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눈을 뜨고 몽롱한 시간이 좀 지난 후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면 가슴엔 새로운 희망이 차오른다. 그 힘으로 하루를 살고 또 살고 한다.

 

 실내는 찾아드는 겨울햇빛으로 넘쳐난다. 햇빛이 가득한 실내마장에 가족이 다 모였다.

 

 사진을 바라보니 그 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날 이후로 칸타와,아마르는 동시에 똑같이 오른쪽 앞다리가 아프게 되어 붕대를 감고 쉬게 되었다.

 

 마방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신세가 된 아이들을 보니 건강하게 뛰어다니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가 간절하게 그립기만 하다.

 

 새해의 첫 이벤트가 수의사 방문진료라니 전혀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올해 좋은 일이 벌어지려고 액땜하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보았다.

 

 아이들은 아픈 부위의 고통도 있겠지만 운동도 못하고 견뎌야하는 상황이 괴로울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낫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리라.

지난 십 년 내내 겪어온 일이라 단련이 되었으련만 마음 아픈 질감은 다르지가 않다.

칸타와 아마르가 동시에 같은 다리가 아프고, 내 마음이 아픈 것을 보면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땐 이런 말을 떠올리곤 한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견디는 일'의 의미를 불러와야 한다.

쉽사리 힘듦을 잊고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겨울의 한가운데에 접어드니 한 달 넘게 목욕하지 못한 까닭에 칸타도 꼬질꼬질하다.

꼬질하면 어떠랴. 나비처럼 팔랑팔랑 걸어다닐 수 있다면야.

 

 칸타의 왼쪽 뒷다리는 과거에 코끼리만큼 부어올라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게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도 붓지를 않는다. 얼마나 감사한가.  모든 상황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칸타의 표정이 밝으니 좋다.

 

 아마르는 내가 칸타에게 집중하는 틈새를 노리고 어느새 한눈을 팔고 있다.

 

 그럴 때 다가가 눈짓이나,손짓을 보내면 아마르가 '압박'을 느끼고 '아,내가 조마 도는 중이었지!'하고  흐름에 따른다. 때로는 할머니라고 개무시하기도 한다.

 

 둘을 함께 조마시킬 때 나는 매우 섬세해져야 한다.

 

아이들은 쉽사리 기쁨에 사로잡혀 난데없이 질주하거나 어딘가에서 급정거하는 행동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활발한 걸음걸이를 재촉하면서도 과격한 달음박질을 하지 않도록 자극하지 않아야 하기에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며 끊임없는 신호를 날려보내야 한다.

 

이 공간에서 나와 아이들 사이에 무수한 교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흔적을 점으로 표시한다면 은하수와도 같은 별의 강이 흐르리라.

 

 아마르가 나를 개무시했을 때 나도 개무시하고 칸타에게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아마르는 '할머니가 엄마랑만 노네' 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얼시구나 하고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어유 와쪄요!" 하고 받아주지는 않는다. 도도녀 할머니는 튕긴다. "너무 들이대지 말란 말이다!"

 

 돌아서는 도도녀 할머니를 졸졸 따라가는 아마르.

 

그 둘에게 유쾌한 시선을 보내는 듯한 칸타.

 

 

아이들 앞에는 난로가 있고 승마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쬔다.

그러는 사람들 앞에 다가와 사교를 청하는 말들은 우리 아이들 뿐일 거다.

 

혹 이런 경험 해보셨는지?

 

말이 다가와서 사람에게 말을 건다.

 

말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말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2015년 깐돌할망의 화두이자 말 탐구 주제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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