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부터 진영씨가 승마장에 와서 우리 말 아이들을 돌보고 타고 그런다.나나 할방이 바쁠 때에 우리를 대신할 사람으로 그녀는 적임자였다.동물에 대한 감수성도 뛰어난 데다 말과 지내는 일이 그녀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맡아줄 동물이 개,고양이도 아니고 하필 덩치도 커다란 말이어서 쉽지는 않았다.자칫 어설프게 말을 다루다가는 말이나 사람이나 모두 다칠 수가 있었다.그런 연유로 난 그녀에게 말 다루는 법 일반과 특히 까탈스러운 우리 아이들 다루는 법에 대하여 세심하게 가르쳐야 했다.그녀는 열심히 경청하고 스스로도 연구를 많이 해서 석 달이 경과한 지금은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마필관리와 기승 모두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처음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은 칸타를 다루는 일이었다. 칸타는 예민하고 겁 많고 드세고 난폭하기까지 해서 쉽지 않은 성격의 암말이다.내가  진영씨에게 강조한 것은 "말을 다루는 행위를 할 때는 사전에 무엇을 할지 말에게 설명하라!"였다.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칸타 ~ 이모가 네 방에 들어간다"
(솔을 보여주며) "이제부터 솔질 할거야"
(발굽파개를 보여주며) "자 발굽파자 (아랫다리를 만지며) 이 발부터 하자"
(굴레를 보여주며) " 굴레 쓰자"
매사를 이런 방식으로 하다보니 처음엔 굴레 씌워서 안장 채우기까지 한 시간씩은 걸렸다.
처음엔 칸타가
"누군데 날 만지고 이런 걸 마구 채우는 거야?"
하듯이 마구 신경질을 부렸는데 지금은 얌전하다.진영씨가 자기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칸타가 모든 일에 대하여 사전 설명을 했다고 다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몸에 솔질하고 땀 닦아내기도 한참 후에나 가능했고 발굽도 뒷발굽은 요즘에서야 파주게 되었다.
내가 말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오래 되었다. 말은 겁이 많고 덩치가 커서 그냥 무작정 작업에 들어가면 놀라고 튀고 반발해서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특히 수의사 치료나 트레일러 오르기 등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작업을 말에게 지시할 때 사전 설명이 있고 없고가 말의 협조가 따르느냐 마느냐를 좌우했다.
말은 마방굴레,안장,조마삭채찍 이런 물건만 보여줘도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진영씨 말이 내가 아이들에게 늘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하다보니  칸타가 다른 말에 비해 언어감응력이 매우 뛰어난 것 같다고 한다.그래서 기승할 때 "구보"나 "천천히"등의 말을 잘 알아듣고 눈치가 빠르다고 하니 듣는 내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요사이 어떤 책을 읽다가 나의 말 길들이기가 프랑스 엄마들의 육아법과 일맥상통 하다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권지예의 빠리,빠리,빠리>라는 책인데 저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겪은 소소한 일상을 재미나게 풀어나간 에세이다.

어느 날 저자의 둘째가 갓 돌이 지났는데 서혜부탈장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그때 프랑스 의사는 아이에게 수술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덜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아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수술의 전 과정과 수술의 불가피성에 대하여 하루에도 몇번씩 규칙적으로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고작 돌 지난 아이에게 말이다.
이는 프랑스인의 굉장한 인격존중과 엄마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한 데서 비롯된 자세라고 저자는 말한다.아기도 인간이니까 알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로마법을 따르는 심정으로 아들에게 상황설명을 충분히 했고 드디어 수술실로 향하게 되었다.그 순간 돌 지난 아이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선 초연한 얼굴이었고 수술실에서도 전혀 울지 않았다고 했다.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아기가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한다는 거였다.수술 후 퇴원하고 나서도 회복이 끝날 때까지 설명과 안심을 시켜주어야 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매사에 '설명'를 처방했던 것이다.그 결과 저자는 아이의 부모로서 아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크레슈 원장님의 말씀...

"...늘 상황을 진실된 마음으로 잘 설명해 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를 가장 사랑해 주는 겁니다.그러면 아이는 점차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창조할 줄 알게 되는 거예요..."

난 이 말이 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말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해주면 그 결과 존중해준 사람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따라주게 된다는 게 나의 경험에서 건져올린 지혜다.칸타가 살아있는 증거이다.

칸타가 그 다음엔 엄마가 뭘 할 건가 궁금하여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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