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읍 삼달리에 c&p리조트에 한라마 무리가 산다.

 

이들은 사람이 기르는 말이지만 너른 2만평 땅을 자유롭게 오가며 산다.

 

참으로 이상적인 생활을 누리는 행복한 말이다.

 

수도권의 승마클럽에서 사는 승용마가 하루의 대부분을 좁은 마방에서 살며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삶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리조트의 말을 타고서 억새외승 나가기 전에 부지를 한 바퀴 돌았었는데 인공적인 시설도 없고 지면도 다듬어놓지 않아 돌무더기,나무,풀뿌리가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말들의 생활환경이 이런데도 말들은 하나같이 몸에 긁힌 생채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지난 봄 이곳을 다녀온 후에 일기예보에서 제주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말 친구들이 걱정되었다.따로 이들의 방이 있는 것이 아니니 비바람 맞고 젖은 생쥐꼴을 하고 오돌오돌 떨려나 싶었던 게다.

 

안주인의 얘길 들어보니 기우에 불과했다.지붕이 있는 대피소가 있으나 뒷간처럼 여기는지 들어가 똥이나 눌 뿐 정작 비가 오면 다른 곳에 간다고 했다.

 

"바로 저기랍니다!" 말등 위에서 안주인이 가리킨 곳은 빽빽한 소나무 군락이었다.말들은 좁고 아늑한 소나무 둥치 사이사이에 들어가 가만히 서서 비 내리는 시간을 보냈던 거다.

 

비올 때 큰 나무 아래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비가 잎을 타고서 옆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비 피하기는 그만이라는 사실을.게다가 솔숲이니 비에 젖은 솔잎이 뿜어내는 솔향은 얼마나 진할 것인가.솔향은 머리를 맑게 한다는데 말 친구들의 정신적 고요함이 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어진다.

 

숙소에서 나와 마당으로 내려가는데 시야에 확 꽂히는 장면이 보였다.물가에서 암말인 공주가 풀을 뜯고 있었다.

 

물 언저리에서 백마가 풀을 뜯고 있으니 비현실적인 느낌과 함께 주변에 선 열대수목으로 인하여 이국적인 풍광처럼 비쳐졌다.말이 등장하는 달력그림에 딱 나올 법한 그런 장면이었다.

 

공주는 임신중이고 내년 4월에 출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망아지의 부마는 리조트의 말 무리에 속한 숫말이다.주인장도 부마가 이놈인가 저놈인가 확신을 못하니 망아지가 나와보면 알 터이다.

 

기왕이면 공주가 엄마 닮은 예쁜 망아지를 낳았으면 좋겠다.

 

 

공주가 풀을 뜯는 바로 옆에서 맨 처음으로 이끌려나온 스콜피오가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말은 쥬피터다.

 

아침이.

 

이곳의 한라마들을 보면 "우와! 멋지다!"라는 감탄이 나온다.제주도의 관광 승마장이나 수도권에서 가끔 보는 한라마를 보고서는 감탄을 하기가 힘든 게 보통이다.웜블러드나 중형더러브렛에 비하면 뭔가 오종종하고 왜소하다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 한라마들은 체고가 150cm에 가깝고 몸통은 튼실하여 중형마 정도의 뱃고래를 보는 듯할 정도이다.그만큼 잘 먹이고 키워서 그렇다.

 

여기에 지나친 노동으로 혹사시키지 않고 자연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니 모색에도 윤기가 흐르고 표정에 기품이 서려 있었다.

 

말의 체고가 150cm 정도가 되면 한국사람이 타기에 가장 적합한 승용마 신체조건이라고 보여진다.세계의 유명 승용마 품종도 이 정도 크기가 많다.

 

다는 아니지만 몇 군데 둘러본 제주 관광승마장의 한라마는 키가 아담하니 작았다.관광용으로는 실용성이 있어 보이지만 속사정은 좀 달랐다.

 

그러니까 한라마의 품종 자체가 원래 작은 것이 아니라 못 먹어서 덜 자란 상태라고 할까.한국인의 체형이 못살던 시절과 경제발전 이룬 이후에 현격하게 달라진 것과도 같다.

 

현재 제주도에서 이루어지는 경마에 출주하는 경주마의 체고는 137cm로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그러다보니 제한된 경주마 쿼터에 입적시키기 위하여 말 생산농가는 어쩔 수 없이 망아지에게 일부러 잘 못먹이는 방식으로 기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경주마로 판매하고 나면 말은 불과 몇 년의 경주마 생활을 끝내고 나서 기나긴 승용마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어려서 못먹고 경주로 혹사당한 몸 상태가 좋을 리 없다.한라마의 현주소가 그렇다면 그런 말을 타야 하는 승마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조트에서 작년에 태어난 유니콘이 언니 문 차일드와 함께 서 있다.둘은 연년생이다.4명의 일행이 말을 타고서 외승을 나가려할 때 문과 유니콘이 따라나올 수 있는 끝까지 나와 뚫어지게 바라보며 배웅을 했다.

 

우리 깐돌이도 그랬지만 자라는 한라마 망아지들도 같은 무리의 말들이 사람을 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승용마의 삶을 받아들일 것이다.

 

망아지들이 그렇듯 유나콘도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짓소 있었는데 이젠 망아지의 호기심도 다 가시고 좀 무료하기까지 했다.그러다 서서히 사람을 태우는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제 소임을 알게 되리라.

 

 

 

 

 

 

스콜피오가 조는듯 고요하다.말들은 안장매는 동안 조는 표정이기 일쑤다.

 

스콜피오는 공주와 함께 지구력대회 백전노장이다.얼마 전 80km대회에 참가하여 10위 권 안에 들었다.

 

아침이는 경주마 경험이 없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유망주다.겨우 3살인데 어찌나 온순하고 차분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온순하면서 강인함을 동시에 갖춘 승용마가 한라마다.

 

리조트 주인장 내외는 1년에 4~5차례 열리는 지구력대회에 거의 참가하는 분들이신데 얼마나 건강해보이는지 모른다.

 

이날 15km 정도의 외승을 다녀왔을 때 말들도 멀쩡하고 주인장 부부도 어디 다녀왔나 싶은데 평소 실내마장에서 깔짝거리며 타던 나만 초주검인 것 같고 한달분 승마를 다 한 것 같았다.

 

제주의 자연이 길러내고 애정이 지극한 사람이 길러낸 말들은 사람에게 건강함을 선물했다.아울러 도시에서 찾아온 승마인에게도 질적으로 높은 승마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런 게 자연,사람,말의 조화로움이 빚어낸 행복함 아닐까?

 

 

(*) 용어 정리

 

* 제주마 : 최근까지 재래마,조랑말,재래종으로 불리다가 1999년 공식명칭을 '제주마'로 결정.

              그 이전 1986년 멸종방지를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제주마라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천연기념물로 인정받는다.

 

                                      <이상은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p399~401에서 >

 

*한라마 : 제주마와 더러브렛의 교잡종.

 

(*)그 밖의 관련 자료

 

승마매거진 2011.7.8 월호

한라마 전도사 이종형 감독

<우리 한라마의 우수성을 알리고 장려하는 제도적 정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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