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가 근로자의 날에 산책을 나왔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무슨 이벤트 하는 것처럼 나온 산책은 아니다. 할방님이 꾸준히 내츄럴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로 산책을 시도한 거다. 종종 다니는 산책이라 사랑이 표정은 편안하다. 하필 사진 찍은 날이 근로자의 날이어서 산책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대체 사람들이 뭘 하고 있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사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한다. 과거에 우연히 사랑이가 사람을 태우고 갑자기 미친듯이 달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기승자는 낙마하거나, 용케 붙어있거나. 말 타는 사람이 가장 곤란한 경우가 꿈쩍도 안 하고 안 가거나, 미친듯이 내달리는 때일 거다. 전자에 해당하면 사람의 정신건강에 해롭고, 후자라면 육체가 위험할 수가 있겠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사랑이가 후다닥 내달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면 이제 막 승마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관심이나 사랑을 받을 리 없다. 사랑이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사랑이가 한 귀인으로부터 내츄럴 훈련을 받고 있다. 일부러 외부에서 방문한 귀인은 미니어처 레이와 마티의 담당교사를 맡은 분이다. 여담으로 , 레이& 마티가 내츄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배꼽을 잡게 된다.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ㅋㅋ

 

 사랑이가 작년쯤에 점을 보았다면 점괘는 이랬을 것이다. 올해까지는 무슨살,무슨살이 들어서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게다가 외로워. 하지만 내년에 달라질 거야. 따뜻한 바람이 불면 사방에서 귀인들이 찾아와 .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귀인들 하고 잘 지내면 자네는 운이 트이네.

 

 

 

 

할방님은 사랑이의 귀인 중 하나다. 사랑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람의 요구를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주변환경에 적응하기도 승용마가 갖출 덕목이다. 말과 편안하게 산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대부분의 말이 승마장 밖으로 다닐 일이 없으니 두려워서 긴장하니 그렇다.

 

 

 

 

사랑이가 편안한 얼굴로 산책을 즐기니 보는 내 마음이 다 편해진다.

 

 

 

 

밭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동네주민이 아니다. 클럽회원들이다. 이곳에서는 원장님을 비롯하여 회원들이 밭일 하다 와서 땀을 훔치고 말 타는 광경이 흔하고 자연스럽다. 벌써 솎아낸 당근 포기가 말 입으로 배달되고 있다.

 

 

 

 

사랑이는 참 이상할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시나 통제는 커녕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는가?

 

 

 

 

내눈에도 이상한 광경이기는 하다. 삶과 노동이라는 면에서. 일과 여가라는 점에서.

 

 

 

 

지나온 역사를 회상해보면 농사나 벌목, 유통 등의 노동은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몫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그들이 일하고 그 곁에서 사람이 부리는 모습이 익숙하다.그렇기에 사람과 동물이 반대의 상황에 놓이니 낯설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고, 그 주변에서 말은 한가하게 어슬렁거리며 느긋하게 풀이나 뜯고 있다. 혹여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승마클럽에서는 근로자의 날에 사람은 일하고 말은 노는 건가? 하고 오해하지 않으려나.

 

 

 

 

승용마는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신선한 기운으로 충전하는 여가시간의 도우미요 파트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즐기도록 기꺼이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승용마의 몫이다.

 

 

 

 

화창한 5월의 첫날에 고정관념으로 굳어버린 승마장의 공식이 뒤바뀐 광경을 목도하는 일이 즐겁다. 즐겁게 산책을 마친 말은 나중에 사람을 태우는 노동에 기꺼이 참여할 거고, 옥수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은 고단한 심신을 그들의 애마에게서 풀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무성한 옥수숫대가 물결칠 거고, 승마장 주방에서는 솥에서 옥수수 쪄내는 김이 하루 종일 피어오를 거고 , 잘라낸 대는 말의 간식이 될 것이다. 말과 사람과 옥수수와 땅의 순환이다.

 

 

 

- 명망 높은 (???) <알.티> 블로그에 처음 소개되는 '깜돌이'는 깜주가 낳은 아들이다.

                                           다들 밭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띵가띵가 노는 게 제 일이죠~

 

 

 

 종일 놀다 방으로 돌아가는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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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을 얻은 아마르는 시월의 축복이 내리비추자 경계를 허물고 나아갔다.> 시월의 아이콘 늙은 호박 꾸욱 누르면 가을의 창이 두둥 나타납니다.함께 거니시렵니까?

 

앗! 쟤네들은 마티와 레이가 아닌가! 어느 날 보니 2인조 작은 말이 그곳에 있었다.녀석들은 어엿한 클럽의 구성원으로서 최근 직무를 부여받은 모양이다.정문 바로 옆에 지은 패덕으로 출근하여 방문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사하고 놀아주는 일을 하고서 해가 저물면 퇴근한다.하지만 직무를 책임지기에는 어딘가 어리바리해보이고 어줍기 짝이없다.그러는 모습 자체가 귀여워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티 & 레이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녀요

 

달력을 보니 시월도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이 적어서 하루하루가 아깝기만 하다.올여름은 얼마나 길었던가.푹푹 찌는 무더위에 오래도록 시달리며 견뎌야 했기에 가을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절한 가슴으로 가을공기를 마셔본다.

 

일 년에 반은 오월이고 반은 시월이었으면 좋겠다.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점점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계절은 혹한기와 혹서기의 이분법으로 명백하게 갈라서서 나아간다.승마를 한 이래로 계절은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환경이 변해가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승용마의 생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깥이 너무도 춥거나 더우므로 승용마들이 실내에서만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지내는 클럽에서도 틈나는 대로 방목을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말을 내놓지 못하는 날이 많다.일 년 중에 말이 밖에서 자연과 접할 수 있는 날이 꼭 우리가 겪는 달력의 빨간 날 공휴일 정도로 귀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말들의 삶은 영화속에서 여러 시대에 등장한다.전쟁시기를 살았던 말이 가장 불행했던 것 같고 ,근대에 와서 물류유통과 교통수단의 소임을 해야 할 때도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안전하고 편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하지만 자연으로부터 거의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의 신세도 그리 좋다고만 볼 수는 없어 보인다.

 

나보다도 남편이 자연과 격리되어 생활하는 아이들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다. 혹시나 하고서 기승운동 하다가 바깥으로 말의 발길을 이끌었을 때 정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에 우려도 됐다.이러다간 정말이지 애완동물처럼 좁은 영역 안에서만 안주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실내와 바깥마장을 오가며 운동하는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긴장도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 안일한 패턴 안에서 머무르는 생활은 나른하게 늘어진 모습으로 운동하게 만들었다.그런 말을 추스리느라 말 위에 있는 사람도 힘들다.시월이 되면서 남편은 틈틈이 아이들 풀도 뜯기고 외승도 다닌다.

 

클럽에서 논으로 넘어가려면 낙타등처럼 생긴 둔덕을 넘어가야 한다.칸타와 엘도는 자신감이 넘쳐 와락 넘어가다가 걸려넘어지는 포즈를 취했고 아마르는 한참을 살펴보고 연구한 끝에 신중한 동작으로 넘어갔다.아마르가 참 침착하다는 것을 느꼈다.생활하던 공간을 떠나 자연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가 말똥 무더기와 쓰레기소각장 사이에 난 좁은 길목이어서 낭만은 하나도 없지만 가장 세속적인 가운데서 마법이 이루어지곤 한다.신데렐라의 화려한 마차도 호박이었다.

 

마방에 있을 때와 풀밭에 나온 아마르 사이에는 머나먼 거리가 있다.마방의 아마르가 꽃병에 곱게 꽂아서 매일 물갈아주며 관리하는 꽃이어서 살아는 있지만 아주 조금씩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상태라면 풀밭에선 반대로 점점 싱싱해진다.

 

아마르가 뜯는 풀은 그냥 풀이 아니다.벼다.

 

구월부터 추수를 하자 익은 벼들은 밑동이 잘려나갔다.그러고도 태양빛의 따사로움이 상처난 자리에 닿자 푸르른 줄기가 솟아올랐다.

 

땅이 꾸덕꾸덕하게 변해가는 논에는 누런빛과 풀빛이 섞여있다.죽음과 삶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현장으로 이보다 생생한 예가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논은 사실 비어있지 않고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다.사람이 없을 때는 새떼나 노루가 머물기도 한다.새로 돋아난 벼줄기와 똑같은 색의 청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말발굽에 밟힐라 멀리 달아나거라 발로 휘휘 쫒아내본다.

 

아마르가 몇 걸음을 떼자 커피콩 만한 벌레들이 화다닥 튀어오르더니 뿔뿔히 흩어진다.재난영화에서 흔히 보던 그 장면이다.외계에서 흘러든 거대한 생명체 괴물이 도시에 나타나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마구 돌아다니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 뒤엉켜 도망치기 바쁘다.바로 그 장면이 아마르 괴물과 벌레 시민들 버전으로 논에서 연출된 것이다.

 

벌레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를 생각하니 순간 가엾은 마음이 웃음을 갈무리해준다. 꼬리의 흔들림...

 

가을이 되자 말의 꼬리는 한순간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들판에 나온 말꼬리는 흔들다 못해 어느 순간 바람이 되어 버렸다.

 

말꼬리는 바람으로 녹아들어버렸고...

 

꼬리가 바람이 되어버리자 서서히 마법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그 시간에 들면 내면의 그림자가 존재를 나타낸다.

 

어떤 존재에게나 의식의 가장 밑바닥 심연에는 모든 색이 녹아버린 어두움이 존재하는데 어두움은 늘 봉인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지만 마법의 시간에는 존재를 드러낸다.해가 저물녘에 만나는 존재의 그림자에서 내면의 어두움이란 이미지를 대면하는 것 같다.

 

산등성이가 되어버린 아마르의 잔등.평소 나를 태우던 아마르의 잔등이 뒷산과 너무 닮았다.몽골의 산은 몽골의 말 등선과 닮았던데 신기한 일이다.

 

바람과 산이 되고 풀이 되고 들판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빛이 되어버린 아마르는 이 순간 자유롭다.

 

클럽에서 살아가는 승용마라는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 엎드린 아마르에게 논은 경작지라는 경계를 허물고 초원이 되어주었다.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하늘을 보면서 내 안에서 나의 일부로 살아가는 속박을 떠올려 보았다.아마르와 함께 흙을 밟고 서서 마른풀내음을 맡으니 좋다.

 

계절의 경계를 뛰어넘은 민들레도 보인다.

 

곧 찬서리가 하얗게 내릴 텐데 싱싱하게 피어난 풀에게서도 경계를 넘어선 의지와 힘을 엿본다.

 

마사와 외부를 차단하는 경계선 쇠사슬이다.

 

경계선은 어디에나 있다.가장 강한 경계선은 내면에 있을 것이다.내면의 경계를 넘어 더 환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라고 시월의 따사로운 기운이 어루만지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아마르 옆방 친구가 하염없이 시월의 들판을 바라본다.

 

 

 

 

*시시콜콜 할망 요즘~

 

집에 있던 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말이 나오길래 뭔가 봤더니 <레이싱 스트라이프>인가 하는 영화였어요.경주마가 되고픈 얼룩말 얘긴데 황당하기도 하죠.영화에서는 말들이 여럿 등장해서 사람처럼 대사도 하고 줄거리를 이끌어가더군요.한데 말하는 말들 개개가 흔히 보고 내가 알고지내는 말과 너무나 닮아서 꼭 그 친구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 같아 신기하더라구요.아무튼 지금 생각하니 주인공 얼룩말도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경계를 허무는데 성공했고 그 일로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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