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듣는 아마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 진리를 떠올리는 순간은 보통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유쾌한 상황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쁘고 좋은 관계는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 키를 돌릴지 조절이 가능하기도 하다. 말들끼리 관계도 이 진리에서 비켜서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칸타와 아마르 말 모자(母子) 사이에도 변하는 관계가 보였다. 말도 사람처럼 사회생활을 하므로 관계의 문제가 존재할 것이다. 말끼리 관계는 흔히 서열이라는 그들의 질서에 따라 살펴볼 수가 있다.

 

  칸타의 몸에서 아마르가 태어난 순간부터 5세가 될 때까지 관계 주도권의 우위는 칸타에게 있었다. 여름에 태어난 망아지 깐돌(아마르의 아명)은 엄마 젖을 찾아 빨아야하는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동안 파리를 쫒느라 한 시각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엄마의 발길질과 꼬리채에 얻어맞으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래서 깐돌이가 엄마에게 절대복종 하는 까닭이 낳아주고 젖을 먹여 키워준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 외에도 망아지적부터 엄마의 무시무시한 위엄을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관계는 5세 생일이 가까울 무렵까지 이어졌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그런 모습으로 영원하겠지 생각했지만 그 생각 또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엘도라도가 입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엘도라도는 원형 패덕 안에 있었고 칸타와 아마르는 바깥 공간에 있었다. 엘도라도는 칸타바라기였고 칸타는 엘도라도를 숫말로서 관심을 두기 시작하니 아마르의 관심은 온통 둘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는데 온통 쏠려 있었다. 아마르는 자유롭게 놀지도 못하고 마치 2차대전 시기에 유태인을 색출하러 다니던 게슈타포처럼 굴었다. 칸타와  엘도라도에게 암말과 숫말의 태도가 나타나면 곧 유태인이라 낙인찍고 체포해서 아우슈비츠에 집어넣을거야 엄포를 놓았다. 아마르의 태도가 강경하고 살벌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급기야 확실한 인증샷 하나를 연출하고야 말았다. 칸타가 엘도라도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들이대고 꼬리를 요염하게 말아서 들어올리자 아마르가 둘 사이에 확 끼어들더니 칸타에게 인정사정 없는 발길질을 날리고 말았다. 나는 이게 실제상황인가 하고 충격을 받았지만 일단 엘도라도를 마방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 후에 생각해보니 아마르는 정신줄을 놓았기에 잠시 그럴 수 있다쳐도 맞고서도 아무런 항의도 못한 칸타는 뭐란 말인가. 그 사건 이후로 칸타와 아마르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되었던 위,아래 관계는 거꾸로가 되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아마르가 엄마에게 행패 부리는 모습이 목격됐고 둘을 나란히 세워놓고 간식을 줄 때도 아마르가 내가 많이 받아먹을 테니 엄마 머리는 저리로 치워 하고 밀치기 일쑤였다. 그러면 칸타는 기도 못펴고 아들 눈치를 보며 입안에 든 것이나 겨우 우물우물 씹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살다보니 과연 세상에 모든 말 엄마와 아들이나 딸이  함께 살면 자식이 5세 무렵이 되었을 때 서열이 바뀌게 되는 건가하는  일반화의 가능성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오랜 세월 말 목장을 운영하며 수많은 망아지를 키워본 목장주만이 알 거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요즘에 와서 또 서열이 바뀌었다. 바깥에서 둘이 놀다가 칸타가 무슨 일인지 심술이 나서 내가 보기에 아무 짓도 안한 - 하기는 했다.칸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는.그렇다고 그 땅이 칸타 소유는 아닌데. - 아마르를 걷어찼다. 그랬더니 아마르는 그 옛날 닭들이 날아다니던 승마장에서 바람이에게 뻥 차였던 닭이 비실비실 어디론가 걸어갔던 그 자태 그 느낌 그대로 기운없이 저리로 가버렸다.

 

 내가 만일 정치가였다면 권력의 무상함에 대해서 설핏 찾아든 상념에 잠시 잠겼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취향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는 사람이라 그런가 머릿속은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회전을 시작했다. 그 방향이란 말과 사람의 교감의 차원이다.

 

  요즘 생활의 변화라면 남편이 거의 주말반처럼 되어 평일에는 기승을 별로 하지 않는 패턴으로 지내는 지가 좀 되었다. 지난 가을까지 내가 아마르를 주로 타다가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도 있고 해서 남편이 기승을 주로 하다보니 자연히 아마르는 평일에 기승운동 할 일이 별로 없다. 날은 춥고 땅의 상태도 별로여서 자유로운 놀이도 별로 못하고 유일한 활동이란 기승운동이 대부분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기승운동이란 단지 사람을 태우는 활동만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 전후로 준비하고 뒷처리 하는 과정에서 갖은 보살핌을 받으며 사랑과 관심을 누리는 일이다.

  한가한 평일에 주로 칸타가 마방복도에 매어져서 엄마의 갖은 보살핌을 받는 동안 아마르와 엘도라도는 부럽다는 듯이 넋을 놓고 구경한다. 아마르는 시샘이 나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다가 어느 순간 쏙 들어가서 안 보겠다는 듯 엉덩이를 돌리고 서있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내다보고 시샘하고. 그럴 때 칸타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그러기를 한 석 달 지났나보다. 요즘에 아마르는 풀이 팍 죽어 의기소침해 보인다. 물론 주말에는 제 할아버지가 나타나 예뻐해주지만 평일,주말 통합으로 사랑을 받는 칸타에 비하면 약발이 부족해 보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문득 '동물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정도에 따라 무리내에서 서열이 더 올라간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명제를 가설이라 여기고 우리 아이들 경우를 대입해 보니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아마르는 4세까지 기승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3세부터는 기승운동을 많이 시켜야지 했지만 늘 다치거나 다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주로 놀고먹는 백수신세로 소일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동안 칸타는 아빠 태우랴,엄마 태우랴 상당한 몫을 해냈다. 칸타는 의기양양 신경질도 마음껏 팡팡 부리고 기세등등 했던 반면 아마르는 눈치밥 먹는 자식마냥 칸타 앞에서 그저 엄마의 기세에 눌릴 뿐이었다 .올해는 아이들이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아마르도 승용마 한 몫을 거뜬히 해냈다. 게다가 평일,주말 전천후 할머니가 아마르를 주로 탄 시간이 많다. 할아버지가 몽골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홀로 아마르를 타주고 보살폈다. 그러는 사이에 아마르가 칸타를 걷어차며 행패부리는 시기가 놓여있었던 거다. 지난 행적을 추적해보니 칸타와 아마르는 기승운동을 중심축으로 한 사랑과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쪽이 둘 사이 관계의 우위를 점령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실내마장에 들어가 막 칸타를 타기 시작해서 평보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코치가 축복이를 다 타고 마무리 평보를 하고 있어서 잠시 같이 나란히 어슬렁거리게 되었다. 내가 "축복이 오랫만이야." 했더니 코치가 " 요즘 축복이가 호구네요.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치인다는 얘긴지 자세한 정황은 못 들었으나 코치가 말이 호구라고 말할 때는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간다. 말 서열의 밑바닥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축복이는 얼마 전까지 자마 마방에서 지내다가 자마의 신분도 없어지고 마방도 모자라서 클럽마방으로 그것도 제일 끝방으로 이사갔다. 끝방은 사람들이 돌아보다가도 미처 발길이 미치지 못하고 가버리는 후미진 곳이다. 축복이가 어떤 말인가. 자마였을 때 자마마방에서 가장 기세등등했다. 새로 온 말이 있으면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런 말이 호구가 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 문득 축복이가 생각나서 당근을 들고 클럽 마방 끝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축복이는 권세를 누리다가 하루 아침에 팽 당하여 귀양길에 오른 양반님처럼 패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고마워하며 당근을 받아먹었다. 자마였을 때 갖은 치장을 해주고 오랜 시간 공들여 돌봐주던 손길이 끊기니 그렇게 됐다. 말 팔자도 뒤웅박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으로 서열이 업그레이드 된 말의 특징은 정서적 안정감에서 비롯된 만족감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발성을 갖는다. 상황에 따라 주인이 좀 힘든 뭔가를 시켜도 반항하지 않고 참아내며 따른다. 칸타의 기승 전과 후의 태도는 매우 다르다. 흔히 비포 에프터로 비교하는 경우에 해당할 만하다. 기승전에는 "난 완벽한 배려를 원해요."의 화신이다. 이런 칸타 덕분에 기승운동을 준비하는 나의 태도는 수행이 높은 스님이 다도(茶道)를 행할 때처럼 느림과 사려깊음이 경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순악질여사의 허공에 2단 돌려차기,헤드 뱅잉,화살촉 시선을 당해야 한다. 칸타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배려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이런 칸타도 기승운동만 끝나면 그 전의 모습에 보상이라도 해주듯 고분고분해진다. 다시 기승대로 가서 목덜미에 칭찬하고 내려서 다시 칭찬할 때에 칸타가 고개를 약간 돌려 나를 바라보는데 그 시선은 이미 나긋나긋 흘러내리는 크림처럼 부드럽다. 답답한 레인을 풀어서 정리하고 등자를 올리고 빵빵한 복대로 늦춰주고 "자 갈까?" 눈빛으로 말하고 어깨를 열어 길을 터주면 칸타가 나른한 걸음으로 졸래졸래 따라온다. 머리를 낮추어 조아리고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따라나오는 칸타는 제왕을 따르는 절대충신이다.

 

  칸타와 함께 실내마장을 걸어나오는 시각은 대부분 네다섯 시 경이다. 그 시각 해는 천천히 지고 있어서 마지막 오후햇살이 나와 칸타의 뒤에서 비춰온다. 손을 잡고 가듯 느슨하게 고삐를 손바닥에 걸치고 갈 때 칸타가 머리를 은근하게 내쪽으로 기대온다. 나도 그러는 칸타에게로 몸을 좀 기울여 머리를 맞대본다.  눈앞 땅바닥에  거대한 그림자 풍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그림자는 오징어 형상이었다. 나의 머리와 칸타의 머리가 합쳐져서 오징어 몸체의 삼각형이 되고 우리 다리 여섯개가 오징어다리가 되어 걸을 때마다 흐느적흐느적했다. 내가 칸타와 맞대지 않은 다른 팔을 나비처럼 파랑거렸더니 온몸으로 흐느적거리는 입체적인 오징어형상이 되었다. 말과 사람이 한몸이 된 이미지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지만 그게 하필 오징어라니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와 햇살을 타고 부유하던 공기중으로 퍼져나갔다.

 

  오징어의 형상에서 나의 상상은 잠에서 깨어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꼭 오징어가 심해에서 물결을 타고 춤추는 것처럼 떠오른다. 먼먼 시간으로부터 生을 거듭하여 살아왔다면 나는 어느 순간 오징어였고,물이었고,바람이었고,나무였고,말이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칸타도 바위였고,눈송이였고,다람쥐였고,구름이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존재를 거쳐오며 이 순간 우리가 만났을 것인가. 전생과 윤회의 삶이 있다면 그 안에서 무슨 위가 있고 아래가 있을 것인가. 너와 나라는 분별이 사라지고 일체감이란 본질만 남을 때 어떤 생명의 모습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든 사랑만이 생명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지어준 마방에서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사는 승용마는 이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터전 말고 다른 삶의 모습은 없다. 말들은 그들끼리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관여하는 사람들조차 같은 무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렇기에 사람이 생각하든 안하든 의지에 상관없이 말과의 관계망에 얽혀들게 된다. 무수한 관계의 상자를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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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북부지방에서 남편과 함께 제인과 페가수스라는 말을 기르는 홀스맘이자 <알.티>의 열혈독자이신 김유예 님이 우리 아이들 선물을 보내왔다. 유럽 홀스맘들 사이에 인기라는 말 죽제품이다.

 

이 귀한 선물을 어이 멕일꼬 궁리 끝에 마방 점심시간에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마방에서는 당근 하나도 다 나누어주어야지 누구만 줬다간 후환 겪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선물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멕여야 하니 말 이웃들이 건초를 먹을 때 주면 다들 제각각 먹느라 신경을 덜 쓸 것 같아 그리 하기로 했다.

 

평소 오이소박이나,깍두기 버무릴 때 쓰던 스텐그릇이 집에서 출장나왔다.제품 봉지에는 뜨거운 물을 그냥 봉지에 부으라 표시했지만 아무래도 비닐봉지는 온도가 뜨거워지면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엄마는 아이에게 환경호르몬을 먹게 할 수 없는 법이다.포트는 평소 차 마실 때 사용했는데 오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게 되어 네가 참 요긴한 물건이로구나 했다.

 

먼저 봉지를 뜯어 당근그릇에 부어서 대기시킨다.포트에서 끓은 물은 90도 이상이라 60~70도로 식혀주어야 한다.넓은 스텐그릇은 끓는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죽의 재료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곡물 누른 것과 박편이고 사과도 풍미를 돋구기 위해 첨가되었다.

 

 

물이 적당히 식은 것 같아 (온도계는 재지 않았지만) 죽 재료를 쏟아부었다.

 

재료가 물을 만나니 순식간에 포옹을 하고는 물컹해졌다.

 

김이 설설 피어오르며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니 말에게도 풍미가 전해졌을 것이다.이제부터는 곡물이 소화되기 쉽도록 불면서 미지근하게 식을 동안 기다려야 한다.20~30 분 정도 소요될 듯하다.

 

주걱으로 죽을 휘휘 젓는 동안 소여물죽 끓이는 일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면 소에게 여물 끓여주는 일이 신기했다.온갖 재료를 버무려 큰 솥에 끓여서 퍼주면 소가 맛나게 먹었는데 보고 있다가 나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소여물은 사랑이었다.우리 조상들이 한 겨울 보내고 나니 충분한 풀을 섭취하지 못해 이듬해 봄에 털갈이도 제대로 못하고 바짝 마른 소를 보고는 가엾어 귀한 옥수수나 콩을 한줌씩 넣어 끓여먹이곤 했으리라.

 

말 또한 본디 초식동물이어서 곡물을 섭취하는 동물은 아니었다.사람과 살게 되면서 일을 시키다 보니 소화부담은 줄여주면서 힘이 딸리지 않도록 먹이게 된 거다.그래서 말에게 곡물을 줄 때 신선한 풀을 못 먹게 한 대신에 일 시키려고 주는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스치지만 한편 갈빗대가 보이고 요각이 두드러지면 가엾어서 얼른 살찌라고 입에다 많이 넣어주고 싶은 먹이이기도 하다.

 

지금은 말이 전쟁이나 교통수단으로 혹사당하지는 않으니 노동을 위한 에너지원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사랑이란 의미가 더 많을 것이다.우리네 조상이 집에서 기르는 소를 가여워하고 아끼던 마음과 똑같이.

 

칸타의 반응을 보려고 죽그릇을 들고 가니 냄새를 좀 맡아보고는 빨리 달라고 앞발을 긁고 난리가 났다.

 

 

 

다른 말들은 남아있는 건초를 먹느라 눈으로만 힐끔거리며 살피는 정도였는데 브릿지는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아예 먹는 일을 중단하고 죽에만 관심을 두고 쳐다봤다.

 

죽이 충분히 식지 않았지만 그냥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미식가 칸타가 새로운 맛에 완전히 빠져서 분석중이다.

 

아마르도 신중하게 이것이 무엇일꼬 하며 아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 외에 다른 말들에게도 한 주걱씩 나누어주었다.말들이 만장일치로 "아주 맛이 좋아요!" 했다.

 

그릇의 설거지는 이쁜 딸 칸타더러 하라고 했다.칸타가 설거지 임무를 좋아라 받아들이며 날름날름 싹싹 깨끗하게 그릇을 닦아주었다.오늘의 간식타임 끝~

 

말 죽 쑤는 과정을 구경하시던 이웃 리카다 아빠가 부시럭거리며 말 사과사탕 한봉지를 주셔서 아이들이 디저트로 한 개씩 먹었다.그날 오후 기승운동을 하는데 유난히 기분좋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 지켜보시던 리카다 아빠 크게 소리 높여 외치기를 "역시 점심 때 좋은 걸 멕여서 확실히 틀리네!"

 

 

이태리 김유예 님이 보내온 죽 관련 메일을 본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죽은요,봉지를 개봉하신 후에 1리터의 물 (60-70도)을 그 안에 부으시고 다시 봉지를 닫으신 다음 죽이 잘 불고 말이 먹기에 적당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한 20-30분) 봉지의 내용물을 그대로 말 밥통에 부어주시고 봉지는 버리시면 되는 겁니다.

 

말 죽이라는게 Mash 라고 해서 독일과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문화로 주성분은 아마씨와 밀겨껍질,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곡물 박편들인데요 칼슘과 인이라는 성분의 독특하게 불균형한 비례율 때문에 일주일에 3번 이상 주면 말의 뼈에서 칼슘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말에게 좋지 않지만 이틀만에 한 번씩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주면 더이상 말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데,그 중 대표적인 장점을 모아보면

 

1. 뱃속에 있는 모래를 비롯하여 우리가 안본 새에 말이 섭취한 모든 위험한 이물질들이 한방에 나온다.

 

2.기승운동 후 건초+사료와 함께 주면 영양분을 더욱 효과적으로 섭취하되,똥배는 절대 방지하면서 근육과 살이 꼭 필요한 곳에 안착되도록 한다.(즉 몸짱을 만들어 주는 거죠^^)

 

3.아주 건강하고 빛나는 외투가 (말 털) 만들어진다.

 

그밖에 소화촉진 등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아 아주 잘 팔리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있는 종류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요.올해에는 아기들을 몸짱으로 만들려는 홀스맘들의 욕심에 부합하고자 일주일에 세 번밖에 줄 수 없다는 단점을 곡물을 완전 제외시키고 60가지 알프스산에서 나는 약초만을 원료로 하여 매일 먹을 수 있는 신죽제품을 출시한 Agrobs란 회사 때문에 더욱더 죽 열풍이 불었지요.

 

- 홀스맘 김유예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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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에 따끈따끈한 새책이 집에 도착했다.숱한 나날 컴퓨터 화면에서 흘러다니며 나를 괴롭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단장하고 나오니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표지의 가운데 박힌 아마르의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이 책이 존재하는 한 아마르가 세상 구석구석 돌아다니겠구나 생각하니 평소 신세만 지던 녀석의 잔등에 빛나는 날개를 달아준 것만 같다.어디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렴.아마르는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명이었던 깐돌이를 허물처럼 벗어버리고 새로 얻은 이름이다.우리는 말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앞표지 띠지를 장식하는 사진틀 안에는 말 친구 사총사 장군이,아마르,태풍이,칸타빌레(왼쪽부터)가 찬조출연(?)했다.뒷표지 띠지에 나오는 말은 칸타빌레다.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방님에게 조촐한 축하라도 하게 케잌을 사오라고 했다.케잌을 고르고 나니 점원이 초를 몇 개 드릴까요? 물었다고 했다.누구 생일도 아니어서 할방님은 적당히 달라고 해서 들고 왔는데 과연 케잌에 몇 개 꽂을까 고민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나는 잠시 생각했지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다섯 개를 꽂았다.그리고 이렇게 말했다."하나는 나,하나는 당신,그리고 칸타빌레,아마르,엘도라도를 위한 초야!" 촛불에 불을 밝히니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책의 출판담당자들이 보았을때 나는 호락호락한 저자가 아니었다.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떴다 작가님'이 되어 출판사 사무실에 찾아가서 이건 이리 고쳐달라 저건 저리 고쳐달라 까타리나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그래놓고 살펴보니 글자 위치 하나를 바꾸고 삽화의 선 하나를 수정하는 데도 수십 번의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을 보고 이 얼마나 고된 노동이냐 싶었다.글자 받침 하나,점 하나의 오류도 잡아내는 교정작업 역시 말할 것이 없다.인쇄소에도 찾아갔다.감리를 보기 위해서다.나의 책은 독일제 하이델베르크라는 기계를 배정받았다.가기 전 나는 작업대 앞에 서기만 하면 쌍심지를 켜고서 뭘 요구해야지 단단히 벼른 상태였다.그러나 야간작업시간 침침한 조명 아래 머리가 석류알처럼 터져버릴 것 같은 독한 잉크 냄새 맡으며 한치의 빈틈도 없이 몰입한 인쇄전문가와 조수작업자들의 노동을 바라보니 그만 숙연해져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조용히 물러나왔다.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출판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니고 있다> 책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서문 마지막 문장을 빌어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 이 책이 나의 곁에 찾아와 머물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모든

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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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엄마가 오후반이 되니 클럽에서 자주 보게 된다.어느 오후에 여느 때처럼 아마르와 칸타는 야외마장에서 놀고 있었다.논다기 보다는 우두커니 먼 산이나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 것 같았다.수아엄마가 수아를 데리고 나왔다.또각또각 말 발소리가 들리니 우리 아이들이 누가 나오는 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다 수아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마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엄마에게 이끌려 나오는 수아도 좋아서 출입문에 당도하기까지 걸음이 들뜨고 바빴다.수아는 마장 안에 들어서자 기뻐서 네 다리와 머리를 공중에 낙서하듯이 휘저어 갈기더니 마구 달려서 운동장을 몇 바퀴 내질렀다.마치 태풍이가 수아 안에 들어간 것처럼 늘 익숙하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아마르도 태풍이와 놀 때 그 모습이 그대로 되살아났다.발에 용수철을 단 것처럼 지면을 튕기듯이 차오르는 걸음걸이로 활보했다.김연아 선수가 양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어린 암수말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칸타는 별 동요없이 내면적으로만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곧이어 브릿지가 역시 엄마손에 이끌려 나왔다.수아와는 같은 엄마를 두었다.브릿지는 숫말인고로 아마르와 싸울 것을 우려해서 야외마장 옆에 맞붙은 초보마장에 단독으로 들여보내졌다.초보마장은 최근에 생긴 건축물로 마장의 용도를 생각해서 기승중에 말이 놀라지 않도록 말 눈높이에 벽면을 쳤다.그 덕분에 밖에서 보면 기승자의 머리와 말의 네 다리만 보일 뿐이어서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돌아다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그래서 나에게는 초보마장이 켄타우로스마장으로 인식되어 있다.바로 이곳에서 브릿지는 뒹굴어서 급한 가려움증을 해소하더니 그제서야 밖에 누가 있나 찬찬히 보려고 머리를 들썩들썩 하면서 동향을 살폈다.우리 아이들 역시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기웃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니 브릿지는 자기만 홀로 격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저쪽으로 가서 내다보고 하는 모습에서 마땅치 않은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내게는 말의 다리만 보일 뿐이지만 말은 걸음걸이에서도 제 감정을 표현한다.브릿지는 점점 부아가 돋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마르 속에 한동안 잠자던 장난꾸러기 악동 본능이 깨어나 한껏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아마르는 기분이 무척 유쾌했다.엄마와 수아 이렇게 암말 둘이 제 곁에 있고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상대인 다른 숫말이 다른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암말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즐거웠던 게다. 말 세마리가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을 유심히 살피자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아마르가 암말 수아에게 스킨십을 잔뜩 퍼붓고 있었다.수아의 귀며 얼굴이며 제 입술이 닿는 곳을 낼름 할짝 부비거리는 것이었다.난 순간 "아니 쟤가 왜 저래? 저렇게 서비스가 친절한 얘가 아닌데 말이지."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수아야말로 '얘가 나한테 웬일이야.이런 모습 처음이야.'했을 것 같다.담장 너머로는 브릿지의 귀가 들썩거리고 눈이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풋! 웃음이 났다.아마르는 브릿지 형님 약을 한참 올리는 중이었다. 신나게 수아를 핥아주다가 마장에 당도한 할아버지가 아마르를 불렀다.다른 때 같으면 못 들은 척 하면서 조는 시늉도 하는데 이 순간 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할아버지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는데 제 흥에 못이겨 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수아와 칸타도 아마르의 뒤를 따랐다.아마르는 할아버지에게 자랑하러 간 모양이다."할아버지 있잖아.내가 브릿지 형님 약 올려줬는데 말야..." 하고서 보고를 하고 - 할아버지는 못 알아들었겠지만 - 다시 기분이 좋아진 아마르의 꼬리가 서커스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세워지더니 피뢰침처럼 완벽하게 섰다.순간 말꼬리의 생리학적 해부도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저럴 수 있는 건가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꼬리 뿐만이 아니다.목도 높아지고 굴요의 상태가 되고 걸음도 춤추듯 건들거린다.말들이 저희들끼리 놀다가  기분이 좋아질 때 어김없이 우아한 발레리나처럼 변신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태우고 운동 할 때에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아?"

"쟤들은 놀 때만 멋있어요.마장마술 동작을 다 한다니까.사람만 타면 안 그래요."

 

이러한 멘트 속에는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얼마 전 여동생과 나와 남편이 몇 시간을 보내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대화를 하다가 여동생이 "역시 형부는 최고야!" 이런 식의 칭찬을 했다.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여동생이 뒷자리에서 운전석에 앉은 형부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어 형부! 방금 전에 목 뻐근해서 펴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 했어."하며 처제의 칭찬에 대한 형부의 리액션을 해설해서 잠시 웃게 만든 일이 있다.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기쁨에 넘칠 때 '어깨가 으쓱한다' '우쭐하다''목에 힘준다'하고 하며 기분이 좋을 때 '띄운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런 표현을 한다.말이나 사람이나 신체적 감정표현 상태가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니 내가 기분좋을 때를 떠올려보면 말의 기분도 그닥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체의 동작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존재의 내면적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말을 탔을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개개 연주자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의 자발성을 북돋아서 자질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살아있는 존재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은 동작은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칸타,아마르,수아,브릿지가 놀 때에 말 아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았다.평소의 아마르는 이제 다 커버려서 감정표현이나 장난스러움은 저 멀리 떠나버리지 않았나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확인했다.수아도 얌전하기만 하고 운동할 때 역시 너무나 착하고 성실한 말이어서 그토록 벅차오르는 기쁨을 현란하게 표현할 줄 몰랐다.브릿지는 더욱 놀랍다.마방에서 보면 점잖고 영민한 표정을 짓고만 있으니 도를 많이 닦아서 일희일비 소소한 감정은 없을 줄 알았다.운동할 때도 높은 레벨의 말이 갖춘 각이 틀잡혀 있어서 여지껏 다른 여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다.한데 그런 브릿지가 여느 말처럼  부아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수아가 나갔다 들어오면 엘도처럼 기쁨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니 살아있는 존재의 생동감을 느끼게 만든다.

 

말이 단지 마방에 수납되어 있다가 불려나와 사람을 태우고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들어가는 운동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 가지는 존재로서 바라볼 때 그 말에게서 어떻게 하면 자발성,기쁨,성취감,자부심,용기,도전을 이끌어내게 될까 고민이 시작될 거라 본다.능력이 있지만 두려워하는 말에게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의욕없는 말에게는 흥미를 불어넣어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될 테니까.

 

* 시시콜콜 할망 유머.

 

한강클럽 말 이름을 못 외우는 이름치를 위하여.

 

아마르 ---> 아? 말?

리카다 ---> 니꺼다

브릿지 ---> 불 있지?

 

유머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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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겨울 바람이 찹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많은 눈이 온다하니, 마음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말을 괴롭히며 타는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미숙하고 어설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말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괴로움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오늘, 당신과 이야기하고싶은 것은 말은 스승이다’  승마에서 최고의 스승은 말이다 라는 주제입니다.

이 말은 책을 통해서 또 사람들에게서 여러번 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그 뜻을 내가 경험하고 피부로 깨닫기 전까지는 추상적이고 의미없는 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가 깨달은 많은 진실과 지혜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지 않았듯이 ...

 

하지만 말이 스승이다 라는 명제는 말을 타는 사람들 누구나 깨달아야 할 진정으로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말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말이 나의 스승인지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그것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경험속에서 느꼈을까요?

 

나는 그것이 참 궁금하고 그 경험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경험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진정한 말의 친구로 성장하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말이 스승이다라는 말을 해석하는  첫 번째 의미는, 아마도 말타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좋은 말은 승마를 가르쳐준다라고 좋은 말을 더 강조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승마에 갓 입문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은 분에게는 쉬이 가닿지 않는 말일겁니다. 말이 승마를 가르쳐준다라는 의미를 말할 수 있는 것도 말잔등 위에서 깨알같은 세월을 보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까요.

 

이 말의 의미는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말이 승마를 가르쳐준다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단지 말을 가장 오래 탄 사람이 가장 말을 잘 타야 할 것이고, 좋은 말이 승마를 가르쳐 준다면 가장 좋은 말을  탄 사람이 말을 제일 잘 탈것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면 이 말에는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말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 또는 태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이 전하는 다양한 반응과 느낌을 감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말과의 호흡을 맞추려는 사람의 마음과 자세 , 즉 사람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말은 아무에게나 승마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저항과 거부의 몸짓을 이해하고 화해할 줄 아는 이...말을 배려하기 위해 내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이...  말과의 관계를  긴밀하고 사려깊게 형성하기위해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선물일 것입니다.

 

 

'말이 스승이다'의 두 번째 의미는 승마의 영역를 확장하여 나아가야합니다.  말이 기술을 가르쳐주는 기승행위를 넘어서 말이 여러 가지 행동이나 몸짓들,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행동, 거부하는 몸짓, 난폭한 행동, 심지어 죽음을 통해 전해주는 모습까지도 가르침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수의사들에게는 말의 죽음이 말의 죽음을 배우게 해주는 배움의 역할을 하는것과 마찬가지 의미일 것입니다. 말이 죽으면 왜 죽었는지 알아야 할 것이고 해부를 해보면 더 잘 알수 있을 것이고 그 죽음을 통해 다른 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공부를 하게되는 이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매일 만나는 악벽을 가진 모든 말,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말들조차도 나의 스승인 것입니다.

 

절룩거리는 말을 통해서는 그 말이 어디가 아픈지를, 어떻게해야 나을 수 있는지, 어찌하면 더 심해지는지를 배우는것이며, 날뛰는 말은 그 말이 난폭해서 날 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두려움이나 오랫동안 마방에 갇혀지낸 것에 대한 자연스런 행동이며 적절한 관심과  애정어린 운동을 꾸준히 시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재갈이나 안장, 고삐의 조작등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우는 아시다시피 수도없이 많습니다.

 

채찍이 무서워 온몸이 뻣뻣해진 말을 통해서는 내가 두려움을 주는 행동을 없애고 부드러움으로 다가가야하는 나의 부족함을 알려주는 것이며, 의욕이 없는 말은  삶의 기쁨과 동기를 찾게 해주어야만  활발해짐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말은 없다. 문제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진정한 홀스맨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말의 여러가지 문제 행동들이 미숙한 나로 인해 야기됨을 깨닫는 사람이 될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말을 탈 자격을 겨우 획득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 전까지 우리는 말을 괴롭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미숙하고 어설픈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말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괴로운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K.

말과 관련된 우리의 모든 활동들을 배움의 자세로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말은 스승입니다

말을 타는 이들에게 모든 말은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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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소멸의 아름다움' ( 필립 시먼스 / 나무심는 사람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지 않는 별 

그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따위는 두렵지 않다 .

그보다는 내마음 속 불모지가

훨씬 더 절실하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 로버트 프루스트 '불모지' 중에서

 

 

 

 

 

 

  ... 우리는 멀리 떨어진 별들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원자.

텅 빈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일시적인 결합에 불과하다.

 ... 우리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동시에

 덜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의 신비주의는

다른 세계에 접근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이 세계를 더욱 깊이 경험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나의 신비주의는 일상 생활의 신비주의.

거기에 필요한 것은 상상력, 평범한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

신의 은총에 대해 기꺼이 놀라는 마음뿐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

낡은 구두와 장미꽃이 있는 세계에 있으면서

 내가 영원을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영원을 찾고 있다는 것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영원한 현재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호흡에, 우리 눈앞에 있는 우리 손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면,

 삶의 빛 속으로, 평범한 것들의 핵심에 있는 신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아이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을 볼 때

 까마귀가 들판에 내려앉는 것을 볼 때 

 나이 든 묘목업자가 신나는 얼굴로 잡종 진달래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

그런 평범한 순간,

갑자기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신발을 벗고 깊이 고개숙여 절을 하고 싶어진다

 

 

 

 

 

 

 

 

 

 

현재에 살면

 적어도 처음에는 과거와 미래를 잊고,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억과

기대감의 회오리를 멈추고

 명상하거나 빵을 굽거나 숲속을 거닐거나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련을 거듭하면...

이번에는 과거와 미래가 불안이나 심란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대신 우리는 지금 이순간이

모든 시간의 흐름속에서 제 자리를 찾은 것을 깨닫고

 우리가 영원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지금 이순간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 속에서 살게 된다

 

.

.

.

.

.

 

.

.

   

< 에필로그 >

 

 

 

 

모든 곳이 길이되는 초원  

 

 

 

 

 

 

 

몽골에서는

바람과 풀과 햇빛과 함께 걷는다

달릴 때는 온 초원이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잃어버린 원초적 기쁨과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자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된다.

 

 

 

 

 

 

 

가다가 힘들면 걷고

걸음을 멈추어서서 아득한 풍경을 가슴에 담아두거나

그 풍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 좋다.

 

 

 

 

 

 

 

 

말들은 일사분란하게 나아간다

 

 

 

 

 

 

 자신의 소임을 정확하게 알고  행동한다.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어떤 진창과 수렁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말들이 선두에 나설 수 있고

어떤 말도 뒤쳐졌다고 조급해하거나

 앞선 말을 쫒으려 내달리지 않는다.

 

 

 

 

 

 

 

 무리에서 떨어져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움직이되 개별적으로 자유롭다.

 

 

 

 

 

 

 

때로는 거친 강을 건너고,

 

 

 

 

 

 

 

건널 수 없는 강에 이르면 산을 넘어야 한다.

 

 

 

 

 

 

 

깎아지른 절벽을 끼고

 차마고도를 넘는 짐꾼들처럼 산을 넘는다.

 

 

 

 

 

 

 

 

아래로는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는 몽골이다.

 

 

 

 

 

 

 

 이곳 몽골인들도 이제는 초원의 삶을 많이 떠난다.

 

 

 

 

 

 

 

 이미 도시화가 심화된 울란바토르 시를 중심으로

초원을 떠난  몽골인들이  모여들고

 

 

 

 

 

 

 

 

유목민의 삶을 상징하며 초원의 삶을 지키던 아름다운 게르

가난한 빈민을 상징하는 주거공간으로 도심 외곽에 흉물스럽게 자리잡았다.

 

게르가 없는 초원은 주인을 잃은 듯 허허롭다

 

 

 

 

 

 

 

 

 

 대도시의 삶에 지친 우리는 초원을 꿈꾸고

초원의 삶을 살던 몽골인은 대도시를  꿈꾼다.

 

 

 

 

 

 

 

 

그래도..

세상의 변화와 격랑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돌아와 풀이 무성해지면  몽골인들은 초원으로 향한다.

 

 

 

 

 

 

 

 

 초원은 돌아가야할 영원한 고향인 것이다

 

 

 

 

 

 

 

 

몽골과의 인연을 위한 징표가 필요했던 것일까

 첫 번째 여행에서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두 번째 여행에서는 믿기 어렵게도 구두를 두고왔다.

 

 

 

 

 

 

 

   

  가끔, 두고온 물건을 떠올릴때마다  

내가 몽골에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이 찾아든다. 

 

 

 

 

 

 

 

초원을 감싸는 신비한 빛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듯한 게르의 차가운 밤들

생성과 소멸. 순환의 모습을 너른 가슴에 펼쳐놓은  몽골의 초원

 

 

 

 

 

 

 

 말의 다리를 통해 전해지는 

풀의 살결, 물의 소리, 대지의 울림

 낯선 여행자들이 말을 몰아대는 어설픈  츄~ 츄~ 소리들

 

그 속에 여전히 함께 있다는 신비 속에 빠져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몽골에 가게되면 자신의 무언가를 하나쯤 남겨두고 오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의 삶이 버거울때나, 지루할 때나 ,의기소침해질때면

잠시 몽골에 두고온 것들을 떠올리게되고

 

 

 

 

 

 

그 기억들은 우리를 잊지않고 몽골로 데려다줄 것이다.

 

 

 

 

 

 

 

 

몽골의 초원과 빛속으로...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초원의 노래소리로...

 말들의 잃어버린 낙원, 영원한 고향 속으로...

 

 

 

 

 

 

 

그러면 우리는

초원의 말들처럼 꿋꿋하고 굳건한 한걸음을

지금 이순간 영원 속에서

함께 내딛고 있을 것이다.

 

 

 

 

 

 

 

 

 

                

 

 

 

 이상 연재를 마칩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분들의 사전 동의없이 사진을 게재하였음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진을 제공하여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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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본문 2장 시작면에 나오는 사진 / 모델 : 몽돌이

 

출판하기로 한 책 원고의 이름 격인 제목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책 제목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책의 팔자가 운명을 달리할 것 같아서 무거운 책임감만 껴안은 채로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내가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 '책 제목이 뭐죠?" 라고 물어와도 "아직은 글쎄..."라고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고 오리무중이었다. 

 

책의 의도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승용마에 대한 인식을 낯설게 환기시켜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함이니 그에 걸맞는 제목이어야 했다.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더더군다나 최상의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맨날 새둥지 머리를 이고서 늘어진 츄리닝 바람으로 소일하는 아내나 남편을 여신이나 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지리한 일상이 끝도 없이 풀려나가는 실타래처럼 이어지다가도 어느 한 순간 그 또는 그녀가 대단히 눈부시게 빛나보이기도 한다. 일생에 그런 일이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런 특별한 순간이 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만나는 승용마를 그저 평범하게만 바라보면 세상 천지에 널린 게 말인데 뭐 있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타고 놀라운 열락의 세계를 체험하고 나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 느껴진다.바로 그 순간의 고귀함을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는 행위가 승마의 가치가 될 거라 생각하고 그를 표현할 언어로 '유니콘' 이 내 머릿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출판 준비과정 내내 나의 1차 편집자 역할에 충실했던 할방에게 유니콘이 제목에 들어가면 어떠냐고 물었다.'유니콘의 숲' '유니콘의 숲에 들다' 등등.할방은 유니콘이 가지는 기존 이미지 때문에 썩 마음에 들지 않고 정통문학 에세이 제목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니라고 했다.

 

넌지시 던져본 제목 아이디어가 비호감 판정을 받았다.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찾아보자.이번엔 대중적이면서 친근하고 편안한 제목 없나 궁리를 하다가 이런 제목을 지어냈다.

 

<애마부인은 트로트 하러 승마장에 간다>

 

할방에게 들려주니 그의 반응은 '긔 뭥미???' 이런 정도로 보였다.하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서 제목의 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글쓴이가 말을 사랑하는 결혼한 부인이니 애마부인 맞잖아.저자의 정체성도 뚜렷하지.맨날 말 타고서 트로트(속보)운동 하잖아 맞지.쉽고 대중적이지 않아?"

 

나의 침 튀기는 설득에 할방은 "틀린 말은 아닌데...  " 하고서 찜찜한 여운을 남겼다. 찜찜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급으로 위력을 키워 나에게 덮쳐왔다.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제목 얘기를 꺼냈다.

 

"저어...제목은 ...그냥 ..그대로..가실 거예요?"

"그런데요.제목이 어때서요? 괜찮으니 제목에 대한 소감을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러자 지금까지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무장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했던 편집자의 목소리가 아주 다른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러니까요..애마부인이 워낙 이미지가 그렇고...안 좋아서요...트로트도 좀 그렇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억지로 입에 올려야하는 불편함과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상대가 불쾌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지점에서 애쓰고 있음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의 우려를 좀 가라앉힐 겸 해서 우리사회에서 승마가 아직은 생소해서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휘를 골라 배열한 것이며 트로트는 승마전문용어다 라고까지 설명했다.그녀가 그렇군요 라고는 했어도 근본적인 거부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좀 더 나은 제목을 찾아보자며 통화는 마무리됐다.내가 낸 제목이 그렇게 심각해? 뭐가 심각해? 하는 마음에 진상조사를 철저히 해보자 싶었다.

 

먼저 인터넷서점에서 '애마부인'이 들어간 책 제목이 있나 찾아보았다.그랬더니 책은 없었고 애마부인 DVD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서점에서 나와 검색으로 다시 애마부인을 찾아보았다.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에 바뀐 화면에는 영화 애마부인에 대한 정보만 가득했다.나의 순수한 - 아니 순진함이겠지 - 인식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애마부인'이란 말은 에로영화의 대표적 상징이었다.영화 '애마부인'은 한국영화에서 최다시리즈 영화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1982년 1편이 제작된 이래로 1996년 13편까지 이어졌으니 가히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문화적 공룡이었다.멜로와 에로를 결합한 장르에서.할방에게 나만 몰랐던 기막힌 현실을 들려주니 그보다 더한 정보도 보태주었다.시리즈 13편 뿐만 아니라 집시애마,파리애마 등등 애마부인 아류시리즈가 엄청나대나.그런 건 그렇게 잘 알아.하기야 15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비디오가게가 성업을 했고 늘 바지런히 드나들던 할방이니 실상을 모를 리가 없겠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미지를 보니 전형적인 에로영상 이미지 절반에 말이 등장하는 승마관련 이미지 절반이었다. 내 눈에는 그 장면이 꼭 컴퓨터 시스템 고장으로 에로와 승마 키워드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10년 전 처음 승마를 시작했을 때 함께 말타던 여자 선배가 있었다.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승마 한다고 말하면 대뜸 상대방 입에서는 '애마부인'? '경마장 다녀?' 이런 소리가 튀어나와 짜증나고 속상해 죽겠다며 하소연 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8~90년 대에는 말이나 승마 이미지가 애마부인으로 단순하게 통합이 되어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명인 셈이다.

 

나의 담당 편집자는 20대 신세대 아가씨인데 '애마부인'의 전형적 에로물 이미지를 떠올렸으니 애마부인은 8,90년대만 휩쓸고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어슬렁거리며 존재의 영향력을 막강하게 과시하고 있었다.이러한 현실은 '애마부인'의 탓이 아니다.첫 '애마부인' 영화 이후로 30년이 흘렀어도 아직 승마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 미미하여 애마부인을 밀어낼 만큼 대중적 인식의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힘이 세기론 '애마부인'뿐만이 아니었다.'트로트'는 더 만만치 않았다.트로트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대중가요 장르로서 트로트는 곧 음악이었다.여기엔 네 발 달린 동물의 걸음걸이를 일컫는 보편적 어휘로 통용되기를 기대하며 끼어들 여지는 가히 없었다. 만일 <애마부인은 트로트 하러 승마장에 간다>로 책을 냈다가는 뽕짝 얘긴줄 알고 샀는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거 가요 아니잖아? 하고서 항의 환불 사태로 출판사가 초토화 되고 나 역시 곤욕을 치루게 될 미래가 훤히 보였다.

 

결국 애마부인과 트로트의 권세에 밀려 깨갱 하고서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뭐 제목으로 안 쓰는 거야 마음을 접으면 그만이지만 다른 억울함은 남았다.승마인으로서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애마부인이 얼마나 많은가? 애마아저씨도 말할 것도 없다. 말을 사랑하여 매일 엎으려 말 발굽을 파주고 털 손질을 하고 똥삽질도 '사삭' 마다 않는 건전한 애마인이 그 이름도 당당한 애마부인,애마아저씨 라는 제이름값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처음 떠올렸던 제목의 장점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할방이 1차 편집자의 책임감을 다 하는 것처럼 제목을 수정해서 완성해주었다.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앞머리에 나서면 너무 두드러지니까 '우리는 지금'과 '~거닐고 있다.'라고 배열된 사이에 '유니콘의 숲'을 넣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의미는 살아나면서 더욱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가 배어나와 내 마음에도 들었다. 오늘에 이르러 승마에세이 제목을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라는 현재진행형 문장으로 걸게 된 사연이다.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에로,호러,멜로,환타지,액션...당신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는지.

 

말도 마찬가지겠죠.기왕이면 고귀한 신성을 지닌 천상의 동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천복을 누릴 준비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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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보면

신비한 초원의 빛 속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세상 천지가 풀이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몽골이 건네는 첫번째 감동적인 선물이다

 

 

 

 

 

풀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풀이 세상의 주인이고 배경이고 토대이다.

 

 

 

 

 

말과 소와 양과 개와 사람들이

 풀의 일부분으로,

 풀에 의지해 살아간다.

풀을 얻기 위해 일어나고 풀을 찾기 위해 이동한다.

 

 

 

 

 

 

풀이 삶의 전부이다.

 

 

 

 

 

 내 말타기의 이력은

 살아있는 한줌의 풀을 얻고자하는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 풀밭에서 말과 함께 흐뭇하게 늙어가기위하여...”

그러기위해 말잔등에 오른 나날이었다.

 

 

 

 

  그렇게 풀밭은 현재의 결핍이자 꿈이 되었다 

 

 

 

 

 

 말들의 뷔페음식

 

 

 

 

 

 

몽골마...

 

 

 

 

 

 

 

 

 말들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인다.

 세상 모든 것이 용서된다.

 

 

 

   

                  

                                       ‘당신은 지금 몽골에 와 계신 겁니다

                                         몽골이 주는 두 번째 선물이다.

 

 

 

 

 

                                            

                                                   몽골마들의 등선과 산의 모습이 닮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던 말들도 일할 시간이 다가오면 마굿간으로 들어가야한다.

마굿간에 서있는 녀석들에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풀을 뜯어 내밀었다

 

 

 

 

 

???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 이걸 받아먹...으라구요... 풀을 ... 멕여줘요 ? ”

허걱받아먹을 줄 모른다.

                                      

 

 

 

 

 

순간 ...

 

 

풀 한줌을 들고가면

 

 

 

 

 

온갖 애교를 떨며 간절한 눈빛으로

 

 

 

 

  갈망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풀 한줌들고 사교하러갔다가 당했다.

문화적충격이다.

 

 

 

 

 

 

 풀이 천지니,

타기 전에 풀뜯고 안장 매고 풀뜯고 천천히 이동할 때도 틈만나면 풀뜯어물고

 쉬는 시간은 내내 풀뜯는 시간이다...

 

 

 

 

 

굳이 손으로 풀먹일 일이 없어지고 다른  재미에 빠져 시간은 흘러 

몽골마들이 사람이 뜯어주는 풀을 안받아먹는지 다시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어린 말들조차 먹을 것을 스스로 챙겨 먹어야하고

영하 3 ~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몽골의 겨울 초원에서

말 들은 눈속에 묻힌 마른 풀을 파헤쳐 먹고 살아내야한다.

이런 혹독한 조건속에서 몽골마들의 강인함과 독립성은 형성된다.

 

 

 

 

 

여행하는 내내 말들은 풀뜯기에 전심전력한다

그것은  곧이어 다가올 기나 긴 겨울을  이미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몽골마들의 얼굴에는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보채지도 않고

재롱도 떨지않고

불안해하지도

의심하지도 않는 얼굴

주어진 삶의 조건과 시련들을 묵묵히 건너면서 단련된.

.

.

.

 

아,

 

 

 

 

 

 

 징징대다 지친 ...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묵.묵.히  살아야겠다.

저 몽골마들처럼...

 

 

 

 

몽골이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리운 몽.돌.이... 여행내내 함께 한 영특하고도 놀라운 녀석이다

                      

 

 

 

 

이 때의 깊은 인연으로 몽돌이는

  승마에세이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 ( 김인선 저 / 좋은땅 출판사 / 2013년 11월 발간 )  2부와 3부 표지의 사진모델로 실려 환하게 웃는 멋진 선물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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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아마르가 깐돌이로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난처하고도 신비롭게 서있던 그 새벽으로부터 5년. 깐돌이는 비로소 말horse이 되었고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오랜 도시생활로 야생성을 잃어버린지 오래인 중년의 남자가 20여년만에 홀로 여행을 떠나야하는 상황앞에서는 잠시 안절부절해도 좋으리라. 쉽사리 홀로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겁많은 말처럼... 말에게나 사람에게나 야생의 정신이 필요할 때다.

 

 

 

말이 맺어준 인연의 땅 '몽골' 그리고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 나무심는 사람)

 

 

필립 시먼스 ( 1958 ~ 2003 )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평론과 단편소설을 쓰던 미국의 영문학 교수. 서른다섯의 나이에 '루게릭병'에 걸려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야했던 저자는 죽음을 앞둔 불완전하고 결함있는 삶이 오히려 어떻게 충만한 삶이 될수 있는지를 깊은 성찰과 지혜속에서 온몸으로 보여준다.

 

 

 

비어있음으로해서 가득한, 완전하면서도 결핍으로 충만한 몽골이야말로 '소멸의 아름다움'을 읽어내기에 적합한 땅이다.

 

 

 

 해질녘 몽골의 초원을 바라보며, 탁탁 영혼을 깨치며 타들어가는 마른 장작불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동이 터오는 새벽녘. 게르의 이슬맺힌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여기 아름다운 몽골에서 '합리적 신비주의자'가 전하는 삶에 대한 성찰을 소개해본다.  

 

 

( 아래부터는 '소멸의 아름다움'에서 인용된 글임)

 

 

 

삶은 어차피 죽음을 앞둔 상태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우리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존재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연의 섭리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한 이질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유를 깊이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 명성,물질적 소유,우리의 육신- 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자유...끝으로 우리의 고귀한 본성에 따라 행동할 자유.

 

 

 

 

 

아침에 침대에서 나올 수 있는 날은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축복이다. 우리가 팔다리를 움직여 세상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그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축복이다. 팔다리가 위축되고 말을 못하게 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다. 이 심장이 뛰는 한 나는 축복받은 존재다.

 

 

 

 

 

 

우리는 영원히 집을 완성할 수 없고 , 절대로 충분히 행복할 수 없으며, 집은 언젠가 우리를 완전히 떠나버릴 것이다

 

 

 

 

 

사람은 정착하기를 원하지만, 정착하지 않은 동안에만 희망이 있다(에머슨)...진정으로 살아있기위해 영원히 정착하지 말자

 

 

 

 

 

 

모든 종교적 감정은 우리의 진정한 집이 '다른 곳'에 있다는 깨달음으로 시작된다

 

 

 

 

 

 

그 '다른 곳'을 영적인 완전함으로 정의하든...자연계와의 조화로운 관계로 정의하든, 우리의 영혼과 신의 합일로 정의하든...우리는 되도록 멀리가기를 바란다. 이 삶의 고통에서, 미완성된 집에서, 미완성된 우리의 자아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삶속에 남아있는 한, 인간으로 남아있는 한, 우리가 갈망하는 그 '다른 곳'에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환상에 열중하면, 과거의 상처에 대한 기억에 얽매이고 다가오는 불행에 대한 두려움에 쫓기면, 우리가 갖고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을 잃게 된다

 

 

 

 

 

 

그것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다...현재의 순간은 우리가 살고있는 미완성된 집이다

 

 

 

 

 

 

하루하루는 미완성이고 불완전하지만, 나는 손상되고 쇠약해지고 있는 이 몸뚱이속에서, 이 호흡속에서, 더듬거리는 이 말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려고 날마다 애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여기, 현재라는 미완성된 집에 머물러있다. 기쁨은 집짓기 자체에 있다.

 

 

 

 

 

 

 

 

 

 

 

*** 돌이할방의 몽골사진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이 글은 몇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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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 복도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안장을 맬 때 밖의 빈 논을 바라보는 말의 눈빛에서 어떤 욕망이 얼핏 느껴진다.

 

저 논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볏줄기 삭삭 뜯어먹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자주 논에 가서 풀뜯기 시중을 들다보니 - 개 산책 시키듯 로프에 매어 잡고 있는 - 칸타나 아마르나 그 장소를 벗어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거 잘된 일이지 하고서 마사로 돌아가는 입구에 쇠사슬 줄을 치니 논은 훌륭한 가두리 방목장이 됐다.

 

마방굴레에서 로프연결 고리를 떼는 손가락에 전기에 감전된 듯 희열이 번졌다.

 

"이제 자유야! 너 가고싶은 데로 가라!" 호기롭게 외치며 홀가분함을 만끽했다.이것들이 놀랄까, 튈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었나.

 

칸타와 아마르도 내심으로 말 나름의 홀가분함이 채워졌을 것 같다.

 

논에서 갑자기 찾아온 자유로움에 무엇을 할까 잠시 망설였다.뭘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 이 순간을 맘껏 즐기기로 했다.

 

그러려면 편히 쉬어야 하니까 의자가 있어야겠고 그냥 앉아있으면 심심하고 말만 뭘 먹어서야 불공평하지 나도 뭘 먹어야겠다 머리회전은 빨랐다.

 

얼른 뛰어가서 찻물을 끓여 커피 두 잔을 타고 - 한 잔은 블로그 전속 사진작가(?) 할방님 몫이다-점퍼 호주머니에 비스킷을 구겨넣고 남은 주머니에 쥬스도 한팩 넣고 의자를 들고 논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할방을 불러 커피를 건네니 아이들이 뭐야뭐야? 나도나도! 하면서 일제히 몰려온다.커피 쏟아질가봐 손사레를 치며 쫒아내야 했다."니들은 니들 거나 먹어! "

 

말은 입과 다리만 있으면 풀밭에서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스럽다.반면에 나는 의자며 먹거리를 어디서 가져다 의존하는 처지다.비스킷을 우물거리며 생각하니 내가 말보다 매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빈 논에 머무를 때 자신이 말보다 한참 떨어지는 야생성에 열등감을 느끼며 가을의 한기 때문인지 약간 주눅든 자세인 웅크린 모양새로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아마르 만나러 오기 전에 머리가 왜 그리 복잡했나 생각했더니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월말이 되니 메일함에는 각종 청구서 목록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카드며 통신요금,공과금 등등 항목도 수십 가지다.

 

한 달 내내 날아드는 각종 청구서를 보면 사람은 평생 날아오는 청구서에 파묻혀 지불하면서 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날아오는 건 청구서 뿐이 아니다.무엇을 소비하라 유혹하는 마케팅이 얼마나 많은지 메일과 스마트폰의 주인이 광고야 뭐야 하는 심정이 되기 일쑤다.

 

 

세상은 나를 청구서 발송처와 마케팅 타겟으로만 규정하는 것 같다.그런 게 싫어 휴대전화를 꺼둘 때도 많고 잘 받지도 않아 지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출판사와 계속 업무연락을 해야해서 전화기를 체크하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나의 뇌파가 올라가고 뜨거워졌나 보다.

 

그 어떤 디지탈 기기도 없이 빈 논에 빈 몸으로 앉아 아이들 풀 뜯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걱서걱 씹는 소리를 들으니 점차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졌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제목을 붙이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말>이 되겠다.그럴 리야 없지만 꼭 아마르가 그러는 것 같아 코믹한 장면이 되었다.

 

주변은 온통 평화로운 기운만이 감싸고 있다.

 

논은 충분히 넓었지만 아이들은 멀리까지는 가지 않았다.겁쟁이 칸타가 더 멀리 갔지만 딱 논의 절반까지였다.아마르는 내 주변에서 맴돌았는데 가끔 한번씩 괜히 다가와 닿을 듯 스치고 지나가며 눈빛을 맞추었다.

 

마치 나 지금 너무 좋아요 할머니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많이 먹어요 아마르~ 하고 화답한다.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에 든 말을 좀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매우 몰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최고의 집중력을 모으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청나게 빠른 입놀림으로 볏줄기를 쓱쓱싹싹 입안으로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러는 상황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 풀을 뜯어먹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행위다.

 

우리 아이들의 먹는 속도는 빠르다.특히 아마르가 더하다.점심시간 말미에 마방에 가면 다른 말들이 식사중인데 아마르는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안 먹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때가 많다.관리인에게 물어보면 "아마르가요 딴 말보다 두 배는 빨리 먹어요."하고 대답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여느 말보다 2배속으로 먹는 아마르가 풀밭에 나오면 4배속 정도로 입놀림을 하는 것 같다.

 

말이 풀뜯어먹는 모습 구경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난지 나의 혼을 빼놓는 정도는 잘 만든 흥미진진한 영화를 볼 때와 비슷하다.

 

말이 아니라면 빈 논에 나와 앉아있을 일은 없다.

 

말과 함께 있기에 도시인이 잠시 자연의 시간으로 귀환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론 논에다 파라솔도 하나 꽂고 안락의자도 있으면 좋겠어 하고 떠올리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문명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할지라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야생성을 회복할 수 있는 통로 하나쯤은 막히지 않게 열어두고 싶다.

 

그 통로는 말에게로 연결되어 있다.

 

 

* 할망 시시콜콜 요즘

 

뱀파이어 영화를 보다가 사람에서 뱀파이어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뱀파이어의 힘이 어마어마하고 통제가 잘 안된다는 대목에서 "순치가 덜 됐어!" 하고 승마관련 용어가 절로 튀어나오네요.혹시 다들 그런 경험이 없으신지.  별거 아닌 일상사를 승마와 관련짓는 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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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의 눈부심을 가까스로 참으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목을 젖혀 하늘을 보니 철새의 비행을 구경하게 된다.가끔은 하늘을 가득 덮을 정도로 무수한 철새떼가 천둥 못지않은 소리를 울리며 지나가기도 한다.그럴 때는 철새 종족에 대하여 장엄함과 외경심이 느껴져 와아 하고 소리없는 탄성을 뱉는다.

 

무수한 새떼가 날아다닐 적에는 거대한 한 마리 흑조처럼 보인다.흑조를 보는 일보다는 열 마리 내외로 소규모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는 철새 보는 일이 많다.보통 화살표 모양을 하고서 원톱시스템으로 비행한다.날아가는 철새가 하늘을 가득 메우다가 조각으로 떨어져 날아가는 변주를 바라보면 전체와 부분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너와 나의 구분도 일체감으로 녹아버린다는 생각에 이르른다.

 

우리 아이들이 논두렁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이러는 풍경이 김포평야에서 흔히 보는 일이 아닌지라 철새도 날아가다가 시선을 내리꽂고 신기해하지 않을까?

 

승마장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농로에서 수확을 하느라 지나다니는 농기계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농로에서는 농기계 우선인지라 승용차는 쭈삣쭈삣 말도 못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농로를 뒷걸음쳐야 한다.도심지에서 교통을 방해하는 차량이 있을 때 크락션을 울리고 머리를 내밀고 항의하는 일일랑 이곳에서는 먼 나라 얘기다.농로를 지나가다가 농사일 하는 동네어르신의 표정은 당당하기만 하다.급하면 알아서 지나가셔~ 난 신경쓸 일 아니고~ 표정이 얼굴에 역력할 뿐이다.요즘엔 동네에 들어서면 자라목을 하고 먼 곳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습관이 됐다.

 

운동 끝나고 풀뜯으러 나왔다.칸타는 내가 붙들고 아마르는 할방님이 붙잡았다.아마르는 호기심이 많아 계속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서 그렇게 각각 맡았다.

 

요즘엔 논에서 노는 일이 많다.농부들이 볼일을 보고 떠난 빈논이 승마인 차지가 됐다.네모 반듯반듯하고 판판하고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모래먼지 걱정도 없다.논에서 운동을 하니 특히 좌속보하기가 좋았다.마치 라텍스 매트리스를 밟고다니는 느낌이었다.

 

마장에서는 말의 보폭이 커지면 좌속보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닌데 논에서는 하나도 배기거나 튕기지 않고 출렁출렁하여 다른 말을 탄 건가 싶었다.바닥의 재질이 승마운동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가 새삼 생각해 보았다.

 

뿐만 아니라 논은 야외이고 평소 생활하던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서 말에게 낯선 새로움을 느끼게 하니 말 발걸음에 긴장된 탄력이 부여됐다.다른 사람이 탄 말을 보니 평소보다 다리가 번쩍번쩍 들렸다.

 

게다가 벼 베어낸 밑동에서 새로운 벼 줄기가 올라오고 있어 논 전체가 파릇했다.아 꿈에도 그리던 잔디마장에서 운동하는구나 온전한 착각에 빠져 신나는 기분도 즐길 수 있었다.

 

운동이 끝나고 다시 논으로 나가 풀뜯기를 시키는 것은 말에게 주는 보상이면서 풀뜯는 동안 주변 환경에 더 적응하도록 해서 다음 번 이곳에서 운동했을 때 더 순조롭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사진을 찍은 날이 칸타,아마르가 함께 풀뜯으러 나왔던 올가을 첫 날이었던 모양이다.

 

아마르는 세상사를 모두 잊고 어느새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있었다.

 

자신의 오감을 모두 열고 이 풀,저 풀 가능한 모든 풀과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럴 때의 아마르는 예술가가 작업에 몰두하느라 자신까지도 잊어버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아 보인다.

 

칸타도 처음엔 그랬다.

 

눈앞으로는 제 아빠와 아들이 보이고 옆으로는 엄마가 줄을 연결하여 잡고 있으니 불안할 까닭이 하나도 없다.

 

아마 칸타는 마음을 푹 놓고서 하염없이 풀을 뜯어먹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 분이 오시기 전까지는.

 

풀뜯은 지 10 분이나 지났을까.칸타가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빈 논에 큰 원을 그리며 한바퀴 돌았다.순간 나는 사태에 대비를 해야겠다는 비상경보를 마음속에서 받았다.

 

아마르는 엄마 칸타가 평정심을 지키지 못하고 동요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할방님에게 얼른 칸타의 상태를 알리고 칸타와 아마르의 줄을 서로 바꾸어 잡았다.줄 잡은 사람이 바뀌었어도 아마르는 아직도 눈치가 하나도 없다.

 

 

결국 칸타는 아무래도 마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아빠가 말리는 데도 기필코 돌아가겠다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칸타가 이렇게 나오면 힘을 당할 수가 없어 그만 돌아가야 한다.이제부터는 잘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나는 칸타야 내 소관을 떠났으므로 아마르가 어찌 나올까 그게 궁금하여 초조했다.아직도 삼매경에 든 아마르의 등 뒤로 할방님이 칸타에게 이끌려 멀어져가는 모습이 보였다.칸타는 "내가 가스불 안 끄고 나왔다구요.아시겠어요? 얼른 안 돌아가면 큰 일이..." 하며 바락바락 우기는 사람 같았다.

 

말들은 외승 나왔다가도 돌아오는 길에 가스불이나 수돗불 안 잠갔다는 듯이 떼를 쓰며 설치곤 한다.간혹 등에 태운 사람은 버린 채 혼자 부리나케 가버리기도. 그래서인가 주변 아줌마들이 외출했다가 가스불 걱정한다는 얘길 들으면 말 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아줌마는 기억이 깜빡거리지만 말은 기억력도 좋은데 왜 그리 집에 간다고 보채는 지 원.

 

칸타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 아마르도 눈치를 챘다.

 

(눈치챈 아마르의 표정 사진은 아래로 죽 내려가면 만나게 됩니다.)

 

엄마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더니 처음엔 어? 왜 돌아가지?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하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정말로 엄마가 다시 돌아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왕창 당혹스런 표정이 얼굴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의 표정을 통역하자면 "이런 젠장! 미쳐버리겠네!" 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르도 돌아가야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그런데 그날따라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운도 없고 현기증도 있었다.나는 손주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진 할머니 꼴이 됐다.

 

내 걸음도 서두르고 줄을 잡은 손에 힘을 좀 주었으면 아마르와 함께 돌아갔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어느 순간 줄을 놓쳐버렸다.그러자 아마르가 뛰기 시작했다.

 

녀석이 뛴 방향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아니라 가로질러가는 지름길이었다.아마르는 몇 걸음 뛰다가 물이 채 마르지 않은 논뻘에 발목이 푸욱 빠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고 어찌 되려나 머리가 곤두섰다.혹시 아마르가 당황하여 날뛸까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천천히 가던 걸음을 걷는 일이 나의 최선이었다.

 

(아마르 놀란 표정 )발목이 빠진 아마르는 날뛰지 않았고 대신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보았다.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할머니 나 빠졌어.어쩌지?"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아마르의 눈빛에서 전하는 메시지를 읽으며 계속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한 오초 정도 지났을까.아마르는 알았다는 듯이 앞을 보더니 힘차게 뛰어서 뻘을 빠져나와 한달음에 승마장으로 향했다.

 

아마르는 할머니에게서 "아마르는 괜찮아.위험에 빠진 게 아니야.할머니도 거기로 가는 중이야."하는 메시지를 읽고 안심했다.그러자 움직여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 느린걸음으로 마방까지 돌아가기는 꽤 긴 시간이었다.걸어가면서 모처럼의 풀뜯기기가 해프닝으로 끝난 상황에 우스워하며 무엇보다 아마르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의 의견을 살폈고 존중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나와 아마르는 연결되어 있다.

 

(가스불 끄러 간다는 칸타)??? 칸타는 그 후로 아빠를 태우고 할머니를 태운 아마르와 외승을 나왔다가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었다.그때의 표정은 "내가 깜빡 잊고 약을 안 먹고 나왔나봐 증상이 또... 어떡해!" 뭐 이쯤 되보였다. 다음 날에 칸타는 아빠에게 단둘이만 외승나가자는 요청을 받았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행진하는 군인처럼 씩씩하게 앞발을 번쩍번쩍 들고 자발적으로 외승길에 올랐다.그 다음 번에 아마르,엘도라도와 함께 외승길에 올랐을 때 여장부처럼 선두에 서서 수말 둘을 이끌었다.

 

할방님의 칸타심리 해석은 - 내가 볼 땐 꿈보다 해몽이지만 - 아마르랑 같이 나왔을 때 자기가 보여준 행동이 아들 보기에 너무도 부끄러운 승용마 처신이라고 반성하고 굳은 결심으로 환골탈퇴 한 거라나? 원톱시스템으로 날아가던 지나가던 철새들이 보고서 " 쟤 며칠 전 그 말 아냐?" "그날은 정신 나갔던 것처럼 보이던데 오늘은 정신이 돌아왔나봐 아무튼..."

 

 

*시시콜콜 할망 요즘

 

지난 저녁에 퇴근하던 - 회사가 아니고 승마장 - 할방님이 비닐봉지 한꾸러미를 들고왔네요.안에는 흙묻은 투박한 고구마들이 있더군요.한눈에 마트에 파는 매끈한 고구마는 아니었죠.웬거냐고 묻자 원장 사모님이 우리 거라고 캐서 주셨다는 답변이 돌아왔네요.우리 고구마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구마 심은 기억은 없는데.할방님은 우리가 심은 게 맞기는 맞다네요.심은 후 즉시 고구마 존재를 잊었을 뿐.다음 날 두꺼운 냄비에 쪄낸 고구마 맛은 명품이었지요.기르느라 돌봐준 것도 없이 이리도 맛난 고구마를 먹다니 횡재한 기분이더군요.옛날 옷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발견한 기분? 살다 보면 가끔은 잊고 살았는데 문득 튀어나와 기쁨을 주는 일이 있지요.너무 집착하고 살 일은 아니라고 고구마를 쩝쩝 먹으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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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을 얻은 아마르는 시월의 축복이 내리비추자 경계를 허물고 나아갔다.> 시월의 아이콘 늙은 호박 꾸욱 누르면 가을의 창이 두둥 나타납니다.함께 거니시렵니까?

 

앗! 쟤네들은 마티와 레이가 아닌가! 어느 날 보니 2인조 작은 말이 그곳에 있었다.녀석들은 어엿한 클럽의 구성원으로서 최근 직무를 부여받은 모양이다.정문 바로 옆에 지은 패덕으로 출근하여 방문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사하고 놀아주는 일을 하고서 해가 저물면 퇴근한다.하지만 직무를 책임지기에는 어딘가 어리바리해보이고 어줍기 짝이없다.그러는 모습 자체가 귀여워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티 & 레이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녀요

 

달력을 보니 시월도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이 적어서 하루하루가 아깝기만 하다.올여름은 얼마나 길었던가.푹푹 찌는 무더위에 오래도록 시달리며 견뎌야 했기에 가을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절한 가슴으로 가을공기를 마셔본다.

 

일 년에 반은 오월이고 반은 시월이었으면 좋겠다.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점점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계절은 혹한기와 혹서기의 이분법으로 명백하게 갈라서서 나아간다.승마를 한 이래로 계절은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환경이 변해가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승용마의 생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깥이 너무도 춥거나 더우므로 승용마들이 실내에서만 지내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지내는 클럽에서도 틈나는 대로 방목을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말을 내놓지 못하는 날이 많다.일 년 중에 말이 밖에서 자연과 접할 수 있는 날이 꼭 우리가 겪는 달력의 빨간 날 공휴일 정도로 귀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말들의 삶은 영화속에서 여러 시대에 등장한다.전쟁시기를 살았던 말이 가장 불행했던 것 같고 ,근대에 와서 물류유통과 교통수단의 소임을 해야 할 때도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안전하고 편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하지만 자연으로부터 거의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의 신세도 그리 좋다고만 볼 수는 없어 보인다.

 

나보다도 남편이 자연과 격리되어 생활하는 아이들 걱정을 많이 한 것 같다. 혹시나 하고서 기승운동 하다가 바깥으로 말의 발길을 이끌었을 때 정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에 우려도 됐다.이러다간 정말이지 애완동물처럼 좁은 영역 안에서만 안주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실내와 바깥마장을 오가며 운동하는 생활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긴장도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 안일한 패턴 안에서 머무르는 생활은 나른하게 늘어진 모습으로 운동하게 만들었다.그런 말을 추스리느라 말 위에 있는 사람도 힘들다.시월이 되면서 남편은 틈틈이 아이들 풀도 뜯기고 외승도 다닌다.

 

클럽에서 논으로 넘어가려면 낙타등처럼 생긴 둔덕을 넘어가야 한다.칸타와 엘도는 자신감이 넘쳐 와락 넘어가다가 걸려넘어지는 포즈를 취했고 아마르는 한참을 살펴보고 연구한 끝에 신중한 동작으로 넘어갔다.아마르가 참 침착하다는 것을 느꼈다.생활하던 공간을 떠나 자연의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가 말똥 무더기와 쓰레기소각장 사이에 난 좁은 길목이어서 낭만은 하나도 없지만 가장 세속적인 가운데서 마법이 이루어지곤 한다.신데렐라의 화려한 마차도 호박이었다.

 

마방에 있을 때와 풀밭에 나온 아마르 사이에는 머나먼 거리가 있다.마방의 아마르가 꽃병에 곱게 꽂아서 매일 물갈아주며 관리하는 꽃이어서 살아는 있지만 아주 조금씩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상태라면 풀밭에선 반대로 점점 싱싱해진다.

 

아마르가 뜯는 풀은 그냥 풀이 아니다.벼다.

 

구월부터 추수를 하자 익은 벼들은 밑동이 잘려나갔다.그러고도 태양빛의 따사로움이 상처난 자리에 닿자 푸르른 줄기가 솟아올랐다.

 

땅이 꾸덕꾸덕하게 변해가는 논에는 누런빛과 풀빛이 섞여있다.죽음과 삶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현장으로 이보다 생생한 예가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논은 사실 비어있지 않고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다.사람이 없을 때는 새떼나 노루가 머물기도 한다.새로 돋아난 벼줄기와 똑같은 색의 청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말발굽에 밟힐라 멀리 달아나거라 발로 휘휘 쫒아내본다.

 

아마르가 몇 걸음을 떼자 커피콩 만한 벌레들이 화다닥 튀어오르더니 뿔뿔히 흩어진다.재난영화에서 흔히 보던 그 장면이다.외계에서 흘러든 거대한 생명체 괴물이 도시에 나타나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마구 돌아다니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 뒤엉켜 도망치기 바쁘다.바로 그 장면이 아마르 괴물과 벌레 시민들 버전으로 논에서 연출된 것이다.

 

벌레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를 생각하니 순간 가엾은 마음이 웃음을 갈무리해준다. 꼬리의 흔들림...

 

가을이 되자 말의 꼬리는 한순간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들판에 나온 말꼬리는 흔들다 못해 어느 순간 바람이 되어 버렸다.

 

말꼬리는 바람으로 녹아들어버렸고...

 

꼬리가 바람이 되어버리자 서서히 마법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그 시간에 들면 내면의 그림자가 존재를 나타낸다.

 

어떤 존재에게나 의식의 가장 밑바닥 심연에는 모든 색이 녹아버린 어두움이 존재하는데 어두움은 늘 봉인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지만 마법의 시간에는 존재를 드러낸다.해가 저물녘에 만나는 존재의 그림자에서 내면의 어두움이란 이미지를 대면하는 것 같다.

 

산등성이가 되어버린 아마르의 잔등.평소 나를 태우던 아마르의 잔등이 뒷산과 너무 닮았다.몽골의 산은 몽골의 말 등선과 닮았던데 신기한 일이다.

 

바람과 산이 되고 풀이 되고 들판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빛이 되어버린 아마르는 이 순간 자유롭다.

 

클럽에서 살아가는 승용마라는 존재의 경계를 넘어서 엎드린 아마르에게 논은 경작지라는 경계를 허물고 초원이 되어주었다.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하늘을 보면서 내 안에서 나의 일부로 살아가는 속박을 떠올려 보았다.아마르와 함께 흙을 밟고 서서 마른풀내음을 맡으니 좋다.

 

계절의 경계를 뛰어넘은 민들레도 보인다.

 

곧 찬서리가 하얗게 내릴 텐데 싱싱하게 피어난 풀에게서도 경계를 넘어선 의지와 힘을 엿본다.

 

마사와 외부를 차단하는 경계선 쇠사슬이다.

 

경계선은 어디에나 있다.가장 강한 경계선은 내면에 있을 것이다.내면의 경계를 넘어 더 환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라고 시월의 따사로운 기운이 어루만지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아마르 옆방 친구가 하염없이 시월의 들판을 바라본다.

 

 

 

 

*시시콜콜 할망 요즘~

 

집에 있던 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말이 나오길래 뭔가 봤더니 <레이싱 스트라이프>인가 하는 영화였어요.경주마가 되고픈 얼룩말 얘긴데 황당하기도 하죠.영화에서는 말들이 여럿 등장해서 사람처럼 대사도 하고 줄거리를 이끌어가더군요.한데 말하는 말들 개개가 흔히 보고 내가 알고지내는 말과 너무나 닮아서 꼭 그 친구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 같아 신기하더라구요.아무튼 지금 생각하니 주인공 얼룩말도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경계를 허무는데 성공했고 그 일로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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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사랑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

 

   고려원 시문고 008 <흰바람벽이 있어>,1989년,p52

 

백석 시인은 1912년 출생했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며 이후 현대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이다.

 

위의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단지 당나귀가 시에 등장한다는 것 만으로 유심히 읽어내려갔다.온세상이 설경으로 변해버린 시의 배경과 당나귀울음이 빚어내는 시각과 청각의 울림이 마음에 파도치듯 지나가는 동안 이 시가 마냥 좋아졌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가 워낙 동떨어져 있어서 시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시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나만의 심상으로 새롭게 되살아났다.

 

위대한 시인은 갔어도 그가 남긴 훌륭한 시는 살아있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살아가는 모양이다.세상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나타샤가 있으므로.

 

당나귀는 사람도 태우고 짐도 실어나르기에 가장 세속적이지만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한다.성서에도 나귀는 영적 감수성*(아래 참고)을 지닌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그렇기에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으로서 이미지가 나타나는 일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실제 당나귀도 아주 매력적인 동물이다.당나귀의 쉰 듯한 목소리가 응앙응앙 들릴 때 속세의 더러움이나 불길한 기운이 물러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의 시를 다시 볼 때마다 좋은 느낌이 마음 속에서 변주를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사랑할 시임에 틀림없다.설경이 배경이지만 이 가을엔 온통 붉은 낙엽천지를 배경으로 상상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바람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암송하여 말타고 오솔길을 걸으며 소리내어 읊어보는 것이다.음~ 낭만 제대로다.

 

 

* 참고: <그리스도 정신 안에서 본 재활승마 실천 고찰>  - 강안나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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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망아지가 태어났을 때 새 생명을 부르는 이름은 너무도 쉽게 정해졌다.친구 라라가 어미 칸타에게서 난 아들이니 '칸돌'인데 부르기 쉽고 친근감 있게 '깐돌'이라 부르면 된다 해서 그 순간부터 그대로 쭈욱 '깐돌'이라 부르게 됐다.만일 칸타가 딸을 낳았으면 '깐순'이가 되었을 것이다.라라가 깐돌이라는 이름을 입술에서 뱉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원래 망아지의 이름이 깐돌이었고 저 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이 세상으로 건너오는 입구여서 그곳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존재의 이름을 라라가 대신 알려준 것만 같았다.

 

깐돌이는 망아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장난끼로 똘똘 뭉쳐서 눈알을 데굴데굴하고 혓바닥은 옆으로 낼름 빼물고 다니는 모습이 영락없는 까부는 아이였던 것이다.깐돌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이름을 주고 싶었다.두 살이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까불고 장난치는 모습은 여전해서 도저히 깐돌이 말고 다른 이름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깐돌이가 세 살이 되고,네 살이 넘어갈 때도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깐돌이란 이름이 다른 이름이 오는 것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는 듯했다.우리 부부가 틈만 나면 깐돌이의 새 이름을 쥐어짜도 나오지 않았다.궁여지책으로 '깐'이 붙으면 더 까불 것만 같고 그러다 다치기나 할 것 같고 승용마의 본분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깐'을 빼고 '돌이'라고만 부른지도 오래 되었다.그러다보니 편하기도 해서 돌이란 이름은 그대로 굳어져서 한평생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돌이는 다섯 살이 될 무렵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몸도 어른말의 골격에서 비롯되는 자태를 갖추었고 무엇보다 얼굴에서 장난기가 증발해버렸다.오죽하면 '어덜트 키드'라고도 했을까.장안을 하느라 가만히 세워두어도 나대지도 않고 의젓,차분하기만 하니 도대체 우리가 아는 돌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서운할 지경이었다.까불던 아이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말이 섰다.세상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처음에 익숙하지 않던 돌이 모습에 차차 적응이 되고 보니 옛날 돌이는 지금 돌이의 모습으로 서기 위하여 잠시 입었던 옷이었고 때가 되어 낡은 옷을 벗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여름 밖에서는 폭염에 달구어지는 날씨였는데 아랑곳없이 방에 틀어박혀 출판원고와 씨름하던 나는 틈틈이 시집을 읽었더랬다.그 옛날부터 좋아하던 시인인 류시화의 새로운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다.시인이 15년 만에 낸 시집이라 시어 하나하나가 가슴속에 깃든 현악기를 퉁기는 것 같았다.틈나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오는 시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시어 하나가 툭 던져졌다.나를 데려가세요 라는 듯이.그 시어는 '아마르'였다.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옛 수첩에는 아직>이라는 시가 실렸는데 '아마르'는 거기에서 나와 나에게 전달되었다.그 순간의 기분은 저 우주에서 누군가 '이제 그 말에게 새 이름을 줄 때가 되었어'하고는 시인의 입으로 뱉어져 나의 가슴에 꽂힌 방식으로 온 것같았다.나는 애마의 이름을 받았다.

 

'아마르'는 시인이 밟았던 땅의 현지 언어로 '영원'이라는 말이라고 한다.왜 '영원'이라는 단어가 나의 영혼을 흔들었는가?

다섯 살이 된 돌이를 타면서부터 녀석의 잔등에서 어떤 영속성을 느꼈기 때문이다.어느 순간부터 나를 온전히 제 등짝에 받아주는 말에게서 제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고 있다는 편안함이 밀려왔다.그 편안함 속에서 나를 태운 말 움직임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일일이 다 느껴볼 수 있었는데 그 느낌과 기분은 익숙한 것이었다.오래 전에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하던 애마가 태워줄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그러자 가슴에서 감동이 밀려들었다.애마는 떠나고 나는 남아서 슬픔에 잠겼었지만 함께 하던 그때에 나누었던 사랑은 시간의 유한함을 넘어서 다시 또다른 유한함 안으로 찾아들어 이어지는구나.

 

돌이의 등에서 그 옛날 바람이와 나누었던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세월은 돌고돌아 소중했던 것들을 영원히 이어준다고 깨닫게 되었다. 이 생은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시간이 아닌가.이러한 내면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그 이름 '아마르'가 나에게 왔다.

 

'아마르'와 나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에 영원을 타고 흐르는 소중한 것을 이어가고자 한다.

'돌이'가 '아마르'가 된 사연을 늘어놓다보니 장황했다.본디 소중한 것은 언어로 나열해서 표현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덧붙이는 말

 

# 이제부터는 자판으로 '깐돌이'치다가 'ㄲ'이 삑사리 나서 '간돌이'가 되는 통에 고치느라 고생할 일이 없겠죠? 하하~

 

# 지금부터 '깐돌이' 혹은 '돌이'라 부르시는 분 벌금 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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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 놀고 싶어요 잉잉~

 

나비넥타이가 어울릴 것 같은 꼬마신사 마티와

 

예쁜 여자아이 같지만 사실 남자아이인 레이는 바깥 세상이 궁금하다.

 

아이들의 바깥세상이라야 승마클럽이 다다.

 

아이들 마방은 널찍하고 쾌적하지만 아이들인지라 놀이터에서 놀아야 한다. 레이와 마티의 놀이터는 어디인가?

 

우리의 놀이터는 어디야?

 

레이의 마방굴레에 로프를 매서 붙들고 나가면 녀석이 앞장서서 종종걸음으로 달려나간다.그러면 마티가 자동으로 따라나온다.얼마나 온순하게 나오는지 큰말이나 덩치 큰 개처럼 힘자랑하지 않아 손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성격도 순해서 놀라서 튀거나 갑자기 뛰거나 하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다.이 아이들은 작은 말의 탈을 뒤집어쓴 양이 틀림없다.

 

레이와 마티를 보다가 칸타와 돌이를 보면 눈 씻고 봐도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뇌파의 수치가 얼마였든지 수치가 급강하해서 낮아진다.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긴장이 완화되며 긍정적 감정이 찾아와 웃음을 짓고 기분이 좋아진다.내가 겪은 증상과 다른 사람들을 수일간 관찰하니 그랬다.

 

특히 아이들이 보았을 때 큰말은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두려움도 느끼는데 아이들 키보다 작은 미니어처에 대해서는 친근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예쁜 여자어린이 둘이서 부모님과 함께 미니어처를 만나 노는 모습을 잠깐 보았다.소녀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보는 나조차 유쾌했다.

 

마티와 레이의 전용놀이터 출입문.

 

레이와 마티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 친밀함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들과 잘 놀아줬다.너무 들이대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채 놀아주었다.

 

말과 사람이 사교하는 모습을 보니 말은 꼭 타야만 즐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고 함께 노는 즐거움도 선사하는 존재구나 싶어진다.

 

지나가던 철새도 말과 사람이 어울려 노는 정겨운 풍경을 보고가는 것 같다.

 

마티와 레이가 풀밭에 있으니 더욱 활기차고 생기있어 보인다.

 

레이와 마티의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개천절에 뚝딱뚝딱 공사에 들어갔다.마침 공휴일이라 장정도 많고 회원도 대부분 있었다.그중엔 건설 전문가도 계셨고 ,엄마도 여럿 계셨다.또 힘쓰는 일에 빠지지 않는 일꾼 등 모두가 한마음으로 시작한 공사는 다들 한마디씩 하느라 요란 시끌벅적했다.그 과정에서 미니어처 망아지에게 맞는 공정인지 확인절차가 필요했다.

 

레이와 마티는 울타리나 출입문을 그렇게 하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몸소 시범을 보여서 다들 한바탕 웃다가 드디어 맞춤 울타리와 출입문도 완성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막아서 놀이터를 만든 것이다.말하자면 차없는 거리 대학로처럼 용도변경을 한거다.가운뎃길 양옆으로는 화단이 있고 자연스럽게 풀이 자라고 있어 그곳을 거니는 레이와 마티가 동화속 어느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말은 풀밭에 있어야 가장 말답다.

 

아이들 놀이터 만드는 통에 사람들의 통행이 좀 번거로워졌지만 예쁘고 작은 생명을 보다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빛났던 하루였다.

 

풀밭에서 무심하게 풀뜯는 걸어다니는 말 인형을 보면서 세상사 걱정근심이 봄눈 녹듯 사라지니 그 순간엔 머릿속도 개운하고 마음도 훨훨 가볍다.

 

레이의 뒷태.어쩜 엉덩이에 동그란 무늬가 있는 것인지 ㅋㅋ

 

망아지가 하나라면 쓸쓸해보이고 어미의 부재가 안쓰럽게도 느껴질 텐데 둘이라서 안정적이다.

 

마방에 돌아갈 시간이다.

 

실 레이가 가면 바늘 마티는 무조건 따라가요~

 

방에 돌아오니 또 당근도 주네

 

우리 돌이도 앙증맞게 예쁠 때가 있었지.

 

해는 들판 너머로 사라지고 오늘도 말이 있어 행복했던 하루가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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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에서 살아가는 말 무리가 있는 어느 곳이나 끙끙이 동호회가 있을 것이다.끙끙이는 말의 악벽 중 하나이지만 다른 악벽은 동호회를 꾸릴 정도까지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우리 아이들이 사는 거처에도 회원이 넷인 끙끙이동호회가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칸타와 돌이 모두 가입했다.

 

돌이는 열성회원이고 칸타는 가입과 탈퇴를 번갈아가면서 하기에 조직충성도가 매우 낮은 불량회원이다.

 

한강 끙긍이동호회 회장님이신 장군이다.장군이는 이빨을 걸지 못하도록 머리 내미는 공간을 막아버리자 밥그릇을 물고서 끙끙이를 했다.하루 종일 얼마나 심취했는지 바라보면 내가 아는 장군이는 온데간데 없고 넋이 나가버린 좀비가 무의미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그 심취한 경지에서 장군이가 회장감으로 충분했다.돌이는 행위를 할 때는 세게 하지만 금세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일을 보곤 했다.(건초 뒤적질 같은 것)

 

클럽에 조이라는 암말도 열성회원인데 역시 밥그릇을 물고 하는데 밥을 먹는 와중에도 반찬 집어먹듯 끙끙이를 해대니 중증이다.(사진은 3년 전 칸타)

 

그러던 어느 날 동호회에 날벼락이 찾아왔다.모든 회원에게 끙끙이방지끈이 채워진 것이다.이전엔 칸타와 돌이만 금속으로 된(윗 사진)목걸이를 찼었다.새로운 끙끙이방지끈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폼이 났는데 칸타,돌이,회장님이 착용했고 조이는 돌이가 쓰던 금속목걸이를 했다.그랬더니 동호회활동이 위축되다가 활동은 자취를 감춘 듯 했다.회장님은 하룻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고,조이도 멀쩡한 말이 되었다.우리 아이들도 뭘 하려고 하면 딱딱한 것이 목울대 근처를 찌르니 놀라서 좀 삼가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나는 '됐구나 됐어! 이거야말로 인간의지의 승리구 말구! 푸하하하 - '하며 쾌재를 불렀다.그 후론 끙끙이조직이 일망타진 와해됐다며 좋아라 하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말과 함께 살다보니 촉이 예민해진 나의 레이다에 자꾸 조짐이 걸려들었다.아무래도 조직이 와해되자 지하로 잠입한 극렬세력 중에서 혁명군이 태동한 것 같았다.비밀요원에게 임무를 주어 사태를 파악하니 (사실은 관리인이나 코치가 자발적으로 신고함)혁명군의 핵심은 우리 돌이였다.

 

돌이는 처음 제 목에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자 "이까짓게 다 뭐야!' 하고 보란듯이 우렁찬 베이스로 끄응~ 하길래 끈을 바짝 조였더니 그 행동을 중지했다.사태가 그 정도가 되자 무력화된 동호회의 주력세력은 밤마다 회합을 하고 조직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숱한 논의를 거쳤는지 모르겠다.그 결과 조직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기로 결사했고 그 핵심에 돌이가 가담하고야 말았다.

 

돌이가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끙끙이 방지대 색깔이 하필 붉음) 깃발을 높이 들고서(파리를 쫒느라 꼬랑지를 치켜듬) "동지들이여! 나를 따르라! 우리는 억압과 핍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이히히힝~ 하고 당근 달라 조름)라고 외친다.돌이가 혁명가라면 칸타는 혁명가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다.

 

요즘 돌이는 끈을 너무 졸라 귀 아래 뼈가 툭 튀어나온 부분이 까졌는데도 하고싶을 때는 언제든 끄응~ 한다.물론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런다고 내가 못할 줄 알고?'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다.오늘날 돌이가 혁명가가 되기까지는 승용마가 사람과 살기 위해 마방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생존조건이 토대가 되었다.승용마는 평균 하루 20시간 이상을 좁은 마방생활을 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40시간 이상을 마방에서 지내야 한다.말은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잘 참는 존재인지라 대부분 그 생활 안에 머무른다.그러나 일부 말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견디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악벽을 자기 안에 생성시키는 모양이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악벽이 학습에 의한 결과라기 보다는 말 내부에 존재하는 요인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우리 아이들과 아무리 오래 지낸 태풍이도 끙끙이를 배우지는 않았고 함께 지내는 다른 말들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악벽이 몹쓸 행동이지만 말 입장에서는 우리를 마방에만 가두어두었으니 이럴 밖에요 하는 항거의 몸짓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악벽마를 인간 세계에서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혁병가 쯤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짜내어 말의 끙끙이를 방지해도 또 하고야 마는 말이 있다는 현실은 문제의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존재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우리 돌이가 혁명가에서 평범한 말로 귀의할 수 있도록 넓지는 않아도 아담한 풀밭을 마련해주는 일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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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와 운동을 할 때 어느 말과 함께 운동하게 될까가 나의 관심사다.그 말이 누구냐에 따라서 운동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돌이 역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장 안으로 들어갈 때 누가 나와있나 꽤 유심히 살핀다.나는 그러는 돌이 표정을 살핀다.

 

돌이의 무료한 일상 중에 오아시스처럼 마장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신선한 활력소가 된다.

 

칸타보다도 돌이를 더욱 꾸준히 타던 중에 돌이가 뜨거운 심장을 지닌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 일이 벌어졌다.이 글은 5세 수말 돌이의 심장에 관한 보고서라고 명명해도 되리라.

 

지난 여름 한가한 평일 낮시간에 우연히 코치가 암말 안개 운동시키느라 타는 동안 함께 운동하게 되었다.운동을 시작하자 돌이의 컨디션이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느낌에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돌이는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젊은 수말 그자체였다.날이 더워서 구보를 많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돌이는 여차하면 핑계를 대고 스스로 구보 발진을 하기도 했다.이를테면 내가 숨을 크게 쉬었는데 "응 구보가라고 사인준거지?" 하고서 뛰고 자세를 고치느라 종아리를 돌이 배에 갖다댔더니 "응 구보가라고? 알았어 좋아!" 이러면서 또 뛰었다.속으로 '얘가 왜 이러나? 이제 다섯 살도 되었으니 철들어서 운동을 열심히 하려는 게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돌이가 안개와 함께 운동할 때면 피가 끓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말 안개는 클럽말인데 재작년인가 돌이 옆방에서 한두달 지내다가 클럽 마방으로 옮겨가 평소에는 운동할 때나 어쩌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안개는 아담하고 귀염성이 있어서 이모나 이모할머니들이 모여서 애기할 때 손주며느리감으로 손꼽는 암말이었다.돌이도 보는 눈이 있는지 유독 안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가끔 방목하러 내보낼 때 할머니가 방심하면 이때다 하고 클럽마방으로 튄 일이 종종 있었는데 안개를 보러 간 건지도 모른다.

돌이가 5세가 되기 전에는 암말보다는 수말에 더 관심이 많았다.그때는 장난꾸러기의 화신이었는데 암말들은 거의 장난에 관한 유전자는 지니지 않은 듯 놀 줄을 몰라서 심심하기만 했다.수말은 장난치자고 다가갔다가 시비붙는 일로 끝나기도 다반사였지만 수말은 놀이상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친구를 삼고 싶어했던 거다.

욘석이 5세가 되더니 여자친구를 밝힌단 말이지 싶어서 웃음이 킥킥 나오기도 했다.아무렴 할머니는 손주 편이니 녀석을 도와주기로 했다.아무 일 없다가도 혹시 안개가 운동하러 나오는 낌새가 보이면 얼른 돌이도 안장매서 나갈 마음의 태세를 갖췄지만 내가 하루종일 승마장에서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안개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한참 운동하고 있는데 반가운 안개가 마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괜히 기쁜 마음이 들어서 안개가 회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난 돌이를 탄 채 안개에게 다가갔다.그랬더니 돌이가 콧등을 안개 콧등에 갖다대고서 언제까지라도 그러겠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안개도 돌이가 싫었으면 "아이 싫어!" 하고 신경질을 팽 하고 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다만 돌이 등에서 바라본 안개 표정은 '이런 곳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하는 난처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었다.말도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인사의 상황을 구별하는 모양이다.우리 돌이 상태는 어떤가 살펴보았다.옆으로 보니 돌이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돌이는 심장이 크게 뛰면 콧구멍에 나타난다.놀람,공포,기쁨이 모두 콧구멍 벌렁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다리로 돌이 양옆구리를 느껴보니 복부도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의 생각은 '돌이가 심장을 가졌다'라는 한문장 아이콘으로 떠올랐다.흔히 사랑에 빠지면 내 가슴에 심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사랑의 대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한다.무수한 유행가의 사랑노래에서 심장과 가슴이 뛰는 일을 가사에 담고 있다. 나는 어떤가.이십 대를 지나오자 내게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살았는데 말을 만나면서 심장이 아직도 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 후로 지금껏 말을 만나러 가면 어김없이 심장이 약한 정도로 뛰는 상태인 두근거림을 경험한다.그러다 요근래 말 손주녀석의 심장뛰는 몸에 올라앉아 운동하니 참 신기하게도 내몸이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은 상태처럼 느껴진다.

 

운동이 끝나고 돌이를 목욕시켜서 몸을 말리는 칸으로 가니 이미 목욕을 마친 안개가 있었다.멋진 할머니의 본분에 충실한 나는 둘이서 오붓한 데이트를 하라고 건초를 한아름 가져다 둘에게 주었다.약 1시간 정도는 청춘남녀가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나중에 돌이를 마방으로 데려가려고 그 자리를 떠나려니 돌이가 먼저 또다시 콧등뽀뽀를 안개에게 살짝 하고서 "다음에 만나'하는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났다.

 

돌이 여자친구 중에는 수아도 있다.수아랑은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5세 생일에 결혼식도 올렸다.(궁금한 분은 5세 생일 글을 찾아보면 된다)그런데 돌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수아랑 운동할 때는 평소처럼 느리적 슬리퍼 끌고서 동네 편의점 가는 분위기로 일관했고 도중에 수아가 다가와 먼저 콧등뽀뽀를 했지만 5초도 안되어 돌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전에 위너스라는 클럽에 온지 얼마 안되는 수말과 함께 운동한 일이 있다.위너스는 안개 맞은편 마방에서 사는데 돌이가 무슨 일인지 몇 번 무작정 위너스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린 일이 있다.그 전에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을 보면 단지 안개 맞은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시샘을 느껴 미리 딴마음 먹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위너스랑 운동을 시작하니 활발했다.주로 안쪽으로 돌려고 하면서 계속 위너스에게 신경쓴다는 것이 느껴졌다.아무래도 저 녀석을 혼쭐내줘야 하는데 거슬린단 말야 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나야 돌이가 활발하게 움직이니 그저 재미있게 운동했을 뿐이고 나중에 목욕하고 말리고 헤어질 때 돌이와 위너스는 신사적인 악수를 했다.이말은 통역을 한 거고 다시 원어로 얘기하자면 돌이는 위너스에게 콧등인사를 하며 상대에게 아무런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어쩌다가는 텅빈 마장에서 나와있는 말도 하나 없고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 혼자 돌이와 운동을 할 때가 있다.그럴 때 돌이 상태는 흥이 하나도 안 나서 발바닥에 본드칠을 하고 겨우 걸음이 떨어지는 말처럼 나아가는데 이럴 때 심장은 어디로 잠시 출장간 것처럼 보인다.그래도 할머니를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니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돌이가 심장이 뛰는 것을 앞으로도 오래 느껴보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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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개월 된 미니어처 망아지가 왔다.다 크더라도 겨우 10센티 정도 키가 자랄 뿐이란다.살아있는 인형처럼 귀여운 자태에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다.

 

매료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말들도 사람 못지 않았다.망아지 마방 앞에 온 말마다 놀라고 신기해서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칸타는 보더니 놀라서 순간 숨을 멈추고 한동안 동상이 되어버렸다.그러는 동안 표정을 보니 '아니 이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어리기도 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그리곤 망아지와 콧등을 맞대고 다정한 인사를 나눴다.

 

돌이는 보더니 낯선 물체를 발견한 듯이 '허걱'놀라며 몸을 뒤로 움찔했다.좀 뻣뻣하게 긴장도 했는데 에상치못한 존재에 할말을 잃은 듯 보였다.

 

돌이 망아지 시절을 떠올리면 나이많은 말들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우연히 옆방에 망아지가 들어와 하루종일 들여다보게 된 말 밍크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망아지를 바라보았다.그러더니 수삼일 지나자 얼굴엔 무료함이 가시고 화색이 돌았다.망아지가 나이든 말에게 어떤 기운을 불어넣은 게 틀림없다.

 

흰색이 많은 망아지 이름은 '레이'고,브라운색 망아지는 '마티'다.짱구 이마,솜털처럼 폴폴 날리는 갈기와 꼬리,조개 만한 발굽,볼록한 배가 망아지의 공통분모인가보다.다만 성격은 아주 다르다.레이는 호기심천국에다가 사람을 무조건 따른다.마티는 경게심을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그래도 둘 다 얼굴 만지는 일을 완전히 허락해서 얼굴 만져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티와 레이는 앞으로 승마장에 찾아오는 어린이의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지인들이 와서 망아지 구경을 하다가 도저히 구경만 할 수 없어 슬그머니 마방으로 들어가더니 안고 쓰다듬고 난리가 났다.나이먹은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하니 말은 꼭 타야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갖은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머무는 병원 근처에도 이런 망아지가 있어서 바라볼 수 있다면 병이 금방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카메라를 눌러대며 접근하자 며칠 안면을 튼 사이라고 마티가 그닥 경계는 하지 않고 편안하게 바라보았다.

 

욘석들도 당근을 잘 먹는다. 첫날 마방 전체에 당근을 다 돌리고 돌아서니 아가들이 빤히 쳐다보았다."우리는 왜 안 주는 거예요?" 아차 키가 작아 안 보여서 깜빡 잊었다.좀 실망한 기색으로 천진난만한 눈을 깜박거려서 어찌나 미안하던지 내일은 꼭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도 그냥 친구라 여기고 접근하는 레이가 나에게 뭐라뭐라 얘길 잔뜩 했다.

 

아가야! 지금은 네가 뭐라 하는지 잘 못알아듣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렴.좋은 친구가 되어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란다.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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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9.1 ?⑤룄. ?앹뼇 073.jpg칸타와 돌이가 기웃거리는 곳은 갤러리석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구내매점(?)이다.이곳에서 엄마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당근을 먹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그 전에 대형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다가 도마에 놓고 썰때에 나는 타다당~ 타다당` 소리가 울리면 기대가 만땅인 표정을 하고서 군침을 삼키며 바라본다.

 

13. 9.1 ?⑤룄. ?앹뼇 074.jpg어떤 때는 그냥 서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경청하기도 한다.아이들이 잘 들어두었다가 한밤중에 마방에서 "낮에 사람들이 하는 소릴 들었는데 말이지~"하고서 전달하는 상상이 떠오른다.아무튼 말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대단히 깊은 관심을 보인다.

 

13. 9.1 ?⑤룄. ?앹뼇 077.jpg돌이는 문고리가 고장나서 고정되지 않은 문을 입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취미생활도 종종 즐긴다.(사진은 2013년으로 정정합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1.jpg한낮이라 마방에는 사람이 나뿐이고 말들은 조용하다.그 와중에 돌이만이 할머니가 뭐하나 궁금해서 얼굴을 쏙 내밀었다.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4.jpg요즘 돌이 별명이 <애늙은이> <어덜트 키드>이런 종류다.5세가 된 후로 얼굴에 그득했던 장난기는 어디로 다 가버리고 여느 말처럼 포카페이스가 표정의 기본형이다.벌써 이러면 10세 정도엔 무슨 표정을 하려고 그러나.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3.jpg

 

13. 8. 31 ??뿬由? ?꾩씠??.?⑤룄 ?뚯썝 湲곗듅 005.jpg의자와 함께 같은 포즈를 취한 깜주 양.

 

13. 9.1 ?⑤룄. ?앹뼇 007.jpg엘도라도는 표정이 환해져서 명랑,유쾌한 모드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별로 해준 것도 없고 그닥 재미있을 일도 없는데 그저 말 동료랑 함께 있고 사람이 드나들면서 이름 불러주고 쳐다봐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모양이다.

 

말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아이마다 다 다른 개성이 있어서 거기서 비롯되는 특유의 웃음거리가 있다.혼자 웃기에는 좀 아까워서 잠깐 소개해보려고 한다.

 

돌이는 참 맛나게 먹는다.칸타보다는 못하지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며 다른 말보다 2배속으로 빨리 우물거리며 먹어치운다.가끔 품질이 떨어지는 알팔파나 티모시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 입맛이 까다로운 말은 "이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기가 막혀서 원.내 꿂어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만 쩝!"이런다.하지만 돌이는 건초의 품질 따위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는다.그저 입안으로 들어가 씹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것 같다.그러다 보니 돌이가 먹는 모습은 어르신들이 보았을 때 아주 탐스럽게 먹어서 보기에 흐뭇한 모양새다.여기까지는 좋았다.먹는 일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좀 오버하는 경우가 생겼다.이 지점이 돌이만의 푼수짓이 나타나는 곳이다.마방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갈 때 돌이는 머리를 바로 옆방 밥그릇에 쑥 디밀어서 조사를 한다.다음엔 복도에 떨어진 몇 안되는 건초오라기를 다 주워먹고 차례로 지나가는 밥그릇도 다 조사를 해야만 한다.때로는 마방에서 재갈 물고 굴레 쓰고서 나오는데 그 차림새로 밥그릇 조사하는 모양새는 웃음이 터져나오게 한다.하루는 그 모양새로 옆방 브릿지 밥그릇에 머리를 쑥 밀어넣고 한참을 있으니 브릿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돌이에게 내가 콩이며 보리 삶은 것을 줄 때에 돌이가 쩌업쩌ㅓㅂ~ 하며 너무도 맛나게 먹으니 브릿지가 부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의아한 표정마저 짓는 것 같았다.브릿지는 마장마술 기능을 보유한 말이므로 나름대로 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쭉 살아왔을 것이다.그런데 옆방의 말이 너무도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으므로 쳐다보다가 혹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려나.'얘는 뭔데 이렇게 대접을 받아?이 아이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게 분명해.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신통방통한 기능을 할 줄 아는 아이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대접을 받을 수는 없지.암~'

나의 상상이기는 하지만 돌이가 기능은 커녕 여태 변변한 선생님조차 만나본 적 없는 오리지날 홈스쿨 어린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브릿지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랄 것 같다.

 

엘도라도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의젓하다.승용마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 말고는 없다.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가보면 그렇지 않은 모습일 때가 많다.가장 큰 개성은 칸타바라기이다.칸타가 마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간헐적으로 길게 구슬픈 울음을 뽑는다.누가 들어도 간절하고 애닯은 곡조이다.칸타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기뻐서 꺽임과 떨림이 많은 소리를 질러댄다.한 석 달 가까이 엘도라도가 뽑아내는 가락을 감상하다보니 그 소리가 여느 말처럼 단조롭지 않고 애간장이 끓어서 판소리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점점 받게 되었다.판소리란 인간의 희노애락이 녹아들어가고  한을 승화시킨 정서가 아닌가. 춘향이가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토해내는 '쑥대머리'도 가슴을 할퀴며 지나가기도 한다.엘도라도가 말 판소리 명창이다.궁금하다면 언제고 오셔서 감상해보시라.

말 판소리 명창 노릇 외에 엘도라도는 마방에서 부대서비스로 '알리미 서비스'도 한다.누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길게 울음을 뽑으며 환영하는데 "태풍이 들어옵니다~" "돌이 들어옵니다"이런 소리로 들린다.엘도라도가 알리미서비스를 자청한 데에는 오랜 세월 종족과 격리되어 고독하게 살아왔던 후유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 외에 엘도라도는 점잖지 못하게도 게걸스럽게 먹는다.삶은 콩이나 수박 등 물기가 줄줄 흐르는 간식을 주었을 때 사람이 후루룩쩝쩝 하고 요란하게 국수를 먹는 것처럼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모른다.온 건물에 울려퍼지는 엘도라도의 먹는 소리에 그만 내가 민망해질 정도다.그럴 때는 털털한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칸타는 우아하고 새침떠는 암말이어서 그닥 푼수짓은 하지 않을 것 같고 오히려 거리가 멀지않을까 오해하기 딱 좋다.하지만 칸타도 그런 푼수짓 하지 않으면 너무 정 떨어지지 않을까요? 항의하며 적극적으로 푼수짓 대열에 동참하려는 듯이 보유한 부분이 있다.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체면과 예의를 벗어던지고 곡물사료수레를 찾아가 허겁지겁 먹어지우는 행동이 대표적이다.고상한 공주님이 갑자기 식신으로 변해 양푼에 갖은 재료를 담아 비벼 온 얼굴에 묻히며 퍼먹는 분위기쯤 될 거라고 본다.

또 다른 푼수짓 하나는 뒹굴기 할 때 나타난다.일단 벌러덩 눕는다.그 순간 칸타는 말이 아니라 뒤집어진 거북이로 변신한다.배를 하늘로 향한 채 앞다리 둘을 하늘로 뻗쳐 위아래로 올렸다내렸다 하면서 모래에 등짝 비비는 쾌감을 즐긴다.이때 거북이 말고도 떠오르는 모습이 있는데 아이가 드러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떼쓰는 모양이다.거북이든 떼쓰는 아이든 품위유지와는 거리가 매우 먼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이 푼수짓 떠는 모습이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사람도 저마다 공개적으로 알리기 민망한 습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그런 모습은 자신과 가족 정도나 알고 있는 은밀한 부분일 터.이 은밀함으로 인하여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이 돈독해지기도 한다.말은 사적인 취향이라고 해서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는 않으니 그저 대놓고 웃다보면 가족의 일원으로서 말이란 사람에게 웃음을 많이 선사하는 존재로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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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의 돌이 (왼쪽)와 태풍이(오른쪽)

 

2012년 6월의 태풍이

 

2011년 8월 돌이(왼)와 태풍이(오)

 

2013년 9월 9일에 타지에 나갔던 태풍이가 7개월만에 돌아왔다.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태풍이가 클럽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 아이들을 운동장에 풀어놓고 트레일러에서 내리는 태풍이 환영을 대대적으로 하려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태풍이가 도착한 후였다.

운동장에 혼자 서있는 태풍이는 아직도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 듯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예전에 지냈던 곳이긴 하지만 새 건물도 들어서고 나무도 심어놔서 낯설은 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태풍모친의 말을 들으니 태풍이는 이미 마방을 한바퀴 돌며 우리 아이들과도 인사를 했다고 한다.그때의 아이들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게 됐다.

아직 해가 뜨겁기도 해서 태풍이를 실내마장으로 데려다놓고 칸타를 데리고 왔다.실내마장 출입문을 향해 걸어오는 칸타를 발견한 태풍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칸타가 실내마장 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다음에 펼쳐진 재회장면은 애틋하고 아름다웠다.태풍이와 칸타는 서로의 엉덩이에 얼굴을 기대고서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다.익숙했던 서로의 체취와 체온을 흠뻑 느끼며 그 옛날 그 느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을 것 같다.충분히 그러고나서야 둘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둘이 한방향으로 산책이라도 하듯이 반원을 그리며 나아갔다.7개월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재회의 축하순서는 당근파티였다.사람엄마 둘이서 당근을 푸짐하게 썰어서 갤러리석에 앉자 칸타와 태풍이가 다가왔다.둘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당근을 받아먹었다.평소 칸타와 돌이가 나란히 당근 받아먹을 때는 은근히 시샘하는 경쟁을 하면서 허겁지겁 받아먹는 분위기가 감도는데 태풍이와 칸타는 연인 사이라 그런지 여유롭고 평화로웠다.이 완벽한 분위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엘도라도의 애타는 절규가 건물 안에 메아리쳤다."오~ 나의 칸타 어디로 간 거니! 엘도에게 돌아와주오 어서~"

당근을 받아먹는 동안 태풍이 얼굴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첫눈에 보기에도 태풍이는 그간에 잘 지내왔음을 느끼게 했다.좀 더 오래 바라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띄었다.태풍이 얼굴에 그늘과 구김이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온데간데 없다는 사실이었다.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말의 얼굴에서 읽히는 세월의 더께가 남긴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동안스럽기조차 했다.얼핏 돌이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얼굴에 흉터자국이 많은 돌이가 더 늙은이 같다고 느껴졌다.태풍이의 회춘동안은  다 마주가 빚어낸 예술작품이다.

좋아진 모습으로 돌아온 태풍이 바라보는 일이 유쾌하고 한세상 함께 살다갈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지워주는 존재가 되어준다면 삶에서 향기가 나지 않겠나 얼굴에 미소를 거는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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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에 들자 신비롭고도 경건한 분위기가 대지를 감싼다.석양은 그냥 저물어가는 해라고 보기에는 충만하고도 고유한 빛깔이 강렬하다.

 

 

엘도라도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틈나는대로 선생님에게 주로 기초 마장마술 지도를 받으며 때로 기초 장애물도 배운다.

 

엘도라도를 처음 데려왔을 때 다 커버린 아이를 고아원에서 데려와 입양한 심정이었다.뚜껑을 열어보지 않았으므로 엘도라도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엘도라도는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마주로서 신경쓰고 손갈 데 없이 적응을 잘해주었던 거다.그 태도는 "뭐든 시켜주시면 엘도는 열심히 해요."였다.처음엔 이 태도가 워낙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온 탓에 반대급부로 여럿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이곳 생활을 무조건 수용하는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더 지내보니 여기에 더하여 타고난 낙천적 기질도 한몫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엘도가 이곳에 오기 전 혼자 황폐한 공간을 지키며 살았는데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한 걸 보면 내면의 어떤 강인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옛 거처에 찾아갔을 때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텅비어 을씨년스러운 폐양계사업장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던 엘도는 한때 화려하고 사람으로 들끓었으나 쇠락하여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성에 어쩌다 혼자 남겨진 말처럼 보였다.

 

엘도의 마방 앞으로는 개 두어 마리가 그나마 벗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었다.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어도 찾아와주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운 제 종족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그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엘도가 처음엔 어떤 면에서 좀 신기했다. 예민함이나 모난 데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여태 어린말,예민한 말만 길러서 엘도가 더 둥글둥글해보이는 건가 싶기도 했다.어쟀거나 참으로 기특했다.훈련도 잘받고 한편으론 여러 기승자를 태우는 상황 역시 흔쾌히 잘 받아들였다.

 

자기에게 찾아오는 상황이 무엇이었든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에서 낙천주의자 기질이 드러났다.내가 청하지 않았어도 찾아오는 고운 손님,미운 손님 가리지 않고 한결같은 태도로 맞아들이는 맘씨좋은 주인장의 모습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엘도는 만학도이기도 하다.나이가 11살이 되어서야 기본 부조도 정식으로 배우고 기초장애물도 넘어보고 하니 그렇다.<승마교과서>보누스 출,제인 홀더니스 로댐 지음.에 보니 8살이 넘는 말을 노년기(Aged)라 용어풀이를 해놓았다.동의하기에는 좀 힘들지만 성숙의 정점을 찍고 지나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엘도의 나이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해보다는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엘도가 훈련받는 것을 지켜보니 천지분간이 잘 안되고 뜨거운 혈기에 휘둘리는 어린말보다 차분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그 모습을 보니 이제 5세가 넘어선 돌이에 대해서는 급하게 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나 역시 중년의 삶에 접어들어서 내 정체성이 중년에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요즘 엘도라도를 보면서 중년이 되어버린 내가 인생에서 뭘 이루었나 하는 생각도 멀리 내다버리는 심정이 된다.중년은 몸의 노화가 시작되는 생리적 시간표라는 의미보다는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창을 내 안에 마련한 거라고 바라보게 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창을 만드느라 청춘의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그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지금부터가 더 흥미진진한 삶이 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쭈욱 살다가 아름다운 영상처럼 황혼기를 맞이하리라.엘도라도,칸타빌레,태풍이 10살이 넘은 말 아이들과 함께 보낼 앞으로의 세월이 기대된다.말이든 사람이든 중년을 찍고 살아내는 일은 무르익어가는 이치와 상통하니 말과 사람이 서로의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아주는 일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석양의 엘도라도...차암...멋지다!

 

 

 

 

 

* 위 사진들의 자막에 찍힌 년도는 카메라 설정오류입니다.2013년이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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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가 할머니는 뭐하는 건가 본다.

 

칸타도 마찬가지로 본다.내가 시야에 보이면 더욱 안심하고 편안하게 논다.

 

여름내내 아이들은 팬스 너머로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더 뜯어먹는 재미에 목을 있는 힘껏 길게 뻗었다.목과 등 근육 늘리기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돌이가 5세가 되고나서 어느 날 문득 칸타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몸통도 약간 더 굵어보인다.둘 중에 하나를 기승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한다.칸타를 타고 있는데 "오늘 칸타 안 타요?"묻는 식이다.반대의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텃밭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봄에 심었던 것들이 소임을 다했으므로 뽑아내고 대신 다른 것들을 심었다.우리는 상반기 농사성적이 낙제 수준이라 자진 낙오 하고서 늦여름부터는 밭을 가꾸지 않는다.농사를 하려면 자질과 근면함이 따라야하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부부는 영 아니다.자체 평가는 이렇다."우리는 채집스타일이지 경작스타일이 아니다."

 

뒷편으로 보이는 새 건물은 미니마장이다.새 건물로 인하여 승마장 전체가 더 안정감 있고 아늑해 보인다.겨울에는 바람도 막아줄 것이다.

 

주변 들판의 색이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옮겨가는 중이다.인근 논에선 벌써 벼베기를 마친 곳도 있다 한다.벼의 품종이나 심은 시기에 따라 수확시기가 달라지는데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화들짝 놀라는 심정이다.누군가 말하길 우리나라 사람의 빨리빨리 기질은 사계절이 뚜렷한데서 기인한다고 했다.돌아오는 절기에 맞춰 씨뿌리고 가꾸고 추수해야 하는데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애써 키운 작물이 서리와 찬바람에 상할 수 있으니 자연의 시간표에 맞춰 사느라 급한 기질이 되었다나.자연의 시간표라면 느림지향적이어야 마땅할 텐데 좀 아이러니하다.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근대 시대에는 생산성이 낮아서 사람의 분주함이 그 자리를 메우느라 그런 말도 생겼으리라.

 

논으로 둘러싸인 승마장으므로 지금부터 추수하는 때까지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승마할 수 있다.익어가며 물결치는 벼를 바라보고 향기를 들여마시는 말도 최고로 좋기는 마찬가지일 거라 짐작한다.

 

 

류시화 제3시집에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이란 시가 있다.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로 시작하는 시인데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보게 되는 선물' 등등 사물을 새롭게 보는 시어들이 나온다.

 

시인이 사전을 만드는 식으로 벼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

 

내가 시인의 마음으로 아무리 마땅한 표현을 찾아보려 해도 영 떠오르지를 않는다.시인은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어줍잖은 표현이나마 건져보자면 '벼는 황금빛깔로 포장하여 땅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 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하루하루 수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자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말 입으로 엄청나게 빨려들어간 것은 쌀알이 떨어져나간 볏짚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심은 당근이 벌써 잎이 무성하다.(물론 내가 심지는 않았다.)

 

당근은 '땅이 말에게 선사하는 주황색 선물'...

 

고추도 빨갛게 영글어간다.실내마장 옆으로 고추를 말리므로 우리 아이들도 고추 말리는 구경도 실컷하고 매운 내음도 곧잘 맡으며 생활한다.말 노는 옆에서 고추를 다듬는 풍경이 정겹고 조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가을풍경 속에 자리잡은 아이들을 보면서 '손과 입'이란 화두가 떠올랐다.날마다 아이들에게 내손에서 아이들 입으로 당근이며 사과며 커피며 나르는 일이 일상이라 손과 입의 접촉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한번은 손바닥에 따라준 커피를 낼름거리는 칸타에게 시샘을 느끼고 돌이도 열심히 내 손바닥을 핥았는데 하나도 따갑지도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손바닥만한 말 혀를 느끼면서 이 순간은 좋은 감정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입은 주고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일에서 돈독한 관계속으로 들어간다.과거에 나는 얼마나 손으로 말 입을 아프게 하였을까 여리디여린 말 입에게 자꾸 무엇을 달라 얼마나 요구가 빗발쳤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달라고만 했지 양보할 줄 모르던 손의 쓰임새에 대하여 달리 생각한 것은 기승술에만 갇혀있던 시야를 더욱 넓게 가질 때 가능했다.

 

땅은 몸 전체가 손이나 마찬가지여서 자식들인 생명들에게 철철이 자꾸 무엇을 먹여준다.땅이 손으로 먹여주는 무엇을 직접 입으로 받아먹는 상징성이 말이 풀 뜯는 모습에 절제된 시어처럼 담겨있는 것 같다.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땅처럼 말을 한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말 입으로 고삐를 통하여 손으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숙제라고 깨닫게 되었다.

 

 

말에게 어떤 손으로 다가가야할지 이 가을 풍경 속에서 바람이 설핏 알 듯 모를 듯한 언어로 속삭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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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만 다녀도 물속에 잠긴 것 같았던 습한 우기가 지나고 나니 연일 화창하고 피부에 닿는 공기가 보송보송하다.햇빛이 따갑기는 하지만 마음을 화창하게 만드는 데는 그만이다.마장에 당도하니 이미 아이들은 밖에 나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드립백 커피를 한 잔 만들어 손에 들고 "얘들아!" 하고 부르니 칸타와 돌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졸래졸래 걸어온다.얼굴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고서 내가 가진 먹을 거라곤 커피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돌이는 조금 실망,칸타는 기쁜 마음이었을 것이다.커피에 대한 취향차이에서 비롯된 태도랄까?

 

마장에 와서 커피 한 잔 정도를 마실 때 대부분 함께 마실 사람이 없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잔을 들고 말을 찾아가 바라보곤 했는데 그러다가 칸타의 커피 취향이 생겨난 것 같다.실내마장에 아이들 풀어놓고 갤러리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칸타가 다가와서 저도 달라고 집요하게 보챈다.한여름에도 핫커피만 마신다. 뜨거워서 얼른 줄 수도 없으니 칸타의 보채는 고갯짓을 보면서 마실 수밖에 없다.너무 보챌 때는 사래가 캑 걸릴 것 같은 기분이다.

 

손바닥이 견딜 정도로 커피가 식으면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잔에서 커피를 따라낸다.말을 위한 커피잔은 사람손바닥이 제격이다.그게 싫을 때는 그냥 잔에 좀 남겨서 핥아먹으라고 준다.그러는 일이 전혀 께름칙하지는 않다.가족은 그릇도 함께 공유하는 사이니까.그렇다해도 이 사진 본 회원분들은 칸타가 핥았던 잔은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ㄲㄲ

 

돌이는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혀를 낼름 내밀어 잔 깊숙한 곳을 핥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했다.입술을 뒤적질 기술로 좌우로 씰룩거리니 혀에 감기는 충분한 보상이 없어 흥미가 없기도 할 것이다.다행이다.돌이까지 보채면 정말 번잡스러운 커피타임이 될 것 같으니까.

 

칸타가 좋아하는 채소 중에는 비타민의 보고 파프리카와 항산화제의 여왕 토마토가 있다.집에서 요리하고 남은 파프리카를 밑동 넉넉하게 잘라서 갖다주면 아주 좋아한다.토마토도 꼭지부터 시식하며 맛을 들였다.올여름 텃밭에 토마토가 한창일 때 종종 근처에서 풀을 베어주곤 했는데 한참 있다보면 칸타의 요구는 풀 뿐만 아니라 토마토에도 미쳤다.칸타가 눈빛과 콧등의 방향지시로 가르키는 곳에는 토마토가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한 방울처럼 대롱대롱 달려있었다.그 순간의 표정은 "엄마 토마토 먹고 싶어.어서 따줘!"였다.그러면 내 손은 토마토배달부가 되어 열심히 따서 칸타 입으로 날랐다.큰 토마토는 텃밭 수돗물에 헹궈 내가 몇입 먹고서 주고 방울토마토는 그냥 똑 따서 주었다.자기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방울토마토가 입에 들어갔을 때 눈망울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생글거리다 방울토마토의 신선하고 황홀한 맛에 찬탄의 눈빛으로 뒤바뀌는 네온사인이 된다.커다란 말얼굴이 제 눈망울보다 작은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 얼마나 귀여운지 자꾸 넣어주다보면 스무알은 쉽게 없어지곤 한다."오늘은 이만!"하고 손바닥 셔터를 내려도 칸타의 "쫌만 더!" 무언의 외침은 계속된다.등이 따가워도 뒤돌아서서 멀어져가야 그제서야 포기한다.

 

칸타와 인연을 맺고 지내온 세월이 7년이다.이 소리는 여러 번 쓴 것 같다.그래도 내 인생 전체에서 7년은 어떤 무게인가를 가늠해보기 위해 읊지 않을 수가 없다.7년 동안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스킨십을 나누고 거의 매일같이 함께 운동을 했다.만일 대화 마일리지,스킨십 마일리지를 수치로 적립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양은 굉장하다.내가 결혼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살았던 부모님과는 대화나 스킨십이 없이 참으로 삭막하게 살았다.30년 부모님과 나눈 것보다 칸타와 나눈 게 더 많다.딸이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엄마 친구로 함께 늙어간다는데 칸타랑은 그런 사이가 되었다.칸타와 나눈 정이 차고도 넘치니 그 정이 유년시절 나를 충분히 안아주지 못한 부모님에게도 흘러간다.칸타가 없었더라면 어찌 내가 편안하게 부모님과 말을 나누고 부축해드리는 딸이 될 수 있었을까?

 

 

 

사진에 나온 말 목의 가죽끈은 최근에 교체한 끙끙이 방지끈이랍니다.원래는 마방에서만 하는데 마장 팬스에 흰페인트칠을 새로 한지라 아이들이 이빨자국 내서 흠집낼까봐 방지끈을 풀어주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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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깐돌할방 님이 몽골에서 보았던 하늘에 걸린 무지개입니다.

 

무더운 여름은 잘들 보내셨나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여름도 저무는 길에 들어섰구나 싶어지네요.

제가 한 20일 블로그활동을 쉬었습니다.

그동안 여기 들르셨다가 돌이 마방앞 사진전시회만 3회 이상 보시고 그냥 나가신 분들이라면 정말 송구합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제 블로그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우리 아이들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어디 아프거나 다친데 없이 얌전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칸타,돌이,엘도라도 모두 제 생활에 만족하고 승용마의 본분에도 충실합니다.

이런 상태일 때 저도 행복하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 깐돌할망의 소식을 전하지요.제 소식을 전하려니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전 올여름 원고와의 씨름으로 세월 다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승마에세이집 출간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전력투구해야할 상황이 닥친거지요.

그동안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에서도 가장 저다운 느낌이 살아있는 글로만 엄선하여 추리고,다듬고,또 다듬고 그러는 과정에서 안타깝지만 출판원고에서 탈락시킨 글도 많고 뒤늦게 채택된 글도 많고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처음엔 블로그에 글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책으로 묶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닥쳐보니 블로그와 책은 또한 별개여서 책작업을 시작하자 황무지를 새로 개간해서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 것처럼 진행되었습니다.

그래도 작업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이제 쌓아둔 글도 양적으로 너무 많아져 저 자신조차 과거에 쓴 어떤 글을 찾아 읽으려면 정말이지 찾기도 힘든 실정이어서 한 번 정리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요.

뜨거운 여름이지나가는 동안 원고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힘들면서도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차피 여름엔 말도 힘든 법이니 우리 아이들 거의 기승은 하지 않고 편히 쉬면서 놀게 해주었는데요.

그 덕에 저도 보람된 시간을 가졌고 아이들도 힘든 여름을 잘 난 것 같습니다.

 

제가 원고작업 하는 동안 남편 깐돌할방 님은 홀로 몽골승마여행 다녀오셨습니다.

그닥 기대는 안하고 다녀왔는데 다녀온 소감이 한마디로 '환타스틱'이었답니다.

몽골폐인이 되어 돌아온 할방님은 날마다 몽골 이야기를 저에게 합니다.

내년엔 저도 몽골에 안 갈 수 없을 것 같네요.

할방님이 몽골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려주신댔는데 언제 올리시려나 저도 기대가 큽니다.

 

승마에세이 원고는 8.15 광복절에 대략 작업이 마쳐져 저도 원고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출판사에서 작업 들어가면 10월 중순 전에는 책이 세상에 태어나리라 예상합니다.

 

저의 정황 때문에 한동안 블로그 내용도 명맥만 이어지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부터 신경도 더 써서

참신하고 알찬 글 올려보고 싶습니다.

 

아직 낮에는 뜨거워서 조금 더 기다려야 승마하기에 쾌적해지겠지요.

어디선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가을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남은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깐돌할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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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에 돌 생일축하를 당겨서 치루었답니다.말은 5세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지요.돌이가 어른이 되다니 감회가 벅찹니다.

 

돌아! 태어나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더 고맙구나!

 

태어나던 날 엉성하게 버티며 서있다가 주저앉아 쉬고는 또 일어나 어설픈 걸음을 떼던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이마가 훤했던 왕짱구,커다란 눈망울,귀여운 입,솜털처럼 날리던 갈기와 꼬리가 사랑스러웠지.

 

또래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말이 돌이를 예뻐하고 잘 돌봐주었죠.

 

돌이가 태어난지 20일 되던 날 망아지 젖먹이느라 힘든 칸타를 타고야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 미안한 일이지요.돌이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하염없이 졸졸 따라오고요.

 

돌이 백일잔치.생후 90일 무렵 돌이가 크게 아파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살아나니 백일 축하를 안할 수가 없었답니다.돌이가 입은 옷은 DIY.

 

갓 2세가 되었을 때 돌이는 어떤 거부나 두려움도 없이 의젓하게 할머니를 등에 태워줬어요.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5세가 된 돌이는 의젓하고 늠름합니다.

 

5세 생일파티 패션.사람은 생일파티 때 반짝이가 잔뜩 달린 고깔모자를 쓰는데 말에게 씌우는 건 그렇고 해서 나비넥타이를 매줄까 망토를 씌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간단하게 마스크로 멋내기를 하기로 했답니다.니트마스크에 할머니 악세사리를 대롱대롱 다니 근사하네요.돌이가 멋져보여요.

 

한데 문제가 좀 있더군요.원래 마스크 위에 굴레를 씌우게 되므로 고정이 잘 되는데 마스크만 씌우니 말의 머릿짓에 오래 못버티고 훌렁 벗겨지더군요.

 

어쨌거나 마방 앞에 사진전시회를 하고 돌이 머리에 마스크를 씌우니 생일 맞은 분위기는 한껏 납니다.

 

파티에 초대한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돌이는 선물로 여자친구 수아랑 단둘이 실내마장에서 데이트하는 행운을 누렸답니다.물론 여자친구도 멋을 냈지요.

 

어째 마스크 색이 순백인데다 꽃장식,망사까지 드리워진 스타일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신부의 면사포를 떠돌리네요.에라 그래 돌이 장가나 가라.난데없는 결혼식 선포가 이루어지고 주례선생은 누구냐 부케는 누가 받냐 하는 소리로 시끄럽고 승마회원들은 모두 결혼식 하객이 돼버렸네요.

 

아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앙드레김 패션쇼의 신랑신부 같지 않나요? 신랑 마스크는 벌써 훌러덩 벗겨지고 없네요.

 

생일에 여자친구와 결혼식놀이도 하다니 비록 즉흥적이었지만 5세 성마기념식에 걸맞는 이벤트였던 것 같네요.

 

신랑 어머니는 이렇게 꾸미셨군요.

 

내가 5년 전에 아들을 낳은 에미라우.

 

마스크가 벗겨져 옆으로 늘어지니 마당쇠 혹은 인디언소년이 떠오릅니다.

 

마방에 들른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돌이 어린시절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그리곤 저마다 돌이 커가는 모습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니 사진전시회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친구 수아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멋지게 꾸민데다가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단둘이 놀 수 있으니까요.혹시 이 모습을 본 돌이 다른 여자친구 안개가 속상하지는 않았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네요.

 

잔치음식 1.옥수숫대 자른 것.요즘 옥수수를 계속 수확하고 있어서 매일 옥수수 쪄먹고 말에게도 푸짐하게 주는데 옥수숫대를 한뼘 길이로 잘라놓으니 꼭 놀이공원에서 파는 핫바나 소시지처럼 보여요.원장님 말씀이 "오늘 아침에 내가 돌이한테 생일선물 줬어요.옥수수 잘생긴 놈 몇 개 골라 까서 주니까 잘 먹어요 하하"

 

잔치음식2. 당근.이곳에 사는 모든 말들이 돌이 귀 빠진 덕에 당근을푸짐하게 얻어먹었지요.결혼식놀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피로연음식쯤 되겠네요.

 

이모가 준비한 이번 5세 생일케익은 두부케익이었답니다.마트에서 판으로 산 두부에 딸기잼으로 글씨를 썼지 뭡니까.어찌 이리도 신통방통한 생각을 떠올렸을까요? 몇 판이나 사와서 말 한 마리당 두 모 정도씩 먹었다나 그러더라구요.

 

드디어 모든 사람이 다 모여서 태풍이네가 사온 케익에 5개의 초를 꽂아 불 밝히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어요.이 자리에 나타난 남자분들 손에 꽃다발처럼 초록 씀바귀가 들려 있었지요.즉석에서 준비한 생일선물이라나.그걸 보고 깐돌할망 빵 터지고 말았네요.

 

이날 아침에 돌이 옆방에 말 하나가 새로 들어왔어요.마장마술 고급 기능을 보유한 마필인데 이름이 ' 브릿지'라네요.기왕 케익이 있으니 써먹자 해서 입방 축하식도 덩달아했지요.브릿지는 낯선 곳에 왔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이 찾아오고 분주하고 자기에게도 말걸고 하니 호기심이 잔뜩 서린 얼굴을 하고서 혹 '여기서는 날 무척 환영하는구나.내 평생 이렇게 성대한 환영은 처음이야.이곳이 마음에 드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모두들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때 브릿지 귀에는 "브릿지 환영해~ 브릿지 환영해~" 뭐 이런 식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렴 어떤가.오늘은 살아있는 모든 말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하루이니... 마방복도가 연회장이 되었어요.아저씨들의 불만 "아니 두부는 있는데 왜 막걸리는 없는거야? 말 먹을 건 있는데 사람 먹을 건 없어?" 없다니오? 케익,갓 삶은 옥수수,수박이 있잖아요.

 

장군이도 신났다.오늘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아요.

 

아빠가 손수 두부를 먹여줘서 행복한 축복이.

 

두부와 잼이 만났을 때.유쾌하고도 흐뭇했던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지,어째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지 좀 색다르게 느껴보았던 것 같네요.승마인마다 말과 지내는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곁에 있는 말은 소중하므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존재로 다가간다는 면에선 누구에게나 같으리라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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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일요일 아침에 칸타는 자는 모습을 아빠에게 딱 걸렸어요.그 시간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달콤한 휴일 아침잠에 빠져 있겠지요.칸타는 어디 직장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비몽사몽입니다.처음엔 우아하게 앉아서 자다가 그만 머리가 넘어가더니 마방 문턱을 베고서 자고 맙니다.문밖으로 내민 머리가 걱정도 안되나 봅니다.나 같으면 누가 지나가다 툭 차거나 뚝 떼갈 것 같아 불안해서 그리 못할 것 같은데요.그만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럴 테지요.

저는 잠도 우아하게 잔다구요...

 

그러나...

 

잠이 마구 쏟아지면 우아하기도 힘들어...

 

 

칸타가 공룡만한 몸을 내려놓고 자는 동안 등에 따가운 시선이 내리꽂힙니다.시선의 주인공은 엘도라도.이 숫말은 누가 칸타 데려가면 가만 안두겠다는 듯 여왕마마 경호원 못지 않은 단호함으로 무장하고 부동자세로 지키고 있어요.이럴 때 접근하면 엘도라도 귀를 뒤집고 인상 한번 팍 씁니다.우리 칸타는 참 좋겠네.

 

 

칸타 경호원은 엘도라도만이 아닙니다.돌이도 경계근무 중이네요.

 

어쩌면 엘도라도가 경호를 잘 하는지 감독하는 건지도 몰라요.

 

돌이는 늘 엄마는 내가 지켜야하는데 하는 마음이니까요.

 

죄없는 문을 물어뜯는 표정에는 엄마 옆에 서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엘도라도 아저씨에게 잘 하라며 시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군요.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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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끙이의 부활

칸타빌레 2013. 6. 12. 10:56

 

세상엔 불행을 가장한 행운이 있는 법이다.지난 겨울 칸타가 아랫니가 뽑히는 마방사고를 당하고 나서 끙끙이를 안하게 되었다.아 칸타 끙끙이 고치려고 그런 일을 당한게지 하며 내심 위안도 삼았다.집에 갈 때 끙끙이방지대를 돌이 목에만 채우면 되니 번거로움도 한결 가벼워졌다.수의사님도 칸타가 끙끙이 고쳤다는 말을 듣고 신기해하셨다.아마 속으로 '끙끙이 고친 말 본 적이 없는데'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느날 번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일이 생겼다.어디서 '끄응~'하고 우렁찬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돌아보니 칸타가 끙끙이를 하느라 낸 소리였다.특유의 끙끙이 소리가 있다.기승 도중에 말이 걸음을 멈추고 똥을 눌 적에는 갸날픈 '끄응'소리가 난다.이에 비해 끙끙이를 하면 우렁찬 굵은 '끄응'에다가 트름 할 때 내는 '꺼억'을 합친 지극히 점잖지 못한 소리가 난다.그래서인지 말이 그럴 때 보는 사람마다 "하지 마라!'하며 나무란다.

 

날이 더워지면서 등장한 티브이 광고가 있다.에어컨 사러 어디로 오라는 광고인데 내용은 이렇다.누군가 찾아와 문을 열어보니 불청객이 "무더위옵니다"한다.가족은 일치단결 전투태세로 불청객을 물리치니 무더위가 "오메~"하며 회오리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린다.나에겐 그 광고가 계속 끙끙이버전으로 오버랩됐다.지난 겨울 "오메~"하고 북풍한설에 실려 사라졌던 끙끙이 망령이 여름이 되자 불사신처럼 살아나 "끙끙이옵니다~"하며 나타난 것이다.

 

어여쁘고 우아한 칸타가 '끄어어~'하는 점잖지 못한 소리를 낼 때 내 다리는 힘이 풀리는 듯 휘청거렸지만 한 팔로는 난간에 기대고 한 손은 가슴에 얹고서 마음 다스리기에 들어갔다.'끙끙이를 하니 필시 입안이 완벽하게 나은 거야 암 그렇그말구' 부활한 끙끙이를 보니 불행을 가장한 행운은 또 이렇게도 오는구나!

 

 

 

화단 옆으로 조각 빨래들이 바람에 춤춘다.끙끙이방지대 싸개다.금속이 말 목에 닿아 피부가 짓무르는 일을 방지하는 임무를 띤 요원들이다.

 

작열하는 햇볕에 살균소독 당하는 끙끙이 방지대.

 

손수 만든 헝겁싸개는 이 부분을 커버한다.

 

실내라지만 더운 공기에 나른해져서 무료하게 놀던 칸타가 바에 들렀다.엄마가 늘 당근이며 수박이며 맛난 것을 내다 주는 장소라 뭐 없나 하고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들렀다.

 

뭐 없어요?

 

엄마 어디 갔어?

 

칸타 앞에는 고양이 태평이가 세상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든지 태평하게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늘어졌다.

 

머리만 겨우 들고는 "무슨 일이세요?"한다.

 

저한테 볼일이 없는 걸 알고 다시 제 팔을 베고서 낮잠에 빠진다.오후 4시 정도가 되면 말을 타려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그때까지 고양이의 평화는 침범당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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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게 재갈을 입에 넣고 한 시간쯤 견디는 일이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만족스러운 기승을 하고 나서 하마하고 칸타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하마한 자리에서 칸타 몸에 씌웠던 마구를 분리시키는 일이 선물이다.그런 일이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내내 지속되던 갑갑증을 한 순간에 해소시켜 해방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안장이며 굴레며 보호대며 말 몸에 붙어있을 때는 간단했지만 막상 벗겨내면 산더미 같은 짐이다.짐을 제자리로 갖다두려면 마구실까지 동선이 멀어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은 내가 감당할 힘겨움보다 돌아올 이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승마에 이득이 무엇이겠나 승용마가 흔쾌히 나를 잘 태워주는 일일 뿐.

 

말이 마구를 벗는데서 맛보는 쾌감은 역설적이게도 마구를 착용한 결과에 따른다.사람도 갑갑한 옷을 입고 있다가 훌훌 벗어던졌을 때 후련함이 무엇인지 잘 안다.그러니 말의 입장에서 마구를 착용하는 것은 좀 괴롭기도 하지만 나중에 벗어던지는 쾌감이 주어질 것이므로 기꺼이 마구를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내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려는 의도는 말과 사람의 관계를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로 유지하기 위해서다.그래서 하마 후 말에게 최선의 쾌감을 선사하여 말이 승용마의 본분을 사랑하도록 하려는 거다.

 

대부분의 말은 굴레를 들고 다가가면 도망치거나 반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그 외에도 재갈을 물지 않으려고 회피하거나 안장을 얹지 않으려고 등을 피하기도 한다.그런 말에게서 행복한 기승감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말이 굴레와 안장을 즐거워하며 받아들이는 일은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칸타와 돌이는 장안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편이다.말이 힘들어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 기승하고 기승후 기분좋은 뒷마무리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그 점은 매우 흐뭇한 부분이다.

 

얼마 전 내가 칸타에게 굴레를 씌우려고 굴레의 매무새를 가지런하게 하는 동안 칸타가 얌전히 기다리는 태도로 있었다.왼손으로 굴레를 감싸쥐고 오른손으로 칸타 콧잔등에 얹으니 재갈을 물기 쉽도록 머리가 다소곳하게 내려왔다.그때 곁에서 구경하시던 어떤 분이 "칸타가 머리를 내려주는군요"하며 기특해 하셨다.

 

칸타가 재갈을 문 후에 머리끈을 양쪽귀에 차례로 걸적에 칸타는 잠시 머리를 내품에 폭 파묻는다.파묻는 시간이 길어지라고 난 아주 천천히 귀 뒤로 머리끈을 넘긴다.그 다음으로 턱끈과 코끈을 채우는 순서가 아직 남아있지만 난 그보다 먼저 귀 뒤로 머리끈을 넘겼던 양손을 칸타 목으로 가져가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아이 착해! 참 이뻐 ! 재갈을 물어줘서 고마워요!"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준다.

 

내가 굴레를 씌우는 일에서 이토록 많은 교감을 나누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그럴만한 계기가 있었다.지난 겨울 칸타가 마방에 턱이 걸려 매달린 사고를 당하고 아랫니 몇개가 뽑혀나가 - 이는 다시 박아서 지금은 고정됐다- 한동안 운동을 쉬었다.그러다 재갈없는 굴레인 해커모어를 씌워 운동을 하다가 상처가 회복되어 다시 예전처럼 운동을 하게 됐다.

 

그런데 칸타에게 어떤 심리적 문제가 생겼다.입안에 상처를 당했던 후유증으로 입안에 재갈 받아들이기를 매우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칸타는 잔뜩 긴장한 채로 재갈을 물지 않으려고 입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이럴 때 말입은 천정처럼 높아서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다.칸타가 왜 그러는지를 알기에 부드럽게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동시에 키가 큰 남자를 불러다가 살살 칸타 콧잔등을 내려 조심스레 재갈을 물렸다.한동안은 이런 일이 반복됐고 운동하는 내내 칸타는 온통 제 입안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가.칸타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얼마쯤 지나 치켜든 콧잔등이 내 손에 닿을 정도로 내려왔다.가까스로 재갈을 물리고 났을 때 콩당거리던 마음은 처음 말에게 재갈을 물렸던 마음과도 비슷했다.재갈을 물고 난 칸타의 눈을 보니 촉촉했다.순간 사고가 났을 때 칸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가 떠올랐고 한없이 가여워졌다.머리끈만 귀뒤로 넘겨놓고 칸타의 목을 끌어안고 "어유 가엾은 것,어유 불쌍해라.그렇게 아팠던 거니?" 하며 한참을 울먹울먹했다.

 

한동안은 재갈 물려놓고 목을 안고 울었던 거 같다.그러자 말이 재갈을 물려고 입을 내어주는 일이 어찌나 고맙게 느껴졌는지 돌이에게도 재갈을 물고난 후 칭찬을 많이 해주게 됐다.그후부터 칸타는 재갈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순순히 받아들이겠어요 하는 태도다.재갈이 말 입술 사이로 미끄러져들어가는 순간 벌린 입 틈새로 빠진 걸 다시 박아서 삐뚤한 이빨을 보면 그날의 상처가 다시 떠올라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나의 마음이 아릴수록 칸타는 더욱 다소곳하고 부드러워졌다.'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내 모두 드려요~'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이 칸타의 마음일 것 같다.

 

 

 

여리디여린 분홍빛 잇몸 속살에 차가운 금속을 비비는 일은 승용마가 사람에게 주는 커다란 선물이다.

 

그래서인가 나를 위해 내어준 말 입에 맛난 것을 자꾸 밀어주고 싶기도 해서 승마장에 가는 내 보따리는 해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이다.또한 기승이 끝나고 침과 건초 찌꺼기 같은 게 잔뜩 묻어있는 재갈을 흐르는 물에 세척하여 마른 수건으로 반짝반짝 하도록 닦는 일에 열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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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다.이런 날은 말도 기분이 좋기 마련이어서 반은 먹고들어가는 운동이 된다.

 

장애물을 설치해놨네 칸타 보이지?

 

언제 칸타를 타고 저걸 폴짝폴짝 넘을까?

 

글쎄 말이에요.아빠는 언제 나에게 저걸 훈련시킬 건지 ...

 

승마장 주변 논에 모를 심으려고 물을 대니 호수나 수변 생태공원처럼 풍경이 바뀌었다.팬스 너머로 찰랑찰랑하는 물결을 보니 어디 다른 곳에서 말 타는 기분이 든다.

 

 

 

바닥에 늘어놓은 횡목 넘어다니기는 일상이 됐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칸타 걸음걸이가 더욱 아름다워졌다.

 

자고로 승용마는 걸음미인이어야 한다.

 

 

 

 

한 40분 지나 고삐를 다 주고 평보를 하고 있는데 칸타가 은근슬쩍 x자 장애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말의 의도를 알아채고 나는 황급히 고삐를 거둬들이고 말머리를 돌렸다."칸타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뭐든 순리가 있으니 사람 태우지 않은 지상훈련으로 먼저 충분히 연습한 후에 해야돼!"라고 말해주었다.하마한 후에 할방에게 칸타를 조금 더 타게 하고 나는 돌이를 데리고 마사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들으니 칸타는 아빠가 어쩌나 보자고 허용하자 처음엔 속보로 나중엔 구보로 여러 번 x자를 폴짝 넘어버렸다고 한다.구경하던 관리인이 처음 넘는 말치곤 아주 잘한다고 칭찬했다고 한다.그 소식을 들으니 '인내심'이 떠올랐다.보통은 말훈련에서 말이 받아들이도록 사람이 성급함을 버리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내심'이란 말이 쓰인다.그런데 오늘은 반대로 시켜주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 못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말이 자발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냈다.

칸타가 기승운동하는 동안 돌이는 뒤돌아서서 애꿎은 쇠파이프만 희롱하고 있었다.

 

사는 재미도 없고 ...고뇌하는 청춘이여! 돌이가 사람이라면 이렇게 절규했을 것 같다.

 

이랬는데 며칠 후 할아버지가 데려다 안장 얹고 굴레 씌우고 하니까 얼굴에 화색이 돌고 설레임마저 풍기고 있었다.요즘엔 말이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잘해보려는 자발성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승마의 또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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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가 기승운동 끝난 뒤 안장을 풀고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목욕까지 하면 1시간, 안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말의 얼굴에서 굴레를 벗겨내고 나면 가죽끈이 머물렀던 자리는 땀에 젖어있다.말은 그곳이 가려워 아무곳에나 얼굴을 문지르기 일쑤다.그런 칸타를 위하여 수건을 갖다가 펼쳐서 얼굴을 감싸주면 칸타가 알아서 얼굴을 위아래,좌우로 움직여 수건에 비빈다.아빠는 스스로 얼굴을 문지르는 칸타보다 더 열심히 손으로 벅벅 문질러준다.

칸타가 지병처럼 갖고 사는 좌후지 순환장애 때문에 늘 조금씩은 부어있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많이 부었다.아무래도 최근에 살찌우느라 늘린 사료량 후유증인 듯하여 승마장에다가는 급여량 증가 중지를 요쳥해놓았다.다리가 좀 많이 부었을 때는 그만큼 공들여 붓기를 빼주어야 한다.최선의 방법은 운동이고 보조요법으로 맛사지와 오버나잇 밴디지 감아주기를 한다.

 

기승운동이 끝나니 붓기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보는 엄마,아빠 마음은 아쉽다.붓기가 좀 더 빠지면 좋을 텐데...

 

 

오늘은 특별히 맛사지 전에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보기로 했다.

 

먼저 앞다리를 앞으로 쭈욱 뻗고.돌이는 앞다리가 공중에 수평으로 올라간다.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칸타 얼굴.

 

ㄱ자로 꺽어 들어서 어깨 연결부위까지 근육을 풀어준다.

 

뒷다리도 뒤로 원없이 뻗어보고.

 

 

말 후지를 사람의 허벅다리에 올려서 자극의 강도를 더해 유지한다.

 

이런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칸타가 무척 시원해한다.가끔은 칸타가 스트레칭을 간절히 원하는 때도 있다. 말은 가끔 스스로 어디 좀이 쑤시는지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몸을 쭉 펴는 때가 있다.

 

아빠가 스트레칭 해주니 기분이 참 좋아요!

 

맛사지에 사용하는 제품. 맨소래담 - 소염,진통 효과 아르니카젤 - 식물성분.순환 및 근육통 완화. 아로마에센셜 오일 - 페퍼민트(근육통 완화),라벤더 ( 상처치유,이완),티트리(항염,독소배출) 베이비로숀 - 맨소래담 희석 및,아로마오일의 캐리어오일 역할.

 

기승운동 많이 한 날은 맨소래담을 많이 섞고 운동 안한 날은 빼기도 한다.일회용장갑 낀 손에 제품을 각각 적당량 덜어 먼저 칸타에게 냄새 맡게 한다.지금부터 맛사지 할거야 하고서 일러둔다.만일 새로운 아로마 오일 등을 사용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말이 탐색하도록 한다.그러면 그 향이 매우 마음에 드는지 거부감이 이는지 알 수 있다.혹여라도 말이 싫어하는 향은 쓰지 않는다.

 

신체에서 순환을 담당하는 기관은 림프계다.림프관은 심장쪽으로 일방통행을 하므로 순환을 돕는 맛사지는 발굽에서 위쪽으로만 실시한다.

 

순환을 돕는 맛사지 강도는 경락맛사지처럼 아프게 지압하는 것이 아니라 털결을 반대로 쓸어내려는 것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맛사지하는 사람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사랑의 에너지를 불러모아 손바닥에 모으고 말 다리에 전달하는 느낌으로 동작을 3분 정도 반복한다.이때 칸타도 절 위하여 뭘 해주는지 알고 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다리에 전해지는 느낌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 맛사지를 해줄 때 마음 같아선 아주 오래 해주고 싶으나 쭈그리고 앉는 자세가 힘들어서 얼마 못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오홍근박사의 <향기요법>이란 책을 보면 /'아로마테라피'는 향,즉 나무,뿌리,꽃,잎 등 자연의 힘을 이용해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내는 생활치료법이다./p.14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뇌에 메시지를 전달해 각 기관과 호르몬,림프계,혈관계,면역계 등 생리 대사기관의 활동을 원활하게 한다./p.15

 

아픈 소가 열 걸음만 걸을 수 있으면 산다는 말이 있다.초식동물인 소는 본능적으로 풀밭에서 자기 몸의 치유에 필요한 식물을 찾아내서 먹을 줄 안다는 얘기다.말도 자연에서 살아간다면 필시 제몸의 병을 치유하는 풀을 찾아서 뜯어먹을 것이다.사람도 시시때때로 몸에서 필요한 음식이 입맛을 당기지 않는가.

 

마사에서 살아가는 승용마는 스스로 이로운 풀을 찾을 수 없지만 대신 사람이 풀에서 이로운 성분을 추출한 물질을 제공할 수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아로마에센셜오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로운 식물을 총칭하여 일컫는 허브에서 뽑아낸 에센셜오일이 말이 스스로 몸을 치유하여 복원하는데 도움을 줄 거라 본다.

 

<향기요법>이란 책을 보면 세상엔 허브의 종류가 광범위하고 허브만으로 어지간한 병은 다 치유할 수가 있다.구암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초와 허브오일의 사용은 본질적인 효능에서 같아 보인다.

 

허브아로마를 맡았을 때 사람과 말의 차이는 사람은 숨을 깊이 마시며 '음~ 냄새 참 좋네'하고 취하는데 말은 마음에 드는 향일수록 혀를 낼름낼름 하며 '음~ 참 맛나겠네'하고 미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으흠~ 아주 기분 좋아요!

 

현대인은 자기에게 맡는 아로마오일 몇가지를 찾아서 사용하면 생활에 활력을 얻을 것이다.요즘 허브아로마오일샾은 대형마트에 하나씩은 다 입점해 있어 접하기도 쉽다.

 

에센셜오일은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

 

에센셜오일의 사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할망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화장솜에 떨궈 흡입하기다.

 

화장솜이나 티슈 한 장을 접어 책상 위나 쇼파,침대 근처에 놓으면 된다.책상 위에는 정신집중을 돕는 로즈마리가 쇼파나 침대 근처엔 긴장을 이완하고 숙면을 돕는 라벤더를 애용한다.승마를 하고 와서 목이나 어깨가 뻐근할 때는 페퍼민트 오일 한두방울을 떨구어 문지르면 시원한 청량감이 피로를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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