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이 되자 보리에 이삭이 났다. 이삭이 일제히 돋아나자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줄기의 녹색과 이삭의 연두색이 조화를 이루며 빛을 받아 반짝이고 바람에 넘실거릴 때 바라보고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질 것만 같았다.

 

 

 

보리밭이 이렇게 목가적 낭만의 분위기를 선사할 줄은 몰랐다. 보리밭에서 만난 원장님이 ,보리 심어놓으니까 아주 멋지네요, 하신다.

 

 

 

작년에도 보리를 심기는 했다. 그런데 이삭이 달리기 전에 베어서 말에게 먹였으므로 이런 장관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이 보리는 지난 겨울이 오기 전에 심은 것이니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서 자란 보리다.

 

 

 

 

한겨울 동안 보리밭은 풀이 누렇게 말라죽은 형상이었다. 누가봐도 추위에 다 얼어죽었구나 했다. 그거라도 아쉬워서 우리 칸타랑 아마르는 종종 누렇게 동사한 보리싹을 뜯어먹곤 했다.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일에도 기적이란 말을 써도 된다면. 대지가 따뜻해지면서 땅이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초록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보리가 부활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모습이다. 난 아직도 두꺼운 옷을 껴입었다. 칸타가 엄마가 어서 보리싹 갖다주기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칸타가 얻어먹는 녹색잎은 그야말로 어린싹 수준이다. 이런 사이즈 풀은 뜯어다주기도 애매하다. 손에 잘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밭에 말을 데리고 가서 뜯기는 것이 좋은데 두 마리를 한꺼번에 풀뜯길 수 없어 아쉽지만 좀 뜯어다주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

 

 

 

 

 

                                   칸타의 풀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엄마 더 줘!

 

 

 

 

                                  에구~ 엄마 힘들단다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칸타는 채워지지 못한 헛헛함을 끙끙이로 달래고 아마르는 잇몸의 빈곳에 혀를 밀어넣어 채우는 행동을 하니 ,말의 심리적 공허함이 그렇게 나타나는가 싶어 웃게 된다.

 

 

 

 

내가 보기에도 좀 그렇다. 보리밭이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놓고 못가게 하니 말이다. 맛난 것을 눈앞에 두고 보고만 있으라니 아쉬운 마음은 나도 말 못지않다.

 

 

 

 

그러다가 이런 날이 왔다. 보리의 키가 내 하반신을 가릴 정도로 풍성하게 자랐다.

 

 

 

 

                   칸타,아마르가 곧 보리만찬을 한다고 기대와 설레임으로 흥분해서 들썩들썩 한다.

 

 

 

 

           맛난 것 앞에서는 어미고 자식이고 다 소용없다.  둘 사이에 신경전이 팽팽하다.

 

 

 

 

새치기 명수 아마르가 보리이삭을 제자리에 놓기도 전에 한입 콱 베어물었다.동작 한 번 참 빠르다.

 

 

 

 

그 정도에 지는 칸타가 아니다. 더 놀라운 필살기가 있다. 양동이를 자기쪽으로 확 쓰러뜨려서 유리한 상황을 만든 후 머리로 방어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래도 아마르가 칸타보다 공간점유력에서 밀려 보인다.

 

 

 

 

다른 말 같으면 칸타가 국물도 안 떨궈줬겠지만 그래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닌가. 결국 아마르가 맘껏 먹도록 하니 어느덧 사이좋게 만찬을 즐긴다.

 

 

 

 

 나는 아이들 뱃속으로 보리이삭이 꾸역구역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내 배가 불러오는 듯 흐뭇하다. 넘실거리는 보리의 물결을 바라보며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랬다. 나이 먹을수록 문화생활과 여행이 인생의 기쁨인 것 같다고.  그랬더니 상대는, 거기다가 맛난 것 먹으러 다니는 것도 추가해요,라고 말했다.

 

 

 

 

 말도 그런 것 같다. 말은 문화생활 대신에 운동 잘하고, 여행은 못가더라도 산이나 들판 등 자연을 원없이 바라보고, 사료나 건초 외에 특별한 먹거리를 맛보는 것이 삶의 낙이 될 것 같다.

 

 

 

 

                                  둘은 오늘 그런 날을 맞았다.

 

 

 

 

보리는 조금만 베면 한 양동이 가득이다. 이날 아이들은 각각 한 양동이씩을 먹었다. 이삭에 곡물이 함유된 먹거리이므로 말에게 줄 때는 많이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또한 입맛이 원하는대로 무한정 먹을 수 없는 다이어트 현대인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칸타야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그악스럽게 먹어? 좀 예쁘게 먹으면 안되니?

 

 

 

 

 

                                           이렇게요?    그래 참 얌전하구나.

 

 

 

 

                                   아마르는 원래 얌전하게 먹어요,그쵸 할머니?

 

 

 

 

                                                    그래,얌전하면서도 엄청 빠르지

 

 

 

 

보리밭과 말이 나를 힐링하게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난 겨울 얼어죽었다고 생각했던 보리가 부활하듯 살아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존재감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혹시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그저 지나가버린 것들, 실패했다고 끝나버렸다고 생각한 채 사라져버린 무수한 사건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잠자고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미래의 어느 날에 보리처럼 찬란히 살아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맛나게 먹는 동안에 이 주변에서는 할방님이 잔돌들을 수거한다.

 

 

 

 

                         아이들 밟고 다니는 길에서 하나라도 돌을 치워주려는 마음이다.

 

 

 

 

 

 

 

 

 

 

                                  돌들의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 다시는 흩어지지 마세요!

 

 

 

 

열린 문으로 마방이 보인다. 요즘 문 근처 마방에서 지내는 말들이 밖을 내다보느라 넋이 나간 모습을 자주 본다. 시선으로나마 자연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심기 전의 논.

 

 

 

 

아파트 베란다에도 화초를 가꾸며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승마장에도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있으니 휴식과 즐길거리가 되어 좋다.

 

 

 

 

기승운동 끝나고 마주님과 함께 산책나온 말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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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어느 봄날, 뚝딱뚝딱 원형마장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원형마장의 쇠파이프 팬스 뒷편 밭에는 당근씨가 비닐 이불을 덥고 무럭무럭 자란다. 원형마장이나 당근이나 모두 말을 위한 것이다.

 

 

 

 

원형마장은 왜 새로 짓는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 다들 동의하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도 책상 배치를 둥그렇게 하느냐 앞에서 뒤로 줄세우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얼굴을 못보고 교수님만 바라보는 경우와 학생 서로가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경우,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경험은 많이들 해보셨을 줄 안다.

 

 

 

 

승마도 마찬가지다. 기승운동을 할 때 대부분 마장에서 초보자는 원형,중급자 이상은 사각마장에서 한다. 원형은 넓지 않아 말이 걸음이 커지거나 빨리 뛰어 위험할 염려도 적고 ,둥그런 팬스를 따라 말이 저절로 보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각마장은 마장마술에서 필수다. 코너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 대각선의 운용 등 사각이 아니라면 마장마술 훈련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곳 승마장에서는 초보마장으로 불리우는 비교적 규모가 적은 사각마장에 고깔로 원형모양을 만들어 초보자를 위한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지어지는 원형마장의 필요성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츄럴홀스맨십의 기본훈련에 들어갈 때 자유조마를 말에게 가르치는 경우 원형마장이 꼭 필요하다. 특히 방향전환을 시킬 때 한쪽을 거부하는 말의 행동을 교정하려면 원형의 공간이 있어야 훈련이 가능하다.

 

 

승마장 여건으로 보아 원형마장은 조마장 외에 방목장으로도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칸타나 아마르도 원형마장 안에 풀어놓았더니 사방으로 '뷰'가 시원하여 편안한 자세로 구경하며 놀았다. 아직 돌이 많아서 구르면서 모래목욕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눈치를 챈 칸타는 뒹굴지 않았고 아마르는 한 번 누웠다가 돌에 배겨서 얼른 일어났다.

 

 

 

 

 

공사는 남자들 몫이 되었고 말 타러 왔던 아낙네들이 쑥 뜯고 보리 뜯느라 삼매경이다.(나도 있음) 나중에 쑥은  사람 입으로, 보리싹은 말 입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이야말로 힐링의 시간이다.

 

 

 

 

원형마장이 지어지는  동안 칸타가 사람들이 저기서 뭐하느라 수런거리나 관심을 보였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기대하는 것처럼 응시한다.

 

 

 

 

 

                       딴청 부리고 있는 것 같아도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동향을 항상 신경쓰고 있다.

 

 

 

 

 

도심지형 승마장에서는 말의 활동공간이 제한되어 있어 그나마 승마장 안의 여러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말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운동을 흥미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만일 어제 실내마장에서 운동했다면 오늘은 야외마장에서 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또 방목도 어느 날은 야외마장에서 어느 날엔 원형마장에서 하는 식으로 옮겨다니면 그런대로 재미난 활동이 된다. 그렇게 컨디션을 조절해주면 말의 기분이 좋아져서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칸타와 아마르가 좋아하는 상황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팬스 밖에서 다가와 바라보고 말 걸어줄 때, 사각마장 안에서 함께 운동하는 말 동료나 사람들 틈에 섞여 누비고 다니는 것,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 칸타나 아마르가 그 옛날 프랑스나 러시아 궁정 무도회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커플 춤을 추면서 사교를 하던 그런 분위기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게는 승마가 늘 축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추카추카

 

원형마장 짓느라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채워갈 행복한 시간들에 마음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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