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에서 살아가는 말 무리가 있는 어느 곳이나 끙끙이 동호회가 있을 것이다.끙끙이는 말의 악벽 중 하나이지만 다른 악벽은 동호회를 꾸릴 정도까지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우리 아이들이 사는 거처에도 회원이 넷인 끙끙이동호회가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칸타와 돌이 모두 가입했다.

 

돌이는 열성회원이고 칸타는 가입과 탈퇴를 번갈아가면서 하기에 조직충성도가 매우 낮은 불량회원이다.

 

한강 끙긍이동호회 회장님이신 장군이다.장군이는 이빨을 걸지 못하도록 머리 내미는 공간을 막아버리자 밥그릇을 물고서 끙끙이를 했다.하루 종일 얼마나 심취했는지 바라보면 내가 아는 장군이는 온데간데 없고 넋이 나가버린 좀비가 무의미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그 심취한 경지에서 장군이가 회장감으로 충분했다.돌이는 행위를 할 때는 세게 하지만 금세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일을 보곤 했다.(건초 뒤적질 같은 것)

 

클럽에 조이라는 암말도 열성회원인데 역시 밥그릇을 물고 하는데 밥을 먹는 와중에도 반찬 집어먹듯 끙끙이를 해대니 중증이다.(사진은 3년 전 칸타)

 

그러던 어느 날 동호회에 날벼락이 찾아왔다.모든 회원에게 끙끙이방지끈이 채워진 것이다.이전엔 칸타와 돌이만 금속으로 된(윗 사진)목걸이를 찼었다.새로운 끙끙이방지끈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폼이 났는데 칸타,돌이,회장님이 착용했고 조이는 돌이가 쓰던 금속목걸이를 했다.그랬더니 동호회활동이 위축되다가 활동은 자취를 감춘 듯 했다.회장님은 하룻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고,조이도 멀쩡한 말이 되었다.우리 아이들도 뭘 하려고 하면 딱딱한 것이 목울대 근처를 찌르니 놀라서 좀 삼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나는 '됐구나 됐어! 이거야말로 인간의지의 승리구 말구! 푸하하하 - '하며 쾌재를 불렀다.그 후론 끙끙이조직이 일망타진 와해됐다며 좋아라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말과 함께 살다보니 촉이 예민해진 나의 레이다에 자꾸 조짐이 걸려들었다.아무래도 조직이 와해되자 지하로 잠입한 극렬세력 중에서 혁명군이 태동한 것 같았다.비밀요원에게 임무를 주어 사태를 파악하니 (사실은 관리인이나 코치가 자발적으로 신고함)혁명군의 핵심은 우리 돌이였다.

 

돌이는 처음 제 목에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자 "이까짓게 다 뭐야!' 하고 보란듯이 우렁찬 베이스로 끄응~ 하길래 끈을 바짝 조였더니 그 행동을 중지했다.사태가 그 정도가 되자 무력화된 동호회의 주력세력은 밤마다 회합을 하고 조직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숱한 논의를 거쳤는지 모르겠다.그 결과 조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기로 결사했고 그 핵심에 돌이가 가담하고야 말았다.

 

돌이가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끙끙이 방지대 색깔이 하필 붉음) 깃발을 높이 들고서(파리를 쫒느라 꼬랑지를 치켜듬) "동지들이여! 나를 따르라! 우리는 억압과 핍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이히히힝~ 하고 당근 달라 조름)라고 외친다.돌이가 혁명가라면 칸타는 혁명가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다.

 

요즘 돌이는 끈을 너무 졸라 귀 아래 뼈가 툭 튀어나온 부분이 까졌는데도 하고싶을 때는 언제든 끄응~ 한다.물론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다고 내가 못할 줄 알고?'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오늘날 돌이가 혁명가가 되기까지는 승용마가 사람과 살기 위해 마방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생존조건이 토대가 되었다.승용마는 평균 하루 20시간 이상을 좁은 마방생활을 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40시간 이상을 마방에서 지내야 한다.말은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는 존재인지라 대부분 그 생활 안에 머무른다.그러나 일부 말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견디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악벽을 자기 안에 생성시키는 모양이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악벽이 학습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말 내부에 존재하는 요인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우리 아이들과 아무리 오래 지낸 태풍이도 끙끙이를 배우지는 않았고 함께 지내는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악벽이 몹쓸 행동이지만 말 입장에서는 우리를 마방에만 가두어두었으니 이럴 밖에요 하는 항거의 몸짓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악벽마를 인간 세계에서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혁병가 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짜내어 말의 끙끙이를 방지해도 또 하고야 마는 말이 있다는 현실은 문제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존재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우리 돌이가 혁명가에서 평범한 말로 귀의할 수 있도록 넓지는 않아도 아담한 풀밭을 마련해주는 일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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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와 운동을 할 때 어느 말과 함께 운동하게 될까가 나의 관심사다.그 말이 누구냐에 따라서 운동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돌이 역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장 안으로 들어갈 때 누가 나와있나 꽤 유심히 살핀다.나는 그러는 돌이 표정을 살핀다.

 

돌이의 무료한 일상 중에 오아시스처럼 마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신선한 활력소가 된다.

 

칸타보다도 돌이를 더욱 꾸준히 타던 중에 돌이가 뜨거운 심장을 지닌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 일이 벌어졌다.이 글은 5세 수말 돌이의 심장에 관한 보고서라고 명명해도 되리라.

 

지난 여름 한가한 평일 낮시간에 우연히 코치가 암말 안개 운동시키느라 타는 동안 함께 운동하게 되었다.운동을 시작하자 돌이의 컨디션이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느낌에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돌이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젊은 수말 그자체였다.날이 더워서 구보를 많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돌이는 여차하면 핑계를 대고 스스로 구보 발진을 하기도 했다.이를테면 내가 숨을 크게 쉬었는데 "응 구보가라고 사인준거지?" 하고서 뛰고 자세를 고치느라 종아리를 돌이 배에 갖다댔더니 "응 구보가라고? 알았어 좋아!" 이러면서 또 뛰었다.속으로 '얘가 왜 이러나? 이제 다섯 살도 되었으니 철들어서 운동을 열심히 하려는 게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돌이가 안개와 함께 운동할 때면 피가 끓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말 안개는 클럽말인데 재작년인가 돌이 옆방에서 한두달 지내다가 클럽 마방으로 옮겨가 평소에는 운동할 때나 어쩌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안개는 아담하고 귀염성이 있어서 이모나 이모할머니들이 모여서 애기할 때 손주며느리감으로 손꼽는 암말이었다.돌이도 보는 눈이 있는지 유독 안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가끔 방목하러 내보낼 때 할머니가 방심하면 이때다 하고 클럽마방으로 튄 일이 종종 있었는데 안개를 보러 간 건지도 모른다.

돌이가 5세가 되기 전에는 암말보다는 수말에 더 관심이 많았다.그때는 장난꾸러기의 화신이었는데 암말들은 거의 장난에 관한 유전자는 지니지 않은 듯 놀 줄을 몰라서 심심하기만 했다.수말은 장난치자고 다가갔다가 시비붙는 일로 끝나기도 다반사였지만 수말은 놀이상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삼고 싶어했던 거다.

욘석이 5세가 되더니 여자친구를 밝힌단 말이지 싶어서 웃음이 킥킥 나오기도 했다.아무렴 할머니는 손주 편이니 녀석을 도와주기로 했다.아무 일 없다가도 혹시 안개가 운동하러 나오는 낌새가 보이면 얼른 돌이도 안장매서 나갈 마음의 태세를 갖췄지만 내가 하루종일 승마장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안개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한참 운동하고 있는데 반가운 안개가 마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괜히 기쁜 마음이 들어서 안개가 회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 돌이를 탄 채 안개에게 다가갔다.그랬더니 돌이가 콧등을 안개 콧등에 갖다대고서 언제까지라도 그러겠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안개도 돌이가 싫었으면 "아이 싫어!" 하고 신경질을 팽 하고 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다만 돌이 등에서 바라본 안개 표정은 '이런 곳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하는 난처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말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인사의 상황을 구별하는 모양이다.우리 돌이 상태는 어떤가 살펴보았다.옆으로 보니 돌이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돌이는 심장이 크게 뛰면 콧구멍에 나타난다.놀람,공포,기쁨이 모두 콧구멍 벌렁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다리로 돌이 양옆구리를 느껴보니 복부도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의 생각은 '돌이가 심장을 가졌다'라는 한문장 아이콘으로 떠올랐다.흔히 사랑에 빠지면 내 가슴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사랑의 대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한다.무수한 유행가의 사랑노래에서 심장과 가슴이 뛰는 일을 가사에 담고 있다. 나는 어떤가.이십 대를 지나오자 내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살았는데 말을 만나면서 심장이 아직도 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 후로 지금껏 말을 만나러 가면 어김없이 심장이 약한 정도로 뛰는 상태인 두근거림을 경험한다.그러다 요근래 말 손주녀석의 심장뛰는 몸에 올라앉아 운동하니 참 신기하게도 내몸이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상태처럼 느껴진다.

 

운동이 끝나고 돌이를 목욕시켜서 몸을 말리는 칸으로 가니 이미 목욕을 마친 안개가 있었다.멋진 할머니의 본분에 충실한 나는 둘이서 오붓한 데이트를 하라고 건초를 한아름 가져다 둘에게 주었다.약 1시간 정도는 청춘남녀가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나중에 돌이를 마방으로 데려가려고 그 자리를 떠나려니 돌이가 먼저 또다시 콧등뽀뽀를 안개에게 살짝 하고서 "다음에 만나'하는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났다.

 

돌이 여자친구 중에는 수아도 있다.수아랑은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5세 생일에 결혼식도 올렸다.(궁금한 분은 5세 생일 글을 찾아보면 된다)그런데 돌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수아랑 운동할 때는 평소처럼 느리적 슬리퍼 끌고서 동네 편의점 가는 분위기로 일관했고 도중에 수아가 다가와 먼저 콧등뽀뽀를 했지만 5초도 안되어 돌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전에 위너스라는 클럽에 온지 얼마 안되는 수말과 함께 운동한 일이 있다.위너스는 안개 맞은편 마방에서 사는데 돌이가 무슨 일인지 몇 번 무작정 위너스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린 일이 있다.그 전에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보면 단지 안개 맞은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시샘을 느껴 미리 딴마음 먹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위너스랑 운동을 시작하니 활발했다.주로 안쪽으로 돌려고 하면서 계속 위너스에게 신경쓴다는 것이 느껴졌다.아무래도 저 녀석을 혼쭐내줘야 하는데 거슬린단 말야 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나야 돌이가 활발하게 움직이니 그저 재미있게 운동했을 뿐이고 나중에 목욕하고 말리고 헤어질 때 돌이와 위너스는 신사적인 악수를 했다.이말은 통역을 한 거고 다시 원어로 얘기하자면 돌이는 위너스에게 콧등인사를 하며 상대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어쩌다가는 텅빈 마장에서 나와있는 말도 하나 없고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 혼자 돌이와 운동을 할 때가 있다.그럴 때 돌이 상태는 흥이 하나도 안 나서 발바닥에 본드칠을 하고 겨우 걸음이 떨어지는 말처럼 나아가는데 이럴 때 심장은 어디로 잠시 출장간 것처럼 보인다.그래도 할머니를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니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돌이가 심장이 뛰는 것을 앞으로도 오래 느껴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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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개월 된 미니어처 망아지가 왔다.다 크더라도 겨우 10센티 정도 키가 자랄 뿐이란다.살아있는 인형처럼 귀여운 자태에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다.

 

매료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말들도 사람 못지 않았다.망아지 마방 앞에 온 말마다 놀라고 신기해서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칸타는 보더니 놀라서 순간 숨을 멈추고 한동안 동상이 되어버렸다.그러는 동안 표정을 보니 '아니 이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어리기도 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그리곤 망아지와 콧등을 맞대고 다정한 인사를 나눴다.

 

돌이는 보더니 낯선 물체를 발견한 듯이 '허걱'놀라며 몸을 뒤로 움찔했다.좀 뻣뻣하게 긴장도 했는데 에상치못한 존재에 할말을 잃은 듯 보였다.

 

돌이 망아지 시절을 떠올리면 나이많은 말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우연히 옆방에 망아지가 들어와 하루종일 들여다보게 된 말 밍크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망아지를 바라보았다.그러더니 수삼일 지나자 얼굴엔 무료함이 가시고 화색이 돌았다.망아지가 나이든 말에게 어떤 기운을 불어넣은 게 틀림없다.

 

흰색이 많은 망아지 이름은 '레이'고,브라운색 망아지는 '마티'다.짱구 이마,솜털처럼 폴폴 날리는 갈기와 꼬리,조개 만한 발굽,볼록한 배가 망아지의 공통분모인가보다.다만 성격은 아주 다르다.레이는 호기심천국에다가 사람을 무조건 따른다.마티는 경게심을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그래도 둘 다 얼굴 만지는 일을 완전히 허락해서 얼굴 만져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티와 레이는 앞으로 승마장에 찾아오는 어린이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지인들이 와서 망아지 구경을 하다가 도저히 구경만 할 수 없어 슬그머니 마방으로 들어가더니 안고 쓰다듬고 난리가 났다.나이먹은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하니 말은 꼭 타야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갖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머무는 병원 근처에도 이런 망아지가 있어서 바라볼 수 있다면 병이 금방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카메라를 눌러대며 접근하자 며칠 안면을 튼 사이라고 마티가 그닥 경계는 하지 않고 편안하게 바라보았다.

 

욘석들도 당근을 잘 먹는다. 첫날 마방 전체에 당근을 다 돌리고 돌아서니 아가들이 빤히 쳐다보았다."우리는 왜 안 주는 거예요?" 아차 키가 작아 안 보여서 깜빡 잊었다.좀 실망한 기색으로 천진난만한 눈을 깜박거려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내일은 꼭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도 그냥 친구라 여기고 접근하는 레이가 나에게 뭐라뭐라 얘길 잔뜩 했다.

 

아가야! 지금은 네가 뭐라 하는지 잘 못알아듣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렴.좋은 친구가 되어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란다.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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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9.1 ?⑤룄. ?앹뼇 073.jpg칸타와 돌이가 기웃거리는 곳은 갤러리석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구내매점(?)이다.이곳에서 엄마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당근을 먹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그 전에 대형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다가 도마에 놓고 썰때에 나는 타다당~ 타다당` 소리가 울리면 기대가 만땅인 표정을 하고서 군침을 삼키며 바라본다.

 

13. 9.1 ?⑤룄. ?앹뼇 074.jpg어떤 때는 그냥 서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경청하기도 한다.아이들이 잘 들어두었다가 한밤중에 마방에서 "낮에 사람들이 하는 소릴 들었는데 말이지~"하고서 전달하는 상상이 떠오른다.아무튼 말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대단히 깊은 관심을 보인다.

 

13. 9.1 ?⑤룄. ?앹뼇 077.jpg돌이는 문고리가 고장나서 고정되지 않은 문을 입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취미생활도 종종 즐긴다.(사진은 2013년으로 정정합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1.jpg한낮이라 마방에는 사람이 나뿐이고 말들은 조용하다.그 와중에 돌이만이 할머니가 뭐하나 궁금해서 얼굴을 쏙 내밀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4.jpg요즘 돌이 별명이 <애늙은이> <어덜트 키드>이런 종류다.5세가 된 후로 얼굴에 그득했던 장난기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여느 말처럼 포카페이스가 표정의 기본형이다.벌써 이러면 10세 정도엔 무슨 표정을 하려고 그러나.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3.jpg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5.jpg의자와 함께 같은 포즈를 취한 깜주 양.

 

13. 9.1 ?⑤룄. ?앹뼇 007.jpg엘도라도는 표정이 환해져서 명랑,유쾌한 모드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별로 해준 것도 없고 그닥 재미있을 일도 없는데 그저 말 동료랑 함께 있고 사람이 드나들면서 이름 불러주고 쳐다봐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모양이다.

 

말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아이마다 다 다른 개성이 있어서 거기서 비롯되는 특유의 웃음거리가 있다.혼자 웃기에는 좀 아까워서 잠깐 소개해보려고 한다.

 

돌이는 참 맛나게 먹는다.칸타보다는 못하지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며 다른 말보다 2배속으로 빨리 우물거리며 먹어치운다.가끔 품질이 떨어지는 알팔파나 티모시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 입맛이 까다로운 말은 "이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기가 막혀서 원.내 꿂어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만 쩝!"이런다.하지만 돌이는 건초의 품질 따위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는다.그저 입안으로 들어가 씹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것 같다.그러다 보니 돌이가 먹는 모습은 어르신들이 보았을 때 아주 탐스럽게 먹어서 보기에 흐뭇한 모양새다.여기까지는 좋았다.먹는 일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좀 오버하는 경우가 생겼다.이 지점이 돌이만의 푼수짓이 나타나는 곳이다.마방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갈 때 돌이는 머리를 바로 옆방 밥그릇에 쑥 디밀어서 조사를 한다.다음엔 복도에 떨어진 몇 안되는 건초오라기를 다 주워먹고 차례로 지나가는 밥그릇도 다 조사를 해야만 한다.때로는 마방에서 재갈 물고 굴레 쓰고서 나오는데 그 차림새로 밥그릇 조사하는 모양새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하루는 그 모양새로 옆방 브릿지 밥그릇에 머리를 쑥 밀어넣고 한참을 있으니 브릿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돌이에게 내가 콩이며 보리 삶은 것을 줄 때에 돌이가 쩌업쩌ㅓㅂ~ 하며 너무도 맛나게 먹으니 브릿지가 부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의아한 표정마저 짓는 것 같았다.브릿지는 마장마술 기능을 보유한 말이므로 나름대로 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쭉 살아왔을 것이다.그런데 옆방의 말이 너무도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으므로 쳐다보다가 혹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려나.'얘는 뭔데 이렇게 대접을 받아?이 아이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게 분명해.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신통방통한 기능을 할 줄 아는 아이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지.암~'

나의 상상이기는 하지만 돌이가 기능은 커녕 여태 변변한 선생님조차 만나본 적 없는 오리지날 홈스쿨 어린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브릿지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랄 것 같다.

 

엘도라도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의젓하다.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 말고는 없다.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가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일 때가 많다.가장 큰 개성은 칸타바라기이다.칸타가 마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간헐적으로 길게 구슬픈 울음을 뽑는다.누가 들어도 간절하고 애닯은 곡조이다.칸타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기뻐서 꺽임과 떨림이 많은 소리를 질러댄다.한 석 달 가까이 엘도라도가 뽑아내는 가락을 감상하다보니 그 소리가 여느 말처럼 단조롭지 않고 애간장이 끓어서 판소리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점점 받게 되었다.판소리란 인간의 희노애락이 녹아들어가고  한을 승화시킨 정서가 아닌가. 춘향이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토해내는 '쑥대머리'도 가슴을 할퀴며 지나가기도 한다.엘도라도가 말 판소리 명창이다.궁금하다면 언제고 오셔서 감상해보시라.

말 판소리 명창 노릇 외에 엘도라도는 마방에서 부대서비스로 '알리미 서비스'도 한다.누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길게 울음을 뽑으며 환영하는데 "태풍이 들어옵니다~" "돌이 들어옵니다"이런 소리로 들린다.엘도라도가 알리미서비스를 자청한 데에는 오랜 세월 종족과 격리되어 고독하게 살아왔던 후유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 외에 엘도라도는 점잖지 못하게도 게걸스럽게 먹는다.삶은 콩이나 수박 등 물기가 줄줄 흐르는 간식을 주었을 때 사람이 후루룩쩝쩝 하고 요란하게 국수를 먹는 것처럼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모른다.온 건물에 울려퍼지는 엘도라도의 먹는 소리에 그만 내가 민망해질 정도다.그럴 때는 털털한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칸타는 우아하고 새침떠는 암말이어서 그닥 푼수짓은 하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거리가 멀지않을까 오해하기 딱 좋다.하지만 칸타도 그런 푼수짓 하지 않으면 너무 정 떨어지지 않을까요? 항의하며 적극적으로 푼수짓 대열에 동참하려는 듯이 보유한 부분이 있다.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체면과 예의를 벗어던지고 곡물사료수레를 찾아가 허겁지겁 먹어지우는 행동이 대표적이다.고상한 공주님이 갑자기 식신으로 변해 양푼에 갖은 재료를 담아 비벼 온 얼굴에 묻히며 퍼먹는 분위기쯤 될 거라고 본다.

또 다른 푼수짓 하나는 뒹굴기 할 때 나타난다.일단 벌러덩 눕는다.그 순간 칸타는 말이 아니라 뒤집어진 거북이로 변신한다.배를 하늘로 향한 채 앞다리 둘을 하늘로 뻗쳐 위아래로 올렸다내렸다 하면서 모래에 등짝 비비는 쾌감을 즐긴다.이때 거북이 말고도 떠오르는 모습이 있는데 아이가 드러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떼쓰는 모양이다.거북이든 떼쓰는 아이든 품위유지와는 거리가 매우 먼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이 푼수짓 떠는 모습이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사람도 저마다 공개적으로 알리기 민망한 습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그런 모습은 자신과 가족 정도나 알고 있는 은밀한 부분일 터.이 은밀함으로 인하여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이 돈독해지기도 한다.말은 사적인 취향이라고 해서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는 않으니 그저 대놓고 웃다보면 가족의 일원으로서 말이란 사람에게 웃음을 많이 선사하는 존재로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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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의 돌이 (왼쪽)와 태풍이(오른쪽)

 

2012년 6월의 태풍이

 

2011년 8월 돌이(왼)와 태풍이(오)

 

2013년 9월 9일에 타지에 나갔던 태풍이가 7개월만에 돌아왔다.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태풍이가 클럽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운동장에 풀어놓고 트레일러에서 내리는 태풍이 환영을 대대적으로 하려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태풍이가 도착한 후였다.

운동장에 혼자 서있는 태풍이는 아직도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듯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예전에 지냈던 곳이긴 하지만 새 건물도 들어서고 나무도 심어놔서 낯설은 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태풍모친의 말을 들으니 태풍이는 이미 마방을 한바퀴 돌며 우리 아이들과도 인사를 했다고 한다.그때의 아이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게 됐다.

아직 해가 뜨겁기도 해서 태풍이를 실내마장으로 데려다놓고 칸타를 데리고 왔다.실내마장 출입문을 향해 걸어오는 칸타를 발견한 태풍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칸타가 실내마장 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다음에 펼쳐진 재회장면은 애틋하고 아름다웠다.태풍이와 칸타는 서로의 엉덩이에 얼굴을 기대고서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다.익숙했던 서로의 체취와 체온을 흠뻑 느끼며 그 옛날 그 느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을 것 같다.충분히 그러고나서야 둘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둘이 한방향으로 산책이라도 하듯이 반원을 그리며 나아갔다.7개월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재회의 축하순서는 당근파티였다.사람엄마 둘이서 당근을 푸짐하게 썰어서 갤러리석에 앉자 칸타와 태풍이가 다가왔다.둘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당근을 받아먹었다.평소 칸타와 돌이가 나란히 당근 받아먹을 때는 은근히 시샘하는 경쟁을 하면서 허겁지겁 받아먹는 분위기가 감도는데 태풍이와 칸타는 연인 사이라 그런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이 완벽한 분위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엘도라도의 애타는 절규가 건물 안에 메아리쳤다."오~ 나의 칸타 어디로 간 거니! 엘도에게 돌아와주오 어서~"

당근을 받아먹는 동안 태풍이 얼굴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첫눈에 보기에도 태풍이는 그간에 잘 지내왔음을 느끼게 했다.좀 더 오래 바라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띄었다.태풍이 얼굴에 그늘과 구김이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온데간데 없다는 사실이었다.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말의 얼굴에서 읽히는 세월의 더께가 남긴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동안스럽기조차 했다.얼핏 돌이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얼굴에 흉터자국이 많은 돌이가 더 늙은이 같다고 느껴졌다.태풍이의 회춘동안은  다 마주가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좋아진 모습으로 돌아온 태풍이 바라보는 일이 유쾌하고 한세상 함께 살다갈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지워주는 존재가 되어준다면 삶에서 향기가 나지 않겠나 얼굴에 미소를 거는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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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에 들자 신비롭고도 경건한 분위기가 대지를 감싼다.석양은 그냥 저물어가는 해라고 보기에는 충만하고도 고유한 빛깔이 강렬하다.

 

 

엘도라도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틈나는대로 선생님에게 주로 기초 마장마술 지도를 받으며 때로 기초 장애물도 배운다.

 

엘도라도를 처음 데려왔을 때 다 커버린 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입양한 심정이었다.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므로 엘도라도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엘도라도는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마주로서 신경쓰고 손갈 데 없이 적응을 잘해주었던 거다.그 태도는 "뭐든 시켜주시면 엘도는 열심히 해요."였다.처음엔 이 태도가 워낙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온 탓에 반대급부로 여럿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이곳 생활을 무조건 수용하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더 지내보니 여기에 더하여 타고난 낙천적 기질도 한몫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엘도가 이곳에 오기 전 혼자 황폐한 공간을 지키며 살았는데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한 걸 보면 내면의 어떤 강인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옛 거처에 찾아갔을 때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텅비어 을씨년스러운 폐양계사업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던 엘도는 한때 화려하고 사람으로 들끓었으나 쇠락하여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성에 어쩌다 혼자 남겨진 말처럼 보였다.

 

엘도의 마방 앞으로는 개 두어 마리가 그나마 벗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었다.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어도 찾아와주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운 제 종족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그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엘도가 처음엔 어떤 면에서 좀 신기했다. 예민함이나 모난 데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여태 어린말,예민한 말만 길러서 엘도가 더 둥글둥글해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어쟀거나 참으로 기특했다.훈련도 잘받고 한편으론 여러 기승자를 태우는 상황 역시 흔쾌히 잘 받아들였다.

 

자기에게 찾아오는 상황이 무엇이었든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에서 낙천주의자 기질이 드러났다.내가 청하지 않았어도 찾아오는 고운 손님,미운 손님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맞아들이는 맘씨좋은 주인장의 모습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엘도는 만학도이기도 하다.나이가 11살이 되어서야 기본 부조도 정식으로 배우고 기초장애물도 넘어보고 하니 그렇다.<승마교과서>보누스 출,제인 홀더니스 로댐 지음.에 보니 8살이 넘는 말을 노년기(Aged)라 용어풀이를 해놓았다.동의하기에는 좀 힘들지만 성숙의 정점을 찍고 지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엘도의 나이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해보다는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엘도가 훈련받는 것을 지켜보니 천지분간이 잘 안되고 뜨거운 혈기에 휘둘리는 어린말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그 모습을 보니 이제 5세가 넘어선 돌이에 대해서는 급하게 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역시 중년의 삶에 접어들어서 내 정체성이 중년에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요즘 엘도라도를 보면서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인생에서 뭘 이루었나 하는 생각도 멀리 내다버리는 심정이 된다.중년은 몸의 노화가 시작되는 생리적 시간표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창을 내 안에 마련한 거라고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창을 만드느라 청춘의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지금부터가 더 흥미진진한 삶이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쭈욱 살다가 아름다운 영상처럼 황혼기를 맞이하리라.엘도라도,칸타빌레,태풍이 10살이 넘은 말 아이들과 함께 보낼 앞으로의 세월이 기대된다.말이든 사람이든 중년을 찍고 살아내는 일은 무르익어가는 이치와 상통하니 말과 사람이 서로의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아주는 일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석양의 엘도라도...차암...멋지다!

 

 

 

 

 

* 위 사진들의 자막에 찍힌 년도는 카메라 설정오류입니다.2013년이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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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가 할머니는 뭐하는 건가 본다.

 

칸타도 마찬가지로 본다.내가 시야에 보이면 더욱 안심하고 편안하게 논다.

 

여름내내 아이들은 팬스 너머로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더 뜯어먹는 재미에 목을 있는 힘껏 길게 뻗었다.목과 등 근육 늘리기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돌이가 5세가 되고나서 어느 날 문득 칸타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몸통도 약간 더 굵어보인다.둘 중에 하나를 기승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한다.칸타를 타고 있는데 "오늘 칸타 안 타요?"묻는 식이다.반대의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텃밭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봄에 심었던 것들이 소임을 다했으므로 뽑아내고 대신 다른 것들을 심었다.우리는 상반기 농사성적이 낙제 수준이라 자진 낙오 하고서 늦여름부터는 밭을 가꾸지 않는다.농사를 하려면 자질과 근면함이 따라야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부부는 영 아니다.자체 평가는 이렇다."우리는 채집스타일이지 경작스타일이 아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새 건물은 미니마장이다.새 건물로 인하여 승마장 전체가 더 안정감 있고 아늑해 보인다.겨울에는 바람도 막아줄 것이다.

 

주변 들판의 색이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옮겨가는 중이다.인근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친 곳도 있다 한다.벼의 품종이나 심은 시기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화들짝 놀라는 심정이다.누군가 말하길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기질은 사계절이 뚜렷한데서 기인한다고 했다.돌아오는 절기에 맞춰 씨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애써 키운 작물이 서리와 찬바람에 상할 수 있으니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사느라 급한 기질이 되었다나.자연의 시간표라면 느림지향적이어야 마땅할 텐데 좀 아이러니하다.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의 분주함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그런 말도 생겼으리라.

 

논으로 둘러싸인 승마장으므로 지금부터 추수하는 때까지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승마할 수 있다.익어가며 물결치는 벼를 바라보고 향기를 들여마시는 말도 최고로 좋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한다.

 

 

류시화 제3시집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란 시가 있다.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로 시작하는 시인데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 등등 사물을 새롭게 보는 시어들이 나온다.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식으로 벼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내가 시인의 마음으로 아무리 마땅한 표현을 찾아보려 해도 영 떠오르지를 않는다.시인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어줍잖은 표현이나마 건져보자면 '벼는 황금빛깔로 포장하여 땅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 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하루하루 수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자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말 입으로 엄청나게 빨려들어간 것은 쌀알이 떨어져나간 볏짚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심은 당근이 벌써 잎이 무성하다.(물론 내가 심지는 않았다.)

 

당근은 '땅이 말에게 선사하는 주황색 선물'...

 

고추도 빨갛게 영글어간다.실내마장 옆으로 고추를 말리므로 우리 아이들도 고추 말리는 구경도 실컷하고 매운 내음도 곧잘 맡으며 생활한다.말 노는 옆에서 고추를 다듬는 풍경이 정겹고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풍경 속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보면서 '손과 입'이란 화두가 떠올랐다.날마다 아이들에게 내손에서 아이들 입으로 당근이며 사과며 커피며 나르는 일이 일상이라 손과 입의 접촉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한번은 손바닥에 따라준 커피를 낼름거리는 칸타에게 시샘을 느끼고 돌이도 열심히 내 손바닥을 핥았는데 하나도 따갑지도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손바닥만한 말 혀를 느끼면서 이 순간은 좋은 감정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입은 주고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일에서 돈독한 관계속으로 들어간다.과거에 나는 얼마나 손으로 말 입을 아프게 하였을까 여리디여린 말 입에게 자꾸 무엇을 달라 얼마나 요구가 빗발쳤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달라고만 했지 양보할 줄 모르던 손의 쓰임새에 대하여 달리 생각한 것은 기승술에만 갇혀있던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때 가능했다.

 

땅은 몸 전체가 손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들인 생명들에게 철철이 자꾸 무엇을 먹여준다.땅이 손으로 먹여주는 무엇을 직접 입으로 받아먹는 상징성이 말이 풀 뜯는 모습에 절제된 시어처럼 담겨있는 것 같다.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땅처럼 말을 한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말 입으로 고삐를 통하여 손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라고 깨닫게 되었다.

 

 

말에게 어떤 손으로 다가가야할지 이 가을 풍경 속에서 바람이 설핏 알 듯 모를 듯한 언어로 속삭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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