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에 당근씨를 뿌렸으니 50일이 지났다. 당근은 잎을 제외하고서 크기가 어른 손가락 2개 길이 정도 된다. 30일이 지날 무렵부터 촘촘하게 몸을 부비며 올라오는 당근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당근 크기는 이쑤시개만 했다.  어린 놈부터 솎기 시작하여 한 뿌리당 간격 10센티 정도를 목표로 계속 뽑아내고 한편으로 풀 뽑아주기도 병행했다. 그러니 앞으로 팔뚝만하게 자라날 당근은 수많은 형제 당근과 풀의 생명을 보태어 길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건초뭉치에 올려놓은 당근 한 뿌리)

 

솎아낸 당근을 본 회원들이 모두 신기해하며 한 번씩은 시식해보는데 그 진한 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환상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떤 분은 집에 가져가 샐러드를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말이 먹었을 때도 그 환상적인 맛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근 바구니를 들고 우리 아이들 방으로 가려는데 말 머리 둘이 나와 있다. 당근 향기가 진동하여 향기의 진원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편의상 1번방, 2번방 말 친구라 부르겠다. 우리 아이들은 3,4번 방이다.

 

 

 

 

​아이들 간식을 들고 지나가는데 이렇게 고개를 내민 말과 눈을 마주치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좀 덜어서 주고가야 한다. 그럴 땐 꼭 통행세를 내는 기분이다. 1번방 친구는 제 주인에게 금지옥엽처럼 사랑을 받아선지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별로 없고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방관자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2번방 친구는 제 주인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서 통행세 받는 일에 적극적이다.주로 얼굴을 있는 대로 내밀고 눈으로 간절한 레이저빔 쏘아대기 수법을 쓴다. 그 전에는 좀 신사적이지 못한 방법을 썼다. 편자쇠로 바닥을 쾅쾅 치면서 시위하듯 조르는 거였다. 그럴 때 시끄럽다고 얼른 먹을 거 갖다주면 버릇이 더 나빠지게 된다.

 

내 나름의 '말 버릇없는 행동 퇴치방법' 한 가지를 소개한다. 내 개인용 수레(사진에서 2번방 말입 아래에 보임) 에는 각종 스프레이가 있다. 포비돈,목초액 등등이다. 어떤 말이 쾅쾅 소리를 내며 버릇없이 소란을 떨면 얼른 목초액 스프레이를 들어서 정면으로 바라본다. 정면으로 말을 보는 것만으로 압박효과가 있다. 그때 말이 부적절한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스프레이를 분사한다. 쏘는 거리가 최소 1미터는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말은 스프레이를 무서워해서 너무 가까이서 쏘면 급하게 물러나다가 다칠 수 있어서다. 보안관이 총 쏘는 것처럼 말을 겨냥하여 스프레이를 두 세번 분사하면 - 이때 총소리는 '피식' 피식' 난다 - 말도 영화에서 익숙하게 본 장면처럼 총 맞은 듯이 뒤로 움찔움찔하며 물러선다. 스프레이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맹물 스프레이도 좋아요)  아무리 극성을 피워도 스프레이 몇 번만 쏘아주면 얌전해진다. 그때 먹을 것을 갖다준다. 나중엔 손가락으로 시늉만 해도 갑자기 바른생활 어린이처럼 단정하게 선다.

 

 

 

이 마사동에는 12번 방까지 있다. 이곳에 사는 말을 나만의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주인이 자주 찾아주는 말과 가끔 찾아주는 말, 뜸하게 찾아주는 말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무슨 간식을 나누어줄 때 우리 아이들을 가장 많이 주고, 그 다음으로는 주인의 발길이 뜸한 말에게 많이 주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배분한다. 주인이 잘 오지 않는 말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2번방 친구처럼 주인이 잘 오지 않는 10번방 친구가 있다. 둘을 비교하면 말도 성격이 다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10번방 친구는 간식 나눠주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말들이 난리를 피워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뒤돌아서서 침묵을 지킨다. 그렇지만 어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겠는가. 그저 티 안나도록 하는 것 뿐이다. 10번방 친구가 '나 졸고 있어요'하는 척할 때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며 이름을 부른다. 한참 그러면 마지못해 그러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돌리고 주는 간식을 송구스러워 하는 것처럼 겸손하게 받아먹는다. 참 신사적인 예절이 몸에 배었다. 그러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서있는 말은 아무래도 덜 얻어먹기 마련이다. 다른 회원들이 간식을 한바탕 돌리고 나서 '어 누구 모르고 안줬네'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생겼나보다.

 

아무튼 2번방 친구는 방 하나는 자리를 잘 잡았다. 우연한 일이지만 2번방 친구는 아마르가 태어났던 옛날 다니던 승마장에서 살다 왔다. 한밤중에 둘이서 '꼬마야. 너 거기 생각 나냐? 백사슴 알아? 이러면 '내 친구였는데…   ' 이러면서 대화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얼마나 마방 이웃으로 지내게 될지 모르지만 2번방 친구는 어디 가서 살아도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안심이 된다.

 

오늘은 당근 솎는 얘기로 시작하여 참 두서없는 내용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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