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경청...

 

공감...

 

이완...

 

씻김...

 

웃음...

 

기쁨...

 

승마와 명상...칸타빌레와 나

 

그때 난 울고 있었다.운동장 주변 논은 지난 겨울 깐돌이가 돌아다니며 놀던 놀이터였다.지금은 모를 심으려고 물을 그득하게 대서 호숫가처럼 변해버렸다.사방에 물이 넘쳐나서인가 내 안에서도 물기가 솟아났다.

말 등에 오르면 금새 미소가 번지곤 했는데 이날은 뭔가 가슴이 먹먹하였다.그 상태로 물가를 바라보며 평보로 좀 걷다가 칸타야 엄마가 오늘은 좀 속상하구나 하고 말을 토해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속에서 감정이 밀고 올라왔다.어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빗장을 걸기에는 이미 늦었다.결국은 한 줄기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리고 말았다.

엄마가 그러는 동안 칸타는 다소곳했다.결국은 이미 쏟아진 거 더 쏟아보자 싶었다.말 위에서 한숨을 한번 쉬고는 중얼중얼거리며 이러구저러구 푸념을 늘어놓았나보다.칸타의 목은 둥글게 구부러져서 조아리고 있어 차분했다.참 신기한 것은 승마할 때 사진을 찍어보면 그 순간의 내 감정과 말의 표정이 호응한다는 점이다.기수와 말 사이에  비밀스러움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등자에 한 발을 딛고서 최초로 말 등에 엉덩이를 내려놓으면 먼저 제대로 앉았는지 몸을 먼저 추스리게 된다.말 등에 제대로 잘 앉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처음 수초 동안 몸둘 바를 찾아 헤매는 동안 내 호흡을 의식하면 숨을 안 쉬고 있는 경우도 많다.말이 네 발을 순서대로 땅에 놓는 것을 느끼며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해야 비로소 호흡도 편안해진다.

기수가 앉아서 호흡을 찾고 말의 움직임에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집중하는 동안이 참으로 중요하다.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번잡스럽게 날아다니던 잡생각들이 잠재워지는 까닭이다.잠드는 순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떼쓰는 아이가 잠들었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평화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말의 평보는 참으로 명상에 들기 좋다.말 머리가 꺼덕꺼덕 하면서 나아갈 때 나의 골반으로는 말 몸통의 사각형 모서리 아래에서 말 다리가 출렁거리는 느낌이 차례로 느껴지니 골반과 허리가 시원해진다.말의 다리와 내몸에 집중하게 되니 어느새 의식은 내면으로 향한다.

평보하는 동안에는 헉헉거릴 일이 없어 말과 대화하기에도 좋다.말은 평소 땅에서 만났을 때 감각이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사람에게 온전히 머물지 않지만 사람을 태운 후에는 고삐로 인한 접촉으로 인하여 감각이 사람에게로 모아진다.

여러 말 중에서도 칸타는 집중력이 매우 빼어난 말이다.까탈스러운 예민함의 반대편 얼굴이기도 한데 운동할 때 크나큰 장점이 된다.

칸타의 잔등에 머무르는 동안 칸타의 귀가 내게로 쫑긋할 때 저절로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 된다.어느 누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오래 들어줄까? 아무리 가족이나 친구라도 가릴 부분이 있고 불편하지 않도록 털어놓는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그러나 말은 니편 내편도 없고 입장에 서지 않았으므로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의 존재와도 유사하다.

말은 경청하는 존재다.경청과 거짓 듣기의 차이점이라면 말하는 상대방의 내면 상태에 함께 머무르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라고 본다.말하는 이가 슬프든,화나든,억울하든 그 감정의 맛과 농도를 함께 느껴주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하지만 자신의 기준틀로 걸러서 듣다가 쉽게 훈계,비판,동정,위로를 하려든다.그 지점에서 상처는 더 커져버리고 마음은 닫혀져 소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비폭력 대화법>에서 저자는 '서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민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맺을 것'을 강조한다.우리가 비난,판단,지배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말의 신비로움 중에 하나는 생명체 간의 감정전이가 뛰어나다는 거다.내가 어떤 감정상태에 있든지 금새 알아채서 감정의 거울인 것만 같다. 또 말 위에서는 말의 감정이 내게 쉽게 전달되기도 한다.칸타에게 이런저런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주니 내게 공감하는구나 싶어진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애호가들이 그들에게 쉽게 위로받는 것도 초롱한 눈으로 주인을 빤히 바라보며 언제까지라도 무슨 얘기든 들어주는 미덕 때문이겠다.

어렸을 때 속상한 일을 겪고는 울먹거리며 집에가 엄마를 보고는 으앙 울음을 터뜨렸을 때 얼마나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웠는가!성인이 되어 정서적 엄마를 잃어버린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가!

평보가 지나간 후엔 속보로 나아간다.절도 있는 스타카토로 흔들리며 나아가는 동안엔 굳어버린 근육의 나사를 풀어 흐물흐물해져야 한다.그러면서도 적당한 근육의 긴장도는 가져야 한다.숨이 가빠오면서 신체가 전체적으로 이완되면 처음에 찾아온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러들고 기쁨이 찾아든다.승마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해서 몸을 움직여주면 나쁜 감정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이다.그래서 드라마에서도 격한 감정에 휩쌓인 인물들이 격한 스포츠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 것이리라.

속보로 몸이 거의 풀어졌다 싶을 때 칸타가 구보를 가고 싶어한다.어떤 때는 구보할 때가 되었는데 왜 신호를 안 주느냐고 보채기도 한다.그래 가자꾸나 하고 허락하면 칸타는 신나게 달린다.따그닥 따그닥 하는 경쾌한 굽소리가 울리고 기분 좋다는 듯이 푸르륵 기침소리를 내고 푸륵푸륵 하고 코푸는 소리가 들린다.그러는 동안 바람이 제 할일이라는 듯이 찾아와 말과 나를 씻어내릴 때 평보 때부터 밀려 올라온 부정적 감정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진다.바람이 씻김을 했다.어느새 마음이 맑아졌다.

승마할 때 얼굴에 웃음을 거는 일은 중요하다.웃으면 근육의 이완이 쉽게 되어서 긴장을 떨치게 되니 말이 편안하게 나아가도록 돕기 때문이다.웃는 기수에게는 즐거움이나 기쁨,만족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찾아든다.승마하는 분들 중에 평소엔 온화하다가 말 위에서는 무섭고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기수가 그러면 말 역시 좋을 리가 없다.그분들이 그러는 까닭은 내 경험에 비추어보건데 승마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과도한 긴장에 휩싸여 그리 되기도 하고 말을 타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실없어 보일까봐 표정관리 하느라 그리 되기도 한다.그러나 자연스런 에너지의 흐름은 흐르도록 터주는 편이 낫다.그리하면 승마도 더 순조롭게 될 터이니.

6년이라는 세월 엄마와 지낸 칸타는 이제 엄마의 속내를 많이 안다.그래서 가장 편안하게도 생각한다.말과의 일과를 시작하는 맨 처음 작업은 마방에 가서 마방굴레를 씌우고 벗기는 일이다.그럴 때 칸타는 이때다 싶어서 엄마품에 얼굴을 폭 들이밀어 안기고 가만히 있는다.칸타가 애교스럽게 구니 더욱 사랑스러워져서 굴레 고리를 다 채우고 볼과 눈을 쓰다듬어주고 가끔 뽀뽀도 해준다.

지난 토요일에 마장에 못 가고 일요일에 갔더니 칸타가 삐져서는 출입문 반대편 벽에 딱 붙어서 흘겨보고 있었다.남들 다 나오는 날에 왜 안 왔냐는 항의다.이미 그럴 줄을 훤히 알고서 '짜잔'하고 봉지를 보여주고 먹이통에 수박껍질이며 달콤한 향내 풍기는 먹거리를 쏟아주니 언제 삐졌냐는 듯이 냉큼 달려와 냠냠 먹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 하는 듯이.나도 이제 칸타 속을 훤히 안다.

 

대인관계 뿐만 아니라 말과의 의사소통에서도 어떤 대화법으로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영감을 준 책입니다.

 

 


비폭력 대화

저자
마셜 B. 로젠버그 지음
출판사
한국NVC센터 | 2011-01-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복종만 강요하던 권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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