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이니 생후 11개월 차이다.

 

깐돌은 유순,온화,명랑한 성격이다.이런 깐돌에게도 지킬과 하이드만큼이나 상극인 모습으로 변신하는 때가 있으니 바로 마방에서 밥 먹을 때다.승마장에서 늘 보는 분들에게는 사전 당부를 해서 깐돌이 밥 먹을 때 접근하지 말도록 조치했으나 간간히 당황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글쎄요. 깐돌이가 밥 먹고 있는데 마방 문턱으로 건초가 흘러나왔더라구요.손으로 집어서 던져줄려는데 얘가 귀를 뒤집구 막 쳐다봐요. 귀는 접혀서 보이지도 않아요.얼마나 놀랬는데요.."
건초 한오라기는 딱 부추 한오라기 정도 크기다. 그걸 가지고 "어디 해보자는 거야? " 이런 식으로 나오니 당황할 밖에..
할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깐돌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씹는 소리를 듣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할방이 마방 앞에 가면 깐돌이 머리를 처박고서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확 덤비며 "우 씨~ 내거야!" 하고 으름장을 한 번 놓고 나서야 다시 먹기에 몰두한다. 먹을 것에 포한이 질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한 장면은 다음과도 같다. 



이 시절 승마장에서는 말들에게 아침,저녁 두끼만 주었다.끼니 사이가 12시간이니 말들이 얼마나 배고프고 무료했을까 싶다. 양을 더 주지 않더라도 두끼분을 세끼로 나누어 주었더라면 말의 위장과 정신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하지 않은 것은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여 일을 줄이자는 것이다.하루종일 풀을 씹으며 지내는 자연상태의 말생활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말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고도 사람에게 봉사를 잘 하라고 바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망아지는 자라는 육성마이므로 하루종일 배고프다. 먹고 뒤돌아서면 또 출출할 것이다. 그래서 깐돌에게 시시때때로 간식 날라다주는 일이 지구의 평화나,세계 경제의 회복같은 문제보다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간식을 들고갈 때는 주변에 나돌아다니는 말이 없는지 확인했어야 하는데 이날은 사료 부어주자 어디선가 바람이가 바람처럼 나타났다.그리곤 뒷골목에서 만난 초등학생 삥뜯는 깡패처럼 깐돌이 머리를 저리 치우라며 으름장을 놓고 허겁지겁 망아지몫의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깐돌에겐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는 것은 바람이의 갈등하는 심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람이는 깐돌이가 칸타가 낳은 자기 조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보호하고 편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다.허나 저 자신도 배가 고프고 먹을 건 눈앞에 있고해서 안 먹을 수가 없어 먹긴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바람이 성격으로 보아 다른 만만한 상대였다면 아예 저 멀리 쫒아버리고 얼씬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눈앞의 깐돌에겐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나나 할방도 이 상황에 끼어들어 바람이를 밥그릇에서 떼놀 수도 없다. 말들 사이의 일에 사람이 개입할 일 아니라는 원칙도 작용했고,바람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애마가 아니던가! 그래도 할방이 "안돼!" 하며 주의를 던질 때마다 바람이는 자기 행동을 멈추려는 몸짓을 한다.그러면서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내가 왜 계속 이러지? 나 꼬맹이 밥 뺏어먹고 싶지 않단 말이야.난 몰라 몰라!' 이 순간의 바람이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첨예한 갈등에 사로잡힌 인물로서도 손색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람아 미안하다.다 엄마 잘못이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엄마가 아이에게 쿠키를 먹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선 쿠키 접시를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곳에 놓고 외출했다. 아이는 갈등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쿠키를 먹는다. 그리곤 죄책감에 사로잡혀 엄마가 돌아왔을 때 흐느끼며 잘못했다며 고백한다.바람이와 내가 꼭 이런 상황에 빠진 것만 같다.

결국 내가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깐돌사료를 다 먹어치운 바람이는 어디로 보내고 다시 사료를 가엾은 깐돌에게 주었다.



그래도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다.깐돌은 밥을 먹으면서 초조한 듯이 앞발로 장단맞추듯 간헐적으로 긁으며 부리나케 먹는다. 또 어디선가 괴한이 나타나 제몫의 소중한 밥을 빼앗아먹을지 도무지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날은 마침 비오는 날이었고 깐돌은 몸통으로는 비를 맞으며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몫의 밥을 얼른 제 위장속에 안전하게 옮기는 일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밥주는 임무도 완수하고나니 내 마음은 한결 여유로와졌는데 때마침 해피네 마주 부부가 마장에 왔다. 온 대기가 축축하니 말 타기는 좀 그렇고 해서 해피와 우리 말 셋을 마장에 풀어놓고 이놈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경마장 마주가 아닌 승마장의 마주 개개인은 이런 사람들이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자기 말을 자식들처럼 아끼고 돌보며 그들과 더불어 웃는다. 좋은 날과 흐린 날을 가리지 않고 말과 생활하기 위하여 마장에 드나드는 진정한 마주들로 인하여 승마장은  말과 사람이 소통하는 생기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가 넓은 곳에 나오게 된 말은 순간 희열에 차서 꼬리를 치켜들고 환희의 뒷발질을 날리며 마구 질주를 한다.따라서 갇혀있던 말을 풀어주는 그 타이밍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또한 신들린 질주를 하느라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말이 아무데나 부딪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험한 것은 치워야 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찌그러진 캔이나 철사 같은 것이 말을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 우리에 갇혀있는 말들은 쳐다보며 부러워한다. 마음 같아선 이들도 풀어주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모든 말들이 나와 엉키면 다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말들은 승마장이나 어느 개인의 소유이므로 함부로 꺼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인이 오지 않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감옥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고 , 말을 소유한 사람은 말 운동시키러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말에 관해서도 점점 해박한 앎을 얻어가게 되는 이치다.

비오던 날로부터 몇 날이 흘러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깐돌은 할머니표 간식을 받아먹는데...



누가 올세라 부리나케 먹으면서 앞다리는 바닥을 긁고있다. 깐돌의 초조한 심리가 나타난 다리로 바닥긁기 행동은 한동안 껌딱지처럼 들러붙어서 밥만 먹으면 그 동작이 자동실행 되었다.그러다 세월이 흘러 더는 나타나는 도적이 없자 그 행동은 그만 두었는데 지금도 경계심은 남아 마방 앞에 누가 나타나면 일단 한번 으름장을 놓게 되었다는, 알고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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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0일의 기록이다.밥을 잔뜩 먹고서 올챙이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를 주체 못하고 이리 뒹굴,저리 뒹굴 모양새가 천하태평이다.

드러누워 뒹구는 것도 힘들어지자 반쯤 몸을 일으켜 쭈그린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깐돌 주니어..이 당시 깐돌은 정오에 낮밥을 먹고는 3시 무렵까지 늘어지게 낮잠자는 일이 정해진 일과였다.옆에서 운동하는 말들이 모래를 튀기며 구보로 달리든 말든 참 잘도 잤다.

마방을 지나가다 보면 성마도 이런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말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졸립고 몸이 늘어지니 머리가 무거워져서 땅에 세워놓았다. 그 다음엔 꾸벅꾸벅 조는 리듬에 맞춰서 머리가 이리 기우뚱,저리 기우뚱 할 것이다.

음냐음냐~ 맛있는 걸 먹는 꿈이라도 꾸는걸까? 옆방에서 칸타가 제 새끼 잘 있나 쳐다본다..

그.그런데..어떤 신호가...

아무래도 일어나야겠다.. 말이 일어설 때는 먼저 앞발로 버티어선다.


아직 비봉사몽이라 깐돌은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휴우~ 일어났으니 자세를 잡아야지..

자세를 낮추어 뒷발굽은 발레리나처럼 발굽끝으로 간신히 서고 꼬리는 최대한 들어올린 후에 ..발사~

쉬가 다 나왔나?

어~ 시워언~ 허다!!!


깐돌의 유년시절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방은 얼기설기 끊어졌다 이어진 철망 울타리가 둘러쳐진 돌투성이 흙바닥이었다.
사냥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도록 유연한 몸을 가진 개와 고양이에 비해서  말은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동작이 꽤 어색하고 불편
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맨땅에서 생활하면 앞겨드랑이나 뒷꿈치 같은 곳이 늘 까지기 일쑤였다.내가 후시딘 연고 같은 것을 늘 상비하고
다녔던 이유이기도 하다.오늘은 여기가 까졌는데 내일은 거기가 아물고 다른 곳에 상처가 나고 해서 꼭 상처와 숨박꼭질 하는
것만 같았다.

말을 사육하기에 너무 열악했던 이 시설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면 깐돌이가 야생에서처럼 자연과 호흡하며 지냈다는 거다.
비오면 비맞고,바람불면 바람맞고,눈오면 눈맞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새들과 벗하며 떠오르는 태양과 달을 바라보며 자란 것
이다.

그런 걸 보면  어떤 비극적인 상황일지라도 한줄기 빛과 같은 축복은 꼭 깃들어 있으니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누추한 환경에서나마 잘 먹고 무럭무럭 몸집을 불려 미래의 승용마로 적합하도록 자라주었던 깐돌이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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