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보는 경험은 경이롭고 행복하다.

말을 키우며 늘 보는 처지라 말이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의 부분인데 , 카발리아 공연을 보며 말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말이란 스포츠 영역 안에서의 말이고, 평소에는 운동파트너로서의 말이 익숙하다. 이러한 영역 안에서도 말이 지닌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역동성은 중요한 가치로 인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그라운드가 아니라 예술의 장이라 할 무대 위에 나타나니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 말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경탄에 마지않으며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카발리아 공연에서 만나지 않았나 싶다.

 

 

 

이 공연의 주역은 말이다.

주연배우인 말의 아름다움은 함께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비로소 신비롭고도 환상적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공연을 보면 말과 사람은 오랜 세월 지구별 곳곳에서 깊은 유대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이러한 실제적인 삶의 배경을 바탕으로, 기존에 보아왔던 영화나 만화에서 등장했던 구불구불한 갈기를 휘날리며 우아한 걸음걸이로 사람에게 다가오는 환타지를 연출한다.

 

 

막이 오르기 전 무대

 

그러면서도 공연 실제상황에서는 출연하는 말이 아바타가 아니라 실제 존재이므로 간혹 사소한 실수나 말 무리 안에서 멤버간에 호흡을 맞추지 못한 부분도 나타났다. 맨 앞자리에 앉았던 관객의 특권으로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 이것은 관람의 재미를 더 보탰다. 나도 모르게 '쟤는 몸이 덜 풀렸어!' '쟨 좀 긴장하는군!' 하고 중얼거렸다. 일반 관객이라면 전혀 보일 리가 없는 부분이다.

 

 

 

11월 16일 1시 무렵 카발리아 공연을 보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에 가설한 화이트빅탑씨어터를 찾았다.운동장 주변에 심어진 수령이 오랜 나무들이 아름다운 빛깔의 이파리를 달고 있어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생전 야구라고는 볼 일이 없는 내가 멋진 말 공연을 보려고 그곳에 간 것이다.

 

 

 

티켓은 한 달 전에 예매한 터라 이래저래 할인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티켓 가격을 주욱 살펴보다가 내 평생에 언제 이런 공연을 보겠느냐 싶어 가장 좋은 좌석으로 덜컥 구매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나니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참으로 귀한 공연이다. 요즘처럼 손가락 끝의 터치만으로 수많은 접속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세상에 극장이 통째로 옮겨오다니 놀랍다. 수많은 인력과 말의 시공간적 이동, 물리적 협동으로 비로소  이루어지는 공연이기에 무대에 막이 올라간다는 자체가 경이로움이 아니겠나 싶다.

 

 

 

극장은 화이트 텐트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무게가 50톤이 넘고,운반하려면7대의 트레일러가 필요하며 공연장 설치작업에 총 12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주인공이라 할 말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데 그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오죽하랴. 말 서너 마리를 싣고 어디 다녀오는데도 신경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50여 마리의 귀한 배우 말이 한꺼번에 이동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리라고 본다.

 

공연 전 무대

 

 

공연 시작 10분 전에 미리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뒤이어 밀고 들어오는 관객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관객들이 좌석을 찾아가는 동안 바닥은 쿵쿵 울려서 가까운 곳에 공사장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진동과 소음이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텐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공연장에 들어오기 전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화면으로 보이는 말들의 영상을 보고 벽면에 가득한 카발리아의 이미지를 훑다가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아마르 (기르는 애마)도 이런 거 시키면 재미있어 할 것 같아."

 "그러게."

 

망아지가 태어난 순간부터 기른 아마르는 놀이본능이 고성능으로 작동하는 장난꾸러기라 다른 말들과 협동하고,많은 사람을 만나는 상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을 다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카발리아 공연팀에 소속한 말의 자격은 외모나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되었다. 말의 본성은 두려움이 많고 예민하다. 그런 말이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강렬한 조명빛과 관객의 시선, 우뢰와 같은 박수, 무대 위의 복잡한 상황을 견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내게는 말 배우 하나하나가 모두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놀라운 명마로 보였다.

 

 

 

카발리아 공연은 서커스와 홀스의 만남이다.

발레와 힙합의 만남이나 국악과 재즈의 만남처럼 장르가 다른 분야가 서로 만나 새로움을 창출하는 시도는 이미 있어왔다. 서커스는 오랜 세월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공연형식이다. 마상곡예는 서커스와 말이 만나는 접점이 될 것 같다. 공중그네타기와 같은 서커스 전문분야와 말 퍼포먼스가 조화와 협동을 이루어내며 한 무대에서 만나니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얼마나 짧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카발리아 공연은 말 애호가나 승마인에게 귀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카발리아 말 배우들은 준수한 용모를 자랑하는 다양한 품종으로 이뤄져 있다.

아라비안, 콤토이스, 호주 스톡마,크리올로, 루시타노, 미니어처, 페인트호스, 페르슈롱, 쿼터호스, 스페인순종마 ,웜블러드 이다.

 

사막,초원, 산맥,숲 등등  인간이 말과 함께 누볐던 대자연을 무대배경으로 등장하는 말은 영화나 순정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구불구불한 갈기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관객의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무리를 지은 말이 질주하고, 함께 어울려 털을 긁어주기도 하고 , 사람과 교감을 이루는 모습도 보여준다. 고난도의 마장마술 워킹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는 말의 우아하고도 기품있는 자태에 홀리듯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라이브음악은 신비롭고도 몽환적이다. 가끔 안개가 피어오르고 눈,비가 내리기도 하고 자연속으로 들어가 말을 만나고 오는 체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양한 말타기의 진수성찬.

보통 승마를 배우면 자세 잡느라 곤욕을 치룬다. 팔,다리, 허리,등,어깨 등 바른 자세 취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마도란 참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무게 잡고 법도를 지켜야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카발리아 공연에서 그런 강박관념을 와장창 깨뜨리는 통쾌한 장면이 있었다. '막 타기 천태만상'이라 부제를 붙이면 좋을 법했다. 2부에서 서부스타일로 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대체 어떻게 매달렸는지도 자세히 가늠할 길이 없이 그저 말과 사람이 한덩어리로 총알처럼 휙휙 날아다닌다. 그 모습들을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그만  '평소 우리가 말 타는 것은 타는 것도 아니여!' 하는 심정이 된다.

 

 

 

 

카발리아의 최고 미덕은 '말이 최고의 주연으로 대접받는다'가 아닐까?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배우들의 사진으로 담벼락을 길게 이어붙이고 있었다. 사람 배우의 사진이 아니라 말 배우의 사진이었다. 꼭 공연장에 한류스타의 사진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에서  스타의 영화속 이미지처럼 말의 매력이  깃든 표정이 담겨 있었다.

 

 

 

공연의 내용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말들의 역할은 편해 보이는데 사람의 역할은 매우 고달파보였다. 특히나 인간탑쌓기 같은 장면에선 정말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에 비해 말들은 사람이 힘겹게 곡예를 하는 동안 일정한 속도로 설렁설렁(?) 구보를 한다거나 떼지어 자유롭게(?) 질주를 한다거나 했다. 앞서 썼다시피 이런 무대에 선다는 자체로 말에게 엄청한 요구를 한 것이지만 그런 말보다도 사람이 훨씬 많이 뛰어다니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결코 말을 혹사시킨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세부적으로도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있으면 다음엔 사람이 땅에서 스스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 점핑을 하면 또한 사람 혼자 점핑하는 모습이 따랐다. 사람과 말의 하모니가 이루어진 어떤 장면의 엔딩은 사람 배우들이 모두 경외하듯 손을 우러러 말을 떠받들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에서 카발리아 공연철학이 말을 존중하는 바탕위에 서 있다고 보여져서 보기에 좋았다.

 

 

 

 

사방이 말 천지로군! 흐뭇~

 

                                                         쾌적한 관람을 위한 공연 팁!

 

1. 맨 앞자리는 공연 말미에 연못으로 변한 무대에서 말들이 질주할 때 물벼락을 맞게 된다. 대형타올을 줘서 가리면 되지만 부담스러우면 앞자리를 피하면 좋다.

 

2. 앞좌석과 뒷좌석 간격은 매우 좁다. 다리를 꼭 뻗어야 한다면 맨 앞자리가 필수다. 좌석은  플라스틱이라 딱딱하고 차가우니 방석이나 미니담요를 가져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3. 말 배우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기에 임하도록 하고, 말의 움직임에 좌우되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하여 공연중 휴대폰을 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어둠 속의 섬광이 말을 자극할 수 있어 본능적으로 돌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공연중 촬영자제는 카발리아 관객의 기본 에티켓이다.

 

 

공연이 끝난 후 vip고객 대상으로 제공된 마구간 투어. 관리사는 모두 여자였고 부드럽게 속삭이며 말에게 다가가 머리(갈기)를 땋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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