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는 발굽쿠키가 나온다.  빵집에서 파는 쿠키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 아니다. 이 쿠키는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보면 아이 손바닥 크기의 쿠키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 쿠키를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서 홍차와 함께 내놓는다면 성미 급한 손님이 집어서 덥석 베어물지도 모른다. 물론 덥석과 동시에 '에페페'하고 뱉어내겠지만 말이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발굽쿠키는 이름 그대로 말의 발굽이 찍어낸 것이다. 말발굽 바닥은 오목하다. 식당에 갔을 때 나오는 개인용 나눔접시 정도의 깊이랄까? 그렇게 오목하다 보니 마방 바닥에 깔았던 톱밥이 발굽 안에 갇혀서 단단하게 다져진다. 서로 뭉친 채 답답한 어둠의 세월을 보내다가 말이 마방 밖으로 나왔을 때 발굽의 탄력에 의해 톱밥은 광복을 맞이하여 환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발굽쿠키란 이름으로!

 

물론 나만의 명명이고 세상 사람들이 이 사물에 대하여 주의깊은 눈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발굽쿠키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발견한 갯수만큼 더 많은 행운이 나에게 찾아올 것 같은 주술에 사로잡힌다.

 

화요일에는 발굽쿠키가 나온다. 왜 화요일이야? 누가 묻는다. 승용마가 마방에서 지내다가 운동이라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발굽을 파낸다. 발굽에 낀 톱밥을 제거하지 않고 내보내서 운동이나 방목을 했을 때 습기를 머금은 톱밥은 서로 뭉쳐서 '공구리'라도 친 것처럼 단단해진다. 그러면 발굽이 불편해져서 기능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보통 말이 하루에 한 번은 밖에 나오므로 발굽청소를 하게 되어 평상시에는 바닥에 가루나 조금 떨어질 정도다. 그러나 화요일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을 꼬박 지내고 화요일까지 말이 마방에 머물렀기 때문에 발굽바닥엔 톱밥이 잔뜩 껴서 다져지고 또 다져진다. 쿠키반죽의 숙성시간 정도라고 할까. 그러다 짜잔~ 밖으로 나오면 발굽 톱밥의 대부분은 으스러져서 뭉개지지만 용케 형체를 갖춘 채 형상을 남기면 발굽쿠키가 된다.

 

가끔 어떤  쿠키는 두툼하니 모양도 참으로 예쁘다. 그런 쿠키를 보면 들어서 앞뒤로 살펴보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음 정말 잘 생겼군!' 그 쿠키가 그렇게 특별한 까닭은 쿠키틀이 너무 소중한 존재라서 그럴 것이다. 말에게 발굽이란 생명이다. 말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나타낸다면 발굽일 것이다.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준수하게 생기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말이 있었는데 그만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이었다. 사람이 끌고 어딜 가다가 난데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놀라 말이 화들짝 놀랐는데 운이 없었는지 발목을 접질러 부위의 뼈가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지인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한 대목은 그 다음 상황이다. 수의사의 진단 후에 말이 앞으로 승용마로서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라면 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관계자들은 무슨 결정이 그리 어려웠는지 일주일 이상 말을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말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극심했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지인의 심정도 참담했다고 한다. 관계자가 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았다면 차마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못난이 발굽쿠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어린말들이 다치거나 부상으로 죽음에 이르는 일은 흔한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산통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말의 소식도 여전히 들려온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말이 살아가는 세상이 힘들기 때문에 마방복도에서 만나는 발굽쿠키가 '오늘도 무탈하군요. 좋은 하루!' 하고 사인을 보내오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말이 그 증표로 발굽쿠키를 보여줌으로써, 마찬가지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내라며 행운의 부적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데 커피맛도 좋을 뿐더러 사이드메뉴로 당근쿠키를 맛볼 수 있다. 그날 바로 구워낸 쿠키인데 한입 베어물고 커피를 홀짝거리면 말생각도 나면서 금세 기분이 달달해진다. 만일 내가 카페 주인장이 될 날이 온다면 꼭 발굽쿠키를 구워서 팔 것이다. 아몬드를 채썰어 넣고 통밀을 거칠게 빻아 반죽해서 구워내면 오리지날 발굽쿠키 느낌이 날 것 같다. 발굽쿠키를 먹으면 행운이 찾아온대요! 하고 메뉴판에 써붙이면 날개 돋힌 듯 팔리지 않을까? 아 ~ 오늘도 나의 상상은 날개를 달고 구만리를 날아간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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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말이 되자 보리에 이삭이 났다. 이삭이 일제히 돋아나자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줄기의 녹색과 이삭의 연두색이 조화를 이루며 빛을 받아 반짝이고 바람에 넘실거릴 때 바라보고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질 것만 같았다.

 

 

 

보리밭이 이렇게 목가적 낭만의 분위기를 선사할 줄은 몰랐다. 보리밭에서 만난 원장님이 ,보리 심어놓으니까 아주 멋지네요, 하신다.

 

 

 

작년에도 보리를 심기는 했다. 그런데 이삭이 달리기 전에 베어서 말에게 먹였으므로 이런 장관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이 보리는 지난 겨울이 오기 전에 심은 것이니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서 자란 보리다.

 

 

 

 

한겨울 동안 보리밭은 풀이 누렇게 말라죽은 형상이었다. 누가봐도 추위에 다 얼어죽었구나 했다. 그거라도 아쉬워서 우리 칸타랑 아마르는 종종 누렇게 동사한 보리싹을 뜯어먹곤 했다.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일에도 기적이란 말을 써도 된다면. 대지가 따뜻해지면서 땅이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초록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보리가 부활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모습이다. 난 아직도 두꺼운 옷을 껴입었다. 칸타가 엄마가 어서 보리싹 갖다주기를 기다리며 바라본다.

 

 

 

 

칸타가 얻어먹는 녹색잎은 그야말로 어린싹 수준이다. 이런 사이즈 풀은 뜯어다주기도 애매하다. 손에 잘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밭에 말을 데리고 가서 뜯기는 것이 좋은데 두 마리를 한꺼번에 풀뜯길 수 없어 아쉽지만 좀 뜯어다주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했다.

 

 

 

 

 

                                   칸타의 풀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엄마 더 줘!

 

 

 

 

                                  에구~ 엄마 힘들단다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칸타는 채워지지 못한 헛헛함을 끙끙이로 달래고 아마르는 잇몸의 빈곳에 혀를 밀어넣어 채우는 행동을 하니 ,말의 심리적 공허함이 그렇게 나타나는가 싶어 웃게 된다.

 

 

 

 

내가 보기에도 좀 그렇다. 보리밭이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놓고 못가게 하니 말이다. 맛난 것을 눈앞에 두고 보고만 있으라니 아쉬운 마음은 나도 말 못지않다.

 

 

 

 

그러다가 이런 날이 왔다. 보리의 키가 내 하반신을 가릴 정도로 풍성하게 자랐다.

 

 

 

 

                   칸타,아마르가 곧 보리만찬을 한다고 기대와 설레임으로 흥분해서 들썩들썩 한다.

 

 

 

 

           맛난 것 앞에서는 어미고 자식이고 다 소용없다.  둘 사이에 신경전이 팽팽하다.

 

 

 

 

새치기 명수 아마르가 보리이삭을 제자리에 놓기도 전에 한입 콱 베어물었다.동작 한 번 참 빠르다.

 

 

 

 

그 정도에 지는 칸타가 아니다. 더 놀라운 필살기가 있다. 양동이를 자기쪽으로 확 쓰러뜨려서 유리한 상황을 만든 후 머리로 방어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래도 아마르가 칸타보다 공간점유력에서 밀려 보인다.

 

 

 

 

다른 말 같으면 칸타가 국물도 안 떨궈줬겠지만 그래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닌가. 결국 아마르가 맘껏 먹도록 하니 어느덧 사이좋게 만찬을 즐긴다.

 

 

 

 

 나는 아이들 뱃속으로 보리이삭이 꾸역구역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내 배가 불러오는 듯 흐뭇하다. 넘실거리는 보리의 물결을 바라보며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랬다. 나이 먹을수록 문화생활과 여행이 인생의 기쁨인 것 같다고.  그랬더니 상대는, 거기다가 맛난 것 먹으러 다니는 것도 추가해요,라고 말했다.

 

 

 

 

 말도 그런 것 같다. 말은 문화생활 대신에 운동 잘하고, 여행은 못가더라도 산이나 들판 등 자연을 원없이 바라보고, 사료나 건초 외에 특별한 먹거리를 맛보는 것이 삶의 낙이 될 것 같다.

 

 

 

 

                                  둘은 오늘 그런 날을 맞았다.

 

 

 

 

보리는 조금만 베면 한 양동이 가득이다. 이날 아이들은 각각 한 양동이씩을 먹었다. 이삭에 곡물이 함유된 먹거리이므로 말에게 줄 때는 많이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또한 입맛이 원하는대로 무한정 먹을 수 없는 다이어트 현대인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칸타야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그악스럽게 먹어? 좀 예쁘게 먹으면 안되니?

 

 

 

 

 

                                           이렇게요?    그래 참 얌전하구나.

 

 

 

 

                                   아마르는 원래 얌전하게 먹어요,그쵸 할머니?

 

 

 

 

                                                    그래,얌전하면서도 엄청 빠르지

 

 

 

 

보리밭과 말이 나를 힐링하게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난 겨울 얼어죽었다고 생각했던 보리가 부활하듯 살아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존재감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혹시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그저 지나가버린 것들, 실패했다고 끝나버렸다고 생각한 채 사라져버린 무수한 사건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잠자고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미래의 어느 날에 보리처럼 찬란히 살아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맛나게 먹는 동안에 이 주변에서는 할방님이 잔돌들을 수거한다.

 

 

 

 

                         아이들 밟고 다니는 길에서 하나라도 돌을 치워주려는 마음이다.

 

 

 

 

 

 

 

 

 

 

                                  돌들의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 다시는 흩어지지 마세요!

 

 

 

 

열린 문으로 마방이 보인다. 요즘 문 근처 마방에서 지내는 말들이 밖을 내다보느라 넋이 나간 모습을 자주 본다. 시선으로나마 자연을 즐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모심기 전의 논.

 

 

 

 

아파트 베란다에도 화초를 가꾸며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승마장에도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있으니 휴식과 즐길거리가 되어 좋다.

 

 

 

 

기승운동 끝나고 마주님과 함께 산책나온 말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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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옆으로 원형마장이 생긴 후 방목장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이곳저곳 마장이 붐벼도 운동공간으로부터 열외지역인 이곳이 칸타와 아마르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아이들도 이곳을 좋아한다.

 

 

 

 

 

새로 조성한 마장엔 아직 잔돌들이 많다.  아마도 당분간은 잔돌 뿐만 아니라 주먹만한 돌들도  밑에서 자꾸 올라올 것이다. 할방님은 아이들 방목시켜놓고 뙤약볕 아래서 돌들을 하염없이 골라낸다. 내친 김에 주변 트랙을 한바퀴 돌며 눈에 띄는 돌들을 또 주워담는다. 그래도 아직은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아니어서 아이들을 풀어놓고 어슬렁거리며 돌을 골라내는 모습이 그리 고되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후면 풀씨들이 날아와 여기는 풀천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을 타고 산책을 자주 할 터인데 그 전에 밑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돌이나 잔돌들을 골라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한바퀴를 다 돌아 온 할방님이 한숨을 쉬며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다 " 짱돌 골라내는 것도 내츄럴호스맨쉽이여~~ " 

 

 

 

 

 

 

 

얼마전에 이곳서 큰돌을 좀 골라냈는데 운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만 칸타가 앞발로 돌을 콱 밟았던 모양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 마방청소를 하기 위해 누가 들어갔다가 칸타더러 저리 비켜서라 아무리 지시해도 비키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방에서 데리고 나와 종합적으로 살펴본 결과 발굽바닥의 타박상으로 원인이 판명되었다. 마침 그날  장제사가 와있어서 길다란 집게처럼 생긴 도구로 발굽을 집어본 결과 어느 부위를 매우 아파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거기가 돌 밟은 자리다.

 

 

 

 

 

내 눈앞에서 칸타의 상태를 확인해 준 장제사는 한 이틀 쉬면 괜찮을거예요,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일단 안도한 후에 '그래 잘됐다.이참에 너도 쉬고 나도 쉬자'하고 마음먹었다. 칸타를 다시 마방으로 데려가려면 칸타가 360도 돌아야 했다. 그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칸타는 한걸음 한걸음을 곧 쓰러질 것처럼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엄마, 내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잉' 이렇게 응석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원장님이 "쟤는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아까보담 더 못걸어."  아프면 말이고 사람이고 다 아기처럼 구는 것 같다. 이러는 것도  환자의 특권이겠지 뭘.

  

다다음날, 칸타는 건초를 먹고 있었는데 앞발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편안하게 무게중심을 옮기길래 많이 나았네 했다. 그러나 실내마장에 데리고 가서 걸어보라 했더니 기운이 없고 다리를 몹시 아껴서 조심스레 디뎠다. 아마르가 장난치자고 덤비자 뒤돌아서서 엉덩이로 막고 ' 나 그런 상태 아니거든!' 하고 거절했다. 다리가 불편해서인지 칸타는  모래목욕도 시도하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났다. 실내마장에서 걸어다니는 모양이 한결 나아졌다. 모래목욕도 했다. 시원하게 뒹굴고나서 일어났을 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였다. 칸타가 나를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며 모래를 털어냈다. 온몸으로 우쭐하며 눈으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 나 아주 많이 좋아졌어.'

 

 

 

 

 

다음날이 되었다. 마방에서 꺼낸 칸타를 원형마장에 방목하러 데리고 나가는데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속에서 용암이 끓는 느낌? 이미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느낌이라 최대한 화산이 터지지 않도록 달래며 데리고나가 원형마장에 풀어놓았다. 그랬더니 웬걸! 부우웅 ~ 슈웅~ 날아오르며 펄쩍거리는데 다리가 멀쩡했다. 그 모습을 보자 다 낫자마자 또 세게 돌 밟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 후로 이동하는 활화산을 한 시간 가량 지켜보다가 야외마장이 비어서 할방님에게 칸타 조마삭을 부탁했다. 할방님이 조마도구를 가지러 간 사이 칸타가 원형에서는 돌이 많아 구르지 못한 몸을 누이더니 모래목욕을 했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려는데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칸타가 뉘였던 몸을 일단 앉았다가 일어나는 찰라에 사지가 해머인 양 땅을 빵~ 내리치더니 슈웅~! 하고 날듯이 달음박질치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 상태로 작은 원을 그리더니 내앞에서 보란듯이 머리를 흔들었다.'나 괜찮아. 멀쩡하다구' 하며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 같았다. 칸타가 그러는 모습이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마징가제트가 악당을 물리치려고 막강병기가 되어 포효하며 등장할 때 딱 그 광경이었다.

 

 

 

 

 

 

칸타에게 또 '그분'이 오셨다. 칸타의 '그분'은 여러 분이다. 머리에 꽃 꽂은 소녀부터 발레리나, 체조선수, 육상선수, 얼음의 여왕 ,마징가제트 등등. 그중에 마징가제트는 언제 오시는가? 칸타가 운동하지 않고 1주일쯤 쉬면 오신다. 그러니까 조금만 운동을 안 하면 막강한 성능의 엔진을 달고 나타난다는 얘기다. 칸타가 조마삭을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흥분하면서 땅이 흔들릴 정도로 뛰는데 보는 내가 다 어지러웠다. 할방님은 계속 말의 추진의지를 무마시켜서 속도를 늦추려고 하는데 마치 칸타는 자신이 뛰는 능력의 한계치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렴, 아파서 절룩거리는 것보담은 훨 낫지 암 ,그렇구 말구.

 

그 다음에 연이어지며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어휴, 다음 주에 저 힘을 조율하려면 고생깨나 하겠는걸!'

 

어느덧 눈앞에서 휙휙 날아다니는 마징가제트의 머리꼭대기 조종석에 도킹하여 한치의 실수 없이 작동시키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려면 홍삼이니 고기니 할 것 없이 기운나는 것들을 잔뜩 섭취해야겠군. 그렇지 맞아. 내가 채식주의자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마징가제트 때문이라구. @#$%^^ ~~~

 

나도 가끔은 칸타 때문에 원더우먼쯤은 돼줘야 한다. 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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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이 바람에 사르르르 날리며 꽃비가 내린지 한 주일이나 지났을까. 꽃비의 축제가 끝나는 것을 신호로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바뀌었다. 세상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겨울에서 봄 사이, 승마를 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말은 겨우내 시달린 추위와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뻣뻣하여 긴장되어 있고, 대기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미세먼지 섞인 바람이 자주 몰아쳤다.

 

2월에서 4월 사이 부는 바람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흔들리게 한다. 그 중에서도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지는 사물이 바로 비닐이다. 심하게 바람이 부는 날, 비닐들이 사방에서 펄럭거리면 '음 세상엔 비닐이 참 많아.' 하고 의식하게 된다. 그렇다. 세상은 비닐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듯이 비닐 천지다. 한 주일을 생활하고 나서 모아놓은 분리수거 쓰레기 중에서 부피 탓이긴 하지만 비닐의 양이 가장 많이 나온다. 대부분 상품의 포장지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는 널린 게 비닐이다. 그런데 왜 자꾸 비닐 타령을 하는 것일까 하고 승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 하겠다. 승마를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비닐에 대한 언급이 빙그레 웃음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말이 비닐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을 타고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비닐 펄럭이는 소리나 광경에 말이 펄쩍 놀라기라도 하면 기분좋은 경험은 못된다. 비닐 때문에 놀라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사람도 긴장되어서 운동 내내 또 어디서 비닐이 펄럭이려나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그리되면 말도 사람의 감정에 전염되어 더 긴장하고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승마를 하기에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다니는 승마장은 김포평야 한가운데 자리잡았기 때문에 농경문화와 함께 숨쉬며 생활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농사를 지으려면 비닐 없이는 못한다. 비닐하우스가 대표적이고,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밭에 비닐을 덮어두는 일, 가을에 추수하고 볏짚을 돌돌 말아 마지막에 비닐로 칭칭 감아 갈무리 하는 일이 그렇다. 요즘 승마장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비닐하우스 천지다. 승마장 또한 시설의 일부분이 비닐로 되어 있다. 날이 따뜻해지기 전까지 초보마장의 한쪽 벽면을 비닐로 막아두었는데 바람에 부르르 떨며 기괴한 굉음을 내면 마님들이 그 옆을 지나가며 온몸의 털이 쭈삣 서는 것처럼 긴장하곤 했었다. 

 

비닐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둔감화 훈련을 여러 번 받은 아마르는 그놈이 무서운 놈은 아니라는 것까지는 인식을 한 것 같은데 끝내 그놈은 어쩔 수 없이 기분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할방님의 내츄럴 훈련의 둔감화 프로그램 외에 나는 나대로 방목할 때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비닐을 막대기로 반복해서 두들겨주며 적응시키는 놀이를 자주 했다. 덕분에 바람부는 날에도 그닥 긴장하지 않고 밖에서 순조롭게 말을 탈 수 있었다.

 

말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비닐이 날아다니고 펄럭거려도 심장이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리 되도록 가르치고 도와주는 일은 순전히 사람 몫이다.

 

 

 

오른쪽 벽이 비닐인 겨울의 초보마장 상태. 겨울에 아마르 훈련장소로 요긴하게 활용됐다. 이날 막대에 비닐을 매달아 민감화훈련을 하는 도중 아마르가 돌발적으로 깜짝 놀라 할방님도 퍼뜩 놀란다. 아마르는 놀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당황했을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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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뒷걸음질로 이동하는 기술은 매우 유용하다. 주로 트레일러에서 뒤로 내릴 때 요긴하다. 아마르는 아직 트레일러 타고 다닐 일이 없지만 마방복도에서 틈틈이 연습하다 보니 지금은 제법 잘한다. 아마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뒤로 스윽 미끄러지듯 들어갈 때 말의 시야가 후방까지도 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내츄럴호스맨십 훈련에서 말의 후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의 부조를  따르는 말의 순종성을 볼 수 있는 중요한 훈련이기도 하다

 

 

 

 

 

 

 

  동영상 촬영 즈음은 내가 칸타 뒷마무리를 마치고 마방에 들여보내려 할 때였다. 할방님이 아마르 후진 연습을 시키기 위해 마방문을 열었는데, 아마르가 때마침 열려있는 바로 옆 칸타 마방으로 미꾸라지처럼 쏙 들어가버린다.

 

   아마르가 그러는 까닭은 궁금함을 못 참아서이다. 운동 끝나고 마방에 돌아와보면 밥그릇에 맛난 간식이 놓여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험으로 보아 말이 입방을 끝낸 후 간식을 갖다주는 것이 좋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가끔은 미리 간식을 놓아두는 경우가 있다.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는 아마르는 혹시 할머니가 자기 몰래(?) 엄마인 칸타방 밥그릇에 무슨 대단히 맛난 거라도 놓아두렸으려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르가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나와 함께 제 방에 못들어가고 선 칸타의 반응도 재미나다.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는 '크르를륵' 하는 콧소리를 낸다. 이런 경우 말의 감탄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오 마이 갓! '  '헐~'  '이런~'  '어머나! '

그러니까 예기치않은 상황에 대한 즉각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의미의 표현 외에 '푸풋' '크크' '호오' 하는 웃음의 뉘앙스도 있다. 아마르의 돌발행동 때문에 나와 칸타는 어이가 없다.

 

  할방님에게 붙들려나온 아마르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음, 할아버지가 나에게 뭘 시키려는 거지.' 하며 집중한다. 할방님이 양손을 앞뒤로 흔드는 신호에 따라 아마르가 '이건 식은죽 먹기야' 하듯이 뒤로 쭉 들어간다. 아마도 칸타 밥그릇에 당근이라도 몇조각 있었더라면 할아버지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칸타 밥그릇쪽으로 다시 쪼르르 달려갔을 것이다.

 

  아마르가 후진 연습을 몇 번 반복하는 동안 뒤에서 구경하는 말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머리를 쏙 내민 말은 왼편부터 브릿지와 스탠이다. 두 말은 아마르의 행동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유심히 관찰한다. 마치 몸은 자기 마방에 갇혀 있지만 마음만은 아마르와 함께 하는 것 같은 눈치다.

 

  마방복도도 내츄럴 공부하는 아마르에게는 교실이다. 아마르가 복도에서 이런저런 공부를 할 때 관심을 가지는 말과 가지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참 재미있게도 평생 '공부'만 해온 가방끈(?) 긴 말들이 관심이 많았다. 브릿지와 스탠도 평생 마장마술 공부만 해왔다. 둘 중에선 브릿지가 연륜이 더 높다. 늘 뭔가를 배우고 새로운 기술을 몸으로 습득하며 살아온 탓인지, 아마르의 행동을 보며 '어? 저거 뭐지? 난 저런 거는 안해봤는데, 음... 마장에서 뒤로 여섯 걸음 가서 정확히 서는 것쯤은 해봤지만 말이지. '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마장마술 기능을 보유한 말들은 어떤 상황을 집중력 있게 관찰하고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브릿지와 스탠이 아마르가 동작하는 동안에 입맛을 쩝쩝 다신다. 보통 입맛을 다시는 행동이 말 긴장이 해소되었을 때 나타나는 건데 마방에 있는 말들이 뭔 긴장을 해소할 게 있단 말인가.  마지막에 아마르가 마방에 쑤욱 들어갔을 때 브릿지와 스탠이 입을 더욱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사람이 '와우!' 하고 감탄을 나타내는 입모양과 닮아서 재미있다. 그 순간 브릿지와 스탠도 '와우, 잘했어 꼬마!  제법인데!' 하고 박수쳐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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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에 출연하는 말 : 아마르 (좌) , 칸타빌레 (우)

 

 

 

 

  기승하기 전 대략 30분 정도 방목을 시켜놓았다. 여건상 시간도 없고해서  아이들의 찌뿌둥한 몸이나 스트레칭 하라고 풀어놓았다.  곧이어 어디선가  할방님이 긴 채찍을 들고 들어선다. 아이들 자유조마라도 시키려는 셈인거 같은데 뭔가 순조롭지가 않고 군데군데 쿡쿡 웃음이 난다. 왜일까?

 

 아마르는 할방님으로부터 평소 내츄럴홀스맨십 훈련을 꽤 깐깐하게 받는다. 그래서 훈련장에 가면 사람의 행동을 다 읽고 미리미리 제가 알아서 먼저 움직일 정도다. 그에 비해 칸타는 정식 내츄럴교육은 받지 않았다.

 

  동영상에 나타난 말의 행동을 보면 칸타가 좀더 지시에 따르는 편이고 아마르는 덜 협조적이다. 엄마인 칸타가 열심히 돌 때 한 곳에서 쉬고 서있거나 코너에서 '아마르 없다'하는 식으로 투명 말처럼 군다. 할방님이 쫒아와 보내면 대각선을 전속력 질주하며 뒷발도 힘차게 뿌리고 도망간다. 그 뒤를 두 발로 허겁지겁 쫒아가는 할방님의 발걸음이 말에 비해 심하게 느릿느릿하다. 그 대비에서도 웃음이 난다.

 

  아마르는 지금 놀아라 하고 풀어놨으면서 놀지도 못하게 이래라조래라 시키는 게 뭐냐고 ,규칙을 어긴 것은 할방님 아니냐고 반쯤은 항의하는 거다. 그래도 반쯤은 교육이 몸에 배어있어 지시하면 따라야 하는 상황을 영 무시는 못하고 있다. 갈등하는 말의 마음이 갈팡질팡,종횡무진 하는 동선으로 나타나니 웃음이 나는 거다.

 

  칸타는 암말들이 좀 그렇듯이 규칙을 잘 지켜서 일단 따르고 보는데 말을 잘 듣다보니 뭔가 못마땅하여 신경질이 난다. 그래서 틈을 보아 툭 하면 어디선가 급정거를 하며 그만 돌았으면 하는 의사표현을 보인다. 칸타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타면 무척 바지런하게 구는데 등이 허전하면 한없이 게으르다. (보통은 짐을 지면 무게 때문에 동작이 느려지게 마련인데???)

 

  아마르가 코너에서 대각선으로 질주하는 장면이 이 상황의 백미다. 마치 새가 먹이를 채려고 지면을 스치며 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럴 때 기다란 꼬리가 새꼬리처럼 보인다. 아마르가 눈깜짝할 새에 대각선 코너로 사라진 후 이어지는 할방님의 추격은 본인의 표현을 좀 빌지면 '두 발 달린 짐승의 비애'라고 할까.

 

  그렇다고 칸타와 아마르가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함께 도망놀이하는 것처럼 달리고, 코너에 숨고, 쫒아다니는 할방님과 밀당하는 일에 엄청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 탓에 가끔은 꼬리를 치켜올려 희열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람이 지시와 자극을 안주고 쉬고 있으면 맛난 것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개처럼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며 기대하고 서있다.

 

  할방님이 처음에는 호기있게 말을 쫓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몸이 풀려 발걸음이 여유있게 부드럽고 가벼워져만 지는데 할방님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지더니 나중에는 걷다시피 기진맥진해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 

 

  동영상의 '방목 중 자유조마'는 일반적인 권장상황은 아니다. 보기에는 내용적으로 말과 사람이 대책없이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벌이는 것 같지만 사실 7년 이상 지내며  호흡을 맞춰 온 놀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마방에 갇혀 지내던 말을 느닷없이 꺼내 장채찍으로 몬다면 말은 두려움으로 자신의 몸 다치는 것도 잊은 채 뛰다가 다치기 쉬워진다. 이런 말은 조마용 굴레와 롤라에 사이드레인을 채워 정식으로 조마삭을 시키는 편이 안전하다.

 

우리 아이들도 호흡이 잘 맞고 적응이 잘된 말이긴 하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꼭 다리보호대를 채우며 조심스럽게 조마를 시킨다. 영상에 담긴 상황은 말과 사람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코믹한 관계도 재미있고, 평소 잘 알 수 없는 말의 심리도 엿볼 수 있어서 올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아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동영상의 엔딩에 다다르면 할방님이 기운이 쑥 빠져버렸지만 겉으로는 짐짓 씩씩하게 걸어와 팬스 밖으로 퇴장한다. 그걸로 끝인가 싶지만 조금 기다려보면 칸타와 아마르가 어슬렁거리며 출입구 쪽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할방님이 사라진 쪽을 뭔가 아쉬운 듯 바라본다. 둘이서 이런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어 ~ 할아버지 진짜루 갔어 엄마. "

"그러게 ~ 좀 더 놀아주지 벌써 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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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어느 봄날, 뚝딱뚝딱 원형마장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원형마장의 쇠파이프 팬스 뒷편 밭에는 당근씨가 비닐 이불을 덥고 무럭무럭 자란다. 원형마장이나 당근이나 모두 말을 위한 것이다.

 

 

 

 

원형마장은 왜 새로 짓는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 다들 동의하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도 책상 배치를 둥그렇게 하느냐 앞에서 뒤로 줄세우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얼굴을 못보고 교수님만 바라보는 경우와 학생 서로가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경우,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경험은 많이들 해보셨을 줄 안다.

 

 

 

 

승마도 마찬가지다. 기승운동을 할 때 대부분 마장에서 초보자는 원형,중급자 이상은 사각마장에서 한다. 원형은 넓지 않아 말이 걸음이 커지거나 빨리 뛰어 위험할 염려도 적고 ,둥그런 팬스를 따라 말이 저절로 보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각마장은 마장마술에서 필수다. 코너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 대각선의 운용 등 사각이 아니라면 마장마술 훈련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곳 승마장에서는 초보마장으로 불리우는 비교적 규모가 적은 사각마장에 고깔로 원형모양을 만들어 초보자를 위한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 지어지는 원형마장의 필요성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츄럴홀스맨십의 기본훈련에 들어갈 때 자유조마를 말에게 가르치는 경우 원형마장이 꼭 필요하다. 특히 방향전환을 시킬 때 한쪽을 거부하는 말의 행동을 교정하려면 원형의 공간이 있어야 훈련이 가능하다.

 

 

승마장 여건으로 보아 원형마장은 조마장 외에 방목장으로도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칸타나 아마르도 원형마장 안에 풀어놓았더니 사방으로 '뷰'가 시원하여 편안한 자세로 구경하며 놀았다. 아직 돌이 많아서 구르면서 모래목욕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눈치를 챈 칸타는 뒹굴지 않았고 아마르는 한 번 누웠다가 돌에 배겨서 얼른 일어났다.

 

 

 

 

 

공사는 남자들 몫이 되었고 말 타러 왔던 아낙네들이 쑥 뜯고 보리 뜯느라 삼매경이다.(나도 있음) 나중에 쑥은  사람 입으로, 보리싹은 말 입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이야말로 힐링의 시간이다.

 

 

 

 

원형마장이 지어지는  동안 칸타가 사람들이 저기서 뭐하느라 수런거리나 관심을 보였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기대하는 것처럼 응시한다.

 

 

 

 

 

                       딴청 부리고 있는 것 같아도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동향을 항상 신경쓰고 있다.

 

 

 

 

 

도심지형 승마장에서는 말의 활동공간이 제한되어 있어 그나마 승마장 안의 여러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말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운동을 흥미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만일 어제 실내마장에서 운동했다면 오늘은 야외마장에서 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또 방목도 어느 날은 야외마장에서 어느 날엔 원형마장에서 하는 식으로 옮겨다니면 그런대로 재미난 활동이 된다. 그렇게 컨디션을 조절해주면 말의 기분이 좋아져서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칸타와 아마르가 좋아하는 상황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팬스 밖에서 다가와 바라보고 말 걸어줄 때, 사각마장 안에서 함께 운동하는 말 동료나 사람들 틈에 섞여 누비고 다니는 것,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 칸타나 아마르가 그 옛날 프랑스나 러시아 궁정 무도회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커플 춤을 추면서 사교를 하던 그런 분위기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게는 승마가 늘 축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추카추카

 

원형마장 짓느라 애쓰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채워갈 행복한 시간들에 마음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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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 디즈니사의 새로운 <신데렐라>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로 개봉했다. <신데렐라>라면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을 때는 뭔가 새로움이 입혀져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새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엄마와 함께 영화보는 여자아이들 틈에 섞여 이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니 대표적인 새로움이라면 주인공 신데렐라가 어디를 갈 때 뚜벅이로 그냥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다닌다

는 점이다. 나는 왕자나 공주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 그들이 어떤 말을 타고 나오는지 유심히 보는 편이다. 그 말이 보여주는 개성이야말로 그 말을 탄 인물의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상대역 왕자는 숲에서 처음 신데렐라를 만났을 때 자신을 견습생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견습일을 하는 직업이 훗날의 왕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지만 . 왕자의 말은 견습생(?)의 말답게 듬직하고 성실해 보인다.

 

 보통 동화에서는 남자주인공이 백마를 타고 나온다. 흔히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 라는 말처럼 백마는 환상성의 이미지다. 뭔가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 이미지다. 그러나 이번 <신데렐라>영화에서는 왕자가  백마를 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자가 아닌 여자주인공 신데렐라가 말타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 점이 새로워서  마음에 든다. 신데렐라의 성격은 디즈니사의 전작 <겨울왕국>의 공주자매처럼 주체적이고 강인하고 운명에 맞서 싸우고 개척하는 여성상이다. 신데렐라는 결코 신분상승을 꿈꾸다 운좋게 꿈을 이룬 여성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신데렐라는 수동적이거나 나약하지 않기 때문에 강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서사적 장치로 신데렐라가 마구도 채우지 않은 알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신데렐라가 강인한 면모만 지닌 것은 아니다. 내면에는 따뜻한 마음도 지녔다. 그것은 보잘것 없고 하찮은 동물에 대한 배려에서 잘 나타난다. 극중 신데렐라의 절친은 생쥐가족이다. 영화에서 생쥐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이 자주 클로즈업 된다. 신데렐라는 엄마에게서 받은 유언대로 '용기' 와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균형이야말로 신데렐라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러한 양면을 통합시키는 이미지를 구현한 말로서 흰 바탕에 검은색이 바위빛깔처럼 얼룩덜룩한 모색의 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신데렐라의 말이 내가 알고 있는 '카포테' 라는 말과 너무 닮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루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말은 영혼의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볼 때 파트너인 사람을 어떤 운명적인 상황으로 데려다준다. '데려다준다'는 모티브는 수많은 문학이나 영화의 스토리에서 반복된다. 이번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를 왕자에게 데려다준다. 신데렐라는 숲에서 사냥하는 왕자일행에게 쫒기는 사슴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 후 신데렐라의 말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바람에 왕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쫒아가 그녀의 말을 멈추게 한다. 신데렐라와 왕자는 그 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고 이끌리게 된다. 신데렐라와 왕자가 서로의 말 위에 앉아 빙글빙글 돌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로맨틱하고 인상적인  첫만남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훗날 왕비가 되는 신데렐라가 로또 맞은 것처럼 신분상승한 바가 아니고 스스로의 내면의 가치를 고귀하게 간직하고 가꾸어온 결과물로서 그녀가 당연히 누릴 지위를 찾아간 것으로 그려진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난 대모요정이나 왕궁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물은 모두 신데렐라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친절과 따뜻한 마음 때문에 그녀를 도울 수 있었다.

 

 

 

 

 

 

 

 부모님의 죽음, 새엄마와 언니들의 구박과 훼방 등 신데렐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운명의 장벽은 높았지만 신데렐라가 자신의 고귀함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자기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부정적 의미를 넘어서서 ,신데렐라는 세월이 흘러도 다시 보게 만드는 고전이게 만든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온 새로운 모습의 신데렐라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는 것은 ,말이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신데렐라 (2015)

Cinderella 
7.4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릴리 제임스, 리처드 매든,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홀리데이 그레인저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13 분 |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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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동물이 환상적인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

 

 

 

2014년 겨울에 <카발리아> 한국공연을 보았고, 블로그에 소감도 올렸다. 그런데도 다시 올리게 되었다. 평소 조선일보를 구독하시는 친정아버지가 '말'이 나온 기사라고 따로 챙겨 두었다가 말 키우는  딸에게 뒤늦게 건네주신 덕분이다. 읽어보니 마법과도 같은 무대를 이뤄낼 수 있었던 그들만의 노하우 같은 것이 엿보였다. 그 마법의 노하우란 결국 말과 보낸 수많은 시간과 교감이었다. 또한 그것은 평범하게 말타는 나의 말에 대한 평소 생각과도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느꼈다.

 

<알.티> 블로그 독자라면 말과 사람 사이에 어떤 교감이 이루어지는지, 그러니까 주인장 깐돌할망은 자신의 말 아이들과 어떻게 교감하며 말과 관계를 맺는지에 대하여 궁금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대단한 비법은 없다. 그저 말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모든 면에서 말과의 관계가 수월해지더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말 세계의 프로페셔널이 아니므로 하루에 고작 세 시간 정도를 말과 시간 보내는 정도이다. 한계는 있지만 말과 있을 때는 진정성을 보여서 말의 신뢰를 얻으려고 한다.  말과 보내는 시간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태도나 마음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카발리아 공연팀은 하루의 대부분을 말과 시간 보내면서 끈끈한 유대가 더욱 촘촘해지도록 다양한 활동으로 채우고 있었다. 세상에 그저 쉽게 되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말이 선사하는 기쁨을 제대로 느끼기 위하여 그들과 교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말에게 무조건 이래라 저래라 시키기보다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을 , 야단치기보다는 달래서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래의 인터뷰 기사를 잘 읽어보면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마음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흥행주임 / 벤자민 아이요 인터뷰

 

"말은 사람과 같습니다. 말마다 심신의 안정과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특정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도 말마다 다르죠. 따라서 약간의 기술을 통해서 정신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말들이 우리를 잘 따릅니다. 매번 똑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근육을 움직이다 보니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서로 공유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하루는 마구를 장착하지 않고 기수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동작을 했다가 ,다음날에는 작은 점프 동작을 하거나 장대 뛰어넘기를 하는 식입니다. 한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추지 못해도 심신과 삶에 밸런스를 찾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육사들이 말과 매일 다른 활동을 하고 ,말을 신뢰하고, 지루하게 내버려두지 않으면 됩니다. 말에게 선택을 맡겨보면,말의 정신도 건강해져 단단한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공연 초반,아무런 마구 없이 혼자 무대에 등장하여 아무런 제약 없이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연기하는 말에 대하여

 

 

 

 

 

"이 친구는 혼자서도 연기가 가능한데다가 표현력이 더 풍부합니다. 또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고 총명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기쁨을 안겨줍니다."

 

기수 / 케이티 콕스 인터뷰

 

 

 

 

-공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말과 유대감을 충분히 쌓지 않으면 공연할 수 없어요. 말들이 자신이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끼면 안돼요."

 

-말과 어떻게 교감을 나누나

 

"우리는 하루종일 마굿간 안팎에서 말들과 놀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빗질을 해줘요. 그리고 같이 대화도 해요. 말들은 관심을 가져주면 행복해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좋아해요. 우리는 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쿠키와 어떤 과일을 제일 좋아하는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밖에 나가 누워서 일광욕을 좋아하는지 모조리 꿰고 있어요."

 

-말들도 인간의 감정을 느끼나

 

"말들은 우리가 행복해 하는지,근심에 빠져 있는지 대번에 알아차려요. 말들 앞에서는 숨기지도 연기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공연할 때는 집중해야 말들도 함께 집중합니다."

 

-말과 인간의 차이점은

 

"말들은 절대 연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모두 드러내요. 공연을 보면 말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직접 느낄 수 있어요."

 

연출감독 / 노만 라투렐 인터뷰

 

 

 

"카발리아는 예전에 보던 마술쇼가 아닙니다. 카발리아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쇼입니다. 출연하는 말들이 이 공연의 주인공이죠. 카발리아는 두 시간 동안 꾸는 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투렐 감독은 "말과 인간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이 공연의 핵심" 이라고 말한다.

 

"카발리아에는 몇 가지 기본 요건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함께 공연하는 말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말과 함께 무대에 서려면 아티스트가 말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말이 당신이 누군지 알아보고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해 위협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말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껴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하는 거죠. 승마의 세계에서 쓰이는 많은 도구들은 말에게 위협을 가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도구들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즉 우리 공연에서는 말에게 채찍질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말은 무대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말들이 무대 위를 놀이터로 느끼고 공연시간을 일이 아닌 재미를 위한 시간으로 즐기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연을 통해 말의 자연 서식지를 구현해 내고자 한다. 자연환경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말이 들판이나 야생에서 보여주는 행동특성을 무대 위에서 재현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모든 기수들이 자신과 공연하는 말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위의 사진들은 조선일보 2014.11..24 지면과 공연 카다로그 이미지임을 밝혀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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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는 승마장에 찾아오는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사람을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바라보고 다가갑니다. 아마르가 종종 이유없이 기분이 좋을 때 할머니에게 커다란 눈망울에 하트를 담아 뿅뿅 쏘아대기도 합니다. 엄마 칸타빌레랑 밖에 나와 놀던 이 순간도 무척 기분이 좋았나 봅니다. 혀가 신기하게도 하트 모양입니다. 저는 이 순간을 아마르가 세상 모든 말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보내는 거라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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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방목의 기록입니다.

 

 

 

 

 암말 칸타빌레. 보통은 칸타라고 부르죠.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지만요.

 

 

 

 

혼자서 굴요 연습하는 거니???

 

 

 

 

모래목욕 하시게? (우리 관리사 말투임)

 

 

 

 

칸타 얼굴은 심각. 팬스 너머에서 자라는 파들이 갤러리가 되어 구경한다.

 

 

 

 

어휴 ~ 저 저 저 배를 어떡흐니? (지 아빠 말투)

 

 

 

 

잔근육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비벼대느라 몸을 섬세하게 쓰고있음을 짐작케 한다.

 

 

 

완전한 수직자세.

만일 말이 기도를 한다면 이런 자세일 것 같다.

오 하느님~  하늘에서 당근을 비처럼 내려주세요 ~

호홋 …

 

 

 

 

칸타는 이편에서 저편으로 몸을 넘길 때 반동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모래목욕의 달마.

 

 

 

 

얼굴이 편안해 보이십니다 ~

 

 

 

 

칸타의 가슴이 근육이 잘 발달한 남자처럼 보인다.

 

 

 

 

아이고~ 저 뱃살을 어이 하나 ~ (지 엄마 말투)

 

 

 

 

다시 반대로

 

 

 

 

배가 쏙 들어갔네

 

 

 

 

 이쯤 해서

 

 

 

모래목욕을  마무리 할 것 같지만

 

 

 

                           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아까가 워밍업 수준이었다면

 

 

 

                  지금이 본게임이다

 

 

 

                 이럴 땐 통닭인지, 캥거루인지 도무지 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일어나겠지 했는데

 

 

 

                                                                                도로

 

 

 

 

                                                                             누워버렸다

 

 

 

 

 

 

 

                                    아무 때나 모래목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할 때 실컷 해둬야 한다

 

 

 

                                                                          일어나기 동작

 

 

 

                                                           다 일어나자마자 연속동작으로

 

 

 

                                            뒷발을 땅에서 떼지 않고 축을 삼아 핑그르르 돌아서

 

 

 

 

                                                              그대로 도약하며 세레모니를 한다

 

 

 

                                                                자랑하듯이 머리도 흔든다

 

 

 

나 전생에 발레리나였나봐

 

 

 

 

                                                                그 다음 순서는 도약과 질주의 향연이다

 

 

 

 

 

 

 

 

 

 

 

 

 

 

 

 

 

 

 

 

 

 

 

 

 

 

 

 

 

 

 

 

 

 

 

 

 

 

 

 

 

 

 

 

 

  도약과 질주를 하며 몸이 풀리고 나니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어 목을 늘리고 머리를 떨군다

 

 

이럴 때 곧잘 푸르르륵~ 소리를 세차게 낸다

 

 

 

이렇게 칸타가 잘 놀아서 몸이 잘 풀어진 날에는 기승운동할 때 워밍업 시간이 단축되고 말 입도 부드러워서 기승감이 좋다

 

 

 

 

이런 날에는 바람이 불고 주변이 어수선해도 잘 놀라지 않고 집중도 잘된다.

 

 

 

 

 

 

 

 

 

 

 

 

 

 

 

 

 

 

 

 

 

 

 

 

 

 

 

 

 

 

 

 

                                                   보아하니 대충 놀거 다 놀았다는 눈치다.

 

 

 

 

                                                        또다시 굴요연습 삼매경에 빠져들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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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르는 얼굴의 앞면만 마스크 쓴 것처럼 남기고 몸 전체에 난 털을 시원하게 밀어냈다.

 

 

​칸타는 얼굴 앞면과 다리를 남긴 채 털을 밀어냈다. 워낙 예민한지라 진정제 주사를 맞고 삭모했는데도 얼굴과 다리까지는 건드리기 힘들어서다. 자칫 무리하게 하려다간 삭모기 날에 피부를 다칠 수도 있으므로 애써 다 밀려고 할 것까지는 없겠다. 다리털을 밀지 않으니 롱부츠라도 신은 것 같아 나름 보기에 좋다.

 

 

 

​아마르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이고, 칸타는 처음 삭모를 하는 것이다. 내 소신으로 말하자면 '자연 그대로가 좋은 것이여~' 이기 때문에 해마다 조금씩 빠져나오는 털을 솔로 제거해주는 일을 재미삼아 누려왔다. 십여년 전 처음 말을 탔을 때 봄날 사쿠라(왠지 벚꽃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찐한 느낌이 온다) 꽃잎이 난분분 흩날릴 때 ,내가 타고 있는 말의 털이 훌훌 날려서 꽃잎과 섞이고 바람에 실려가던 광경이 낭만적인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가 말털을 기계로 순식간에 낙화처럼 바닥에 뚝뚝 떨구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다.

 

 

                                   (​클럽말 조이, 삭모하는 중)

 

 

 

​그런 내가 올해부터는 매년 이맘때 삭모를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고, 말 입장에서도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삭모 후 '클로르헥시딘클루콘산염액' 이라는 성분이 든 약용샴푸를

                         물에 희석한 것을 몸에 잔뜩 바르고 그 상태로 10분 기다리는 중인 아마르)

 

 

                                  ​(샴푸목욕 도구들) 

 

 

 

(약용샴푸 목욕이 끝나고 몸을 말리며 간식을 먹는 칸타, 복대가 지나가는 아랫배에 하얀 점이 '윤선'이란 피부병이 발생한 자리다. 비늘딱지처럼 생겼는데 항균연고를 잔뜩 발라놔서 하얗게 보인다.)

 

1. 피부병의 조기발견과 빠른 치료를 위하여

작년에 아마르가 태어나 처음 삭모를 하게 된 계기가 피부병 때문이었다. 퍼질러 앉아있기를 좋아하다보니 아랫배 피부가 습기와 오염물질에 노출되어 그만 피부병이 생긴 것이다. 빨리 낫게 하려면 피부를 청결하게 하고 소독해주어야 하는데 웃자란 더부룩한 털이 뒤덮인 상태에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부리나케 삭모를 시켰더니 병소에 감염된 부위가 어디까지이고 어느 정도 심한지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주일에 두 번 약용샴푸로 목욕시키고 덜 마른 상태에서 포비돈 원액으로 소독했다. (덜 마르면 피부에 물기가 있어서 포비돈을 희석할 필요가 없다.) 그 후 1주일 정도 매일 포비돈 희석액으로 소독했더니 곧 완치되었다.

 

올해는 칸타에게서 피부병이 보였다. 복대가 닿는 자리여서 복대 채울 때마다 말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얼른 치료에 들어가자 싶어 치료의 준비단계로 삭모를 실시했다. 삭모를 하고 나니 내가 미처 모르던 피부병 병소 부위가 몇 군데 더 발견됐다. '어 생각보다 심각하네' 싶어서 삭모를 안 했으면 모르고 지나가서 피부병을 더 키웠겠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말에게서도 피부병이 더러 발견됐다. 나의 경험으로도 해마다 4월이면 말에게 발생한 크고작은 피부병 치료하던 일, 전염을 막기 위해서 그루밍도구를 각별히 따로 관리하던 일이 기억난다. 전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대부분의 승마장에서는 말 목욕이 중단된다. 온수를 공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온수가 나오더라도 잘 말리는 일이 무척 어렵다. 말은 목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하고 땀 흘리고, 땀을 닦아준다고 해도 마의를 입고 지내기 때문에 통풍도 잘 안되니 피부병 발생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그러다 봄이 오면 기온이 높아지면서 세균이나 곰팡이균이 증식하면서 말에게 괴로움을 주는 피부병이 나타나게 된다.

 

2. 목욕시간의 단축

 

3월부터는 낮기온이 영상 10도에서 20도 사이로 올라가는 날이 꽤 여러 날이다. 그런 날은 말 목욕을 시키게 된다. 말 목욕은 물을 끼얹어 씻겨내리는 일보다 사후에 말려주는 일에 방점이 찍힌다고 보아야 한다. 훑개로 물을 제거하고 수건으로 닦아주어도 몸에 물기가 다 마르기까지는 최소한 1시간은 걸린다. 물기는 말 몸의 높은 곳부터 마르기 시작하여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데 가장 늦게 마르는 곳이 구절 아랫부분이다. 말의 뒷발목은 오목한 홈까지 파여 물기가 고여있기 딱 좋은데 그냥 내버려두면 다 말랐다 생각했어도 축축하여 피부병이 쉽게 발생한다. 발굽부위의 피부병은 몸통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삭모를 하면 목욕하고 말리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몸통은 순식간에 마르고 발목부위만 수건으로 잘 문지르면 된다. 말의 몸이 잘 마르지 않은 채 마방에 들어가면 간지러워서 바로 뒹굴어 목욕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수도 있고, 습기로 인해 피부병도 발생한다. 그래서 말 몸을 잘 말려주어야 하는데 말 입장에서는 밖에 서서 오래 말리는 일이 괴롭다. 보통 운동 끝나고 목욕하는 것이니 장안시간부터 계산하면 두 시간 이상 마방에 못 들어가서 목 마르고,배고프고 무엇보다 소변 마려운 일이 괴롭다. 얼른 몸을 말려서 마방으로 돌려보내야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고 말이 편안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밥주고,마방 치우는 일 외에 말 관리를 직접하기 때문에 목욕시켜서 말리느라 오래 기다리게 되면 개인시간을 너무 지체하게 된다. 물론 그 시간에 아이들 곁에서 대화도 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지만 거의 매일 그리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선 아이들 삭모시켜 놓으니 얼른 씻기고 말려서 관리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

 

3. 저체온증 방지와 청결유지

강한 정도의 운동을 하면 말은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때로 낮기온이 높은 날에는 설렁설렁 운동했는데도 말몸에 땀이 많이 난다. 그럴 때 말의 털이 길다면 그 축축한 습기로 인하여 말의 체온이 내려갈 것이다. 사람도 땀배출이 되지 않는 옷을 껴입은 채 땀을 흠뻑 흘렸을 때 몸이 얼마나 추워지고 그 느낌이 좋지 않은지 알 것이다. 등산과 같은 상황에서는 하산시 등산객의 체온급강하가 위급상황을 불러올 수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말도 그렇다. 촘촘한 털이 땀에 적셔져 자연건조 되라고 그냥 방치한다면 불편하기도 하고 다른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땀을 잘 닦아주고 담요를 덮어주어야 한다. 가장 최악의 상태는 땀을 흠뻑 흘린 말을 위한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에서 두꺼운 마의를 훌러덩 덮어씌우는 것이다. 그러면 말은 가려워서 어쩔 줄 몰라 마방벽에 몸을 비비고 축축한 상태에서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삭모를 한 상태라면 가볍게 닦아내고 마의를 입히면 말이 한결 쾌적하겠다.

 

4. 말과 사람의 호흡기 건강

 

말 그루밍해주는 일은 말과 사람 모두에게 정신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 느낌이 좋아서 그루밍타임을 좋아하는데 그러는 동안 나와 말 주변으로 먼지와 말털이 그득하다. 다 말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털이 짧을 때는 괜찮지만 털이 빠지는 시기에는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콜록거리는 기침이 나오는 것이 호흡기에 부담이 가는구나 느껴진다. 사실 말이 사는 환경에는 먼지가 많다. 톱밥이나 건초, 마장에서 말발굽에 묻어 바닥에 흔적이 남겨진 흙 등이 먼지제공처다. 그래서 말과 지내며 이런저런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지만 호흡기 건강은 살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다. 기왕이면 그루밍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려 하지만 잊을 때도 많다. 아이들 삭모를 하고 나니 공기에 날리는 것들이 없어 호흡기 건강에 대한 우려를 많이 덜게 되었다.

 

5. 미용

 

남자도 아무리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도 손질했지만 결정적으로 면도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부분까지도 빛이 바래고 만다. 그것처럼 말도 털이 자라 여러 방향으로 웨이브지고,길이와 색깔도 조금씩 차이가 지면 말의 미모가 다 살아나지는 않는다. 말의 털을 밀어주고 나니 피부털이 균일한 톤을 띄게 되고, 근육의 형상이 드러나서 말의 매력이 한결 돋보이게 되었다.

 

이상이 ,왜 우리 아이들 삭모를 시켰는지에 대한 이유라 하겠습니다.

 

 

 

(클럽말 조이 삭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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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다가 턱 밑에 늘어진 로프를 밟고 펄쩍 일어설까봐

 로프는 귀 뒤로 넘겨 올려놓았다.

 

가끔 칸타가 귀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럴 때 그렇게 느껴진다.

 

 

 

 

 

 

 

​기승운동이 끝나고 보리밭에 갔다.

보리밭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와 칸타 뿐이었다.

요즘엔 보리밭에 우리만 있을지라도 칸타가 느긋하기 때문에 이날도 그럴 줄 알았다.

 10여분이나 지났을까, 칸타가 머리를 높이 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 내 눈높이에서 올려다보는 칸타의 얼굴은 까마득하게 멀다.

 

 칸타가 입에는 보리싹을 문 채로 얼음이 되었길래 대체 뭘보나 시선을 따라가니

멀리 떨어진 논에서 사람 너덧 명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칸타로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해독되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 바짝 긴장한 것이다.

로프를 흔들고 서있는 자세를 바꿔주어도 긴장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마장에서는 토요일이라 많은 사람이 말타고 있었다.

만일 칸타가 긴장을 못 이기고 뛰어들어간다면 갑작스런 상황에 다른 말이 놀랄 수도 있었다.

 

칸타에게 마지막으로 "풀 먹을래? 들어갈래?" 물으니 들어간다고 마방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럼 그러자꾸나." 나는 순순히 칸타의 바람을 존중했고,

우리는 좀 서두르는 걸음이긴 했지만 마사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가자 입구쪽으로 막 운동을 하려는 말,운동 마치고 들어온 말이 섞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일찌감치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마르와 할방님도 만났다. " 어 벌써 들어오네." 하는 말을 말을 남기고 둘은 보리밭으로 총총 사라졌다.

 

 

 

 

 

 

​칸타는 잔칫집에 갔다가 막 상에 앉아 먹으려는 찰라 갑자기 일어나 나와서 집에 오게된 격이다.

 칸타가 아쉽겠다 싶어 볏짚을 좀 갖다주고 먹으라 했다.

그날 따라 볏짚은 질기고 뻣뻣해서 맛이 없어 보였다.

칸타도 구미에 당기지는 않았지만 달리 할일도 없어서 의욕없이 그저 우물우물 씹어댈 뿐이었다.

한참 칸타를 바라보니 그 얼굴엔 생각이 많아보였다.

'내가 왜 일찍 방에 들어온 걸까? 아마르는 지금쯤 배터지게 보리싹 뜯어먹을 텐데 ……'

 

 

 

 

 

 

 

​다음날 다시 칸타를 데리고 보리밭에 갔다. 운동 끝나자마자 곧바로 직행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몸에 마구가 채워져 있을 때 말은 더 안심하고 순응한다.

어제처럼 농사짓는 사람이 언뜻언뜻 보여도 칸타가 긴장하지 않도록 운동하던 행색 그대로 데리고 온 것이다.

칸타는 어제보다 더욱 편안했다.

보리밭 가장자리쪽으로는 웬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일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아저씨가 "나도 옛날에 소 키웠는데 …" 하고 말을 걸어와서 알게된 사연인즉,

서울 사는데 김포에 땅을 사두는 바람에 종종 들러 그 땅에 묘목 심어놓고 관리하는 거라고 했다.  그분이 바로 지주였다.

 

사람 태우던 말을 데리고 나와 풀 뜯기는 모습도 흔한 풍경은 아닌지라

지주는 처음에 우리를 힐끔힐끔 보다가 나중엔 아예 다가와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가까이에서 말 구경도 하게 되었다.

아주머니도 화장실 드나드느라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한마디씩 살가운  얘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 뒤로 칸타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승마장 쪽으로 가까운 보리밭 언저리에서만 맴돌았는데

아저씨,아주머니랑 대화를 주고받은 후엔 활동반경이 넓어져서 그분들이 일하는 경계선까지 진출했다.

칸타의 심리는 이렇다.

1. 엄마랑 말 섞는 걸 보니까 믿어도 되겠다.

2. 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있어.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분들이 하던  작업의 내용은 이것이다.

 작년에 사다가 심은 감나무가 잘 자라도록 훗날 풀을 뽑아주어야 할 텐데 자주 못오니

어린 나무들이 자라는 땅에 전체적으로 검은 비닐을 씌우는 거다.

그러면 햇빛을 받지 못한 풀이 자라지 못하는 이치다.

 

 

 제초제를 확 뿌리는 방법도 있지만 옆에서 말 키우는데 해가 될까봐 차마 그럴 순 없노라고 했다.

마음씀씀이가 참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데 말들은 검정비닐을 무척 두려워한다.

색깔 때문에 그렇다.

얼마 전 승마장 안의 세마장 바닥에 검정 고무판을 깔아뒀는데 처음 들어가는 말마다 놀라서 덜덜 떨고 난리가 났다.

 칸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칸타가 검정비닐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보리싹을 뜯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서산에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어서 오늘 안에 집에 돌아가야 하는 그분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검정비닐을 '펄러덕 '소리가 나게 공중에 들쳐서 판판하게 깔았다.

그 소리와 광경이 꽤 자극적이었는데도 겁쟁이 칸타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마르도 운동 끝나고는  목욕을 시원하게 하고 밭으로 나왔다.

아마르는 아까 낮에 검정 비닐 옆에서 둔감화훈련도 하며 적응하도록 했었다.

그런데도 옆에서 비닐이 펄럭 하는 기미가 보이자 움찔하며 '이크' 피하는 시늉을 했다.

할방님이 아마르를 데리고 비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섰고 ,칸타도 그쪽에 있지 말고 오라고 불렀다.

그러나 칸타는 검정비닐 옆에 오래 머물고 싶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제와 너무 다른 칸타의 변신에 웃음이 나왔다.

 

 할방님과 그 소감을 주고받기를 ,

아무래도 칸타가 엄마의 신뢰를 얻으려고 자기가 얼마나 용감한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중인 것 같다,

어제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서는 후회를 엄청 많이 했나보다, 뭐 이런 얘기 등등을 했다.

 

                                             (이날 낮에 승마장 주변으로 산책나갔던 아마르 모습

 

 

 

아마르도 예민하게 굴다가도

동네 한바퀴 돌고 오면 눈이 초롱초롱 해져서 어지간한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히 운동한다.

 

 

 

 

 

 

 

밖에서 좀 센 환경적 자극을 받아들이고 오면

승마장 안에서는 경계도,긴장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칸타도 요즘 자주 보리밭에 나가 놀다 들어오니 야외 운동장에서 운동할 때

바람이 불고 비닐이 좀 펄럭거려도 긴장하지 않아서  훨씬 수월하고 내 마음도 평안하다.​

 

 

 

 

 

 

아무튼 겁쟁이 우리 칸타가 요즘 '또 언제 보리밭 가나!' 하고

기대하고 얼른 따라나서는 모습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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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에 마주들이 모여 당근씨를 뿌렸다.

날씨는 화창하고 따뜻했다.

작년 가을에 밭에서 싱싱한 당근을 뽑아다 말 아이들에게 먹이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어

다들 대충 말 타다가 부랴부랴 내려서 밭으로 달려갔다.

 

 

​1봉지를 그릇에 쏟아보니 새 모이만큼 나왔다.

당근씨는 커서 당근이 될 거라고 주황색이고 크기가 참깨알보다 조금 컸다.

 

 

​밭은 미리 잘 갈아엎어 길다란 고랑으로 블럭이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칸타네)는 크리스네랑 한 고랑을 공동 경작하기로 했다.

씨를 뿌리려면 먼저 씨 뿌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략 15 센티 간격으로 홈을 팠다.

 

 

브릿지 마주님이 당근씨 심을 자리를 차근차근 만들고 있는 두번째 줄이 칸타와 크리스네 밭이다.

 

 

브릿지 맘 :   ​'요런 자세로 씨를 솔솔 뿌리면 될 것 같아요'

 

 

 

​한편 마장에서는 그 시각 마장마술 말 훈련 시키느라 활력이 넘쳤다.

"더 액티브하게 보내세요! " 하는 외침이 들리고 ,말이 펄펄 날아다니는가 하면

게걸음치듯 옆으로 신속하게 나아가기도 했다.

 

말들의 활력과 생동감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 분위기와 하모니를 이루는 듯했다.

이곳에 뿌린 당근씨들은 날마다 말발굽이 땅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원장님 말씀으로는 한 고랑에 씨 두 봉지가 적당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하려면 거의 한 개씩 집어서 간격을 맞춰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농부들이 누구인가?

다들  경험없는 초짜 농부 홀스맘인지라 다 뿌리고 보니 한 고랑에 4봉지가 들어가고 말았다.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올라오는 당근 솎아내려면 쉽지 않겠네~

그래도 다들 농부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자부심은 크다.

 

 

​씨를 다 뿌렸으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양분을 잘 빨아들이도록

이불 덮듯 흙을 살살 잘 덮어주어야 한다.

흙에는 마분이나 톱밥이 보인다.

말이 먹고 뒤로 내놓은 것을 흙이 품어서 당근을 쑥쑥 자라게 한다.

그 당근을 말님들이 냠냠 먹는다. 자연의 순환이다.

 

 

​엄마 따라 나들이 나온 크리스 동생 슈나우저 예지란다.

 

 

 

​원래 요 자리에서 갤러리 하랬는데 예지가 얼떨결에 자꾸 마장 안으로 들어가서 밭 옆으로 옮겨주었다.

입고있는 퀼팅조끼가 승마패션스럽다. 부츠만 신겨주면 완벽?

 

 

한강에서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지요 하하 ~

 

당근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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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이라 더워서 아마르는 털도 짧고, 머리도 땋아내렸는데 장제사들은 긴옷 차림이다.  발굽을 삭제해주는데 아마르는 왜 눈을 질끈 감고 혀를 메롱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루를 건너뛰고 승마장에 나가 보았더니 칸타와 아마르의 발굽이 깔끔했다. 지난 삭제일로부터 55일이 지난 싯점이다. 삭제 전날 내일은 안 나올 것이니 아이들 발굽을 단단히 관리해두자 싶었다. 삭제한 지가 오래 되어 아이들 발굽에서 제차 경계선 부위가 거뭇하고 꼬리꼬리한 냄새가 풍겼던 거다. 꼼꼼하게 긁고 털어낸 후에 포비돈을 스프레이로 칙 뿌려놓았다. 그랬던 발굽이 다시 와서 보니 도자기처럼 매끄럽고 깨끗했다.

 

 

 

 

                                      박건영 장제사팀 .  아마르는 선풍기바람 맞으며 시원하겠다.

안장이 보이는 공간에 지금은 안장실이 지어져서  '그때 그 시절' 추억의 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사진들은 작년에 휴대폰으로 찍어서 보관하다가 연말에 단체로(?) pc에 이주시킨 사진 중 일부다. 매달 보는 장제 풍경은 승마를 하며 접하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다. 발굽은 가장 낮은 곳에서 말과 사람의 체중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니 가장 고단한 말 신체 부위일 것이다. 그런 발굽이 편안하도록 돌보는 작업이 바로 장제다. 

 

 발굽을 위하여 장제사는 허리를 굽히고 발굽을 소중하게 감싸쥔 채 목공예라도 하듯 섬세하게 깍아야 한다. 장제사가 발굽에 몰입하는 동안 허리를 굽힌 작업자세에서는 겸손함을, 발굽을 매만지는 손길에서는 타자(他者)에 대한 존중감을 느끼게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아름답다고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여름날에도 장제사는  긴팔에 긴바지 장제용 가죽 챕까지 두르고 작업해야 한다. 말 한 마리를  장제하고 나면  땀범벅이 되고야만다. 그런  장제사 모습에서 요즘에 주변에서 찾아보기 귀한  노동의 고단함과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장제를 하는 공간은 그곳이 어디건 간에 그 노동의 신성함과 생명을 보살피는 노동의 의미로 인하여 성소(聖巢)로 변한다. 쇠를 달구는 불꽃, 달구어진 쇠에 발굽이 닿을 때 피어오르는 연기, 비일상적인 발굽 타는 냄새, 일하는 사람의 경건하고 침착한 자세가 성소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날마다 발굽 들여다보는 일은 나의 일과다. 칸타나 아마르도 하루에 한,두 차례는 발굽을 들어 바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 말을 타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타는 말의 발을 손으로 들어보아야 한다.

 

말마다 다리가 균일한 상태가 아니므로 쉽게 드는 발과 어렵게 주는 발, 아예 안 주려는 발도 있다. 또 사람이 잡고 있어도 오래 유지하는 발과 얼른 내리고 싶어하는 발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 얼른 내리고 싶은 다리의 반대편 쪽이 불편한 다리다. 두 다리로 부담하던 체중을 아픈 쪽으로 다 부담하려니 힘들어서 그렇겠지.

 

그런 상태를 느끼면 말 다리가 어디가 튼튼한지 약한지를 체크할 수 있어서 기승했을 때 어떤 운동의 모습을 보일지 읽을 수 있다. 만일 평소 잘 주던 다린데 잘 안 준다면 탈이 난 게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을 발굽과 대화하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아마르 발굽은 편자를 신기지 않는 자연발굽으로 매우 건강하다.

 

아마르의 발굽을 파줄 적에 재미있는 점이 있다. 앞다리는 교육을 받아서 '풋!' 하고 외치면 들어준다. 뒷다리는 내가 직접 들어주는 것을 싫어한다. 비절 근처를 만지면 저 스스로 다리를 들어서 들고있으려고 한다. 처음 들어올려서는 허공에 헛발질처럼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균형을 유지하며 들고 있는 거다. 한 마디로 '혼자서도 잘 들어요!' 하고 의지를 보이는 거다. 할머니 팔 아플까봐 그런다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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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에 2명의 수의사가 방문하여 4필의 말에 대한 치과진료를 하였다. 그 중에 우리 아이들 칸타와 아마르도 껴있다. 지난 겨울부터 칸타가 운동 중에 재갈을 불편해하면서 입을 벌리는 일이 잦고 간혹 머리를 흔들기도 해서 칸타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러 원인을 생각해보다가 칸타가 언제 정치를 받았나 진료기록노트를 찾아보니 아뿔사 2년이 훨씬 지나 있었다. 부랴부랴 마치의 전문 수의사에게 연락했고 덩달아 아마르까지 말끔한 진료를 받았다. 이후 아이들이 운동할 때 입안이 편안하니까 집중력이 높아져서 좋아진 기승감각을 체험하고 있다.

 

 

 

 

​서양의 동화 중에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 꼭 칸타공주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곳에 공주가 찾아왔다. 그러나 진짜 공주인지 인증되지 않았다. 그 공주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잠자리 침대 바닥에 콩알을 놓고 매트리스를 열 장쯤 쌓았다. 그곳에서 자고난 공주님이 등이 배겨 불편했노라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진짜 공주임이 판명났다. 얼마나 예민하면 열 장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도 등이 배길까. 그 공주에 버금갈 정도로 예민한 공주를 말 중에서 찾는다면 칸타쯤 될 것 같다.

 

개그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쩍 벌린 칸타의 입안을 위로 올려다 보았다. 어금니들이 일렬종대로 볼살과 맞대고 길게 나 있었다. 수의사가 장갑낀 손으로 볼살을 들쳐올려 이의 상태를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어금니가 사람처럼 가지런하게 둥글둥글 옥수수알처럼 보이지  않았다. 관리받은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어금니의 단면은 바깥으로는 볼살과 이웃하고 안쪽으로는 혀의 측면과 기대었는데 그 부분들이 울퉁불퉁을 넘어서 뾰족하기까지 했다. 그 모양과 유사한 이미지라면 이런 게 떠오른다.

 

요즘은 통조림 뚜껑이 원터치캔이지만 옛날 클래식한 통조림들은 따개를 이용하여 찌걱찌걱 굴려서 뚜껑을 땄다. 따고나면 동그란 뚜껑의 절단면은 뾰족뾰족하여 손이라도 댔다간 베이기 십상이다. 꼭 불규칙하게 마모된 어금니 단면끝이 잘라낸 통조림 뚜껑 절단면처럼 보였다. 처음에 마모될 때는 빨래판의 굴곡 같았다가 더 시간이 흐르면서 뾰족해졌을 것이다. 볼에는 상처가 났다가 아문 흔적도 보였다. 이 지경이었으니 예민한 공주님 칸타가 얼마나 신경쓰이고 불편했을까 싶다.

 

 

 

 

​     아마르의 입안도 사정은 칸타랑 비슷했다. 다만 성격이 무던하니까 별 티를 안냈던 뿐이다.

 

 

 

 

​아마르는 낭치도 하나 뽑았다. 사람의 사랑니처럼 불필요하면서 ,말의 어금니 맨 앞줄에 콩알만하게 나서 재갈을 건드리는 놈이다. 마취주사를 맞고 핀셋으로 낭치를 뽑아냈다. 말에 따라서는 뿌리가 깊어 뽑기 힘든 낭치도 있다고 한다. 아마르의 입안에서 존재감 없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승용마의 전도양양한 앞날을 위하여 그만 치워지고 만 셈이다. 아마르가 진료 받을 때는 태연한 얼굴이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 주루룩 떨어졌다. 나름 힘들었나보다.

 

 

 

 

​아마르를 처치하는 동안 이미 끝난 칸타는 진정제 효과가 남아있어 회복하라고 그냥 세워뒀는데 어느 순간 깊고도 긴 '푸우우우'하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 와중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거다.

 

(다른 사례)

 

말 3.

8살이 되도록 한 번도 관리받지 못했다. 어금니의 단면은 통조림 절단면을 넘어 톱날처럼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어금니 맨 앞엣니가 혼자만 마모되지 못해서 갈고리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운동할 때 늘 머리를 흔들던 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료과정을 보지 못한 마주는 나중에 수의사에게 결과 보고를 듣고는 애마가 그동안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 깊이 아파했다고 한다.

말 4.

 

18살 정도고 그동안 규칙적인 관리를 받았다. 문제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충치가 있었다. 말 어금니 중에서 충치가 잘 생기는 전형적인 자리라고 한다. 그 자리 충치가 더 진행되면 염증이 상악골로 유입되어 코에서 악취가 심한 콧물이 흐르게 된다고 한다.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겠고 충치가 심해지면 뽑아내야 한다.

 

 

 

 

 

​말의 치아관리를 잘 하면 말이 기승운동을 더 잘하게 되므로 타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말이 기승운동 중에 보이는 많은 문제점이 입안의 치아문제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제 봄이 앞다투어 오고  좋은 날들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그 좋은 날에 말과 더불어 즐기기 위해 말의 치아관리는 필수다. 입안에 통조림날이나 톱날을 문 말에게 무엇을 요구하여 말에게  고문이 되기를 원하는 승마인은 결코 없을 것이다.

 

 

 

​<승마 교감의 예술>(케이트 박 ,저)에 보면 이 문제가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소개한다. (페이지 280 - 281.)

 

이가 탈이 났을 시  운동할 때의 증상들

 

재갈 받기를 싫어한다.

코끈을 매거나 볼을 만지는 것을 꺼린다.

얼굴이 붓는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다.

구보를 시작하거나 답보변환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거나 한쪽으로 돌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수축운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버킹을 한다.

재갈을 제 위치에 물려 커뮤니케이션 하기가 어렵다.

입을 벌린다.

 

말의 편안함과 안전하고 쾌적한 기승을 위하여 1년에 1회 정도 '묻지마 치과진료'를 무조건 받는다면 좋을 것이다.

 

 

                                           ​어제 낮에 점심 먹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우물우물 편안하게 잘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마방에서 건초 씹는 모습이 힘들어보이고 , 건초를 겔겔 흘리거나 하는 말 친구도 치아상황이 안 좋을 수 있겠다. 기승전후에 콧잔등 주변에  뽀뽀하고 싶은데 입냄새가  심한 말도 치아로 인한 염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참고>

아이들 정치는 그린벨 이콰인 동물병원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http://cafe.naver.com/equine/232

 

 

 

 


승마: 교감의 예술

저자
케이트 박 지음
출판사
느린걸음 | 2010-02-10 출간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책소개
승마레슨, 장구, 말관리 등 승마의 모든 것을 담은 승마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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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은 티베트의 라마승과 아일랜드계 혼혈소년 킴이 인도의 북서부 지역을 여행하는 모험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도를 소재로 한 현대 영국 소설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영문학 작품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작품 안에 주인공 킴과 라마승 외에 말장수 마부브가 등장한다. 마부브는 말 판매업 대규모 상단의 대표다. 그의 활동무대나 거래규모는 국제적이어서 마부브는 정치적인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마부브는 자기의 직업상 사람이나 인생에 대하여 꼭 말로 빗대어 발언한다. 그가 던진 말 발언만 작품 속에서 긁어모아도 한 권의 어록이 될 듯하다. 그 중 일부의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킴을 학교에 보내는 문제에 대하여

 

마부브가 말했다.

"어떤 망아지는 아예 폴로 경기용 말로 태어나지요. 가르치지 않아도 공을 쫒는 겁니다. 감각적으로 게임을 알고 있는 그런 말을 무거운 짐을 끄는 말로 만드는 건 큰 잘못이란 겁니다, 나리!"

 

 

 

 

 

 

 킴이 학교에서 무단가출을 하자

 

"인간도 말과 비슷하죠. 염분이 필요할 때 여물통에 소금이 없으면 땅바닥을 핥아대지요. 그 아인 잠깐 동안 길을 떠났을 겁니다.…… 폴로를 하던 말이 혼자서 폴로를 배워보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간 셈입니다."

 

"각하! 그앤 삼 개월 동안 학교에 있었습니다. 조랑말이 게임을 익힌 겁니다.? "

 

  

 

 

 

 

현대의 자동차광 남자들이 과거에 살았더라면 말에 눈이 멀었을 것이다.

 

 

마부브의 말에 따르면 ,백인 청년들은 하나같이 말에 관한 한 전문가로 자처하면서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을 꿔서라도 말을 살 것처럼 덤빈다고 했다. 마차역을 따라가는 도중에 만나는 백인들이 저마다 길을 막고는 얘기를 하자고 덤비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기네들이 타고 가던 마차나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마부브의 말들에게로 와서 다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거나 힌디어를 전혀 모르는 탓에 그게 얼마나 상스러운지 알지 못하면서 이 태연자약한 말장수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마부브와 크레이튼 대령과의 정치적 계약을 이행하는 게임에 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발언.

 

"게임을 하는데 어린 망아지를 묶어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스스로 택한 여행을 제재한다 해도 ,그 아이는 우리의 제재를 간단히 무시해버릴 겁니다. 그러면 누가 그 아이를 잡을 수 있을까요. 대령 나리.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 태어난 겁니다. 이 망아지야말로 우리들 게임에 가장 적합한 놈입니다.더구나 우리에겐 지금 요원들이 필요합니다."

 

 

 

      

 

 

"그 망아지는 이제 조련이 끝나서 재갈에도 익숙해졌고,능란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나리. 매일 이대로 가둬두고 재주나 부리게 한다면 그앤 결국 재능을 잃고 말 겁니다. 고삐를 풀어주고 내달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린 그 아이가 필요합니다.

 

 

 

       

 

 

    

  말 판매 노하우?

 

"오,부크타누의 신들이시여! 아주 잘생긴 녀석이군."

"잘생긴 녀석 타령은 말을 팔 때 써먹는 거잖아."

마부브의 말에 킴이 웃음을 터뜨렸다. 

 

 

 

 

 

<킴>이라는 작품은 모험소설,성장소설이자 구도소설이다. 작가의 관점인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성이 드러나는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킴>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겠다. 나는 성장소설의 관점으로 <킴>을 보았다. 킴이라는 고아소년이 세상 풍파를 헤쳐나가며 커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때 주변 인물을 통해서 소년의 성장은 말의 성장과 자신의 가치실현으로 비교된다. 사람이든 말이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이태리 홀스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로 소몰이 용도로 쓰이는 말 품종 쿼터호스가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쿼터호스 망아지 중에서 본능적으로 소몰이 감각이 탁월한 녀석들이 있다고 한다. 그 감각을 '카우센스'라 부른다. 그런 말의 혈통은 매우 귀하게 대접받는다.

 

 

 

 

 <킴>에서도 뛰어난 말의 족보가 중요한 기밀문서로 취급되는 내용이 나온다. 승마를 하는 사람은 말마다 재능과 개성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말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말은 팔자가 좋은 거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보도블럭에 떨어진 씨앗처럼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없다.

 

 

 

 

 

 

 

 

말장수 마부브가 말한 '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말'이란 어떤 말일까?

 

과연 그런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잘 맞고 소중한 말이라면,

 

그 말은 나를 만나러 천 년을 기다렸다가 태어났고 , 내 앞에 나타나서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다.

 

 

 

 

 

 

 

 

 

 

러디어드 키플링 (1865 - 1936)

인도 출생. 1907년 영어권 작가 최초, 역대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

대표작으로 소설 <정글북> <킴>, 시집 <막사의 담시>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동네가 정선해 선보이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성과 시대를 뛰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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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겨울 .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레이의 모습.

 

 

 

                             

                          ​전용 하우스(원래 송아지 방)가 딸린 전용 패덕에서 방목 중인 레이.

 

 

 

                

                                      ​반으로 접힌 무릅담요 마의가 롱스커트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그만큼 레이는 앙증맞게 작았다.

 

 

 

 

                    ​

                                             지금은 떠나고 없는 친구 마티.

                                    마티는 강원도 어느 목장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레이는 2014년 내내 먹고,자고,놀았다.

 

 

 

                                                     

  그러다 문득 지난 겨울에 보니 몸통이 엄청 커져 있었다.

 

 

 

 

2015년 3월 1일 삼일절이다. 

 

 

 

 

레이는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클럽회원으로 평소 말 훈련을 매우 좋아하고 잘하는 분이다.

 

 

 

 

레이!  사진발이 참 좋다. 흰색과 밤색의 조화가 오묘하고도 아름답다.

 

 

 

 

조가비같이 앙증맞은 발굽 청소도 하고. 

 

 

 

 

작은 말 전용 서부안장도 맸다. 

이 멋진 말을 탈 카우보이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 안장을 사왔을 때는 복대가 남아돌아갔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배가 커져서

 복대가 말 아랫배만을 겨우 가리고 있다. 

 

 

 

 

레이 공부의 목표는 30kg 아래로  체중이 나가는 기승자( 어린이) 를 태우는 것이다.

 

 

 

 

 기승자 체중을 부담하면서 균형을 잡는 법, 지시에 따라 속도조절, 방향전환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하여 레이는 모래주머니를 안장 양쪽에 매달고 걸어간다.

 꼭 히말라야의 소금 팔러 가는 말을 연상케 한다.

 

 

 

 

수상한 행색을 하고 어딘가로 가는 레이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칸타.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와 걷는 동안 잠시 환경적응을 하고. 

 

 

 

 

가는 길에 낯선 물체를 익히기도 하고 

 

 

 

 

본격적인 공부를 할 차례. 오늘은 두 줄 고삐 훈련 3일 째다. 

솜씨 좋은 선생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레이에게 맞는 재갈과 굴레도 뚝딱 만들어 착용했다.

 

 

 

 

말이 사람의 체중 부담 없이 재갈과 연결된 고삐의 감각을 익히고

사람의 부조에 맞춰 전진, 방향전환, 정지 등을 익히는 훈련법이다.

아마르도 소싯적에 이 훈련을 여러 번 받으며 자란 기억이 난다

 

 

 

 

훈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안정적인 이 모습에 이르기까지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작년 봄, 내츄럴 훈련을 받을 기회가 생겨

처음 끌기를 시킬 때만 해도 이리 튀고,저리 튀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미니마장에서 조마훈련을 시키는데 걸핏하면 개구멍(?)으로 도망쳐나와 마방으로 달음박질치는 레이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학교에 보내놨더니 그게 무슨 처사인지 몰라 무조건 도망치는 격이었다. 

 

 

 

 

그러다 점차 사람이 저에게 뭘 요구하는 것에 악의가 없고,

주변 말들이 다 하고 있는 본분임을 자각하게 되서 조금씩 따르기 시작한 것일게다.

또한 훈련분위기가 늘 웃음이 터져나오는 유쾌한 상태였으므로

감정 전염성이 강한 말 입장에서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이 활동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재갈을 무는거라 느낌이 낯설고 불편한 모양이다. 

 

 

 

 

그래도 어둑하고 무료한 마방에 있는 것보다는 

온갖 곳을  다니며 사람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레이는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할 것 같다.

앞으로는 어쩌면 선생님 오시는 주말만 마방에서 손꼽아 기다릴 지도 ...

 

 

 

 

이 포스팅을 위하여 본인의 이미지가 담긴 사진공개를 허락해주신

레이선생님 김석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애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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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애호가가 설 연휴에 뒹굴거리며 본 영화 -

 

 

명절 연휴에는 으레 남아도는 시간이 생기는지라 뭐 심심풀이로 볼 영화 없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설에도 그런 상황이 찾아와서 좀 고르다가 본 영화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사랑게임>이다. 줄리아 로버츠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기분좋은 유쾌함에 젖어드는 편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노팅힐>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랑게임>이라는 영화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 그레이스(줄리아 로버츠 분)는 전형적인 남부 대목장주의 장녀로 태어나 말과 함께 성장했다. 집안의 사업이란 말을 훌륭한 승용마로 키워 각종 대회에 출전시키고  몸값을 높여 판매하는 것이다. 현재 그레이스는 아버지 목장의 마필관리실장 쯤 된다. 마사 안에 즐비하게 연이어진 마방 끝에 그녀의 사무실이 있다. 그레이스는 결혼하기 전에 수의사를 꿈꾸었으나 갑작스레 찾아든 연애와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로 결혼과 임신이란 상황에 맞닥뜨리며 그 후로 내내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알게되고서 인생 전체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에 빠져든다.

 

 

그레이스가 '내 인생이 대체 뭔가?' 완전히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하고 회의에 빠져드는데, 사실 공교롭게도 남편이 타이밍을 맞춰 도화선이 되어준 것일 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싯점에서 여자로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긴 되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그레이스는 자신이 꿈을 접고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데에 자괴감을 느끼고 온통 남편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남편은 사건이 터지고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원상태로 돌아가려 애를 쓴다.

 

결혼을 하고서도 부모님과 함께 3대가 거주하는 그레이스의 집안은 가족 개개인도 모두 인상적이다.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가장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노령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랑프리 대회에 나가 우승하겠다는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방편으로 남의 몫을 가로채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빈축을 사기 알맞지만 열정 자체에는 박

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이다. 남편이 바람나서 괴로워하는 딸에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다독이며 응원을 보낸다. 그레이스 여동생은 화끈하다. 용서를 빌러 찾아온 형부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것으로 응징을 하며 언니를 대신하여 언니보다 더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언니에게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름 꽤 괜찮은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겨졌는데 이런 긍정적인 가풍은 말에 둘러쌓여 살아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말을 기르고,교육시키고, 돌보아주고,그들에게 깃든 재능을 이끌어내려면 공동체에 유용한한 의사소통 방식을 일상적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말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상태인지 늘 살펴야 하고 겁 많고 소심한 말에게서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소통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타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통찰하는 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자연스럽게 터득이 된다.

 

 

 

그레이스가 깊은 회의 속에서 방황하다가 꼬여버린 자기 인생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발견한 것은 딸 캐롤라인에게서였다. 캐롤라인은 집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말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녀다. 이 소녀의 불만은 자기가 좋아하는 백마를 타고 대회에 출전하고픈 소망이 금지됐다는 거다. 할아버지나 엄마는 소녀의 안전을 생각하여 어린이가 무리없이 통제하여 다룰 수 있는 조랑말을 타라고 한다. 더 커야만 큰말을 타게해주겠다는 거였다. 이에 대하여 영화 초반에 캐롤라인이 엄마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얼마나 당차고 야무진지 말과 더불어 자란 아이답다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할 뻔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이랬다. 남부 여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기대치를 아주 적게 가지도록 교육되어왔다고. 남자에게 그 말을 뱉은 후 그레이스는 딸 생각이 났다. 자신 역시 딸에게 네 꿈의 그릇은 작은 것이라고 억누른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 그레이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딸에게 가서 큰 백마를 타도 된다고 허락했다. 딸의 기쁨은 너무 커서 자다 말고 일어나 말 타러 나가겠다고 한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그랑프리 대회장에서 증명해보였다. 마지막 고난도 장애물을 넘을 때 캐롤라인의 앙다문 입술과 단호함이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캐롤라인은 엄마 그레이스에게 자신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커다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레이스에게 깨달음이 왔다.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인생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닌 자신의 문제였다고.

 

 

 그리고 결혼과 양육으로 자신의 꿈을 접었던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훌륭하게 자란 캐롤라인이 그 증거였다. 그레이스는 사랑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와 함께 할 인생을 꿈꾸고 선택하였다. 그때  자신의 판단을 믿고 다가온 운명에 충실했던 뿐이고,  수의사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배반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또한 과거에 그레이스가 14세 이하 선수가 참가하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여 빛나는 성취감을 맛보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자신감도 충전되었을 것이다.

 

 

 비록 3위에 머물렀지만 후회없는 경기를 펼친 아버지.

 

영화에서 자신의 본분을 넘어선 꿈을 추구한 아버지가 현실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과 딸 그레이스가 자존감 부족으로 갈등을 겪다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대비가 눈여겨 보아진다. 결국 여성 자신이 딸과 엄마로 자신을 좁게 가두지 말고 더 큰 꿈을 꾸고 매 순간 성취하며 자신을 발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겠다.

 

 

 그랑프리 대회가 끝나고 사람과 함께 최선을 다한 말 선수에게 샴페인을 맛보게 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로 펼쳐지는 대회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단, 현실에서 따라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자칫 말 이빨에 유리잔이 깨져 파편이 말 입안에 들어가면 곤란할 테니까. 나라면 말용 실리콘 샴페인잔을 준비할 것 같다. 음료는 달달한 당근주스가 어떨까?

 

대회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성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준 딸의 모습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한 그레이스는 수의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녀가 밝아지면서 불화를 겪던 남편과도 관계가 회복된다.

 

<사랑게임> 영화를 보면서 말이란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자존감과 자긍심이란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인도자이며,

 

성장의 동반자라는 것을 내내 생각해보았다.

 

 

 

 

 


사랑 게임 (1996)

Something To Talk About 
0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줄리아 로버츠, 데니스 퀘이드, 로버트 듀발, 지나 롤랜즈, 뮤즈 왓슨
정보
코미디, 로맨스/멜로 | 미국 | 105 분 | 199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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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물


월터 휘트먼[미국]


 

 

 

 

 

월터 휘트먼[Walt Whitman](1819. 5. 31~ 1892. 3. 26)




나는 모습을 바꾸어 동물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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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다시 산다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더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그리고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년 8월 24일 -1986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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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가  땅조사를 한다.

이곳으로 누가 얼마나 이전 시간에 다녀갔나 알아보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아무개가 점심 먹기 전에 지나갔고, 누구는 아침 해뜨고 바로 다녀갔군.'

 

 

 

 

 이럴 때 머릿속은 온통 무엇에 골똘하느라

다리는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느낌이다.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살필 때도 역시 느릿느릿 평보다. 

 

말과 사람이 함께 친밀감을 느끼는 데에는 평보가 최고다.

말의 마방굴레에 로프를 달아서 잡고 나란히 걸어갈 때에 기분좋은 느낌이 있다.

말 뒷다리가 내 눈에 보일리 없으므로 마치 말도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말도 보폭을 나에게 맞추고 제 눈의 높이를 나의 눈높이 정도에 두므로

친구랑 다정하게 걸어가는 느낌?

로프를 느슨하게 늘어뜨려 잡으면 말이 주변도 살펴가며 나도 쳐다보니

우리 사이에 끈끈한 친밀감이 있구나 싶어진다.

 

 

 

 평보 걸음걸이 사진은 아마르가 자유롭게 놀고 있을 때 모습이다.

 아래에 나오는 속보나 구보 걸음걸이는 자유조마를 실시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유심히 보면 아마르가 꽤 절도있게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조마는 긴 로프를 말과 사람 사이에 연결시키지 않고

사람의 손짓이나 입소리 신호에 따라 말을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로프라는 물리적 연결이 없다보니 정신적인 연결이 튼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마르가 지금도 완벽한 수준이랄 수는 없지만 처음 실시할 때 순조롭지 않았다.

좁은 훈련장에서는 비교적 잘 했지만 넓은 공간에 나오니

 '자유로운 영혼' 아마르는 훈련가인 할아버지의 지시를 따르기보다

호기심천국 운동장 돌아다니기가 더 좋았을 테니까.

 

 

 그러는 동안 나는 배꼽잡는 쇼를 꽤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르가 할아버지를 따르고 말을 잘 듣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더는 못 참아! 안 해!" 하고

어느 코너에서 대각선으로 전력질주하여 (그럴 때 만화에서처럼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먼 곳에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본다.

할아버지가 요놈을 혼내고 다시 바로 잡으려고 헐레벌떡 뛰어갈 적에

순간이동에 가까운 아마르의 질주에 비해

앞으로 고꾸라질듯 맨땅에서 질퍽거리는 사람의 걸음은

얼마나 힘겨워 보이는지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하룻동안 이 장면을 비디오 반복해서 돌리듯 여러 번 보고 나는 실종된 배꼽을 찾아야했고

 아마르 할아버지는 진빠지고 삐치고 만다.

 

 

아마르가 눈치가 훤하고 생각이 말짱해서

자유조마를 할 때 늘 훈련하는 사람의 관심권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한편으로는 제 자신의 자유로움에 대한 의지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알았다.

도망간 아마르에게 다가가면 제가 잘못한 줄을 알고 떳떳하지 못한 심정이 되어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고 한다.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아마르 훈련은 중지하지 않았다.

 아마르가 제 할아버지가 그 옛날 사거리에서 교통지도 하던 사람이 수신호 보내듯

팔을 쭉 뻗어 방향을 지시하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터뜨리며 '쁘' 하는 소리를 내서 지시를 분명하게 하니

 '예써-ㄹ' 하듯 탄력있는 걸음걸이로 팬스를 따라 돌았다.

 아래 사진들은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던 상황의 리포트가 될 것이다.

 

 

 

아마르의 모습을 보며  

말과 사람은 '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

 

 

 

 

그건 도망갔다가도 다시 다가와 눈을 맞출 수 있는 관계로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로프로 너와 나를 연결하여 걸어갈 적에 주위를 탐색하지만

다시 내 눈을 바라보는 말의 모습도 본질은 그것이 아닐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cgv 홈페이지에서 로그인하여 조회하니 이 영화를 2004년에 부천에서 본 것으로 나왔다.

'뭐? 진짜?' 이런 심정이었다.

영화를 봤다는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언제,어디서,누구랑 봤는지는 깜깜했다.

한데 이렇게 기록이 나오니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어쨌든 영화를 다시 봤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은 파편적 이미지와 줄거리일 뿐

그것도 전체 내용의 10%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책도 10년 전에 봤던 책을 다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책 그 자체인데

영화도 그렇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말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좋은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영화다.

이 자리에서는 치히로와 하쿠의 깊은 인연과 사랑에 대해서만 좀 쓰려고 한다.

 

 

 

 신들이 쉬러 오는 온천장이란 낯선 세계에 들어온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하쿠는 치히로에게 너의 이름을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 하고 꼭 다시 돌아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치히로는 낯선 세계에서 센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도 원래 이름은 고하쿠였다.  

정작 자신은 이름을 잊었는데 치히로가 기억해내어 말해준다.

하쿠는 용이다. 백룡.

백마가 상서로운 동물이듯 용도 황룡이나 흑룡이 아닌 백룡은

 뭔가 성스럽고 신비로운 영적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사람인 치히로와 백룡인 하쿠는 오래전 맺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치히로가 강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그 강에 살던 하쿠가 구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어떤 사랑이 오갔고 그 후로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았다.

 

 

 

둘이 다시 만났을 때 치히로가 하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나를 찾아나가는 길'에 온전히 들어서도록 돕는다.

 

 

치히로가 하쿠를 타고 창공을 날아간다.

백룡이 소녀를 태우고 창공을 비상하는 장면은 심해를 헤엄치며 떠가는 물고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에서는 하쿠가 용으로, 할멈이 까마귀로 넘나드는 변신을 한다.

동양적인 상상력에서는 이런 넘나듦이 자연스럽다.

 

치히로와 하쿠는 다시 헤어진다.

치히로는 자신의 본질을 잊은 채 돼지로 살아가던  부모님을 구하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둘은 헤어지면서 언젠가 또 다시 만날 것임을 확신한다.

 

하쿠는 신들의 세계에서 치히로는 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둘 사이엔 투명한 은빛 실타래 같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백룡을 타고 날으는 소녀' 이미지에 그런 상징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사람을 태우고 하나가 되는 이미지에도 같은 본질이 깃든 것이 아닌가.

낯선 세계에 속한 낯선 존재가 서로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 사이에 어떤 소중한 연결이 지어져있음을 확인하는 것!

 

 

 

잠시 영화라는 다른 세계에 머물다 오니

아마르는 여전히 속보로  나아가고 있다

 

 

 

 

말이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네 개의 다리가 이루어내는 변화와 질서의 하모니에서 어떤 놀라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떻게 네 개의 다리를 헷갈리지 않고 순차적으로 다양한 보법에 맞게끔 사용하는지 말이다.

 특히나 보법을 바꿀 때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에 따르는 것이므로 혼란스럽지 않나? 우려해보지만

말은 '그런 건 이미 내 속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구요!'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기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를 언급했으니 

팔이 여러 개 달린 가마 할아범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가마 할아범은 온천장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보일러실 총책임자다.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오차없이 기계조작을 해야만 하는데

여러 개의 팔이 기차의 하부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여러 번 나오는 가마 할아범이 일하는 팔동작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손색없다.

 

 

 

만일 가마 할아범을 인터뷰한다면

이런 말을 들려주지 않으려나 혼자 상상해 본다.

 

"저는 작업내용에 따라 팔 운용법을 달리합니다.

한쪽 팔을 교대로 순차적으로 쓰는 법, 대각선으로 쓰는 법, 지그재그로 쓰는 법이죠.

 글쎄 상상이 안 가시죠? 그럼 말의 걸음을 떠올려 보세요.

다리 여섯 개 달린 말이 다양하게 걷거나 달리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런 상상을 혼자 해보고 재미있어 하는 까닭은

 나는  팔과 다리의 기능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말이나 가마할아범은 구분 없이 현란하게 사용한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구보로 이행한다.

 

 

                                             

                                            

 

 

 

 

 

 

 

 

 

장애물도 없는데 괜히 혼자서 하는 점핑

 

 

운동장을 돌다보니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모양이다

'끼야호~~'쯤에 해당되려나..

 

 

 

사람이 어떤 의도로 훈련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나름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말이 예기치 않은 행동을 보여줄 때 ,

말과 사람에게 모두 활력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순간 말과 운동장에서 함께 노는 것이 타는 것 못지 않게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점프를 하고 난 탄력으로 앞으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거침없는 질주 후에 '끼이익!' 하는 느낌으로

후구를 낮추어 뒷발로는 미끄럼을 타며 제동을 걸고 앞발로는 깡총 제자리뛰기를 하며

제동을 안정시키는 동작을 한다.

이 동작에서 아마르는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다. 자주 하는 것을 보면 .

 

 

 

흐트러진 동작을 정돈하여 단정하게 선 후에

 

 

 

 

인사라도 하려는지 돌아서서 바라본다.

아마르는 이렇게 묻고 있는 걸까?

 

"나 잘했나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15)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9.4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나츠키 마리, 나이토 타카시, 사와구치 야스코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어드벤처 | 일본 | 126 분 | 2015-02-05

 

 

 

 

(날이 풀리면 카메라를 들고 논으로 나가볼까 합니다. 돌이할방님과 아마르가 틈틈이 하는 내츄럴 훈련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작년부터 실시한 아마르 훈련의 단계별 진행을 기록해두어야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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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이 지나고도 겨울은 기세등등하다.

 지난 11월부터 세마장에서 물로 씻어내리지 못한 말의 몸은 꼬질하기 이를데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어디가 가려운 느낌이 드는데 말은 오죽하겠나.

 

그래서인지 겨울이 길게 흘러갈수록 말 아이들이 밖에 나와 모래목욕 할 때 

그들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즐긴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모래목욕을 하기 전에 자리를 잘 골라야 한다. 뾰족한 돌멩이라도 있을지 모르니까.

또한 신중하게 킁킁거리는 모습에서

혹시라도 방금 다녀간 맹수의 냄새라도 남아있지 않은지 안전을 도모하는 느낌도 받는다.

혹시라도 근처에 맹수가 매복하고 있다면

모래목욕 한 번 하려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는 사람이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이어서 맹수 따위가 나타날 리 없다.

 뒹굴기 전에 늘 자리를 고르는 말의 행동에서 조심성이 많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자리를 선택한 후 괜히 핑그르르 제자리 돌기를 한 바퀴 하기도 한다.

그 후엔 들고 있던 보따리를 손에서 놓았을 때

땅으로 꺼지며 풀썩 널부러지는 듯한 순서를 밟는다.

 

 

 

 

 아마르는 지금 세배하려는 게 아니고요.

육중한 몸통을 땅에 내려놓으려는 목적을 위하여 먼저 앞다리를 꿇은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몸통을 옆으로 쿵 쓰러뜨린다면 충격이 와서 아플 것 같다.

 

 

 

 

 무사히 무거운 몸을 땅에 부려 놓았다.

 

 

 

 

이제 본격적인 모래목욕 시작이다.

하는 요령은 굴곡이 있는 신체 부위의 표면을 최대한 모래에 비벼대는 것이다.

 

 

 

 

잠시 뒤집어진 말의 몸을 좀 관찰해보자면 배 아래에 검은 구멍이 보인다.

혹여 배꼽이 아닌가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위인 (아마르가 절대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음) '고추'가 들어있는 케이스 입구다.

 

안경은 안경집에, 연필은 필통에, 칼은 칼집에 담는 것처럼

손상이 우려되는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이치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필요한 경우에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니 얼마나 효율적인 구조란 말인가.

팬티라는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입지 않아도

'보호'와 '가림'이라는 기능에 저토록 충실할 수 있다니 놀랍다.

 

한여름에 말이 더위에 지쳐 고추를 있는 대로 늘어뜨렸을 때

얼마나 '기럭지'(기럭지란 말을 이런 데서도 쓰다니) 가 긴지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거대한 기럭지가 사진속의 납작한 배 안에 감쪽같이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면 신기할 뿐이다.

 

 

 

 

암말의 경우엔 수말의 검은 구멍 위치 양편에 젖꼭지 두 개가 돌출되어 있다.

암말은 중요한 부분을 평소 꼬리로 잘 가리고 다닌다.

 

 

 

 

말이 모래에서 뒹구는 목적으로 목욕 말고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세탁이다.

 

말은 털이 옷이다.

봄에 지난 겨울의 묵은 털을 모두 벗어버리고 새털이 자라나는데

여름에 길이가 가장 짧아서 마치 그냥 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면 털이 점점 자라나서 겨울엔 두툼한 코트가 된다.

 이 코트에는 마방에서 묻은 오물, 제 몸에서 떨어져나온 각질 등으로 더럽혀지기 마련인데

모래목욕 할 때 모래와 마찰하면서 떨어져나간다.

 

말이 몸통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모습과

내집 세탁기가 이리 빙글 저리 빙글 하는 모습은 뭔가 비슷하다. 

그렇다면 아마르는 모래에서 드럼세탁기 놀이를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방목을 시키지 않아 모래목욕을 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다른 말을 관찰하니

몸에 엉겨붙은 각질이 많았다.

 

 

 

 

 

볼일이 끝났으면 잘 일어날 일만 남았다.

이 순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말이 몸 일으키는 동작에서

아픈 다리는 힘주어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지 않더라도 더 강한 다리를 사용하여 일으키기를 한다.

 

말은 다리가 네 개이므로 상황에 따라 불편한 다리는 아끼면서

 나머지 다리를 좀 더 사용하여 효율성을 도모하려고 한다.

 

아마르는 왼쪽 앞발을 지팡이처럼 땅에 짚는 첫동작을 시도했다.

 오른쪽 앞발은 최근에 염좌를 앓았던 터라

 나름 아끼는 모양이다.

 

 

 

 

 

 마방에서 처음 꺼낸 말이 다리가 아프지는 않은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만져 열이 나는 부위가 있나 확인하고 ,

 끌고 나가면서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운가를 보고 ,

그때 바닥에 차례로 디뎌지는 발자국 소리가 규칙적인가 들어본다.

 

 

 

 

 앞다리 한쌍을 지지대로 세운 후에

 

 

 

 

끙! 하고 힘주어야 하는 후구 일으키기

 

 

 

 

 

 

다 일어난 후에 동상자세로 마무리하면 모래목욕 끝!

보통의 매뉴얼에서는 몸을 부르르 떨어서 모래를 터는 깔끔함을 과시하는데 이날은 생략하고 넘어갔다.

 

 

 

   

 

 

다음은 기쁨의 세레모니를 할 차례.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머리를 흔들고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점프도 하고

 

 

 

깡총거린다.

 

 

 

아마르는 기분이 좋아진 채로 엄마인 칸타가 뭘 하는지 궁금해졌는지

 자석처럼 끌리듯 다가갔다.

 

 

 

아마르를 보면서 어린 아이와 말과 강아지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어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

 

1. 사안의 중요성으로 보아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달려간다.

 

2. 가만 서있다가 걸음을 옮길 때 괜히 확 출발한다.

 

3. 걸핏하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동작을 한다.

 

4. 시시때때로 이유없이 신바람이 난다.

 

5. 작은 구멍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방의 벽을 이루는 나무 판자에 틈이 생기면  '너 잘 만났다' 하고

 하루 종일 물어뜯어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쿠션에 작은 틈이라도 벌어지면 강아지는 기어코 물어뜯어서

쿠션의 내장이 밖으로 다 나오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다.

 

 어린 아이는 어떤 사물에서 풀려나온 끄트머리가 있으면

기필코 잡아뜯어 해체하는 재주를 발휘한다.

 

어른이라면 이 모든 경우에 어떻게 하면 메꾸어서 원상대로 돌려놓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오늘도 아마르는 괜히 혼자서 바쁘게 뛰어다니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목욕 습성, 세탁 습성이 있다구요!

 

 

 

 

아마르가 우리를 보고 다가오는 순간에

 

 

 

 

 

어디선가 홀연히 불어온 바람이 아마르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빗겨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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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85 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 와일드

                                      ( 셰릴 스트레이드 저 / 나무의 철학 )

 

 

 

 

*    

 

먹고 살 돈도 빠듯했지만 엄마는 말을 사야만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의 인생을 구원해 준 건 바로 레이디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레이디덕분에 엄마는 아버지를 떠날 수 있었을 뿐아니라 완전히 독립 핳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은 엄마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

 

나는 레이프가 칼을 꺼내들고 붉은 색과 금색이 섞인 레이디의 갈기털을 잘라내는 것을 보았다

" 엄마도 이제 편히 저 세상으로 가실 수 있겠지"

레이프는 그렇게 말하며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남매밖에 없다는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 인디언들은 그렇게 믿는대. 위대한 전사가 죽으면 타던 말을 죽이고 그렇게 해야 ( 주 : 갈기털을 잘라내야) 저승으로 가는 강을 편하게 건너갈 수 있다고. 그게 존경의 표시라고 했어. 엄마는 이제 저 세상에서도 레이디를 타고 함께 할 수 있을거야"

 나는 엄마가 레이디의 단단한 등에 올라타고 거대한 강을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엄마는 거의 3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나는 레이프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내게 빌고싶은 소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내가 바라는 건 엄마가 다시 말을 타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레이디와 함께 저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

 

나는 더 이상 ~~ 때문에 놀라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그보다 놀라운 일이 훨씬 더 많았다.

.

.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행복해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

.

내가 울었던 이유는 내 마음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

.

나는 들어왔고 나는 떠났다. 내 뒤로는 캘리포니아가 마치 기다란 비단 장막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더이상 내가 멍청한 바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여전사도 아니었다.

내 안의 나는 이제 강하면서도 겸손하며 마음이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그 사슴처럼 이 세상에서 안전했다.

 

 

 *

 

이제는 더 이상 텅 빈 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고

저 수면 아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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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살아 있어!

 

 

 

 진짜 살아 있다구 ~ ~ ~

 

 

 

 

화창한 주말에 칸타와 아마르가 밖에 나왔다. 1주일 전 큰 비가 내린 이후에 운동장이 질퍽거려 나와 놀 수가 없었다. 이날 운동장은 보송보송, 햇빛은 쨍쨍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였다.

 

 밖에 나온 아이들이 처음엔 눈이 부신지 몇 번 깜박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킁킁 땅조사를 시작한다.

 

 

                                     

 

 뒹굴 자리를 고르는 것이다. 그런 후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러덩 눕더니 힘차게 등을 땅에 비벼댔다. 그 모양은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바닥에 던져졌을 때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격렬함과도 흡사했다.

 

 

 

 대여섯 번 정도인가. 가려운 곳이 시원해졌는지 드러누운 자세에서 엉덩이로 앉았다가 뒷다리 힘으로 벌떡 일어나는 순서로 몸을 세우더니 꼬리마저도 세웠다. 기분이 붕 떠서 매우 좋아진 거다. 그 다음은 기쁨의 세레모니를 할 차례. 이때 나타나는 발걸음이나 몸의 동작은 승마할 때에 나타나지 않는 자유롭고도 현란한 몸짓이다. 네 다리는 제멋대로 차고,뿌리고 난리가 난다. 우리도 한때는 그랬다. 어렸을 적에 기쁨에 사로잡혔을 때 '오도방정'을 떨며 마음껏 기분을 발산했다.

 

 

 

 

 

 요즈음, 아이들이 마방에서 나와 노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몸짓에서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다.

 

 

                 '어? 우리 살아 있네. 살아 있는 거 맞네. 그치그치?'

 

 

  이런 정서적 반응은 어디서 조난을 당하여 구조를 기다리다가 막 구조되었을 때, 혹은 체력을 넘어서는 산행을 하고났을 때 그 상황이 해소되면서 찾아올 법하다. 그런데 칸타와 아마르는 그저 실내공간에 있다가 야외로 나왔다는 일상적인 변화에도 그토록이나 희열에 찼다.

 

 동물들이 대부분 그러한 것 같다. 오래 전에 집에서 키우던 말티즈 종 꼭지는  해가 떠서 식구들이 잠을 깨고 자기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아침마다 난리법석을 피웠다.

 

 

 문득 생각해보았다.

매일매일 삶의 의미가 뭔가 하고 골똘히 생각만 하는 나보다는 그저 단순하게 사는 칸타와 아마르가 더 행복한 건 아닐까?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더 행복할 줄을 아는 건 아닐까?'

 

 

 

 행복할 줄 아는 능력에서 더 열등한 나는 아이들의 환희에 찬 몸뚱이와 나 사이에 연결된 투명한 대롱으로 그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흡입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할머니는 말야.내가 행복할 줄 아는 법을 그렇게나 가르쳐줬는데 만날 고민을 싸짊어지고 살아?" 이럴 것 같다.

 

 

 나에게 오래 된 책 한 권이 있다.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의 대담집을 엮은 <신화의 힘>이란 책인데 1993년에 구입하여 여지껏 소장한 책이다. 최근에 다시 꺼내어 펼쳐보니 군데군데 밑줄과 메모가 많았다.

 

옛 사진집을 들춰보는 기분으로 좀 읽어보니 그 책이 그간 살아온 내 인생에 길잡이가 되어줬구나 싶었다.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리기 위하여 기획된 책인데 대담집이니만큼 조셉 캠벨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서 좀 옮겨볼까 한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나는 어느 글에선가 우리가 말과 만나고 승마를 하는 것은 '싱싱해지기 위해서' 라고 쓴 적이 있다. 조셉 캠벨이 말한다.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깊고,풍부하고,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는 책의 다른 부분에서 말하길 신화를 '도로표지' 나 '본'이라는 언어에 빗대어 표현한다. 만일 도로에 도로표지가 없다면 차들이 엉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현대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본'은 원형이란 언어에 가까울 것 같다.

 

 오래 전에 내가 퀼트조끼를 만드느라 지인이 갖고 있던 옷본책을 본 적이 있다. 셔츠,바지,스커트,원피스 등등 이런 옷들의 원형들이 모여있는 종잇장을 넘기며 신기했다. 길만 나서면 어딜 가나 즐비하게 늘어선 옷가게에 넘쳐나는 수많은 옷들, 그 옷들의 원단,색깔,무늬, 디자인은 모두 달라도 바지면 바지,셔츠면 셔츠일 수밖에 없는 원형이 있다. 그 옷을 만들려면 아무리 유행에 따라 변화를 주더라도 '본'에서 응용되어 파생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인생이 있지만 각각의 안에 깃든 공통점,바로 '본'이 어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본'을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는 신화가 그 '본'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말은 우리 삶을 싱싱하게 만든다.

신화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에게서 어떤 '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의문에 따라오는 꼬리처럼 또다른 의문도 떠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순간 요즘 예매율 1위라는 <빅히어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히로가 아이디어가 꽉 막히는 순간에 확 뚫어주던 방법은 바로 '다르게 보기'였다. 익숙한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 여지껏 보이지 않던 뭔가가 확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말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조셉 캠벨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인디언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나무,돌,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나는 말에 관해서라면 그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한다.

다른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면 그 존재가 가진 신성을 깨닫게 되고 그 신성에서 흘러나오는 생명력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만일 존재를  <그대>가 아니라 <그것>으로 바라보게 되면 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메리카 신대륙 개척자들이 들소의 가죽을 벗기기 위하여 수십만 마리를 초원에서 학살한 사실이 있다. 들소가 <그것>들이었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만행이었을 것이다.

 

말도 그저 하등한 동물로서 '탈 것'으로 바라본다면 '탈 것'에 불과한 <그것>에서는 샘솟는 생명력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음의 귀로 들어야 할 소리가 있다. 말이 내쉬는 푸우푸우 하는 숨소리다. 칸타와 아마르가 환희에 차서 꼬리가 올라갔을 때 그 꼬리의 춤사위에 가락을 맞추는 소리가 확장된 콧구멍으로 울려퍼지는 숨소리.

 

 

 

그 숨소리에서 엄청난 원초적 기운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 뿐일까?

수많은 말 영화에서 말이 등장했을 때 코로 내뿜는 말 숨소리를 음향으로 크게 울리도록 효과를 집어넣는 것에서 거기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보편적 요소가 있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위에서 어쩌다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은 장황한 이야기를 한데 그러모아 집약한다면 조셉 캠벨의 바로, 이 말이다.

 

삶의 황홀!

 

모이어스 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그저 거기 있다는 것뿐입니다.

너무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그만 가장 중요한 내적 가치,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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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를 탄 엄마(로라 던 ,분)를 딸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이 끌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에 영화 <와일드>를 보았다. 상영관이 적어서 수소문한 끝에 이웃 시로 넘어가서 보아야만 했다. 그런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내게 감동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말horse이 나왔기 때문에 나로선 덤으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가난했지만 사랑으로 충만했던 가족.셰릴,남동생,엄마

 

 

<와일드>라는 영화는 2012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제 체험담이 원작이다. 이 원작을 비행기 타고 가다가 읽고 단숨에 사로잡힌 헐리웃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판권을 사들여 제작,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우리에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알려진 장 자크 발레.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려서 알콜중독 어버지의 폭력에 견디다못해 도망쳐나온 어머니,남동생과 살아온 셰릴은 세계의 전부와도 같았던 엄마가 척추종양으로 죽은 후 방황하다가 7년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고서 극한의 도보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이 트레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4285 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이 구간을 완주하는데 대략 152일이 걸리며, 걷는 동안에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극한의 도보여행코스라 할만하고 '악마의 코스'라고도 불리운다. 여행자는 트레일을 걷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에 절대 고독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듣기만 해도 '나도 해볼까?'라는 엄두는 커녕 누가 돈주고 가래도 손사래를 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셰릴 스트레이드는 왜 여자의 몸으로 빈몸도 아닌 30킬로가 넘는 몬스터라 불리는 배낭을 매고 여정을 떠나야만 했을까? 삶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사람이 그런 일을 결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고행으로 자신을 내모는 의지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셰릴 삶의 무게중심이었고,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였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따뜻한 사랑으로 넘치는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아갈 만했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셰릴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무너진 세계속에서 셰릴의 삶은 방치되고,꼬이고,망가져버렸다. 하지만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딸'로 돌아가고픈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평생 사랑으로 맺어져있던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갔어도 딸의 내면에서 한줄기 빛으로 살아나 '아름다움의 길'이라 일컫는 밝은 삶으로 이끈다. 셰릴은 그러한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할 때 '내 삶의 상처'인 엄마를 잘 떠나보내지 않는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셰릴의 고행스러운 트레일 여정은 엄마를 애도하는 여행이자, 참다운 나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을 걷는 셰릴

 

 영화를 보면서 육체적 고통과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 안에 되살아나는 과거의 상처로 아파하는 셰릴에게 감정이입하며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과거에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애마 바람이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슬픔을 맘껏 쏟아낼 수 없는 처지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인생을 살다가 몇 번 만나지 않을 커다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건데, 그 상실감을 도화선으로 해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송두리째 올라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인생의 중간정산이라고나 할까. 걸었던 모든 길에서 나의 해묵은 상처와 조우하고 목놓아 울고 난 후 돌아와서는 인생이 리셋되어서 정서적으로 '초기화'된 느낌이랄까 그런 상태가 되어 여지껏 잘 살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물론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삶에 맞추어져 있지만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엄마의 삶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45세까지 살았던 걸로 나온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인생을 긍정하며 늦깍이 학생으로 공부하던 모습의 엄마는 ,결코 팔자가 좋은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은 알콜중독에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으니 최악의 배우자를 선택한 셈이다. 남편으로부터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아이들 손을 잡아끌어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도망치듯이 싱글녀가 된 엄마. 그녀는 아빠의 빈자리가 아이들에게 결핍이 되지 않도록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본다. 그러느라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적인 삶이 그녀의 몫이었겠다. 경제도 책임져야 했기에  집은 늘 가난했다.

 

힘들었던 그녀에게 삶의 커다란 위안이자 힘이 되어주었던 부분이 바로 , 말horse이다.

병원에서 척추종양 진단을 받은 후 그녀가 가장 먼저 의사에게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요?"

 

  그 대사를 통하여 엄마인 그녀에게 승마가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볼 수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와 남매가 사는 집은 변두리나 전원의 허름한 집이다. 그곳에서 말을 키우며 승마를 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라면 저소득층인 이들이 말을 소유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지만 미국이기 때문에 말 키우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엄마는 살면서 남자옷의 지퍼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만큼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을 돌보는 데만 맞추고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기쁨과 생기를 부여한 것은 말이라는 존재였나 보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엄마의 유언도 말horse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저 아이(말)를 편안하게 해줘." 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하루하루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덜어내는 순간조차 엄마가 걱정했던 것은 주인을 잃고 남겨진 말의 여생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세상에 남겨진 엄마의 애마는 셰릴의 새로운 상처로 남게 되었다.

말은 병들게 되었고 마지막을 편안하게 지켜주려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안락사를 시켜야 했다. 그러나 남매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이 없었다. 결국 집에서 남동생이 총으로 쏴서 말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나마 말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다. 엄마의 유언과 다른 모습으로 끝난 말의 최후는 셰릴의 상처가 되어 그녀의 기억속에서 엄마와 함께 번갈아가며 나타나 괴롭힌다.

 

그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고 소멸한 사건이 길에서 일어난다. 비가 철철 내리는 여행자 대피소에서 셰릴은 말울음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키우는 백마가 있었던 거다. 그 백마는 누가 돌봐주지 않아 밤새 비를 철철 맞고 있었다. 셰릴은 백마를 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건초를 주고 편안히 쉬게 한다. 그 순간 그녀의 오래 묵었던 말에 대한 상처도 치유가 이루어진 듯하다.

 

와일드 촬영중

 

 

영화에서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뱀,여우, 굴레를 쓴 낙타 등등.

동물은 주인공 내면의 상처와 치유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이미지로 쓰였다.

 

비록 짧게 등장했고 보통의 영화관객이라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말이란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이나 길게 다루어쓴 까닭은 나 자신이 셰릴의 엄마 연령대 여성으로서 말에게 위안과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주변에도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지는 알길이 없으나 말에게서 크나큰 기쁨과 의미를 얻는 중년여성들이 많다. 말은 고마운 존재다.

 

한편 영화 뒷이야기를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말의 사촌쯤 되는 당나귀들이 촬영스탭으로 참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인 산악지대는 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곳 왕래하는 데는 당나귀만한 일꾼이 없다.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왕왕 보았던 엄청난 짐보따리를 등에 지고 동료들과 줄지어 사람이 시키는 대로 의연하게 걸어가던 당나귀 말이다. 촬영장에 필요한 온갖 장비,소품,보급품을 날라서 영화제작에 기여한 당나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와일드> 책을 구입했다. 열심히 읽고 나중에 '문학과 말' 카테고리에 글을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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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KBS [TV 책을 보다] 화제의 방영작 [뉴욕타임스] 베스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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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영화를 본 후 여성의 자아 찾기를 심리학적으로 탐색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저자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출판사
이루 | 2013-09-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월경독서]에서 목수정 작가가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권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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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점들이 즐비한 역전 제과점의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자영업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들에게는 일의 반대가 휴식이 아니라 손해다. 그래서 그들은 휴일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

.

.

  그러니 어머니가 평생 만든 단팥죽과 팥빙수의 양이 얼마나될지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그 그릇들을 쌓는다면, 아마도 꽤 높은 탑이 되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된다한들, 그 탑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하겠지. 그러고보면, 어머니는 참 여러가지를 만들었다. . . . 단팥죽 맛이 특히 일품이었다. 돈을 받고 팔아야만 하는 것이니 잘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비법은 내가 물려받았으니 나중에 소설이 잘 안쓰여지면 단팥죽 가게라도 차릴까보다. 팥죽을 만들때면 꼼짝없이 잡혀서 나무주걱으로 찜통에서 끓고있는 팥죽을 저어야만 했으니까.

 

  몇 년 전에 몽골에 갔더니 사람들이 마유주라는 것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신기하게 여겼더니 말젖을 짜서는 밤새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면 술처럼 발효가 된다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더라. 그래서 따라가봤더니 술에 취한 아버지들 뒤에서 팥죽을 저을 때의 내 나이 또래의 소년이 말젖을 젓고 있었다. 그 방에는 전등도 없었다.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소년은 말젖을 젓고 있겠지.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으나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모두 똑같은 풍경이라 그게 더 무섭고 절망스럽던 몽골의 평원에서 나는 그 소년을 붙잡고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소설가의 일'중에서

 

 

 


소설가의 일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1-1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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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몽골의 밤은 깊다. 반구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고, 광활한 초원의 점 하나처럼 찍혀있는 게르 의 촛불은 아늑하고 호젓하다. 빙 둘러 앉으면 그 중심에 술병 하나쯤 놓이게 마련이다. 둘러앉은 여행자들이 한 점을 응시하며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울부짖고, 밤이 칠흑처럼 깊어갈수록 게르 안은 방주처럼 아늑해진다. 술잔을 나누며 지나온 길들을 되새기노라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각자가 가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삶의 수첩들을 펼쳐 놓게 마련이다.

 

  취기에 못이겨 게르 밖으로 나서면, 끝모르게 깊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세상의 중심에서 덩그러니 선 자신을 만나게 된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래바람만이 원귀처럼 울부짖는다. 무어라 악을 써도 그 소리는 이내 바람에 날아가버린다.

.

.

.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앗아가는 모래바람과  깊은 어둠에 기대어 여행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꽁꽁 쟁여놓았던 말들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바람은 세상의 어떤 비밀스럽고, 부끄럽고, 저주스러우며 참혹한 소리들일지라도 한 도막도 남김없이 빨아들여 어디론가 날려보낸다.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가슴 속에 쟁여 둔 말들을 통렬히 외쳐볼 수 있었던가. 언제 어디에서 마음껏 비틀거려보고, 가슴을 쥐어뜯어가며 울어보고, 큰 소리로 악을 쓰고, 취해 볼 수 있었던가. 대개 그러한 절규의 끝은 울음이다.

 

  모래바람이 부는 고비사막의 밤은 모든 걸 허용하며, 그 광포한 바람으로 모든 걸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소리도 소멸하고, 형상도 사라진 황야에서 누구도 들을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를 만나게 된다. 고비의 벌판에서 모래바람이 부는 밤이면 , 술잔을 내려놓고 게르 밖으로 나가보라. 걷는다는 생각마저 느껴지지않는 깊은 밤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가슴 속에 꿍쳐 두었던 말들을 바람에 하염없이 날려 보내보라

 

                                                                                             '당신에게, 몽골' 중에서 

 

 

 


당신에게, 몽골

저자
이시백 지음
출판사
꿈의지도 | 2014-07-04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만큼 끝까지 와버렸다면, 이제는 몽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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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원'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살다가 한번쯤은 몽골의 끝도 없는 초원을 밟아보고, 그 땅에서 태어나 자란 말을 타고서 바람처럼 달려보는 꿈을 꾸어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몽골땅을 밟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책갈피에 끼워둔 나뭇잎처럼 마음에 묻어 두었다. 그런 내 앞에 몽골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자꾸 나타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몽골에 간다는 그 마음을 잊지 말라고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몽골에 가면 뭔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위에 소개한 김연수의 산문과 이시백의 글은 모두 몽골에 갔던 경험담이 소재다. 각각 글의 장르나 다루는 이야기는 달라도 어떤 공통점이 느껴졌기에 한데 모아본 것이다. 공통점이란 바로 내면에 아로새겨진 맺혀있던 감정과의 대면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김연수의 산문에서 필자는 유년의 기억 한자락을 들추어낸다. 역전 제과점 아들로 자란 탓에 일손이 모자랄 때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했던 그 시절 말이다. 솥단지에서 끓는 팥죽을 젓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젓는 일을 게을리 하면 금세 죽이 바닥에 눌어서 탄내가 피어오른다. 어린 팔 근육으로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 아픈 것은 팔뿐이 아니었을 터.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엿보아버린 후에 남겨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감정은 잊혀진 채 지나가버렸나 했는데 몽골에서 밤새 마유주를 젓는 아이를 보며 작가의 가슴에 되살아났던 거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두 마리 망아지처럼 울고 싶었다.'

 

  이시백 작가의 사색의 공간은 몽골 중에서도 고비사막에 지어진 게르 안이다. 게르는 유목민의 전통적 이동식 가옥이다. 이런 가옥에서는 바깥의 소음, 자연의 음향이 생생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어서 바깥에서는 바람소리 요란한데 그와 대조적으로 게르안은 사위가 조용하다. 그럴 때 사람은 차단했던 이성의 빗장이 저절로 풀어짐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소리는 내면으로 접속하여 들어가는 암호나 마찬가지다. 평소 겹겹이 두르고 살았던 거추장스러운 생각들이 사막의 바람에 훠이훠이 날려간 듯 마음이 가벼워졌을 때 필자가 만난 것은 역시나 울고싶어지는 맺힌 감정이었다.

특히나 한국땅에서는, 그것도 남자로 태어났다면 쉽게 울 수 없는 법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 것이고, 아무 때나 울면 고추 떨어진다는 삶의 지침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박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울고싶어지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미 몇 차례 몽골에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엄청난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었다. 듣고 지나간 얘기 중에 이런 대목이 떠오른다. 비가 오고 강물이 불었는데 몽골 말몰이꾼이 모는 말무리가 강물 앞에 다다랐고 그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했다. 몰이꾼의 노련한 신호에 따라 말들은 하염없이 몸에 차오르는 거친 물살을 마다않고 강을 건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던가. 그때는 "울었어? 왜?" 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야 그 마음자리가 조금이나마 짐작이 된다. 언젠가 나도 몽골에 간다면 몇 배는 더 울음바다를 쏟아내지 않으려나.

 

'데려다 준다.'

 

 말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주는 존재이다. 물론 옛날에야 아주 오랜 세월 말이 제 등에 사람을 태워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옮겨주는가가 말의 효용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많이 옮겨주는 일에서 다른 대체수단이 생겼으므로 그 일에서 말은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찾아나서고 말에게 빠져들곤 한다. 그 이유를 하나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뭐지? 뭔데 묘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거야?"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비밀 같은 거 말이다.

 

 말은 우리를 깊숙하고 은밀한 내면의 감정과 만나도록 안내한다. 말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보면 내가 말라죽으라고, 숨막혀죽으라고 가두어두었던 내면의 지하실이 열려서 그 안의 것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몽골로 여행을 떠난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작가 두 명이 전하는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글에 실은 사진은 몽골의 사진작가 Oktyabri Dash 님의

' The beauty of mongolia' 에 실린 작품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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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7일 밖에 나온 칸타네 가족. 날은 화창하여 햇빛이 따뜻하게 말 몸을 감싸주었다. 아이들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칸타와 아마르가 다리가 아팠던 탓에 거의 한 달 동안 밖에 나오지 못했다. 아픈 후 일주일 지날 무렵 ,실내마장에는 내보내주었지만 바깥 넓은 공간에 나왔을 때 지나치게 뛰다가 다시 아플까 싶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픈 동안 아마르의 모습은 어땠을까? 점점 끓어오르는 압력밥솥의 상태를 상상하면 된다. 곁인대염 진단 받은 후 닷새 마방에서 안정 취할 것, 수의사의 권고에 따라 아마르는 차분히 면벽하는 수도승이 되어야 했다. 천하의 장난꾸러기 아마르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조치였다. 처음 얼마동안 아마르는 제 할아버지에게 뿔이 나서 귀를 뒤집고,눈을 부라리고,앞발로 바닥을 긁고,머리를 흔들면서 화를 냈다. 그 다음에는 할머니에게도 분통을 터뜨리며 제 억울한 신세를 항의했다. 급기야 마필관리사가 똥 치우러 들어왔을 때도 신경질을 냈다고 한다. 이 녀석의 속이 점차 부글거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예정된 기한 닷새가 지나고 실내마장에서 평보부터 서서히 시켜야 하는데 해방감에 앞발을 들고 난리를 피우려해서 겨우겨우 진정시켜야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발병 후 처음 칸타,아마르를 함께 실내마장에 풀어놓으니 광복이 되어 환호의 물결에 휩쓸리듯 좋아서 난리가 났다.

 

 

햇빛과 바람, 넓은 공간이 선사하는 기쁨을 느끼며 세레모니를 한 후 건초를 먹다가 다른 말 하나가 미니마장으로 들어가니 '동료가 하나 나왔구나' 하고 무리를 만난 흥분으로 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 염탐(?)을 하는 칸타와 아마르.

사진에 아마르 얼굴과 그림자에 비친 모습,그림자가 삼각형 구도를 이루며 마치 무리를 이룬 듯 보여 재미있다.

 

 

염탐질을 한참 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할아버지가 "아마르 이리온 ,손님 오셨다!" 하고 불렀다. 아마르가 바로

 

 "아니 저쪽에도 좋은 일이?"

 

하고서 방향을 바꾸더니 빠른 속보로 달려갔다.

 

 

부름을 받은 아마르가 달려올 때 정면에서 바라보면 허겁지겁 바삐 부지런히 오는 모습이어서 볼 때마다 언제나 웃게 된다.

 

 

"어? 우릴 부르네. 가봐야지." 하는 찰라.

 

 

 

"예써얼~ ! 갑니다 가요~" 우다다다

 

(칸타는 '뭘 그리 빨리 가누' 부르니까 마지못해 가주겠다는 분위기로 꾸물떡~ )

 

 

 

부르셨어요?

 

뭔데요, 뭐?

 

(칸타도 더 재고 있다간 아마르가 맛난 거 혼자 다 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후다닥 달려온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먹을 것만 바라고 달려오는 것은 아니다. 방목이 끝나고 마방에 가자고 로프를 들고 흔들어도 온다. 아마르는 적극적으로 아무나 앞에 있으면 맑은 눈으로 바라보며 걸어온다. 혹시 마장에서 아마르가 뚜벅뚜벅 걸어온다면 당황하지 마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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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헨릭 시엔키에비츠

 

<간략 소개>

1846년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출생.

 

1896년 <쿠오 바디스> (전 3권) 출간.

 

1905년 노벨문학상 수상.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헨릭 시엔키에비츠는 서사 작가로서 뛰어난 장점을 지녔다. 쿠오 바디스는 교양 있고 자존심 강하지만 타락한 비기독교도와 겸

손하면서도 자부심 강한 기독교도 사이, 에고티즘과 사랑 사이, 황궁의 오만한 사치와 카타콤의 고요한 집중 사이의 대조를 뛰

어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로마의 대화재와 원형경기장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의 묘사는 필적할 이가 없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졌던 이 절박하고 심오한 물음은 시엔키에비츠의 <쿠오 바디스>를 통해 혼돈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영원한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동안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났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불신, 대립과 반목이 난무하고 인류는 환멸과 실의 ,고독 속에 함몰되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단절되고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현대문명의 카오스에 휩쓸려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나침반을 갈망한다.

 

<쿠오 바디스>가 탄생한 지 1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작품이 여전히 불멸의 고전으로 손꼽히며,시공과 종교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최성은 / 작품해설 중에서 - p.536

 

 

 

 

 

작품의 배경은  폭군 네로황제 시대의 로마제국이다. 로마의 귀족인 비니키우스는 이방의 공주 리기아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도록 예정되기에 이르른다. 그 찰라에 로마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나고 황제를 따라 로마를 떠나왔던 비니키우스는 말을 타고 어둠속으로 폭풍같은 질주를 한다. 사랑하는 리디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극한의 절박한 심경으로 오로지 말의 속도에 자신를 완전히 내맡기고 로마로 가는 상황은 압권이다. 말의 활약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 42장 전체는 비니키우스가 로마로 가서 리기아를 찾아헤매는 상황의 전개로 할애되었다.

 

제 2권 p83.

 

 비니키우스는 두세 명의 노예들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하고 곧 말에 올라탔다. 그는 어둠에 싸여 을씨년스러운 안티움의 밤거리를 지나 라우렌툼으로 가는 컴컴한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끔찍한 소식에 그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머릿속이 몽롱해져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불행'이 등 뒤에 붙어 앉아 그의 귀에 대고 "로마는 불타고 있다!"고 소리지르면서,자기와 말을 채찍질하여 미친 듯이 불 속에 치닫게 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비니키우스는 투구도 쓰지 않고 튜닉 바랍으로 말을 몰았다.머리는 말의 목에 찰싹 갖다 붙이고 앞도 보지 않은 채, 가는 길에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나 장애물은 아랑곳하지 않고,무작정 달렸다. 적막을 가르며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밤하늘에는 별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말도,기수도 달빛을 받아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이두메아 산 종마는 귀를 늘어뜨리고 목을 앞으로 길게 뽑은 채, 사이프러스 나무와 그 사이사이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하얀 별장들을 뒤로 하며 쏜살같이 질주했다. 돌바닥에 부딪히는 말발굽 소리에 놀란 개들이 잠을 깨어 도처에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와 그의 말은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사라져갔지만 ,그가 지나간 뒤에도 개들은 여전히 머리를 쳐들고 달을 향해 짖어댔다.(중략)

 

"로마는 온통 불바다입니다!"라고 외치던 레카니우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리기아를 구출하기는 커녕, 온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도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니 눈이 뒤집히고,미칠 것만 같았다. 비니키우스의 초조한 마음은 어느새 질주하는 말보다 빠르게,마치 불길한 새떼처럼 그 자신보다 훨씬 앞서 날아가고 있었다.(중략)

 

……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가! 대화재와 노예들의 반란,살육! 그로 인해 시민들은 격분할 테고,어쩌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로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 리기아가 있다. 비니키우스의 탄식과 신음소리는 폭풍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헐떡이는 말의 가쁜 숨소리에 뒤섞였다. 말도 사람도 모두 아르데아에서 아리키아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저 도시에서 대체 누가 리기아를 구출할 수 있단 말인가? 비니키우스는 달리는 말 등에 엎드려 갈기를 움켜쥐고,괴로운 마음을 참을 길 없어 말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그때 반대편에서 안티움을 향해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로마는 멸망하고 있소!"라고 소리를 지르며 비니키우스의 옆을 스쳐 순식간에 멀리 사라졌다.순간 비니키우스의 귀에 "신들이여……."라는 외침이 들려왔으나,다음 말들은 말발굽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비니키우스는 그 낯선 사내가 던진 '신'이라는 말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든 채 별이 총총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략)

 

 

 

 

연인을 구출하려는 청년은 캄캄한 밤중에 말 등에 올타타고 미친듯이 로마로 간다. 청년 비니키우스 눈에는 뵈는 게 없다. 밤중이어서도 그렇고 절박한 상황에 주변이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눈뜬 장님 신세의 주인 명령에 따라 달리는 말은 무슨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 리 없지만 찰라에라도 자기 생각이 떠올랐다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주인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말은 말일 뿐이라서 주인이 가자는 곳으로 무작정 제 네발로 달려나간다. 그곳이 전쟁터이든 재난터이든 가리지 않는다. 비니키우스를 태운 말은 불바다 로마를 향해 달려갔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극한의 절망 그 자체였다. 비니키우스와 말은 지옥을 보았을 것이다. 비니키우스가 터질 듯한 심장으로 절망으로 몸부림친 자리는 바로 말 등이었다. 미친듯한 질주의 끝에서 도달한 곳은 낭떠러지나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그러나 말발굽 소리 속에서 비니키우스는 "신"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신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비니키우스는 새로 태어났다. 그는 처음으로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  그 순간 나의 상상 속에서는 절벽에서 천마를 타고 날아오르는 비니키우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말은 주인을 불바다 지옥을 통과하여 천상에 이르러 신에게 데려다주었던 셈이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신을 받아들이는 장면 이후로 작품의 전개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타락에 가까운 로마귀족이었던 비니키우스가 기독교도 연인 리디아와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신의 가르침 '사랑'이라는 주제에 더욱 다가가게 된다.

 

 

 


쿠오 바디스

저자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5-12-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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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도미네 (2004)

Quo Vadis? 
8.8
감독
예르지 카발레로비치
출연
파웰 델라흐, 막달레나 미엘카르츠, 보거슬라브 린다, 미칼 바요르, 예지 트렐라
정보
드라마 | 폴란드, 미국 | 144 분 | 2004-12-10

 

 

 

 

 

영화에서는 방대한 문학작품이 생략되어 있어 소설을 다 읽은 후 보았더니 싱겁기 짝이 없었다. 대화재 현장 로마로 말 달리는 장면은 소설과 다르게 대낮으로 설정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미친듯이 달려야했던 말의 괴로움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real)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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