방 전체에 볏짚을 한아름씩 돌리며 인심 아니 마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쓰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칸타와 협정을 맺었다.즐거운 취미생활을 그만둘 수 없다면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때때로 시간이 촉박하거나 사료간 옆에서 장제작업을 하거나 해서 한가로이 사료를 집어먹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그럴 때 마방에서 마방굴레 채울 때 "칸타 오늘은 사료수레 가서 먹을 수가 없어.네가 곧바로 수장대로 들어간다면 대신 내가 좀 집어다 줄게."하고 미리 언질을 줬다.그리고는 마방문을 열고 나올 때 내가 사료수레 쪽에 있는 팔을 들어 - 교통안내원이 깃발을 들어 통행을 차단하듯 - 칸타를 수장대로 유도하면 신통하게도 칸타가 그대로 따라주었다.이모가 찾아온 날에도 이렇게 하면 칸타가 어김없이 지켰다.

 

칸타가 사료수레 찾아가는 취미생활을 하는 동안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말이 함께 교감을 나누는 사람의 마음을 자기 내면에 있는 거울에 그대로 비춘다는 사실이 놀랍다.오래전부터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이번엔 마치 상황을 전과 후로 나누어 실험을 해서 결과를 얻은 기분이다.반려동물은 주인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 같다.만일 주인의 감정이 긍정적이고 밝다면 동물의 내면도 더욱 밝겠지만 그렇지 않고 심한 스트레스로 터질 듯 하다면 동물 역시 그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신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람이 말과 생활을 할 때 말의 모든 것을 손아귀에 통제하려고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처음 내가 승마를 시작했을 때 너무도 커다란 동물을 대하는 일에 참으로 막막한 순간이 많았다.말의 소소한 나쁜 행동에도 내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서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다.이럴 때 승마 선배들은 대부분 말의 버릇을 고치고 의지를 빼앗고 힘조차 빼서 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런 소리를 들으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 말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불안해져서 용납하기가 힘들었다.그 상태에서는 말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하게 되었다.기승운동에서는 고삐를 세게 틀어쥐어 말 머리의 자유로움도 허용하지 않는 식이었다.말과 지내는 세월이 늘어가면서 말의 습성을 알아가고 이해가 깊어지면서 여유로움은 많이 생겼다.그렇다 할지라도 의식의 한구석에서는 말에 대하여 최후의 보루로 놓아주지 않는 영역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지금은 미련없이 그런 생각을 허공에 날려버리련다.진정한 통제는 양보와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살아있는 예가 바로 칸타와 돌이다.

 

자동모드에 의해 운동하는 칸타도 타기에 편안하고 한편 돌이는 클럽 코치로부터 클럽에서 가장 입이 부드러운 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말에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로만 대해도 얼마든지 말 잘 듣는 승용마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말 아이들에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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