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 : 애너 스웰 /글쓴이 : 로빈 맥킨리 / 그린이 : 수잔 제퍼즈 / 옮긴이 : 정회성 / 출판사 : 동쪽나라


도서관에서 블랙뷰티를 만났다. 어린이열람실에 뭐 없나? 하고서 눈으로 훑어가다가 어느 곳에서 말 눈동자가 강결하게 응시하며 '날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죠' 불러세우는 바람에 꼼짝없이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187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는 것이다.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의 이야기다.원작자는 어려서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평생 말을 타고 다녔다.죽기 한 해 전에 달랑 이 작품 하나만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원작자가 평생을 함께 친구로 살았던 말 친구의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고 간 것은 이후에 태어날 모든 말들을 위해 크나큰 선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블랙뷰티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그러다 아름다운 시절이 다 가고 일을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자동차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말이 맡아 해서 하나의 일꾼으로서 사람도 태우고 짐도 실어나르며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말의 처지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말팔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블랙뷰티도 평생에 걸쳐 수도 없이 많은 주인을 만났는데 결국은 두 부류이다. 친절맨과 악독맨.블랙뷰티는 좋은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품성이 좋아서 자기 앞에 어떤 시련이 와도 참으며 최선을 다하는 말이다. 반면에 친구인 진저라는 암말은 어려서부터 황량하고 삭막한 환경에서 자라 성격도 포악해졌다. 블랙뷰티나 진저나 결국엔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거의 폐품이 되어간다.막바지에 이르러 진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블랙뷰티는 친절했던 옛주인을 다시 만나 나머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낸다는 이야기다.
애너 스웰은 인간이 말에게 대하는 태도와 행위에 따라 말이 얼마나 고통스럽고도 불행해질 수 있는지 말입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재갈이나 굴레 등의 마구 일체가 주는 불편함에서부터 사람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가하는 수많은 물리적 압력이 기름을 짜내듯 말의 생명력으로부터 끝모를 고통을 짜낸다. 고통을 견디다못해 죽음을 바라던 진저가 드디어 눈을 감고 수레에 실려갈 적에 블랙뷰티는 진심으로 진저가 죽었기를 바란다.그래야 비로소 쉴 수 있게 되므로... 스토리가 진행되어가는 대목대목엔 이렇듯 말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응시하는 작가의 연민과 애정이 배어있다.
이 책이 처음 나왔던 시대는 흑인조차도 가축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던 시대여서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었을 텐데 사람이 기르는 동물에 대하여 이만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가히 혁명적인 수준이었겠다.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동물에 대한 야만적인 행위는 멈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물실험과도 같이 은폐된 채로 교묘하게 숨겨져서 자본주의의 논리에 충실하게 봉사한다. 어쩌다 <동물자유연대> 사이트에 들러보면 눈뜨고 볼 수 없는 동물의 고통들이 넘쳐난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말은 길거리에서 운임을 받고 손님을 태워야 하는 생활 따윈 없지만 사람의 의식수준이 진보하지 않는 한 불행하기는 매한가지다.난 이 순간에도 블랙뷰티나 진저와 같은 말을 승마장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산전수전 다 겪고 나이가 든 말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살아오면서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너 스웰의 간절한 바람이 100년도 훨씬 넘어 나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듯 나 한 사람의 태도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보태리라 믿는다.이런저런 인연으로 말과 연루된 행복하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에 대한 윤리의식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블랙뷰티>는 어린이에게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르치려는 의도로 출간되었지만 모든 승마인이 승마에 입문하면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있다면 전국의 모든 승마장마다 연필 세밀화가 아름다운 이 책이  한 켠에 비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블랙뷰티의 행복한 어린 시절...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