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는 나와 같은 생명체인 말과 더불어 하는 운동이므로 단조롭고도 무료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척 매력적이다. 같은 말을 타고 1년 내내 운동하더라도 그 느낌은 매 번 틀리다. 어느 날은 내가 가벼운 몸으로 의욕에 차서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싶지만 어쩐 일인지 말이 통 집중을 안 한다든가 해서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고 반면 어떤 날엔  말은 날아갈 듯 하지만 내 몸이 찌부둥하여 못 맞춰주기도 한다.그래서 사람과 말 모두가 최고로 만족스러운 날의 기분은 천상에 오른 기분이렷다.

지난 일요일에 아는 분이 승마연습을 해야 할 사정이 있어 마장에 칸타를 타러 왔다. 오래 전부터 약속이 되어서 실행한 것인데 하필  비가 주룩주룩 많이도 쏟아졌다. 아는 분은 회원이 많이 몰려드는 오후를 피하여 오전에 방문했다.허나 칸타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비오는 오전에 밖으로 나와 낯선 사람을 태워야하는 상황이 달갑지도 않고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그래도 할방이 잘 달래서 먼저 기승하고 손님을 태웠건만 칸타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결국 손님은 칸타 잔등에 올라본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 그만 다른 말로 교체해서 타야만 했다. 칸타가 상황에 비호감을 가지면 마치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땅위에서 의자 쓰러지는 것 같은 모션을 취한다. 이럴 때 단호한 목소리로 야단치며 채찍이나 박차로 가벼운 주의를 주면 사태가 수습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처음 탄 손님이 취할 바도 아니어서 그만 하마했던 것이다.

칸타의 성향은 다른 말도 보이지 않는 바깥에 혼자 나와있는 것을 매우 불안해 한다. 게다가 지난 1년 동안에 오전 운동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 운동한 일도 거의 없다.또 낯선 사람을 태운 일도 드물다.이렇게 여러가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칸타가 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위에 열거한 칸타가 비우호적으로 여기는 상황은 대부분의 말이 보이는 습성이기도 하다.따라서 기왕 빠듯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승마라면 말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운동에 임할 수 있는 조건 하에 잔등에 올라야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나의 경험상 말이 기분 좋아하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날씨가 화창할수록 말 기분도 좋다.
 하늘은 푸르고 흰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가도 좋다. 말갈기가 햇빛에 반사되어 검은빛 속에 숨겨진 보랏빛,갈색빛이 네온사인처럼 빛나보일 때 말의 발걸음은 구름을 걷는  것처럼 가볍다. 반면에 구름이 잔뜩 끼어 찌푸린 날은 말도 몸이 무겁다.특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말도 많이 예민해지니 조심할 일이다.

2. 동료 말들이 많이 나와 함께 운동할수록 더 좋아한다.
말은 무리생활을 기본으로 하므로 남들이 다 마방 들어가면 자기도 들어가고 싶어하며,모두들 운동장에 나와 사람 태우고 다니면 저도 그러고 싶어한다.만일 기수가 북적대는 분위기를 싫어해서 아무도 없을 때 말을 타면 순조롭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물론 몇몇 말은 독립성이 강해서 혼자서도 잘 하지만 대부분 무리의 상황을 따르고 싶어한다.

3. 식사시간에서 먼 시간일수록 운동에 집중을 잘한다.
승마장마다 말의 식사시간이 조금씩 다르니 자신이 다니는 마장의 그 시간을 알아두어야 한다. 주로 오전,오후 운동을 하니 아침과 점심 식사 후 소화시키고 난 2시간 후가 최적의 시간이다.그 뒤로는 다음 식사시간이 임박할수록 말은 집중이 깨지고 초조해지며 짜증이 는다. 어쩌다가 말 식사시간이 꼴딱 넘어섰는데도 계속 운동을 한다면 즐거운 승마를 기대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4. 몸풀기가 막 끝난 말일수록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인다.
하루 이틀이라도 방목장에 나오지 못한 채 처박혀 있다가 안장매고 나온 말위에 바로 올라가는 것은 전혀 유쾌하지 못하고 말의 기질에 따라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오전에 방목장에서 2시간 정도 놀고 오후에 안장매고 나왔거나, 마방에서 나와  조마삭으로 30분이라도 돌았거나, 상급기승자가 30분 이상  가볍게 앉은 채 롱 앤 딥 ( 말의 목과 등을 최대한 편 상태의 운동) 으로 워밍업 시킨 말은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기수를 잘 태울 것이다.

공용마는 단 1명의 기수만 태우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쉬엄쉬엄 하더래도 하루종일 이 사람,저 사람 태우기 마련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도 피곤하고,지루하고,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컨디션이 나빠질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균형감각이 좋지 않고 잘못된 부조를 쓰는 기수를 오랜 시간 태웠다면 말의 기분은 최악이 된다. 그래서 기수가  거의 다 저녁 때 조금만 더라는 심정으로 잠깐 올라탄 말에서 낙마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5. 평소에 교감을 나누었던 잘 아는 사람일수록 더 편하게 태워준다.
평소 자기에게 친절함을 베풀었던 사람을 태우는 일은 말에게 즐겁고 재미난 일이다. 때론 우쭐하기도 한다.그러나 정체불명의 낯선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불신 때문에 긴장하고 근육이 딴딴해져서 기수가 느끼는 반동도 부드럽지 못하다.그러다 보면 기수의 마음도 좌불안석이다. 평소 말과 사교를 열심히 해서 친한 말을 타는 것이 최고로 재미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자기 시간이 많지 않고 말 탈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승마인일수록 1 ~5 항목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승마를 배우게 되었는데 직장퇴근하고 달려오면 5시 반이다. 승마장 말 밥시간은 6시.승마장 입장에서도 달갑지도 않으나 승마를 간절히 배우고 싶어하는 회원을 마다할 수가 없다.회원이  어찌어찌해서 말 등에 오르니 5시 50분이다. 타게 된 말은 그 날 일을 가장 적게 했다고는 하나 세 번째 초보기수를 태웠다. 탄 지 10 여분 지나자 밥수레가 지나가고 말들의 술렁거림에 아직도 일이 끝나지 않은 말은 마방만 신경을 쓴다.그러나 기수는 말 위에 오르기까지의 공들임이 아까워 말의 처지가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억지로 1시간은 타고서 내리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그후로는 승마를 하는 것인지 씨름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채 시간이 흘러간다. 늘 이런 식으로 승마를 한다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공들인 시간이나 비용에 비하여 만족도는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동하고 목욕하니 개운해..

오늘 운동 참 즐거웠어요..



말의 스케쥴이나 상황을 바꿀 수가 없다면 승마인의 스케쥴을 리모델링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나 역시 승마가 삶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생활이 승마중심으로 돌아간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열일 제쳐두고 말타러 간다. 대신 악천후에는 아무리 말타고 싶어도 참고 대신 다른 일을 한다. 말타러 가는 시간도 회원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말도 배고프지 않은 때로 한다. 그리고 매번 다른 상황에서도 말이 좋아하는 타이밍을 찾아내려고 치밀한 계산을 한 뒤에야 말 위에 오른다.이것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승마를 즐기고자 하는 깐돌할망의 노하우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