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앞표지 / 오키 토오루 지음 / 김원균 옮김 / 책공장 더불어 출판사

 

책의 뒷표지

 

기린 옆에 보이는 사진은 저자 오키 토오루 , 오른쪽에 본문 사진의 치로리

 

 

온 세상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퍼지는 성탄주간입니다.

<알팔파 앤 티모시>에서는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큰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려봅니다.

 

동물매개치료(AAT: Animal Assisted Therapy)라는 분야가 있다.노인이나 장애인,환자와 접촉하여 그들의 허약해진 몸과 마음을 동물이 치료하는 분야이다.매개치료를 할 수 있는 종은 다양하다.그 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 할 만한 개의 역할은 매우 뛰어나다.<치료견 치로리>는 그에 대한 놀라운 사례이다.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손꼽을 만한 감동을 선사한 책이기도 하다.정말 놀랍고도 매력적인 개 치로리 소개를 해보겠다.지은이가 치로리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 받은 인상을 책에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는 잡종개' '똥개' '...솔직히 어떤 종이 섞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인 모습...' '좋게 말해서 -독특한- ,솔직히 말하면 -볼품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개.게다가 곧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폐가에 있다보니 왠지 꿈에라도 나타나면 가위눌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치로리가 견공 중에서도 가장 남루하고 비천한 모습의 똥개 대표쯤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이런 치로리가 어떻게 혈통과 품성,자질에서 베스트 중의 베스트만이 자격이 주어지는 치료견이 될 수 있었을까?

 

치로리가 발견될 당시 치로리는 갓 출산하여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개였다.출산 직후 비오는 날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것을 동네 아이들이 주워다가 과거 요양원이었던 폐가에 숨겨두고 돌봐주고 있었다.지은이는 우연히 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 결국 치로리와 새끼를 구하고 치로리를 치료견의 운명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갓 출산한 어미개와 꼬물이 새끼들을 비오는 날 쓰레기장에 버리다니 주인은 정말 비정한 사람이다.내가 쓰던 물건도 내다버릴 때는 비 맞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거늘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로리는 몽둥이에 심하게 맞아 허리 이하의 한쪽 뒷다리가 불구였다.그 불편한 몸으로도 치로리는 운명을 헤쳐나가며 치열하게 살아나갔다.

 

지은이와 처음 대면한 치로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과 새끼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그 강렬한 의지에 이끌려 지은이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운명에 휘말려들게 되었다.인간세상은 치로리에게 완전한 적이었다.동네에서는 개를 키워서는 안되는 곳이어서 만일 주민 누군가가 신고를 하면 동물센터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5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당하게 되는 상황이 치로리를 기다리는 운명이었다.결국 치로리는 동물센터에 잡혀가서 5일을 머무르게 되었다.5일째 되던 날 지은이가 그곳에 찾아가서 극적으로 치로리를 구해냈다.그때 목격한 유기견 보호소의 광경은 인간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인간에게  버려져서 이곳에 온 개들은 첫날 상황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하다가 점차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어 깊은 절망에 빠진다.그들의 비탄과 슬픔을 치로리도 고스란히 맛보았다.그러나 치로리는 살고 싶어했다.치로리는 구조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견들은 끊임없이 버려져서 처분을 당하고 있다.

 

사람이 선사한 불행종합선물세트를 모두 맛본 치로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국적이 일본인 지은이는 거의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치로리를 기를 형편은 아니었다.고심끝에 자신이 운영하는 훈련소에 치로리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하지만 과연 치로리가 그곳에서 적응을 할지 아니면 천덕꾸러기가 되어 사느니만 못한 신세가 될지 그 일은 모험에 찬 주사위던지기와 비슷했다.

 

치료견 훈련소에는 순수혈통의 시베리안 허스키들이 있었다.그들 사이에 낀 치로리는 얼마나 작고 볼품없는지 처음에 웃음꺼리가 될 만했다.그러나 치로리의 승부근성,경쟁심,영민함이 발휘되자 치로리는 시베리안  허스키를 제압하고 대장이 되었고 1년 이상 걸리는 훈련내용도 모두 소화하고 어엿한 치료견이 되었다.이러한 결과의 밑바탕에는 치로리가 길거리에서 새끼를 보호하며 생존의 벼랑끝에 몰려 치열하게 버텨온 힘이 있었다.게다가 치로리는 천성적으로 약자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운 품성이 있었다.

 

치로리의 치료견 활동 성과는 눈부셨다.골방에 틀어박혔던 소년이 세상으로 걸어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했고,말하기를 잃어버린 노인의 말문을 열었고,노인이 쓰기를 멈추어버린 손을 놀려 치로리를 쓰다듬도록 하고,마비환자를 걷게 만들었다.노인이나 환자는 쇠약해진 몸 때문에 점차 마음도 약해져서 세상과 단절되어간다.그러다보니 감각도 무디어지고 신체기능이 더욱 퇴화되어갈 수밖에 없다.그런 이들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고,만지게 하고,함께 걸음을 걷는 일은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킨다.

 

날이 갈수록 치로리의 명성도 높아지고 고마움을 전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다.그 중에 어느 초등학생의 편지 구절을 소개한다.

'......선생님이 해주신 치료견 이야기를 듣고 저는 개가 이렇게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많은데 왜 인간은 개를 못살게 굴까라는 생각을 했어요.그리고 치로리는 사람한테 버림받고 맞았다면서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이상해요.나 같으면 다시는 사람들을 믿지 않을 것 같은데요.그래서 치료견들은 모두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치로리가 모든 상황을 초월한 도인 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치료견 활동 중에 환자와 함께 걷기는 중요한 기술이다.그런데 환자는 지팡이 사용이 거의 필수라 치로리에게는 처음에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지팡이가 과거에 자신을 때린 몽둥이로 인식되어서였다.때문에 치로리는 한동안 지팡이 적응하기 훈련이 따라야 했다.

 

나 역시 편지를 쓴 초등학생과 같은 의문이었다.철저하게 학대받고 버려졌음에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말이다.그리 되기까지는 치로리의 타고난 강인한 정신력,지은이 오키 토오루가 사람으로서 보여준 친절함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그렇지만 치로리가 가진 가장 큰 본질은 무한한 사랑이었다.

 

치로리가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사랑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함은 용서와 화해,배려와 베풂과도 같은 커다란 미덕이다.사람이 누군가에게 가해를 당했을 때 복수의 마음으로 쉽사리 갈등과 폭력으로 내몰려 더 큰 불행을 지어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어서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개들도 치료견 활동을 한다.꼭 프로패셔널 치료견이 아니어도 아이 컨텍트,사람 보폭에 맞추어 걷기,함께 놀기,함께 잠자기 등으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활력을 주는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치로리 사례 이후로 꼭 순종견이 아니더라도 유기견 중에서 치료견으로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일이 생겨났다고 한다.또한 치로리의 활약을 보면서 매년 32만 마리가 안락사 당하는 일본 현실에 반려견의 소중함을 알리는계기가 되었다.

 

나는 승마인이기 때문에 말과 함께 하는 동물매개치료에 관심이 많다.이 분야는 재활승마에서 다루며 그 효과에 대해서는 놀랄만치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말은 개,고양이와는 달리 대동물이어서 노약자와 환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반면 초식동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뛰어난 감수성이 갖는 치유력이 분명 존재한다.앞으로 말을 통한 동물매개치료가 더 폭넓고도 체계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말과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이 분야에 열정을 갖고 연구해주었으면 좋겠다.

 

2014년 말의 해를 맞이하여 말이 지닌 치유력에 대하여 주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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