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1 - 타르코프스키 영화처럼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찍은 화면은 느리고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말들의 시간, 화창한 5월 평화로움' 을 느끼시길... )

 

 

 

어린이날에 칸타와 아마르에게 이벤트를 해줬다. 그 이벤트란 <칸타 & 아마르 사랑해!> 하고 승마장 건물 외벽에 대형현수막을 건다거나 논바닥에 글자를 만드는 등의 일과는 무관하다. 우리 아이들이 선물받은 이벤트는 바로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도시락 싸가지고 소풍을 간 셈이다. 풍경은 소풍지로 그럴싸하다. 산 아래로 얕은 개울물이 돌돌돌 흘러가고, 보리밭에선 대형 콘서트에서 관객들이 양팔을 들어 흔들며 떼창을 부르듯이 보리물결이 넘실거린다. 그 순간 지나가던 바람이 우우우~ 하고 노래를 한다.

 

흘러가는 개울물이란 사실 모내기 하려고 논에다 물을 댔는데 일부만 보이다보니 마치 하염없이 흐르는 실개천처럼 보인다. 왠지 말들이 밥먹은 후에 안장을 얹고서 물길을 따라 외승이라도 떠날 것만 같다.

 

나는 아직 승마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낮 12시가  말들의 점심시간이다. 할방님은 혼자 어린이들(?) 내다놓고 건초를 날라다 밥그릇 하나에 담아주었다. 밥그릇 두 개를 갖다놓기엔 번거로웠던 모양이다. 친한 말끼리는 한 밥그릇에 함께 머리를 들이밀고 서로 얼굴 비벼가며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물도 길어다 부어주었다. 

 

화면에 보이는 말과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느릿느릿 행동하면서 뭔가 계속 움직인다. 말은 건초 한입 물고 머리를 들어 주변도 살피고 또 물을 먹으러 갔다가 다시 건초를 먹으러 오고 하면서 아마르와 칸타의 위치는 시간에 따라 변한다. 할방님은 말보다 더 분주해보인다. 아마르 훈련시킬 때도 그래 보였는데 아무튼 일관성 있어 보인다. 그는 돌 치우랴 똥 치우랴 흘린 사료 주워 담으랴 끊임없이 움직인다. 움직이며 몰두하는 모습에서 평화로운 여유가 느껴진다. 이런 종류의 분주함은 생활전선에서 겪어야하는 분주함과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일을 좀 재미나게 표현하자면 일하느라 자칫 과로하면 병원에 돈 갖다줄 일이 많아지겠지만 말들과 함께 보내면 반대로 병원비가 줄어든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정신이 건강하면 몸도 아플 일 없는 것 같다.

 

할방님은 몇시간이나 말 돌보기에서 즐거움을 누리느라 정작 본인의 위장이 텅 비어간다는 사실을 대비하지 못했다. 동영상 후반에 할방님이 전화기 만지작거리며 보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나에게 먹을 걸 갖다달라 sos 치는 모습이다. 나는 부랴부랴 가는 길에 초밥집에 들렀다가 승마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방목장 앞에 있는 할방님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그 무렵은 아이들이 지들 건초를 다 먹고 봉다리(?)를 들고 나타난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뭔가를 부시럭거리며 꺼내어 맛나게 먹는 할방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와 저거 뭔데 저렇게 맛나게 먹지? 나도 먹고싶당' 하는 부러움이 새겨져 있었다. 나중엔 참다못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저희들에게도 달라 요구했다. 말이 생선을 달라니 참 웃겨 죽겠네 하고서 풀이나 한줌 뜯어 먹였다. 말 먹을 때는 사람이 지켜보고 사람 먹을 때는 말이 지켜보았다.

 

할방님의 소원은 풀밭에 말 풀어놓고 그 옆에다 텐트치고 캠핑하는 것이다.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에 보면 남자 둘이 그러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조만간 할방님이 보리밭에다 텐트치고 아마르와 칸타에게 "얘들아! 오늘밤은 밖에서 잘까?" 하면 뭐라 할까 궁금해진다.분명 칸타는 어이없고 황당할 게 뻔한데 ,아마르는 혹 …좋아하려나? ㅋ

 

 

 

 

오후에 칸타와 아마르는 각각 기승운동을 했다. 칸타는 아주 좋은 컨디션으로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니 기승감이 좋았다. 아마르도 잘했다고 한다. 결과가 좋은 것을 보니 이날의 이벤트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모양이다.

 

 

 

                                   (방목이 끝나고 칸타는 먼저 들어갔다. 홀로 남은 아마르)

 

 

 

 

 

 

 

 

(보리밭의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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