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북부지방에서 남편과 함께 제인과 페가수스라는 말을 기르는 홀스맘이자 <알.티>의 열혈독자이신 김유예 님이 우리 아이들 선물을 보내왔다. 유럽 홀스맘들 사이에 인기라는 말 죽제품이다.

 

이 귀한 선물을 어이 멕일꼬 궁리 끝에 마방 점심시간에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마방에서는 당근 하나도 다 나누어주어야지 누구만 줬다간 후환 겪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선물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멕여야 하니 말 이웃들이 건초를 먹을 때 주면 다들 제각각 먹느라 신경을 덜 쓸 것 같아 그리 하기로 했다.

 

평소 오이소박이나,깍두기 버무릴 때 쓰던 스텐그릇이 집에서 출장나왔다.제품 봉지에는 뜨거운 물을 그냥 봉지에 부으라 표시했지만 아무래도 비닐봉지는 온도가 뜨거워지면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엄마는 아이에게 환경호르몬을 먹게 할 수 없는 법이다.포트는 평소 차 마실 때 사용했는데 오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어 네가 참 요긴한 물건이로구나 했다.

 

먼저 봉지를 뜯어 당근그릇에 부어서 대기시킨다.포트에서 끓은 물은 90도 이상이라 60~70도로 식혀주어야 한다.넓은 스텐그릇은 끓는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죽의 재료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물 누른 것과 박편이고 사과도 풍미를 돋구기 위해 첨가되었다.

 

 

물이 적당히 식은 것 같아 (온도계는 재지 않았지만) 죽 재료를 쏟아부었다.

 

재료가 물을 만나니 순식간에 포옹을 하고는 물컹해졌다.

 

김이 설설 피어오르며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니 말에게도 풍미가 전해졌을 것이다.이제부터는 곡물이 소화되기 쉽도록 불면서 미지근하게 식을 동안 기다려야 한다.20~30 분 정도 소요될 듯하다.

 

주걱으로 죽을 휘휘 젓는 동안 소여물죽 끓이는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면 소에게 여물 끓여주는 일이 신기했다.온갖 재료를 버무려 큰 솥에 끓여서 퍼주면 소가 맛나게 먹었는데 보고 있다가 나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소여물은 사랑이었다.우리 조상들이 한 겨울 보내고 나니 충분한 풀을 섭취하지 못해 이듬해 봄에 털갈이도 제대로 못하고 바짝 마른 소를 보고는 가엾어 귀한 옥수수나 콩을 한줌씩 넣어 끓여먹이곤 했으리라.

 

말 또한 본디 초식동물이어서 곡물을 섭취하는 동물은 아니었다.사람과 살게 되면서 일을 시키다 보니 소화부담은 줄여주면서 힘이 딸리지 않도록 먹이게 된 거다.그래서 말에게 곡물을 줄 때 신선한 풀을 못 먹게 한 대신에 일 시키려고 주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스치지만 한편 갈빗대가 보이고 요각이 두드러지면 가엾어서 얼른 살찌라고 입에다 많이 넣어주고 싶은 먹이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이 전쟁이나 교통수단으로 혹사당하지는 않으니 노동을 위한 에너지원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사랑이란 의미가 더 많을 것이다.우리네 조상이 집에서 기르는 소를 가여워하고 아끼던 마음과 똑같이.

 

칸타의 반응을 보려고 죽그릇을 들고 가니 냄새를 좀 맡아보고는 빨리 달라고 앞발을 긁고 난리가 났다.

 

 

 

다른 말들은 남아있는 건초를 먹느라 눈으로만 힐끔거리며 살피는 정도였는데 브릿지는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아예 먹는 일을 중단하고 죽에만 관심을 두고 쳐다봤다.

 

죽이 충분히 식지 않았지만 그냥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미식가 칸타가 새로운 맛에 완전히 빠져서 분석중이다.

 

아마르도 신중하게 이것이 무엇일꼬 하며 아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외에 다른 말들에게도 한 주걱씩 나누어주었다.말들이 만장일치로 "아주 맛이 좋아요!" 했다.

 

그릇의 설거지는 이쁜 딸 칸타더러 하라고 했다.칸타가 설거지 임무를 좋아라 받아들이며 날름날름 싹싹 깨끗하게 그릇을 닦아주었다.오늘의 간식타임 끝~

 

말 죽 쑤는 과정을 구경하시던 이웃 리카다 아빠가 부시럭거리며 말 사과사탕 한봉지를 주셔서 아이들이 디저트로 한 개씩 먹었다.그날 오후 기승운동을 하는데 유난히 기분좋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 지켜보시던 리카다 아빠 크게 소리 높여 외치기를 "역시 점심 때 좋은 걸 멕여서 확실히 틀리네!"

 

 

이태리 김유예 님이 보내온 죽 관련 메일을 본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죽은요,봉지를 개봉하신 후에 1리터의 물 (60-70도)을 그 안에 부으시고 다시 봉지를 닫으신 다음 죽이 잘 불고 말이 먹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한 20-30분) 봉지의 내용물을 그대로 말 밥통에 부어주시고 봉지는 버리시면 되는 겁니다.

 

말 죽이라는게 Mash 라고 해서 독일과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문화로 주성분은 아마씨와 밀겨껍질,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곡물 박편들인데요 칼슘과 인이라는 성분의 독특하게 불균형한 비례율 때문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주면 말의 뼈에서 칼슘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말에게 좋지 않지만 이틀만에 한 번씩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주면 더이상 말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데,그 중 대표적인 장점을 모아보면

 

1. 뱃속에 있는 모래를 비롯하여 우리가 안본 새에 말이 섭취한 모든 위험한 이물질들이 한방에 나온다.

 

2.기승운동 후 건초+사료와 함께 주면 영양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섭취하되,똥배는 절대 방지하면서 근육과 살이 꼭 필요한 곳에 안착되도록 한다.(즉 몸짱을 만들어 주는 거죠^^)

 

3.아주 건강하고 빛나는 외투가 (말 털) 만들어진다.

 

그밖에 소화촉진 등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아 아주 잘 팔리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있는 종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요.올해에는 아기들을 몸짱으로 만들려는 홀스맘들의 욕심에 부합하고자 일주일에 세 번밖에 줄 수 없다는 단점을 곡물을 완전 제외시키고 60가지 알프스산에서 나는 약초만을 원료로 하여 매일 먹을 수 있는 신죽제품을 출시한 Agrobs란 회사 때문에 더욱더 죽 열풍이 불었지요.

 

- 홀스맘 김유예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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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에 따끈따끈한 새책이 집에 도착했다.숱한 나날 컴퓨터 화면에서 흘러다니며 나를 괴롭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단장하고 나오니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표지의 가운데 박힌 아마르의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이 책이 존재하는 한 아마르가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겠구나 생각하니 평소 신세만 지던 녀석의 잔등에 빛나는 날개를 달아준 것만 같다.어디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렴.아마르는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명이었던 깐돌이를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새로 얻은 이름이다.우리는 말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앞표지 띠지를 장식하는 사진틀 안에는 말 친구 사총사 장군이,아마르,태풍이,칸타빌레(왼쪽부터)가 찬조출연(?)했다.뒷표지 띠지에 나오는 말은 칸타빌레다.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방님에게 조촐한 축하라도 하게 케잌을 사오라고 했다.케잌을 고르고 나니 점원이 초를 몇 개 드릴까요? 물었다고 했다.누구 생일도 아니어서 할방님은 적당히 달라고 해서 들고 왔는데 과연 케잌에 몇 개 꽂을까 고민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나는 잠시 생각했지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다섯 개를 꽂았다.그리고 이렇게 말했다."하나는 나,하나는 당신,그리고 칸타빌레,아마르,엘도라도를 위한 초야!" 촛불에 불을 밝히니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책의 출판담당자들이 보았을때 나는 호락호락한 저자가 아니었다.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떴다 작가님'이 되어 출판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이건 이리 고쳐달라 저건 저리 고쳐달라 까타리나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그래놓고 살펴보니 글자 위치 하나를 바꾸고 삽화의 선 하나를 수정하는 데도 수십 번의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을 보고 이 얼마나 고된 노동이냐 싶었다.글자 받침 하나,점 하나의 오류도 잡아내는 교정작업 역시 말할 것이 없다.인쇄소에도 찾아갔다.감리를 보기 위해서다.나의 책은 독일제 하이델베르크라는 기계를 배정받았다.가기 전 나는 작업대 앞에 서기만 하면 쌍심지를 켜고서 뭘 요구해야지 단단히 벼른 상태였다.그러나 야간작업시간 침침한 조명 아래 머리가 석류알처럼 터져버릴 것 같은 독한 잉크 냄새 맡으며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몰입한 인쇄전문가와 조수작업자들의 노동을 바라보니 그만 숙연해져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조용히 물러나왔다.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출판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니고 있다> 책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서문 마지막 문장을 빌어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 이 책이 나의 곁에 찾아와 머물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모든

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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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엄마가 오후반이 되니 클럽에서 자주 보게 된다.어느 오후에 여느 때처럼 아마르와 칸타는 야외마장에서 놀고 있었다.논다기 보다는 우두커니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 것 같았다.수아엄마가 수아를 데리고 나왔다.또각또각 말 발소리가 들리니 우리 아이들이 누가 나오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다 수아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마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엄마에게 이끌려 나오는 수아도 좋아서 출입문에 당도하기까지 걸음이 들뜨고 바빴다.수아는 마장 안에 들어서자 기뻐서 네 다리와 머리를 공중에 낙서하듯이 휘저어 갈기더니 마구 달려서 운동장을 몇 바퀴 내질렀다.마치 태풍이가 수아 안에 들어간 것처럼 늘 익숙하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아마르도 태풍이와 놀 때 그 모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발에 용수철을 단 것처럼 지면을 튕기듯이 차오르는 걸음걸이로 활보했다.김연아 선수가 양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어린 암수말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칸타는 별 동요없이 내면적으로만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곧이어 브릿지가 역시 엄마손에 이끌려 나왔다.수아와는 같은 엄마를 두었다.브릿지는 숫말인고로 아마르와 싸울 것을 우려해서 야외마장 옆에 맞붙은 초보마장에 단독으로 들여보내졌다.초보마장은 최근에 생긴 건축물로 마장의 용도를 생각해서 기승중에 말이 놀라지 않도록 말 눈높이에 벽면을 쳤다.그 덕분에 밖에서 보면 기승자의 머리와 말의 네 다리만 보일 뿐이어서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돌아다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그래서 나에게는 초보마장이 켄타우로스마장으로 인식되어 있다.바로 이곳에서 브릿지는 뒹굴어서 급한 가려움증을 해소하더니 그제서야 밖에 누가 있나 찬찬히 보려고 머리를 들썩들썩 하면서 동향을 살폈다.우리 아이들 역시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기웃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니 브릿지는 자기만 홀로 격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저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하는 모습에서 마땅치 않은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내게는 말의 다리만 보일 뿐이지만 말은 걸음걸이에서도 제 감정을 표현한다.브릿지는 점점 부아가 돋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마르 속에 한동안 잠자던 장난꾸러기 악동 본능이 깨어나 한껏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아마르는 기분이 무척 유쾌했다.엄마와 수아 이렇게 암말 둘이 제 곁에 있고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상대인 다른 숫말이 다른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암말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즐거웠던 게다. 말 세마리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을 유심히 살피자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아마르가 암말 수아에게 스킨십을 잔뜩 퍼붓고 있었다.수아의 귀며 얼굴이며 제 입술이 닿는 곳을 낼름 할짝 부비거리는 것이었다.난 순간 "아니 쟤가 왜 저래? 저렇게 서비스가 친절한 얘가 아닌데 말이지."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수아야말로 '얘가 나한테 웬일이야.이런 모습 처음이야.'했을 것 같다.담장 너머로는 브릿지의 귀가 들썩거리고 눈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풋! 웃음이 났다.아마르는 브릿지 형님 약을 한참 올리는 중이었다. 신나게 수아를 핥아주다가 마장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아마르를 불렀다.다른 때 같으면 못 들은 척 하면서 조는 시늉도 하는데 이 순간 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할아버지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는데 제 흥에 못이겨 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수아와 칸타도 아마르의 뒤를 따랐다.아마르는 할아버지에게 자랑하러 간 모양이다."할아버지 있잖아.내가 브릿지 형님 약 올려줬는데 말야..." 하고서 보고를 하고 - 할아버지는 못 알아들었겠지만 -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마르의 꼬리가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세워지더니 피뢰침처럼 완벽하게 섰다.순간 말꼬리의 생리학적 해부도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저럴 수 있는 건가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꼬리 뿐만이 아니다.목도 높아지고 굴요의 상태가 되고 걸음도 춤추듯 건들거린다.말들이 저희들끼리 놀다가  기분이 좋아질 때 어김없이 우아한 발레리나처럼 변신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태우고 운동 할 때에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아?"

"쟤들은 놀 때만 멋있어요.마장마술 동작을 다 한다니까.사람만 타면 안 그래요."

 

이러한 멘트 속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얼마 전 여동생과 나와 남편이 몇 시간을 보내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대화를 하다가 여동생이 "역시 형부는 최고야!" 이런 식의 칭찬을 했다.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여동생이 뒷자리에서 운전석에 앉은 형부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어 형부! 방금 전에 목 뻐근해서 펴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 했어."하며 처제의 칭찬에 대한 형부의 리액션을 해설해서 잠시 웃게 만든 일이 있다.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기쁨에 넘칠 때 '어깨가 으쓱한다' '우쭐하다''목에 힘준다'하고 하며 기분이 좋을 때 '띄운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런 표현을 한다.말이나 사람이나 신체적 감정표현 상태가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니 내가 기분좋을 때를 떠올려보면 말의 기분도 그닥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체의 동작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존재의 내면적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말을 탔을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개개 연주자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의 자발성을 북돋아서 자질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살아있는 존재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은 동작은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칸타,아마르,수아,브릿지가 놀 때에 말 아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평소의 아마르는 이제 다 커버려서 감정표현이나 장난스러움은 저 멀리 떠나버리지 않았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확인했다.수아도 얌전하기만 하고 운동할 때 역시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말이어서 그토록 벅차오르는 기쁨을 현란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브릿지는 더욱 놀랍다.마방에서 보면 점잖고 영민한 표정을 짓고만 있으니 도를 많이 닦아서 일희일비 소소한 감정은 없을 줄 알았다.운동할 때도 높은 레벨의 말이 갖춘 각이 틀잡혀 있어서 여지껏 다른 여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다.한데 그런 브릿지가 여느 말처럼  부아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수아가 나갔다 들어오면 엘도처럼 기쁨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니 살아있는 존재의 생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말이 단지 마방에 수납되어 있다가 불려나와 사람을 태우고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들어가는 운동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 가지는 존재로서 바라볼 때 그 말에게서 어떻게 하면 자발성,기쁨,성취감,자부심,용기,도전을 이끌어내게 될까 고민이 시작될 거라 본다.능력이 있지만 두려워하는 말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의욕없는 말에게는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될 테니까.

 

* 시시콜콜 할망 유머.

 

한강클럽 말 이름을 못 외우는 이름치를 위하여.

 

아마르 ---> 아? 말?

리카다 ---> 니꺼다

브릿지 ---> 불 있지?

 

유머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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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겨울 바람이 찹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많은 눈이 온다하니, 마음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말을 괴롭히며 타는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미숙하고 어설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말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괴로움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오늘, 당신과 이야기하고싶은 것은 말은 스승이다’  승마에서 최고의 스승은 말이다 라는 주제입니다.

이 말은 책을 통해서 또 사람들에게서 여러번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 뜻을 내가 경험하고 피부로 깨닫기 전까지는 추상적이고 의미없는 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가 깨달은 많은 진실과 지혜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지 않았듯이 ...

 

하지만 말이 스승이다 라는 명제는 말을 타는 사람들 누구나 깨달아야 할 진정으로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말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말이 나의 스승인지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그것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경험속에서 느꼈을까요?

 

나는 그것이 참 궁금하고 그 경험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경험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진정한 말의 친구로 성장하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말이 스승이다라는 말을 해석하는  첫 번째 의미는, 아마도 말타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좋은 말은 승마를 가르쳐준다라고 좋은 말을 더 강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승마에 갓 입문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은 분에게는 쉬이 가닿지 않는 말일겁니다. 말이 승마를 가르쳐준다라는 의미를 말할 수 있는 것도 말잔등 위에서 깨알같은 세월을 보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까요.

 

이 말의 의미는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말이 승마를 가르쳐준다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단지 말을 가장 오래 탄 사람이 가장 말을 잘 타야 할 것이고, 좋은 말이 승마를 가르쳐 준다면 가장 좋은 말을  탄 사람이 말을 제일 잘 탈것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면 이 말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말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 또는 태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이 전하는 다양한 반응과 느낌을 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말과의 호흡을 맞추려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 , 즉 사람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말은 아무에게나 승마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저항과 거부의 몸짓을 이해하고 화해할 줄 아는 이...말을 배려하기 위해 내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이...  말과의 관계를  긴밀하고 사려깊게 형성하기위해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선물일 것입니다.

 

 

'말이 스승이다'의 두 번째 의미는 승마의 영역를 확장하여 나아가야합니다.  말이 기술을 가르쳐주는 기승행위를 넘어서 말이 여러 가지 행동이나 몸짓들,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행동, 거부하는 몸짓, 난폭한 행동, 심지어 죽음을 통해 전해주는 모습까지도 가르침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의사들에게는 말의 죽음이 말의 죽음을 배우게 해주는 배움의 역할을 하는것과 마찬가지 의미일 것입니다. 말이 죽으면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할 것이고 해부를 해보면 더 잘 알수 있을 것이고 그 죽음을 통해 다른 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공부를 하게되는 이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매일 만나는 악벽을 가진 모든 말,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말들조차도 나의 스승인 것입니다.

 

절룩거리는 말을 통해서는 그 말이 어디가 아픈지를, 어떻게해야 나을 수 있는지, 어찌하면 더 심해지는지를 배우는것이며, 날뛰는 말은 그 말이 난폭해서 날 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두려움이나 오랫동안 마방에 갇혀지낸 것에 대한 자연스런 행동이며 적절한 관심과  애정어린 운동을 꾸준히 시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재갈이나 안장, 고삐의 조작등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우는 아시다시피 수도없이 많습니다.

 

채찍이 무서워 온몸이 뻣뻣해진 말을 통해서는 내가 두려움을 주는 행동을 없애고 부드러움으로 다가가야하는 나의 부족함을 알려주는 것이며, 의욕이 없는 말은  삶의 기쁨과 동기를 찾게 해주어야만  활발해짐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말은 없다. 문제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진정한 홀스맨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말의 여러가지 문제 행동들이 미숙한 나로 인해 야기됨을 깨닫는 사람이 될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말을 탈 자격을 겨우 획득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 전까지 우리는 말을 괴롭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미숙하고 어설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말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괴로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K.

말과 관련된 우리의 모든 활동들을 배움의 자세로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말은 스승입니다

말을 타는 이들에게 모든 말은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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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소멸의 아름다움' ( 필립 시먼스 / 나무심는 사람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지 않는 별 

그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따위는 두렵지 않다 .

그보다는 내마음 속 불모지가

훨씬 더 절실하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 로버트 프루스트 '불모지' 중에서

 

 

 

 

 

 

  ... 우리는 멀리 떨어진 별들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원자.

텅 빈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일시적인 결합에 불과하다.

 ... 우리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동시에

 덜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의 신비주의는

다른 세계에 접근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이 세계를 더욱 깊이 경험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나의 신비주의는 일상 생활의 신비주의.

거기에 필요한 것은 상상력, 평범한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

신의 은총에 대해 기꺼이 놀라는 마음뿐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

낡은 구두와 장미꽃이 있는 세계에 있으면서

 내가 영원을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영원을 찾고 있다는 것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영원한 현재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호흡에, 우리 눈앞에 있는 우리 손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면,

 삶의 빛 속으로, 평범한 것들의 핵심에 있는 신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아이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을 볼 때

 까마귀가 들판에 내려앉는 것을 볼 때 

 나이 든 묘목업자가 신나는 얼굴로 잡종 진달래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

그런 평범한 순간,

갑자기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신발을 벗고 깊이 고개숙여 절을 하고 싶어진다

 

 

 

 

 

 

 

 

 

 

현재에 살면

 적어도 처음에는 과거와 미래를 잊고,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억과

기대감의 회오리를 멈추고

 명상하거나 빵을 굽거나 숲속을 거닐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련을 거듭하면...

이번에는 과거와 미래가 불안이나 심란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대신 우리는 지금 이순간이

모든 시간의 흐름속에서 제 자리를 찾은 것을 깨닫고

 우리가 영원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지금 이순간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 속에서 살게 된다

 

.

.

.

.

.

 

.

.

   

< 에필로그 >

 

 

 

 

모든 곳이 길이되는 초원  

 

 

 

 

 

 

 

몽골에서는

바람과 풀과 햇빛과 함께 걷는다

달릴 때는 온 초원이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잃어버린 원초적 기쁨과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자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된다.

 

 

 

 

 

 

 

가다가 힘들면 걷고

걸음을 멈추어서서 아득한 풍경을 가슴에 담아두거나

그 풍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 좋다.

 

 

 

 

 

 

 

 

말들은 일사분란하게 나아간다

 

 

 

 

 

 

 자신의 소임을 정확하게 알고  행동한다.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어떤 진창과 수렁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말들이 선두에 나설 수 있고

어떤 말도 뒤쳐졌다고 조급해하거나

 앞선 말을 쫒으려 내달리지 않는다.

 

 

 

 

 

 

 

 무리에서 떨어져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움직이되 개별적으로 자유롭다.

 

 

 

 

 

 

 

때로는 거친 강을 건너고,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면 산을 넘어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을 끼고

 차마고도를 넘는 짐꾼들처럼 산을 넘는다.

 

 

 

 

 

 

 

 

아래로는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는 몽골이다.

 

 

 

 

 

 

 

 이곳 몽골인들도 이제는 초원의 삶을 많이 떠난다.

 

 

 

 

 

 

 

 이미 도시화가 심화된 울란바토르 시를 중심으로

초원을 떠난  몽골인들이  모여들고

 

 

 

 

 

 

 

 

유목민의 삶을 상징하며 초원의 삶을 지키던 아름다운 게르

가난한 빈민을 상징하는 주거공간으로 도심 외곽에 흉물스럽게 자리잡았다.

 

게르가 없는 초원은 주인을 잃은 듯 허허롭다

 

 

 

 

 

 

 

 

 

 대도시의 삶에 지친 우리는 초원을 꿈꾸고

초원의 삶을 살던 몽골인은 대도시를  꿈꾼다.

 

 

 

 

 

 

 

 

그래도..

세상의 변화와 격랑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돌아와 풀이 무성해지면  몽골인들은 초원으로 향한다.

 

 

 

 

 

 

 

 

 초원은 돌아가야할 영원한 고향인 것이다

 

 

 

 

 

 

 

 

몽골과의 인연을 위한 징표가 필요했던 것일까

 첫 번째 여행에서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두 번째 여행에서는 믿기 어렵게도 구두를 두고왔다.

 

 

 

 

 

 

 

   

  가끔, 두고온 물건을 떠올릴때마다  

내가 몽골에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이 찾아든다. 

 

 

 

 

 

 

 

초원을 감싸는 신비한 빛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듯한 게르의 차가운 밤들

생성과 소멸. 순환의 모습을 너른 가슴에 펼쳐놓은  몽골의 초원

 

 

 

 

 

 

 

 말의 다리를 통해 전해지는 

풀의 살결, 물의 소리, 대지의 울림

 낯선 여행자들이 말을 몰아대는 어설픈  츄~ 츄~ 소리들

 

그 속에 여전히 함께 있다는 신비 속에 빠져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몽골에 가게되면 자신의 무언가를 하나쯤 남겨두고 오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의 삶이 버거울때나, 지루할 때나 ,의기소침해질때면

잠시 몽골에 두고온 것들을 떠올리게되고

 

 

 

 

 

 

그 기억들은 우리를 잊지않고 몽골로 데려다줄 것이다.

 

 

 

 

 

 

 

 

몽골의 초원과 빛속으로...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초원의 노래소리로...

 말들의 잃어버린 낙원, 영원한 고향 속으로...

 

 

 

 

 

 

 

그러면 우리는

초원의 말들처럼 꿋꿋하고 굳건한 한걸음을

지금 이순간 영원 속에서

함께 내딛고 있을 것이다.

 

 

 

 

 

 

 

 

 

                

 

 

 

 이상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분들의 사전 동의없이 사진을 게재하였음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진을 제공하여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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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본문 2장 시작면에 나오는 사진 / 모델 : 몽돌이

 

출판하기로 한 책 원고의 이름 격인 제목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책 제목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책의 팔자가 운명을 달리할 것 같아서 무거운 책임감만 껴안은 채로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내가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 '책 제목이 뭐죠?" 라고 물어와도 "아직은 글쎄..."라고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고 오리무중이었다. 

 

책의 의도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승용마에 대한 인식을 낯설게 환기시켜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함이니 그에 걸맞는 제목이어야 했다.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더더군다나 최상의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맨날 새둥지 머리를 이고서 늘어진 츄리닝 바람으로 소일하는 아내나 남편을 여신이나 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리한 일상이 끝도 없이 풀려나가는 실타래처럼 이어지다가도 어느 한 순간 그 또는 그녀가 대단히 눈부시게 빛나보이기도 한다. 일생에 그런 일이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런 특별한 순간이 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만나는 승용마를 그저 평범하게만 바라보면 세상 천지에 널린 게 말인데 뭐 있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타고 놀라운 열락의 세계를 체험하고 나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느껴진다.바로 그 순간의 고귀함을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행위가 승마의 가치가 될 거라 생각하고 그를 표현할 언어로 '유니콘' 이 내 머릿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출판 준비과정 내내 나의 1차 편집자 역할에 충실했던 할방에게 유니콘이 제목에 들어가면 어떠냐고 물었다.'유니콘의 숲' '유니콘의 숲에 들다' 등등.할방은 유니콘이 가지는 기존 이미지 때문에 썩 마음에 들지 않고 정통문학 에세이 제목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니라고 했다.

 

넌지시 던져본 제목 아이디어가 비호감 판정을 받았다.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찾아보자.이번엔 대중적이면서 친근하고 편안한 제목 없나 궁리를 하다가 이런 제목을 지어냈다.

 

<애마부인은 트로트 하러 승마장에 간다>

 

할방에게 들려주니 그의 반응은 '긔 뭥미???' 이런 정도로 보였다.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서 제목의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글쓴이가 말을 사랑하는 결혼한 부인이니 애마부인 맞잖아.저자의 정체성도 뚜렷하지.맨날 말 타고서 트로트(속보)운동 하잖아 맞지.쉽고 대중적이지 않아?"

 

나의 침 튀기는 설득에 할방은 "틀린 말은 아닌데...  " 하고서 찜찜한 여운을 남겼다. 찜찜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급으로 위력을 키워 나에게 덮쳐왔다.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제목 얘기를 꺼냈다.

 

"저어...제목은 ...그냥 ..그대로..가실 거예요?"

"그런데요.제목이 어때서요? 괜찮으니 제목에 대한 소감을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러자 지금까지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무장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했던 편집자의 목소리가 아주 다른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러니까요..애마부인이 워낙 이미지가 그렇고...안 좋아서요...트로트도 좀 그렇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억지로 입에 올려야하는 불편함과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상대가 불쾌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지점에서 애쓰고 있음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의 우려를 좀 가라앉힐 겸 해서 우리사회에서 승마가 아직은 생소해서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휘를 골라 배열한 것이며 트로트는 승마전문용어다 라고까지 설명했다.그녀가 그렇군요 라고는 했어도 근본적인 거부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좀 더 나은 제목을 찾아보자며 통화는 마무리됐다.내가 낸 제목이 그렇게 심각해? 뭐가 심각해? 하는 마음에 진상조사를 철저히 해보자 싶었다.

 

먼저 인터넷서점에서 '애마부인'이 들어간 책 제목이 있나 찾아보았다.그랬더니 책은 없었고 애마부인 DVD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서점에서 나와 검색으로 다시 애마부인을 찾아보았다.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에 바뀐 화면에는 영화 애마부인에 대한 정보만 가득했다.나의 순수한 - 아니 순진함이겠지 - 인식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애마부인'이란 말은 에로영화의 대표적 상징이었다.영화 '애마부인'은 한국영화에서 최다시리즈 영화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1982년 1편이 제작된 이래로 1996년 13편까지 이어졌으니 가히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문화적 공룡이었다.멜로와 에로를 결합한 장르에서.할방에게 나만 몰랐던 기막힌 현실을 들려주니 그보다 더한 정보도 보태주었다.시리즈 13편 뿐만 아니라 집시애마,파리애마 등등 애마부인 아류시리즈가 엄청나대나.그런 건 그렇게 잘 알아.하기야 15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비디오가게가 성업을 했고 늘 바지런히 드나들던 할방이니 실상을 모를 리가 없겠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미지를 보니 전형적인 에로영상 이미지 절반에 말이 등장하는 승마관련 이미지 절반이었다. 내 눈에는 그 장면이 꼭 컴퓨터 시스템 고장으로 에로와 승마 키워드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10년 전 처음 승마를 시작했을 때 함께 말타던 여자 선배가 있었다.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승마 한다고 말하면 대뜸 상대방 입에서는 '애마부인'? '경마장 다녀?' 이런 소리가 튀어나와 짜증나고 속상해 죽겠다며 하소연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8~90년 대에는 말이나 승마 이미지가 애마부인으로 단순하게 통합이 되어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명인 셈이다.

 

나의 담당 편집자는 20대 신세대 아가씨인데 '애마부인'의 전형적 에로물 이미지를 떠올렸으니 애마부인은 8,90년대만 휩쓸고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어슬렁거리며 존재의 영향력을 막강하게 과시하고 있었다.이러한 현실은 '애마부인'의 탓이 아니다.첫 '애마부인' 영화 이후로 30년이 흘렀어도 아직 승마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미미하여 애마부인을 밀어낼 만큼 대중적 인식의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힘이 세기론 '애마부인'뿐만이 아니었다.'트로트'는 더 만만치 않았다.트로트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대중가요 장르로서 트로트는 곧 음악이었다.여기엔 네 발 달린 동물의 걸음걸이를 일컫는 보편적 어휘로 통용되기를 기대하며 끼어들 여지는 가히 없었다. 만일 <애마부인은 트로트 하러 승마장에 간다>로 책을 냈다가는 뽕짝 얘긴줄 알고 샀는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거 가요 아니잖아? 하고서 항의 환불 사태로 출판사가 초토화 되고 나 역시 곤욕을 치루게 될 미래가 훤히 보였다.

 

결국 애마부인과 트로트의 권세에 밀려 깨갱 하고서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뭐 제목으로 안 쓰는 거야 마음을 접으면 그만이지만 다른 억울함은 남았다.승마인으로서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애마부인이 얼마나 많은가? 애마아저씨도 말할 것도 없다. 말을 사랑하여 매일 엎으려 말 발굽을 파주고 털 손질을 하고 똥삽질도 '사삭' 마다 않는 건전한 애마인이 그 이름도 당당한 애마부인,애마아저씨 라는 제이름값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처음 떠올렸던 제목의 장점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할방이 1차 편집자의 책임감을 다 하는 것처럼 제목을 수정해서 완성해주었다.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앞머리에 나서면 너무 두드러지니까 '우리는 지금'과 '~거닐고 있다.'라고 배열된 사이에 '유니콘의 숲'을 넣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의미는 살아나면서 더욱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배어나와 내 마음에도 들었다. 오늘에 이르러 승마에세이 제목을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라는 현재진행형 문장으로 걸게 된 사연이다.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에로,호러,멜로,환타지,액션...당신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는지.

 

말도 마찬가지겠죠.기왕이면 고귀한 신성을 지닌 천상의 동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천복을 누릴 준비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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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보면

신비한 초원의 빛 속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세상 천지가 풀이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몽골이 건네는 첫번째 감동적인 선물이다

 

 

 

 

 

풀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풀이 세상의 주인이고 배경이고 토대이다.

 

 

 

 

 

말과 소와 양과 개와 사람들이

 풀의 일부분으로,

 풀에 의지해 살아간다.

풀을 얻기 위해 일어나고 풀을 찾기 위해 이동한다.

 

 

 

 

 

 

풀이 삶의 전부이다.

 

 

 

 

 

 내 말타기의 이력은

 살아있는 한줌의 풀을 얻고자하는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 풀밭에서 말과 함께 흐뭇하게 늙어가기위하여...”

그러기위해 말잔등에 오른 나날이었다.

 

 

 

 

  그렇게 풀밭은 현재의 결핍이자 꿈이 되었다 

 

 

 

 

 

 말들의 뷔페음식

 

 

 

 

 

 

몽골마...

 

 

 

 

 

 

 

 

 말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인다.

 세상 모든 것이 용서된다.

 

 

 

   

                  

                                       ‘당신은 지금 몽골에 와 계신 겁니다

                                         몽골이 주는 두 번째 선물이다.

 

 

 

 

 

                                            

                                                   몽골마들의 등선과 산의 모습이 닮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던 말들도 일할 시간이 다가오면 마굿간으로 들어가야한다.

마굿간에 서있는 녀석들에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풀을 뜯어 내밀었다

 

 

 

 

 

???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 이걸 받아먹...으라구요... 풀을 ... 멕여줘요 ? ”

허걱받아먹을 줄 모른다.

                                      

 

 

 

 

 

순간 ...

 

 

풀 한줌을 들고가면

 

 

 

 

 

온갖 애교를 떨며 간절한 눈빛으로

 

 

 

 

  갈망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풀 한줌들고 사교하러갔다가 당했다.

문화적충격이다.

 

 

 

 

 

 

 풀이 천지니,

타기 전에 풀뜯고 안장 매고 풀뜯고 천천히 이동할 때도 틈만나면 풀뜯어물고

 쉬는 시간은 내내 풀뜯는 시간이다...

 

 

 

 

 

굳이 손으로 풀먹일 일이 없어지고 다른  재미에 빠져 시간은 흘러 

몽골마들이 사람이 뜯어주는 풀을 안받아먹는지 다시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어린 말들조차 먹을 것을 스스로 챙겨 먹어야하고

영하 3 ~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몽골의 겨울 초원에서

말 들은 눈속에 묻힌 마른 풀을 파헤쳐 먹고 살아내야한다.

이런 혹독한 조건속에서 몽골마들의 강인함과 독립성은 형성된다.

 

 

 

 

 

여행하는 내내 말들은 풀뜯기에 전심전력한다

그것은  곧이어 다가올 기나 긴 겨울을  이미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몽골마들의 얼굴에는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보채지도 않고

재롱도 떨지않고

불안해하지도

의심하지도 않는 얼굴

주어진 삶의 조건과 시련들을 묵묵히 건너면서 단련된.

.

.

.

 

아,

 

 

 

 

 

 

 징징대다 지친 ...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묵.묵.히  살아야겠다.

저 몽골마들처럼...

 

 

 

 

몽골이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리운 몽.돌.이... 여행내내 함께 한 영특하고도 놀라운 녀석이다

                      

 

 

 

 

이 때의 깊은 인연으로 몽돌이는

  승마에세이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 김인선 저 / 좋은땅 출판사 / 2013년 11월 발간 )  2부와 3부 표지의 사진모델로 실려 환하게 웃는 멋진 선물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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