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타가 마방에서 사고를 당해 앞아랫니 세 개가 뽑히다시피 해서 제자리에 다시 박아 와이어로 고정시키는 수술을 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수술후 경과는 좋아서 염증이 없으나 와이어가 살을 좀 파고들어갔다고 했다.이 부분은 다시 한 달이 지나 와이어를 제거하고서 치료를 하면 된다.문제는 칸타 운동시키기다.지금으로부터도 두 달은 입에 재갈을 물릴 수가 없겠고 한파가 계속되는 날씨에 운동장은 꽁꽁 얼어 방목조차 시킬 수 없는 형편이다.실내마장에서 틈나는 대로 조마삭운동을 실시했으나 바깥마장이 얼어버린 관계로 좁은 실내마장이 늘 북새통이어서 그조차도 여의치 못했다.

 

놀고 먹는 백수신세로 휴양하던 칸타의 마음은 어땠을까? 명분이 생겨 사람을 태우지 않아도 되니 마냥 좋았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대부분의 하루 일과는 엄마나 아빠 둘중 하나나 아니면 둘이 방문하여 칸타와 깐돌을 마방에서 끄집어낸다.깐돌이는 요즘 놀새도 없이 바로 안장 매고서 조마삭 돌고 기승운동한다.그동안 칸타에게는 그루밍을 해주며 쓰다듬고 안아주고 한다.제몸을 돌보라고 맡긴 칸타는 깐돌을 비롯하여 다른 말 운동하는 것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되었다.그러다 기승운동에 신경쓸 일이 있어 종종 칸타를 혼자 수장대에 내버려두고 엄마,아빠가 모두 깐돌에게 가버리는 일이 많았다.승용마라면 혼자 대기상태로 기다리는 일도 필요한 소양이라 생각되어 30분 정도는 그대로 세워두었다.어느 날부터인가 칸타가 마방에서 나가기 싫어했다.내가 마방굴레를 들이대면 한사코 회피했다.마방굴레를 쓴다는 것은 밖에 나가 뭔가 활동을 하게 된다는 약속이다.칸타는 바닥에 건초도 없는데 괜히 뒤적질에 몰두한 척하고 철저히 딴데 신경쓰는 척 하면서 굴레를 받지 않았다.칸타 마음을 헤아려보니 나가봐야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괜히 구경꾼 노릇이나 하자니 재미도 없고 소외감도 느껴져 그만 나가는데 대한 의욕을 상실한 것 같았다.

 

칸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아무래도 기승운동을 해야 말이 행복하겠구나 싶었다.그러던 차에 해커모어가 떠올랐다.입안에 문제가 있어 재갈을 물지 못하는 말에게 사용하는 도구라는데 칸타가 바로 이 경우다.용품샵에 주문을 해서 어제 상자가 도착했다.해커모어 셋트는 양쪽으로 볼에 대는 휘어진 십자가모양 쇠 바와 코둘레 가죽 밴드였다.그외에 일반 굴레 한 셋트를 별도 주문했다.깐돌할방은 처음 사용하게 된 해커모어를 집에 가져가 연구해서 조립하는 즐거움을 독차지하려 했었지만 기대와는 어긋나게 되었다.클럽에서 내가 상자를 개봉한 시간에는 무려 7인이 그닥 바쁘지 않은 상태로 배회하고 있어 한순간에 해커모어 주변에 모여들고 말았다.그때부터 어수선하게 떠들어 가면서 실수를 거듭하며 부분부분을 맞춰나갔다.가장 큰 문제는 십자가모양 쇠 각각의 네 구멍에 어떤 굴레끈을 연결시킬 건가와 코밴드의 적당한 위치였다.처음엔 십자가를 정상위치에서 좌로 한 칸씩 회전시킨 상태로 장착을 했다가 겨우 바로 잡았다.이 과제에서 한 명이 정답을 알았는데 다수가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며 확신했던 웃긴 상황도 있었더랬다.아무튼 할방이 하나도 재미없게 해커모어 셋팅이 공동작업으로 완료됐다.그 다음 문제는 칸타가 새로운 물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건가였다.

 

내가 보기에 칸타는 사고당한 후에 새가슴이 됐다.원래 겁많은 소심한 성격인데 더 심한 정도가 됐다.당근 주다가 소음에 적응하라고 일부러 의자끄는 소리라도 내면 멀찌감치 달아나서 그 좋아하는 당근도 포기하니 깐돌이만 수지 맞아서 좋아라 먹기도 했다.할방이 마방에 찾아가 칸타에게 보여주고 마방굴레 위로 해커모어 굴레를 씌워주니 기품있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야 멋진데?" "그거 하니까 칸타 아랍 왕비같다!"이러면서 칭찬해주니 좋은 모양이었다.차분하게 새 물건 적응하라고 한 20분 그대로 두었는데 마방에서 굴레를 씌워둔 상태라 안심할 수 없어 난 계속 칸타를 지켜보았다.칸타는 분명 새물건이 싫지 않았다.해커모어를 느끼고 있는 칸타의 내면에는 새로운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그것을 할방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표현했다.

 

말은 정확히 안다.마방굴레를 쓰면 무슨 일을 하고 고삐가 달린 가죽굴레를 쓰면 기승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해커모어가 달린 굴레를 쓴 칸타는 속으로 '내가 사람을 태우는구나.'하고서 기대에 찬 셀레임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을 느꼈을 거라고 본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칸타를 마방밖 복도에 세워두고 안장을 올려서 모든 기승준비가 끝났을 때 그곳엔 다른말이 서있었다.의연하고 씩씩하며 한점 흐트러짐 없이 자신감에 찬 말이었다.그럴 때 칸타는 암말이라기보다 숫말스러운 중성 느낌이 난다.그 분위기라면 전쟁터에 선봉을 세워도 능히 감당할 것 같았다.복도에서 한 20분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드디어 실내마장에 입성했다.개선나팔소리라도 우렁차게 울려야할 듯하다.

 

그 시각 깐돌은 엄마의 희망찬 새출발을 보지 못한채 마방에 처박혀 있었다.두어시간 전에 내가 깐돌을 마방에서 데려나가는데 마지못해 따라나와 수장대 어귀에서 절대 가지 않겠다고 동상놀이를 시작했다.동상처럼 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 녀석의 눈빛을 보니 '내가 며칠 동안 놀지도 못하고 나가자마자 안장매고 운동하느라 넌덜머리가 난다고요.오늘 안하면 안되나요?'하는 것 같았다.내가 아무리 달리고 꾸짖어도 요지부동이었다.말이 자기의 거부의사를 밝힐 때는 미안하거나 주눅든 표정이 묻어있게 마련이다.허나 돌이는 너무도 당당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나대로 "할머니말을 잘 들어야지 이러면 되겠어?" 하고서 리드로프를 움켜쥐고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뿜어 말눈에 쏘았다.이 정도면 대부분 말은 눈알을 내리깔고 깨갱하는데 녀석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동상이 된 말과 눈빛을 맞부딪히는 여자의 정지동작이 몇분 흘러가고 때마침 원장님이 지나가시다 말 뒤에서 손짓으로 가라가라 흔드니 깐돌의 발이 마지못해 떨어져 수장대로 들어갔다.'난 절대로 들어갈 마음 없지만 뒤에서 하두 그러니 들어주는 거예요'하는 투였다.돌이가 예전같지는 않다.녀석이 머리 한번만 툭 올리면 난 로프를 잡을 재간이 없다.그리고 튀어버리면 속수무책일 텐데 녀석은 할머니인 날 존중하면서 제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다.난 칸타를 마저 데리고 나와 오늘은 널 안 탈 테니 좀 놀아라 하고서 칸타와 깐돌을 실내마장에 밀어넣었다.그랬더니 둘은 좋아라 놀았었다.사람들이 해커모어를 들고 수선을 떨때부터 깐돌은 관심이 많았다.'사람들이 왜 난리들이야? 뭐야?'이러고 내다보다가 결국 엄마인 칸타 운동시키자는 상황인줄 알고서 벌쭘하니 기운이 빠졌다.

 

새로운 마구를 장착한 칸타가 어찌 받아들이는지도 확인할 겸 자유롭게 실내마장을 돌도록 시켜보았다.평보부터 구보까지 돌려봤는데 칸타는 기분이 고양되어서 꼬리를 깃발처럼 치켜들고서 구름 위를 날듯이 휙휙 나아갔다.굴레와 안장을 쓰고서 희열에 찬 말이라니 좀 어울리지는 않지만 실제는 그랬다.칸타는 좀 어색하기는 했으나 입도 편안하고 해서 적응한 것 같았다.

 

드디어 할방이 칸타의 등에 올랐다.그 역시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칸타의 등에 올라서 감격스러웠을 것이다.애초에는 오늘이 처음이니 설렁설렁 맛이나 보고 내려와야지 했는데 칸타가 잘해주니 구보까지 신나게 하고서 내렸다.구보를 너무 좋아하는 칸타도 달리는 내내 기분좋은 '푸르륵~'을 연거푸 해댔다.정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칸타가 재갈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그만큼 자연스러웠다.

 

나중에 할방의 해커모어 기승 후기를 들어보니 콧잔등을 눌러 제어하는 방식의 해커모어는 말힘을 제압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만일 무진장 힘자랑을 하며 내리쏘는 말을 탔다면 그 힘을 감당할 수는 없겠다고 했다.괜히 기수도 덩달아 고삐를 잡아당겨 힘자랑을 했다간 말 코뼈나 부러뜨리겠다 싶어진다.해커모어 코밴드는 말 코뼈가 점점 좁아지다가 양쪽으로 함몰되는 바로 윗부분에 걸쳐지므로 말 신체의 약한 부분에 작용하는 거라 볼 수 있어서다.칸타는 입이 부드럽고 스스로 사람을 태우려는 의지가 있어서 해커모어가 무리를 주지 않았다.

 

칸타의 트레이드마크인 '달려라 하니'처럼 구보하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했다.아픈말이 털고 일어나 복귀하여 보이는 모습에서 생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광축구팬이 열광하던 축구스타가 오랜 부상을 딛고 그라운드에 복귀하는 모습을 볼 때와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새해 새아침에 칸타가 불의의 사고를 털고서 아빠를 태우는 모습은 내 가슴에도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뭔가 의욕을 불러일으켜 열심히 살아야할 것 같은 힘이 솟아난다.밤에 칸타를 탄 날은 늘 그렇듯이 후즐근하게 피곤한 몸을 누인 할방이 그런다."우리 아이들은 사람 태우는 일을 좋아할까? 참 신기하지!" 그 말을 한 후에 생각에 잠긴 듯하던 할방은 오랫만에 쉽게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칸타는 천상 승용마인 것 같고 깐돌은 종종 땡깡을 부리지만 사람을 태운 후에는 어김없이 다소곳하고 자부심을 느끼는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서 의젓했다.이 순간들이 홀스맨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마구라는 것들이 사실 말 괴롭혀서 말 부려먹자는 의도에서 고안된 물건이기도 하지만 좋은 마음을 가진 말과 사람에게는 고마운 오작교가 되어준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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