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다가 턱 밑에 늘어진 로프를 밟고 펄쩍 일어설까봐

 로프는 귀 뒤로 넘겨 올려놓았다.

 

가끔 칸타가 귀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럴 때 그렇게 느껴진다.

 

 

 

 

 

 

 

​기승운동이 끝나고 보리밭에 갔다.

보리밭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와 칸타 뿐이었다.

요즘엔 보리밭에 우리만 있을지라도 칸타가 느긋하기 때문에 이날도 그럴 줄 알았다.

 10여분이나 지났을까, 칸타가 머리를 높이 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 내 눈높이에서 올려다보는 칸타의 얼굴은 까마득하게 멀다.

 

 칸타가 입에는 보리싹을 문 채로 얼음이 되었길래 대체 뭘보나 시선을 따라가니

멀리 떨어진 논에서 사람 너덧 명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칸타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해독되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바짝 긴장한 것이다.

로프를 흔들고 서있는 자세를 바꿔주어도 긴장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마장에서는 토요일이라 많은 사람이 말타고 있었다.

만일 칸타가 긴장을 못 이기고 뛰어들어간다면 갑작스런 상황에 다른 말이 놀랄 수도 있었다.

 

칸타에게 마지막으로 "풀 먹을래? 들어갈래?" 물으니 들어간다고 마방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럼 그러자꾸나." 나는 순순히 칸타의 바람을 존중했고,

우리는 좀 서두르는 걸음이긴 했지만 마사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가자 입구쪽으로 막 운동을 하려는 말,운동 마치고 들어온 말이 섞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일찌감치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마르와 할방님도 만났다. " 어 벌써 들어오네." 하는 말을 말을 남기고 둘은 보리밭으로 총총 사라졌다.

 

 

 

 

 

 

​칸타는 잔칫집에 갔다가 막 상에 앉아 먹으려는 찰라 갑자기 일어나 나와서 집에 오게된 격이다.

 칸타가 아쉽겠다 싶어 볏짚을 좀 갖다주고 먹으라 했다.

그날 따라 볏짚은 질기고 뻣뻣해서 맛이 없어 보였다.

칸타도 구미에 당기지는 않았지만 달리 할일도 없어서 의욕없이 그저 우물우물 씹어댈 뿐이었다.

한참 칸타를 바라보니 그 얼굴엔 생각이 많아보였다.

'내가 왜 일찍 방에 들어온 걸까? 아마르는 지금쯤 배터지게 보리싹 뜯어먹을 텐데 ……'

 

 

 

 

 

 

 

​다음날 다시 칸타를 데리고 보리밭에 갔다. 운동 끝나자마자 곧바로 직행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몸에 마구가 채워져 있을 때 말은 더 안심하고 순응한다.

어제처럼 농사짓는 사람이 언뜻언뜻 보여도 칸타가 긴장하지 않도록 운동하던 행색 그대로 데리고 온 것이다.

칸타는 어제보다 더욱 편안했다.

보리밭 가장자리쪽으로는 웬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일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아저씨가 "나도 옛날에 소 키웠는데 …" 하고 말을 걸어와서 알게된 사연인즉,

서울 사는데 김포에 땅을 사두는 바람에 종종 들러 그 땅에 묘목 심어놓고 관리하는 거라고 했다.  그분이 바로 지주였다.

 

사람 태우던 말을 데리고 나와 풀 뜯기는 모습도 흔한 풍경은 아닌지라

지주는 처음에 우리를 힐끔힐끔 보다가 나중엔 아예 다가와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가까이에서 말 구경도 하게 되었다.

아주머니도 화장실 드나드느라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한마디씩 살가운  얘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 뒤로 칸타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승마장 쪽으로 가까운 보리밭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는데

아저씨,아주머니랑 대화를 주고받은 후엔 활동반경이 넓어져서 그분들이 일하는 경계선까지 진출했다.

칸타의 심리는 이렇다.

1. 엄마랑 말 섞는 걸 보니까 믿어도 되겠다.

2. 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어.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분들이 하던  작업의 내용은 이것이다.

 작년에 사다가 심은 감나무가 잘 자라도록 훗날 풀을 뽑아주어야 할 텐데 자주 못오니

어린 나무들이 자라는 땅에 전체적으로 검은 비닐을 씌우는 거다.

그러면 햇빛을 받지 못한 풀이 자라지 못하는 이치다.

 

 

 제초제를 확 뿌리는 방법도 있지만 옆에서 말 키우는데 해가 될까봐 차마 그럴 순 없노라고 했다.

마음씀씀이가 참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데 말들은 검정비닐을 무척 두려워한다.

색깔 때문에 그렇다.

얼마 전 승마장 안의 세마장 바닥에 검정 고무판을 깔아뒀는데 처음 들어가는 말마다 놀라서 덜덜 떨고 난리가 났다.

 칸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칸타가 검정비닐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보리싹을 뜯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서산에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어서 오늘 안에 집에 돌아가야 하는 그분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검정비닐을 '펄러덕 '소리가 나게 공중에 들쳐서 판판하게 깔았다.

그 소리와 광경이 꽤 자극적이었는데도 겁쟁이 칸타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마르도 운동 끝나고는  목욕을 시원하게 하고 밭으로 나왔다.

아마르는 아까 낮에 검정 비닐 옆에서 둔감화훈련도 하며 적응하도록 했었다.

그런데도 옆에서 비닐이 펄럭 하는 기미가 보이자 움찔하며 '이크' 피하는 시늉을 했다.

할방님이 아마르를 데리고 비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섰고 ,칸타도 그쪽에 있지 말고 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칸타는 검정비닐 옆에 오래 머물고 싶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제와 너무 다른 칸타의 변신에 웃음이 나왔다.

 

 할방님과 그 소감을 주고받기를 ,

아무래도 칸타가 엄마의 신뢰를 얻으려고 자기가 얼마나 용감한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중인 것 같다,

어제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서는 후회를 엄청 많이 했나보다, 뭐 이런 얘기 등등을 했다.

 

                                             (이날 낮에 승마장 주변으로 산책나갔던 아마르 모습

 

 

 

아마르도 예민하게 굴다가도

동네 한바퀴 돌고 오면 눈이 초롱초롱 해져서 어지간한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히 운동한다.

 

 

 

 

 

 

 

밖에서 좀 센 환경적 자극을 받아들이고 오면

승마장 안에서는 경계도,긴장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칸타도 요즘 자주 보리밭에 나가 놀다 들어오니 야외 운동장에서 운동할 때

바람이 불고 비닐이 좀 펄럭거려도 긴장하지 않아서  훨씬 수월하고 내 마음도 평안하다.​

 

 

 

 

 

 

아무튼 겁쟁이 우리 칸타가 요즘 '또 언제 보리밭 가나!' 하고

기대하고 얼른 따라나서는 모습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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