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서 발견한 말(馬)

 

 

 

 

'참다운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일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가?'

 

언제부터인가 이런 문제들이 마음을 온통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온전히 젊었더라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운동화끈 질끈 동여매고서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을 텐데 나이가 들고보니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현실에 매이다보니 그렇다. 하여 나를 발견하기 위한 탐구의 방법으로 문학여행을 떠나보았다.

 

작년부터 고전문학을 하나씩 찾아서 읽는 중이다. 고전이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낡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이 계속 찾게 되는 텍스트를 일컫는다. 거기에는 인간 보편성의 뭔가가 있기에 자꾸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전을 읽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초등이나 중등과정 시절에 '간추린 고전'으로 선행독서를 하게끔 만든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어서 고전에서 다루는 삶의 문제를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진정으로 읽어보아야 할 순간이 도래했을 때, 고전이란 이미 읽은 것이란 착각에 빠져 읽을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생에서 뭔가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휙휙 지나가는 인생의 여러가지 국면을 그저 사진 보관하듯이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니 해결이나 나아가는 방향도 바람부는 대로 몸을 기우는 갈대 같은 건 아닐까 싶었다. 인생을 깊게 꿰뚫어보는 심미안을 갖고 싶었다.

 

그 옛날 그리이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에 대하여 모방충동설로 바라보았다. 문학은 삶의 재현이라는 거다.

'재현'이나 '모방'이라는 개념에 잘 들어맞는 문학의 장르는 소설이다.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소설에 대한 여러 정의 가운데 루카치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문제적 개인이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 인식의 여정에 대한 형상화'가 소설이다.

 

그러니까 나는 배낭과 운동화 대신 문학책을 도구 삼아 삶을 이해하는 '자기 인식의 여정'에 참여한 거라 볼 수 있다. 소설 안에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그 동경과 모험,즐거움과 환희로 가득찬 여정에서 덤으로 얻은 전리품이 있다. 인간의 삶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인 말(馬)이 어떤 모습으로 녹아들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내가 아는 말의 삶이란 고작 마방이나 풀밭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학 안에서는 말이 등장인물과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여 인간이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그만큼 말은 사람살이에 긴밀하게 함께 해왔다는 증거이므로 문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보다는 말과 가깝고도 깊은 유대를 맺고 사는 사람이므로 '문학 속의 말'이 드러나는 부분을 추려내어 기록해보고 싶었다. 이 의미있는 새로운 여정의 첫출발을 시작하려고 하니 설레고도 기쁘다.

 

 

 

 

 

 

 

 

 

 

설정

트랙백

댓글

 

 아침마다 눈을 뜨고 몽롱한 시간이 좀 지난 후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면 가슴엔 새로운 희망이 차오른다. 그 힘으로 하루를 살고 또 살고 한다.

 

 실내는 찾아드는 겨울햇빛으로 넘쳐난다. 햇빛이 가득한 실내마장에 가족이 다 모였다.

 

 사진을 바라보니 그 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날 이후로 칸타와,아마르는 동시에 똑같이 오른쪽 앞다리가 아프게 되어 붕대를 감고 쉬게 되었다.

 

 마방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신세가 된 아이들을 보니 건강하게 뛰어다니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가 간절하게 그립기만 하다.

 

 새해의 첫 이벤트가 수의사 방문진료라니 전혀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올해 좋은 일이 벌어지려고 액땜하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보았다.

 

 아이들은 아픈 부위의 고통도 있겠지만 운동도 못하고 견뎌야하는 상황이 괴로울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낫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리라.

지난 십 년 내내 겪어온 일이라 단련이 되었으련만 마음 아픈 질감은 다르지가 않다.

칸타와 아마르가 동시에 같은 다리가 아프고, 내 마음이 아픈 것을 보면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땐 이런 말을 떠올리곤 한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견디는 일'의 의미를 불러와야 한다.

쉽사리 힘듦을 잊고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겨울의 한가운데에 접어드니 한 달 넘게 목욕하지 못한 까닭에 칸타도 꼬질꼬질하다.

꼬질하면 어떠랴. 나비처럼 팔랑팔랑 걸어다닐 수 있다면야.

 

 칸타의 왼쪽 뒷다리는 과거에 코끼리만큼 부어올라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게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도 붓지를 않는다. 얼마나 감사한가.  모든 상황은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칸타의 표정이 밝으니 좋다.

 

 아마르는 내가 칸타에게 집중하는 틈새를 노리고 어느새 한눈을 팔고 있다.

 

 그럴 때 다가가 눈짓이나,손짓을 보내면 아마르가 '압박'을 느끼고 '아,내가 조마 도는 중이었지!'하고  흐름에 따른다. 때로는 할머니라고 개무시하기도 한다.

 

 둘을 함께 조마시킬 때 나는 매우 섬세해져야 한다.

 

아이들은 쉽사리 기쁨에 사로잡혀 난데없이 질주하거나 어딘가에서 급정거하는 행동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활발한 걸음걸이를 재촉하면서도 과격한 달음박질을 하지 않도록 자극하지 않아야 하기에 압박의 강도를 조절하며 끊임없는 신호를 날려보내야 한다.

 

이 공간에서 나와 아이들 사이에 무수한 교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 흔적을 점으로 표시한다면 은하수와도 같은 별의 강이 흐르리라.

 

 아마르가 나를 개무시했을 때 나도 개무시하고 칸타에게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아마르는 '할머니가 엄마랑만 노네' 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얼시구나 하고 다가온다.

 

 그렇다고 내가 "어유 와쪄요!" 하고 받아주지는 않는다. 도도녀 할머니는 튕긴다. "너무 들이대지 말란 말이다!"

 

 돌아서는 도도녀 할머니를 졸졸 따라가는 아마르.

 

그 둘에게 유쾌한 시선을 보내는 듯한 칸타.

 

 

아이들 앞에는 난로가 있고 승마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불을 쬔다.

그러는 사람들 앞에 다가와 사교를 청하는 말들은 우리 아이들 뿐일 거다.

 

혹 이런 경험 해보셨는지?

 

말이 다가와서 사람에게 말을 건다.

 

말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말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2015년 깐돌할망의 화두이자 말 탐구 주제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12월은 꽤 추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닥 춥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추위에 단련된 세월 탓도 있겠고 다른 이유도 있다.

 

 

추위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몸을 난로처럼  달구는 거다. 이렇게  터득했달까.

간단히 구호화 한다면 '난로로 빙의하자!'

 

 겨울이 되면서 나의 승마장 일과는 이렇게 바뀌었다. 승마장에 도착하자마자 칸타와 아마르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 후 다짜고짜 옷을 홀랑 벗겨 던져놓고, 다시 한 번 다짜고짜  실내마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런 후 잠시 기지개 펼 짬을 준다. 요때 칸타는 부랴부랴 뒹굴기를 하고 아마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자 됐지? 이제 시작이다!" 하고는 장채찍을 들고  공중으로 띄우면 기다란 끈이 리듬체조 선수의 리본처럼 허공에서 춤을 춘다. 이것을 신호로 칸타가 앞장서고 아마르가 뒤따르는 식으로 자유조마는 시작된다. 아이들은 서두르지 않고 리드미컬하고 활발한 속보로 마장을 돈다. 나도 안쪽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성큼성큼 걷는다. 그렇게 20분 정도 함께 호흡을 맞추어 걸으며 달린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난로가 되어 후끈후끈 열기가 가득하다. 이 열기는 다시 승마장을 나서기까지 3시간 정도는 유지되는 편이다.

 

 

20분 자유조마 후에도 나는 실내마장을 벗어나지 않고 칸타 ,아마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슬렁거리며 생각도 하고 가끔 아이들이 똥을 떨구면 치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 아마르가 자꾸 나를 스토킹한다. 문득 뒤가 캥겨서 뒤돌아보면 집채만한 검은 존재가 나를 향해 뚜벅뚜벅 ~ 그러다 장난으로 확 ! 덮칠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예전 같으면 저리 가라며 쫒아냈으련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예절을 지키며 사람과의 최소거리는 지킨다. 문득 나 스무 살 무렵엔 길에서 남자가 따라오는 일이 있었지 하고서 옛생각이 떠오른다. 그 남자도 내가  뭔가 좋다고  꽂혀서 따라왔듯이  , 아마르도 내가 좋아서 따라오는 것이니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이럴 때 어울리는 영화가 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아마르가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내 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졸졸 따라온다. 다가와서 킁킁 조사도 하고,앞발을 긁으며 요구도 한다. 만일 내가 긁개나 채찍이라도 들고 있으면 "이리 줘봐!" 하는 것처럼 제 입으로 덥석 물고 내게서 물건을 빼앗는다. 어쩌면 아마르는 그 물건을 다시 달라고 내가 잡아당길 때 줄다리기가 오가는 그 다음 상황을 즐기려고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뭘까. 아무튼 사람을 따라다니는 행동은 올해 내내 이루어진 내츄럴홀스맨십 훈련의 기분좋은 후유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나를 절친으로 여기는 탓도 있다고 본다.

 

 칸타는 적극적으로 따라다니지는 않아도 시선으로는 아마르보다 더 집요하게 스토킹질을 한다. 오래 함게 지내서인가 요즘에 칸타의 눈빛을 보면 꼭 그 안에 사람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칸타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커피도 홀짝거리니까 사람스러운 눈빛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으니 칸타가 혼자 제적을 따라 워킹을 시작한다. 칸타의 '나홀로 하염없이 워킹'은 과거 칸타가 환자였을 때 재활운동 했던 후로 오랜 습관이 되었다. 덕분에 말 워킹머신이 없어도 스스로 잘한다.

 

 

 올해 나의 목표 중에 하나는 <말에게 집착하지 않기> 였다. 그러니까 말을 하루라도 안 보면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버리자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일주일에 사일만 승마장에 나가고 나머지는 인생의 다른 분야에 몰두하자, 대신 말을 만나러 가서는 최선을 다해 좋은 시간을 갖는다. 라고 행동지침을 정하고 실천했다.

 

 

옛날에는 아마르가 한창 자라고 있어서 늘 들여다보고 보살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시절에는 아마르가 최대한 많은 시간에 무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방목생활에 비중을 두었다. 지금은 날마다 만나지는 않지만 만나는 시간에는 자유시간조차 함께 걸어다니고 접촉을 하려고 한다.그러자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아마르는 올해  내츄럴홀스맨십과 마장마술 기초공부를 했다.

 몸도 더욱 튼튼해졌다.

 기른 사람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쁨을 주도록 잘 자라주어서 아마르에게 고맙고, 그냥 무한한 감사의 마음도 샘솟는다.

 

 2014년에는 나의 개인적인 다른 활동이 있어 블로그가 개점휴업한 가게처럼 한가했다.

 2015년에는 다시 알차게 채워나갈 생각이다.

한층 깊어지고 말간 시선으로 말과 사람,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풀어나가볼까 한다.

 

 아마르는 공부중!

 

 실내마장에 어떤 무늬가 새겨져 있어 찍어보았다. 여러 마리의 말이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닌 시간의 흔적이 모래바닥에 응집되었다. 삶은 해마다 한 장씩 새로운 무늬가 새겨지는 그림 만들기가 아닐까?

 

 

알팔파와 티모시를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12월,겨울나무의 자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구름낀 하늘을 배경으로 늘어선 나무의 우듬지도 바라보시구요.

올해 어떤 아름다움을 여러분의 삶속에 수놓으셨는지 떠올려보시지요.

크리스마스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좋은 인연 이어가지요.

 

 

 

<마필관리사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임>

 

칸타는 멋진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초록이 지천인 풀밭이라도 거니는 중일까요.

내게는 사진이 이런 의미로 읽힙니다.

 

"엄마,나는 잘 지내요. 우리 걱정 말고 엄마의 멋진 꿈을 꾸세요."

 

칸타가 간절하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요 사진이 나에게 전달된 것 아닐까요?

꿈보다 해몽이라구요?

그래도 매사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손해볼 게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말 대표로 칸타가 전하는 메시지를 2014년 <알티>의 공식메시지로  삼겠습니다.

 

자신만의 꿈을 꾸세요!

꿈을 믿고 나아가세요!

 

 

설정

트랙백

댓글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보는 경험은 경이롭고 행복하다.

말을 키우며 늘 보는 처지라 말이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의 부분인데 , 카발리아 공연을 보며 말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말이란 스포츠 영역 안에서의 말이고, 평소에는 운동파트너로서의 말이 익숙하다. 이러한 영역 안에서도 말이 지닌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역동성은 중요한 가치로 인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그라운드가 아니라 예술의 장이라 할 무대 위에 나타나니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 말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경탄에 마지않으며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카발리아 공연에서 만나지 않았나 싶다.

 

 

 

이 공연의 주역은 말이다.

주연배우인 말의 아름다움은 함께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비로소 신비롭고도 환상적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공연을 보면 말과 사람은 오랜 세월 지구별 곳곳에서 깊은 유대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이러한 실제적인 삶의 배경을 바탕으로, 기존에 보아왔던 영화나 만화에서 등장했던 구불구불한 갈기를 휘날리며 우아한 걸음걸이로 사람에게 다가오는 환타지를 연출한다.

 

 

막이 오르기 전 무대

 

그러면서도 공연 실제상황에서는 출연하는 말이 아바타가 아니라 실제 존재이므로 간혹 사소한 실수나 말 무리 안에서 멤버간에 호흡을 맞추지 못한 부분도 나타났다. 맨 앞자리에 앉았던 관객의 특권으로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 이것은 관람의 재미를 더 보탰다. 나도 모르게 '쟤는 몸이 덜 풀렸어!' '쟨 좀 긴장하는군!' 하고 중얼거렸다. 일반 관객이라면 전혀 보일 리가 없는 부분이다.

 

 

 

11월 16일 1시 무렵 카발리아 공연을 보기 위해 잠실종합운동장에 가설한 화이트빅탑씨어터를 찾았다.운동장 주변에 심어진 수령이 오랜 나무들이 아름다운 빛깔의 이파리를 달고 있어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 생전 야구라고는 볼 일이 없는 내가 멋진 말 공연을 보려고 그곳에 간 것이다.

 

 

 

티켓은 한 달 전에 예매한 터라 이래저래 할인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티켓 가격을 주욱 살펴보다가 내 평생에 언제 이런 공연을 보겠느냐 싶어 가장 좋은 좌석으로 덜컥 구매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나니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참으로 귀한 공연이다. 요즘처럼 손가락 끝의 터치만으로 수많은 접속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세상에 극장이 통째로 옮겨오다니 놀랍다. 수많은 인력과 말의 시공간적 이동, 물리적 협동으로 비로소  이루어지는 공연이기에 무대에 막이 올라간다는 자체가 경이로움이 아니겠나 싶다.

 

 

 

극장은 화이트 텐트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무게가 50톤이 넘고,운반하려면7대의 트레일러가 필요하며 공연장 설치작업에 총 12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주인공이라 할 말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데 그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오죽하랴. 말 서너 마리를 싣고 어디 다녀오는데도 신경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50여 마리의 귀한 배우 말이 한꺼번에 이동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리라고 본다.

 

공연 전 무대

 

 

공연 시작 10분 전에 미리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뒤이어 밀고 들어오는 관객의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관객들이 좌석을 찾아가는 동안 바닥은 쿵쿵 울려서 가까운 곳에 공사장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진동과 소음이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텐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공연장에 들어오기 전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화면으로 보이는 말들의 영상을 보고 벽면에 가득한 카발리아의 이미지를 훑다가 남편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아마르 (기르는 애마)도 이런 거 시키면 재미있어 할 것 같아."

 "그러게."

 

망아지가 태어난 순간부터 기른 아마르는 놀이본능이 고성능으로 작동하는 장난꾸러기라 다른 말들과 협동하고,많은 사람을 만나는 상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을 다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카발리아 공연팀에 소속한 말의 자격은 외모나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되었다. 말의 본성은 두려움이 많고 예민하다. 그런 말이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강렬한 조명빛과 관객의 시선, 우뢰와 같은 박수, 무대 위의 복잡한 상황을 견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내게는 말 배우 하나하나가 모두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놀라운 명마로 보였다.

 

 

 

카발리아 공연은 서커스와 홀스의 만남이다.

발레와 힙합의 만남이나 국악과 재즈의 만남처럼 장르가 다른 분야가 서로 만나 새로움을 창출하는 시도는 이미 있어왔다. 서커스는 오랜 세월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공연형식이다. 마상곡예는 서커스와 말이 만나는 접점이 될 것 같다. 공중그네타기와 같은 서커스 전문분야와 말 퍼포먼스가 조화와 협동을 이루어내며 한 무대에서 만나니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얼마나 짧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카발리아 공연은 말 애호가나 승마인에게 귀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카발리아 말 배우들은 준수한 용모를 자랑하는 다양한 품종으로 이뤄져 있다.

아라비안, 콤토이스, 호주 스톡마,크리올로, 루시타노, 미니어처, 페인트호스, 페르슈롱, 쿼터호스, 스페인순종마 ,웜블러드 이다.

 

사막,초원, 산맥,숲 등등  인간이 말과 함께 누볐던 대자연을 무대배경으로 등장하는 말은 영화나 순정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구불구불한 갈기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관객의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무리를 지은 말이 질주하고, 함께 어울려 털을 긁어주기도 하고 , 사람과 교감을 이루는 모습도 보여준다. 고난도의 마장마술 워킹을 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에서는 말의 우아하고도 기품있는 자태에 홀리듯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라이브음악은 신비롭고도 몽환적이다. 가끔 안개가 피어오르고 눈,비가 내리기도 하고 자연속으로 들어가 말을 만나고 오는 체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양한 말타기의 진수성찬.

보통 승마를 배우면 자세 잡느라 곤욕을 치룬다. 팔,다리, 허리,등,어깨 등 바른 자세 취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마도란 참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무게 잡고 법도를 지켜야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카발리아 공연에서 그런 강박관념을 와장창 깨뜨리는 통쾌한 장면이 있었다. '막 타기 천태만상'이라 부제를 붙이면 좋을 법했다. 2부에서 서부스타일로 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대체 어떻게 매달렸는지도 자세히 가늠할 길이 없이 그저 말과 사람이 한덩어리로 총알처럼 휙휙 날아다닌다. 그 모습들을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그만  '평소 우리가 말 타는 것은 타는 것도 아니여!' 하는 심정이 된다.

 

 

 

 

카발리아의 최고 미덕은 '말이 최고의 주연으로 대접받는다'가 아닐까?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배우들의 사진으로 담벼락을 길게 이어붙이고 있었다. 사람 배우의 사진이 아니라 말 배우의 사진이었다. 꼭 공연장에 한류스타의 사진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에서  스타의 영화속 이미지처럼 말의 매력이  깃든 표정이 담겨 있었다.

 

 

 

공연의 내용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말들의 역할은 편해 보이는데 사람의 역할은 매우 고달파보였다. 특히나 인간탑쌓기 같은 장면에선 정말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에 비해 말들은 사람이 힘겹게 곡예를 하는 동안 일정한 속도로 설렁설렁(?) 구보를 한다거나 떼지어 자유롭게(?) 질주를 한다거나 했다. 앞서 썼다시피 이런 무대에 선다는 자체로 말에게 엄청한 요구를 한 것이지만 그런 말보다도 사람이 훨씬 많이 뛰어다니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결코 말을 혹사시킨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세부적으로도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있으면 다음엔 사람이 땅에서 스스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 점핑을 하면 또한 사람 혼자 점핑하는 모습이 따랐다. 사람과 말의 하모니가 이루어진 어떤 장면의 엔딩은 사람 배우들이 모두 경외하듯 손을 우러러 말을 떠받들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에서 카발리아 공연철학이 말을 존중하는 바탕위에 서 있다고 보여져서 보기에 좋았다.

 

 

 

 

사방이 말 천지로군! 흐뭇~

 

                                                         쾌적한 관람을 위한 공연 팁!

 

1. 맨 앞자리는 공연 말미에 연못으로 변한 무대에서 말들이 질주할 때 물벼락을 맞게 된다. 대형타올을 줘서 가리면 되지만 부담스러우면 앞자리를 피하면 좋다.

 

2. 앞좌석과 뒷좌석 간격은 매우 좁다. 다리를 꼭 뻗어야 한다면 맨 앞자리가 필수다. 좌석은  플라스틱이라 딱딱하고 차가우니 방석이나 미니담요를 가져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3. 말 배우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기에 임하도록 하고, 말의 움직임에 좌우되는 배우들의 안전을 위하여 공연중 휴대폰을 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어둠 속의 섬광이 말을 자극할 수 있어 본능적으로 돌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공연중 촬영자제는 카발리아 관객의 기본 에티켓이다.

 

 

공연이 끝난 후 vip고객 대상으로 제공된 마구간 투어. 관리사는 모두 여자였고 부드럽게 속삭이며 말에게 다가가 머리(갈기)를 땋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새들이 난다.

 

 

 

 

가을에는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풀은 몸에 흐르던 수분을 점차 덜어가면서 몸피를 줄여나간다.

 

 

 

 

몸피를 줄이지 않고 부풀리는 것은  멀리 날아오르려는 꿈을 간직한 씨앗 뿐이다.

 

 

 

 

 

몸피를 줄인 식물에게서 추상화를 본다.

 

 

 

 

사물에서 보이는 부분을 덜어가다 보면 본질만 남게 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형상에서 더 뚜렷하게 솟아오르는 뭔가를 발견한다.

 

 

 

 

그래서 가을이 좋은 모양이다. 사물이 메말라가는 자취를 바라볼 때 마음이 헛헛하지만 그 사물의 본디 모습을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는 느낌도 있다.

 

 

 

 

올해 가을빛은 들판에 아름다운 색채를 풀어놓았다. 올 가을은 유난히 그렇게 보인다.

 

 

 

 

가을은 색을 덜어나가는 계절이라 생각해왔고 사실 덜어간다는 것은 맞다. 더 들여다보니 덜어낸 자리에 더 아름다운 빛깔이 깃들었다.

 

 

 

 

그 빛깔은 보통 '내츄럴한 색이야!'라고 흔히들 부르는 베이지,브라운,바이올렛,오렌지,블루,크림 등의 색이다. 이 색깔조차 세심하게 보면 뭐라 형언하기 힘든 오묘하고도 알 수 없는 빛깔을 띄고 있다.

 

 

 

 

위대한 작가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작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로맹가리는 세상이나 삶이란 안다고 할 수 있는 영역보다 알 수 없는 영역이 더 많을진대 다 안다고, 알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비판하고 성찰로 이끌어간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통하여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 까지 나아갔다. 인간은 무엇인가?

 

 

 

 

들판이 가을로 물들어 가는 동안 말 아마르는 자주  할아버지와 함께 풀을 뜯으러 산책을 나갔다.

 

 

 

 

아마르가 풀을 뜯을 때 하늘에서는 새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때로는 시끄러운 소리까지 내면서 말이다.

 

 

 

 

새들이 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르도 풀밭에 나와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 할아버지는 아마르가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에게 말하기로는 정확하게 "아마르가 한 곡조 뽑았어. 그리곤 한 곡조 더 뽑았어. 두 곡조를 뽑더니 더는 안 뽑더라구."

 

 

 

 

그게 무슨 소린지 안다. 나도 그 수상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끄으으으' 하고 들리는 목이나 코 어딘가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전통민속음악에 구음시나위라는 게 있다. 재즈처럼 다채롭게 이어져나가는 노래같지만  언어 이전의 원초적 발성이라 의미는 깃들어있지 않고 가슴으로 그 느낌을 전달받아야 한다. 그 어떤 성악보다도 가슴을 훑어내리는 느낌을.

아마르의 노래가 그랬다.

 

 

 

 

정황으로 보아 아마르는 마방에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밖에 나와 콧바람을 쏘이니 기분이 좋았다. 여기에 맛난 풀까지 진수성찬처럼 주변에 잔뜩 있으니 더할나위 없이 기분이 좋아서 곡조를 뽑았다 라고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어떤 이유에서 아마르가 곡조를 뽑았는 지는 알 수 없다.

 

 

 

가을 초입에 북촌 근처에서 열린 세계작가축제에 다녀온 일이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작가들이 나와 낭송,토크를 하는 행사였다. 그 자리에 온 청중은 통역기를 하나씩 받았다. 통역기를 귀에 걸고 볼륨을 적당히 맞추면 뒤에 있는 통역부스에서 통역가가 앞에서 말하는 외국작가의 말을 통역한 내용이 들렸다. 듣기가 참으로 불편하고 어색했다. 외국작가는 자신의 모국어 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도 의사표현을 했다. 언어도 어조에 다채로운 뉘앙스를 담아 표현했다. 하지만 통역기에서는 건조하고 기계적인 내용만 국어책 읽듯 읊어대니 내 귀에서는 뭔가 호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답답한 나는 문학에서 말하는  '행간과 여백을 읽으라' 는 구절을 떠올리며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르가 왜 노래를 불렀는지 진심으로 알 수가 없다.

 

 

 

 

지난 세월 말과 함께 지내는 동안 '종으로서의 말'에 대하여 이해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여름에 땅에서 자란 초목에 물이 오르는 것처럼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가을의 그림자를 밟고서 내 안에 저장된 '앎의 수분'도 비워내려고 한다.

 

 

 

 

삶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잡았는가 싶었는데 저만치 달아나 있는 무지개 같아 보인다.

 

 

 

 

내가 말에 대하여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앎의 틀 안에 말을 가두어버릴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오만하고 우월해지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린 나를 말이 슬픈 눈빛으로 바라볼까봐 두렵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머릿속이 지어낸 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말에 대하여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한 알면 알수록 점점 모르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말보다 우월하지 않다.

 

 

 

  

                                   아마르는 헝크러진 실타래 같은 덤불더미를 찾아가 들추고 헤집어

                                   긴 풀줄기 끄댕겨올려 씹어대는 것을 좋아한다.

                                   반대로 칸타는 덤불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땅바닥에 달라붙은 키작은 풀만 골라먹는다.

 

 

 

 

                                   아마르와 칸타가 입에서 위장으로 풀을 뜯어 날라 가득 채우는 시간에,

                                   나는 머릿속에 가득 채웠던 것들을 덜어낸다.

 

 

 

 

                                   이 가을에

 

 

 

 

                                    아마르는 진정,

 

 

 

 

                                  무엇을 보았을까요?

 

 

 

 

 

 

설정

트랙백

댓글

 

 

가을을 알리는 전령 코스모스가 승마장 안에도 활짝 피어났다.  지금부터 석 달 정도는 승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나날이다.

 

 

 

                

 

 

                                                                          나와 칸타빌레

 

 

 

                                         

                                                                    행복한 그녀와 축복이

 

 

 

                                            

   

                                 아마르는 이모할머니에게 멋진 재킹과 모자(?)를 선물받았다

                

 

                                                               

 

 

 

                                  

                                                     

   초가을의 정취 속에서 말과 더불어 즐기는 유동화 원장님과 미그웨치 아카데미 여러분

 

 

               

 

 

 일요일 오후 4시쯤 마장에 도착했다. 아직 한낮의 열기가 뜨거워서 그 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 거다. 마장을 향해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며칠 전에 새로 산 CD <비긴 어게인> 음악을 들었다. 신나는 리듬이 내 안의 새로운 에너지를 일깨우는 동안 잠시 후에 만날 칸타를 떠올렸다. 칸타가 나를 보고 기뻐하며 어떤 기대에 찬 표정을 지으리라 생각하니 즐거움이 솟아올랐다. 그렇다. 내 승마의 즐거움은 말을 만나러 가는 동안에 이미 생겨나서 팽창되고 탄력이 느껴지는 기분 상태가 된다.

 

 

 

 

 

요즘 내가 승마에 대하여 가지는 가장 커다란 생각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순수한 기쁨' 이라 말하겠다. 곰곰 옛일을 떠올려보아도 내가 애초에 승마를 시작한 까닭이 말에게서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때묻지 않았던 기쁨은 대략 3년이 지날 무렵엔 매우 작아져 있었고 , 나머지는 승마로 인해 겪어야 하는 일에서 생겨난 온갖 문제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는 출간한 에세이집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에세이집을 세상에 선보이고 난 후 나에게 그때 그 시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의 창이 생겨났다. 말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큰 틀에서는 별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현재도 말과 관련하여 얼마든지 스트레스 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면했을 때 매력을 느끼게 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말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만나고 있는지 조금만 돌아보면 그 기쁨에서 도자기의 미세한 금과도 같은 균열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말은 '가두어진 말'이다. 말이 살아가는 공간은 마방과 마장 전체 팬스 안이 거의 전부이다. 말이 마방 밖을 돌아다니는 자유라도 얻으려면 대부분 등에 안장을 얹고 사람을 태운 후라야 가능하다. 또한 우리 승마계가 일반적으로 채택한 라이딩 방식은 영국식으로, 기본적으로 굴레 안에 말을 가둔 상태에서 가두어진 에너지를 활용하여 말의 신체적 표현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그러한 모습의 말을 바라볼 때 우리들 역시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가두어진' 존재이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부자유스러움으로 인하여 말이 갖고 있는 그것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말은 가두어짐으로써 억압된 자유로움을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행동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럴 때 자유롭고도 기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에 제동을 걸게 되고 ,사람과 말 사이에 어떤 어긋남과 거리감이 자리잡는다.

 

 그렇다고 하여 말이 "나는 갇혀 살기 때문에 불행해요." 라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직장에 매여서, 좁은 집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오롯이 그것 때문에 불행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칸타와 아마르를 하루 정도 마방에 두었다가 밖에 나가자 하면 무척 좋아한다. 밖에 막 방목되었을 때 깡충 뛰어오르거나 머리를 흔드는 식으로 기쁨의 표현을 한다. 그렇게 기분 좋아라 놀다가도 칸타는 1시간, 아마르는 3시간 정도 지났을 때 마방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또 기승운동이 끝나고 마무리를 하고서 마방에 들여보내면 편안해한다. 이럴 때 나는 어디 좋은 여행지 갔다가도 집에 돌아왔을 때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칸타와 아마르가 적당히 놀다가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서 놀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해줄 수 없는 나는 엄청난 고민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방에서 살아가는 말에게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마방의 말에게 가장 큰 문제라면 '심심함'일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도 그것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말들이 이럴 때 아주 좋아라 한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일단 마방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해서 볼거리가 많아야 한다. 하다못해 말 그루밍해주는 모습 구경하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외부에서 처음 들어온 말은 내가 칸타나 아마르에게 다정하게 그루밍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는 저런 모습도 다 있구나."하고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럴 땐 새로 온 말이 그간 살아왔을 모습이 가늠되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슬픔은 말과 지내는 동안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은 감정이다.

 

 말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으면 듣기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종종 마방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두고 지인과 앉아 때로는 차까지 마셔가며 대화를 나누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 뒤통수가 간지럽다 싶어 돌아보면 어김없이 말들이 쳐다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방의 모든 말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 하고서 대화를  재미나게 경청하기 일쑤다. 상상력이(?) 풍부한 어떤 말은 아예 넋나간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표정을 보면 내 화술이 그렇게 뛰어난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가끔 색다른 간식을 떡 돌리듯이 조금씩 나누어주면 희열에 차서 마방 전체가 난리가 난다. 이밖에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말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은 참으로 많다. 이조차 누리지 못하고 사는 승용마도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말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말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승마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도 참으로 많다. 며칠 전에 칸타에게 치장(?)을 해주고 실내마장에 들어갔다. 그때 마침 갤러리석의 여자분 하나가 "어유, 아마르 굉장해요." 하며 감탄을 하고 난리가 났다. 순간 나는 아마르가 무슨 마장마술 동작이라도 신통하게 구사해서 감탄을 자아낸 건가 하고 쉽게 오해했다. 하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진실은 아마르가 운동하다 똥을 쌌는데 엄청나게  많이 싸서 감탄을 자아낸 거였다. 곧이어 실내마장 안에 서 계시던 회원이 통을 들고가 똥을 치우고는 "통이 꽉 찼어요." 라는 멘트를 날려서 주변은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만일 그 순간에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갇혀 소소한 웃음거리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분위기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

 

 

 

 

 영어에서 문어와 낙지는 모두 octopus라고 한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은 문어와 낙지맛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의식적인 개념이 구분되어 있지 않으니 미각이라는 감성마저도 영향을 받은 탓이다. 승마라는 행위에서도 그 행위의 개념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며 얻을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고 본다. 내가 승마를 시작한 이래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승마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일수록 웃는 모습이 적다는 거였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말을 대하거나 타면서 매우 심각한 사람이 승마선수나 코치,교관인 경우가 많고 마장운영자도 심각함에서 뒤지지 않았다. 내가 볼 때 억 소리나는 말을 몇 필이나, 하루 종일, 그것도 매일 탄다면 입이 귀에 걸려 다물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오히려 반대였다. 또 대회에 참가하거나 자격증을 얻기 위해 말을 타는 경우에도 그랬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중고등학생 시절을 엘리트 승마선수로 경력을 쌓아왔던 청소년들이 대학에 가서 말을 타지 않을 때다. 열거한 경우에서 공통점을 모아본다면 '목적지향적'이나 '성과'를 추구하는 개념을 갖고서 승마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승마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명백한 목적과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과 함께 '즐긴다'라는 개념이 양쪽 날개를 이루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거다. 더 나은 성취를 위해서도 '즐긴다'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그 어떤 '목적'이나 '성과'도 염두에 두지 않은 체험승마인이나 어쩌다 짜투리시간을 내어 말 등에 오른 이들에게서 참을 수 없이 벙글어지는 순수한 웃음을 발견하기가 쉽다. 또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클럽말 탈 때는 열심히 타다가 막상 자마가 생기니 말을 잘 안 타더라,하는 소리다. 물론 타는 횟수나 기승시간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즐겼느냐?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니 반성할 점이 많다. 누가 보면 부부가 함께 타는 말이 두 필씩이나 있으니 원없이 말을 타겠구나 부러워할 처지다. 그런데도 나 자신은 말 관리나 관계자들과의 관계 등 이런저런 문제를 시시콜콜 고민하면서 말을 타는 순수한 기쁨을 스스로 훼손해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요즘 들어서 나는 자신에게 늘 주문을 걸고 있다. "나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 말을 타는 거야." 주문 탓인지 온갖 잡스런 생각에 골몰하지 않고 칸타나 아마르가 주는 기쁨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있다.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리멸렬함 투성이지만 그 안에 섞여있는 보석같은 기쁨을 주워서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분명 기쁨의 총량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어제 오후 나는 칸타 등에 올라앉아 있었다. 말 등에서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니(?)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배추의 푸른잎은 흐드러지고 ,논은 노랗게 물들었고, 하늘은 파란 가운데 떠가는 구름 모양이 아기자기 다채로웠다. 순간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나니, 내가 이 순간 무탈하고 건강하여 칸타 등에 앉아 가을의 한가운데를 걸어다니는구나 싶어서,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가을을 좋아하므로 가을 내내 나는, 말과 더불어 즐길 것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

 

(2014.2월에, 졸음에 겨운 아마르)

 

 지난 7월 31일에 아마르는 6세 생일을 맞았다. 엄마 뱃속에서 세상빛 아래로 나온지 만 6년이 되었다. 5세까지는 지인과 함께 생일축하를 했었지만 올해는 하지 않았다.작년까지는 한 해 한 해 생일을 맞을 때마다 ,'또 무사히 생일을 맞았구나' 하는 심정과, '아직도 말은 커가는 중'이라는 보호자의 심리적 태도에서 놓여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올해 생일에는 '이제 다 컸구나' 하는 안도감과 '어디 내놔도 말구실은 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마방의 여느 말들이 생일축하를 받지 않는 것처럼 그냥 생일을 지나치기로 해서 그렇게 됐다.

 

 김애란 작가가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책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쓴 구절이 있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하고.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윗 구절을 읽고서 백 배 공감할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아 길러본 부모 입장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아마르는 내 배를 아파가며  낳은 생물학적 자식은  아니다. 아마르의 생물학적 엄마는 칸타이지만 칸타가 제 새끼에게 석 달 젖을 먹인 것 외에는 양육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나와 남편에게 떠안겨졌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화자의 부모는 십대여서 아이를 낳은 후 자신들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 아이를 안는 법부터 해서 -  그 부분도 읽으며 웃음이 나왔다. 우리 부부 역시 난데없이 출연한 망아지에게 뭘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부모가 되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서너살 이전의 삶을 ' 아이 기르기 '를 통해  다시 살 수 있는 까닭은 사랑의 힘이다.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의 마음은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아이가 매개가 되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전의 삶과는 결코 다른  감각들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타인이 되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연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순간 이 상황을 어떻게 느낄까에 자꾸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상태 아니겠는가.

 

 망아지는 시시각각 자라면서 나에게 새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망아지가 자신을 둘러싼 별별 시시콜콜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하여 호기심을 발휘하여 살피고 놀라워 달음질칠 때 ,순수한 감각이 닫히지 않고 활짝 열려있는 상태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망아지가 환희에 솟구쳐오르고,슬플 때 눈물을 떨구고,공포에 사로잡히고,화를 내는 다채로운 감정의 변주를 드러낼 때 ,순수한 감정이 억압받지 않고 물 흐르듯 흐르는 상태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망아지를 스승삼아 바라보았을 때 ,망아지는 나로 하여금 사십여년 세상 살아오는 동안 닫히고,막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본성을 회복해나간 시간이 아마르를 키워낸 시간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자꾸 '아마르 키워낸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 ,잃어버린 나를 서서히 되찾아가는 과정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자연과 분리된 사람이 ,자연과 연결되는 조짐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함이 아닌 것 같다. 승마를 하는 한 여성이 들려준 말이다. 평소에도 무척 깔끔한 그녀가 여름휴가지에서 변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식사를 하는데 파리가 음식주변에 날아다녔다. 파리를 본 아이가 기겁을 하며 "으악,파리다!" 하고 난리를 쳤다. 그녀는 "뭘 그래? 그냥 휘휘 쫒으면 되지." 하며 대충 손으로 휘저으며 아이에게 식사를 하라고 했단다. 옛날 같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라고 했다. 파리는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일부라기보다는 존재하지 말아야할 공공의 적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파리도,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도, 마분도 자연스러운 존재로 느끼고 있으며 승마를 마치고 한 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씻는 달콤함을 즐기게 되었다. 말의 시선을 따라다니면 풀줄기의 아름다움과 꽃향기, 새소리의 고혹스러움에 매료되는 감각의 풍요로움 뒤에 충만한 감정도 느끼게 된다.

 

 8월에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흐린 날이 대부분이다. 요사이 한강을 따라 차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시야가 확 트여서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데까지 볼 수가 있다. 세상이 마치 회화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 예민한 감각으로 눈앞의 풍경을 바라볼 때 내 안에 말이 들어앉아서 ,말의 눈으로,오감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구나 싶어진다. 그럴 때 도시를 누비며 걸어다니는 나는 그 세상이 삭막하고 황폐할지라도 얼마든지 헤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내면에서 느낀다.

 

 엊그제 아마르 등짝에 앉아봤다.(평소엔 거의 남편 차지임) 평수가 너르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탄성좋은 스프링 침대에 걸터앉은 느낌과 비슷하달까. 든든한 것이, 말 등짝이 내 엉덩이에게 말 걸어왔다.' 언제든 여기 앉아서 세상 살 힘을 충전해가세요! ' 참으로 듬직했다. 이제 내 나이는 부모가 등을 토닥여줄 나이가 아니다. 외로울 때가 많다. 이때 앉아 쉴 편한 말 등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떠올려보았다. 아마르도 망아지 시절에 보채며 뭘 요구할 때에 기꺼이 들어주고 안아주던 나에게 든든함을 느낀 적이 있었겠지.

 

 6세 아마르 카테고리를 열었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 어떤 인생의 그림들이 담길지 그 훈훈한 광경을 꿈꾸어본다.

설정

트랙백

댓글

 

 

 잘들 지내고 계신지요? 저도 잘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가 한 달이 넘었습니다. 할망이 이토록 오래 글을 올리지 않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더군요.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 있는지, 어디 먼 곳에 여행이라도 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제가 해외 오지에 여행을 가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글을 올릴 수 없었다는 거였죠. ㅋㅋ~  제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고요,  단지 좀 쉬어가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애마들과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차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는데 현수막에 적힌 '애마'라는 단어가 확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체문구는 <당신의 애마를 성심껏 돌봐드립니다>. 문구를 봐선 승마클럽에서 내건 자마회원 유치 광고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차 정비업소가 내건 문구였어요. 사회적인 통념으로 '마이카' 와 '애마'가 의미의 동일시를 이루고 있는 셈이죠. 뭐 탄다는 점에선 그렇습니다. 일전에 클럽을 방문한 어떤 분이 이런 저런 말끝에 "저 사모님은 말이 두 대래요." 라고 일행에게 하는 말을 듣고 웃었지요. 겉으로 웃기는 했으나 그런 말을 들으면 언제나 속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계와 생명을 지닌 존재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을 '한 대' '두 대'로 여기는 사람은 필시 말도 차처럼 감정도 없고, 가격에 따른 기능이 있으며, 쓰다가 휙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지요. 그런 사람은 말을 타는 '도구'쯤으로 여긴다는 반발감이 제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던 겁니다. 언제부턴가 '말 = 도구'의 개념에 거부감을 가졌지요. 하지만 '도구'라는 말을 더욱 넓은 의미로 확장해 본다면 꼭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가 생겼어요.

 

 

 

인기 티브이 프로그램인 <무르팍도사>에 소개된 유명 첼리스트 장한나 씨의 일화입니다. 장한나 씨는 한국을 빛낸 세계적인 음악가 중에 한 분이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다 보니 그녀는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바로 그 시간 속에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장한나 씨는 꼭 비행기 티켓을 두 장 산다고 합니다. 한 장은 당연히 본인이고, 나머지 한 장은 누구 것일까요? 바로 '첼로'의 자리였던 겁니다. 비행기 좌석에 장한나 씨와 나란히 앉은 첼로 장면을 상상하니 , 첼로에서 인격이 느껴지고 존재감이 증폭됩니다. 사실 해외여행 갈 적에 여행가방을 수하물 맡기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떠나보내는 심정은 어찌할 수 없이 애잔해지더군요. 나의 체온과 체취가 아직도 남은 채로 어딘지 모를 미궁으로 실려가는 모습이 애처러워서지요. 찾을 때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게나 내던져져서 벨트에 실려 이동하는 짐들을 보면 빨리 내 가방을 찾아서 구출해야지 하는 심정에 가까운 마음이 됩니다. 예전에 한 번은 지인들과 비행기 타고 승마여행 가는데 안장을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가지고 가지 말자'로 났지요. 소중한 안장이 수하물로 당할 '취급'을 생각하니 차마 그리 할 수는 없다는 쪽으로 손을 들어줬던 겁니다. 개인 안장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장한나 씨에게 첼로는 비교불가능한 '소중함' 그 자체일 테지요.

첼리스트의 영혼의 울림을 기교적으로 완성해주는 실체는 바로 악기, 첼로이니까요. 그래서인가 유명한 음악가가 연주하는 클래식 악기는 뭔가 영혼이 깃들어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그렇습니다. 연주할 때 모습이 머리를 악기쪽으로 기대고 감싸안은 모습이어서 그런 느낌이 듭니다. 특히나 첼로는 연인과의 포옹을 연상케 합니다. 우아함, 격정, 떨림,부드러움의 혼돈에 서로의 몸을 내맡긴 연인들 말입니다. 첼리스트의 역량은 당연한 얘기지만 악기를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어땠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첼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떨림' 그게 다입니다. 음악가가 발휘하는 예술적 역량은 '도구'인 첼로라는 악기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승마인이 가진 말을 다루는 역량은 그가 타는 '말'에서 구현됩니다. 승마인 사이에서 승마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컬을 때 관용구로 '저 사람 말 참 잘 탄다'라는 말을 씁니다. 제 귀에는 '잘 탄다'라는 말이 '악기를 잘 탄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들리기도 해요. 흔히 악기는 '탄다'라고도 표현하니까요. 승마경기에서 점수는 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말'은 '악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이전까지 거부감을 가졌던 '도구로서의 말'도 의미가 성립한다고 하겠지요. 장한나 씨가 자신의 첼로에게 한 장의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는 것은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프로 뮤지션의 마인드입니다. 말을 타는 사람 역시 자기 말이 최선의 기량을 펼쳐보이도록 아끼고 돌봐주어야 하는 마인드가 겸비되어야겠지요.

 

어제 늦은 오후에 승마장에 가서 칸타를 타고 목욕시키니 6시가 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며 뿌리는 비가 사나워서인지 승마장에는 회원이 없었는데 승마선수인 젊은이 한 명만이 말을 운동시키고  목욕시키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말과 인연을 맺고 뼛속까지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그 젊은이가 말 목욕시키는 광경을 몇 번 보았는데 역시 프로스러운 면모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샴푸를 할 때 보통 말 머리는 남기고 샴푸하는데 이 친구는 말의 온 얼굴에 샴푸범벅을 했고 말도 오랜 세월 익숙해졌는지 거품속에서 눈만 껌뻑껌뻑하며 얌전했습니다. 한바탕 '비누거품난리'가 난 후에 닦을 때도 온 정성을 다하는 바람에 관리인이 지나가다가 '너는 말 목욕 한 번 시키는데  무슨 수건을 그리도 많이 갖다 쓰느냐' 고 폭풍잔소리를 퍼붓기도 하더군요. 어쨌든 보기좋은 광경임에 틀림없어요. 이 젊은이 뿐만 아니라 기승 전후로 말 돌보기에 정성을 다하는 승마인의 모습은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특히 남자는 더더욱! ) 그 모습은 말과 함께 파트너십을 이루어 최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꼭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의도에서 비롯되는 행위니까요.

 

첼로와 애마가 닮았다?

 

각각 악기와 동물이지만 다루는 사람의 기량을 눈앞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다 하겠지요. 뿐만 아니라 형태에서도 닮은꼴이라는 점을 아시는지. 말들을 방목시켜놓고 건물 2층에 올라가서 구경하다가 발견했던 사실이지요. 위에서 말을 내려다 보면 머리로부터 꼬리에 이르는 몸통의 윤곽이 꼭 첼로를 닮았지요. 색깔까지도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요?

 

장한나 씨가 부럽습니다. 왜냐고요?

완소 첼로 군과 전 세계 어디든 함께 갈 수 있잖아요.

저도 애마에게 비행기 티켓 사주고 싶다고요 잉잉 ~ 

설정

트랙백

댓글

 

    

     행복한 승마 - 굿호스맨쉽 ( 지은 이 : 케이트 박 / 펴낸 곳 : 분홍개구리 )

 

 

 

     저자 케이트 박 님과 장군이

 

 

    

 

 

 

 

 

 

 

 

 

 

 

 

 

 

 

 

 

 

 

 

 

 

 

 

 

 

 

 

 

 

 

 

 

 

 

 

 

 

 

 

 

 

 

 

 

 

 

 

 

 

 

 

 

 

 

 

 

 

 

 

 

 

 

 

 

 

 

 

 

 

 

 

 

 

 

 

 

 

 

 

 

 

 

 

 

 

 

설정

트랙백

댓글

Impressionism manet.jpg 

 

상단 첫번째 그림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1863,캔버스에 유채

 

 

 

  오후 6시 무렵이 되니 햇살이 부드럽게 대지를 어루만진다. 아이들과 남편과 풀밭에 나왔다. 말과 인연을 맺은 후로 우리 아이들이 누리는 최고의 풀밭이다.  승마클럽 부지 옆에 딸린 땅을 클럽측에서 임대했는데 가운데는 밭, 가장자리는 승마트랙으로 용도가 결정됐다.

 승마트랙은 곧 풀들에게 점령당했다. 풀의 영토, 날벌레와 기어다니는 벌레가 신도시를 개척했다며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문명인스러운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풀밭에 나와 칸타와 아마르가 풀을 뜯는 모습을 무심히 보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십 년이나 말과 풀밭에 산책 다녔는데 왜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떠올랐나 의아할 정도다. 말과 사람이 함께 풀밭에 나와 즐기는 모습에 , 그 유명한 명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겹쳐졌다. 

  학창시절, 미술책에 나와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풀밭에서 신사 두 명이 나오고, 그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구도의 핵심은 알몸의 여인이다.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당시 사회에 일파만파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까지는 여신의 누드는 그렸어도 사람의 누드는 그리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누드여인이 당돌하게도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거리낌도 없이 관객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불붙은 듯한 충격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거기에는 탈의와 착의, 자연과 문명, 남자와 여자라는 대립항이 들어 있다.

  이 그림이 발표된 시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진 여인의 시선은 강렬했기에  ,이 그림은 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미술사에 새겨지게 되었다.

 

 

 

  풀밭에서 우리는 사람과 동물, 자연의 시간에 머무는 존재와 문명의 시간에 머무는 존재, 탈의와 착의 상태로서 구분지어진다. 우리는 이 순간을 함께 머무는 상태다. 사람이 초식동물을 기르기 시작한 이래 모든 시간을 망라하여 , 사람과 초식동물은 함께  풀밭에 머물러왔다. 풀밭에 삶이 있었다. 그 모습이야말로 <풀밭위의 점심식사> 오리지널 이미지가 아닌가?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에서 '옷을 입었다' 와 '옷을 벗었다' 는 당대성을 표출하는 첨예한 문제였다. 근대 이전은 신의 세계다. 종교야말로 절대의 가치를 담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종교와 맞잡은 귀족들의 계급이 뒤를 이었다. 자연이나 인간 자체는 하잘 것 없었다. 종교지도자나 귀족은 곧 절대권력이었다. 권력은 속성상 권위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도덕이나 관습,규율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옷은 그러한 장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도구이다. '옷을 벗어던지다'는 것은 도덕,관습,규율을 깨뜨린다는 혁명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마네의 그림이 센세이션의 다이너마이트 작용을 했다. 당시의 기득권층은 그때껏 가려왔던 종교나 권력의 허울이 찬란한 빛을 받고 색바래버릴까봐  두려워하여, 여신의 누드는 봐도 여인의 누드는 불가하다며 찌질한 아우성을 징징거리지 않았겠나.

 

 

 풀밭에서 식사(?)하는 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안함이 내몸의 혈관을 고루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테헤란로 거리를 바삐 걸어가는 신사가 있다. 신사복 정장에 안에는 빳빳한 와이셔츠와 넥타이, 발에는 딱딱한 구두를 신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내 목을 옥죄는 것 같다.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삶은 알몸으로 태어난 이후로 내내 부자연스럽다. 옷을 벗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교복, 군대에 가면 군복, 직장에 가면 유니폼, 뿐만 아니라 운동할 때, 데이트할 때, 비지니스 계약할 때 입는 옷이 다르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보이고 싶은 모습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옷 입은 모습이 그의 본모습이라 착각하고, 스스로도 특정한 옷입은 자신이 진정한 자기자신이라  믿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옷 벗은 상대나 자신을 대면할 때 큰 혼란에 휩싸이고 급기야 지독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연애할 때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혔던 남녀가 결혼식 끝나고 석달 열흘간 생애 최고의 전쟁에 휩싸이는 것도 옷 입을 때는 몰랐던 낯선 타자와 대면하기 때문이다. 엄마 그 자체에 충실하게 살아온 중년여인이 자식이 떠나고 빈둥지 증후군에 빠지고 평생 몸담던 직장에서 퇴직한 가장이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것도 옷입은 자신 외에는 대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르가 풀밭에서 알몸인 채로 식사를 한다. 자연스럽다. 음식은 복잡한 요리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뭘 먹나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다. 풀밭에 나있는 놈들 중에서 입맛 땡기는 대로 뜯어먹으면 된다. 아마르가 풀 사이에 당근풀이 숨어 있어서 고몸을 쏙 뽑아내면 주홍빛 당근이 딸려올라오는 것을 알았다. 녀석의 입에 손가락만한 당근이 대롱거리다가 쏙 딸려들어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칸타의 기호는 당근보다 그냥 긴 풀이다. 입에 당근 이파리가 걸리면 퉤 뱉고서 딴걸 찾는다.

 

 

 

 

  내가 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아무런 가식도 위선도 체면도 필요없이 그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머무를 수 있어서다. 정치고, 종교고, 가치관이고, 신념이고 풀밭에서는 가녀린 풀대궁 하나만한  가치도 없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재음미해보니, 내가 말을 따라서 풀밭에 풀시중 나온 일이 매우 혁명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로 종교나 계급사회가 타파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상은 어떤 권력이나 세력이 암암리에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 선언하고 성난 프랑스 시민들이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한 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가장 힘든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일 것이다. 옛날에야 신의 뜻대로, 왕의 뜻대로 살면 되었지만 지금은 내뜻대로 살라 한다. 민주주의 자유국가 시민이므로 그리 살라 한다. 내가 고민해서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은 고단한 삶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가 좋다하는 대세의 물결을 따르는 게 차라리 편하다. 오늘날 대중문화, 소비문화의 발달은 이 지점에서 탄생하고 번성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욕망이나 감각이 무엇인지 외면하고 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던 마네의  <풀밭~ > 그림 이후로 수많은 유사작품이 그려졌다. 조르지오네, 티치아노, 피카소, 존 드안드레아 같은 화가가 그들이다. 마네 작품도 사실 이전에 원본이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화가인 마르칸티오니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에는 서로 분쟁하는 여신들 틈바구니에서 그들의 일일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태평하게 대화하는 바다의 신들이 풀밭위의 점심식사에 나오는 구도와 자세로 나온다. 역사가 유구한 그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동경하고 추종하는지도 모른다. 아웃도어 산업의 발달이 그 증거다. 핫트랜드인 캠핑이야말로 풀밭에서 밥 한끼 먹어보겠다는 열망 아니겠는가. 그 열망을 충족하려고 막히는 도로를 기어기어 다녀오는 일도 불사한다. 넥타이와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박한 열망이 현실에서는 힘겹게 이루어야만 하기에 눈물겹기조차 하다. 이래저래 살기가 힘들다. 일하랴, 쉬랴.

 

 

 

 

  말과 지내기 시작한 후로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비행기를 탈지언정 절대 장거리 드라이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그 욕망을 잠재우는데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진정한 오리지날 <말과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 아이들과 풀밭에 나갈 때 망사마스크를 씌워주는 것은 ,실제적 이유야 날벌레를 차단하려는 거지만 거기에 의미 하나를 덧씌워보자면 '내가 속한 문명을 존중한다.' 이다.

 

 

 

 

 문명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이야말로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풀밭 위의 칸타와 할망은 보랏빛으로 소품과 의상을 '깔맞춤' 했나?

 

이 글은

말 아이들에게 최고의 만찬을 선사한

풀밭에게 경의를 표하는 '풀밭예찬'이기도 하다.

 

 

 

 

설정

트랙백

댓글

 

 장마가 오기 전 6월은 신록이 절정을 이룬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도 비단처럼 매끄럽다. 보송하고도 따뜻한 공기의 속살에  맘껏 부비고 싶은 듯 말 아이들의 동작이 활발하다. 운동장에 모인 멤버 역시 잘 만났다. (왼쪽부터 아마르, 수아, 레이) 레이만 나오면 큰말들이 장난으로 몰이를 하고 추격전을 벌이곤 한다. 그러다 아기(레이)가 힘들어 하거나 구석에 몰리면 잠시 멈추고서, 아기가 숨통을 틔우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놀곤 한다. 어디까지나 레이가 아기라고 큰말들이 여기기 때문이다.

 

 

 

 수아와 레이만 있을 때는 수아가 "이런 놀이 가르쳐 줄게!" 하는 것처럼 운동장을 트랙 삼아 전력질주 한다. 레이와 수아가 벌이는 레이싱, 경마장 놀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 수아와 레이 사이는 사이좋은 누나와 어린 동생 같다.

 

 

 

 어느 순간, 천진난만한 동심의 분위기가 흩어지면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아가 급 얌전해지고, 레이는 공기 중에 떠도는 특이한 향을 콧속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아마르는 '이 분위기 대체 뭐야?'

 

 

 

 보이는 장면은 커플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낀 가족처럼도 보이는데, 이상하다.

 

 

 

이 순간

 수아는 암말의 향기를 진하게 풍겼다 할 수 있고, 레이는 그 향기에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좀 이상하다 ,그치?

 

 

 

 이상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괜히 한 바퀴 달리기를 시도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체온만 높아져서 그 수상한 향기를 더 풍부하게 퍼뜨렸을 뿐이다.

 

 

 

 어린말들이 노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 고독한 포즈를 취하고 선 말은 칸타. 이 상황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 꿰고 있는 눈치다. 칸타의 침묵은, 그러나 상황에 대처하는 말의 입장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암말의 향기에 반응하는

 

 

 

 수말의 '플레멘 반응'

 

 

 

 레이가 독특한 향기의 진원지를 드디어 발견했다.

 

 

 

 아마르에 비하면 귀여운 '미니 플레멘 반응'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보아도

 

 

 

 어떻게 무슨 매뉴얼을 실행해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레이는 아무래도 내가 너무 작거나, 누나가 너무 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아마르는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 게 다일 뿐이라고 생각했을까? 가장 답답한 처지에 놓인 말은 당연히 수아겠다.

 

 

 

 거대한 똥과 작은 새가 만났을 때, '이건 대박이야!' 물컹한 섬유질 덩어리가 품고 있는 덜 분해된 곡식알을 쪼아 먹을 때 새가 외칠 법한 말이겠다. 새에겐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다.

 

 

 

 춘정이 혼곤하게 흐드러지는 계절을 맞이하는 1세마 미니어처 레이에게 비친 세상은 온통 큰 것들만 수두룩하게 널려서 상대하기조차 뒷목 땡기는 , 뭐 불편한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내맘대로 안되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레이가 그런 세상이치를 하나씩 겪어나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큰 것과 작은 것의 조합으로 뭔가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 승마가 그런 게 아닌가?

 

 

 

 말이 그렇게 큰 몸피를 가지지 않았다면 작은 몸피의 사람과 한몸이 되는 승마의 예술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편자는 행운의 상징이면서 ,승마의 대표적 상징도 된다.

뚫린 원처럼 보이는 편자가 양팔로 감싸안는 모양을 연상케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작은 사람의 다리로 큰 말의 몸통을  감싸는 행위가 승마가 아니겠는가?  

서로가 정신의 교감으로 연결하고,다리로 몸통을 감싸는 행위로서 승마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레이에게로 가보자. 어느 날 나그네가 하나 와서 잠깐 클럽에 들렀다. 클럽 터주라고 위세를 부리려는데 큰 것이 만만찮게 나온다. 이러다 본전도 못찾고 스타일이나 구기겠네.

 

 

 

 담임쌤도 키가 훤칠하게 크다.

 

 

 

                              이런 젠장, 아마르 형이 자기네 할배를 태우고 가니 키가 어마무시하게 크네.

 

 

 

                                  에라 ~ 이럴 땐 그냥 자빠져서 가려운 등이나 긁자. 에이 퉤퉤퉤 ~

 

 

                                 여러분도

                       인생에 어떤 키 큰 것들이

                       끼어들어서 어깃장을 놓는지요? ㅋㅋ...

설정

트랙백

댓글

 

2014.5.27. 반가운 유예 님과 칸타의 만남. 사진 분위기 봐서는 주인과 애마구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다. 칸타는 왕새침떼기라 아무나하고 다정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 말이다. 말은 귀로 V 를 한다.

 

 

 옛날에 아이가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라는 말로 울음을 뚝 그치게 했다. 그만큼 호랑이가 무서웠다는 얘기겠다. 그 호랑이에 해당하는 존재가 칸타에게도 있으니 , 그게 뭐냐면 어이없게도 양! 배! 추! 다. 양배추는 칸타에게 어마무시한 공포의 화신이다. 처음부터 양배추가 공포스러웠던 건 아니고 최근에 그렇게 됐다.

 

 양배추는 사람이 즐겨먹는 필수야채다. 샐러드에 빠질 수 없는 감초이며, 갖은 요리에 양배추가 들어가야 풍미가 살아난다. 양배추가 들어가지 않은 닭갈비를 생각해 보라. 주방에서 요리하고 나서 자주 생기는 야채 부스러기가 양배추이기에 칸타나 아마르는 매우 오래 전부터 양배추를 조금씩 시식해왔다. 그렇기에 그 맛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즐긴다고 해야 맞다.

 

 얼마 전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양배추 값이 유난히 쌌다. 남자어른의 머리통 만한 양배추가 대략 천 원 정도. 이럴 때 한 통 사서 아이들에게 맘껏 먹여보자 싶어 말 간식용으로 한 통을 샀다. 문제는 먹이는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양배추를 어떤 모양으로 주느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양배추 짜투리를 줄 때는 딱딱한 꽁지이거나 좀 두꺼운 종잇장 형태였다. 이 경우에 쩝쩝 맛나게 잘 먹었다. 한데 어른 머리통(?)을 주려니 자를 때 1/2, 1/4, 1/8 순서로 분할했다. 양배추가 8분지 1 조각이 났을 때 말이 먹기에 편하겠다 싶어서 그 덩어리를 말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양배추를 넣고 돌아서서 한두 걸음 뗐을까 우당탕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야 ,하고 소리가 난 칸타 방으로 갔다. 양배추에  날개가 달렸는지 최초에 놓아준 밥그릇에서 1미터는 떨어진 문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칸타는 좀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그 후로 아마르가 양배추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먹을 때 늘 그렇듯 씩씩하게 입을 벌렸다 앙 다물며 양배추를 베어 물었는데 순간 아삭!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냉장고에 신선보관하는 동안 양배추가 밭에서 살 때처럼 싱싱해져서 그만 그런 소리가 났다. 아삭! 소리가 나자 아마르가 흠칫 놀랐다. 아하 그래서 칸타가 놀랐고 놀라는 통에 양배추가 날아갔구나 알게 됐다. 그후로 아마르는 조심해서 양배추를 먹었다. 칸타는 한번 놀랐으니 적응을 했겠지 했다.

 

 다음 번에 양배추를 주려고 꺼내니  저녁급식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배가 출출했다. 내가 평소 들고다니던 스텐레스 그릇에 양배추를 담아오니 다들 마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도 좀 주려나 기대가 귀 꼭대기까지 차올라 쫑긋거렸다. 눈알들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기차게 따라왔다. 이럴 때 아마르나 칸타는 조바심을 친다. 내꺼를 딴얘들한테 나눠주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다. 칸타도 마음이 급했다. 밥통에 양배추를 놓아주는 순간 전에 놀랐다는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고 힘차게 양배추를 와삭! 물었다. 뒤이어 바로 꽈당 ~ 우당탕 소리가 났다. 다음은 내가 놀랄 차례다. 얼른 뛰어가보니 칸타가 총을 맞아서 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곧 바닥에 고꾸라질 것 같았다. 정말 심각해보였다. 진짜로 총을 맞지는 않았지만 툭 튀어나온 눈두덩 위가 까져서 피가 배어나왔다. 상황은 뻔했다. 양배추 깨무는 소리에 너무 놀라 머리를 순간적으로 쳐들었고 그 순간 눈위가 창살에 세게 부딪혀 그리 된 거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칸타가 꿈쩍도 않는데 곧 쓰러질 것처럼 멍하니 넋이 나간 걸 보니 정말 아픈 모양이다.

 

 그 후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에 걸맞는 모습을 칸타가 계속 보였다. 지나가다가 뭘 주려고 비닐봉지만 좀 높게 든다 싶어도 머리가 흠칫 들리고 , 끙끙이방지 머리띠를 채우려고 가죽을 이마 위로 두르는데도 머리가 휘익 돌아가곤 했다. 꼭 마방 천장에서 누군가 칸타를 꼭두각시인 양 가는 줄을 붙들어매고 줄을 당겨올려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칸타는 양배추가 와삭! 소리를 냈을 때 머리통 귀신이 둥둥 떠서 ' 내 머리 내놔라! ' 하고 유령놀음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소리가 언젠가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사자가 사슴을 사냥해서 콱! 깨물 적에 뼈 으스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나 싶기도 했다. 칸타가 동물의 왕국을 보았을 리는 없고, 초원에서 동료가 사자에게 죽임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은 더더욱 없을 텐데 도무지 알 수 없다.

 

 칸타는 클럽에서 몇 안되는 '놀라지 않는 말' 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바람이 쌩쌩부는 날 , 혼자 사람을 태우고 기승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다, 무슨 시끄러운 소리나 물체에 반응하여 놀라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여장부 스타일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칸타가 겨우 양배추 조각에 기절할 듯 놀란다고 말하면 칸타를 아는 클럽분들이 얼마나 어이없어 할까 싶다.

 

'양배추를 무서워하는 그녀' 혹은 '그'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양배추가 과연 무엇이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어쩌다가 나이트클럽 어장관리하는 조폭 분이 승마클럽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깍두기머리에 금줄목걸이를 한 근육질 몸매를 한 남자였다. 옷안에 어쩐지 문신이 잔뜩 그려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분이 승마클럽에 왜 오셨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상도 험해보이고 해서, 나이트클럽이든 승마클럽이든 클럽이니까 그냥 와보고싶지 않았겠나 생각해보고 말았다. 그러다가 말 위에 체험삼아 잠깐 올라가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말 등에 올라가자 갑자기 험한 인상은 온데간데 없고 ,골목길에서 깡패들에게 몰려 삥 뜯기는 순진한 초등학생이나 지을 법한 쩔쩔매는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상황의 급반전이 놀라워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모습을 더 바라보았던 거 같다. 잠시 후 말에서 내려온 그 형님(?) 께서 하시는 말씀 " 내가 살면서 세상에 무서운 거라곤 하나 없었는데 말 등에 올라가니까 막 쪼그라드네. 후달려서 혼났네. 휴우  "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아닌가. 나이트클럽 형님에게는 말등에 올라가는 일이 '양배추'였던 거다.

 

 주변에서 저마다의 '양배추'에 놀라는 어이없는 일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맷돼지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튼튼한 여자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고 패닉에 빠지는 일이랄지 , 헤라클래스처럼 다부진 장정이 키가 150 센티도 되지 않는 와이프가 나타나자 얼어붙었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물론 와이프가 어떤 상황에서 헤라클래스 남편 앞에 나타났느냐가 문제겠지만.

 

 나 역시 나만의 '양배추'를 내면세계에 소장하고 있다. 밝히면 너무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앞으로 칸타에게 양배추를 줄 적에는 그냥 낱장으로만 주려 한다. 와삭! 에 적응하라고 하기엔 좀 고문하는 게 아닌가 싶고 말이 꼭 양배추를 와삭거리며 먹고 살아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어서다. 이 세상에 말 식량이 양배추밖에 없다면 그땐 달리 생각할 것이다. 아무튼 양배추로 인해 흠칫 놀라는 트라우마가 생겼기에 , 칸타아빠에게 내츄럴훈련으로 둔감화를 시켜달라 요청해놓았다. 11살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 아래 별반 새로울 것도 없고' 하는 태도로 느긋한 칸타가 오그라들어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설정

트랙백

댓글

 

 

5월 27일에 반갑고도 반가운 손님이 왔다. 이태리에서 제인과 페가수스랑 알콩달콩 사시는 홀스맘 김유예 님이 마장에 방문하신 거다. 아이 기르는 엄마들이 모이면 이야기 실타래가 끝도 없이 풀려나는 것처럼, 그렇게 말 키우는 이야기로 회포를 푼 후에 칸타,아마르랑도 추억을 남기고자 밖으로 나왔다.

 

 

 

아마르 상태는 찌뿌둥 꿀꿀 했다. 일요일 오전 운동하고 마방 들어가서 화요일 이른 오후까지 '방콕'을 하셨으니 온몸이 근질근질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자리를 고르더니 '철퍼덕'

 

 

 

......

 

 

 

' 버둥버둥'

 

 

 

'허우적 허우적'

 

 

 

 '비비적 비비적'

 

 

 

 '끄응~ 시워언~ 허다'

 

 

 

 그런 후 '끙차' 일어나더니 갑자기 '변신' 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천마가 나타나

 

 

 

                                                            투명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르고

 

 

 

                                                                차오르듯이...

 

 

 

                          아마르는 지금껏 내가 보아온 최고의 도약과 비상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발레리노가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상의 기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어떤 때는 내가 이 모습을 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에 ,겉으로는 '저는 승마를 하거든요' 하면서 속으로 말의 '변신쇼' 보기를 간절하게 희구하는 게 아닌가, 언제 그 쇼를 또 보려나 조바심을 친다.

 

 

 

 아마르가 변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마방에서 동상에 가까운 자세로 움직임을 절제하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안의 혈액과 체액이 더디 흐르다 뭉치고,고이고,막히니 수혜를 입어야 할 세포와 조직이 굳어서 젊은말의 에너지와는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 지경에 이르렀던 탓이다.

 

 

 

                                                    나 또한 늘 쉽게 그런 상태가 된다.

 

 

 

                     

                        요놈이 몸안의 흐름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칠 때,

                                                 몸부림은 세포들의 절규이다.

 

 

 

  절규에는

들판에서 바람에 몸부림치던 풀들의 아우성이 메아리가 되어

울림으로 스며든 것 같기도 하다.

 

 

 

                                                          풀의 아우성은 내 안에도 있다.

 

 

 

              사실은 나도 아마르처럼 저렇게 하고 싶다. 간절하게.

 

 

  나도 아마르를 따라 액션을 하려고 숨을 한번 들이켜는데 어디서 큰 소리가 들린다.

 우의정 무릎관절 대신이다.

"주군! 아니되옵니다. 그리 했다간 뚝 소리가 난 후에 시큰새큰 후환이 따를 것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

고개를 조아리니 모든 뼈마디, 관절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통촉하시옵소서어어어 ! " 우뢰와 같은 합창을 한다.

 하는 수 없다. 대신들의 뜻을 따를 밖에 쩝~

 

 

아쉽기는 하지만 낙은 있다. 아마르 녀석이 변신쇼를 부릴 적에 나와 아마르 사이에 투명한 실로 연결되어  있는지 쇼를 보고 있으면 시원함이 내몸에도 건너와 좀 충전을 시켜준다. 쇼를 기분껏 너무 오래 하다간 가느다란 다리라도 행여 다칠까 저어한 할아버지가 내츄럴 굴레를 들고와 보이니 아마르 쇼는 끝났다.최고의 쇼를 이태리에서 날아온 유예 님과 함께 관람했다. 어쩐지 아마르 쇼가 귀한 손님을 기쁘게 해주려는 아마르의 존경할 만한 홀스맘에 대한 대접이 아니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네 살 페가수스도  기상천외한 쇼를 창의적으로 늘 연출하는 탓에 엄마인 유예 님 얼굴에 웃음을 선사한다고 한다. 

 유예 님을 늘 행복하게 해주는 마를 날 없는 샘물인 셈이다. 

유예 님이 방문한 오늘은 참 기쁜 날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

 

 

사랑이가 근로자의 날에 산책을 나왔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무슨 이벤트 하는 것처럼 나온 산책은 아니다. 할방님이 꾸준히 내츄럴 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 훈련 프로그램의 하나로 산책을 시도한 거다. 종종 다니는 산책이라 사랑이 표정은 편안하다. 하필 사진 찍은 날이 근로자의 날이어서 산책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대체 사람들이 뭘 하고 있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사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한다. 과거에 우연히 사랑이가 사람을 태우고 갑자기 미친듯이 달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기승자는 낙마하거나, 용케 붙어있거나. 말 타는 사람이 가장 곤란한 경우가 꿈쩍도 안 하고 안 가거나, 미친듯이 내달리는 때일 거다. 전자에 해당하면 사람의 정신건강에 해롭고, 후자라면 육체가 위험할 수가 있겠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사랑이가 후다닥 내달리는 습성을 갖고 있다면 이제 막 승마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관심이나 사랑을 받을 리 없다. 사랑이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사랑이가 한 귀인으로부터 내츄럴 훈련을 받고 있다. 일부러 외부에서 방문한 귀인은 미니어처 레이와 마티의 담당교사를 맡은 분이다. 여담으로 , 레이& 마티가 내츄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배꼽을 잡게 된다.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ㅋㅋ

 

 사랑이가 작년쯤에 점을 보았다면 점괘는 이랬을 것이다. 올해까지는 무슨살,무슨살이 들어서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게다가 외로워. 하지만 내년에 달라질 거야. 따뜻한 바람이 불면 사방에서 귀인들이 찾아와 .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귀인들 하고 잘 지내면 자네는 운이 트이네.

 

 

 

 

할방님은 사랑이의 귀인 중 하나다. 사랑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사람의 요구를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주변환경에 적응하기도 승용마가 갖출 덕목이다. 말과 편안하게 산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대부분의 말이 승마장 밖으로 다닐 일이 없으니 두려워서 긴장하니 그렇다.

 

 

 

 

사랑이가 편안한 얼굴로 산책을 즐기니 보는 내 마음이 다 편해진다.

 

 

 

 

밭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동네주민이 아니다. 클럽회원들이다. 이곳에서는 원장님을 비롯하여 회원들이 밭일 하다 와서 땀을 훔치고 말 타는 광경이 흔하고 자연스럽다. 벌써 솎아낸 당근 포기가 말 입으로 배달되고 있다.

 

 

 

 

사랑이는 참 이상할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시나 통제는 커녕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는가?

 

 

 

 

내눈에도 이상한 광경이기는 하다. 삶과 노동이라는 면에서. 일과 여가라는 점에서.

 

 

 

 

지나온 역사를 회상해보면 농사나 벌목, 유통 등의 노동은 사람이 아닌 동물의 몫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그들이 일하고 그 곁에서 사람이 부리는 모습이 익숙하다.그렇기에 사람과 동물이 반대의 상황에 놓이니 낯설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고, 그 주변에서 말은 한가하게 어슬렁거리며 느긋하게 풀이나 뜯고 있다. 혹여 지나가는 사람이 보았다면 승마클럽에서는 근로자의 날에 사람은 일하고 말은 노는 건가? 하고 오해하지 않으려나.

 

 

 

 

승용마는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신선한 기운으로 충전하는 여가시간의 도우미요 파트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즐기도록 기꺼이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승용마의 몫이다.

 

 

 

 

화창한 5월의 첫날에 고정관념으로 굳어버린 승마장의 공식이 뒤바뀐 광경을 목도하는 일이 즐겁다. 즐겁게 산책을 마친 말은 나중에 사람을 태우는 노동에 기꺼이 참여할 거고, 옥수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은 고단한 심신을 그들의 애마에게서 풀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되면 무성한 옥수숫대가 물결칠 거고, 승마장 주방에서는 솥에서 옥수수 쪄내는 김이 하루 종일 피어오를 거고 , 잘라낸 대는 말의 간식이 될 것이다. 말과 사람과 옥수수와 땅의 순환이다.

 

 

 

- 명망 높은 (???) <알.티> 블로그에 처음 소개되는 '깜돌이'는 깜주가 낳은 아들이다.

                                           다들 밭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띵가띵가 노는 게 제 일이죠~

 

 

 

 종일 놀다 방으로 돌아가는 마티.

 

 

 

 

 

 

 

 

 

 

 

 

설정

트랙백

댓글

 

 

제 어릴 적 기억에 봄은 반갑지 않았습니다. 반갑기는 커녕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밉상이었죠. 손님은 찾아올 때마다 울긋불긋한 꽃들을 잔뜩 가지고 왔습니다. 꽃은 밉상 손님이 가져왔기에 예뻐보일리가 없었지요. 머릿속으로 '왜 꽃은 피고 난리래?' 싶은 퉁명스러운 기분만 가득했답니다. 어린 마음에 인생이 이다지 괴로운데 어쩌자고 화사한 자태를 난분분 뽐내는가 싶었던 겁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흘러 소녀가 아가씨가 되고, 그 아가씨가 중년의 여인으로 변해하면서 서서히 봄과도 화해를 했나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꽃이 예뻐보이기 시작하더라니까요.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든 거라더니 딱 그런 모양입니다. 이른 봄에 승마장 사모님이 왔다갔다 하시며 화단을 살펴보시길래 나도 모르게 "올해도 꽃 많이 심어주세요!" 하는 말을 하고야 말았지요. 꽃타령이라니 나도 늙어가는가 보다고 한숨을 쉬고 말았네요.

 

 

 

 

지나온 인생에서 꽃이 예쁘게 보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더 짧았지요. 이제는 '봄과 화해했다' 선언문이라도 낭독하고 싶었는데 올봄은... 지독하게 슬펐지요.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소금짐 같은 그런 봄으로 남게 될 것 같아 , 소금짐에서 배어나온 소금에 절여진  듯 마음이 싸르르 아립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산 정상에 누구보다 빨리 당도했지만 ,뒤늦게 알아차리기를 등에 업고 있던 아이를 어디다 빠뜨려 흘리고서  달려온 거 아닌가요? 아이를 빠뜨린 엄청난 슬픔 뒤에 몰려오는 암울함은 이 세상이 언제라도 다시 그런 슬픔의 무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예감 때문이지요.

 

 

 

 

 

 

 

하여 유난히 따뜻하고 무던했던 겨울의 뒤끝에 일찌감치 앞다투어 피어났던 꽃들이 그만 무색해지고 말았나 봅니다.

 

 

 

 

 

검정색 노트북이 있습니다. 가운데 삼성 로고가 박힌 좀 구닥다리 노트북이지요. 아마르가 태어나기 전 해에 샀으니까 아마르랑은 연년생쯤 됩니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아직도 처음에 깔았던 그대로 '한글 2007'이 사용하는 주된 기능이어서 더욱 구닥다리 분위기를 냅니다. 제 소소한 기쁨 한가지는 노트북을 켜면 삼성 로고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첫 화면에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아이콘이 떠오르는 첫 화면에는 깐돌이(아마르 아명)가 갖은 인상을 쓰고서  자세 잡고 오줌 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털은 더부룩하고 꾀죄죄 하기까지 합니다. 시골 촌놈의 완전체라고나 할까요? 그 촌티가 풀풀 나는 망아지 녀석이 쉬 하는 모습이 어찌나 정겨운지 볼 때마다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시골 촌놈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는 녀석의 몰골 뿐만 아니라 배경도 단단히 한몫 합니다. 녀석이 오줌을 누고 선 장소는 얼기설기 끊어지다 이어지다 제멋대로 생겨먹은 철조망 울타리 안의 흙바닥입니다. 바닥에는 잔돌이 굴러다니며 그곳 시민임을 주장하고 있네요. 철조망 너머로는 야산 비탈의 공동묘지가 보입니다. 우리 산하 어딜 가도 야트막한 산자락엔 묘지가 차지하고 있지요. 사진의 배경만 보자면 보신탕용 개 사육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곳이 지금의 아마르, 옛 깐돌이가 태어나 망아지 시절을 보낸 암울한 무대입니다. 왜 아마르는 그토록 황량한 장소에서 태어났는지, 왜 말인 아마르와 사람인 우리 부부는 그런 곳에서 운명적인 해후를 해야만 했는지요.

 

사실 이 세상의 시스템으로는 아마르는 태어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승마장에 흔하디 흔한 말도 태어날 때는 극소수의 확률로 선택받은 종마의 씨를 받아 우수한 씨암말의 몸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죠. 아마르는 종마의 씨를 받은 것도 아니고 어쩌다 정처없이 팔려와 거세당하기까지 잠시 대기중이던 스텔리온, 지극히 평범한 퇴역경주마가 애비였던 ,우연한 생명이었던 겁니다.

 

 

 

 

 

다가올 7월이면 , 아마르가 6세가 됩니다.

 

 

 

 

아마르가 우리 품에서 자라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탈도 많았고 우리에게 상상못할 기쁨도 안겨주었죠. 녀석을 키울 적에 가장, 항상 감동스러웠던 순간은 놈이 먹을 때였지요. 그악스럽게 와구와구 하며 흡입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먹구서 살아보겠다고 저 난리를 치는구나 싶어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고 뭔가 안에서 힘이 솟구치며 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했죠.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만.

 

 

 

 

녀석이 지금도 먹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 과거에 더먹머리 머슴이 밭일 하고 와서 개눈 감추듯이 고봉밥 먹는 듯했다면 요즘은 선비가 점잖게 먹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선비님이라 해도 가까이서 구경 좀 할라 치면 귀를 뒤집고 눈을 부라리고 인상을 팍팍 씁니다. ' 내가 맛을 음미하는 거 안 보여? 난 사료를 즐기고 있으니 방해 말라니까!' 뭐 이쯤 되겠습니다. 아마르가 양반되기는 애시당초 글렀나 봅니다.

 

 

 

 

올해 들어 아마르에게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미국에서 날아온 내츄럴 선생님이 찾아와 두 번인가 직접 공부를 시켰습니다. 선생님에게 아마르를 맡기고서 녀석이 어떻게 하나를 지켜보는 제 가슴은 콩닥콩닥 했지요. 마치 집에서 얼싸얼싸 하던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킨 엄마 마음이 이렇겠지요. 아마르를 공부시킨 선생님 말씀이 녀석이 부모 앞에서는 어리광 부리고 떼쓸지언정, 학교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이해 잘하는 그런 학생이라고 하네요. 그 소리에 영락없는 학부모 심정이 되어 아이를 헛키우지는 않았구나 안도감이 들었답니다.

 

그런 후에 드는 생각은 내츄럴 선생님이 그 머나먼 미국에서 우리 아마르 가르치러 날아왔구나 싶은 인연의 필연적 연결고리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뭐 선생님이 우리 아마르 가르치러 일부러 찾아올 까닭은 없겠지만서도 내 입장에서 보면  딱 그리 맞아떨어지니 어쩌겠습니까.

 

 

운동하고,목욕하고,상으로 풀뜯는 아마르

 

 

 

그리저리 아마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홈스쿨을 졸업했나 봅니다.

물론 집에 와서 예습,복습 하는 거야 여전히 봐주긴 하지만요.

 

기왕 홈스쿨을 졸업했으니 마장마술 공부도 시키기로 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서 조금씩 하는 공부인데 이 분야 역시 놀랍게도 어디선가 때맞춰 선생님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르가 복이 많은 아이인가 봅니다.

 

신기하게도 아마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부할 준비가 갖추어지자 선생님이 등장했기에 그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생각됐답니다. 이제 아마르는 다리도 제법 튼튼해졌고, 더이상 질질 울지도 않고, 좀 힘들고 불편해도 참아내며 교육을 받아들이는 그런 학생이 되었습니다.앞으로 어떤 멋진 승용마의 모습으로 자라가게 될지 희망이 피어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러하니 말도 그렇겠지요. 너른 초원도 ,맘놓고 뜯을 풀도 주어지지 않은 삶입니다. 그래서 마방에서 머리를 내밀고 맑은 눈망울로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저 건초나 한무더기 집어다가 넣어줄 뿐입니다.

 

그런 말에게 매일 배우는 게 있습니다. 묵묵히 살아가기. 세상은 아름답지도 않고 충분히 기쁘지도 않고 오히려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많지만, 말은 좋다 싫다 내색을 하지 않네요. 그저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몫의 건초를 소중히 여기고 간절하게 씹는 것과 요구받은 일에 대하여 덤덤히 받아들이고 해내는 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가끔은 아마르가 '끼야호~'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의 언어로 '끼야호'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끼야호'를 표현한다는 편이 맞겠지요. 화창한 날에 밖으로 나들이 나가면 그런 기분을 표현합니다. 마방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일 뿐인데  소박하게도 햇빛,,바람,공기,새소리,꽃향기 만으로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요.

 

 

호수공원에서

 

 

 

견공의 끼야호~   (공중부양 상태임)

 

 

4월 초에 호수공원에 갔습니다. 주인과 개가 한 조가 되어 산책을 즐기고 있어 무척 부러웠지요.나도 칸타나 아마르와 이 좋은 공원을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때는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광경이 한창이었고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땅에 떨어진 꽃잎 하나를 집어들었어요.다섯 장의 꽃잎이 야무지게 손을 맞잡고 있더군요. 꽃잎을 뒤집어도 보았죠. 그랬더니 놀랍게도 다섯 장의 꽃잎을 단단히 고정시킨 꽃판은 오묘한 색깔의 별모양이었어요. 그러니까 꼭지가 다섯 개인 누구나 별이라고 떠올리는 그 형상 말입니다. 그때 별의 언어가 들렸지요.

 

 

 

 

언젠가 우리는 다 제각각 어느 별에서 지구로 살러 온거야. 살고나면 다시 별로 돌아가겠지. 별에서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까지, 그러니까 사는 동안은 누구나 힘들기 마련이야. 꽃이 왜 피는지 알아? 살다가 힘들어 지쳐 쓰러질까봐 , 기를 쓰고 피어나는 우리를 보고 살아갈 힘을 내라는 의미야.

 

그러고 보면 존재와 존재가 맞부딪힐 때 기운이 생동하는 뭔가가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꽃이든, 말이든 가만히 바라봐주면 기운이 나지요.

 

 

사랑이

 

 

아마르는 할아버지가 오지 않은 날 내가 손이 딸려 저를 꺼내 놀아주지 못하면 귀를 뒤집고 마구 항의하며 화를 낸답니다. 칸타는 브러시로 목덜미 긁어줄 때 살살 하라며 화를 내지요. 칸타의 표현은 '콱 물까부다' 시늉이 바로 그거랍니다. 엉덩이 긁어줄 때는 시원하다고  하면서 목은 왜?  이놈들이 살아서 파닥파닥 거리는 게 참으로 좋네요. 그 파닥거림으로 인하여, 세상사 심란함으로 인해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려는 마음의 병을 이기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지네요.

 

 

                                     아마르

 

왜 아마르가 공동묘지와 철조망이 겹겹이 에워싼 황량한 땅으로 우리를 만나러 왔는지 꽃이 별을 보여주며 넌지시 건네는  무언가를 통하여 조금은 알듯도 합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얼어붙어 삭막한 겨울을 통과한 자리에서만이 찬란한 거지요. 아마르의 우연한 생명도 묘지에 드리운 죽음의 치맛자락 그림자에서 태어났기에 고귀한 게 아닐까요? 아마르가 하필이면 연중에 가장 무더운 날 질퍽한 진흙에서 태어난 것도 장차 가장 빛나는 희망을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신의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가장 암울해 보이는 시간이 꿈과 희망을 발아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지, 말의 시간에 머물며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제이슨 (존 웨인이 탈 만한 거구의 순둥이 , 아마르가 혼내주겠다고 호시탐탐 벼르고 있음,사진은 소심하게 내다보는 상태)

설정

트랙백

댓글

 

 

 

내츄럴호스맨 쉽 훈련은,

관계의 회복이자 상처에 대한 치유이다.

그리고 사람과 말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상생의 훈련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내츄럴 훈련을 하면 말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에 대해 ...

 

처음, 내츄럴호스맨쉽 (이하 내츄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말이 사람을 따르고 함께 춤추고 호흡을 함께하는 모습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말을 오랫동안 다루어 온 호스맨들의 전통과 기술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그 기대감은 장미 트레이너의 레슨에 의해 현실로 구체화되었다.

아직 어리숙하기는 하지만  나 또한 이전까지는 몰랐던 조마 기술로

조금씩 말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여러가지 암울한 설레임들 중 작은 꺼풀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내츄럴 훈련은 신체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신체적인 능력의 향상과 함께  사람에 대한 불신과 공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정체성이 없었던 말이 보여주는 정신적인 회복 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회복의 징표는, 

한없는 신뢰의 눈빛으로 사람을 따르고 ,

긴장을 풀고,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여유롭고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이 보내는 특별한 신뢰의 눈빛을  느껴 본다면

'내츄럴'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내츄럴은 아직 외롭다. 많이 외롭다.

아무도 없는 구석탱이에서, 뙤약볕에서, 때로는 마분더미 옆에서 ~~  

자연의 순리를  따르듯이 오랜 인내심의 길을 걸어야할 듯하다. 

 

하지만 말과 운명을 함께 하고픈 이들에게 내츄럴 훈련은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를 선사하며 빛나는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당신을 따르겠어요. 당신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요'

라는 말이 보내는 무한 신뢰와 존경의 눈빛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어찌 가지 않을 수있으랴. 그 곳이 그 어느 후미진 구석탱이라 한들... 

 

 

 

 

 

 

 

 

 

 

사랑이.

 

장미 트레이너가 한강승마클럽에 와서  자유조마의 시범을 보일 때 한차례 훈련시킨 말이다

2005년생 더러브렛 경주 퇴역마. 유난히 큰 눈망울에 불안과 근심이 가득하다.

다리의 세월 깊은 상처들을 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험악하게 다뤄져왔는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곳에 오기 전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경주에서 퇴역한 뒤 이리저리 팔려다니며 떠돌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곳에 와서 학대받지않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사람을 태우기도 하였지만 

놀라고 튀는 습성이 있어 조심스레 교육용 말로 적응시키던 중

앞다리를 조금 절어 몇 개월간 휴양중인 상태다.

스스로의 내면에 쌓인 상처와 근본적인 불안감은 회복되지 못한 듯 보인다 

 

굳이 사랑이를 내츄럴의 훈련마로 뽑게 된 것은 

사랑이가 적절한 훈련과 회복을 통해 건강하고 사랑받는 승용마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오래전부터 가슴 한구석에 있어왔고

내츄럴 훈련이야말로 사랑이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훈련일 거라는 막연한 확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그것도 운명일 지 모른다.

장미 트레이너의 한차례 시범훈련이후 

나는 사랑이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꾸준하게 내츄럴 훈련을 시키게 되었고,

나는 사랑이를 통해 내츄럴의 기술을 꾸준히 연마하고 사랑이의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사랑이와 나는 잠시나마 서로의 스승이 되었다.

 

 

 

 

 

자유조마의 시범 이후,

사랑이의 내츄럴 훈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랑이의 상태와 변화된 것들을 살펴보자

 

 

사랑이훈련의 훈련 내용 ( 사랑이 처음 상태 :  둔감화 0 %   민감화 0% )

 

1. 훈련기간 : 4월 5일 ~ 4월 27일 /  주 2~ 3회 /  총 10회 정도

 

2. 훈련의 내용

 

  * 자유조마 : 보법의 전환 / 방향전환 / 뒷다리 양보와 끌어들이기 /

                    방향전환의 세분화 - 평보에서, 속보에서 , 구보에서

                    보법의 하향이행 ( down transition )

  * 둔감화 : 조마삭 흔들기, 돌리기 ,던지기 등 / 채찍 흔들기, 돌리기, 소리내며 휘두르기

  * 민감화 : 뒷다리 양보 / 보내기와 방향전환 / 레터럴 플랙션 / 고개 내리기

  * 그 외  - 사람 공간 존중하기, 끌기,  산책하기 , 소리나는 자갈밭 걷기 , 풀뜯기 등

 

3. 훈련의 내용과 성과

 

  * 자유조마 ( 양호 )

 

    - 평보, 속보, 구보의 상 하향 이행은 숙달

    - 평보, 속보에서의 방향전환 시 멈추어서서 사람의 신호를 기다리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구보에서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방향전환하고 있음

    - 좌측 뒷다리 양보는 잘함. 오른쪽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있어 사람이 다가서기도 전에 미리 앞을 

      차단하며 도는 경향이 강해 사람이 의도적으로 제지하며 다가서아 함

    -  사람 따라오기 잘 함

 

 * 둔감화 ( 서서히 적응 중 )

 

    - 왼쪽 조마삭은 던지기까지 잘 함. 오른쪽은 처음에 거부감이 심했으나 지금은 적응단계.

     얼굴 앞에서 돌리기도 적응. 그러나 장소가 바뀌면 다소 민감해 짐.

    - 채찍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진도가 매우 더딤.

     흔들기와 터치하기, 문지르기까지는 받아들이나 소리내며 휘두르기는 적응 못함 

  

 * 민감화 ( 양호 )

 

    - 뒷다리 양보 잘 되었음

    - 보내기 잘 되었음

    - 방향전환 : 정지와 뒷다리 양보를 통해 사람을 향해 돌아서기, 방향 지시에 의한 이행 잘 되고

                    있음

    - 레터럴플랙션 : 좌 우 모두 잘 함

 

 

사랑이 이 외에도 다른 말들을 통해  말의 특성과 나이, 경험에  따라  내츄럴 훈련에 대한 반응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한 말일수록 이해도가 높고 훈련 진척이 빠른반면에 

     사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많은  말일수록 훈련의 성과가 오래 걸린다.

 

  -  눈에 띄게 빠른 성과를 보이는 훈련이 있고  더딘 부분이 있다.

     사랑이의 경우 둔감화 교육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특히나 채찍에 대한 둔감화는 진척이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찍에 대한 상처가 깊고도 깊은 것이다.

 

 

 

 

                              

                               사랑이의 눈빛이 부드럽고 편안해졌다. 훈련에 대한 호기심도 높아졌다 

                               로프에 대한 둔감화는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다

 

다행히도 사랑이는 여러가지 정신적인 안정감과 사람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 해소 측면에서 빠른

발전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쉽게 속단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10여 년 쌓인 두터운 두려움의 단단한 껍질을  그리 쉽게 벗어던질 수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훈련을 통해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실마리를 풀어나가는계기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며 

머지않은 미래에는 다시 태어난 사랑이의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확신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

  

두 세번의 기본 훈련만으로도 사랑이는 마필관리인과 클럽 원장님으로부터 '사랑이가 확실히

달라졌어요'라는 칭찬을 듬뿍 받게 되어 나의 기분을 우쭐하게 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더욱 열심히 사랑이 훈련에 집중하였으니...

 

이거~ 이거~ 누구를 위한 내츄럴 훈련이란 말인가??? 

1.관리인  2.클럽 원장님  3. 사랑이  4. 나

 

 

 

 

 

 

내츄럴 훈련은 겉보기엔 말을 이리저리 부리는 기술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도 맞다.  잘만하면 아주 멋지게 말을 잘 부릴 수 있으며 폼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것은,

이 훈련을 하다보면 놀라울만치 빠르게  말과 사람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말의 정신이 제 자리를 찾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두려움의 장막들을 벗어던지는 

정신적인 성장과 안정에 탁월한 성과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에 대한 답은 직접 경험하고 함께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민감화 훈련 중 뒷다리 양보하는 칸타

 

 

짧은 시간에 느낀 바로는 좀 지나친 과장아니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수년 여에 걸쳐 세상천지 분간 못하는 망아지를 키워내고,

멘붕에 빠진 어린 퇴역경주마들,

병을 앓거나 노동에 지쳐 삶의 의욕을 잃고 의기소침해진 말들,

주인이 오지 않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갇혀만 지내는 말들이 일으키는 문제행동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내츄럴훈련의 효과는 결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 하고 아쉬울 정도이다.

 

 

 

 

                              내츄럴의 씨앗들 - 레이와 마티 그리고 아마르

 

 

사랑이처럼 사람을 무서워하고 외부 환경에 대해 자독히 불안함을 느끼는 말들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런 말들은 이 땅에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말들의 대부분은 이러저러한 정신적 상처와 불균형인 상태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의  말들이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승마문화의 구조적인 문제는

여기서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말들이 사람이나 환경에 두려움을 갖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상태를 만들어야하는

낮은 수준의 의식과 승마 문화와 승마산업구조가 존재한다면

반대편에는 이를  치유하는 구조나 사람들 또한 존재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 영역 또한 체계적으로 자리잡혀 있지 않아 안타깝지만

앞으로 이를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내츄럴호스맨 '의 정신과 기술로 무장한 사람들이어야만 하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자연적인 환경과 삶의 방식이

도시 문명 속에서 황폐해진 우리의 몸과 정신을 치유해주듯이...

내친 김에 바라는 것이 있다  

내친 김에 바라는 것 한가지를 말하련다.

 

내츄럴의 학습과 도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적어도 말을 배우고 다루려는 승마 지망생과 말관련학과, 교관을 비롯한 지도자들, 승마장 운영자,

말 관련 기관과 단체들, 한국마사회 등에서는 '내츄럴호스맨 쉽'의 정신과 기술을 말 훈련의 기본으로

삼아줄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당부하고 싶다.

 

나같은 사람들이 승마의 변방에서 놀이삼아 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내츄럴호스맨쉽의 정신과 훈련은 사람에게도 말에게도 너무나 중요하고도 중요한 기본임을 깨달았다. 

 

확언하건데, 우리 주변의 말들의 문제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말 훈련의 부재와 사람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를 직시한다면, '내츄럴호스맨 쉽'의 정신과 기술을 도입하여 널리 보급시키는 것이야말로

일선에서의  말 훈련과 승마 문화의 기본기를 다질 절호의 기회임을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도 충분히 되었다고 본다.

 

내츄럴훈련은 말을 올바로 서게 하고 그 가치를 사람이 누리는 승마의 질을 담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기초가 될 것이다 

 

 

  

 

 

말을 타는 이는 누구나

내츄럴호스맨 쉽의 길을 걸어가자.

들국화의 노랫말처럼 '걷고~ 걷고 ~ 또 걸어보자~~ '

 

언젠가 우리 곁의 모든 말들이

스스로의 자긍심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올바르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리라는 확신을 갖고

한발 한발 나아가야한다.

 

그것은 그런 의지를 가진 승마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내츄럴 호스맨 쉽은

상생과 치유를 향해 흔들림없이 걸어갈 수 있는 분명하고도 옳은  길이다.    

 

 

 

 

 

 

 

여러 날이 흘렀다. 봄이 왔는가 싶었는데.... 

 

 

         

 

          우리의 봄은 차가운 바닷 속에 묻혔다.

 

 

 

                            

 

                           봉오리도 피지 못한 우리의 새싹들을 참담하게 묻어 둔 채,

                           통곡 속에 이 봄이 가고있다.

 

                           이 아픔은 어찌 치유될 지 아득하고도 먹먹하다.

 

.                          

                                                                        .

 

                                                                        '

 

 

 

                           세월호 참사에 의해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빕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 민감한 것과 민감화릏 혼동하지 말 것

  - 민감한 상태 100%와 민감화 100%는 틀림

  - 민감화는 민감화 교육을 받은 상태를 말하는 것임 그러므로 매우 민감한 말의 경우 민감한 정도

     %를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

  - 민감한 것과 민감화 교육 상태의 구별과 차이는,  행동 -> 반응 하면 민감한 것이고  행동 ->사고

     ->. 응답 하면 민감화 교육을 받은 것.

 

 * 민감화 교육의 내용

 

   - 뒷다리 양보

   - 보내기 와 방향전환

   - 기승 교육

 

* 민감화 교육 사례

 

* 민감화 교육 의 성과

  - 아마르

 

 

 

 

 

 

----------------------------------------------------------------------------------

민감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께서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말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도 계시는 것 같고요.

 

민감화는 부조/신호(cue)를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바로 옆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절대로 말을 해치지 않으나 손가락과 음성으로 움직이라는 신호를 준 후에는 채찍의 의미가 바뀐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지요. 이것을 잘 이해한 말은 조마를 돌릴 때 채찍으로 맞은 후에도 정지시키고 나서 바로 채찍을 옆에다 휘둘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 결과를 원한다면 민감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일관성입니다. 단 한번이라도 신호없이 채찍이나 끈만을 사용해 말을 보낸다면 말의 관점에서는 아주 불공평한 것이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둔감화를 없애버리는 행동이지요.

 

개으른 말이나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말, 또한 압박을 너무 두려워하는 말 또한 민감화를 통해 고칠 수 있습니다.

 


민감화:


- 신호 후 압박을 줄 때는 항상 멈춤 없이 리듬 있게 강도를 높이도록 (똑같은 강도로 변형 없이 계속 하는 것은 둔감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 압박을 줄 때는 나쁜 감정이 없도록

- 압박을 줄 때는 항상 똑같은 강도로 (최소한의 강도로) 시작

 

1. 뒷다리 양보

- 처음에 말 옆으로 갈 때 사람도 긴장을 푼 상태로 시선은 목 쪽으로

- 말이 사람이 옆으로 가는 것 만으로 움직인다면 멈출 때까지 따라가며 둔감화/만져주기 - 멈춘후 진행

- 신호는: “공격적인 자세와 시선을 후구로

- 해방은: 몸을 펴고 시선은 목으로

- 끈을 사용하지 않고 신호 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1 걸음 이상 요구하지 말 것

- 해방을 한 후 말이 멈출 때까지 둔감화/만져주며 따라갈 것 (시선은 목)

- 끈을 사용해 보내야 했다면 때린 자리에 둔감화

 

2. 조마 (보내기)

- 말의 정면에서 시작

- 신호는 앞으로 나가며 손가락으로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기

- 절대로 사람이 옆으로 가거나 뒤로 나가는 것을 없도록

- 처음에는 한 걸음이라도 올바른 쪽으로 가면 해방, 말이 멈춘다면 앞으로 가서 다시 시작

-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끈을 그만큼 주기

- 끈을 사용하지 않고 보낼 수 있다면 그때부터 속도 유지

 



3. 조마 (멈추기) (위에 그림 참고)

- 말 머리가 A 지점에 왔을 때 끈을 줄이기 시작

- 말의 후구가 A 지점에 왔을 때 뒷다리 양보 시작

- 활발하게 후구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끈을 사용해 보내기

- 사람은 A 지점을 향하여 최대 1-2 걸음 (절대로 말을 따라가지 말 것)

- 말이 스스로 끈의 느낌을 따라 밴딩을 하며 머리를 준다면 당기지 말 것

- 앞을 막는 밴딩을 요구할 때는 머리를 사람 쪽으로 당기는 느낌이 아니라 탁탁 막는 느낌

- 말의 후구가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사람도 바로 정지

- A 지점에서부터 90도 각도인 B 지점에서 정지가 목표

 

4. 조마 (손 바꾸기)

- 멈추지 않는/뒷다리 양보 없는 방향전환

- 말 머리가 A 지점에 있을 때 끈을 줄이며 손을 바꾸고 후구가 A 지점에 있을 때 1-2 걸음 앞으로 나가서 사람은 정지

- 말의 후구가 돌아가면 바로 반대방향으로 앞다리 양보를 시키며 보내기

 

5. 보내기 운동 (Sending Exercise)

- 3 번과 똑같은 원리

- 사람과 벽 사이로 말을 양쪽으로 보내기

-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서 시작함

- 말이 평보로 긴장을 푼 상태로 갈수 있을 때까지 반복

 

6. 레터럴 플렉션 (Lateral Flexion)

- 말의 기갑에 손을 올린 후 머리가 들어올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만들어 줌

- 말이 움직인다면 항상 말의 기갑에 매달린 자세에서 따라갈 것

- 끈을 잡을 때 항상 천천히, 말이 끈의 느낌으로만 올 수 있는 기회를 줌

- 끈을 잡은 손은 그 자리에서 고정, 말이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면 따라가지만 사람 쪽으로 끌고 오는 경우는 없어야 함

-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더 강하게 당기지 말 것

- 말이 온다면 바로 끈을 놓고 100% 해방

- 말의 코가 와야 인정하며 머리를 돌린 상태로 목이 끌려오는 것은 해방을 하지 말 것

- 끈을 잡자마자 오기 시작하면 더 짧은 해방으로 (손을 놓지 않고 잠시 느슨하게 주는 것) 더 사람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게 함

- 기다려야 한다면 왔을 때 바로 100% 해방

 

설정

트랙백

댓글

 

 

 

  이 글은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는 '내츄럴 호스맨 쉽'의 레슨 후기이며

다음까페 '승마매니아'에 함께 올리는 글입니다

 

 

 

 

 

          

 

 

          

토요일 레슨이 김포 한강승마클럽에서 진행되었다.

 

 장미 트레이너에게는 출장 레슨. 수강생들에게는 봄소풍 야외수업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봄 소풍을 방해하려는 듯,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방울에 돌풍이 몰아치는~~ 머,  나름 아름다운 날이다.

 '내츄럴'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변덕스러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세시간 내내 오들오들 떨어야했다.

 

 반면에 장미 트레이너와 내츄럴 초짜 시범 조교 '사랑이'와 '아마르'는

추위에도 아랑곳않고 겉옷까지 벗어가며 열을 올렸다.

 

 

 

 

 

 

 

                        

 

 

                                                                             

                                                                  

오늘의 내용은

'자유조마- 방향전환과 끌어들이기 ' '둔감화와 민감화'시범이다.

 

 이미 장미 트레이너의  레슨 요약을 통해 그 내용은 까페에 게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내가 보고 배우면서 느낀 감상과 

놓치고 싶지 않은 약간의 포인트만 짚어보고 싶다.

 

 

 

 

 

          

 

 

1. 자유조마 ( 준비물 : 살아있는 말 한마리. 최소 15미터 원형 라운드 펜. 조련용 채찍 ) 

 

 라운드 펜안에서  '자유조마'는  

나에게는 '조마삭 끈'으로부터의 자유로 다가왔다. 

 트레이너의 의지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어슬렁거리게 해준다면 모를까..

말은 그닥 자유롭지 않다. 도망갈 곳 없는 원형, 불편한 사람...

 

하지만  라운드 펜에서 자유조마의 목적은

원형을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에서의 조마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해방을 위한 압박의 공간일 것이다.

자유라는 개념이 억압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이...

 

 그렇다 할지라도 조마삭으로부터의 자유, 이것만으로도  의미하는 바는 크다.

조련에서 말을 고삐로부터 조마삭으로부터 놓는다는 것은

 말을 통제하고 가두고 조종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불안한' 것이다. 

 

'내츄럴 호스맨 쉽'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은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놓는 것.놓아 버리는 것.

 

 놓는 다는 것은 불안하지만

 만약에 그 불안함조차  놓아버릴 수 있다면..

 놓고도 불안하지 않게 우리를 단련할 수 있다면 ..

그것이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자유로운 삶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인생에서는...

 말은 ? 아직 모르겠다. 

 

내츄럴호스맨쉽을 향해 걷다보면 

그 곳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삶'

 

  

자유조마로부터 삶의 자유를 연상시키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내츄럴호스맨 쉽'으로부터  나는 자꾸 자유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아마도 말에게 잃어버린 자연을 되돌려주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하고픈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게다

 

창살도 울타리도 없는 너른 들판.. 바람소리.. 풀들의 물결

 

이쯤되면 병이 깊어진 것이다

 

 

 

사랑이와 장미 트레이너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위해서는 억압된 상황을 넘어서야한다

 

 처음 해보는 자유조마에 '사랑이'는  마음이 급하고 당혹스럽다.

게다가 처음보는 이 여성 트레이너는 예사롭지가 않다.

 말의  곤혹스런  눈빛 따위는 조금도 게의치않고  몰아친다.

엉덩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황망하게 '사랑이'는 돌아서 도망간다.

  도망갈 곳이 없다.

사람을 피해  도망 갈 때마다 막아서며 더 몰아친다 .

10 여 분이 지나자 '사랑이'의 몸에서 열기가 뿜어나온다.

 

 

 

 

        

 

 

 

몸이 풀리면 정신도 여유로워 질 것이다. 그럴까? 그럴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빠듯한 일상에 웅크리고 허덕허덕 지내면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고 생각은 점점 좁아지고

 벗어 날 길 없는 쳇바퀴같은 일상 속에서 작고 딱딱하게 쪼그라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럴 땐 열일 제쳐두고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에 몰두해보자.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숨이 가빠지고 몸이 풀리면 

 번잡하고 꼬인 생각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제 자리를 찾는다

 편안한 마음과 함께 용기가 생기고 심각했던 문제들이

그렇게 유난을 떨며 심각해 할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너그러워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사랑이'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랑이'의 발걸음이 조금은 여유를 찾는 듯하더니

사람을 향해 안쪽으로 한번 돌았다.

 숨을 꼴닥이며 내내 지켜보던 내 입에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 오 케이! 사랑이 ~~ 잘했어.잘했어. 됐어' 

 

 

 

 

 

        

 

 

곧바로 장미 트레이너의 대답이 바람 끝에 실려 날아온다.

 "한번은 우연일 수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리 된 것입니다. 세 번은 연속으로 해야 배운 것입니다. " 내 입이 쑥 들어가고 칼날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 모진 것 ! "

 

아니나 다를까 ...

몇 번의 방향전환에서 사랑이가 처음처럼 벽을 향해 돈다.

 아직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다.

 다시, 장미 트레이너의 채찍이 모터를 단 듯 자동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누구나 알 것 같은 포인트 하나!

 

방향전환을 할 때

말은 왜 사람 쪽으로 , 원형의 안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할까?

 

 사람을 향해 멈춰서는 법을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엉덩이를 보이고 도망가는 말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할 줄 알고, 사람의 신호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사람을 향해 집중해서 서있는 말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것을 이해시키기위해 장미 트레이너는

사랑이에게 강한 압박을 행했던 것이다

 

 

 

 

 

         

 

 

'사랑이'는 그렇게 20여 분이 흐르자

사람의 신호에 의해 올바른 방향전환을 배우고 

자신을 모질게 가르친 선생님을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아마도 '사랑이'에게는 생전 처음 받아본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향해 선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날일 지도 모르겠다.  

 

부디

오늘 '사랑이'가  자신의 불안함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위한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

*

*

 

'사랑이'의 자유조마 시범에 이어 

'아마르'( 더러브렛 5세 )와 함께 한 장미 트레이너의  '둔감화' '민감화' 시범 조련은

 다음 편을 기약해야겠다.

 

다음편 '둔감화'시범에서는 연습생으로서 내가 시도한 '둔감화'와

장미 트레이너의 '둔감화'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눈물을 머금고 즐겁게 밝힐 예정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둔감한 말이 어떻게 기민하게 반응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말로 변화될 수 있는지,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의 말 버젼을 준비 할 예정이오니....

 

채널 고정! '내츄럴 호스맨 쉽'

 

 

 

 

고맙습니다^^

 

 

  

 

 

 

 

 5 :5 가르마 . 얼짱각도 ' 아마르

 

 

 

 

 

 

 

 

 

                                            

 

 

             

 

 

 

 

 

 

 

 

 

'          '

 

 

 

 

 

 

 

 

 

설정

트랙백

댓글

이 포스팅은 이웃 마주님이신 안미선 님이 글과 사진을 제공해주셔서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미선 님은 수아와 브릿지의 엄마입니다.

 

작년에는 당근농사를 거하게 지어서 농사낙제생 할망네에 당근을 선사하기도 했죠.

 

우리 아이들이 이웃 잘 만나서 텃밭 당근도 얻어먹은 셈이에요.

 

부지런한 안미선 님이 올해는 보리싹을 길러다 말 아이들에게 먹이더군요.

 

이번에도 염치없지만 조금 얻어먹었네요.

 

마주가 부지런하고 적성에 맞기만 하다면 보리싹은 애마에게 더할나위 없는 영양간식이 될 테죠.

 

수도권 클럽에서 깨끗한 생초를 구하기란 너무도 어려우니까요.

 

생명을 지닌 말의 영양 발란스를 위하여 뭔가 필요하긴 한데 당근이나 사과만으로는 부족한

 

양을 보리싹에서 구할 수 있겠다고 좋은 대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을 지나온 말이 생기가 없고 신경질만 늘었을 때 생초를 며칠 섭취하고서

 

활력은 솟아나면서 신경안정제 먹은 것처럼 차분하게

 

안정되는 모습을 지금껏 보아왔기에 봄이면 애마에게

 

어디서 생초를 구해다 먹일까가 저는 늘

 

고민이었답니다.

 

 

 

 

 

 

 

 

 

 

 

 

 

 

 

 

 

 

 

 

 

 

 

 

 

 

 

 

 

 

 

 

 

 

 

 

 

 

 

 

 

안미선 님께 여쭈어본 바 프라스틱 판때기와 껍질에 쌓인 보리는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르는 일이 문제겠지요. 날마다 새 물로 샤워시켜주어야지 한 번만 물주고 방치하면 흰곰팡이가 자욱하게 피고 자라기도 전에 썩어버릴 수도 있답니다.

 

 

 

제주도에 있는 루시타노 목장에 갔더니 창고 하나가 보리싹 수경재배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분사되어 새싹이 잘 자라도록 보슬비를 계속 내려주고 있었고 자동이동식 선반이 날마다 위치를 이동하면서 자란 크기에 맞는 습도와 햇빛을 제공하더군요.

 

 

 

 

 

 

말에게 주려고 실외에 내놓은 탐스럽게 자란 보리싹입니다. 목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가끔 보리싹을 싹둑 잘라 비빔밥을 해드신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지요. 양푼에 보리밥 담아 녹색아파리 수북하게 얹어 고추장 한 숟갈 올리고 참기름 한바퀴 주루룩 흘려서 썩썩 비비면 끝내주는 맛이겠지요. 이런 게 바로 말 덕분에 웰빙하는 거 아니겠어요?

<알.티> 독자 여러분 !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글과 사진을 제공해주신 안미선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 이 글은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는 '내츄럴 호스맨쉽'의 레슨  후기이며

다음 까페 '승마매니아'에 함께 올리는 글입니다. 

 

 

 

 

 

 

말이 사람의 몸짓 언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개를 돌리고  바라본다.

그 시선은 사람을  무심히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다.

'무슨 뜻이지 ?' 이해하려고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의 편안한 몸짓과 그 몸짓을 바라보는 말의 시선.  

 

고요한 긴장을 뚫고

끊어진 듯 이어진 듯 보이지 않는 정신의 연결이 부드럽게 파동친다.

시간이 지나고 훈련이 거듭될수록 그 연결은 더 세밀하고 촘촘히 엮여질 것이다.

 

신비로웠다

 

 

 

장애물마 코스모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고개를 떨구는 말의 모습은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 의해서만  비롯된다.

 말이 편안할 때 취하는,

한쪽 다리를 비스듬히 내려놓은 자세로 몸짓을 주고받는 이는 장미 양이다. 

 

 

 

 

 

 

장미. 그레이스 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언젠가 장미 양의 동영상을 보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의 여주인공이 환생했다고

 안 사람과 웃으며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댓글에 달았더니 

'포카혼타스'닮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뮬란'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디든 달려가는 장미 양이니 부리나케 '뮬란'영화를 찾아보았으려나... 

 

 

 

 

 

                                                                    

 

 

 

  말에 대해 배워가는 단계라고 스스로 낮춰 말하지만

      주어진 모든 상황으로부터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학생

 말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풍부하고 

  말의 언어가 몸으로 체득화된 놀라운 트레이너이다.   

 

 

 

 

덩치가 산만한 장난꾸러기 3살 스탤리온 - 에올

 

 

내츄럴호스맨쉽의 전통이 없는 우리의 문화에

그녀가 어느날 축복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도 내츄럴의 토양이 존재하고 그 토양 위에는 씨앗이 필요하며

그 씨앗이 뿌려져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었다.

 

 

 

 

 

 

 레슨의 기회가 왔고  

겨우내 무겁고 게을러진 엉덩이를 채찍질해  레슨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장미 양의 레슨을 받으며 몇가지 점에서 놀랐다 . 

그리고 몇가지 점에서는  당혹스러웠고 

 모를  깊이 앞에서는  암울한 설레임이 찾아왔다

 

 

 

 

 

말의  심리와 행동을  바탕으로 

소통의 언어를 체계화한 지혜로움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 놀랐고  

 

기승상태가 아닌 지상에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반응하는 말의 눈빛과 행동에 놀랐다. 

 

장미 양의 열린 정신과 치열함에 놀랐고,

그녀가 말의 행동과 언어를 진심으로 깊이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에 놀랐다.

 

 해석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의 행동 심리 언어가 

우리 주변의 많은 말들에게 표현되지 못한 채 파묻혀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그것을 모르는 나의 무지에 놀랐다. 

 

 

 

 

                                                                        장미 양과 에올

 

                                         

                                            몇 번의 모의 연습 후에 해본 실습에서

서툰 나의 몸짓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말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참으로 충분하였다

말을 가르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온 몸으로 절실해졌다.

 

 

 

 

 

말을 향해 서있는 자세에서조차 말의 행동양식을 따르는,

말과 일체화하려는 정신이 있어야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말 앞에서 눈치없는 바보가 되어야했고

 말의 천진스런  눈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하는 나를 만나기도 해야했다 

 

말이 내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긴장을 풀게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말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밖에 설레이면서도 암울함을 갖게 해준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다듬어지지않은 어줍잖은 생각들이어서 

오랫동안 묻어두고 삭혀야 할 것 같다.

 

 

 

 

 

 

             

 

              

                                    

 

 

                                                     

 

 

                                  

 

 

 

 

장미 양이 어느 글에서 밝혔듯이,

 그녀는 말들이 따르고 찾아가는 '지혜로운 늙은 암말'같은 존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했다. 

말 무리들이 따르는 '지혜로운 늙은 암말' ....

 

이 말에 공감하거나 이해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 땅의 내츄럴의 토양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 곳이 어디든.. 어느 곳이든.. 

 

그러기위해 장미 양이 내츄럴의 선물보따리를 짊어지고

고국으로 날아왔을 것이다.

 

내츄럴호스맨쉽의 소중한 씨앗이 뿌려졌다 

그 미래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장미 양과 코스모

 

 

 

 

 

 

 

 

 

 

 

 

 

 

 

 

 

 

 

 

 

 

 

 

 

 

 

 

 

 

 

 

 

 

 

 

 

 

 

 

설정

트랙백

댓글

 

 

승마매거진은 오래 전부터 구독하고 있는 잡지이며 이미 블로그에 소개한 적도 있다. 지난 호에 나의 승마에세이집 <우리는 지금 유니콘의 숲을 거닐고 있다>가 신간서적으로 소개되고 이번 호부터 글이 연재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번 호(2014. 3/4 월호. 통권 26호)의 주요 기사를 살펴보면

 

p.20 까발라띠를 활용한 말과 기승자의 훈련법

p.26 DREAM LESSON - The Test

p.34 SCHOOLING - 숄더 인

P.46 COLUMN -말산업의 문화 경영전략 (2)

그 밖에 독일과 뉴질랜드의 말 관련 정보, 각종 대회정보 등이 실렸다.

 

 

나의 글은 승마인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고  정서함양과 사색에 도움을 주는 대중적인 내용으로 잡지의 말미를 장식했다.

 

 

사진에는 미니어처 망아지 레이와 마티,태풍이와 아마르,몽골말이 등장해서 아기자기한 맛을 더했다.평소 내가 아끼던 말이 글과 함께 지면에서 조화를 이루니 기쁘다.발굽의 주인은 아마르인데 색이 푸르딩딩하게 나와서 글의 제목을 <푸른 발바닥이 왔다>로 해도 손색이 없을 듯 .

 

 

이 자리를 빌어 연재글이 실릴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승마매거진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이 더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승마매거진 구독을 원하는 독자라면 여기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Tel. 02 - 6357 - 3113

설정

트랙백

댓글

 

 

 

아래 글은 다음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모두 다 예쁜 말들> 코맥 매카시 / 김시현 옮김 / 민음사

 

코맥 매카시는 윌리엄 포크너,허먼 멜빌,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한다.<모두 다 예쁜 말들>(1992)은 국경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전미 도서상과 전미 비평가협회상을 받았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꿈을 찾아 용감하게 집을 떠나 온갖 위험 속에서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년의 슬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p.145 옮긴이의 말)

 

좀 더 구체적이며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열여섯 살 카우보이 소년 존 그래디가 친구 롤린스와 각자 자신의 말을 타고 집을 떠나 멕시코로 향한다.도중에 역시 자신의 말을 탄 말썽꾼 소년 블레빈스를 만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아름다운 목장에 도착한다.이곳에서 존은 말 다루는 솜씨를 인정받아 조련사로 일하게 되고 목장주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데......

 

카우보이 하면 신출귀몰하게 말을 다루며 타는 명수로 인식되기도 하고 그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멋진 남성성의 로망으로 비쳐지기도 한다.숱한 서부영화에서 말발굽소리와 총소리가 뒤엉켜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사투가 끝난 후에 주인공이 모자를 고쳐쓰고 말머리를 돌려 황야를 향해 걸어나가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부영화를 보면서 내가 말과 지내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저 세계에서 살아가는 말은 무슨 생각을 할까 카우보이는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이란 책을 발견했을 때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다 읽고 나니 약간은 그 세계를 엿본 듯하다.

 

카우보이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라면 '신께서 말을 지상에 만드신 것은 소를 몰기 위해서라는 점과,남자가 가져야 할 가장 좋은 재산은 바로 소라는 점이었다.'(p.179) 라는 문장 안에 구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우보이가 타는 말은 소몰이에 유능해야 하며 그런 일을 위해 야생마 중에서 싹수가 있는  말을 발굴하여 훈련시켜야 하는 목표가 뚜렷하다.그렇다 보니 말을 고르는 기준에서 '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고 그런 자질이 있다면 웬만한 결함은 다 용서된다고 한다.

 

전체 4부 중에서 2부에 나오는 멕시코 목장에서 야생마 길들이기가 나오는 대목을 간략하게 추려서 소개한다.

 

목장에서 가까운 산에는 야생마가 400 마리 정도 살고 있는데 모두 목장주의 소유다.아주 오래 전부터 유명한 종마의 후손을 풀어놓고 자연 번식시킨 결과다.품종은 쿼터호스. 존과 롤린스가 목장에 도착하여 허드렛 알바로 낙인 찍고,귀에 인식표 달고,거세하고 ,뿔을 자르고,백신을 접종하며 한 이틀 보내고 나서 사흘째에 일꾼들이 3세 야생 망아지를 잡아다가 우리에 가두는 것을 목격했다.야생마들은 겁에 질려 울부짖고 밟고 일어서고 달리고 우리를 부수려 들었다.말로서는 처음 당하는 충격적인 경험이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3세 야생 망아지를 지켜보던 존은 이들을 길들이기로 마음 먹는다.이곳 일꾼들이 산에서 말들을 몰고내려온 방식을 보니 어떤 방식으로 길들일지 뻔히 보였다.그들은 고리재갈로 말을 고생시킬 게 뻔했다.고리재갈은 잘못 쓰면 말의 턱이 부러질 수 있다고 한다. 존은 나흘만에 야생마들을 다루는데 얌전할 정도로 길들이겠다고 결심한다.

 

준비물 : 용설란 밧줄 12미터 , 보살레아(금속재갈이 달린 조련용 고삐),안장에 깔 담요,삼베자루 2장,등자끈을 미리 줄여놓은 햄리안장

 

길들이기 1단계 :

 

존과 롤린스가 포트레로(망아지용 목초지) 안으로 들어가자 16 마리의 야생 망아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존은 길들일 망아지의 앞다리에 올가미를 걸었다.존은 망아지가 미처 반항하기 전에 순식간에 말목을 움켜쥐고 올라타 주둥이를 옆으로 돌려 자신의 가슴팍으로 곽 잡아 당겼다.그렇게 말 주둥이를 가슴팍에 단단히 붙들어맨 상태에서 존은 한 손으로 말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몸을 어루만지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계속 속삭였다.말 눈을 가리고 어루만지는 것은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서다.

그때 롤린스가 목에 걸친 밧줄 하나를 빼내 올가미를 만들어 뒷다리 하나에 걸고 앞다리 쪽으로 바짝 당겨 묶었다.그런 다음 먼저 걸어두었던 올가미를 풀어서 내던지고 조련용 고삐를 씌웠다.(금속재갈을 물린 것임)다음 남은 뒷다리에 두 번째 올가미를 걸고 두 올가미 밧줄을 고삐에 연결시킨다.존은 붙잡고 있던 망아지의 주둥이를 풀고 말에서 뛰어내렸다.망아지는 똑바로 서려고 애쓰다가 털썩 쓰러지고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지기를 세 번 반복했다.그러더니 누워서 곰곰 생각하다가 다시 일어나 서있다가 껑충거리며 뛰다가 사람을 노려보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작업은 정오무렵이 되자 16마리의 말이 모두 앞뒤 발이 묶이고 고삐를 쓴 채 각기 다른 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결과를 지어냈다.야생망아지들은 서로 접촉할 수 없었고, 신의 목소리가 깃들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조련사의 목소리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아이가 장난으로 묶어놓은 짐승 같은 몰골로 마냥 기다렸다.

 

 

 

길들이기 2단계 :

 

야생 망아지 한 마리만을 끌고 포트레 밖으로 나가 조련용 우리로 들어간다.이번에도 조련작업은 존과 롤린스 2인조다.존이 말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동안 롤린스가 말의 앞발을 묶고 고삐를 단단히 잡는다.그후 15분 동안 존은 삼베자루를 말의 몸통,머리,얼굴,다리에 문지르고 안아주고 속삭인다.다음 안장을 올릴 차례다.담요를 말 등에 펴고 쓰다듬으며 속삭이며 안장을 얹고 위치를 바로잡았다.여기까지는 말이 미동도 않았으나 뱃대끈을 조이자 말 귀가 젖혀졌다.존은 다시 속삭이며 말에게 기대서서 뱃대끈을 조이며 이것은 위험한 짓도,미친 짓도 아니라는 듯 계속 속삭였다.안장 채우기가 완료됐다.

다음 재갈을 주둥이에 씌운다.조심스럽게 말 다리에 묶은 밧줄을 제거한다.잠시 후 말은 뒷발을 뻗어 휘젓다 멈추더니 몸을 옆으로 틀어 발길질을 해대기도 했다.존이 말 옆구리를 슬쩍 치니 말이 앞으로 나아갔고 고삐를 당겨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다시 말머리를 돌려 제자리로 돌아왔다.존은 저녁때가지 열여섯 마리 중 열한 마리에 올랐다.밤에는 모닥불에 의지하여 나머지 다섯마리도 모두 탔다.

 

일이 모두 끝나자 망아지들은 우리 안에 가만히 서 있거나,걷는다 해도 땅에 늘어진 고삐를 밟아 코가 휙 당겨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레 걸었다.그런 모습에서 우아함과 품위가 느껴질 정도였다.아침에만 해도 단지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구슬인 양 미친 듯이 빙빙 돌던 야생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망아지들은 자신들 중 누군가를,혹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울음을 주고 받았다.

 

이상의 과정은 하룻동안 진행되었다.첫날 존이 올라탄 말을 블린스가 다시 탔으며 이튿날에도 동일하게 반복됐고 사흘째에 둘은 말을 타고 밖으로 나가 초원을 질주한다.

 

카우보이의 야생마 길들이기를 문학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접하고 나니 어떤 소감이 떠오른다.

자연속에서 태어난 후 3세가 될 때까지 사람을 전혀 본 적이 없는 말을 카우보이가 길들이는 일의 핵심은 두 가지로 보인다.'사람에 대한 공포심 없애기' '마구를 장착하고 사람을 태우는 생경한 감각에 적응시키기'

 

공포심을 없애주기 위한 방편으로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속삭이기'가 쓰였고 생경한 감각 적응을 위해서 삼베자루로 온몸을 문지르며 쓰다듬기가 동원됐다.두 가지 필살기를 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말의 정신을 재부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자연에서 배부를 때까지 풀뜯어먹고 무리와 어울려 사회을 누리고 적이 나타나면 도망치는 당연한 삶을 벗어나 이후로 인간의 삶에 편입되어 새로운 생존조건을 받아들이려면 이전의 삶과는 결별해야 하고 결별을 통과하여 거듭나는 의식으로서 말은 정신적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

 

최초로 야생마에게 다가가 다리를 묶고 넘어뜨리는 과정은 말로 하여금 심리적 죽음을 체험케 한다. 야생에서도 말이 불가항력적으로 쓰러져 있는 상황은 포식자에게 사로잡혀 사지를 뻗고 드러누운 것을 뜻한다. 만일 배앓이를 한다거나 출산을 위해 누워있는 상황도 생존을 위해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그러므로 말은 어떤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는 없어도 자신이 무력해진 사태를 체험하면서 심리적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다.존이 실시한 조련과정을 보니 말을 묶어서 넘어뜨리는 과정은 사람과 교감의 끈을 이어 긍정적인 새삶으로 이끌어내는 준비작업으로 읽힌다.

 

과거에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호스 위스퍼러>란 영화를 보았을 때 말미에 말의 정신을 치유하고자  넘어뜨리는 장면이 나왔는데 당시에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이 책을 읽고나서는 묶어 넘어뜨리는 기술이 말에 대한 물리적 강제를 최소화하면서 사람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였음을 알 듯하다.

 

사람의 삶에 필요한 말의 조달을 교배부터 육성까지 사람의 의도적 개입하에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산에서 데려와 길들이는 특수한 상황에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지던 서부개척시대의 말문화이자 말 조련법이라 볼 수 있겠다. 동양의 몽골이 나오는 다큐를 보면 지금도 말 길들이기를 할 때 날을 잡아서 마을주민이 모두 모여 도망다니는 말을 올가미에 걸어 붙잡아 올라타는 행사를 치르기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가축을 기르는 보편적인 문화에 깃든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신대륙을 개척하는 동안 말과 동고동락 했던 아메리칸 후예의 말에 대한 깊은 애정도 엿보인다. 책 내용 중에는 말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 같은 내용도 나온다.그렇기에 세월이 흐르며 그 땅에서 훌륭한 홀스맨십이 발전할 수 있지 않았겠나 짐작해보았다.

 

우리가 현재 타고 즐기는 승용마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의 손길이 타고 함께 생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책에서처럼 카우보이가 야생마에게 실시하는  강제적 브레이크가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그러나 말에게 속삭이며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이나 쓰다듬어주는 일이 말을 릴렉스하게 만드는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이후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15세 이상이 독자연령으로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

 

 

 

설정

트랙백

댓글

 

 

  화창한 날에 큰 나무 아래서 하루를 보낸다면 나무 그림자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림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길어졌다 짧아졌다 다시 길어질 것이다

하루가 인생이라면 그 안에서 우리들의 관계도 그림자처럼 변해간다.

 

 

                            

 

   

     오후 12시 30분. 말들의 점심식사가 한창일 시간이다. 빛과 그림자인 듯 각각 흰색과 검은색 털빛을 가진 몽실이와 깜주. 마당 가득한 햇빛을 깃발 삼아 꼬리를 나부끼는 견공 녀석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덜어내듯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주며 인사를 나누고 예뻐해주었다. 슬슬 마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마방은 저 끝에 있지만 벌써 귓가에 말들의 건초 씹어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들 자기 몫의 건초에 빠져들어 넋이 나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옆에 지나가도 사람은 그림자나 마찬가지다.아무런 기대도 없으니 삼 일 만에 아이들을 본다는 설렘도 마음속에 잠잠하다. 그 무방비의 순간에 말 머리 하나가 쓰윽 나왔다.촬영 후 모니터를 하는데 사진인 줄 알았다가 아 동영상이었군 하는 놀라움이 일었다. 아마르였다. 말 머리는 오 초 정도 나를 응시하다가 다시 쓰윽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에 일어난 이 일에 대하여 내 속에 소란이 일었다. 머리로는 이게 뭐지? 하는데 심장은 빨라지니 사고와 감정의 실타래가 엉켜버린 꼴이다. 실 꼬투리를 찾아내어 다시 풀어내야하리라.

 

   건초는 아직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맛난 건초를 먹다 말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야 했던 절박함이 무엇인가. 모든 사물이 정지한 공간의 침묵을 깨고 머리가 밖으로 나오는 속도에 절박함이 새겨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응시하던 잠깐의 시간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었을까. 

  아마르는 아무 것도 먹고 있지 않을 때 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머리를 내밀어 반가움을 표시하지만  건초를 먹을 때는 나를 우선 순위에서 밀어내고야 만다. 그렇기는 해도 궁금증은 못 참아서 입으로는 우물거리되 눈알은 힐끗힐끗 하면서 볼 것은 다 본다. 그럴 때 비록 내가 건초보다 덜 중요한 존재로 순위가 밀리기는 했으나 녀석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 그냥 보기에 기특했다. 그런데 아마르의 마음에 저울질 된 순위가 바뀌어 내가 건초를 밀어낸 상황에 맞닥뜨리니 내심 신기했던 거다.

 

  사실 지난 삼 일 마장에 나가지 못했다.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구질구질한 눈이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여서 집에서 머물렀다.  옛날 같으면 아이들 걱정이 되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삼 일이라니... 삼 일 동안 아이들을 못 본다면 온갖 걱정과 그리움에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져 나가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태평하게 (그리움은 어쩔 수 없지만...) 말 아이들을 삼일 씩이나 안 보고 지냈다는 것은 변해도 많이 변한 것이다. 저희들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견디는 방법을 터득했을 거라고 내 마음을 스스로 설득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그렇게 삼일 만에 본  아마르가 건초를 제끼고  나를 반기니 녀석이 내심으로 나를 걱정한 모양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루 정도야 안 올 수 있어. 어쩌다 가끔 이틀 안 보이는 때도 있었지. 그런데 삼 일은 좀 수상해 . 무슨 일 있나? 무슨 일 있으면 어쩌지? 하는 심리상태를 판토마임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 배우가 바로 아마르였다. 그저 머리를 창으로 내밀었다가 집어넣는 단순한 동작 속에서 표현하는 절제된 연기라고 할까.

 

  아마르에게 자신의 말 생애의 전부를 함께 지내온 사람은 나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르는 나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체중과 힘,냄새,감정 등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 중에는 좀 한심해보이는 구석조차도 꿰고 있다. 예를 들어, 수장대에 웅크리고서 녀석의 발굽을 손질해주고 수장대 밖으로 나가다가 가로지르는 쇠파이프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으윽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감싸쥐며 한참이나 소리가 나지 않게 엉엉 우는 모습같은 것은 모자의 챙 때문에 생기는 어이없는 변고에 해당된다. 그러는 내 꼬락서니를 보고서 아마르는 '아니 저걸 못 보고 부딪혀서 저러는 거야?  저래서야 험한 세상 어찌 사누. 쯪쯪...' 이랬을 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 느끼는 갓난아기의 힘처럼 가소로운 나의 팔 힘이며 제가 조금만 빨리 걸어도 따라잡지 못하는 걸음걸이 등 약점투성이 존재라는 걸 다 안다. 그렇기에 내가 제 눈에 오랜기간 보이지 않았을 때 '어디 다니다가 자빠지지는 않았나? 어디 아픈 건 아니야?' 하고서 걱정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던 거다.

 

  아마르가 날 걱정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느덧 녀석이 많이 컸네 싶어져 지나온 세월의 두터움도 느끼게 된다. 철부지 자식이 자라니 노인네가 되어버린 부모가 아기같아서  노심초사한다. 서로 걱정하는 역할을 바꾸어가는 상황이 빛과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아마르가 제법 점잖아진 후로 날 태우고 다닐 때  약하지만 좋아하는 존재를 등에 업고 다니는 뿌듯함과 의기양양함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언뜻 받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인가 기승 도중에 말 목의 스트레칭에 도움이 되라고 한쪽 고삐를 조작하여 말 머리만 돌리도록 했는데 그 순간 아마르의 옆 얼굴이 온전히 보였다. 눈빛은 온화하고 부드러웠고 시선은 그윽하고도 촉촉했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서 그런 표정을 짓다니... 아! 그 표정은 결코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동물의, 저당잡힌 존재의 표정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곳에 선명한 점을 찍고 있었다. 분명 아마르의 등에서 본 녀석의 표정에는 등에 태우고 있는 존재보다 훨씬 커다란 존재만이 보낼 수 있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에서 말이 한 생애를 살아갈 때 무리로 살아간다. 떠돌이 늑대라는 얘긴 있어도 떠돌이 말이란 얘기는 없지 않은가. 무리는 가족이다. 어른이 된 말은 무리의 질서 안에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리를 지키고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을 가졌을 것이다. 암말의 모성애 뿐만 아니라 말 모두에 깃든 보편적 본성으로서 타자에 대한  보호본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말이 지닌 신비가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사람은 말이 전력질주 도망가는 본성을 이용하고 그 효용을 누려왔다. 말이 도망가기 이전에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말끼리 서로 기대고 부비며 서로를 위하며 살았는지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 절박했기 때문이거나 필요한 부분만을 취해 온 이기적 문명의 역사가 안고있는 그늘이다.

 

  다른 초식동물도 무리를 보호하며 살아가지만 말처럼 사람에게 깊이 맺어진 동물은 없다. 빛과 그림자는 사물의 두 가지 속성 동전의 양면이다. 말은 사람이 진정으로 보호해주는 영역에 머무를 때만 스스로의 보호본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의 본성인 도망가기로 사력을 다 한다. 말이 도망가게 만들지 보호본능을 발휘하게 만들지는 사람이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식탁머리에서 아마르가 나를 걱정하더라는 얘기를 하다보니 기분이 우쭐해졌다. 목소리 톤까지 높여가며 남편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니까 남편이 자기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 나도 며칠 안 나가면 아마르가 총알처럼 머리를 내민다니까.  날 보고는 '죽지 않고 살아 있어 다행이네' 하고 안도하는 표정이야. 아무래도 우리가 말들 걱정하는 것보다 걔네들이 우릴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큰 거 아닐까? "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말은

이제 그늘 속에서 걸어나와 햇빛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약하고 아픈 존재들을 다독여주러 왔다고...

 신은 원래 우리에게 그런 임무를 주었노라고... 

 

 

                                              

 

                                               

 

 

 

 

 

 

 

 

설정

트랙백

댓글

 

2013년 발행/양희원,오현미,채준 공저/발행처-한국마사회/제작 plus81 studios출판부

 

p6.에 보니 <말을 보고 말을 걸다>는 한 명의 미술 전문가와 두 명의 말 전문가가 전해주는 그림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총 48점의 그림이 실려 있으며,이 중 13점이 우리나라 작품이다.

평소에 늘 지니고 있던 생각 하나가 있다.나 같은 말 애호가를 위하여 문화예술 장르별로 말 주제만 책으로 모아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회화,음악,시 등이 특히 간절하게 염원했던 장르다.그 중에서 말 주제 회화를 흥미로운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모아놓은 책이 세상에 나와서 기쁘기 그지없다.물론 세상에 있는 모든 말 그림이 다 들어있지는 않다.그렇기는 해도 회화에 담긴 말이 시대적으로 살아온 다양한 모습은 인상깊었다.

 

책이 선뜻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표지에 나온 여인의 기마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본문을 뒤적여 찾아보니  19세기 프랑스 화가 카롤루스 뒤랑의 작품으로 <해변가의 크로짓>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아마 책에 수록된 전체 작품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래도 이 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말을 탄 여인의 우아한 자태와 편안한 표정 때문이다.그러나 여인의 표정과 대조되게 여인은 상복 차림이다.여인의 안온한 표정 이면에는 어둡고 그늘지거나 힘겨운 현실이 놓여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그녀가 자신의 몸을 의지한 말 역시 맑은 눈망울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와 보이지만은 않다.턱 아래의 체인은 말이 제어하기 힘든 일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고개를 쳐들어 먼 곳을 응시하는 분위기는 사뭇 불안하기도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달관한 듯 체념한 것처럼 편안한 그녀의 표정은 말 등에 실려 나아가는 그 순간에 어떤 기운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어떤 구체적인 현실이 그녀의 뒤에 버티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흐트러지지 않는 기품과 우아함이 손 매무새에 응축되어 있으므로 삶에 순응하며 온전히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와닿는다.그림의 톤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서 감상하는 이의 마음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도 같다.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감상하다가 문득 승마클럽마다 말 그림이 담긴 액자 하나씩 걸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림이 힘든 현실 살아내느라 스트레스 받은 승마인의 정서를 어루만져 줄 테니까.그러면  말을 대하고 관계를 풀어나가는 자세도 더욱 여유롭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설정

트랙백

댓글

 

<당근과 감자마을의 유니콘> 글.임은주 / 그림.윤재혁 / 지코사이언스 출판사

 

책이 뒷표지

 

귀한 그림책이 세상에 태어났다.내가 좋아하는 말과 제주도가 예쁜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제주도 삼달리에 있는 c&p리조트이다. 그곳에는 말 십여 마리가 산다. 그 중에 그림책 주인공인 유니콘도 있다. 나도 몇년 전 제주 여행때 찾았던  C&P리조트에서  유니콘이 망아지 시절일 때 곁에서 남다른 애정으로 지켜보았던 행운의 소유자다. 유니콘의 얼굴에는 기다란 뿔 모양의 마킹이 있어서 이름이 유니콘이 되었다고 한다 . 친숙한 장소와 말을 그림책으로 만나니 무슨 마술이라도 본 것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그림책을 창작한 작가와 화가는 실제 부부인데 제주도 올레 여행길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리조트와 말 친구들이 너무 좋아 애정을 갖고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의 결과물로 탄생한 그림책은 부부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앞표지를 보니 유니콘이 천진한 표정으로 메롱하는 것처럼 혀를 약간 내밀고 있었다. 우리 아마르가 자라는 동안 내내 보던 표정이라 친근한 정이 느껴지고 미소가 지어졌다 .이러한 느낌은 책을 보는 내내 이어졌다 .화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졌을 동물들의 표정은 모두 정감이 있다.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면 캐릭터마다 독자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그림에서 특히나 좋았던 부분은 색감이다. 제주땅을 무수히 드나들며 보았을 자연의 색감이 그 질감을 고스란히 품은 채 페이지마다 생동하고 있었다. 제주의 돌담이나 곶자왈 숲의 깊고도 신비스런 색감과 마주했을 때는 '우와'하는 감탄마저 나왔다.

 

그림책은 아이 혼자도 보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매체다. 그럴 때 페이지 곳곳에 등장하는 디테일 잘 차려낸 만찬처럼 느껴진다. 제주에 실제 서식하는 곤충이나 식물이 다양하게 나오니 여행지에서 만났던 친구와 다시 조우하는 기쁨도 느꼈고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생태공부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도 나무랄 데 없다. 어린이가 마음에 꿈의 씨앗을 품는다. 씨앗을 틔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지만 용기를 내어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나아가는 동안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위험과 역경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다. 결국 꿈에 다가간다.

 

유니콘이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의 여정으로 나아갈 때 도와주는 이는 종이 다른 동물이다. 까마귀,노루,소...이 부분이 이 그림책이 가진  또다른 미덕이 아닌가 한다. 어린이가 커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세상은 나와는 너무도 다른 존재와 조화를 이루어야만 살아낼 수가 있다. 또 인간이 다른 종의 동물과 관계맺는 우호적인 방식도 가르쳐준다.

 

옛날에는 TV를 비롯한 각종 디지탈 기기가 없었기에 캄캄한 저녁에 화롯불가에 모여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 옛이야기속에서 꿈꾸며 어른으로 성장했다. 지금에 와서 그런 문화가 사라진 자리에 그림책이 대신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좋은 그림책이 세상에 많이 나오고 많이 읽혀져야 하는 까닭이다.

 

그림책은 아이에게 먼저 사랑받아야 한다. 잠들기 전에 아이가 되어 침대에 앉아 그림책을 넘겼다. 혼자 미소지으며 낄낄거리다 손가락으로 그림에 나오는 고사리며 거미며 문질러보는 사이 나는 어느새 제주도 오름과 억새밭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그림책은 분명 보는 사람을 꿈꾸게 한다. 참 좋은 그림책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

 

2014년 1월 5일 서울 나들이를 했다.소공동 롯데백화점에 있는 롯데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말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사진은 전시된 작품이 담긴 엽서)

 

전시회의 감동을 오래 간직하려고 도록도 샀다.

 

달력과 참여작가 소개지.

 

말띠 해가 되니 참 좋다.세상에 말 이미지가 풍년을 이루었다.여기를 봐도 말,저기를 봐도 말.말 이미지의 으뜸은 예술작품에 구현된 말일 것이다.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한국,몽골,호주 작가의 말 그림 전시회를 한대서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3국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그곳에 가기 전에 내가 늘 만나서 함께 생활하는 말이 어떻게 미술작품으로 형상화 되었으려나 너무도 궁금했다.말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물이어서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기에 손색이 없다.여기에 더하여 예술적으로 승화된 형상적 이미지로 만나는 말은 어떤 느낌으로 나에게 전해질까?

 

내가 하늘 만큼 땅 만큼 좋아하는 고 김점선 화가의 작품 앞에 섰다.우리 집에도 파란 말이 그려진 판화작품이 걸려있다.화가의 무수한 붓질이 가득 메워진 작품 앞에 섰다.

 

미술 전시회에 가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작품을 골라본다.이 전시회에서 만난 '나에게는 최고!' 작품은 여인을 등에 태운 말이 서있는 그림이다.말의 표정엔 슬픔,연민의 감정이 차오름에도 타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다.사람을 태우는 행위의 내면에 깔린 말의 마음이 엿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이 사람에게 주는 수많은 즐거움 중에서 예술작품으로 다가오는 것도 커다란 부분이다.화가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영감의 원천이고 미술애호가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기쁨에 취하게 하니까.

 

한국화가의 작품에서는 김점선 화가의 따뜻한 추상화가 참 마음에 든다.몽골화가의 세계에서는 말이 우리네 스마트폰 만큼이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이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호주화가의 작품은 내 개인적인 취향과 아주 맞았다.그곳의 말은 사람의 친구로 인격화되어 동반자이자 내면의 벗이기도 했다.언젠가 호주여행을 했을 때 광활한 땅에 비해 매우 적은 인구가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사람과 부대끼기는 커녕 사람 구경하기조차 힘들게 살아갈 때 말이 좋은 벗이 되어주었으리라.나의 애마 칸타빌레도 호주가 고향이다.머나먼 고향을 떠나와 나의 곁에서 살아가는 칸타빌레는 현재 더할 나위 없는 내 벗이다.

 

새해가 시작하는 달 , 말 그림 보러 가실래요?

설정

트랙백

댓글

 

이 사진은 본문내용과 상관 없이 초겨울 즈음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의 순간입니다.칸타의 행색을 보니 아빠가 근처에 있는 모양입니다.

 

 

어젯밤에 ktv 방송에 우리 가족이 살짝 출연했던 부분이 나와서 시청했다. 얼마 전에 시니어 기자 두 분이 방문하여 승마장 원장님과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촬영을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있었던 우리 가족도 카메라에 잡혀 잠시 촬영에 응하게 되었다. 승마로 여가를 즐기는 가족으로서 나온 거다. ktv 방송은 국민방송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그 옛날 극장에서 본영화 상영 전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대한뉴스 화면을 기억하시는지.바로 그 대한뉴스의 현대판 버전이라 하면 맞다.

 

촬영날은 몹시 추웠다.그 전에 많은 눈이 내린 후에 추위가 찾아들었다.기승을 하려고 나오니 추워서인지 다들 실내마장에서 타고 있길래 '복잡하구먼'하고서 밖으로 나갔다.바닥 모래 상태가 얼다 말았는지 버석버석 한 것 같아 칸타를 타고서 조심스레 마장을 돌아보았다. 전날 바닥에 염화칼슘을 뿌린 상태였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땅은 표면이 얼지 않았지만 바닥은 딱딱한 느낌이 전해졌다.아무래도 얼지않은 모래 아래로 얼음층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좋지 않아.그냥 들어가야겠네'하고 돌아서려는데 시니어 기자 두 분이 카메라 셋팅을 마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준비를 하고 기다리시는데 차마 그냥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참 평보를 하고 나서 조심스레 속보를 시작했다. 살얼음을 밟고 가듯 사뿐사뿐 나아갈 때 꼭 내가 경기 전에 빙질을 점검하는 김연아 선수라도 된 것 같았다.어느 한곳이라도 안 좋은 곳이 있으면 꽈당 미끄러질 수 있으니 온 신경의 레이다를 돌려서 살펴봐야 하리라. 겨울철 눈이 녹았다 얼어서 형성된 일부 빙판은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복병이기도 하다. 말이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미끄러져 나뒹군 말에 다시 사람이 상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칸타를 타고 나아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지점에서 모래 아래층의 좀 약한 얼음이 깨지면서 푹 들어갔다. 말 뒷다리 중의 하나가 빠져드는 충격이 말 몸 전체로 전달됐다. 뿐만 아니라 팬스 가장자리는 치워낸 눈의 물기가 스며들어 단단한 얼음 트랙이 되었다. 그 위를 밟고 지나갈 때 마치 지하철 공사장이 된 도로 위 철판을 통과하는 것처럼 쿵쿵쿵 울렸다.

 

혹여 칸타가 미끄러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니 평소에 하지 않던 긴장으로 갑옷을 해입은 채로 마음은 걱정이 가득했다.그래도 이 추위에 촬영을 나오신 어르신 기자님들이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구보까지는 연출해야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아마 그 상황에서 가장 시끄럽게 정신없는 곳은 내 머릿속 같았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대고 '제발 그만해.시끄러워서 말을 타겠냐구!' 버럭질을 하고 고요가 잠시 찾아오니 칸타의 상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칸타는 내 머릿속과 심장의 상태를 HD 화질로 스캔하여 본 것 같았다.얼마나 조심성 있게 새색시 걸음으로 속보를 하든지 그만 내 마음에선 용기가 솟았다.그래 구보를 해도 되겠구나. 가자 칸타! 칸타는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게 구보를 시작했고 걸음은 뛰는동 걷는동 작은 보폭으로 가볍게 나아갔다.칸타의 조심스럽고도 적절한 처신 덕분에 무사하고 안전한 승마를 마칠 수 있었다.

 

겨울철 언 땅 위에서의 기승운동은 아니 하느니만 못합니다.

말과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승마가 국민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거지요.

 

우리 가족의 첫 방송출연이다. 국민방송에 나오게되다니 정말 뜻밖이다. 평소 정치나 정책 분야에 그닥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말과 승마로 인하여 나 혼자 행복하고 말 일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왔다. 그러므로 우연히 ktv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출연하게 된 일이  필연적 계기가 되기도 할 것 같다.

말산업은 결국 말로 인하여 국민이 잘살고 행복하자는 취지가 아니겠는가. 2014년 청말의 해를 시작으로 말산업에도 질적인 발전과 도약으로 관련된 많은 분들이 웃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해당 방송입니다.클릭하시면 ktv 홈페이지가 나옵니다. 동영상을 플레이 하시고 시청하세요.

 

http://www.ktv.go.kr/program/contents.jsp?cid=476247

 

설정

트랙백

댓글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귀한 청말띠다.내가 복이 많다. 책이 출간되자 우연히도 세상은 말띠해를 맞았다고 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이런 분위기 속에 말 관련 책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행운이 찾아들었다. MBC 문화사색이라는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 낮 2시에 방송한다.문화와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소개하는 품격 있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나는 반려마로 기르는 말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승마인 작가로 포커스가 맞추어지며 촬영이 진행되었다.4시간 가까이 촬영을 했는데 PD님 포함 두 분의 방송인은 완전한 몰입의 경지로 얼마나 진지하고 열심히 작업을 하시던지 꽤 오랫동안 혼자만의 일에만 익숙해있던 내게 공동작업의 열정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우리 아이들 역시 세상 어느 말보다 카메라에 익숙한 터라 새로운 상황에 완전히 녹아들어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었다.

 

전체적인 촬영내용은 승마장에서 나의 하루일과를 따라 움직이며 사이사이에 많은 인터뷰가 있었다. 처음 마방에 찾아가 말에게 인사하고 그들을 살피고 데리고 나오기,자유롭게 놀게 하기,마필관리,기승운동 등이 굵직한 내용이다. ( 뛰노는 아이들은 수아 & 마티. 마티가 더 빠르다 ^^)

 

촬영을 마치고 났을 때 나는 녹초가 되었다. 말의 세계에 대하여 글로 표현할 때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편했다면 인터뷰에 응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말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꼭 모국어를 쓰다가 갑자기 어줍잖은 외국어로 의사표현을 해야하는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횡설수설한 느낌이었는데 이미 버스는 떠났고 어떻게 편집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 사진은 아마르 & 마티 & 레이 )

 

나의 이러한 모습과는 달리 칸타는 카메라 앞에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연기자처럼 자연스러웠다.시종일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카메라를 응시한다든지 나의 말을 경청하며 서있는 모습으로 내 이미지의 일부가 되어주었다.나의 부족함을 칸타가 많이 메꾸어주었을 것 같다.

 

 

 

 

아마르는 책과 일관된 호칭을 유지해야 해서 촬영 내내 깐돌이라 불러야 했다.그러나 어느새 아마르가 입에 익었다고 몇 번 아마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아마르는 워낙 새로운 상황을 좋아해서 하루가 즐거웠을 것 같다.엘도라도는 조마삭 장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남들은 다 노는데 자기만 뭐하는 거냐고 기분이 상해서 비협조적이었다.미안하다 엘도야~

 

 

내가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출연에 응하게 된 것은 이를 계기로 말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고마운 동물이며 사람의 동반자적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친근하게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아마르야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과 꿈을 나누어주는 말이 되려무나!

 

촬영장소를 제공해주신 한강승마클럽과 협조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마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편함 없이 말과의 생활을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해당 촬영분의 방송 시간을 정확히 알게 되면 다시 올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일정 : 2014.1.13(월) 오후 2시 10분

설정

트랙백

댓글

 

 

이쁜아~ 이쁜 궁뎅아~ 한 해도 다 갔구나.올해 아프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지내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도 고마워! 우리들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알렸잖아!  엄마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리를 더 가깝게 느낄 거야!

 

 

할머니 고마워! 할머닌 아무리 바빠도 우리 돌보는 일에 마음을 다해 정성 가득 했다는 걸 알아!

 

 

나도 고맙지! 이쁜이랑 이쁜 궁뎅이는 나의 승마 교과서이자 스승이니까!

 

 

스승은 뭐구 교과서는 뭐야? 그거 좋은 거야? 

 

그럼 좋고 말고.내가 너희 등에 탔을 때 어떤 행위를 하면 괴로운지,불편한지,좋은지,어떻게 움직여지는지 늘 가르쳐 주잖아.

사실 너희는 무서운 스승이지.조금만 잘못하면 화내고,신경질내고,뒤돌아보며 노려보잖아. 내가 혼나지 않으려고 얼마나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지 모를 거야.

 그야 할머니는 내가 무슨 소릴 해도 잘 알아듣고 최소한 알아들으려고 마음이 열려 있으니까 하고 싶은 소릴 다 하게 돼!

 

 

너희는 기특해! 칸타는 올해 낯선 이모 둘을 태웠던 일이 있었지? 두 이모 다 구보가 능숙하지 않은 실력이었지.그 이모들을 태울 때 칸타가 조심조심 이모 겁내는 걸 알고 얼마나 잘  알아서 모시든지 말야.이모가 소심하게 구보 사인 주었을 때도 구보 가도 되려나 노심초사 하면서 자근자근 속보 템포로 가주었을 때 정말 훌륭한 승용마라는 생각을 했지.나중에 다 타고나서 이모가 "참 잘 키우셨네요!" 했을 때 엄마는 너무도 기뻤단다. 이쁜 궁뎅이도 앞으로 그런 승용마가 되어야 해요!

 

 

새해가 되면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각오를 하게 되니 참 좋아!

(숨은 그림 찾기 : 몽실이)

 

 

 몽실이는 꼬물꼬물 할 때부터 사람이 안아다 말에게 콧등뽀뽀를 늘 시켜줘서 말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그렇다고 기승운동 하는데 진로방해하며 일부러 뛰어가 드러누워 있는 건 좀 심하지? 종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 친구맺기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언제나 유쾌하다니까.

할머니 ! 그런데 난 왜 하필 이쁜 궁뎅이야? 

 

 그야 발굽 파줄 때 다음 발을 자동으로 착착 들어주니까 이뻐서 토닥거리다 보니 그렇게 부르게 됐지 뭐!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말의 힘찬 발걸음은 엉덩이에서 솟는 거란다. 그러니 할머닐 태워주는 백만불 짜리 궁뎅이지 뭐 이쁜 궁뎅아! 으이~ 또 이쁜 궁뎅이래!!! 하하하~

 

 

 고마운 분들께 받은 선물! 수줍게 꽃을 피운 난.비누로 만든 장미꽃과

 

 

따뜻한 귀마개와 요정 털모자, 국화꽃 한 다발...

 

 

붉은 털목도리...

모두 책이 출간된 후에 받은 선물입니다.

제게 주신 고마운 마음은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2013년 한 해 <알팔파 앤 티모시>를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는 말이 예로부터 부와 명예의 상징이며 행운을 부른다고 합니다.

말이 복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인 셈이지요.

블로그를 통하여 제가 말에게 느낀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내내 행복했습니다.

말의 해를 맞은  내년에도 이 행복 이어가야겠지요.

 

모두들 한 해 열심히 살아내느라 애쓰셨을 겁니다.

깐돌할망도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책의 앞표지 / 오키 토오루 지음 / 김원균 옮김 / 책공장 더불어 출판사

 

책의 뒷표지

 

기린 옆에 보이는 사진은 저자 오키 토오루 , 오른쪽에 본문 사진의 치로리

 

 

온 세상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퍼지는 성탄주간입니다.

<알팔파 앤 티모시>에서는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큰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려봅니다.

 

동물매개치료(AAT: Animal Assisted Therapy)라는 분야가 있다.노인이나 장애인,환자와 접촉하여 그들의 허약해진 몸과 마음을 동물이 치료하는 분야이다.매개치료를 할 수 있는 종은 다양하다.그 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 할 만한 개의 역할은 매우 뛰어나다.<치료견 치로리>는 그에 대한 놀라운 사례이다.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손꼽을 만한 감동을 선사한 책이기도 하다.정말 놀랍고도 매력적인 개 치로리 소개를 해보겠다.지은이가 치로리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 받은 인상을 책에 이렇게 표현했다.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는 잡종개' '똥개' '...솔직히 어떤 종이 섞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인 모습...' '좋게 말해서 -독특한- ,솔직히 말하면 -볼품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개.게다가 곧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폐가에 있다보니 왠지 꿈에라도 나타나면 가위눌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치로리가 견공 중에서도 가장 남루하고 비천한 모습의 똥개 대표쯤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이런 치로리가 어떻게 혈통과 품성,자질에서 베스트 중의 베스트만이 자격이 주어지는 치료견이 될 수 있었을까?

 

치로리가 발견될 당시 치로리는 갓 출산하여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개였다.출산 직후 비오는 날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것을 동네 아이들이 주워다가 과거 요양원이었던 폐가에 숨겨두고 돌봐주고 있었다.지은이는 우연히 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 결국 치로리와 새끼를 구하고 치로리를 치료견의 운명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갓 출산한 어미개와 꼬물이 새끼들을 비오는 날 쓰레기장에 버리다니 주인은 정말 비정한 사람이다.내가 쓰던 물건도 내다버릴 때는 비 맞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거늘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치로리는 몽둥이에 심하게 맞아 허리 이하의 한쪽 뒷다리가 불구였다.그 불편한 몸으로도 치로리는 운명을 헤쳐나가며 치열하게 살아나갔다.

 

지은이와 처음 대면한 치로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과 새끼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그 강렬한 의지에 이끌려 지은이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운명에 휘말려들게 되었다.인간세상은 치로리에게 완전한 적이었다.동네에서는 개를 키워서는 안되는 곳이어서 만일 주민 누군가가 신고를 하면 동물센터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5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당하게 되는 상황이 치로리를 기다리는 운명이었다.결국 치로리는 동물센터에 잡혀가서 5일을 머무르게 되었다.5일째 되던 날 지은이가 그곳에 찾아가서 극적으로 치로리를 구해냈다.그때 목격한 유기견 보호소의 광경은 인간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인간에게  버려져서 이곳에 온 개들은 첫날 상황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하다가 점차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어 깊은 절망에 빠진다.그들의 비탄과 슬픔을 치로리도 고스란히 맛보았다.그러나 치로리는 살고 싶어했다.치로리는 구조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기견들은 끊임없이 버려져서 처분을 당하고 있다.

 

사람이 선사한 불행종합선물세트를 모두 맛본 치로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국적이 일본인 지은이는 거의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치로리를 기를 형편은 아니었다.고심끝에 자신이 운영하는 훈련소에 치로리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하지만 과연 치로리가 그곳에서 적응을 할지 아니면 천덕꾸러기가 되어 사느니만 못한 신세가 될지 그 일은 모험에 찬 주사위던지기와 비슷했다.

 

치료견 훈련소에는 순수혈통의 시베리안 허스키들이 있었다.그들 사이에 낀 치로리는 얼마나 작고 볼품없는지 처음에 웃음꺼리가 될 만했다.그러나 치로리의 승부근성,경쟁심,영민함이 발휘되자 치로리는 시베리안  허스키를 제압하고 대장이 되었고 1년 이상 걸리는 훈련내용도 모두 소화하고 어엿한 치료견이 되었다.이러한 결과의 밑바탕에는 치로리가 길거리에서 새끼를 보호하며 생존의 벼랑끝에 몰려 치열하게 버텨온 힘이 있었다.게다가 치로리는 천성적으로 약자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운 품성이 있었다.

 

치로리의 치료견 활동 성과는 눈부셨다.골방에 틀어박혔던 소년이 세상으로 걸어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했고,말하기를 잃어버린 노인의 말문을 열었고,노인이 쓰기를 멈추어버린 손을 놀려 치로리를 쓰다듬도록 하고,마비환자를 걷게 만들었다.노인이나 환자는 쇠약해진 몸 때문에 점차 마음도 약해져서 세상과 단절되어간다.그러다보니 감각도 무디어지고 신체기능이 더욱 퇴화되어갈 수밖에 없다.그런 이들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고,만지게 하고,함께 걸음을 걷는 일은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킨다.

 

날이 갈수록 치로리의 명성도 높아지고 고마움을 전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다.그 중에 어느 초등학생의 편지 구절을 소개한다.

'......선생님이 해주신 치료견 이야기를 듣고 저는 개가 이렇게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많은데 왜 인간은 개를 못살게 굴까라는 생각을 했어요.그리고 치로리는 사람한테 버림받고 맞았다면서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이상해요.나 같으면 다시는 사람들을 믿지 않을 것 같은데요.그래서 치료견들은 모두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치로리가 모든 상황을 초월한 도인 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치료견 활동 중에 환자와 함께 걷기는 중요한 기술이다.그런데 환자는 지팡이 사용이 거의 필수라 치로리에게는 처음에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지팡이가 과거에 자신을 때린 몽둥이로 인식되어서였다.때문에 치로리는 한동안 지팡이 적응하기 훈련이 따라야 했다.

 

나 역시 편지를 쓴 초등학생과 같은 의문이었다.철저하게 학대받고 버려졌음에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말이다.그리 되기까지는 치로리의 타고난 강인한 정신력,지은이 오키 토오루가 사람으로서 보여준 친절함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그렇지만 치로리가 가진 가장 큰 본질은 무한한 사랑이었다.

 

치로리가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사랑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함은 용서와 화해,배려와 베풂과도 같은 커다란 미덕이다.사람이 누군가에게 가해를 당했을 때 복수의 마음으로 쉽사리 갈등과 폭력으로 내몰려 더 큰 불행을 지어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어서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개들도 치료견 활동을 한다.꼭 프로패셔널 치료견이 아니어도 아이 컨텍트,사람 보폭에 맞추어 걷기,함께 놀기,함께 잠자기 등으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활력을 주는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치로리 사례 이후로 꼭 순종견이 아니더라도 유기견 중에서 치료견으로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일이 생겨났다고 한다.또한 치로리의 활약을 보면서 매년 32만 마리가 안락사 당하는 일본 현실에 반려견의 소중함을 알리는계기가 되었다.

 

나는 승마인이기 때문에 말과 함께 하는 동물매개치료에 관심이 많다.이 분야는 재활승마에서 다루며 그 효과에 대해서는 놀랄만치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말은 개,고양이와는 달리 대동물이어서 노약자와 환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반면 초식동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뛰어난 감수성이 갖는 치유력이 분명 존재한다.앞으로 말을 통한 동물매개치료가 더 폭넓고도 체계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말과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이 분야에 열정을 갖고 연구해주었으면 좋겠다.

 

2014년 말의 해를 맞이하여 말이 지닌 치유력에 대하여 주목해볼 일이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