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는 발굽쿠키가 나온다.  빵집에서 파는 쿠키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 아니다. 이 쿠키는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보면 아이 손바닥 크기의 쿠키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 쿠키를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서 홍차와 함께 내놓는다면 성미 급한 손님이 집어서 덥석 베어물지도 모른다. 물론 덥석과 동시에 '에페페'하고 뱉어내겠지만 말이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발굽쿠키는 이름 그대로 말의 발굽이 찍어낸 것이다. 말발굽 바닥은 오목하다. 식당에 갔을 때 나오는 개인용 나눔접시 정도의 깊이랄까? 그렇게 오목하다 보니 마방 바닥에 깔았던 톱밥이 발굽 안에 갇혀서 단단하게 다져진다. 서로 뭉친 채 답답한 어둠의 세월을 보내다가 말이 마방 밖으로 나왔을 때 발굽의 탄력에 의해 톱밥은 광복을 맞이하여 환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발굽쿠키란 이름으로!

 

물론 나만의 명명이고 세상 사람들이 이 사물에 대하여 주의깊은 눈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발굽쿠키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발견한 갯수만큼 더 많은 행운이 나에게 찾아올 것 같은 주술에 사로잡힌다.

 

화요일에는 발굽쿠키가 나온다. 왜 화요일이야? 누가 묻는다. 승용마가 마방에서 지내다가 운동이라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발굽을 파낸다. 발굽에 낀 톱밥을 제거하지 않고 내보내서 운동이나 방목을 했을 때 습기를 머금은 톱밥은 서로 뭉쳐서 '공구리'라도 친 것처럼 단단해진다. 그러면 발굽이 불편해져서 기능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보통 말이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오므로 발굽청소를 하게 되어 평상시에는 바닥에 가루나 조금 떨어질 정도다. 그러나 화요일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을 꼬박 지내고 화요일까지 말이 마방에 머물렀기 때문에 발굽바닥엔 톱밥이 잔뜩 껴서 다져지고 또 다져진다. 쿠키반죽의 숙성시간 정도라고 할까. 그러다 짜잔~ 밖으로 나오면 발굽 톱밥의 대부분은 으스러져서 뭉개지지만 용케 형체를 갖춘 채 형상을 남기면 발굽쿠키가 된다.

 

가끔 어떤  쿠키는 두툼하니 모양도 참으로 예쁘다. 그런 쿠키를 보면 들어서 앞뒤로 살펴보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음 정말 잘 생겼군!' 그 쿠키가 그렇게 특별한 까닭은 쿠키틀이 너무 소중한 존재라서 그럴 것이다. 말에게 발굽이란 생명이다. 말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나타낸다면 발굽일 것이다.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준수하게 생기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말이 있었는데 그만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이었다. 사람이 끌고 어딜 가다가 난데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놀라 말이 화들짝 놀랐는데 운이 없었는지 발목을 접질러 부위의 뼈가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지인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한 대목은 그 다음 상황이다. 수의사의 진단 후에 말이 앞으로 승용마로서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라면 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관계자들은 무슨 결정이 그리 어려웠는지 일주일 이상 말을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말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극심했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지인의 심정도 참담했다고 한다. 관계자가 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았다면 차마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못난이 발굽쿠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어린말들이 다치거나 부상으로 죽음에 이르는 일은 흔한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산통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말의 소식도 여전히 들려온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말이 살아가는 세상이 힘들기 때문에 마방복도에서 만나는 발굽쿠키가 '오늘도 무탈하군요. 좋은 하루!' 하고 사인을 보내오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말이 그 증표로 발굽쿠키를 보여줌으로써, 마찬가지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내라며 행운의 부적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데 커피맛도 좋을 뿐더러 사이드메뉴로 당근쿠키를 맛볼 수 있다. 그날 바로 구워낸 쿠키인데 한입 베어물고 커피를 홀짝거리면 말생각도 나면서 금세 기분이 달달해진다. 만일 내가 카페 주인장이 될 날이 온다면 꼭 발굽쿠키를 구워서 팔 것이다. 아몬드를 채썰어 넣고 통밀을 거칠게 빻아 반죽해서 구워내면 오리지날 발굽쿠키 느낌이 날 것 같다. 발굽쿠키를 먹으면 행운이 찾아온대요! 하고 메뉴판에 써붙이면 날개 돋힌 듯 팔리지 않을까? 아 ~ 오늘도 나의 상상은 날개를 달고 구만리를 날아간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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