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옆방 사는 3살 동갑 친구는 건초를 한입 물고 깐돌에게 가까이 오곤 한다.녀석에게 돌은 갖은 신경질을 부린다.

밥 먹는데 누가 들이대는 꼴을 유난히 못참는 깐돌인데 대개의 말들도 조용히 혼자 식사하고 싶어한다.

어린말이라 그런지 똑같이 먹여도 참기름 바른 김 마냥 반질반질한데 요샌 앉았다 낙상할 파리가 없다.

먹는 속도도 무척 빨라서 남들 절반 먹었을 때 이놈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우고 없다.

요놈의 입에 먹을 게 마구 빨려들어가는 동안 할머니의 행복지수는 마구마구 올라가 금새 만땅이 된다.

우울한 사람은 항우울제를 복용할 게 아니라 동물과 만나는 일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알팔파의 고소한 내음과 티모시의 허브향도 좋다.

깐돌이 옆방 장군이는 점잖게 먹는다. 성격이 좀 FM이어서 바른생활을 하는 편이다.

밥그릇에 머리를 조아리고 먹는데 어째 밥그릇이 작아보인다. 특히나 스텐레스 물그릇이 유난히 작아보이는 유일한 말일 것이다.

꼬리 뒤 물그릇이 간장종지만하게 보인다 ㅋㅋ~ 장군이 옷은 목도 덮을 수 있는 버버리코트(?)다.그런데 옷이 작아서 엉덩이가 나왔다.

요즘 여러 사람이 타보고 칭송이 자자해서 승마클럽에서 장군이의 인기지수가 급상승하고 있다.원장님의 총애가 대단하시다.

태풍이가 아마도 생애 최고의 호사스런 마의를 입었을 것 같다.

십 몇 년 살면서 내내 먹어온 건초가 지겨운지 천천히 먹고 많이 남기기도 한다.대신 과일이나 당근 등의 신선식품은 무제한 먹고싶어한다.

원래는 밥그릇에 배식받았던 건초가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사람은 사람식으로 차려줬는데 말은 저 좋도록 밥상을 새로 차린 것이다.

'이래야 풀밭에서 풀 뜯어먹는 기분이라니깐~'

우리 이쁜 딸 칸타..꽃분홍색 옷을 입혀놓으니 처음으로 여자애 같은 분위기가 난다. 운동할 땐 정말 선머슴애 그 자체다.

바로 옆방 태풍이의 건초가 아직 수북한데 칸타는 디저트 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

어찌나 성급하게 먹어대는지 모른다.


금방 배식하고 나서 칸타가 먹는 모양을 보면 배꼽을 잡고 웃게된다. 먼저 말에게 곡물사료를 주고나서 금새 먹어치우고 나면 사각형 건초를 준다.그러면 칸타는 귀를 뒤집고서 밥그릇 위로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절굿공이가 된다.귀를 뒤집는다는 건 심기가 불편하다는 건데 칸타는 밥먹을 때마다 신경질이 팡팡 난다.왜 그런고 하니 건초가 주어진 순간 배도 고프고해서 씹지 않고도 위장으로 훌떡 넘길 수 있는 부스러기를 먼저 먹고 싶기 때문이다.하지만 부스러기들은 몸이 가벼워 거의 바닥에 있다.빨리 먹긴 먹어야겠는데 그놈의 부스러기들이 숨바꼭질을 하자는거야 뭐야 밑에 숨어가지고 말이야 하는 심정이 칸타의 속내다.칸타는 '아이 신경질나!' 하면서 주둥이로 건초를 핑핑 아무데나 날려버린다.그게 머리로 절굿공이질하는 정체다.숨어있던 건초부스러기는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야수에게 먹히듯 칸타의 입안으로 빨려들어가고 날아간 건초들은 공포에 떨며 몸을 사리고 숨죽일 것이다.그러나 칸타의 신경질은 여기까지다.금새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온 칸타는 자기가 날려버린 건초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죄하고 기도하듯이 건초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먹어치운다. 마방은 평화로운 공간이 된다.
먹이가 부족하여 배곯아본 칸타는 한 올의 건초가 얼마나 신성한가를 잘 안다.온 방을 돌아다니며 건초 주워먹기 삼매경에 빠진 칸타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칸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말 종족의 무의식이 알라딘의 램프에 갇혀있다가 어느 순간 램프뚜껑이 열리더니  탁트인 초원과 산들바람,싱그런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칸타의 방은 초원이 되었고 칸타는 행복하다.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하여 초원의 삶을 잃어버린 말이 현실을 견디기 위하여 하루에 잠깐씩은 마법의 주문을 불러내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보니 나조차 행복해지는 것만 같다.
아무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의 말 친구들은 자기몫으로 주어진 건초를 방에 퍼뜨려서 작은 풀밭을 만들어 식사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도 아파트에 사는 편안함에 길들었지만 뭔가 부족한 2%를 채우려고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어 작은 숲을 조성하고는 이런저런 곤충들도 살게끔 생태환경을 조성해서 가끔 들여다보고 행복해한다. 여름철에 가끔씩 불청객 파리가 승마장에서부터 따라와 내집에 찾아들어 어리둥절해하면 난 단호하게 생활수칙을 일러준다.
"파선생! 딱 한 가지만 지키라구! 똥은 화단에 가서 싸는 거야!"

동동이의 모던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마의..동동이도 먹을 때 누가 들이대는 것을 싫어한다나

칸타옷과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깔.이 옷도 실물은 참 예쁘다.

태풍이의 모던 스트라이프 디자인...

옆트임이 넓어 앞에서 보면 치마입은 것 같은 깐돌옷 .볼때마다 깔깔 웃게된다. 옛날 유럽 귀족 남자아이들은 치마 입혀서 키웠다고 누가 그런다

말이 삐지면 이 모양으로 얼굴 대신 엉덩이를 들이대고 방문객을 안본다.

요즘 칸타가 신경질도 부쩍 늘고 좀 삐져있기도 한 것 같다.

칸타 왜 그래? 엄마한테 털어놔봐!


며칠 전에는 운동 마치고 시간이 없어서 칸타가 당근 먹는 동안 부랴부랴 마의를 입혔는데 칸타가 귀를 뒤집고 눈을 부라리며 입모양을 구겼다폈다 욕을 한바탕 퍼붓길래 앞여밈을 다 채워주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칸타가 입을 마구 일그러뜨릴 때 성우가 욕지거리로 더빙하면 표정과 입모양이 완벽하게 일치할 것이다.
칸타의 신경질을 가장 많이 당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빠다.매 번 복대조를 때마다 칸타의 신경질과 대면해야 한다.태풍네도 당근 줄 적에 자기 먼저 안준다 등등으로 푸닥푸닥 하니 칸타의 신경질에 대해서는 알만큼 알게 되버렸다.
모르는 사람들은 칸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차분하고 든든한 모범생일 것이다.그러나 사람이든 말이든 겪어봐야 제대로 알게 된다.
요사이 장군이의 출연과 칸타의 두드러기 등으로 칸타의 기승운동이 부족한 가운데 장군이,깐돌이의 급부상으로 칸타는 자기에게 와야할 관심이 좀 시들해졌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다시 본격적인 칸타 훈련에 들어간 아빠가 이제는 조마레인의 도움 없이 굴요하고 수축운동을 할 때가 되었다며 그리 하고 있는데 수월하지는 않아서 집요한 밀당 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곤 했다.그때 칸타의 표정을 살펴보니 분함이 깃들어 있었다.엄마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이리라. 나중에 마방에 찾아가니 눈빛에 서러움마저 배어 있었다. 이것도 엄마만이 알아챌 뉘앙스였다.
그날 저녁에 할방과 칸타에 대하여  훈련의 성격이  말이 정신적으로 감당하기에 좀 벅차지 않았겠나 하는 얘기를 나눴고 다음 날엔 아빠가 칸타를 많이 예쁘다고 해줬는지 칸타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칸타는 무척 예민한 말이지만 예민함에 비례해서 운동할 때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예민함과 집중력이 모두 정신력일 테니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과 장점이 서로의 다른 면을 이룬다.이는 예민함의 연료를 태워서 집중력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까?
그러므로 칸타 예민함의 외향적 표출인 신경질도 '이쁘다 이쁘다' 사랑하기로 했다. 만일 '칸타 널 사랑하지만 신경질은 용납하기가 힘들구나!'하는 태도로 대한다면 칸타는 생명체의 본능으로 자기 안의 무언가를 엄마 아빠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예민함이 저 혼자 더 나쁜 뭔가로 바뀌어 '나 여기 있다구!' 하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을 요구할 것이다.
칸타의 예민함에 대하여 깊이 분석하지 않더라도 칸타가 신경질낼 적에 한번도 미운 적은 없다. 누군가 나와 관계지어진 사람이 그랬다면 분노했을 것 같은데 동물에 대해서는 그런 방어기제가 무용지물이라 소용이 없어진다.이런 점이 동물과 생활하며 배우는 부분이다.말,개,고양이가 아무리 신경질내도 화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러구 나와도 화내지 않는 법이 몸에 배어 너그러워지고 평정심을 갖고 상대의 입장에 서보게 되는 것 같다.
나나 할방의 인생에 칸타 같은 왕신경질쟁이가 끼어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그런 일이 막상 현실이 되고보니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다.할방과 할망은  칸타 신경질 패키지의 하나인 욕을 한바탕 뒤집어쓴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이런 대화로 마무리 짓는다.
" 우리 칸타랑 앞으로 한 20년은 살겠지!"
" 으.. 그 신경질쟁이랑 그렇게 오래 살아야 하다니.."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