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는 얼굴의 앞면만 마스크 쓴 것처럼 남기고 몸 전체에 난 털을 시원하게 밀어냈다.

 

 

​칸타는 얼굴 앞면과 다리를 남긴 채 털을 밀어냈다. 워낙 예민한지라 진정제 주사를 맞고 삭모했는데도 얼굴과 다리까지는 건드리기 힘들어서다. 자칫 무리하게 하려다간 삭모기 날에 피부를 다칠 수도 있으므로 애써 다 밀려고 할 것까지는 없겠다. 다리털을 밀지 않으니 롱부츠라도 신은 것 같아 나름 보기에 좋다.

 

 

 

​아마르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이고, 칸타는 처음 삭모를 하는 것이다. 내 소신으로 말하자면 '자연 그대로가 좋은 것이여~' 이기 때문에 해마다 조금씩 빠져나오는 털을 솔로 제거해주는 일을 재미삼아 누려왔다. 십여년 전 처음 말을 탔을 때 봄날 사쿠라(왠지 벚꽃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찐한 느낌이 온다) 꽃잎이 난분분 흩날릴 때 ,내가 타고 있는 말의 털이 훌훌 날려서 꽃잎과 섞이고 바람에 실려가던 광경이 낭만적인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가 말털을 기계로 순식간에 낙화처럼 바닥에 뚝뚝 떨구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다.

 

 

                                   (​클럽말 조이, 삭모하는 중)

 

 

 

​그런 내가 올해부터는 매년 이맘때 삭모를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고, 말 입장에서도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삭모 후 '클로르헥시딘클루콘산염액' 이라는 성분이 든 약용샴푸를

                         물에 희석한 것을 몸에 잔뜩 바르고 그 상태로 10분 기다리는 중인 아마르)

 

 

                                  ​(샴푸목욕 도구들) 

 

 

 

(약용샴푸 목욕이 끝나고 몸을 말리며 간식을 먹는 칸타, 복대가 지나가는 아랫배에 하얀 점이 '윤선'이란 피부병이 발생한 자리다. 비늘딱지처럼 생겼는데 항균연고를 잔뜩 발라놔서 하얗게 보인다.)

 

1. 피부병의 조기발견과 빠른 치료를 위하여

작년에 아마르가 태어나 처음 삭모를 하게 된 계기가 피부병 때문이었다. 퍼질러 앉아있기를 좋아하다보니 아랫배 피부가 습기와 오염물질에 노출되어 그만 피부병이 생긴 것이다. 빨리 낫게 하려면 피부를 청결하게 하고 소독해주어야 하는데 웃자란 더부룩한 털이 뒤덮인 상태에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부리나케 삭모를 시켰더니 병소에 감염된 부위가 어디까지이고 어느 정도 심한지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주일에 두 번 약용샴푸로 목욕시키고 덜 마른 상태에서 포비돈 원액으로 소독했다. (덜 마르면 피부에 물기가 있어서 포비돈을 희석할 필요가 없다.) 그 후 1주일 정도 매일 포비돈 희석액으로 소독했더니 곧 완치되었다.

 

올해는 칸타에게서 피부병이 보였다. 복대가 닿는 자리여서 복대 채울 때마다 말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얼른 치료에 들어가자 싶어 치료의 준비단계로 삭모를 실시했다. 삭모를 하고 나니 내가 미처 모르던 피부병 병소 부위가 몇 군데 더 발견됐다. '어 생각보다 심각하네' 싶어서 삭모를 안 했으면 모르고 지나가서 피부병을 더 키웠겠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말에게서도 피부병이 더러 발견됐다. 나의 경험으로도 해마다 4월이면 말에게 발생한 크고작은 피부병 치료하던 일, 전염을 막기 위해서 그루밍도구를 각별히 따로 관리하던 일이 기억난다. 전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대부분의 승마장에서는 말 목욕이 중단된다. 온수를 공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온수가 나오더라도 잘 말리는 일이 무척 어렵다. 말은 목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하고 땀 흘리고, 땀을 닦아준다고 해도 마의를 입고 지내기 때문에 통풍도 잘 안되니 피부병 발생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그러다 봄이 오면 기온이 높아지면서 세균이나 곰팡이균이 증식하면서 말에게 괴로움을 주는 피부병이 나타나게 된다.

 

2. 목욕시간의 단축

 

3월부터는 낮기온이 영상 10도에서 20도 사이로 올라가는 날이 꽤 여러 날이다. 그런 날은 말 목욕을 시키게 된다. 말 목욕은 물을 끼얹어 씻겨내리는 일보다 사후에 말려주는 일에 방점이 찍힌다고 보아야 한다. 훑개로 물을 제거하고 수건으로 닦아주어도 몸에 물기가 다 마르기까지는 최소한 1시간은 걸린다. 물기는 말 몸의 높은 곳부터 마르기 시작하여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데 가장 늦게 마르는 곳이 구절 아랫부분이다. 말의 뒷발목은 오목한 홈까지 파여 물기가 고여있기 딱 좋은데 그냥 내버려두면 다 말랐다 생각했어도 축축하여 피부병이 쉽게 발생한다. 발굽부위의 피부병은 몸통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삭모를 하면 목욕하고 말리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몸통은 순식간에 마르고 발목부위만 수건으로 잘 문지르면 된다. 말의 몸이 잘 마르지 않은 채 마방에 들어가면 간지러워서 바로 뒹굴어 목욕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수도 있고, 습기로 인해 피부병도 발생한다. 그래서 말 몸을 잘 말려주어야 하는데 말 입장에서는 밖에 서서 오래 말리는 일이 괴롭다. 보통 운동 끝나고 목욕하는 것이니 장안시간부터 계산하면 두 시간 이상 마방에 못 들어가서 목 마르고,배고프고 무엇보다 소변 마려운 일이 괴롭다. 얼른 몸을 말려서 마방으로 돌려보내야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고 말이 편안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밥주고,마방 치우는 일 외에 말 관리를 직접하기 때문에 목욕시켜서 말리느라 오래 기다리게 되면 개인시간을 너무 지체하게 된다. 물론 그 시간에 아이들 곁에서 대화도 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지만 거의 매일 그리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선 아이들 삭모시켜 놓으니 얼른 씻기고 말려서 관리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

 

3. 저체온증 방지와 청결유지

강한 정도의 운동을 하면 말은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때로 낮기온이 높은 날에는 설렁설렁 운동했는데도 말몸에 땀이 많이 난다. 그럴 때 말의 털이 길다면 그 축축한 습기로 인하여 말의 체온이 내려갈 것이다. 사람도 땀배출이 되지 않는 옷을 껴입은 채 땀을 흠뻑 흘렸을 때 몸이 얼마나 추워지고 그 느낌이 좋지 않은지 알 것이다. 등산과 같은 상황에서는 하산시 등산객의 체온급강하가 위급상황을 불러올 수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말도 그렇다. 촘촘한 털이 땀에 적셔져 자연건조 되라고 그냥 방치한다면 불편하기도 하고 다른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땀을 잘 닦아주고 담요를 덮어주어야 한다. 가장 최악의 상태는 땀을 흠뻑 흘린 말을 위한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에서 두꺼운 마의를 훌러덩 덮어씌우는 것이다. 그러면 말은 가려워서 어쩔 줄 몰라 마방벽에 몸을 비비고 축축한 상태에서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삭모를 한 상태라면 가볍게 닦아내고 마의를 입히면 말이 한결 쾌적하겠다.

 

4. 말과 사람의 호흡기 건강

 

말 그루밍해주는 일은 말과 사람 모두에게 정신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 느낌이 좋아서 그루밍타임을 좋아하는데 그러는 동안 나와 말 주변으로 먼지와 말털이 그득하다. 다 말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털이 짧을 때는 괜찮지만 털이 빠지는 시기에는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콜록거리는 기침이 나오는 것이 호흡기에 부담이 가는구나 느껴진다. 사실 말이 사는 환경에는 먼지가 많다. 톱밥이나 건초, 마장에서 말발굽에 묻어 바닥에 흔적이 남겨진 흙 등이 먼지제공처다. 그래서 말과 지내며 이런저런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지만 호흡기 건강은 살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다. 기왕이면 그루밍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려 하지만 잊을 때도 많다. 아이들 삭모를 하고 나니 공기에 날리는 것들이 없어 호흡기 건강에 대한 우려를 많이 덜게 되었다.

 

5. 미용

 

남자도 아무리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도 손질했지만 결정적으로 면도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부분까지도 빛이 바래고 만다. 그것처럼 말도 털이 자라 여러 방향으로 웨이브지고,길이와 색깔도 조금씩 차이가 지면 말의 미모가 다 살아나지는 않는다. 말의 털을 밀어주고 나니 피부털이 균일한 톤을 띄게 되고, 근육의 형상이 드러나서 말의 매력이 한결 돋보이게 되었다.

 

이상이 ,왜 우리 아이들 삭모를 시켰는지에 대한 이유라 하겠습니다.

 

 

 

(클럽말 조이 삭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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