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도 겨울은 기세등등하다.

 지난 11월부터 세마장에서 물로 씻어내리지 못한 말의 몸은 꼬질하기 이를데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어디가 가려운 느낌이 드는데 말은 오죽하겠나.

 

그래서인지 겨울이 길게 흘러갈수록 말 아이들이 밖에 나와 모래목욕 할 때 

그들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즐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모래목욕을 하기 전에 자리를 잘 골라야 한다. 뾰족한 돌멩이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또한 신중하게 킁킁거리는 모습에서

혹시라도 방금 다녀간 맹수의 냄새라도 남아있지 않은지 안전을 도모하는 느낌도 받는다.

혹시라도 근처에 맹수가 매복하고 있다면

모래목욕 한 번 하려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사람이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어서 맹수 따위가 나타날 리 없다.

 뒹굴기 전에 늘 자리를 고르는 말의 행동에서 조심성이 많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자리를 선택한 후 괜히 핑그르르 제자리 돌기를 한 바퀴 하기도 한다.

그 후엔 들고 있던 보따리를 손에서 놓았을 때

땅으로 꺼지며 풀썩 널부러지는 듯한 순서를 밟는다.

 

 

 

 

 아마르는 지금 세배하려는 게 아니고요.

육중한 몸통을 땅에 내려놓으려는 목적을 위하여 먼저 앞다리를 꿇은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몸통을 옆으로 쿵 쓰러뜨린다면 충격이 와서 아플 것 같다.

 

 

 

 

 무사히 무거운 몸을 땅에 부려 놓았다.

 

 

 

 

이제 본격적인 모래목욕 시작이다.

하는 요령은 굴곡이 있는 신체 부위의 표면을 최대한 모래에 비벼대는 것이다.

 

 

 

 

잠시 뒤집어진 말의 몸을 좀 관찰해보자면 배 아래에 검은 구멍이 보인다.

혹여 배꼽이 아닌가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위인 (아마르가 절대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음) '고추'가 들어있는 케이스 입구다.

 

안경은 안경집에, 연필은 필통에, 칼은 칼집에 담는 것처럼

손상이 우려되는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이치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필요한 경우에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니 얼마나 효율적인 구조란 말인가.

팬티라는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입지 않아도

'보호'와 '가림'이라는 기능에 저토록 충실할 수 있다니 놀랍다.

 

한여름에 말이 더위에 지쳐 고추를 있는 대로 늘어뜨렸을 때

얼마나 '기럭지'(기럭지란 말을 이런 데서도 쓰다니) 가 긴지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거대한 기럭지가 사진속의 납작한 배 안에 감쪽같이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면 신기할 뿐이다.

 

 

 

 

암말의 경우엔 수말의 검은 구멍 위치 양편에 젖꼭지 두 개가 돌출되어 있다.

암말은 중요한 부분을 평소 꼬리로 잘 가리고 다닌다.

 

 

 

 

말이 모래에서 뒹구는 목적으로 목욕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세탁이다.

 

말은 털이 옷이다.

봄에 지난 겨울의 묵은 털을 모두 벗어버리고 새털이 자라나는데

여름에 길이가 가장 짧아서 마치 그냥 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면 털이 점점 자라나서 겨울엔 두툼한 코트가 된다.

 이 코트에는 마방에서 묻은 오물, 제 몸에서 떨어져나온 각질 등으로 더럽혀지기 마련인데

모래목욕 할 때 모래와 마찰하면서 떨어져나간다.

 

말이 몸통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모습과

내집 세탁기가 이리 빙글 저리 빙글 하는 모습은 뭔가 비슷하다. 

그렇다면 아마르는 모래에서 드럼세탁기 놀이를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방목을 시키지 않아 모래목욕을 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다른 말을 관찰하니

몸에 엉겨붙은 각질이 많았다.

 

 

 

 

 

볼일이 끝났으면 잘 일어날 일만 남았다.

이 순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말이 몸 일으키는 동작에서

아픈 다리는 힘주어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지 않더라도 더 강한 다리를 사용하여 일으키기를 한다.

 

말은 다리가 네 개이므로 상황에 따라 불편한 다리는 아끼면서

 나머지 다리를 좀 더 사용하여 효율성을 도모하려고 한다.

 

아마르는 왼쪽 앞발을 지팡이처럼 땅에 짚는 첫동작을 시도했다.

 오른쪽 앞발은 최근에 염좌를 앓았던 터라

 나름 아끼는 모양이다.

 

 

 

 

 

 마방에서 처음 꺼낸 말이 다리가 아프지는 않은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만져 열이 나는 부위가 있나 확인하고 ,

 끌고 나가면서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운가를 보고 ,

그때 바닥에 차례로 디뎌지는 발자국 소리가 규칙적인가 들어본다.

 

 

 

 

 앞다리 한쌍을 지지대로 세운 후에

 

 

 

 

끙! 하고 힘주어야 하는 후구 일으키기

 

 

 

 

 

 

다 일어난 후에 동상자세로 마무리하면 모래목욕 끝!

보통의 매뉴얼에서는 몸을 부르르 떨어서 모래를 터는 깔끔함을 과시하는데 이날은 생략하고 넘어갔다.

 

 

 

   

 

 

다음은 기쁨의 세레모니를 할 차례.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머리를 흔들고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점프도 하고

 

 

 

깡총거린다.

 

 

 

아마르는 기분이 좋아진 채로 엄마인 칸타가 뭘 하는지 궁금해졌는지

 자석처럼 끌리듯 다가갔다.

 

 

 

아마르를 보면서 어린 아이와 말과 강아지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어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

 

1. 사안의 중요성으로 보아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달려간다.

 

2. 가만 서있다가 걸음을 옮길 때 괜히 확 출발한다.

 

3. 걸핏하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동작을 한다.

 

4. 시시때때로 이유없이 신바람이 난다.

 

5. 작은 구멍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방의 벽을 이루는 나무 판자에 틈이 생기면  '너 잘 만났다' 하고

 하루 종일 물어뜯어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쿠션에 작은 틈이라도 벌어지면 강아지는 기어코 물어뜯어서

쿠션의 내장이 밖으로 다 나오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다.

 

 어린 아이는 어떤 사물에서 풀려나온 끄트머리가 있으면

기필코 잡아뜯어 해체하는 재주를 발휘한다.

 

어른이라면 이 모든 경우에 어떻게 하면 메꾸어서 원상대로 돌려놓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오늘도 아마르는 괜히 혼자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목욕 습성, 세탁 습성이 있다구요!

 

 

 

 

아마르가 우리를 보고 다가오는 순간에

 

 

 

 

 

어디선가 홀연히 불어온 바람이 아마르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빗겨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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