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이 바람에 사르르르 날리며 꽃비가 내린지 한 주일이나 지났을까. 꽃비의 축제가 끝나는 것을 신호로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바뀌었다. 세상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겨울에서 봄 사이, 승마를 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말은 겨우내 시달린 추위와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뻣뻣하여 긴장되어 있고, 대기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미세먼지 섞인 바람이 자주 몰아쳤다.

 

2월에서 4월 사이 부는 바람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흔들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지는 사물이 바로 비닐이다. 심하게 바람이 부는 날, 비닐들이 사방에서 펄럭거리면 '음 세상엔 비닐이 참 많아.' 하고 의식하게 된다. 그렇다. 세상은 비닐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듯이 비닐 천지다. 한 주일을 생활하고 나서 모아놓은 분리수거 쓰레기 중에서 부피 탓이긴 하지만 비닐의 양이 가장 많이 나온다. 대부분 상품의 포장지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는 널린 게 비닐이다. 그런데 왜 자꾸 비닐 타령을 하는 것일까 하고 승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 하겠다. 승마를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비닐에 대한 언급이 빙그레 웃음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말이 비닐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을 타고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비닐 펄럭이는 소리나 광경에 말이 펄쩍 놀라기라도 하면 기분좋은 경험은 못된다. 비닐 때문에 놀라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사람도 긴장되어서 운동 내내 또 어디서 비닐이 펄럭이려나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그리되면 말도 사람의 감정에 전염되어 더 긴장하고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승마를 하기에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다니는 승마장은 김포평야 한가운데 자리잡았기 때문에 농경문화와 함께 숨쉬며 생활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농사를 지으려면 비닐 없이는 못한다. 비닐하우스가 대표적이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밭에 비닐을 덮어두는 일, 가을에 추수하고 볏짚을 돌돌 말아 마지막에 비닐로 칭칭 감아 갈무리 하는 일이 그렇다. 요즘 승마장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비닐하우스 천지다. 승마장 또한 시설의 일부분이 비닐로 되어 있다. 날이 따뜻해지기 전까지 초보마장의 한쪽 벽면을 비닐로 막아두었는데 바람에 부르르 떨며 기괴한 굉음을 내면 마님들이 그 옆을 지나가며 온몸의 털이 쭈삣 서는 것처럼 긴장하곤 했었다. 

 

비닐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둔감화 훈련을 여러 번 받은 아마르는 그놈이 무서운 놈은 아니라는 것까지는 인식을 한 것 같은데 끝내 그놈은 어쩔 수 없이 기분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할방님의 내츄럴 훈련의 둔감화 프로그램 외에 나는 나대로 방목할 때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비닐을 막대기로 반복해서 두들겨주며 적응시키는 놀이를 자주 했다. 덕분에 바람부는 날에도 그닥 긴장하지 않고 밖에서 순조롭게 말을 탈 수 있었다.

 

말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비닐이 날아다니고 펄럭거려도 심장이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리 되도록 가르치고 도와주는 일은 순전히 사람 몫이다.

 

 

 

오른쪽 벽이 비닐인 겨울의 초보마장 상태. 겨울에 아마르 훈련장소로 요긴하게 활용됐다. 이날 막대에 비닐을 매달아 민감화훈련을 하는 도중 아마르가 돌발적으로 깜짝 놀라 할방님도 퍼뜩 놀란다. 아마르는 놀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당황했을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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