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가 할머니는 뭐하는 건가 본다.

 

칸타도 마찬가지로 본다.내가 시야에 보이면 더욱 안심하고 편안하게 논다.

 

여름내내 아이들은 팬스 너머로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더 뜯어먹는 재미에 목을 있는 힘껏 길게 뻗었다.목과 등 근육 늘리기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돌이가 5세가 되고나서 어느 날 문득 칸타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몸통도 약간 더 굵어보인다.둘 중에 하나를 기승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한다.칸타를 타고 있는데 "오늘 칸타 안 타요?"묻는 식이다.반대의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텃밭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봄에 심었던 것들이 소임을 다했으므로 뽑아내고 대신 다른 것들을 심었다.우리는 상반기 농사성적이 낙제 수준이라 자진 낙오 하고서 늦여름부터는 밭을 가꾸지 않는다.농사를 하려면 자질과 근면함이 따라야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부부는 영 아니다.자체 평가는 이렇다."우리는 채집스타일이지 경작스타일이 아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새 건물은 미니마장이다.새 건물로 인하여 승마장 전체가 더 안정감 있고 아늑해 보인다.겨울에는 바람도 막아줄 것이다.

 

주변 들판의 색이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옮겨가는 중이다.인근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친 곳도 있다 한다.벼의 품종이나 심은 시기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화들짝 놀라는 심정이다.누군가 말하길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기질은 사계절이 뚜렷한데서 기인한다고 했다.돌아오는 절기에 맞춰 씨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애써 키운 작물이 서리와 찬바람에 상할 수 있으니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사느라 급한 기질이 되었다나.자연의 시간표라면 느림지향적이어야 마땅할 텐데 좀 아이러니하다.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의 분주함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그런 말도 생겼으리라.

 

논으로 둘러싸인 승마장으므로 지금부터 추수하는 때까지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승마할 수 있다.익어가며 물결치는 벼를 바라보고 향기를 들여마시는 말도 최고로 좋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한다.

 

 

류시화 제3시집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란 시가 있다.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로 시작하는 시인데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 등등 사물을 새롭게 보는 시어들이 나온다.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식으로 벼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내가 시인의 마음으로 아무리 마땅한 표현을 찾아보려 해도 영 떠오르지를 않는다.시인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어줍잖은 표현이나마 건져보자면 '벼는 황금빛깔로 포장하여 땅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 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하루하루 수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자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말 입으로 엄청나게 빨려들어간 것은 쌀알이 떨어져나간 볏짚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심은 당근이 벌써 잎이 무성하다.(물론 내가 심지는 않았다.)

 

당근은 '땅이 말에게 선사하는 주황색 선물'...

 

고추도 빨갛게 영글어간다.실내마장 옆으로 고추를 말리므로 우리 아이들도 고추 말리는 구경도 실컷하고 매운 내음도 곧잘 맡으며 생활한다.말 노는 옆에서 고추를 다듬는 풍경이 정겹고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풍경 속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보면서 '손과 입'이란 화두가 떠올랐다.날마다 아이들에게 내손에서 아이들 입으로 당근이며 사과며 커피며 나르는 일이 일상이라 손과 입의 접촉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한번은 손바닥에 따라준 커피를 낼름거리는 칸타에게 시샘을 느끼고 돌이도 열심히 내 손바닥을 핥았는데 하나도 따갑지도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손바닥만한 말 혀를 느끼면서 이 순간은 좋은 감정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입은 주고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일에서 돈독한 관계속으로 들어간다.과거에 나는 얼마나 손으로 말 입을 아프게 하였을까 여리디여린 말 입에게 자꾸 무엇을 달라 얼마나 요구가 빗발쳤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달라고만 했지 양보할 줄 모르던 손의 쓰임새에 대하여 달리 생각한 것은 기승술에만 갇혀있던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때 가능했다.

 

땅은 몸 전체가 손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들인 생명들에게 철철이 자꾸 무엇을 먹여준다.땅이 손으로 먹여주는 무엇을 직접 입으로 받아먹는 상징성이 말이 풀 뜯는 모습에 절제된 시어처럼 담겨있는 것 같다.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땅처럼 말을 한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말 입으로 고삐를 통하여 손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라고 깨닫게 되었다.

 

 

말에게 어떤 손으로 다가가야할지 이 가을 풍경 속에서 바람이 설핏 알 듯 모를 듯한 언어로 속삭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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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깐돌할방 님이 몽골에서 보았던 하늘에 걸린 무지개입니다.

 

무더운 여름은 잘들 보내셨나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여름도 저무는 길에 들어섰구나 싶어지네요.

제가 한 20일 블로그활동을 쉬었습니다.

그동안 여기 들르셨다가 돌이 마방앞 사진전시회만 3회 이상 보시고 그냥 나가신 분들이라면 정말 송구합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제 블로그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우리 아이들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어디 아프거나 다친데 없이 얌전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칸타,돌이,엘도라도 모두 제 생활에 만족하고 승용마의 본분에도 충실합니다.

이런 상태일 때 저도 행복하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 깐돌할망의 소식을 전하지요.제 소식을 전하려니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전 올여름 원고와의 씨름으로 세월 다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승마에세이집 출간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력투구해야할 상황이 닥친거지요.

그동안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에서도 가장 저다운 느낌이 살아있는 글로만 엄선하여 추리고,다듬고,또 다듬고 그러는 과정에서 안타깝지만 출판원고에서 탈락시킨 글도 많고 뒤늦게 채택된 글도 많고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엔 블로그에 글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책으로 묶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블로그와 책은 또한 별개여서 책작업을 시작하자 황무지를 새로 개간해서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것처럼 진행되었습니다.

그래도 작업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이제 쌓아둔 글도 양적으로 너무 많아져 저 자신조차 과거에 쓴 어떤 글을 찾아 읽으려면 정말이지 찾기도 힘든 실정이어서 한 번 정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요.

뜨거운 여름이지나가는 동안 원고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힘들면서도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차피 여름엔 말도 힘든 법이니 우리 아이들 거의 기승은 하지 않고 편히 쉬면서 놀게 해주었는데요.

그 덕에 저도 보람된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도 힘든 여름을 잘 난 것 같습니다.

 

제가 원고작업 하는 동안 남편 깐돌할방 님은 홀로 몽골승마여행 다녀오셨습니다.

그닥 기대는 안하고 다녀왔는데 다녀온 소감이 한마디로 '환타스틱'이었답니다.

몽골폐인이 되어 돌아온 할방님은 날마다 몽골 이야기를 저에게 합니다.

내년엔 저도 몽골에 안 갈 수 없을 것 같네요.

할방님이 몽골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려주신댔는데 언제 올리시려나 저도 기대가 큽니다.

 

승마에세이 원고는 8.15 광복절에 대략 작업이 마쳐져 저도 원고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출판사에서 작업 들어가면 10월 중순 전에는 책이 세상에 태어나리라 예상합니다.

 

저의 정황 때문에 한동안 블로그 내용도 명맥만 이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부터 신경도 더 써서

참신하고 알찬 글 올려보고 싶습니다.

 

아직 낮에는 뜨거워서 조금 더 기다려야 승마하기에 쾌적해지겠지요.

어디선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남은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깐돌할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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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에 돌 생일축하를 당겨서 치루었답니다.말은 5세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지요.돌이가 어른이 되다니 감회가 벅찹니다.

 

돌아! 태어나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더 고맙구나!

 

태어나던 날 엉성하게 버티며 서있다가 주저앉아 쉬고는 또 일어나 어설픈 걸음을 떼던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이마가 훤했던 왕짱구,커다란 눈망울,귀여운 입,솜털처럼 날리던 갈기와 꼬리가 사랑스러웠지.

 

또래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말이 돌이를 예뻐하고 잘 돌봐주었죠.

 

돌이가 태어난지 20일 되던 날 망아지 젖먹이느라 힘든 칸타를 타고야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미안한 일이지요.돌이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하염없이 졸졸 따라오고요.

 

돌이 백일잔치.생후 90일 무렵 돌이가 크게 아파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살아나니 백일 축하를 안할 수가 없었답니다.돌이가 입은 옷은 DIY.

 

갓 2세가 되었을 때 돌이는 어떤 거부나 두려움도 없이 의젓하게 할머니를 등에 태워줬어요.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5세가 된 돌이는 의젓하고 늠름합니다.

 

5세 생일파티 패션.사람은 생일파티 때 반짝이가 잔뜩 달린 고깔모자를 쓰는데 말에게 씌우는 건 그렇고 해서 나비넥타이를 매줄까 망토를 씌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간단하게 마스크로 멋내기를 하기로 했답니다.니트마스크에 할머니 악세사리를 대롱대롱 다니 근사하네요.돌이가 멋져보여요.

 

한데 문제가 좀 있더군요.원래 마스크 위에 굴레를 씌우게 되므로 고정이 잘 되는데 마스크만 씌우니 말의 머릿짓에 오래 못버티고 훌렁 벗겨지더군요.

 

어쨌거나 마방 앞에 사진전시회를 하고 돌이 머리에 마스크를 씌우니 생일 맞은 분위기는 한껏 납니다.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돌이는 선물로 여자친구 수아랑 단둘이 실내마장에서 데이트하는 행운을 누렸답니다.물론 여자친구도 멋을 냈지요.

 

어째 마스크 색이 순백인데다 꽃장식,망사까지 드리워진 스타일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신부의 면사포를 떠돌리네요.에라 그래 돌이 장가나 가라.난데없는 결혼식 선포가 이루어지고 주례선생은 누구냐 부케는 누가 받냐 하는 소리로 시끄럽고 승마회원들은 모두 결혼식 하객이 돼버렸네요.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앙드레김 패션쇼의 신랑신부 같지 않나요? 신랑 마스크는 벌써 훌러덩 벗겨지고 없네요.

 

생일에 여자친구와 결혼식놀이도 하다니 비록 즉흥적이었지만 5세 성마기념식에 걸맞는 이벤트였던 것 같네요.

 

신랑 어머니는 이렇게 꾸미셨군요.

 

내가 5년 전에 아들을 낳은 에미라우.

 

마스크가 벗겨져 옆으로 늘어지니 마당쇠 혹은 인디언소년이 떠오릅니다.

 

마방에 들른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돌이 어린시절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그리곤 저마다 돌이 커가는 모습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 사진전시회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친구 수아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멋지게 꾸민데다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놀 수 있으니까요.혹시 이 모습을 본 돌이 다른 여자친구 안개가 속상하지는 않았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네요.

 

잔치음식 1.옥수숫대 자른 것.요즘 옥수수를 계속 수확하고 있어서 매일 옥수수 쪄먹고 말에게도 푸짐하게 주는데 옥수숫대를 한뼘 길이로 잘라놓으니 꼭 놀이공원에서 파는 핫바나 소시지처럼 보여요.원장님 말씀이 "오늘 아침에 내가 돌이한테 생일선물 줬어요.옥수수 잘생긴 놈 몇 개 골라 까서 주니까 잘 먹어요 하하"

 

잔치음식2. 당근.이곳에 사는 모든 말들이 돌이 귀 빠진 덕에 당근을푸짐하게 얻어먹었지요.결혼식놀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피로연음식쯤 되겠네요.

 

이모가 준비한 이번 5세 생일케익은 두부케익이었답니다.마트에서 판으로 산 두부에 딸기잼으로 글씨를 썼지 뭡니까.어찌 이리도 신통방통한 생각을 떠올렸을까요? 몇 판이나 사와서 말 한 마리당 두 모 정도씩 먹었다나 그러더라구요.

 

드디어 모든 사람이 다 모여서 태풍이네가 사온 케익에 5개의 초를 꽂아 불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어요.이 자리에 나타난 남자분들 손에 꽃다발처럼 초록 씀바귀가 들려 있었지요.즉석에서 준비한 생일선물이라나.그걸 보고 깐돌할망 빵 터지고 말았네요.

 

이날 아침에 돌이 옆방에 말 하나가 새로 들어왔어요.마장마술 고급 기능을 보유한 마필인데 이름이 ' 브릿지'라네요.기왕 케익이 있으니 써먹자 해서 입방 축하식도 덩달아했지요.브릿지는 낯선 곳에 왔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이 찾아오고 분주하고 자기에게도 말걸고 하니 호기심이 잔뜩 서린 얼굴을 하고서 혹 '여기서는 날 무척 환영하는구나.내 평생 이렇게 성대한 환영은 처음이야.이곳이 마음에 드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모두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때 브릿지 귀에는 "브릿지 환영해~ 브릿지 환영해~" 뭐 이런 식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렴 어떤가.오늘은 살아있는 모든 말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루이니... 마방복도가 연회장이 되었어요.아저씨들의 불만 "아니 두부는 있는데 왜 막걸리는 없는거야? 말 먹을 건 있는데 사람 먹을 건 없어?" 없다니오? 케익,갓 삶은 옥수수,수박이 있잖아요.

 

장군이도 신났다.오늘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아요.

 

아빠가 손수 두부를 먹여줘서 행복한 축복이.

 

두부와 잼이 만났을 때.유쾌하고도 흐뭇했던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지,어째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지 좀 색다르게 느껴보았던 것 같네요.승마인마다 말과 지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곁에 있는 말은 소중하므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다가간다는 면에선 누구에게나 같으리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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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이니 생후 11개월 차이다.

 

깐돌은 유순,온화,명랑한 성격이다.이런 깐돌에게도 지킬과 하이드만큼이나 상극인 모습으로 변신하는 때가 있으니 바로 마방에서 밥 먹을 때다.승마장에서 늘 보는 분들에게는 사전 당부를 해서 깐돌이 밥 먹을 때 접근하지 말도록 조치했으나 간간히 당황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글쎄요. 깐돌이가 밥 먹고 있는데 마방 문턱으로 건초가 흘러나왔더라구요.손으로 집어서 던져줄려는데 얘가 귀를 뒤집구 막 쳐다봐요. 귀는 접혀서 보이지도 않아요.얼마나 놀랬는데요.."
건초 한오라기는 딱 부추 한오라기 정도 크기다. 그걸 가지고 "어디 해보자는 거야? " 이런 식으로 나오니 당황할 밖에..
할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깐돌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씹는 소리를 듣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할방이 마방 앞에 가면 깐돌이 머리를 처박고서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확 덤비며 "우 씨~ 내거야!" 하고 으름장을 한 번 놓고 나서야 다시 먹기에 몰두한다. 먹을 것에 포한이 질 수밖에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한 장면은 다음과도 같다. 



이 시절 승마장에서는 말들에게 아침,저녁 두끼만 주었다.끼니 사이가 12시간이니 말들이 얼마나 배고프고 무료했을까 싶다. 양을 더 주지 않더라도 두끼분을 세끼로 나누어 주었더라면 말의 위장과 정신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하지 않은 것은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여 일을 줄이자는 것이다.하루종일 풀을 씹으며 지내는 자연상태의 말생활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말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고도 사람에게 봉사를 잘 하라고 바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망아지는 자라는 육성마이므로 하루종일 배고프다. 먹고 뒤돌아서면 또 출출할 것이다. 그래서 깐돌에게 시시때때로 간식 날라다주는 일이 지구의 평화나,세계 경제의 회복같은 문제보다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간식을 들고갈 때는 주변에 나돌아다니는 말이 없는지 확인했어야 하는데 이날은 사료 부어주자 어디선가 바람이가 바람처럼 나타났다.그리곤 뒷골목에서 만난 초등학생 삥뜯는 깡패처럼 깐돌이 머리를 저리 치우라며 으름장을 놓고 허겁지겁 망아지몫의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깐돌에겐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 상황이 매우 재미있는 것은 바람이의 갈등하는 심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람이는 깐돌이가 칸타가 낳은 자기 조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보호하고 편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다.허나 저 자신도 배가 고프고 먹을 건 눈앞에 있고해서 안 먹을 수가 없어 먹긴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바람이 성격으로 보아 다른 만만한 상대였다면 아예 저 멀리 쫒아버리고 얼씬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눈앞의 깐돌에겐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나나 할방도 이 상황에 끼어들어 바람이를 밥그릇에서 떼놀 수도 없다. 말들 사이의 일에 사람이 개입할 일 아니라는 원칙도 작용했고,바람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애마가 아니던가! 그래도 할방이 "안돼!" 하며 주의를 던질 때마다 바람이는 자기 행동을 멈추려는 몸짓을 한다.그러면서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내가 왜 계속 이러지? 나 꼬맹이 밥 뺏어먹고 싶지 않단 말이야.난 몰라 몰라!' 이 순간의 바람이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첨예한 갈등에 사로잡힌 인물로서도 손색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람아 미안하다.다 엄마 잘못이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엄마가 아이에게 쿠키를 먹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선 쿠키 접시를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곳에 놓고 외출했다. 아이는 갈등하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쿠키를 먹는다. 그리곤 죄책감에 사로잡혀 엄마가 돌아왔을 때 흐느끼며 잘못했다며 고백한다.바람이와 내가 꼭 이런 상황에 빠진 것만 같다.

결국 내가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깐돌사료를 다 먹어치운 바람이는 어디로 보내고 다시 사료를 가엾은 깐돌에게 주었다.



그래도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양이다.깐돌은 밥을 먹으면서 초조한 듯이 앞발로 장단맞추듯 간헐적으로 긁으며 부리나케 먹는다. 또 어디선가 괴한이 나타나 제몫의 소중한 밥을 빼앗아먹을지 도무지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날은 마침 비오는 날이었고 깐돌은 몸통으로는 비를 맞으며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몫의 밥을 얼른 제 위장속에 안전하게 옮기는 일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밥주는 임무도 완수하고나니 내 마음은 한결 여유로와졌는데 때마침 해피네 마주 부부가 마장에 왔다. 온 대기가 축축하니 말 타기는 좀 그렇고 해서 해피와 우리 말 셋을 마장에 풀어놓고 이놈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경마장 마주가 아닌 승마장의 마주 개개인은 이런 사람들이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자기 말을 자식들처럼 아끼고 돌보며 그들과 더불어 웃는다. 좋은 날과 흐린 날을 가리지 않고 말과 생활하기 위하여 마장에 드나드는 진정한 마주들로 인하여 승마장은  말과 사람이 소통하는 생기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가 넓은 곳에 나오게 된 말은 순간 희열에 차서 꼬리를 치켜들고 환희의 뒷발질을 날리며 마구 질주를 한다.따라서 갇혀있던 말을 풀어주는 그 타이밍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또한 신들린 질주를 하느라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말이 아무데나 부딪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위험한 것은 치워야 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찌그러진 캔이나 철사 같은 것이 말을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 우리에 갇혀있는 말들은 쳐다보며 부러워한다. 마음 같아선 이들도 풀어주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모든 말들이 나와 엉키면 다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말들은 승마장이나 어느 개인의 소유이므로 함부로 꺼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인이 오지 않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감옥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고 , 말을 소유한 사람은 말 운동시키러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말에 관해서도 점점 해박한 앎을 얻어가게 되는 이치다.

비오던 날로부터 몇 날이 흘러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깐돌은 할머니표 간식을 받아먹는데...



누가 올세라 부리나케 먹으면서 앞다리는 바닥을 긁고있다. 깐돌의 초조한 심리가 나타난 다리로 바닥긁기 행동은 한동안 껌딱지처럼 들러붙어서 밥만 먹으면 그 동작이 자동실행 되었다.그러다 세월이 흘러 더는 나타나는 도적이 없자 그 행동은 그만 두었는데 지금도 경계심은 남아 마방 앞에 누가 나타나면 일단 한번 으름장을 놓게 되었다는, 알고보면 가슴 아픈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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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7일... 깐돌아~ 혼자 어디 가니?

쳇..왜 아무도 나와서 놀지 않아?

엄마랑 할아버지는 둘이만 놀고 ..난 뭐야?

이 똥은 누구 거지?..

이건 또 뭐야? (부러진 의자가 이동식 디딤대로 새 삶을 시작함)

아무리 똥조사를 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려도 같이 놀아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깐돌이다.생후 10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이다.




중마장에서 할아버지를 태우고 운동하는 엄마에게 덤비며 엉덩이를 물기도 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깐돌이가 단단히 뿔이 났나보다.



대마장에 내려왔는데도 거기까지 쫓아 내려와 엄마 엉덩이를 물고 행패를 부리는 깐돌이...칸타는 그 이유를 다 안다는 듯이 신경질 부리지 않고 참아준다. 깐돌이는 왜 뿔이 났을까?

깐돌이 생후 20일 무렵부터 좀 이르긴 하지만 칸타 기승을 조금씩 했는데 깐돌이가 젖먹이 망아지인지라 한사코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가 평보,속보,구보하는 발걸음을 그대로 따르며 다니는 망아지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 일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망아지가 점점 꾀를 부리더니 나중엔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난리가 났다.

만일 깐돌이가 목장에서 자라났더라면 생후 5개월 무렵에 엄마랑 뚝 떨어져서 동료 망아지들과 어울려 지냈을 것이다. 낮에는 방목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그 중에서도 단짝친구를 사귀어 하루 종일 붙어다니며 놀았을 것이다.그러나 깐돌이는 정상적인 목장에서 망아지 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승마장에서 자라다보니 그런 생활을 박탈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깐돌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친구가 엄마이고 할아버지였을 텐데 가장 친한 둘이서 한덩어리가 되어 돌아다니니 어린 마음에 왜 나만 따돌리고 치사하게 둘이만 노는 것인지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그 마음을 헤아려서 칸타 기승훈련을 끝내면 할방이 깐돌과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했지만 3세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혼자 남겨두고 칸타 기승하면 심통이 난다.

오래 전에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호스 위스퍼러>란 영화를 보았다.어떤 여자가 승마 도중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고 정신도 손상된 딸의 말을 치유하기 위하여 먼 곳까지 찾아가 어떤 치유 전문가에게 의뢰하게 된 이야기다. 영화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울함에 빠져있는 여주인공에게 레드포드가 말을 탄 채 말 한마리를 수장 완료하고는 끌고서 찾아온다.그러구서
"함께 말이나 타실까요? 이 녀석이 요즘 자기를 타주지 않는다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거든요.얌전하게 모실 겁니다." 라는 말을 한다.
이 당시에는 내가 말이 사람을 태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안 타줘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말이 참으로 의아했다. 그러나 승마를 본격적으로 한 후로는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었다.

한 때 친하게 지내던 마주 아가씨가 밤색 서러브렛을 타다가 오랜 꿈이었던 백마를 구입해서 두 필이나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야 둘을 공평하게 타리라 마음 먹었지만 지내다 보니 자꾸 백마만 타게 되었다.그런데 그때마다 밤색말이 얼마나 질투를 하는지 몹시 심했다.백마를 데리고 나갈 때마다 삐져서 뒤로 돌아서서는 자기가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한지 온몸으로 시위를 했던 것이다. 마주 아가씨는 한동안 밤색말 달래고 백마와 형제애로 맺어주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나  후로 4년이 지났어도 밤색말과 백마 사이는 그다지 끈끈해지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갔다.

나에게 자마가 없던 시절을 생각해 보니 하늘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늘 예뻐해 주면서 타다가 새로운 초보들이 밀려 올라와서 난 다른 말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는데 하늘이가 우울해 보여서 내 마음도 안 좋았었다.말도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고 교감의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을 더 태우고 싶기는 할 테지만 그 선택을 뜻대로 할 수가 없을 때는 우울하기도 할 것이다.

말이 사람과 친교하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려 교감을 쌓는다면  , 말이 이전에 탔던 기수를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잔등에 모신 사람을 최고의 친구로 여길 것이다. 말에게 최고의 친구로 대접받는 승마를 즐기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모른다.

"말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아가 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자" 고 누가 말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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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0일의 기록이다.밥을 잔뜩 먹고서 올챙이처럼 볼록 튀어나온 배를 주체 못하고 이리 뒹굴,저리 뒹굴 모양새가 천하태평이다.

드러누워 뒹구는 것도 힘들어지자 반쯤 몸을 일으켜 쭈그린 자세로 꾸벅꾸벅 조는 깐돌 주니어..이 당시 깐돌은 정오에 낮밥을 먹고는 3시 무렵까지 늘어지게 낮잠자는 일이 정해진 일과였다.옆에서 운동하는 말들이 모래를 튀기며 구보로 달리든 말든 참 잘도 잤다.

마방을 지나가다 보면 성마도 이런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말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졸립고 몸이 늘어지니 머리가 무거워져서 땅에 세워놓았다. 그 다음엔 꾸벅꾸벅 조는 리듬에 맞춰서 머리가 이리 기우뚱,저리 기우뚱 할 것이다.

음냐음냐~ 맛있는 걸 먹는 꿈이라도 꾸는걸까? 옆방에서 칸타가 제 새끼 잘 있나 쳐다본다..

그.그런데..어떤 신호가...

아무래도 일어나야겠다.. 말이 일어설 때는 먼저 앞발로 버티어선다.


아직 비봉사몽이라 깐돌은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비실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휴우~ 일어났으니 자세를 잡아야지..

자세를 낮추어 뒷발굽은 발레리나처럼 발굽끝으로 간신히 서고 꼬리는 최대한 들어올린 후에 ..발사~

쉬가 다 나왔나?

어~ 시워언~ 허다!!!


깐돌의 유년시절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방은 얼기설기 끊어졌다 이어진 철망 울타리가 둘러쳐진 돌투성이 흙바닥이었다.
사냥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도록 유연한 몸을 가진 개와 고양이에 비해서  말은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동작이 꽤 어색하고 불편
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맨땅에서 생활하면 앞겨드랑이나 뒷꿈치 같은 곳이 늘 까지기 일쑤였다.내가 후시딘 연고 같은 것을 늘 상비하고
다녔던 이유이기도 하다.오늘은 여기가 까졌는데 내일은 거기가 아물고 다른 곳에 상처가 나고 해서 꼭 상처와 숨박꼭질 하는
것만 같았다.

말을 사육하기에 너무 열악했던 이 시설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면 깐돌이가 야생에서처럼 자연과 호흡하며 지냈다는 거다.
비오면 비맞고,바람불면 바람맞고,눈오면 눈맞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새들과 벗하며 떠오르는 태양과 달을 바라보며 자란 것
이다.

그런 걸 보면  어떤 비극적인 상황일지라도 한줄기 빛과 같은 축복은 꼭 깃들어 있으니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누추한 환경에서나마 잘 먹고 무럭무럭 몸집을 불려 미래의 승용마로 적합하도록 자라주었던 깐돌이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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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돌은 생후 6개월차다. 실크보다 부드러웠던 밤색털이 두툼하게 자라나 털강아지처럼 한없이 귀여운 시기였다. 마침 옆방에 젤라이모와 인사를 나눈다."이모 안녕?" "아가 안녕?"

"할아버지 갑갑해요~ 나가서 놀고 싶어요~"

"깐도올~ 니 엄마는 바쁘니 수수깡 먹고 재미나게 놀아라~" 그림자에 비친 깐돌의 배가 터질듯 볼록하다. 대마장 옆으로 옥수수밭이 있었는데 추수한 뒤에 수수깡을 베지않아 겨우내내 깐돌의 군것질거리가 되었었다.깐돌은 먹을 걸 입에 물고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시작은 이때부터인 것 같다. 아이들처럼 망아지도 입이 궁금하지 않도록 입에 뭔가를 항시 물려놔야 어른들이 편하다.

엄마는 또 할머니를 태우고 삥삥 돌고 있군..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나랑 놀아주지도 않구서 이잉~..

엄마말이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저렇게 타는 걸 좋아한다는데 정말 좋은가? 참 이상도 하지..

마장 울타리 옆으로는 차가 노상 지나다녀 가끔 깐돌을 놀라 질주하게 만들었다.승마장 정문에서 손을 흔들면 시내버스가 서주기도 했다.한때 관리인으로 일하던 김씨 아저씨가 버스기사로 취직했는데 말타고 걸어가다가 시내버스 창문이 열리면서 " 어이~ 안녕허시요? 시방 타고 간 놈이 누구랑가요?" 하며 웃으며 묻곤 했었다.말타고 가다가 버스에서 아는 사람 만나 인사나누던 추억이 다 있었지..

이 겨울에도 칸타는 스태미너가 철철 넘쳐서 사실 나는 절절 매며 타는 중이다. 회원 한 분이 "칸타 스태미너 좋으니 얘 하나 더 낳아도 되겠네!" 이러셔서 그런 무시무시한 소리는 하도 말라며 손사래 쳤다.



나도 크면 할머니를 태워 줄 거야!

할아버지는 더 많~ 이 태워줄 거야! 깐돌이가 이렇게 결심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 시절 깐돌의 속마음에 이런 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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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마방은 지난 겨울 깐돌이가 지냈던 방이다. 사면이 막혔지만 지붕이 없어

추울까봐 바닥에 보온덮개를 깔고 정미소에서 퍼 온 쌀겨를 두툼하게 깔아주었었다.

할방은 그 방에 날마다 드나들면서 똥도 치워주고 물도 주고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깐돌이는 할아버지가 늘 삽자루를 들고서 자기를 찾아오니 그 삽자루마저 정다운 친구나

장난감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삽자루쇼를 공연했는데 동영상으로 찍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거나 말도 어렸을 때는 갖은 놀이를 궁리해서

재롱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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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어렵사리 대마장에 나온 칸타와 깐돌이가 아빠가 배달한 마른 풀을 함께 먹는다

 

http://blog.naver.com/photokr/20109254952
...이 주소는 이종호 사진작가의 블로그인데 클릭하면 두일목장 방문기가 뜨고 , 목장의 말풍경이 나오는데 망아지란 자고로 그런 데서 자라야 함을 알 수 있다. 사방에 철망이 둘러치고 잔돌이 깔린 맨 땅에서 자란 깐돌이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황량했는지 알 수 있다.그 황량함에 깐돌이가 불운하지 않도록 우리 부부는 온 사랑을 쏟아부어 메꾸어 주었다.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블로그에 방문하고 나서 "망아지를 키우다니 그것 참 재미있겠는

데?"  하며 승마장에서 망아지를 길러보겠다고 나선다면 난 지구 끝까지라도 쫒아가서 말리

고 싶은 심정이다.애초에 승마장이란 곳은 승용마 구실을 하는 마필을 모아놓고서 회원들이

운동하는 공간이기에 망아지나 휴양마 등 다른 용도의 마필이 살아나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깐돌이가 젖 뗄 무렵에는 어디 목장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예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위탁사육이라면 깐돌이 만나러 먼 길을

오고가기도 해야 할 것이고 매일 눈앞에 어른거릴 일이 못 견딜 것 같아  백기를 들고서 승마

장에서 기른 것이다.

갓 젖을 뗀 망아지의 본분은 그저 햇빛아래 너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놀며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마장에는 풀밭은 커녕 늘 운동하는 회원들이 있어 깐돌이가 나와 놀

만한 공간이 없었다.그렇다고 하루종일 고시원 쪽방만한 곳에 망아지를 가두어 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회원들이 비교적 없는 12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깐돌이 방목

시키는 일이 나의 큰 소임으로 자리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승마의 즐거움이나 기량향상을

위한 고민 같은 것은 꿈꾸어보지도 못하고 어쩌다 망아지 기르는 일에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야 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다. 난 타고난 귀차니스트에 남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

성미지만 온전히 나에게 안겨진 과제는 열 일을 제치고 올인하는 기질이 있었다.

깐돌이를 방목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미션이 아니다.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메뉴얼을 열거해

보겠다.
 
자! 승마장에 도착한다. 깐돌이,칸타에게 인사를 하고 잘 있나 확인하고 도우미를 찾아서

부탁한다. 도우미는 꼭 남자여야 한다.도우미를 깐돌방 앞에 세워두고 스패너를 갖다가 출입

문 구실을 하는 쇠파이프의 잠금장치를 느슨하게 푼다. 그러면서 초짜 도우미라면 행동지침

을 설명해둔다. 이미 이때부터 칸타와 깐돌이는 밖에 나간다는 기대감으로 제 방에서 펄쩍

거리고,소리 지르고 난리가 난다.그 다음 칸타방으로 가서 마찬가지로 잠금장치를 푼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흥분하여 난리치는 칸타의 마방굴레를 한손으로 잡고 좀 진정

시킨다. 칸타가 좀 누그러지면 한손은 여전히 마방굴레를 잡은 채 다른 한손으로 천천히

파이프를 아래로 내린다. 만일 이러는 와중에 말이 튀어나간다면 상황은 수습할 길이 없이

엉망이 되고야 만다. 튀어나가려는 칸타의 마방굴레를 강하게 틀어쥐고서 '워~워~천천히'

진정시키며 마사의 문을 걸어나올 때 도우미더러 깐돌이를 꺼내라고 한다. 깐돌이의 튀어

나감 현상은 동작이 매우 크기에 힘있는 남자가 아니면 제어가 힘들다.마사에서 중마장까지

10여 미터 ,중마장 입구도 미리 열어놓은 상태다.이 10여미터가 무슨 시한폭탄을 운반하는

것처럼 진땀이 나게 한다. 만일 말을 놓친다면 팽팽하게 바람든 풍선을 놓았을 때 방향도

없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질주하는 말 모자의 풍선쇼를 망연자실 바라볼 수

밖에 없다.겨우 중마장 입구에 칸타가 발을 들여놓으면 마방굴레를 놓아준다. 그러면서

뒤의 도우미에게 "놓으세요!" 외치면 칸타와 깐돌이가 동시에 앞으로 미친듯이 달려나간다.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는 대장이 "전군 돌격 앞으로~!"하고 외쳤을 때처럼 칸타와 깐돌이는

무엇을 위한 돌격인지도 모른 채 용맹한 돌격대가 되어 뒷발로 모래를 박차 흩부리며 달려

나갔다. 그후엔 얼른 중마장 문을 닫아야 한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일차 '후우~'내쉬지만

임무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중마장을 거쳐 대마장으로 완전히 내보내야만 상황이 종료된 것

이다. 그런데 중마장 간이마방에는 언제나 말들이 있으므로 칸타와 깐돌은 돌아다니며 인사

하고 장난치고 하는 통에 쉽사리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얼마쯤 있다가 칸타를 유도하여

대마장으로 보내면 깐돌이가 따라나간다. 헌데 망아지는 공간감각이 없어 엄마를 따라가고

싶은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 사이렌을 불고서 찾아다닌 후에야 겨우 나가곤

했다. 눈앞에 있는 열린 문을 못찾아 헤매는 동안 칸타가 제 새끼 찾으러 다시 올라왔다가

안 내려가고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혼란은 더욱 커졌다. 어떤 날은 두 모자가 대마장에서

놀다가 허술한 울타리가 무너져 열린 틈새로 탈출하여 바깥 도로를 질주했는데 정말 보고

있기에 너무나 끔찍했다.다행히 질주하다가 승마장 정문으로 다시 들어오긴 했지만 깐돌

이는  어린시절  도로를 질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둘 다 몽유병

환자의 몽환의식으로 행동한 꼴이기 때문이다.

오후 3시쯤에는 할방이 승마장에 도착했다.그러면 내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마방에 다시

들어갈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비상사태 대처요령으로 움직였다. 마방에 미리 당근을 흩뿌려

놔야 한다. 엄마와 다시 헤어지기 싫어하는 깐돌이를 방에 넣으려면 주의를 끌만한 게 있어

야 하니까.한 사람이 칸타를 데려가 방에 넣고 그 움직임에 보조를 잘 맞추어 타이밍 놓치

지 말고 깐돌을 방에 넣어야 한다. 처음엔 깐돌이가 안 들어가겠다고 복도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바닥에 패대기쳐지기도 했다.그러다 나중엔 자동으로 방에 들어가야 하는 줄 알고

냉큼 들어갔다.

이러한 일들이 나날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마장주의 시선은 고울 리가 없었다.관리소홀로

태어난 말이므로 마주가 키우겠다니 어찌하지는 못하지만 말들이 튀어 날아다니니 신경이

쓰여서 깐돌이를 무슨 똥개 키우듯이 한곳에 붙들어 매두라는 주문도 했다. 하지만 개와

말의 습성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리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입장이었다.

이 당시 칸타의 상태는 늘 초조,불안,흥분이 일상적으로 머물러 있었다. 특별한 사건이 없었

는데도 그러했다는 것은 당시 엄마,아빠의 정신상태도 많이 반영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사람

들끼리도 감정의 전염성이 있는데 말은 상대의 감정전이 속도가 무척 빨라서 거울처럼 반영

하는 것 같기도 하다.그래서 주인의 정신적 상황에 영향도 많이 받는다. 당시 승마장에서

망아지 기르기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었고
 
마장주도 망아지사육에 대한 불편함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어서 이런 사람들과 지내는 칸타

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칸타의 이러한 불안심리는 올봄에 승마장을 옮기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우리 부부도 승마장 옮김과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졌고 칸타도 이사온
 
지 2~3일 지나자 바로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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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가 5~6개월 정도 크면 엄마젖은 먹을 만큼 먹었고 점차 사료의존도가 많아지는 시기

이므로 엄마곁에서 떠나야 하는 통과의례를 치뤄야 한다.망아지로서는 생애 최초로 겪는

크나큰 정신적 아픔이다. 이런 아픔도 다 말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육환경 조건 때문

에 필요한 일이다.

야생 상태라면 우두머리 숫말이 이끄는 말무리 안에서 서열도 짓고 관계의 교통정리를 하고

살기 때문에 억지로 모마와 자마가 분리의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사람이 기르는

말들은 모두 주어진 직분이 있기 때문에 어미말에 딸린 망아지가 늘 따라다닌다면 어미말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그래서 어느 날을 잡아 어미와 자식은 서로 이별해야 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일반 목장에서 망아지 분리순치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5~6개월 정도 자란 망아지는 어미

와 떨어져서 다른 방에 머물게 된다. 망아지는 2~3일 정도 애타는 적응기간을 거쳐서 2주

정도는 마방에서 지내야 한다. 이때 사람이 끌기,만져주기 등을 실시하며 어미에게만 향했던

의존도를 사람에게로 모아들인다. 그 후 2세가 될 때까지는 방목을 한다.

망아지 분리 메뉴얼은 간단하게 그러한데 언젠가 <여성시대>라는 작은 잡지에 평창의 두일

목장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거기에 분리순치에 대한 내용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망아지를 어미와 떨어뜨리면 한 이틀 정도는 밤새 서로를 불러대는 소리에 목장이 떠나갈

정도라고 한다.그러다 2~3일 지나면 잠잠해지는데 방목하면 망아지는 단짝친구를 사귀어서

하루종일 딱 붙어다니며 엄마를 잊고 잘 살아나가게 된다는 것이다.어미와 자식이 떨어지는

것은 대단한 스트레스지만 결국 각자의 삶을 찾아나가는 게 자연의 순리이므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분리되어 서로를 찾는 시기가 매우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말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여 자칫 다칠 수도 있는 행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도저히 뛰어오를 엄두를 못낼 팬스를 뛰어넘다가 부수고 말도

다칠 수가 있다.그러므로 안정되기까지 다치지 않도록 잘 막혀있고 위험요소가 없는 방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분리를 한 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서로가

눈에 보이는 옆방에 있다가 서서히 거리가 먼 방으로 이동하면 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깐돌이는 형편상 분리를 할 때 위의 기본적인 절차를 잘 따를 수가 없어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처음에 깐돌이와 칸타는  마방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 방에서 지냈다.그러다

가 생후 1년이 지나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방에서 각자 생활했다. 하지만 같은 주인을 둔

관계로 놀이나 운동할 때는 다시 만나서 지냈다. 그 후 1년 9개월 무렵 승마장을 옮기면서

둘은 다시 옆방에 붙어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그러니 결국 깐돌이는 엄마와 떼어지지

못하고 계속 살게 된 것이다.상황에 밀려 깐돌이의 처지가 여느 망아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인데 칸타든 깐돌이든 하나씩 따로 나와 기승을 해도 서로 난리를 친다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생활에 아무런 불편은 없다.

이러한 과정을 미루어 보건데 깐돌이가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편안한 것은 생물학적

엄마가 늘 곁에 머물러 있었던 덕도 한몫 했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깐돌이가 태어난 승마장에서는 과거에도 망아지가 태어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생후 3개월이 갓 지나자마자 강제로 붙잡혀 제주도에 보내지고야 말았다.그들은

어미와 떨어지는 강력한 스트레스에다가 먼 여정을 혼자 실려가야 하는 낯선 스트레스가

더해져 정서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지 않았으려나 걱정된다. 그들을 추적해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어린 망아지들이 감당했을  아픔의 무게를 가늠하면 가슴이 미어지듯

가엾다.

우리들이 승마를 즐기기 위해 타는 모든 말들은 사람을 태우는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렸

을 때 어미와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인이 된 사람이라면 이별의

아픔을 한 번이라도 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소중한 존재와의 사별,친했던 친구나 연인과의 이별 등 떠나보내고 멀어짐은 우리네 인생의

한 부분을 이룬다.바로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을 이별의 아픈 기억을 승용마들도

똑같이 간직하고 있다.말의 눈을 깊게 바라보고 내면에 다가가면 어렵지 않게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공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말도 사람에게 깊게 다가와

기꺼운 마음으로 사람을 태워주는데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승마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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