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에서 살아가는 말 무리가 있는 어느 곳이나 끙끙이 동호회가 있을 것이다.끙끙이는 말의 악벽 중 하나이지만 다른 악벽은 동호회를 꾸릴 정도까지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우리 아이들이 사는 거처에도 회원이 넷인 끙끙이동호회가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칸타와 돌이 모두 가입했다.

 

돌이는 열성회원이고 칸타는 가입과 탈퇴를 번갈아가면서 하기에 조직충성도가 매우 낮은 불량회원이다.

 

한강 끙긍이동호회 회장님이신 장군이다.장군이는 이빨을 걸지 못하도록 머리 내미는 공간을 막아버리자 밥그릇을 물고서 끙끙이를 했다.하루 종일 얼마나 심취했는지 바라보면 내가 아는 장군이는 온데간데 없고 넋이 나가버린 좀비가 무의미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그 심취한 경지에서 장군이가 회장감으로 충분했다.돌이는 행위를 할 때는 세게 하지만 금세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일을 보곤 했다.(건초 뒤적질 같은 것)

 

클럽에 조이라는 암말도 열성회원인데 역시 밥그릇을 물고 하는데 밥을 먹는 와중에도 반찬 집어먹듯 끙끙이를 해대니 중증이다.(사진은 3년 전 칸타)

 

그러던 어느 날 동호회에 날벼락이 찾아왔다.모든 회원에게 끙끙이방지끈이 채워진 것이다.이전엔 칸타와 돌이만 금속으로 된(윗 사진)목걸이를 찼었다.새로운 끙끙이방지끈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폼이 났는데 칸타,돌이,회장님이 착용했고 조이는 돌이가 쓰던 금속목걸이를 했다.그랬더니 동호회활동이 위축되다가 활동은 자취를 감춘 듯 했다.회장님은 하룻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고,조이도 멀쩡한 말이 되었다.우리 아이들도 뭘 하려고 하면 딱딱한 것이 목울대 근처를 찌르니 놀라서 좀 삼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나는 '됐구나 됐어! 이거야말로 인간의지의 승리구 말구! 푸하하하 - '하며 쾌재를 불렀다.그 후론 끙끙이조직이 일망타진 와해됐다며 좋아라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말과 함께 살다보니 촉이 예민해진 나의 레이다에 자꾸 조짐이 걸려들었다.아무래도 조직이 와해되자 지하로 잠입한 극렬세력 중에서 혁명군이 태동한 것 같았다.비밀요원에게 임무를 주어 사태를 파악하니 (사실은 관리인이나 코치가 자발적으로 신고함)혁명군의 핵심은 우리 돌이였다.

 

돌이는 처음 제 목에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자 "이까짓게 다 뭐야!' 하고 보란듯이 우렁찬 베이스로 끄응~ 하길래 끈을 바짝 조였더니 그 행동을 중지했다.사태가 그 정도가 되자 무력화된 동호회의 주력세력은 밤마다 회합을 하고 조직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숱한 논의를 거쳤는지 모르겠다.그 결과 조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기로 결사했고 그 핵심에 돌이가 가담하고야 말았다.

 

돌이가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끙끙이 방지대 색깔이 하필 붉음) 깃발을 높이 들고서(파리를 쫒느라 꼬랑지를 치켜듬) "동지들이여! 나를 따르라! 우리는 억압과 핍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이히히힝~ 하고 당근 달라 조름)라고 외친다.돌이가 혁명가라면 칸타는 혁명가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다.

 

요즘 돌이는 끈을 너무 졸라 귀 아래 뼈가 툭 튀어나온 부분이 까졌는데도 하고싶을 때는 언제든 끄응~ 한다.물론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다고 내가 못할 줄 알고?'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오늘날 돌이가 혁명가가 되기까지는 승용마가 사람과 살기 위해 마방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생존조건이 토대가 되었다.승용마는 평균 하루 20시간 이상을 좁은 마방생활을 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40시간 이상을 마방에서 지내야 한다.말은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는 존재인지라 대부분 그 생활 안에 머무른다.그러나 일부 말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견디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악벽을 자기 안에 생성시키는 모양이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악벽이 학습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말 내부에 존재하는 요인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우리 아이들과 아무리 오래 지낸 태풍이도 끙끙이를 배우지는 않았고 함께 지내는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악벽이 몹쓸 행동이지만 말 입장에서는 우리를 마방에만 가두어두었으니 이럴 밖에요 하는 항거의 몸짓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악벽마를 인간 세계에서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혁병가 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짜내어 말의 끙끙이를 방지해도 또 하고야 마는 말이 있다는 현실은 문제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존재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우리 돌이가 혁명가에서 평범한 말로 귀의할 수 있도록 넓지는 않아도 아담한 풀밭을 마련해주는 일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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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이의 부활

칸타빌레 2013. 6. 12. 10:56

 

세상엔 불행을 가장한 행운이 있는 법이다.지난 겨울 칸타가 아랫니가 뽑히는 마방사고를 당하고 나서 끙끙이를 안하게 되었다.아 칸타 끙끙이 고치려고 그런 일을 당한게지 하며 내심 위안도 삼았다.집에 갈 때 끙끙이방지대를 돌이 목에만 채우면 되니 번거로움도 한결 가벼워졌다.수의사님도 칸타가 끙끙이 고쳤다는 말을 듣고 신기해하셨다.아마 속으로 '끙끙이 고친 말 본 적이 없는데'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느날 번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일이 생겼다.어디서 '끄응~'하고 우렁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돌아보니 칸타가 끙끙이를 하느라 낸 소리였다.특유의 끙끙이 소리가 있다.기승 도중에 말이 걸음을 멈추고 똥을 눌 적에는 갸날픈 '끄응'소리가 난다.이에 비해 끙끙이를 하면 우렁찬 굵은 '끄응'에다가 트름 할 때 내는 '꺼억'을 합친 지극히 점잖지 못한 소리가 난다.그래서인지 말이 그럴 때 보는 사람마다 "하지 마라!'하며 나무란다.

 

날이 더워지면서 등장한 티브이 광고가 있다.에어컨 사러 어디로 오라는 광고인데 내용은 이렇다.누군가 찾아와 문을 열어보니 불청객이 "무더위옵니다"한다.가족은 일치단결 전투태세로 불청객을 물리치니 무더위가 "오메~"하며 회오리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린다.나에겐 그 광고가 계속 끙끙이버전으로 오버랩됐다.지난 겨울 "오메~"하고 북풍한설에 실려 사라졌던 끙끙이 망령이 여름이 되자 불사신처럼 살아나 "끙끙이옵니다~"하며 나타난 것이다.

 

어여쁘고 우아한 칸타가 '끄어어~'하는 점잖지 못한 소리를 낼 때 내 다리는 힘이 풀리는 듯 휘청거렸지만 한 팔로는 난간에 기대고 한 손은 가슴에 얹고서 마음 다스리기에 들어갔다.'끙끙이를 하니 필시 입안이 완벽하게 나은 거야 암 그렇그말구' 부활한 끙끙이를 보니 불행을 가장한 행운은 또 이렇게도 오는구나!

 

 

 

화단 옆으로 조각 빨래들이 바람에 춤춘다.끙끙이방지대 싸개다.금속이 말 목에 닿아 피부가 짓무르는 일을 방지하는 임무를 띤 요원들이다.

 

작열하는 햇볕에 살균소독 당하는 끙끙이 방지대.

 

손수 만든 헝겁싸개는 이 부분을 커버한다.

 

실내라지만 더운 공기에 나른해져서 무료하게 놀던 칸타가 바에 들렀다.엄마가 늘 당근이며 수박이며 맛난 것을 내다 주는 장소라 뭐 없나 하고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들렀다.

 

뭐 없어요?

 

엄마 어디 갔어?

 

칸타 앞에는 고양이 태평이가 세상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든지 태평하게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늘어졌다.

 

머리만 겨우 들고는 "무슨 일이세요?"한다.

 

저한테 볼일이 없는 걸 알고 다시 제 팔을 베고서 낮잠에 빠진다.오후 4시 정도가 되면 말을 타려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그때까지 고양이의 평화는 침범당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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